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지만 소리는 전혀 나지 않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시관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곧장 와닿는다. 평소라면 일단 몸부터 떨었을 요조라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는다. 어깨에 덮인 코세이의 외투 덕분에, 걸으며 데워진 몸은 충분히 내부의 서늘함도 견딜 수 있었다. 요조라는 보이지 않게 손을 움직여 어깨의 외투를 잠시 만지작거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세요..."
천천히 구경해볼까요, 라는 코세이의 말에 요조라는 작게 중얼거리고 그림이 걸린 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깨끗한 하얀 벽에 크기도 화풍도 제각각인 그림들이 드문드문 걸려 있어서, 그 앞을 지나치며 하나 하나 감상한다. 전시에 특별한 주제는 없는지 그림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리고 그림마다 작가의 이름과 제목이 걸린 작은 표찰이 밑에, 혹은 옆에 붙어있어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게 되어있었다.
감상하는 내내 요조라는 말이 없었다. 코세이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보고 한번씩 팜플렛을 펼쳐보기만 한다. 특별히 주의 깊게 보는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허투로 지나치는 것도 없었다. 작품 하나 하나, 충분한 시간을 들여 감상하고 지나간다. 그렇게 한바퀴 다 돌 쯤 요조라는 중얼거렸다.
"없네..."
그 말은 마치 요조라가 무언가 찾기 위해 온 것임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그림 앞에서 멈춘 요조라는 팜플렛을 들고 내용을 이리저리 살폈다. 팔락거리며 흔들리는 팜플렛의 제목은 '수상 기념 전시'. 돌이켜보면 그림마다 붙어있던 표찰에 수상 마크 같은게 붙어있던 것도 같다. 요조라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혼자 팜플렛을 보다가, 혼자 휙 돌아서 들어온 입구 근처로 간다. 그리고 문이 아닌 문 옆으로 들어갔다? 알고보니 특별 전시실이란 안내문이 붙은 공간이 그쪽에 있었고, 요조라는 그 안에 있었다.
그림 열 점 겨우 놓을 정도의 원형 공간은 딱 봐도 바깥과 다르구나 싶은 그림들이 다섯 점 걸려 있었는데, 요조라는 그 중에서 가장 가운데 걸린 그림 앞으로 간다. 약간 큰 사이즈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은 유성우가 쏟아지는 밤하늘과 얕은 언덕에 앉아 그걸 바라보는 검은 고양이의 뒷모습이다. 그림 아래쪽엔 별개의 스탠드가 있고 거기에 작가 이름과 제목이 적혀 있었다. 이름은 호시즈키 요조라, 제목은 그 날 밤, 함께 표시된 수상 마크는 반짝이는 금빛이었다.
1점도 득점이라고 해야할지, 기분이 애매해진 요조라는 다음 코드를 찾아 걸음을 옮긴다. 방과후, 대부분은 부활동을 하기 위해 별관으로 옮겨가 적막하...지는 않고 코드를 찾느라 돌아다니는 학생들 덕에 조금은 활기가 돈다. 그 사이에 요조라도 섞여서 벽이며 문틈이며 틈틈히 살폈다. 그러다 창문 한가운데 대놓고 붙은 것을 찾아, 들고 있던 폰으로 코드를 찍었다.
"난 말야, 날 봐주지 않는 게 날 싫어하는 것보다 싫어. 미카쨩, 내가 뭘 해두 덤덤하고 뚱-한 얼굴 하고 있었는데, 이젠 조금 움직이는걸. 그러니까 좋은 거야- 모르겠어? 몰라두 돼."
도닥이는 손길을 만끽하며 하는 말은, 정말 기분 좋아보인다. 묻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나부끼는 머리를 굳이 정리하지 않고, 후미카를 꼬옥 맞껴안은 채로 볼을 부비고, 그럴 때마다 힛, 하면서 즐거운 웃음소리를 냈으니까. 사실, 져도 좋았다. 아소비코쇼랑 쌍륙을 할 때면 몇 번이고 일부러 져줬으니까. 주사위를 한 번 더 뒤집어주는 정도는 간단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배려를 인간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시이는 해주는 것으로도 만족했다.
그러니 네가 이기라며 승리를 양보해주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시이는 기분이 좋냐며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얼굴은 사람의 제정신을 양식으로 삼는 재액신이라 보기에는 너무도 해맑았다. 그저, 후미카의 손길 하나에 기뻐하는 어린 아이처럼 보일 뿐이다.
후미카의 부탁에 시이는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있지, 그럼 그거 말야, 다음에도 또 만나잔 거지? 그거... 맞지? 응, 또 만나면 그 때도 상냥한 바보로 있어줄게. 그러니까 다음에도 만나줘야 돼?"
"탐사라니. 아기자기한 맛이 있네." "말만 그렇고 책상에 엎어져 있는데, 우스아카리 씨. 다들 이렇게 열심히 찾는데 혼자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 '움직이기 귀찮아..."
쩍 하품. 흐느적대는 슬라임처럼 꾸물꾸물 상체만 일으키고서는 허공을 보며 따분히 눈을 깜박이다가, 노트를 찢어 무언가를 척척 접어내기 시작했다. 고전적인 학이다.
"이 아이가 나의 대신이 될 거야." "뭐... 부하라는 거야?" "식신式神." "우와, 역시나 무녀. 그럼 이게 움직이는 거야?" "그럼. 힘든 것은 남에게 맡기고, 가만 버텨서 남이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리고, 몹시 JK다운 행동이라고도 생각해." "음... 요즘 JK라면 자기 몸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 같은데. 그야 그렇잖아, 시대도 변했고, 의지도 신체도 강한 여성- 뭐 이런 거지." "이상해. 그야 순정만화에서는-" "언제 적 순정만화를 이야기하는 거야~! 사실 순정만화 같은 것도 아-무 상관 없어. 잘 들어, 우스아카리 씨. 연약한 겉모습과 다르게 강하고 굽히지 않는 소녀라고? 갭모에라고 들어보지 않았어?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사실 요즘 와서도 착실하게 먹히는 녀석이라고. 유약하고 청순한 무녀! 이것도 오래된 속성인데, 여기에 우리는 다시 고전적이지만 동시에 트랜디하기도 한 갭모에를 끼얹는 거야. 어때, 흥미 돋지 않아? 대화가 산으로 간 것 같지만 무시하고 계속 들어보라구. 그러니까 이제 모에라는 게............"
......... .........
"..........그러게, 정말. JK는 갭모에가 있어야지."
단순한 무녀 상대로는 그럴싸한 일장연설로 세뇌하다시피도 가능하다.
의외로 에니시는 휴대폰이 있었다. 무뚝뚝하게 졸졸 걸어가다가 고개를 홱 하니 돌리면 그곳에 쪽지가 있고, QR코드에 렌즈를 가져가면-
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어지는 설명은 두 사람이 쌍둥이라는 것이었다. 렌은 잠시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쌍둥이었구나. 쌍둥이 일수도 있는 건가. 생각해보면 쌍둥이 신이라는 것도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럼 이 사람도 신인 건가?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학생으로 보이는데. 렌은 눈을 깜빡이며 코세이의 말에 대답했다.
“눈 색이 비슷해서 가족이 아닐까 생각했었어요. 머리색도 비ㅡ,”
비슷하다고 말실수를 할 뻔 했다가 급히 입을 닫았다.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어 말했다.
“ㅡ슷했으면 바로 쌍둥이라고 다들 알 것 같아요. 음, 인상도 비슷하신 것 같고요. 하하….”
가까스로 수습하며 렌은 머릿속에 피노키오 해줄 거냐고 물었던 했던 코로리를 떠올렸다. 코로리 씨, 저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아냐, 방금은 잘 수습했으니 괜찮으리라. 렌은 코세이가 다른 화제를 꺼내자 바로 물었다.
“4교시에 다친 게 있어서 보건실에 갔었는데, 코로리 씨가 계시더라고요. 보건 선생님이 안 계셔서 손바닥 치료하는 걸 도와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