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히 딱 잘라 하는 대답. 짜게 식은 눈을 한 네세리의 꼬리가 이번에도 좌우로 물결치고 있었다. 방금 전과 같은 경계의 의미보다는 조금 더 능청스러운 느낌이다. 나름대로 섞여있는 진심이 닿지 않았는지, 그녀에겐 로드의 윙크가 마냥 닭살돋게만 느껴지는 모양이다.
"흥, 내가 너희같은 녀석들이랑 운명해서 어쩌게? 나는 말야, 원래라면 이런 곳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이었단 말야."
고위험도 디스포와도 단신으로 맞닥뜨리고 쓰러트릴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인원. 전투전문 디스포 강습 오퍼. 그게 나였다. 그런데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는... 전혀 모르겠어서. 백보 봐주어서 그 날은 무리하기도 했으니 레벨 저하가 일어나는 것 까지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예 레벨 1로 초기화라니...! 너무한 거 아냐? 이런 상황을 '운명'이라고 허울좋게 포장하며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나의 힘을 되찾아야만 해. 그것만이 내가 이곳에 몸을 담고 있는 존재 의의다.
"뭐야, 그 미적지근한 대답은... 정말 좋아하는 거 맞아? 그보다, 싫어하는 건 없다니 너무 대충인 거 아니야?"
의심스러운 눈으로 눈 앞의 주접꾼을 바라보며 다시금 스푼을 놀려 푸딩을 뜬 채 입 안으로 가져갔다. 호불호라는건 누구나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니까. ...다만, 단지 이 부분에서 만큼은 확신할 수 없다. 이 로드라는 녀석에 대한 것은 종잡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단호하게 돌아오는 반응에 예상했다는듯 작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차였다며 과장되게 훌쩍거릴 수도 있지만 여기서 더 놀렸다가는 네세리가 상대해주지 않을 거 같았다. 전에 보니 진지한 사람 같기도 하고. 여기까지 상대해준 것도 신기한 일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아직 네세리를 잘 몰라서 얼마나 참아주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네세리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친해지는데 도움이 될 거 같은데. 지금은, 푸딩을 좋아한다는 거 말고는 잘 모르겠다.
"원래라면 어디 있어야 할 사람인데요?"
마침 네세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고 있던 차에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네세리의 말이 흥미를 끌었는지 소파에 붙이고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기대하는 듯한 얼굴로 네세리와 눈을 마주쳤다. 정말 순수하게 네세리가 있고자 했던 곳이 궁금했다. 자신부터 원래 있던 곳이 싫어 나온 사람이니 네세리도 따로 바라는 곳이 있을 수 있다.
"좋아해요. 싫어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걸요. 으음, 그러면 네세리 씨는 어떤 음식이 싫어요?"
푸딩으로 의심을 당할 줄은 몰랐다. 푸딩에 정말 진심인가 봐. 흐음, 손에 턱을 괴었다. 싫어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거 아닌가? 너무 단순한 기준일 수 있지만 로드는 그렇게 살아왔다. 집에서 나오고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런 저런 일을 경험 해보았지만 생각보다 싫어한다고 정의 내릴 수 있는 것들은 없었다. 그래서 밖이 마음에 드는데 이것도 어중간한 마음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