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와는 달리 풍어신은 지금의 만남에 별다른 감상을 가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 만남이 만중 하나의 확률을 넘어선 기적적인 가능성일지 모르더라도, 좋은 기도를 하는 인간에 대한 궁금증은 조금쯤 있을지언정 그 이상의 의미로는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그저 네가 의미를 두고 싶으니 그렇게 믿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을 정도의 사교능력은 그에게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대신 꺼낸 대답이란,
"그래, 오(お)스즈."
구닥다리식 예절이다. 이름 앞에 존칭 붙이기가 시대상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자기 부르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이 꼭, 관공서 이름이 바뀌었는데도 꿋꿋하게 옛날 명칭으로 부르는 어르신 같았다…….
풍어신은 스즈에 대답에 마주 답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지만 말이야,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신이라면 그렇게 믿는 것이 당연했다. 그 믿음으로부터 태어나고 살아가는 자들이 그것을 부정한다면 제 존재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하지만 믿음이 사라져가는 시대,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가는 주체적인 인간상이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지는 현대에 있어선 허성으로 치부되기 쉬운 생각을 보존하는 일은 드물다. 풍어신은 스즈의 시선이 제게 닿자 찬찬히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길다란 머리칼이 부스스한 잔결은 조금도 없이 매끄럽게 내리 떨어진다. 흘러내린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그가 반문했다.
"기분 나쁠 것은 또 무엇이니. 나쁜 말도 아닌데."
자신이 신이 맞기 때문만이 아니라 신 같다는 말은 애초에 욕이 아니지 않나? 신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저 역시 마루에 몸을 앉혔다. 비교적 예전에 지어진 건축물이니 현대보다 체고가 낮은 사람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져서, 요즘 것만큼 다리가 높이 뜨지 않아 그것만은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이 으레 하듯 다리를 동동거리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만 있을 뿐이다.
배가 고플 때 먹는 음식은 무엇이 되었든 맛있게 느껴진다는 건 풍어신도 알지만, 주먹밥을 저렇게까지 맛있게 먹는 것은 조금 신기하게 보인다. 그 무뚝뚝한 후나가츠히메조차 '맛있니?'라고 물을까 싶어지려니 묻기도 전에 맛있다는 감탄사가 스즈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려던 말을 잃어버린 그는 질문을 선회하고─"그건 누가 만든 거니?"─, 이윽고 들린 물음에 담담하게 말했다.
이름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꼭 무사의 도리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테두리 역을 하는 이름이 있음으로 무엇이든 실체가 규정되며 입에 담아 부름으로써 비로소 물건과 물건은 관계가 엮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고리타분하다면 차리리 이렇게 하자, 이름을 알면 나중에 언젠가 친분 운운하며 맘껏 친한 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음, 사람 일은 모르니까. 제멋대로인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마츠루는 청산유수로 나아가는 TRPG 개요에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테츠야의 설명은 인위적인 면이 많지 않으며 사람을 잡아끌어 몰입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뭇 훌륭한 가르침에 비할 만큼 대단하다, 까지는 부족할지 몰라도 군더더기가 없고 명쾌하다. 즉, TRPG의 T도 모르는 사람이 아하 이런 것이로군요 깨닫게 하는 데는 큰 부족이 없었다. 너무 먼 곳까지 가지 않고 고작 한 발짝 앞에서 걷는 것은 이렇게다 이끄는 일. 설명의 기본 요건인데도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르치는 일에 재주가 있는 것일까 혹은 TRPG에 그만큼 쏟는 마음이 깊다는 걸까. 페트병이 텅 비워지는 모습을 보며 역시 녹차를 쭉 들이킨 소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꼭 쇼기며.. 바둑 같네."
? TRPG의 정체성을 꼭 사뿐히 즈려밟는 소리를 피곤하네요 하듯 입에 담은 소년은 이어서 조곤조곤 속삭였다.
"아니면.. 게임센터에 있는- 모험하며 선택에 또 선택을 겹쳐가는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는 게임 같기도 해. 그거, 로그라이크던가.. 내지는 R..PG? 아, 그래서 TRPG구나, 그럼 여러 명이서도 함께할 수 있겠네. 하여 어떨까.... 설명하는 게 너무나 귀찮고 나른한 후지모리 테츠야. 조금 더 미아레 마츠루에게 TRPG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
/웃 짧게 시간나서 답레 잇고 가 (´Д`) 편히 이어주면 밤에 이을 수 있을거여요 여건만 맞으면 이벤트 전???
옛날, 지금 활동하는 레슬러들은 진짜배기 레슬링 팬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레슬러들이 봐왔던건 레슬링 비디오테이프들이었다. 이름 있는 비디오테이프가 아닌, 진짜 아무 레슬링이 붙은 비디오테이프들을 빌려왔고, 그리고 레슬러의 꿈을 키웠던 것이다. 지금은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을 찾기도 힘들어졌고 아미카의 집에선 비디오테이프는 커녕 DVD를 보기도 매우 불편했지만, 일단 그렇다 하더라도 기분은 내고 싶었기에 근방에 있는 DVD방을 찾은 것이다. 사전정보가 없어서 혹시 이상한 DVD만 있는게 아닐지 아주 잠깐 걱정했던 아미카였으나, 다행히도 프로레슬링 관련 DVD가 몇개 있어서 시청해보기로 했다.
아미카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DVD를 플레이어에 넣은 뒤 DVD방의 침대 위로 올라갔다. 평소였다면 푹신함 때문에 1분 뒤에 잠들었을 수도 있지만, 프로레슬링이지 않은가? 아미카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리고...나온건 교육용 영상이었다.
"뭐...뭐야아..! 이건 레슬링 영상이 아닌데에..."
물론 요즘 선수들 중에 교육 방송과 비슷한 프로모 영상을 내놓는 선수도 있긴 하다만 시작부터 저런게 나오면 정상적인 레슬링 영상물은 아니었다. 아미카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다시 피곤한 표정으로 변해 침대에서 기어선 떨어지듯 내려왔다. 그러곤 DVD를 꺼낸 뒤 점원에게 잘못된 DVD라고 말하러 갔다.
토와는 DVD방에서 교육용 영상이 있다는 말에 빌려서 보며 필기를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더 적지 못할 굉장한 공식들이 줄줄이 나올지도 모르니 이만 줄인 뒤.. dvd방에서 노트를 펴고 dvd를 틀었는데..
-아 여기에서 메치기!!! -일어납니까? 일어납니다! 같은 이야기가 있는 프로레슬링을 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토와는 혹시 몰라서 빨리감기를 통해 정말 이게 교육용 영상인지 확인을 해본 뒤. 정말로 아니란 게 밝혀지자. 점원에게 잘못된 dvd라고 말할 생각으로 dvd를 교육용 영상의 패키지에 넣은 뒤 점원에게 향했습니다.
"저.. 안의 dvd가 잘못되었는데요." 자신의 앞에 있는 여성이 무슨 용건인지. 라고 생각하면서 점원에게 다가가서 말을 하려 합니다.
산만한 화과자들이 정리되자, 점원이 의아한 듯이 고개를 기울인다. 역시 너무 적은가? 생각할 때쯤 점원이 유산지를 쟁반에 깐다. 쇼는 와보라는 점원의 말에 순순히 쟁반과 집게를 들고 그 뒤를 따른다. 아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점원이 입은 교복이 가미즈미 고교의 것이다. 같은 학교 학생이라.
점원의 걸음은 꽤나 느릿했다. 말하는 것도 그렇고, 상당히 굼뜨다는 느낌이다. 점원이 가리킨 것은 화과자와는 다른 초콜릿, 쿠키 등의 간식들. 쇼는 그제서야 아까 여기를 둘러보겠다고 생각해 놓고 까먹어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화과자를 잔뜩 담다 보니 깜빡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화과자보다 저런 과자들이 쌓아놓기에는 더 알맞을 것이다.
쇼가 점원의 말에 고개를 살풋 끄덕인다. 그러더니 진열장 내부를 잘 살펴본다. 이것도 맛있어 보이고, 저것도, 저것도… 하지만 그렇게 왕창 사다간 아까보다도 더한 과자의 산을 보게 될 테니, 그건 지갑 형편에 좋지 않다. 그러다 들려온 점원의 권유에 쇼는 냉큼 긍정의 뜻을 표한다.
점원이 급히 사과하며 DVD를 가져갔다. 아미카는 어쩌다가 DVD가 섞였는지나 그렇다면 레슬링 DVD는 어디로 갔는지, 두가지가 궁금했다. 일단 이 DVD가 잘못된거라면 아까 봤던 다른 레슬링 DVD를 달라고 할까, 하려다가 뒤에서 DVD가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한번 더 들려왔다. 아미카는 자신과 똑같이 잘못된 DVD를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라서 뒤를 돌아보곤 말했다.
'도대체 어떤부분에서 장기와 바둑같다는거지?' 라는 엄청난 의문이 생겨났지만 일부러 무시하도록 했다. 그가 보았을때 그 의문을 해소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 이라고 예상했고 현재 그에게 남아있는 체력과 정신력으로는 그 시간을 헤쳐나오지 못 할게 뻔했기에. 그는 제법 영리했다.
"쇼기도, 바둑도 순간순간의 선택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니 그런 셈이겠네."
장기와 바둑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그였지만 그렇겠다고 고개를 끄덕여주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래, 결국은 rpg. 그것을 책상위에서 간략히 할 수 있도록 정형화 시킨게 trpg야. 당연히 rpg같은걸 혼자 하는 것 만큼 허무 한 일도 드물지.. 기본적으로 trpg는 여러 사람과 하는걸 전제로 하지만."
주변은 역시나 한산했다. 학생들이 같이 trpg를 즐기기 위해 똑같은 요일에, 똑같은 시간대에 모이자고 약속을 하는것은 너무 불확실하지 않을까. 심지어 동아리 활동 시간 사이에 만나야하니 그 확률은 현저히 적다.
"그렇게 약속을 해서 만나는건 현실적이지 않으니 여기에 있는 trpg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만들어놨어. 1일전에 어떤 플레이어가 'trpg 동아리실' 에 쓰레기를 투척해놓았다면 다음 플레이어가 동아리실에 들어가면 투척된 쓰레기를 발견할 수 있다던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