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는 아직도 다리에 힘이풀려 반 쯤 주저앉아 있었다. 상황이 정리되었다. 위험할 뻔한 상황에 몸을 던졌고 그 용기의 대가로 아무런 피해없이 작은 아이를 구해낼 수 있었다. 용기를 내길 잘했다. 뭐든 직접 나서서 행동해야 변화가 생기는 법이다. 그런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그 때도, 그 해 8월에도 이렇게 한 걸음 뗄 용기가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텐데. 너와 헤어질 일은 없었을텐데.
" 으응? "
무모함은 삼가라는 말. 스즈는 고개를 갸웃하며 한 차례를 되묻고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최근 들어 느끼는 것인데 분명 후배로 보이는 아이들이 어쩌면 그보다도 더 어려보이는 아이들이 알아먹지 못할 어려운 소리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있다. 스즈는 잘 모르겠다는 눈치로 그저 막연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 이 정도면 많이 참은거야~ 감당할 수 있을만큼 판 벌인거라구. "
친구들과 같이 있던 그 때는 상대가 누군지도 잘 알았고 어쩌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았기에 '가미즈미고등학교 2학년 B반 미나미 스즈' 라고 자신을 밝히며 열받으면 찾아오라고 일렀지만 이번은 상황이 달랐기에 자신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감추고 말하지 않았다. 이제야 좀 진정이 된다는 듯 스즈는 후- 하고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곤 몸을 돌려섰다.
" 어쨌든! 다친 곳은 없다니 다행이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날 부르라구! 그러니까 나는.. 응. 미나미 스즈야! 만반잘부! "
스즈는 거짓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다. 정확히는 거짓말에 취미가 없다. 필요한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거짓으로 남을 속여넘기고 그렇지 않은 척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거짓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라는 것은 온 몸에 지금의 감정 상태가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화가 나면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얼굴이 조금 빨개진다. 슬프면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눈물이 뚝뚝 흐르고 웃긴 걸 보면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긴장되거나 걱정되면 입술을 깨물고 눈동자가 갈 곳을 잃으며 쓸쓸하다면 금세 그런 표정이 되어버린다.
" 앗, 시-쨩. 저기. "
그리고 또, 최근 느끼는 점이라면 후배들이 후배같지 않다는 것. 이래서는 선배로서의 위엄이 살지 않는데- 라는 생각은 코 끝에 걸리는 달짝지근한 향에 섞여 사라졌다. 보통 누군가가 자신을 안아주었을 때 스즈는 '오야오야~' 하고 장난스레 등을 토닥이곤 했다. 어째서인지 지금의 스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 손을 아래로 축 내린채 멍하니 눈을 뜨고 있을 뿐이었다.
" ....약속이야? "
스즈는 약속이라고 말했다. 나는 널 무시하지 않을테니 너는 날 계속 기억해줘. 그런 약속. 잊혀지는 것이라면 이제 질렸다. 두 번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누구라도 좋으니 한 명이라도 그 자리에서 '아! 스즈!' 하고 기억해줬다면 좋았을텐데. 처음 보는 여자아이였다. 처음 보는 후배였다. 자신보다 어린 후배였다. 이상한 점이라면 그렇게 처음 보는 여자아이에 분명 자신보다 어린 후배일텐데 이상하리만치 안정되고 한낱 인간인 자신보다 훨씬 큰 무언가를 맞이한 기분이었다.
" 시이는 좋은 아이네. 응. 시이는 좋아. "
이제서야 에헤헤- 하고 웃은 스즈는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에게 그랬던 것 처럼 시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곤 슬며시 손을 뻗어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이제야 선배가 된 기분이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이 신비하리만치 이상한 이질감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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