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하지만 죽도의 검풍이 내불고 지나간 검도부실의 한켠. 이것 또한 시작의 바람이라고 말 할 수 있으려나. 그것을 목도하며 말없이 있던 시로하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이것은..."
그리고 감긴 눈을 조금은 더욱 질끈. 하더니,
"―전혀 글러먹었구나!"
하고 떼엑- 외치는 것이다. 그리곤 금세 연신 콜록거리는 기침소리가 그 뒤를 따른다. 갑작스럽게 목소리를 올린 탓이다. 이건 모처럼 골이 아파오는구나... 하가네가와 시로하. 아니, 도검의 신은 제 목을 매만지며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문외한을 상대로 열을 낼필요도 전혀 없건만, 이렇게 기본도 되지 못한 자를 상대하는 건 또 오래간만의 일이라 멋대로 몸이 반응해버리고 말았다. 이른바 말하자면 감정이 이성을 이긴. 그런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커흠..."
이대로 방치하면 분명 사단이 나겠다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 테츠야에게 다가가 보아라, 라며 운을 땐다. 이 뒤로는 한동안 교정이란 이름의 잔소리 밭길이었다.
"먼저, 네가 가져온 그것은 양손으로 잡는 물건이다. 오른손으로 베고 왼손으로 검을 다스린다고 마음을 먹는게다. 여기서 어깨는 더 펴고, 발을 앞으로 더 딛어야지 조금이라도 힘이 생기지 않겠느냐. 게다가, 아직도 상완근이 뭉쳐있구나. 유약한 몸이 쉽게 해지듯이 단단한 몸 또한 금방 부서지는 법. 칼을 움직이는 것은 몸이며, 몸을 움직이는 것은 오롯이 네 안의 일념이다. 유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각자 다르다고 하나 이 균형을 처음으로 이루었을때야말로 무언가를 벨 수 있는 몸이 되는게다."
따박따박 정갈하게 언질을 하며 손을 가져다대고 테츠야의 자세를 하나하나 조정해주는 시로하. 마치 관절 목각인형을 움직이듯이, 직접 맞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칼이나 자세에 대한 것은 그렇다고 해도, 일념이라든가 유파가 추구하는 검리 따위의 이야기를 고교 2학년생이 알리가 있겠는가. 그래도 그런건 아랑곳도 하지않는지, 눈썹이 살짝 미간 안으로 당겨져 있는 그 얼굴에서 상당히 단호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럼, 이번엔 내 지시에 따라서 다시 휘둘러보거라."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겨우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시로하가 그제야 뒤로 다시 한 발짝 물러났다. 다만 역시 아주 시원하지는 않은가, 자세를 풀지 말 것을 몇 번이고 강조하고는 검지를 올려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자세 그대로 팔을 들어올려 검을 이빨처럼 치켜세우고, 가상의 적에게 먹여준다고 일념하며 내리치거라. 그 과정에서 도신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를 느껴라. 직선을 그리는지, 곡선을 그리는지, 그도 아니면 중간에 이탈하여 다른 길로 세어버리는지. 말하자면 이미지를 연상하고 기억하는게다. 여기서, 그 뒤야 말로 더욱 중요하다. 검 끝이 바닥을 향한 후에도 절대 자세를 허물지 말거라. 지금은 이 점들만을 명심하며 한 번 휘둘러 보자꾸나."
그렇게 일장연설이 다시 한 번 끝나고 나서야 다시 일합을 휘두를 수 있게 된 소년. 이 즈음 되어서 검도부 체험에 대한 의문이 들고 있어도 무리는 아닐테다.
흔히 낮은 많은 생물들이 깨어나 움직이니 밝은 기운이 가득하고 밤엔 쥐죽은듯이 잠을 자니 음침한 기운이 감돈다고 하던가.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내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이다. 뭐 내가 생각해도 맞는 말이니 반박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밤은 너희들의 생각보단 활기가 넘친다.
" 그 놈의 전기가 뭔지. "
칠흑 같은 밤은 이제 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불을 사용하게된 인간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지만 전기를 사용하게된 인간은 오히려 어둠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덕분에 밤은 더이상 어둡지 않으며 오히려 밤의 유일한 빛이었던 것들을 가리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을뿐 그것들은 언제나 자기 자리에 묵묵히 존재할 뿐이다.
" 마실이나 나갔다와야지. "
별의 운행은 내가 없어도 대부분 잘 돌아가는 편이지만 가끔 삐끗할때가 있다. 예전엔 그렇게 삐끗해도 아무도 모르니까 괜찮았지만 지금은 인간들이 너무 똑똑해져서 그렇게 삐끗해버리면 난리가 난다. 그러니까 밤에 계속 운행을 지켜보아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밤이 밝아졌다한들 많은 생물들은 잠을 잔다. 밤 특유의 고요함은 아직도 길거리 곳곳에 잔잔하게 가라앉아있다. 그런 고요함은 좋아하지만 그래도 밤에 계속 깨어있는 것은 심심하기 마련이다. 여동생과 얘기라도 나눌까했지만 그녀는 그녀대로 바쁠테니까 오늘은 조용히 마실이나 나갔다오기로 마음 먹었다.
가로등이 켜져있는 길거리는 이따금 전구의 필라멘트가 떨리는 소리 이외에는 작은 곤충소리만 들려올뿐이다. 도시는 가로등에서 소리가 안난다는데 이 시골에는 언제쯤 그 가로등이 들어올런지. 하지만 그런 소음이 싫지 않았기에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렇게나 옮기던 발걸음은 어느새 놀이터로 향해있었고 아무도 없어야할 놀이터에선 칠이 되지 않은 그네의 소리가 들려왔다.
" 그건 베텔게우스. 오리온의 왼쪽 어깨랍니다. "
누구인가하고 다가가봤더니 소리의 주인은 어느새 미끄럼틀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여긴 시골이라서 별이 좀 더 많이 보이긴하지. 가까이 다가가자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의 시선을 쫓아바라본 하늘엔 오리온 자리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도저히 그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뒷걸음을 치며 괴상한 음성을 내었다. 전혀 글러먹었다니, 그야 옆에서 잘 하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못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나름 잘 했다고 보는데!
콜록거리는 그녀의 옆에서 그도 자신이 낸 목소리에 대한 반동으로 켁켁 조아리다 '큼!' 하고 소리를 내어 목을 진정시키고 처음부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장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옆에서 계속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마치 되새김질이라도 하는 듯 경청은 했지만 제대로 이해는 되지 않아서 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속으로만 당황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또 다시 안 좋은 결과를 내면 또 저 작은 몸에서 엄청난 호통이 날아올거라는건 초등학생이라도 학습할 수 있었다.
"어..어, 응. 아.. 아니, 예."
그래도 발을 앞으로 딛으라는 말은 들어서 왼발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상완근.. 상완근..? 상완근은 어디에 붙어있는 근육일까. 어깨에 있는게 아닐까 추리를 하며 자세를 하나하나 조정해주는걸 겨우겨우 고정시켰다. 아니.. 고정당했다. 이건...정말로 일반적인 고등학생들의 검도부체험이 맞는걸까? 라는 의문을 떠올리기도 전에 그는 옆의 그녀가 내는 지시를 따르는데도 고역인지라 그런 의문을 제시할 수는 없었다.
"핫!"
어떻게든 자세를 계속 유지하라는 그 말만 기억하고 어떻게든 기합만 내면 만족해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다시 그리고 최대한 세게 죽도를 휘둘렀다. 자세는 물론 전에 했던 것 처럼 머리를 때리는듯한 자세였다. 이제는 어깨말고도 뭔가 다른쪽의 근육들도 땡겨지는 감각을 느끼며 휘두른 후 '휴우.' 하고 숨을 쉬었다. 과연 결과는 어떨까, 하고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마음으로 옆에있는 그녀의 표정을 살짝 흘겨보았다.
"같이 여행을 떠나고 싶느니라." "여가 지금껏 하늘 아래에서 살아오면서 본 경치라곤, 고쿄의 고궁과 가미즈미의 풍광이 전부였노라. 그러니 여행이 좋겠구나." "나란히 손을 잡고, 고민할 일도 미련가질 일도 고이 접어 내려놓고, 자전거 앞자리 뒷자리에 나누어앉아서, 때로는 기차나 비행기의 옆칸에 나란히 앉아서... 여의 등을 내어주는 것이 더 빠르겠다만 요즘은 여권이라는 것이 있어 정식으로 다른 나라를 드나들고자 하면 비행기를 타야만 하겠더구나. 그래, 생각해보면 비행기도 타본 적 없다. 꼭 한번 타보고 싶구나. 그렇게 온 세계 천하명승을 질릴 때까지 관람하다가, 어느 날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양지바른 언덕에 돌아와서 나란히 눈을 감고 햇살을 받으며 느긋하게 함께 영영 깨지 않을 낮잠에 빠지고 싶느니라. 삶이 한낱 꿈이었다는 듯이."
요조라는 혼자가 편했다. 어릴 때부터, 체질이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후부터였다. 혼자만 다르게, 느리게 흐르는 시간에 또래 아이들은 따라오지 못 했으니까. 그래서 일찌감치 어울리는 걸 관두고 혼자 겉돌았다.
밤산책 역시 혼자 놀며 생긴 취미 비스무리한 거였다. 가끔 오빠가 같이 가줄까 하고 물어왔지만 매번 사양하고 혼자 나왔다. 조용하고 어두운 주택가를 마냥 걷기만 하다가 이 놀이터를 발견한 후론 늘 여기로 왔다. 어느 날은 그네에서, 어느 날은 미끄럼틀에서,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보고 별을 헤아렸다. 그렇게 별을 세다가 금방 들어간 적도 있고, 날이 밝은 적도 있었다. 항상 달랐지만 같은 부분도 있었다. 어느 날이건 혼자 나와 혼자 있다가 혼자 들어갔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에..."
하늘에 큼지막하게 보이는 별자리를 더듬으며 저게 뭐더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요조라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들린다. 뭐지. 뭐야? 핸드폰 켰나? 하지만 어시스턴트 목소리가 아닌데? 뭐지? 수많은 의문이 요조라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눈 한 번 깜빡일 짧은 순간이 지나고 요조라는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과 후드로 가려진 사각지대 너머를 보자 거기에 왠 사람이.
"...귀신...?"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어서 인기척도 발소리도 못 들은 요조라에게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그야말로 귀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이 보기 흔치 않은 하얀 머리카락을 하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요조라는 여전히 미끄럼틀에 누운 채로 후드 속 눈을 깜빡였다. 깜빡깜빡, 정체 모를 사람을 빤히 응시하다가, 다시 하늘로 시선을 슥 돌리며 중얼거렸다.
"귀신도... 별을 좋아하나..."
아. 이거 빨리 해명하지 않으면 요조라 안에서 이 사람은 귀신으로 확정지어지는 흐름일지도. 그러거나 말거나 요조라는 눈으로 별과 별 사이를 쫓으며 오리온의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