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라고 불렀다고? 요조라는 티 내지 않았지만 잠시 당황했다. 천천히, 차분하게 기억을 더듬어보자, 아까, 아까라면... 아, 떠올랐다. 조금 전, 졸면서 이곳이 집이라고 착각했을 때다. 그 짧은 사이, 이 사람을 오빠라고 착각했나 보다. 최근, 집에서 가장 많이 기대는 사람이 오빠였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 할 뻔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요조라는 차분히 대꾸했다.
"그렇겠네요, 아마..."
모르는 척, 아닌 척 하는게 요조라에게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티내지 않는 선에서 대강 얼버무릴 수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빠 때문에 이게 뭐람. 요조라는 괜히 오빠에게 애꿎은 화를 돌리면서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는 중에 들린 질문- 올라가봐야 하지 않냐는 물음에 답을 하려다가 예비종이 울리길래 꺼내려던 말을 넣는다. 예비종이 울린 후에 넣었던 말을 다시 꺼냈다.
"...저는, 교실로, 안 가니까... 상관없어요... 늦던, 빠르던..."
이대로 교실로 가면 졸아버리거나 기절하듯 잠들게 뻔하니까, 바로 양호실로 갈 생각이던 요조라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남은 내용을 읽기 위해 잡지만 바라보았다. 제대로 안 보면 귀가했을 때 오빠가 이것저것 묻고 귀찮게 굴게 뻔하다. 그걸 넘기기 위해서라도 본 김에 다 보는게 좋다고, 요조라는 생각했다.
아뇨. 대답이 무척 단호하다. 냉랭한 분위기가 어딘가 무섭기도. 리코는 애둘러 하하 웃으며 대꾸해보지만, 상대의 발치를 서성이는 고양이의 집념은 그럼에도 사그러들 기미가 없다. 나비야, 이제 그만....! 리코는 속으로 다급히 외쳐보지만, 그 목소리가 고양이에게 닿을 턱이 없다. 아이들은 길고양이 치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졌다. 험난한 길바닥에서 살아남기엔 다소 불리한 요건. 개중 겁이 많은 녀석도 이리 금세 경계를 풀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이유. 곤란한듯 고양이와 상대를 번갈아 바리보던 리코가 다시 한 번 쇼핑백 손잡이를 고쳐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가보구나. 이 시간대에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단 생각이 드는 그녀다.
" 츄르가 있긴 한데, 아무래도 필요는 없으시겠죠... "
잠깐의 환색, 그리고는 다시 의기소침한 웃음. 고양이들의 환심이 필요해보이진 않으니까. 상대의 표정을 살펴 바라보니 그 생각에 동그란 정답 표시를 매기듯 냉랭한 표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 나, 어쩌면 굉장히 민폐처럼 보일지도.
" 제법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사랑이 고픈 아이들이라. 아무래도... 새로운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을까, 기대한 것 아닐까요? 무서운 것도 무릅 쓰고. "
독심술을 할 줄 아는 것은 아니지만. 게다가 정확한 답도 아니다. 그저 심증 뿐인 서술. 답안을 직면한 선생님이라면 부분 점수 1점을 남길만한. 리코의 눈길이 상대의 손끝을 따른다. 캔이 두어개 남은 종이 쇼핑백. 누군가를 향한 확실한 관심과 사랑의 증거. 리코가 조심스레 손을 뒤로 돌려 쇼핑백을 감춘다.
" 그 애 이름은 나비예요. "
괜스레 화두를 돌려본다. 애진작 식사가 끝났음에도 고양이들은 이 차가운 풀숲 옆을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일어난 해프닝이 그저 재미있는 걸 수도. 당사자는 제법 곤혹스러운 처지인데도 말이다.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물어본 것에 불과한데 반응이 생각보다 맘에 들었다. 시로하가 당황하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인데. 조금 더 놀려볼까하다가 화라도 내면 어쩔까싶어서 일단 보류하기로 마음 먹었다.
" 교복 차림과 사복 차림은 다른거니까. 너도 항상 내 교복 모습만 보잖아? "
그렇다고 카페에 찾아오면 그때는 사복이 아니라 유니폼이니까 조금 다른 모습이더라도 본질적으론 사복은 아니다. 목소리를 올리다가 기침을 하는 시로하를 보고선 책상에 올려두었던 물병을 건네주었다. 역시 몸이 약한 편이라 그런가 조금만 큰 소리를 내도 저렇게 반동이 오니 ... 조금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다.
" 그냥 놀러가는게 기대 되는거니까. 간만에 여가시간을 가지는 것이기도 하고. "
학교 갔다가 카페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 신으로써의 업무를 보다보면 가사를 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것들은 주말에 몰아서 하게 된다. 주말 하루는 자느라 바쁘니까 나머지 하루는 결국 밀린 일들을 하다보면 그렇게까지 여유 시간이 많이 남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긴 여유도 보통 잠으로 보내기도 했고.
" 도장까지 찍어야겠는걸. "
작은 키에 걸맞는 앙증 맞으면서도 하얀 손에 내 눈 높이까지 올라와 새끼손가락을 치켜보인다. 이런 작은 손으로 검을 잡아서 그렇게 휘두를 수 있다니. 신이란 그런 법인걸까. 그렇기에 더욱 그녀가 신으로써 받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같은 신이니까 딱히 그런건 없고, 그저 새끼 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엄지 손가락으로 도장까지 찍으려해본다.
" 아 참. 오늘 밤에 별똥별이 하나 떨어질꺼야. 시간은 ... 오후 열시쯤이었던 것 같은데. 구경할꺼면 해도 괜찮아. 아마 남쪽 하늘에서 보이지 않을까 싶네. "
반응은 없다. 예상했던 것이다. 짧은 몇 번의 대화로 파악한 사실은, 상대가 생각보다 많이 무심한 학생이었다는 점이다.
담배 끝에서 퍼져나온, 구별할 수도 없는 과일 냄새가. 동시에 삭막한 기류가 부실 가득 퍼진다. 전자담배에는 저런 향도 있구나, 쓸모없는 지식이 하나 생겼다. 쇼가 의자 옆의 작은 책장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괸다. 그 시선이 연기의 궤적을 따라서 움직인다. 창문 너머로 날아간 연기가 덧없이 흩어진다.
허락도 없이 멋대로 외부인을 들이고, 거기다 담배까지 피는 걸 묵인해줬다는 사실을 누가 알기라도 하면 어떨까. 아마 부장 선배가 불같이 화를 내겠지. 그럴 일도 없는데, 참 쓸데없는 생각이다.
코우사카의 의욕 없는 목소리가, 순순히 제 이름을 알려준다.
"음."
짧은 탄성이 대답 대신 내뱉어진다. 별 의미는 없다. 그냥 그 이름이 이상하리만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오토하, 쇼."
이쪽도 이름을 알려주고 나면, 또 침묵이 이어진다. 갈 곳 잃은 시선이 창문 밖을 향했다.
>>332 그렇구만 >:3 정확히 캡틴이 말한 '비밀을 조건으로 일부에게 알려주는' 그런 느낌으로 혹시 신의 정체를 우연히 알아버리는 일상 같은 걸 돌리게 되면 어떤가 해서. 말했다시피 지극히 현실적인 시니카를 비현실에 맞닥뜨리게 하는 순간이 보고 싶어서 시니카를 데려왔거든 :3 신의 모습을 우연히 봐버리고 "...하?" 하고 말문을 잃어버린다던가.
>>352 혼선을 줘서 미안해.. <:3 다음에 꼭 라면 얻어먹으러 가겠다구!(?) 다른 걸 할 수도 있고.
필요없다는 뜻으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는 설령 그의 손에 츄르가 있다고 하더라도 눈 앞의 고양이에게 그것을 건내지는 않을 것 이었다. 그것은 그가 먼 옛날에 한 다짐 중 하나였다. 제법 오랜 세월동안 잊어왔지만 곧 바로 떠올린 다짐과 맹세를 수 년이 지나서야 지켜지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는건 당신때문인거겠죠."
나쁜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그 일을 '당신덕분이다' 라고 말하는건 꺼려졌다. 고양이가 사람에게 친근감을 가진다고 한들 특별히 나쁜일이 일어나는것도 아니건만.
"나.."
나비라는 이름을 그녀가 알려주자 무의식적으로 그 이름을 부르다가 그는 말을 멈추었다.
"귀여운 이름이네요. 전형적이지만.."
그런데 이 고양이들은 밥을 먹었으면 해산을 해야지 왜 남아있는걸까. 그래도 모여있는걸 보면 보기드문 광경이면서도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응석을 받아주는 사람은 좋다. 따듯한 것도 좋다. 그치만 일정 이상으로 침해해 들어오는 건 싫어. 하지만 침해해줬으면 해. 그래서 안아드는 것에 저항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또 후유키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만 것 같아서 입을 내밀곤 툴툴댄다.
"바보. 최고 바보. 똥개. 케밥.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리고는 고개를 돌린 채로 계속 툴툴대는 것이다. 한 마디로는 그 옹졸한 속이 다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애초에 말이야, 나는 의젓하단 말이야. 나 이래봬도 신이니까? 가끔 다른 신들이 헷갈리곤 하는데 일단 인간들이랑 지위가 다르니까? 무시하지 말란 말이야!"
혼자 툴툴대다 혼자 북받쳐서 고개를 홱 돌리면, 화사한 봄날의 정원과 익숙한 얼굴이 있다.
-얘, 왜 언제나 복도에만 앉아있니? -나는 어여쁜 정원만 보면 된다. 바깥 에도는 굶주린 자들이 많고 외세들이 호시탐탐 노린다고 하니 바깥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 -바깥은 네 생각보다 곱절로 아름답단다. 나가보지 않으련? -...나갈 수 없다. 나는 이 성에 묶여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