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즈미 제일 가는 가문이라. 그 정도의 가문이었나? 물론 위상이 있긴 했고 가미즈미의 온천과 스파 산업을 꽉 잡고 있으며, 가미즈미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물이 고여있는 동굴을 관리하고 있었으니 ㅡ물론 그렇다고 물이 모두 시미즈 가문의 것은 아니었지만.ㅡ 그렇게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을까. 아키라는 그저 그렇게 납득하기로 했다. 아무튼 이 마히루라는 사람은 상당히 붙임성도 있고 다른 사람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그는 판단했다. 이 가게의 미래는 앞으로도 밝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적어도 자신이 죽을 때까진 이 호시즈키당이 계속 있을 것 같아 속으로 안도했다.
"아하하하."
살짝 툴툴거리는 것 같은 요조라의 모습은 괜히 또 신선하게 그의 눈에 비쳤다.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사쿠라마츠리 때와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가족 앞이라서 그런 것일까. 허나 거기서 무슨 말을 더 하진 않으며 그는 소리를 천천히 줄였다. 뒤이어지는 주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아키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앙금에 벚꽃절임. 말린 산딸기. 그리고 생과일에 초콜릿. 어느 쪽도 상당히 달콤하고 맛있을 것 같았으니 부모님에게 주는 선물로도 충분하다고 그는 판단했다. 무엇보다 이런 것은 역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제일이지 않겠는가. 도라야끼와 모나카도 섞어줄 수 있다는 말에는 잠시 생각을 하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도라야키와 모나카는 다음으로 할게요. 지금은 모찌들로만 부탁해도 괜찮을까요?"
딱히 도라야키와 모나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번에는 모찌들을 조금 더 음미하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그렇게만 부탁했다. 그 와중에 다른 곳으로 걸어가는 요조라의 모습. 그리고 마히루의 말을 들으며 아키라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방에 있는 것이 아니면 혼자 보러가도 된다고 했지만 저렇게 굳이 안내를 한다는 것은 안내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림을 구경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요조라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럼 모처럼 여기에 왔으니 그 그림을 한 번 보러 갈게요. 잠시 실례하도록 할게요."
이어 아키라는 요조라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그녀보다 약 세 걸음 정도 뒤의 거리를 유지하며 저벅저벅 걸어가나 딱히 근처를 구경하듯 두리번두리번거리진 않았다. 이 또한 하나의 예절이었기에.
"그러고 보니 그림은 어디다가 그린 거예요? 그때 엄청나게 크게 그린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모찌로만 담아달라는 주문을 들은 마히루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으니, 그 이상 주문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아키라의 대답에 마히루가 다시금 끄덕이고 즐거운 감상 되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 뒤 마히루 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진열장을 여닫는 소리와 박스들이 바스락대는 소리였을터다.
요조라는 그런 마히루를 뒤로 하고 가게 반대편으로 가고 있었다. 호시즈키당은 바깥에서 보면 꽤 크고 넓어 보이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오면 밖에서 보기보다 좁다는 느낌이 든다. 저쯤에 조금 더 공간이 있지 않나, 싶은 방향엔 벽이 있고 다소 뜬금없이 문이 있다. 요조라는 그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캔버스에, 그렸죠... 생각한 만큼, 크게, 그리려면... 그게, 제격이었으니까..."
캔버스라 하면 누구나 딱 떠오르는 크기가 있다. 이젤에 걸기 적당한 그 크기다. 그러나 요조라는 엄청 크게 그린댔으니 캔버스 역시 그만큼 큰 걸까? 어떨지는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것처럼 요조라의 설명은 더 이어지지 않는다. 그저 느릿느릿 걸어가 손님은 열 일 없는 벽의 문을 천천히 연다.
"어두우니까... 천천히, 들어가세요... 저기, 가운데쯤, 까지..."
아키라보고 먼저 들어가라는 듯이 옆으로 비켜 선 요조라. 열린 문 안은 캄캄해서 뭐가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게 큰 공간은 아닌 듯 하다. 요조라는 아키라가 들어간 후에 따라 들어가 문을 닫는다. 찰칵 소리와 함께 잠시 방 안은 어두워지고, 느껴지는 거라곤 은은한 꽃향기 뿐이다.
"잠깐만, 눈, 감고... 됐다고, 하면... 뜨세요..."
요조라의 목소리는 아키라의 뒤 어디쯤에서 들려온다. 아키라가 요조라의 지시를 따랐을지는 모르지만, 뭔가를 준비하듯 달각대는 소리가 몇번 난다. 그리고 몇발짝 걷는 소리가 나고, 따라락 다이얼 구르는 소리가 뒤를 잇는다. 됐어요, 라고 요조라가 말한 건 그 후였다.
문 너머로는 그저 어둡던 방 안은 그새 엷은 조명빛이 가득 채워 밝아졌다. 마츠리 때 길을 밝히던 제등 불빛과 비슷한 조명이 비추는 방 안은 사방이 벚나무였다. 바닥을 제외한 벽과 천장에 이곳이 다수의 벚나무로 둘러싸인 듯 그려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천장까지 이어진 건 그 날 보았던 가장 큰 벚나무임이 틀림없었다. 마치 마츠리에서의 그 날을 재현한 것처럼, 물감을 꽃잎과 나무의 질감을 따라 두께를 달리 하여 그린 그림은 진짜 같은 세밀함이 있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캔버스 한 장이 아니라, 같은 크기의 캔버스를 마치 퍼즐 채우듯 면마다 빼곡히 채워놓았다. 하나의 큰 그림이 아닌, 작은 그림을 모아 만든 큰 그림이었다.
돌아보면 들어왔던 문이 있는 곳도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로 가려져서 사방 어딜 봐도 벚나무인 공간이 완성되어 있다. 이러면 사진을 찍기 어려울 법도 하다. 요조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큰 벚나무가 그려진 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고서, 벚나무를 관찰하던 그 순간처럼 말이다.
보통 그림을 크게 그리는데 캔버스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어 아키라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일반적으로 아는 그런 캔버스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녀의 안내를 따라가니 어느 문 앞까지 도달했다. 가게 안의 문이라. 일반 손님들은 들어가지 않는 스탭들만의 공간인 것일까. 혹은 개인 생활공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 쪽이건 일반적으로는 들어갈 곳이 없는 그런 공간이었기에 호기심이 서서히 차올랐다.
어두컴컴한 방 안. 눈을 감고 됐다고 하면 뜨라는 그 말에 일단 아키라는 시키는대로 눈을 감았다. 은은한 꽃향기는 벚꽃을 그렸으니 나름 예술적인 느낌으로 살리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별 의미없이 이곳에서 흐르는 향인 것일까. 호기심은 점점 커졌으나 아직 눈을 뜨라는 말은 들려오지 않았기에 아키라는 계속 눈을 감고 조용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들려오는 마치 기계를 조작하는 듯한 달칵하는 소리와 다이얼을 돌리는 소리. 아무래도 보통 그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아키라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하진 않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도 스파의 일을 돕는 사람이었다. 굳이 눈을 감으라고 하고 뭔가를 준비하는 행동은 100%는 아니긴 하나, 평범한 상황 속에서 나올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기대감이 조금씩 커져갔고 그 와중에 눈을 뜨라는 말이 들려오자 아키라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둠 속에익숙해져있던 눈이 서서히 주변 환경에 익숙해졌고 이내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벚꽃' 그 자체였다. 이건 마치...
"가미즈미에서 제일 큰 벚나무."
절로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식견이 좁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 전체를 이용해서 이런 그림을 만들어내다니.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것처럼 말했던 것이 떠올라 아키라는 그저 웃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한면을 가득 채우고 천장까지 이은 저 커다란 그림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캔버스를 채워넣어 작은 그림을 이어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연출을 일반 고등학생이 생각하고 하기는 힘들터. 생각보다 더 엄청난 그림을 봤다는 그 감동과 놀라움은 보통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진짜 솔직히 말해서 이런 그림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호시즈키 씨. 당신. 대체..."
단순히 취미로 그리는 그림? 적어도 그 레벨은 넘었다는 것을 그는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이걸 단순히 취미로만 이뤄낸 것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엄청난 재능이 아니겠는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림을, 정확히는 벚나무들을 조용히 감상하던 아키라는 이내 두 손으로 손뼉을 짝짝 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꽃놀이를 해도 될 지경이네요. 사진은 찍지 않을게요. 이 광경을 사진으로 찍는다고 한들,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담을 순 없을테니까요. 그렇다고 학생회 임원들을 여기로 부를 수도 없으니. 그냥 이 광경은 조금 아쉽지만 제 기억에만 간직해야겠어요. 아하하. 고마워요. 아주 멋진 그림을 보여줘서. 그림에 대해서 자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대단하네요."
대단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가 보낼 수 있는 최대의 찬사였다.
"당신은 장차 미술 쪽으로 진출할 생각인가요? 이 정도면... 솔직히 말해서 어지간한 대회에서도 충분히 트로피를 흽쓸 것 같은데."
진출할 생각이냐고 묻긴 했으나 진출하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건 그녀의 선택이고 학생회장이라고 한들, 그렇게 하라고 강요할 순 없는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