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정확히는 플로터라는 공인데 이걸 스파이크 속도로 날리는 세터가 있다고 들었어 :3 시니카가 배구에(정확히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사람 그 자체에) 환멸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본체인 내가 배구 지식이 그렇게 밝지 않다 보니 배구 쪽으로 나갈 일은 그렇게 가능성이 없을 것 같네. 시트 캐릭터 중에 배구선수 캐릭터도 없어보이고 <:3 코로리같은 애가 나데나데해주면 얼굴은 좀 펴지겠다. (본심)
그냥 매일 보는 옷이 아니라 다른걸 보고 싶은 것뿐이다. 축제기는 하지만 엄청 성대한 축제도 아닐뿐더러 주인공도 우리가 아니니까 그냥 인파에 섞여서 적당히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냥 돌아다니면서 먹고 싶은게 있으면 먹고, 경품 같은 것도 따면 재밌을테고.
" 신뢰의 상징인거지. "
살짝 웃어주고서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점심을 다먹고 운동장을 돌면서 햇빛도 쬐고 소화도 시키려는지 학생들이 여럿 걷고 있었다. 혼자 걷는 학샏도 있고 삼삼오오 모여서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어대는 모습이 여기서도 보인다. 다들 에너지가 넘쳐서 좋아보이네. 따뜻한 햇살을 쬐자 다시 졸음이 몰려오는듯 하다.
" 거기서도 잘 보일꺼야. 생각보다 밝더라고. "
거기에 시로하가 사는 신당은 산 속에 있으니 못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 유성이 제때 정확한 궤도로 떨어질지 계속해서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것은 내가 할 일이고 다른 이들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나저나 오늘도 소원이 가득하게 들어오겠구만. 비록 들어주는 것밖엔 하지 못하지만 개인적으론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나도 빌어주곤한다.
" 슬슬 점심시간도 끝나간다. 오늘도 밥 같이 먹어줘서 고마워. "
시로하가 깨워주지 않으면 분명 학교가 끝날때쯤 슬슬 일어나서 종례시간에 멀쩡한척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점심 같이 먹자고 챙겨주는건 몇 없으니까. 근데 리리는 ... 점심 먹었나?
" 그럼 조만간 한번 초대할께. 축제 시즌이 지나고서가 되겠지만. "
사쿠라마츠리는 당장 코앞에 다가와있으니까 말이다. 쓰고 있던 안경을 다시 창가에 올려두고 잘 준비를 해본다. 5교시가 시작할때쯤엔 다시 잠들어 있을 것이다.
리얼충? 리얼충 같은 얼굴이 있나? 싶긴 했지만 어쨌든 정말 맞춰버리는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금 놀란 티를 낸다. 역시 쾌락신~ 이란 거냐.
" 전 항상 고객님 응대에 진심이랍니다. "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배우기도 했고, 어쨌든 심심하던 차에 쾌락신 친구의 방문으로 서점에 활기가 생겨 재밌기도 했고. 가미즈미 청년, 이라고 부르는 것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가미즈미 (서점) 청년의 줄임말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혹은 상대가 아예 다른 지방에서 왔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굳이 교정해주지 않기로 했다.
" 만화... 라고 하면 원피스, 나루토, 헌터헌터... 이런걸 본 기억이 나네. "
있지, 만화책이나 그 라노벨? 같은걸 원하는 거면 따로 말해줘, 시켜서 다음에 방문하면 줄께. 라고 말하며 장부를 꺼냈다가 이상형 얘기에 컥, 소리를 낸다.
" 어, 없어, 그런거. "
진짜 구체적인 이상형이 없긴 했다. 평소엔 그냥 '웃을 때 이쁜 사람'으로 적당히 둘러대긴 했지만... 방송에서 그런말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라는 판단에 제대로 대답하긴 했지만 오히려 더 수상해 보였다.
"질렸습니다." "또 질리셨습니까." "예, 아주 질렸습니다." "이번엔 왜 질리셨습니까."
신관장은 히키가 토리이 꼭대기에 앉아있자 그 위를 쳐다보며 목덜미를 긁었다. 히키의 저런 모습도 참 간만이다. 히키는 지금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토리이의 가로로 이루어진 장식을 아슬아슬하게 지날 정도로 긴 머리카락, 그 위에 돋아난 사슴의 뿔, 평소에 입던 평범한 기모노 차림이 아닌 온통 흑색과 적색으로 이루어진 소쿠타이 차림이다. 얼굴은 소리코에 쓰이는 가면이 덮고 있다. 단지 그것뿐이면 좋겠으나, 봄날 변덕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요란한 방울 소리와 홍백 고헤이, 마찬가지의 홍백색 새끼줄, 거기다 긴 종이 장식까지 머리카락과 함께 나부낀다. 히키는 그 사이에서 코웃음을 쳤다.
"또 시작이라 그렇습니다. 욕망이나 쾌락의 신에게는 안타까운 말이나 눈앞의 설탕에 꼬리치며, 그 끝이 파국을 초래할 것을 알면서도, 순간의 유혹에 못 이겨 선택하는 꼴이 달갑지 않습니다."
히키는 과거를 회상한다. 불과 백 년 조금 넘던 날에도 이 세상의 탐욕은 불이 붙고 들끓고 있었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인간을 죽이고, 아래의 것으로 삼았으며, 속이 빈 것처럼 하루하루를 채우기에 바빴다. 그 속에 타인의 동의는 없다. 인생은 덧없고, 헛될 뿐인데 왜 받아들여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남을 몰아넣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 인간들도 있기 마련이지요." "헛소리."
히키는 입을 벌렸다. 소리코 가면이 얼굴이었는지, 갑자기 희고 검은 것이 쩍 벌어져 길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다. 치열이라기엔 비현실적인 것이 복숭아를 와드득 깨물었다. 아닌 봄날의 복숭아는 신계에서 가져온 것이 틀림이 없다. 거칠게 득득 깨무는 소리를 뒤로 즙이 뚝뚝 흘렀다. 꼭 시체에서 떨어지는 피 같다. 신관장은 그 모습을 보다 잠시 어딘가로 향했다. 히키는 그간 복숭아를 계속 씹고 삼켰다.
신관장이 돌아왔을 때는, 그 손에 그릇과 젓가락, 물이 담긴 소반이 들려있었다. 신관장은 무릎을 꿇고 앉아 그릇의 뚜껑을 열고 물을 부었다. 히키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복숭아를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인간의 것이 아닌 얼굴이었기에 꼭지와 씨까지 씹어먹는 건 쉬운 일이다. 먹는 것이 쉬운 일이듯, 공허함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쉬운 일이고, 히키의 본분이었다.
"내 탐욕을 이기지 못해 되레 공허해진 자들을 수없이 봤습니다." "그렇겠지요." "그마저도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어찌 요즘엔 탐욕을 이기지 못한 자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당한 사람들이 공허로 빠집니까?"
그렇지만 최근 보이는 공허는 본분이며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엇나가게 하기 충분했다. 본인의 탐욕도 아니고, 타인으로 비롯된 공허가 보인다. 고작 말 한마디로 시작되는 것도 있을 정도로, 너무나도 쉽게 밀어 넣는 것으로 비롯되는 공허는 깊었다. 히키의 오랜 삶에서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 중 하나기도 했다. 과거에는 공허를 두려워해 타인을 공허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인간의 천성이 악하기 때문인지 깊게 의심하게 된다.
"인간이 날이 갈수록 악해집니다." "언제는 그런 것을 좋아하셨으면서." "이젠 질립니다." "수호신 노릇이 그립기라도 하십니까?"
히키가 고개를 홱 내려 신관장을 노려봤다. 주변이 순식간에 싸늘하고, 습해졌다. 검은 뿔에서 수십 개의 춘유록빛 눈동자들이 번쩍 뜨여 신관장을 일제히 내려다본다.
"본인의 앞에서 다시는 그때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 하였거늘.. 네 두상이 경망스러웁기 그지없구나. 두상만치 가벼운 구순을 잘라내어야 그 말을 얹지 않겠더냐." "틀린 말 하였습니까. 불과 어제까지만 하셔도 인간을 구경하는 건 즐겁다 하신 분이." "그렇다고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것 같더냐."
신관장은 대답 대신 그릇을 연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좋은 냄새가 난다. 얇게 썬 햄과 쪽파, 튀김가루, 그리고 반숙의 계란이 얹힌 라멘이다. 이런 상황이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일단 드시고 다시 생각하시지요."
히키는 말없이 노려보다 토리이에서 휙 뛰어 내려왔다. 이후 그릇을 싹 비우고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다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방으로 들어가 딸과 옹기종기 모여 TV를 시청했다. 신관장이 식은땀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상영령은 때때로 사나워지곤 하였으니, 이때 음식을 바치면 화를 면할 수 있다. 옛말에 틀린 말 하나 없다.
예의상 건네는 빈말이 맞긴 했다. 아니, 예의상 건네는 빈말이어야 했다. 뭐 어쨌든, 그렇기를 바랐고, 그렇게 전해진 것 같으니 다행이다. 시선을 내리까는 것. 그 정도 반응이면, 이 거리감에 적당하다. 그래서 시니카는 다음의 이질적인 질문을 한결, 종이 한겹 차이지만 어쨌건 한결 편하게 쇼에게 건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곡."
그러다 시니카는, 어깨를 으쓱이며 뒤이어지는 말에 미간에 실금을 그렸다.
"까불지 마."
그러나 어쨌건 그 짜증은 자신도 그 의지와 열정에 끌고 들어가려는 언사에 대고 부리는 것이었고, 적어도 쇼의 의지를 방해할 생각이었기에 무덤덤한 척 하더니, 하는 그 말에 대한 책망은 그 정도로 그쳤다. 드럼스틱은 내팽개쳐지거나 하는 일 없이 그녀의 손에 잘 쥐어져, 드럼을 연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목은 풀어줘야지, 하는 말에 대답 대신으로 페달에 발을 올리면서. 보컬이 세팅을 끝내는 동안, 시니카는 쇼를 느긋하게 기다려주었다. 중간에 잠깐 드럼스틱을 스네어드럼 위에 올려놓고 주머니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한 모금을 더 피우긴 했지만, 쇼가 노래를 시작할 때쯤에는 시니카 역시도 양 손에 드럼스틱을 쥐고 연주를 마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아, 정말이지,
드럼과 심벌즈가 가볍게 울며 쇼의 포효에 박자를 맞추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자를 완전히 익힌 그것은, 다시금 흉포한 괴물이 되어 쿵쿵 울어대기 시작했다.
버겁다.
보컬과 기타의 박자를 선명하게 잡으면서, 그러나 보컬에 빈자리가 생기거나, 혹은 보컬이나 기타에 힘을 실어 받쳐줘야 하는 대목이 되면 이빨이 부딪히는 듯한 심벌즈 소리와 쿵쿵거리는 울림이 야수의 울음소리처럼 멜로디를 헤치고 나와 선명한 심박음을 내며 사운드를 채워나갔다. 침묵해야 할 때는 침묵했고, 날뛰어야 할 때는 날뛰었다.
내게는 닿을 일 없는 열정이.
흉폭하고 선명했으되 잡아먹지는 않았다. 그저 같이 어울릴 뿐. 그것은, 일종의 춤이었다. 얼음과 불의 춤. 서로가 서로에게 손끝 하나 발자국 하나 겹치지 않는 윤무곡이 경음부실을 가득 메운다. 시니카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무덤덤하게, 쇼의 기타를 따라 두 번째의 합주를 펼쳐냈다.
>>558 시니카: 호의가 좋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 잘 알아요. 애초에 호의만큼 등처먹히기 쉬운 게 어딨다고. (다시 말하지만 시니카의 인생꼬임 시작점은 >>262(이하생략 시니카: ...그런 의미에서 정말 이상한 선배님이시네요. 말투도 그렇고. 시니카: 뭐, 거절하진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