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그렇게 하지만 루온의 쓰다듬을 얌전히 받았다. 살면서 누가 이렇게 쓰담아준 사람이 없는데. 기분이 좋은 거 같기도 하다. 루온의 손길을 즐기다 루온의 말에 눈을 반짝였다. 곧장 말하려다 멈칫하고는 고뇌하기 시작했다. 사고 싶은 건 잔뜩 있지만, 막상 사려고 하면 그 중에서 고민하게 됐다. 그러더니 루온을 바라보더니 뭔가 떠오른 듯 표정이 밝아졌다.
"푸딩 재료요! 전에 부리더가 만들어 준 푸딩 정말 맛있었어요. 매번 얻어먹으니까 제가 만들어서 다들 나눠주고 싶네요."
푸딩을 만들어서 나눠주겠다니. 그녀는 감동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다른 사람들도 이 생각을 보고 배웠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처음엔 푸딩 재료라는 말에 갑자기 왜 재료를? 이란 눈이었지만 로드의 말을 들은 그녀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음.. 홍등가에 있던 마트가 아마 이쪽이던가요."
꼬옥, 어린애 대하듯 당신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그나저나 홍등가의 마트라니 상당히 안 어울리는걸. 실제로 이벤트중인데도 불구하고 홍등가는 여러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뭐 요즘 세상에 저런 사람이 한둘이냐만은. 화려하기 짝이없는 거리에 미친 사람들. 정말 대극적인 광경이다.
"요즘 몸은 어때요? 다들 급속도로 강해지곤 있는데..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하는게 있으면 말해줘야해요?"
혼자보단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이 다니는 게 즐거웠다. 지나치게 어린애 취급하지 않나. 역시 부리더라서 사람들을 잘 챙기는 걸까. 아마 홍등가라 불안한 걸지도 모른다. 홍등가는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나는 곳이니까. 그래도 루온은 비전투 인원이기에 여차하면 자신이 부리더를 보호해야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저절로 손을 꼭 마주잡았다.
홍등가로 들어가니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벤트를 하고 있는 중이라 사람이 많기도 하겠지만. 저도 모르게 보다 눈이 마주치곤 어색하게 웃었다. 조금 민망하네. 괜히 루온에게 시선을 돌리고 그저 웃었다.
"저는 괜찮아요. 아픈 곳도 없어요. 이제 다들 엄청 강해지셨으니까 전같이 디스포가 갑자기 나타나도 문제 없겠네요. 그렇죠?"
당신의 손을 잡고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그녀의 표정이 바뀌지 않아서 짐작해볼 수 없었지만.. 저 멀리에 보이는 마트를 향해 손을 꼭 잡고 가는 여성 둘. 이 거리에서 보기에는 상당히 위험한 표적일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웬걸. 이쪽을 흘끔 보고 다가오려던 이들 대부분이 갑자기 흠칫 놀라면서 시선을 피할뿐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그저 로드가 웃자 뭐 좋은일이 있나? 싶어 미소지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도착한 마트는 생각 이상으로 건물이 컸다. 그래도 홍등가에서 마트가 필요하긴 한가보..
"자 그러면 다른곳은 볼 필요없고 이쪽으로 가요."
입구부터 마약을 팔고 있는걸 보고 말았다. 그녀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 당신을 데리고 식료품 코너로 재빨리 발을 옮기려한다.
가끔 어리숙하고 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루온은 의외로 생각을 잘 알 수 없을 때가 있었다. 오히려 항상 맹하니까 잘 모르겠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상냥하고 다듯한 사람인 걸 확실했다. 그런 부분에서 루온을 싫어할 일은 절대 없겠지만. 다가오려다 멈칫하는 사람들은 수상했다. 왜 저러지? 그냥 어색하게 피하던 눈을 뾰족하게 뜨고 쳐다봤다. 일종의 경고인 모양이다. 그렇게 눈짓을 주고는 루온을 얌전히 따라갔다.
"네~ 와, 마트가 정말 크네요. 사람도 많겠어요. 앞에서 브라우니를 파는건가?"
방금 전까지 경계하고 있었지만 큰 마트를 보니 신이 났다. 새로운 장소에 많은 게 있을 거 같은 마트까지! 입구에서 브라우니(?) 같은 걸 파는 걸 구경하다 루온이 빨리 걷자 덩달이 걸음을 채촉했다.
교육은 해두는게 좋겠지. 저런식으로 파는 마약을 잘 모르는듯한 당신에게 가볍게 설명해준 그녀는 식료품들을 바라봤다. 푸딩의 재료라고 해도 딱히 복잡하진 않다. 소스는 아직 많으니까 본체(?) 부분만 사면 될듯하고. 그녀는 당신에게 푸딩의 재료를 아는지 물어보고 안다면 그냥 두고, 모른다면 알려준뒤 직접 골라와보라며 말했을것이다.
"저는 뭐 그다지..네요? 급한게 있으면 리더한테 부탁하니까요."
의외의 일면. 알케스가 루온에게 무른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심부름도 해주는걸까.
"홍등가의 마트는 이것저것 다 파니까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아무튼 한번 구경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거에요."
루온의 말에 놀란 듯 하다 금방 가라앉았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여기는 홍등가였다. 사실 다 밝히고 팔아도 될 거 같은데. 브라우니로 만들면 마약이 더 맛있는 걸까. 실수로 사먹진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아무리 그래도 마약까지 손댈 수는 없으니까. 마약은 정말 여기저기 있구나. 순수하게 감탄하며 식료품 코너를 살피다가 알아서 잘 해보겠다는 듯 듬직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계란, 계란... 계란만 사면 되나? 푸딩은 생각보다 간단해서 다 산 게 맞는지 오히려 헷갈렸다. 고민하다 루온의 말에마약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크게 놀랐다.
시원스러운 반응은 없는 루온을 보고 알케스를 떠올렸다. 그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성격도 엄청 가볍고 귀찮다고 안 움직이고. 알케스가 들었다면 또 상처 받았다며 투정 부릴지도 모르는 생각을 했다. 리더와 부리더는 어쩌다 서로를 만나게 된 걸까. 두 사람의 첫만남을 상상하면서 재료를 계란, 우유, 생크림, 설탕장식 등 다양하게 담았다. 망치면 물량으로 승부하려는 모양이다. 재료만 골라놓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인사'요? 잘 끝났어요. 거기 얼음을 쓰는 오퍼 때문에 전투가 긑나서도 방이 얼어있었지만요. 추워서 펭권처럼 다 안고 있었어요... 같이 간 린 씨랑 드라이 씨는 다른 일 하고 있어서 그때 안고 있지 못했네요. 린 씨는 제가 나중에 안아드렸어요! 드라이 씨도... 언젠가 안아볼게요!"
포부를 밝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귀찮아서 안했다니. 이런 부분에서 알케스와 루온이 잘 맞는 걸까.
식사 하면서 딥블러드 사용법을 생각해봤는데 생포한 적에게 정보를 얻어야 하지만 상대가 너무 입이 무거워 고민 중에 시우가 나서는 거.. 하루에 한 잔씩, 자신의 피를 음료수라고 주면서 설득하다가 중독된 시점에서 딱 끊어버리는 그런.. "입이 마르나요? 드시고 싶으세요? 좋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러니.. 당신도 저를 도와줘야해요?"
날카로운 말에 움찔하고 놀랐다. 탐지계라서 사람의 마음도 탐지하는 거면 어떡하지. 방금 리더와 부리더가 잘 맞는 이유도 들었으려나. 리더보단 부리더가 더 성실한 거 알아요. 그럴리는 없지만 루온이 독심술을 할 줄 아는 걸 대배해서 마음 속으로 루온에게 아부했다. 머리를 쓰담아주는 건 보면 못 들은 거 같다.
"드라이 씨요? 음, 입이 많이 험하시기는 했지만 전투 중이었으니 이해해요. 그 전엔 인사도 받아주셨고 나쁜 분은 아닌 거 같은걸요! 그리고 전에 보니까 오락실에도 계시던데 게임을 좋아하시는 걸까요? 친해지고 싶어요. 아, 그러고보니 드라이 씨는 어쩌다 솔로로 활동하시는 거예요? 로직 봄에 있는 거 더 재밌을텐데."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한다. 남의 마음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오퍼가 있다면 편할 때도 있겠지만, 피곤할 거 같았다. 세상에는 알고 싶지 않은 일들도 많으니까. 어느 정도의 비밀은 존재해야 세상이 굴러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애초에 전뇌도시의 지도자부터가 비밀이다.
"네. 앞으로 더 강해지면 좋겠지만 견제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피곤하네요. 전 그냥 로직 봄이 잘 지내면 좋겠어요."
루온의 주의에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지 적당히가 좋은 법이다. 이렇게 강해질 의사는 없었는데. 이대로 가다가 유명해지면, 아버지가 눈치챌까. 염색도 하고 장신구도 끼고 이름도 지었는데. 모르기를 바랄 수 밖에 없나. 잠시 생각에 빠져있다 루온의 목소리에 짐을 들고 마트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