어렴풋이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과 올라오는 상념에 한숨을 내쉬었다.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환청도 그렇고 결국 지난번처럼 어찌됐던 일을 시작하면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 적어도 지금은 아니지만, 밀려오는 불안감에 지쳐 쉬고싶다는 느낌이 들어 간만에 걸음을 옮겨 휴게실로 향했다.
끼이익-
흘낏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이 있나 없나를 확인했지만 딱히 인기척이 느껴지지는 않았기에 조심히 들어와 문을 닫았다. 아무도 없었긴 했지만 까마귀가 있을줄은 몰랐는데 아니 애초에 여긴 어떻게 들어온거지?
"...휴게실 창문이 열려있진 않았을텐데, 어떻게 들어온거지."
걸음을 옮겨 휴게실 탁자쪽 의자에 앉아 까마귀를 지켜보다가 문뜩 저 까마귀가 들어오든 말든 자신과는 상관이 없지 않나 싶어 다시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멍때리며 허공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을무렵 들리는 까마귀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려 아래를 바라보았다. 까마귀? 보통 새들은 가까이 가면 도망가지 않던가. 어렴풋이 생각을 떠올리며 잠깐동안 까마귀를 바라보았다. 사람의 손을 탄것인진 잘 모르겠지만 상관없겠다 싶어 팔을 내밀었다. 적어도 사람보다는 상대하기 편하니까 그런데 이러면 올라타는거 맞나?
"...안녕 알아들을진 모르지만"
하다못해 까마귀에게 인사를 하게 될줄은 몰랐지만 주인이 있다면 데려다 주는것도 방법이겠지 그러면 결국 사람과 만나겠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순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힘들겠지 속삭임이 들렸다. 천천히 퍼지듯
바뀐 세상엔 이런 까마귀도 있을 수 있는게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어 새삼스럽지만 쳐다보았다. 정말로 이젠 깨달아야겠지 전부 바뀌었다는걸 내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것을 몇번이고 생각하지만 살아간다는게 대체 뭘까. 하고 생각할무렵 아까의 질문에 날개짓하는 까마귀를 보며 놀라움을 느꼈다
"네 주인이 누구일지 궁금하네 굉장히 똑똑하구나. 놀랐어"
"까마귀야 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고 있어? ... 농담이야."
너는 알까 왜 살아가는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동물한테까지 이런 얘기를 하게될정도로 자신이 몰려있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웃기네 정말 이게 뭐하는 짓인지 하고 잠깐의 허탈함이 들 무렵 이왕 이렇게 된거 허심탄회하게 말이나 해볼까
"그냥 헛소리니까 흘려넘겨. 어짜피 못알아듣겠지만"
"중요했던것들이 모조리 무너져내린 기분을 넌 아니? 아니 사실 나도 잘 몰라 아니 알지도 몰라 그냥 내 밑바닥에서 나를 끌어내리는것만 같은 질척이는 것들이 보이는거같아. 가라앉으면 편할까? 이대로 포기할까 싶어도 나한테 살아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있으니까 억지로 버티고 있어"
"그냥 조금 떠들어봤어 의미는 없지만 대체 살아간다는게 뭔지 모르겠네 난 다 잃어버렸는데 대체 뭘 가지고 살아야하는지 조차 난 잘 몰라 끊임없이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좀먹는 기분이란, 정말이지 어지러워."
"...아니다 됐어. 내가 지금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뭐가 뭔지 모를지경이다. 은인이였던 아저씨의 부탁이 사실 오히려 나에겐 정말 지독한 족쇄가 된걸 알까.
까마귀에게 말해봐야 무슨의미가 있을까. 말을 하고나서야 헛웃음이 나왔다. 추하게도 이렇게 말을 하고나선뒤 조차 목이 매여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잘 살고 싶어도 사는법을 모른다 진작에 잊었으니까 분명히 인연을 소중히 했었던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지금에 와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오로지 스멀스멀 기어오는 죄책감과 증오뿐 하지만 이렇게 싸워서 이긴다고 해도 나한텐 뭐가 남지? 대체? 오버랩 되듯 그날의 환상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까마귀의 날개가 감싸듯이 나를 안아서 정신이 다시 들었지만
"위로해주는거야? ...고맙네 하지만 난 울 수 없어. 그날 다 쏟아내버려서 진작에 메말라버려서 더는 나오지 않아."
가볍게 눈가를 손으로 쓸었다.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한참을 울었었다. 숨이 쉬기 힘들정도로 쏟아냈다. 어으날부터 갑자기 눈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환청이 들렸다 비명소리가 흐른다. 환상이 흐릿하게 남아돈다. 시리도록 느껴지는 것들을 잊고자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조용히 아무것도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면서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얘기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나중에 네 주인에게 감사인사라도 해야겠는걸"
살풋 웃으며 까마귀에게 말을 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없을것이다. 내면으로부터 좀먹는 감정따위는 이제 일상이니까 드러나지 않아.
까마귀가 준 깃털을 보며 아련하게 표정을 지었다. 분명 그날이 나의 생일이였었지. 하고 떠올랐으니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모르겠지만 꽃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케이크도 받았었고 다만, 자신의 가족들과 소꿉친구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뿐 저 휴게실 끄트머리에서 소꿉친구로 보이는 아이가 꽃을 들고 서있다. 얼굴부분만 낙서한듯 검은색으로 잔뜩 일그러져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음... 받긴 했지만 내가 줄게 딱히 없네 미안"
슬며시 부리를 툭툭 건드리면서 웃었다. 금세 잊어버리겠지 그러니까 괜찮다. 깊게 관련되어도 잠깐 슬픔이 일어날뿐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아직 나에겐 너무나도 무섭다. 일단 살아남겠다고 약속한게 있으니까 발버둥쳐보겠지만
직접 마시는 게 맞긴 합니다. 아마 아도니아 씨가 생각하는 그런 그림이 나올 일은 없겠지만요. 허공을 향해 약간 멍을 때리는 듯한 아도니아 씨를 보며 저는 옷 아래로 툴을 꺼내 보였습니다. 붉은, 그래요. 줄기라고 할까요? 끝에 피안화를 피우면 줄기 위의 꽃이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툴을 제 손에 감으며 웃습니다.
“이걸로 연결해서 마실 수 있어요. ..피를 섭취하는 동물은 대체로 좋은 느낌은 아니니까 비유는 하지 않도록 할게요.”
거머리, 모기, 박쥐. 그나마 셋 중 박쥐가 가장 이미지가 좋을까요? 하지만 그 셋 중 어느 것도 좋지 않습니다. 저는, 음, 차라리 나비가 좋습니다. 피안화는 꽃, 피안은 인분, 어울리지 않나요? 나방이요? 음... 그런 말씀은 조금 싫네요.
“..조절을 못하면 미라가 되기에.”
상대분이 말이죠. 툴을 연결해서 잠깐만 목을 축여도 사람 하나의 수분이 다 날아갑니다. 실제로 저번, 처음으로 사람과 싸우게 되었을 때를 떠올립니다. 별로 오래 마시지도 않았는데, 붕대를 칭칭 감아두면 좋은 미라가 될 것 같았죠.. 저는 다소 진지하게 다른 힐러들을 떠올렸습니다. 어떻게, 피로 홀려두고 천천히 성장시키면 좋은..까지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대체제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정 의미 없다 싶으면 예비용 혈액.. 아뇨, 아뇨. 뭐가 자연스럽게 생각이 살벌한 쪽으로 흘러갑니다. 이런 세상이라고 해서 사람을 예비 혈액팩으로 생각하는 건 좋지 못합니다.
“가능한 ‘여러분’께는 하고 싶지 않지만요.”
제 능력은 많이 강해졌고, 혈액의 치유력과 그 지속력도 많이 강해졌습니다. 아마 며칠 정도는 문제없이 효과를 보이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미리 피를 뽑아둔 뒤 사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도 괜찮겠죠.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별로 가치 없는 이들이야 상관없습니다만, 꽤 신경이 쓰이는 분들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지요. 제 피에서는 아주 진한 단맛이 납니다만, 그걸 제 근처의 사람들이 알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 피를 뽑아야 할 때가 있어서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게 어찌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건물 바깥, 아직 종종 연락이 오고 가는 이들을 떠올립니다. 피 한 방울, 선물로 드렸던 사람들. 그들에게 종종.. 선물을 드리죠. 네. 제 주변은 모를 단맛입니다. 으음, 그래도 가능한 뒤탈이 없도록 조심하고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