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했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이 trpg동아리실에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예 안 들어오는건 아니었지만 가끔 사람 1명이 왔다가 가는 수준이었고 그나마 머무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trpg동아리 자체가 부원이 오든말든 신경을 잘 안쓰는 동아리였기에 오늘은 동아리원.. 부원도 없었다. 그냥 조기종료하고 집에가서 쉬는게 좋을까 생각하는 찰나에 밖에서 평소와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들짐승의 소리였으며, 당신은 그 소리가 복수의 소리임을 눈치챘습니다. 당신은 신중히 움직여 그 짐승이 당신의 냄새를 맡지 않도록 바람을 등지지 않도록 하여 창문을 통해 그 짐승들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하늘 위의 태양의 빛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똑바로 그 방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수의 들짐승들의 사이에 갇힌 한 명의 여성을 발견했습니다.
은밀행동.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그만두자.
이게 무슨일인가 싶어 동아리실에서 나와 그 소리가 나는 장소로 몸을 움직였다. 당연히 그 여성은 들짐승들에게 공격받는건 아니었고 오히려 그 동물에게 음식을 베풀고 있었다. 흠, 상황적으로는 그리 다른 것은 아닐지도.
그녀의 드럼은 마치 짐승의 소리처럼 광포하게 꽝꽝 울려대고 있었으되, 그것을 두드리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못해 무심했다. 마치 그렇게 북 두드리는 법을 배우는 기계와도 같이 영혼이 없었다. 그 연주는 난폭하고도 훌륭했으되 공허했다. '뭐라도 두들겨패고 싶다'라는 조금 과격하기까지 그지없는 표현을 했는데 성에 차지 않는 걸까, 아니면 얼굴에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이미 무언가 열의라거나 만족이라거나 하는 것들을 느끼는 법을 다 잃어버리고 만 걸까.
바로 무대에 올라도 손색이 없을 만한 합주였건만, 온 경음부실을 꽝꽝 울리는 기타 소리와 드럼 소리가 그치고 나서도 박수갈채는 없었다. 아무 감정 없는 텅 빈 침묵만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을 뿐이다. 시니카는 드럼스틱을 쥔 채로 드럼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쇼에게로 시선을 들었다. 잠깐 쇼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나올 법했다. 쇼의 연주는 분명히 선명한 열정이 한가득 담긴 멋진 기타 연주였으니까. 너 보컬이라더니 기타도 좀 치네? 라거나 보컬이랑 기타를 동시에 하는 거야? 하고 물어봐도 될 만한 상황이었건만 시니카는 아무 말도 없었다.
역시나, 하는 태도 같았다, 여기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는 듯이. 그래서,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질문은 영 엉뚱하기 그지없는 질문이었다.
"담배 좀 피워도 될까?"
그녀는 드럼스틱을 주머니에 꽂고는, 주머니에서 아무렇지 않게 웬 이상한 기계를 꺼냈다. 담뱃갑만했지만 담뱃갑은 확실히 아니었는데, 액체가 들어찬 원통 같은 게 그 기계에 달려 있었다. 쇼는 문득 코끝에 걸려오는 라임과 포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아, 그러면 그녀의 몸에서 났던 그 엉망진창으로 정체성 잃고 뒤섞인 과일냄새들은 혹시...
츠키시타 리코, 다른 이름으로는 달의 여신. 낭설에 의하면 달빛만큼 아름답고 고운 백발의 머리카락에 우주를 담은 듯 황홀한 눈동자를 가졌다고 하던. 달을 바라보며 염원하면 언젠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전설 속 그녀는 지금 가미즈미 고등학교에서 귀여운 길고양이들의 급식 도우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연어맛 캔은 까미 거, 닭고기맛은 용용이 거. 오늘은 쿠키가 올까? 리코는 어젯 밤 얼마 없는 주머니를 털어 고양이 주식 캔과 간식 파우치를 쇼핑백 한 가득 사들였다. 학교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길고양이들을 챙겨주기 위해서였다. 학교에 '길고양이 밥주기 당번' 같은 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당번이 있다고 한다면 리코는 기쁘게 자처했을지도 모르겠다만. 리코는 첫 등굣길에 작고 가냘픈 고양이들을 발견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랜 시간 먹이를 먹지 못한 모습과 꼬질한 얼굴. 언젠가 리코는 어두운 달밤 고양이의 끼니를 챙겨주던 인간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무척이나 오래된 일이었는데,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리코는 그 인간이 어떤 마음으로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는 것이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허겁지겁 끼니를 해치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렇구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싶어 매일 밤 거리로 나오는 것일까-
" 천천히 먹- "
리코는 세 번째 등굣날, 학교 구석 풀숲 옆에서 그제야 그 오래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딘가 한 켠이 뭉글대는, 작은 생명이 품고 있는 온기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 외치는, 자꾸만 눈길을 잡아끄는 그 안타까움이 무엇인지. 어딘가 꼬질한 밥그릇에 습식 사료를 덜어넣던 리코가 작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둥그렇게 뜨며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제법 우습기도 하다. 이 근처는 전부 빈 교실일텐데! 그래, 제대로 동아리 활동을 해본 적 없는 아웃사이더의 불쌍한 착각이었다.
" 에, 음. 고양이한테 밥을 주고 있어요...? "
생각보다도 대답이 멍청하게 나가버렸다. 알아챈 것은 이미 모든 것을 입 밖으로 낸 후였다. 리코가 머쓱한 듯 무릎을 펴 일어났다. 괜스레 머리칼을 만지작대고, 사료를 먹어치우고서 제 다리에 얼굴을 부벼오는 고양이들을 한 번 내려다보고. 조금 긴 침묵이 지난 뒤에야 리코는 겨우내 입술을 한 번 뗀다.
" 학교 근처에 길고양이들이 모여있길래... 자주 챙겨주거든요... "
바로 앞에. 서있는 사람도 뭐? 하며 되물어볼 듯한 목소리. 문자 그대로 기어들어가고 있다. 그리 소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낯선 이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내 비밀스런 무언가를 들킨 듯한 기분을 유발하곤 하기에. 리코는 그 부끄러움으로 괜스레 상대에게 꾸중이라도 듣는 양 기세를 숙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