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붉은 석양이 지고, 세상은 다시 저 붉은 태양의 조각을 주워 찬란한 밤을 보낼 것이다. 오늘은 그 밤이 싫었다. 잠들어서 쭉 보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기는 그 생각에 박차를 가한다. 눈꺼풀은 무거워 계속 내려앉기를 반복했고, 세상은 붉었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한다. 페로사의 품은 따뜻했다. 에만은 이 품이 비단 담요 때문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람의 온기를 이렇게 느껴보기가 얼마 만이더라. 공상이나 피해 망상은 아닌 것 같다. 선명한 온기가 이 여인이 자신을 떠나지 않았음을 실감하게끔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에 휘감겨버렸다.
당신은 떠나지 않았다. 떠나지 않게끔 붙잡았던 것들은 모두 손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졌는데, 당신은 흩어지지 않고 단단하게 불에 달궈지듯 하여 하나의 형태가 되었고, 조각이 됐다. 만일 잃어버려도 금세 그 형상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고작 짧은 만남일 뿐인데도, 큰 신뢰를 넘어선 일이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해야겠다. 에만은 품에 파고든다. 분명한 온기와 자신을 더 끌어안는 인간 자체의 존재를 느끼듯 하며 눈을 다시금 내리감았다.
깊은 생각이 다시금 잠과 함께 쏟아져 나온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하루를 주겠다는 약속으로도 턱없이 모자랄 것이다. 온기를 다시금 알았기 때문도 있으나 앞서 말했듯 욕심이 제법 많았기 때문이요, 손에 쥔 모든 것이 빠져나가는 사람이 온전하게 쥘 수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가질 수 있는 독기는 보통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뒤틀린 도시의 사람은 정상적인 방법과 뒤틀린 수를 공존하듯 상상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어내고자 하는 욕심이되 뺏기지 않겠다는 생각, 마지막으로 그 과정에서 당신을 망가뜨리지 않을 섬세한 감정까지.
그 무렵이었다. 정수리 부근에서 따스한 감촉이 느껴지자 느릿하게 눈을 떴다. 말랑한 감촉은 한때 입술로 느껴봤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고개를 부스스 들어 올리자 선명하게 초점을 잡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보인다. 에만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친애를 표현하는 고양이처럼 느긋한 모양새였고, 팔을 뻗어 당신의 등을 감싸 안았다.
"……떠나지 않았구나."
혀가 제멋대로다. 잘 잤어? 보다 먼저 나와버리고 만다. 상냥한 애착을 견딜 자신이 없었는지 품속에 고개를 파묻어버린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뒤에야 개미가 기어가듯 작게 속삭인다. "…잘 잤어..?"
"약속했잖아." 한번에 끌어안기엔 퍽 큰 등이다. 품속에 푹 고개를 파묻어도, 그녀는 어떤 거부도 없이 당신을 꼭 끌어안아준다. 모래알처럼 바스라지거나 안개처럼 사라져버리는 일 없이, 따뜻하게 당신을 감싸안고 있었다. 그 온기가 생소하게도 낯익다. "그리고 약속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말을 잇지 않았다. 아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품속에 고개를 푹 파묻어버린 당신을 내려다볼 뿐이다. 일개 바텐더와, 일개 -겨우 법적 성년이 되었을 뿐인-아이. 다시금 그 단어의 정의가 흔들리며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당신의 순진무구한 탐욕을 끌어안아주는 조그맣고 낯선 기적이 되었다. 여인의 탈을 쓴 버림받은 괴물- 그러나 당신에게는 어디까지나 자상한 여인일 뿐인 그녀는 당신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고 있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여인의 품 안에서만큼은 당신은 암흑가를 주름잡는 왕좌 뒤의 배후자들 중 하나인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아니라 윈터라는 가명을 쓰는 이 도시를 헤매이는 탕아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입밖에 내는 대신, 당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대답하기를 택했다. "응, 덕분에." 하고는 익숙한 미소를 얼굴에 씨익 짓는다. 조금 멋적은 미소다. 겨우 세 번을 만났을 뿐인 당신을 이렇게 따뜻하게 품 안에 품어주는 게 조금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나 거부하지는 않는다. 언제 자신의 삶이 이상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이 광기의 도시가 이상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 오히려 서로에게 몸 기대일 품과 마음 기대일 순간만을 찾을 뿐인 이 순간은, 오히려 이 도시에서는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순진무구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그녀와 당신 둘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요, 최고의 광기가 되었다.
"어떻게 할래." 그녀의 얼굴에 걸려있던 쾌활하고, 조금 멋적은 미소는 주홍빛의 노을과 품 안의 당신이 머금은 온기에 살짝 녹아내려 나른한 미소가 된다. "이대로 좀 더 잘래, 아니면 다른 데로 갈까? 배가 고프다거나 하진 않아?" 페로사는 당신에게 나직이 질문해왔다.
거절 없는 모습이 안심이 된다. 밀어내거나 칼을 들이밀지 않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좋다. 사라지지도 않는다. 에만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득 차던 잠이 오히려 사라지고 있었다. 뒤의 말이 무엇일지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더 들어버리면 뭔가 커다랗게 흔들릴 것 같다. 당신을 위한 상냥한 악의가 선의가 되어버리고, 끝내 자신의 커다란 약점이 될지도 모른다. 자신은 허울 좋은 허수아비 왕을 세워두고 자신은 자유롭게 암흑가를 누비는 배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삶을 평생 살아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당신의 품 안에서는 한낱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 모습에 만족해버렸다. 그 아이라는 모습이 다른 일상까지 가버릴지도 모를 선까지 와버렸다. 때문에 뒷말이 들리지 않기에 되레 안심했다. 대신 잘 잤냐는 느릿한 인사를 뱉었다.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에 의식하지 않고 천천히 머리를 비빈다. 무의식이다. 익숙하지만 조금 멋쩍은 미소를 이해했다. 겨우 세 번의 만남인데도 이렇게 되어버렸다. 한 번은 목숨을 구하기 위함이요, 두 번은 대작하였고, 고작 그 연이 이렇게 이어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연인이 아니더라도 살 맞대고 다음날 홀연히 가는 것이나 혈연 아니더라도 하루 만에 돌연 의형제를 선언하는 것이 사람의 삶이니 이상할 것 없다. 에만은 그렇게 생각했다. 미쳐버린 도시에서 더 미치는 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비단 광기가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것이 아닐 때가 있다. 때로는 순수하고 맑은 것이 이 흙탕물 속에서 가장 큰 광기일 때가 있다.
에만은 지난번 만남에서 자신의 참패를 인정했다. 일개 창부와도 같은 자신은 할 수 없다 되뇌며 가시를 드러냈다. 그리고 오늘 다시금 참패를 인정한다. 이 광기에 말려들고 말았으며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가시가 꺾인 것이다. 그 빌어먹을 희망이라는 이름의 가위가 아직 가시를 부러트리진 못했지만 적어도 구부러트리는 것엔 성공했다. 언제 다시 아물어 가시를 세울지 모르는 일이나 적어도 지금은 아닐 것이다.
역광이 진다. 비스듬한 빛으로 변모하는 것은 머리를 쓰다듬은 뒤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붉던 석양은 주홍빛이 되며 천천히 어둠이 내리 깔린다. 온기 진 미소는 나른했고, 에만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더 자버리면.. 하루가 사라지니까 싫어.."
페로사가 제안한 것은 하루의 시간이다. 에만은 그 시간을 잠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스네구로치카는 자신인데, 막상 여인이 사라져버릴 것 같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아마 깨진 술이 있는 진열장을 보려는 듯싶다.
"…배는.. 저 과자로 채우면 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아.."
채우면 된다는 말이 익숙하다. 평소에도 주로 그렇게 먹는 듯싶다. 아니면 정상적인 식생활을 하더라도 그 양이 적은 과자 한 봉지에 준하는 수준일 것이다. 에만은 천천히 고개를 기울인다. 품 속의 고개가 사부작 소리를 내고, 머스크 향 샴푸의 단내가 끼쳤다.
물론이다. 이 모든 것은 한 순간에 한줌 안개처럼 사라질 수 있다. 이 길지 않은 순간마저도 말도 안 되는 사치임을 그녀는 안다. 이 도시에서 이런 관계는 얼마든지 한 순간에 유리 깨어지듯이 산산이 깨어질 수 있음을 안다. 당신이 입가의 피냄새나 비정상적으로 날카로운 치열같은 것보다 좀더 확실한 증거를 마주한다면 당신이 충분히 지금 하고 있는 행동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자신에께 묻어 있는 죽음의 냄새를 부정하지 않고 기꺼이 함께 있어주는 이 순간이, 당신에게서 나는 향기로운 머스크 향이 그 모든 것을 잊게 해 주었다. 희미하게 그녀가 숨을 깊이 들이쉬는 소리가 난다. 나직이, 당신의 머스크 향 섞인 비누향을 자신에게 각인하고 있는 것처럼. 과람한 욕심. 예정된 파멸. 그러나 그럴지라도, 적어도 하루 정도라면... 역시 오늘의 자신은 돌이킬 수 없이 미쳐버린 게 맞다고, 페로사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이 석양 속에서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패자는-그녀가 느낀 게 맞다면, 두 패자는-별로 불행하거나 불만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뭐, 괜찮잖아.
품 안에서 부스럭, 하고 고개를 기울이는 당신을 내려다보던 페로사는 "아까는 내 집에 가자고 했고, 네가 별 말 안 하면 그럴 거지만, 따로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말해도 좋아." 슬슬 일어나서 움직여도 좋을 때가 됐지만, 그녀는 당신이 먼저 몸을 일으키기 전엔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은 저 밖의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밤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을 거 아냐?" 딱히 근거는 없는 발언이다. 그냥, 자신이 그렇게 느꼈으니까 한 말이다.
"떠날 준비가 되면 말해. 어디로라도 가버리자고." 하며 그녀는 씨익 웃는다.
그래, 오늘 하루 정도는, 현실 따위 외면해버리고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도망쳐버릴 것이다.
한때 히어로라는 이름을 썼던 당신. 언젠가 자신을 향해 그 아가리를 벌릴지도 모르는 맹수. 에만은 그럼에도 그 온기에 파묻히고 눈을 감아 지금의 사치스러운 평화를 만끽했다. 누굴 죽였어도, 언젠가 그 송곳니를 들이밀어도 지금 들이밀지는 않을 거란 안일한 생각이었다. 희미하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에 에만은 고개를 폭 파묻어버린다. 오늘 하루는 졌으니 마음껏 취하게 둘 것이고, 마음껏 취할 것이다. 고개를 천천히 들고 돌렸지만 진열장으로 닿지는 못한다.
"네 집……."
여전히 생경한 발음이다. 이 나라의 언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더듬더듬 읽은 발음이었다. 지금까지 집에 가자는 말을 두 번째 들은 것이 맞는데 어째서 본능적인 가시가 서지 않는 건지 의문이라는 듯. 에만은 페로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당신 말이 맞아. 지금은.. 바깥으로 가고 싶지 않아."
바깥은 시끄럽고, 시끄러운 곳은 질색이다. 그 시끄러운 장소에서 떠도는 소문을 하나하나 주워 확인해 보면, 썩은 고깃 덩어리 같은 말에 구더기떼 같은 악의가 득시글하다. 에만은 그게 싫다. 싫은 수준이 아니라 몸서리칠 정도로 역겹다. 그 소문이 팔에 붙고 온몸에 달라붙어 스멀스멀 기어오른 날 에만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아무도 떼어내줄 생각을 하지 않아 팔을 연신 문지르고 울부짖으며 방구석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갈래. 여기에서 쉬는 건 충분해……."
당신의 품에서 떨어질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잘도 지껄인다. 여기서 쉬는 건 충분하니 다른 곳으로 멀리 떠나버리고 싶다. 가면도 깨져버렸으니 오늘만큼은 현실 따위는 저 멀리 버려버리고 아무렇게나 살아버릴 것이다. 에만은 고개를 다시금 비빈다.
"……갈 때는 더 위험할 거야. 나는 가면이 없고, 밤이 되면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앞뒤 안 가리고 송곳니를 드러내겠지.. 그러니까.. 내게서 떨어지지 말아."
(쓰담쓰담)(토닥토닥닥닥)(쪽) 로로주도 피곤하면 자러 가기야? >;3 평일.. 될 대로 되라지!(?)
에만, 어서오세요. 오늘 당신이 표현할 대사는...
1. 『사라지고 싶어』 "그만.." "여기는.. 너무 시끄러워.." "재미가 없으면 안 되는 것마저.. 흥미가 떨어져버렸어."
2. 『얼마 줄건데?』 "...보수는?" "가치가 있나?"
3. 『사랑해』 "..당신이 늑대라도 괜찮아. 나를 먹어치워도.. 나는 기쁠 거야. 그 이전에 함께 했던 날이 있어서 행복할 거고.. 네가 곁에 있어준다면.. 더는 혼자 걷는 길이 무섭지 않을 거야.. 그걸로 만족해. 나는.. 이제 그걸로 만족해.. 그러니까, 내 세상을 네게 주고 싶어.." "네가 바라는 모든 것을 얘기해 줘.. 그러면 나는 네게 모든 것을 쥐여줄 거야. 이 도시를 바라면 도시를.. 누군가의 숨을 대신 쉬길 바란다면 그 사람의 목숨을.. 나를 바란다면 나를.. 네 손에 묻을 피가 두려울 때 내가 대신 더럽힐 수 있을 만큼.."
"넌 먹이가 아니야. 말했잖아." "나를 길들여달라고." "혼자 걷는 길이 외롭지 않게, 같이 걸어줄 사람을 이제야 찾아냈는데. 그럴 리가." "내가 바라는 것? 이 도시도, 다른 사람의 목숨도 필요없어.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는 거. 그뿐이야. 많은 걸 바라지 않아.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먼저 보는 게 너였으면 하고, 내가 마지막으로 눈에 담는 게 너이길 바라. 무슨 말인지 알겠어?"
1. 『마음은 기쁘지만』 "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도 알아." "무엇에 화내는지도 알고.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지." "그렇지만... 그건, 내가 네 것이 되기 전에, 내 손으로 뜯어내야 하는 내 마지막 족쇄야. 나 이외에 그 누구도 그것을 내게서 완전히 뜯어내지 못해." "기껏 얻은 멋진 개가... 한쪽 다리를 저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지?"
2. 『널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해』 (페로사는 당신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뺨을 당신의 뺨에 부볐다. 항상 그렇듯, 이따금 그녀가 종종 하는 애정표현이다.)
3. 『함께 살아가자』 "나는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하나의 발자국 소리를 알게 될 거야. 다른 발자국 소리는 내게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네 발자국 소리는 내 귀를 깨우고 날 기쁘게 할 거야. 그리고 새벽 하늘을 기억해? 난 그때 보통 깊이 잠에 빠져있어서,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어. 새벽은 내게 아무 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래서 슬픈 거야. 그렇지만 넌 새벽빛 눈동자를 가졌잖아. 그러니까 네가 날 길들이게 된다면 정말로 근사할 거야... 새벽은 내게 널 생각나게 할 거야. 그러면 난 이따금 새벽에 눈이 떠지는 순간을 좋아하게 될 거야."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줘."
"그래, 내 집." 당신의 서툰 발음을 교정해주기라도 하듯이 페로사는 생경한 낱말을 당신에게 다시 한 번 되뇌어주었다. 완전하지 못한 신뢰. 완전하지 못한 포용. 그러나 이 도시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미친 순간. 가장 빛나는 순간. 당신의 말대로다. 현실 따위, 이것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 따위는 잠깐 외면해도 좋다. 페로사는 품안에 고개를 비비는 당신을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냉혹한 현실에서 기어나온 차가운 벌레들을 탁탁 털어주는 것만 같다. 그녀는 당신을 품에 끌어안은 채로,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키면서 당신의 상반신 역시도 함께 일으켜세워 주었다. 그러면서도 당신을 품에서 놓지는 않는다.
그녀의 집. 이제 겨우 세 번 만났을 뿐인 낯선 여인의 집. 그러나 이 도시에서, 당신을 가장 따뜻하게 끌어안아줄 수 있는 사람의 집. 그녀는 당신을 내려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내가 네 가면이라고 생각해. 내 품 안에서 고개를 떼지 않아도 좋아." 당신이 부숴버린 가면보다, 더 푹신하고 따뜻하고 튼튼한 가면이 하나 새로 생겼다.
페로사는 한쪽 손을 뻗었다. 침대 머리맡에 대충 구겨두었던 코트 가지를 집어들어서, 당신의 어깨에 씌워준다. 얇은 여름용 레인코트지만, 애매하게 쌀쌀한 초가을 날씨 같은 바빌론 시티의 밤바람을 막는 데에는 최고다. 커다란 후드까지 달려있어서 쑥 잡아당기면 얼굴을 가릴 수도 있겠다. 그녀는 쇠고리끼리 부딪히며 짤랑거리는 하네스 역시 집어들었다. 어디 주머니에 넣거나 할 데가 마땅치 않아서, 그녀는 그걸 어깨에 대충 걸쳤다. 가슴팍 앞으로 얼마 전에 보았던 커다란 데저트 이글 권총 한 자루가 대롱대롱 매달린다.
그리고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어서 핸드폰을 꺼냈다. 스크린을 몇 번 누르자, 나직한 진동음이 난다. 당신이 딱히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거나, 자신의 다리로 일어나거나 할 생각이 없으면- 그녀의 억센 팔이 다시금 당신의 어깨와 허벅지를 거머쥐고 감싸안아 들어올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걸어가긴 조금 먼 곳이라, 택시를 불렀어. 가자."
"내가 할 말인 걸." "제멋대로인 나를 길들여 품어줘.. 아침마다 당신의 얼굴을 보고 웃을 수 있고, 잠들기 전 당신의 품에 있게 해줘.." "끝내 마지막이 되는 순간까지 당신을 온전히 두 눈으로 보고 싶어..새벽이 기쁠 거라 했지.. 나는 푸르른 하늘과 바다를 보이는 이 도시가 두렵지 않을 거야.. 이따금씩 암울한 하늘일지라도 당신의 눈을 떠올리고 행복해질 거야.." (꼬옥)(토닥)
"내가 네게 길들여지는 게 아니라 널 사랑하게 되면, 여러모로 골치아플 텐데. 그렇게 할래?" "네가 네 새벽을 나한테 줬으니까. 나도 내 아침을 너한테 줘야지. 네가 나와 함께해주는 만큼 나는 너와 함께할 수 있을 거야. 이 미친 도시의 쓰잘데없는 일은 잊어버리고, 너랑 나 둘이서, 평범하게... 그래야 하는 게 당연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렇게 매일을 보내는 거야. 나쁘지 않네. (쪽)"
이제 진짜 들어가야겠다.. 수면시간 2시간 반.. 하얗게 불태웠지만 로로주랑 로로가 너무 좋아서 후회는 없어! 그러니까 로로주 너무 무리하지 말구, 수면시간이 정상화 되길 기도할게. 오늘도 힘내요, 한 주의 시작을 같이 해줘서 고마워.(쪽)(품 속으로 쏙 들어감) 좋은 꿈 꾸길 바라.🥰🥰🥰
(꾸와압) (꼬오오옥) 소매 파닥파닥하는 거 보고 에만이랑 비슷하게 푸스스 웃을 페로사.. 수면시간 2시간 반이라니 88 그래서 내가 걱정했는데.. 얼른 들어가서 자. 주말의 끝을 같이 보내줘서 고마워. 이번 한 주도 우리 같이 힘내보자. 수면패턴은 어떻게든 정상화시켜볼게. 에만주도 푹 잠들구 (부둥둥) 충분히 쉬고, 좋은 꿈 꾸길 바라. 😚
고작 술과 담배 몇 번의 신뢰와 만남. 그럼에도 에만이 보이는 행동은 이 도시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것이다. 신뢰를 넘어선 무언가. 아직 그 행동에 대한 감정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에만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얌전히 고개를 맡기고 눈을 감고 있었다. 얼음조각으로 만들어진 벌레가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십도, 소문도, 시끄럽던 목소리도 모두 사라지는 것 같다.
페로사가 자신을 품에서 놓지 않은 모습으로, 상반신을 일으켜주자 시선을 느릿하게 돌려 주변을 훑는다. 조용하고, 공허하며, 노을의 황홀한 심지는 모두 타버려 어둠이 잔잔히 내리 깔리기 시작한다. 이 장소도 점점 짐승이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물어뜯기 위한 것들이 나타나겠지. 에만은 잘 알고 있다. 러그의 굳은 피가 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기에.
그렇기에 집이라는 단어가 거북하지 않은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지금은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 온기를 갈구하는 것도 거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라 믿고, 페로사를 올려다보며 부스스 웃었다. 희미한 미소였지만 감정이 일렁이고 옅은 색채가 묻어 나왔다. 오늘은 이 여성이 푹신하고, 따뜻하고, 튼튼한 가면이 될 것이다. 품에서 고개를 떼지 않아도 좋다는 장담이 안심이 됐다.
"..떨어지지 않을 거야.. 내 가면이 되어줬으니까.. 나는 가면을 정말 소중하게 여기거든."
코트를 씌워주자 에만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얇지만 밤바람을 막기엔 최고였다. 팔을 꿰니 소매가 손을 덮고 품이 많이 남는다. 겉보기로도, 품에 안긴 것으로도 체격 차이가 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차이가 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듯. 아무래도 일어선다면 옷깃이 질질 끌리지 않을까. 에만은 소맷단을 들어보고는 두어 번 위아래, 좌우로 흔들어 본다. 파닥거리는 모양새를 뒤로 에만은 시선을 옮겼다. 하네스를 아무렇게나 걸치는 모습과 데저트 이글 권총을 한 번,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호출하는 듯한 페로사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다. 그리고 소맷단을 한 번 파닥였다. 이 또한 무의식이다.
"..아?"
에만은 소맷단에 가려진 손을 옷깃 너머로 맞잡고 손을 꼼질댔다. 큰 옷에 시선이 한참 팔렸기 때문에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던지라, 자신을 감싸 안고 들어 올리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렇게 도와주길 바란 건 아니었기에 부끄러운지, 혹은 고장이라도 났는지 잠깐 멈춰 서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소맷단으로 얼굴을 덮어 가렸다.
이제 보면 그 데저트 이글은 좀 독특한 모양으로 개조되어 있다. 방아쇠를 둘러싸고 있는 방아쇠울이 크게 확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의 손이 상당히 큰 편이긴 했지만, 데저트 이글 역시 자동권총들 중에서는 가장 커다란 축에 속하는 물건이다. 굳이 방아쇠울을 확장시키지 않았어도 그녀의 손가락이 충분히 들어갈 텐데. 희한한 일이다. 핸드폰 화면을 두드리며 무심코 당신을 내려다보다, 당신이 소맷단을 팔락거리는 것을 보고 후후후, 하며 만면에 귀여워 죽겠다는 미소를 띄우는 것만큼이나. 기괴할 정도로 단순하고 알기 쉬운 감정이 거기 있었다.
"나쁘지 않네." 하며, 그녀는 당신을 들어안았다. "그래, 떨어지지 말아." 그러다 이런 식으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쑥쓰러워하는 반응을 보이며 소맷단에 얼굴을 푹 파묻어버리는 당신을 보고는 "내려줄까?" 하고 묻는다. 그녀의 품에 안겨서 가건, 그녀의 품에서 내려 같이 나란히 가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되겠다. 별 차이는 없을 테니까. 어느 쪽이건 그녀가 당신을 두고 갈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껏 그녀의 태도에서 그녀는 충분히 그런 의사를 피력했으니. "어쩌면, 더 멀리 떠나버리면 좋겠지만..." 하고, 무심코 감정에 취해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중얼거린다.
그녀를 따라 폐건물을 벗어나 조금 걸어서 차가 다닐 만한 너비의 골목길로 나가면, 지극히 평범해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세단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마치 지나가던 평범한 여행객의 차라는 듯 멈추어서 있다. 페로사는 딱히 그 차에 대해 경계하거나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아니 저 차가 맞다는 듯이 당신을 이끌었다. 당신이 꺼림칙해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뒷좌석 문을 열어 당신을 먼저 들여보내고 그 뒤를 따라 당신의 옆자리에 탔을 것이다.
"항상 데려다주던 데로." 하며 그녀는 운전석에 주문을 건넨다. 운전석에는 안색이 나쁘고 수척해보이는 청년이 있다. 그는 "어어." 하고 착 가라앉은 칙칙한 목소리로, 페로사를 잘 아는 듯한 심드렁한 어조로 대답하다가 백미러를 힐끔 보고는 스스럼없이 물어온다. "뭐야. 애인이냐?" "신경 끄셔." 하고 페로사가 되받아친다. "출발이나 해." 운전수와 승객이라기보다는 서로에게 퉁명스럽게 구는 것도 스스럼없어졌을 정도로 막역하게 지내는 동네 친구 같은 태도다. "썸녀냐, 썸남이냐?" 시동이 걸려있던 자동차가 부드럽게 출발을 시작하며, 석양에 잠긴 도로로 달려나간다. "오늘따라 혓바닥이 왜 이리 길어?" 캘캘 웃는 소리. "너 얼굴색이 가관이라서. 뭐,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동승자 분." 그가 지적한 대로 페로사의 얼굴에는 이 석양 한가운데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연연한 붉은색이 한 겹 얹혀져 있다. 거기에서 화제를 돌리고 싶었던 것인지, 그녀는 "신경쓰지 마. 이 자식이 택시비 입금된 거 확인하기 전엔 주둥아리가 가볍거든." 하고 당신에게 덧붙였다.
페로사가 '이 자식이 택시비 입금된 거 확인하기 전엔' 이라고 할 때 이 문장을 영어로 번역하면 자식은 아마 brat으로 번역하는 게 가장 정확할 거야. 보다시피 페로사와는 개인적인 범위까지 신뢰관계가 구축돼 있는 드라이버. 이제 계속 두면 한없이 티키타카를 주고받는 모양새를 구경할 수 있는...
소맷단을 팔락이다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다. 총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방아쇠울이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크다는 사실이다. 두 손가락을 모두 넣어 사용하나? 혹시 명중이 두려워 손을 떠는 것일까, 하는 실없는 생각이다. 에만은 시선이 마주치자 한 번 더 손을 까딱여 소맷단을 팔락였다. 멈추기엔 타이밍이 잘 안 맞았나 보다. 귀여워 죽겠다는 미소는 고양이로 변한 자신이나, 길가의 반려동물 카페의 쇼윈도를 보는 사람들의 것과도 비슷해 무엇인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 날 귀엽다 생각한 거야? 그런 불만을 표출하듯 눈만 끔뻑하고 감았다 뜬다. 어쩌면 저 눈썹이 미묘하게 좁아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 표정도 들렸을 적 눈이 동그래져 없어지고 말았다. 소맷단에 얼굴을 파묻자 페로사는 내려줄까 물었고, 에만은 틈을 살짝 벌리듯 얼굴을 덮은 소매를 내리고 가만히 여성을 응시했다. 눈만 빼꼼 나온 모양새로 천천히 시선을 굴리며 입술을 벙긋거렸다.
"……떨어지지 말라고 했으니까, 떨어지지 않을 테야.."
그리고 얼버무리듯 조그맣게 덧붙인다. "그리고.. 옷이 커서 질질 끌릴 거니까.. 더러워질 거야.." 씨알도 안 먹히는 변명을 뒤로하고 눈이 조금 커진 것 같다. 무심코 중얼거린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더 멀리. 그래. 에만도 멀리 떠나길 바란 적이 있다. 언젠가는 바랐지만, 이 도시에 얽매인 이상 그럴 수 없다. 이제 끝장을 보고 떠나야만 하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그 끝에, 당신과 함께 떠나고 싶단 욕망이 고개를 내민다. 에만은 당연히 그 욕망을 본 척도 하지 않으려 했다. 아직 이르고, 섣부른 것 같으며, 정의되지 못한 감정에 휘둘리면 그 끝은 파멸뿐임을 알고 있으니까.
품에 안겨 폐건물을 빠져나와 차도가 보일 적, 세단 한 대가 보인다. 에만은 세단이 익숙하다. 일단 신분의 위협이 없도록 이름만 법적 보호자인 용왕의 산책용 차 중 한 대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평범한 느낌이 없잖아 있기에 의아한 시선으로 페로사를 올려다본다. 택시는 보통 노란색이지 않은가. 하지만 경계하지 않는 모습에 일단 에만은 믿어보기로 했다. 서 푼도 못 될 믿음이지만 이마저도 기적이다.
뒷좌석에 탔으나 푹신한 시트에 몸을 맡기진 못했다. 소맷단 속에 가려진 손을 말아 쥐고 제법 빳빳한 모양새다. 옆에 앉은 페로사를 흘긋 쳐다보고, 운전석을 흘긋 쳐다본다. 안색은 나쁘며 수척한 청년이다. 익숙한듯한 주문을 하는 걸 보니 제법 오랜 시간 같이 일한 듯싶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애인?
에만의 눈이 동그래진다. 되받아치는 모습도 낯설다. 서로 티격대는 모습에 허리가 점점 빳빳하게 펴지는 걸 보니, 막역한 친구 같은 사이의 둘 사이에서 에만은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 꼭 학교에 전학 갔을 때의 막막함처럼. 썸녀? 썸남? 대학생인 앨리스가 자주 듣던 말을 에만으로도 듣는다니. 혼란스럽다. 차가 도로로 나가는 것도 모르고 눈만 깜빡였다. 웃는 소리를 뒤로 가벼운 시과를 들었을 적, 에만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괜찮아요.."
작게 우물거리다 이내 페로사를 바라본 에만은 연한 붉은색이 얼굴에 덧그려진 페로사를 바라보다, 친근한 덧붙임에 조심스럽게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주인의 팔을 안는 고양이마냥 당신의 큰 팔을 안았다. 그리고 순진무구하게 눈을 끔뻑인다.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 도시의 어두운 면도 모르며, 그저 이 상황이 낯선 아이 같은 태도다.
확실히 그것과 비슷했지만, 달랐다. 길고양이나 쇼윈도 너머의 고양이를 보는 막연하기 그지없는 애정보다 더 구체적이고, 가까웠다. 그러면 자신이 모시는 고양이 주인님을 향하는 것 같은 애정에 빗대면 될까. 아니, 그것과 비슷한 색채였지만 그것과도 또한 달랐다. 당신이 눈을 끔뻑이며 미간을 찌푸리자, 페로사는 후후후 웃다가 당신의 미간에 부드럽게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이것은 길고양이를 대하는 자세라거나, 창부를 대하는 자세라기엔 어폐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애인? 하는 말에 당신이 능청맞게 응수하거나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 것도 어쩌면 그 낯선 촉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이 부여잡을 수 있는 것도 그 낯선 촉감뿐이다. 그것은 당신에게 기꺼이 한쪽 팔을 내주었으니까. 그녀의 향기가 섞여, 그녀의 온기가 느껴진다. 때로는 바텐더고, 때로는 살인자였으며, 타고나기로는 괴물이었지만, 당신 앞에서는 사람이고 싶다는 듯이. 붉던 석양이 자색과 군청색으로 기울어가는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세단 안이 낯선 향수에 잠겨 있었다.
그녀의 팔을 꼭 끌어안는 당신을 보고, 택시기사가 문득 한 마디 던졌다. "감당할 수 있겠냐?" 페로사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부당한 댓가를 치르는 데에는 익숙해." 그리곤 당신에게로 살짝 고개를 돌리며 덧붙인다. "나는 미친 여자잖아." 얼굴에 걸린 씁쓸한 웃음이, 조금 나른한 것으로 바뀐다. 택시기사는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으쓱한다.
에스플레네이드의 외곽지를 차는 가로질렀다. 에스플레네이드에도 외곽지라거나 음습하다 할 만한 곳은 있었으나, 뉴 고모라에 비하면 그 곳은 훨씬 정돈되고 조용한 곳이었다. 도로마다 감시카메라가 있었고, 두엇이서 조를 짜서 순찰을 돌고 있는 중무장한 오디네이터들이 있었다. 그 외에는 자기 업무에 분주해보이는, 피로와 카페인, 니코틴 정도에나 취해 있는 화이트칼라들이 앞길을 바삐하거나 핸드폰에 두 눈을 박고 돌아다니는 정도였다. 그나마도 별로 없었다. 에스플레네이드의 사람들은 낮부터 밤까지 바빌론 시티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접대하느라 바쁜 이들이었으니까.
페로사는 주머니를 뒤적여서 웬 에누마 그룹의 로고가 찍혀 있는 사원증 비슷하게 생긴 물건을 꺼내 운전기사에게 넘겨주었고, 운전기사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사원증을 받아들었다. 이내 순찰하던 오디네이터가 차로 다가와 차창을 똑똑 두드리며 불심검문을 요청했으나, 운전기사가 차창을 살짝 열고 그 틈으로 페로사에게서 넘겨받은 사원증 같은 것을 내밀어주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순히 물러갔다. 그녀는 다시 운전기사에게서 통행증을 넘겨받았다.
차는 이내 어떤 물류창고- 에스플레네이드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쇼핑을 위해 이런저런 재고들을 쌓아놓는 물류 단지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감시카메라의 눈길이 닿지 않는 어느 창고의 뒷편에서 차는 멈춰섰다. "다 왔습니다, 손님." 페로사는 문을 열고 발을 차 밖으로 내딛으면서 당신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내리기 좋도록 당신의 손을 잡아주려 하면서. "내리자. 다 왔어."
눈썹 사이가 좁아진다. 미간을 느릿하게 찌푸리자 부드럽고 말랑한 온기가 닿는다.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이걸로 자신을 귀여워했다는 사실에 대한 화를 풀 것 같냐면 맞는 말이다. 길고양이나 창부, 쇼윈도의 어린 고양이나 강아지를 보는 시선과는 어폐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알 것 같은데, 막상 그 이름을 입에 담기는 어려운. 온기가 느껴진다. 밤에 덮고 끌어안은 이불과 인형보다 훨씬 따뜻하고, 자신과는 다른 냄새가 나는 팔. 에만은 팔을 끌어안은 모양새로 뺨을 느릿하게 비볐다. 온기가 느껴졌기 때문도 있지만 닟선 향수와 어색한 상황에 평범하게 대처하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앨리스라면 능동적으로 대처했겠지만, 앨리스와 에만은 형식상 다른 존재기 때문이다. 에만은 그 다른 존재를 진짜 있는 존재로 만들었기에 그 아이덴티티조차 다를 수밖에 없다. 하물며 동일 인물일지언정.
감당할 자신. 여인을 향한 말이지만 에만도 속으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감당하지 못한다면 다 뒤엎고, 가질 수 없다면.. 에만은 순수한 눈망울을 감고 천천히 비비던 뺨을 기댄다. 미친 여자라는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아무것도 모르는 양 순수하게 미소 짓는다. 그리고 침묵. 외곽을 가로지르며 조용하고 정돈된 장소를 향한다. 순찰을 도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에만, 아니, 앨리스도 이곳에 자주 오니 치안 정도는 알고 있다. 얼마 없는 바쁜 사람을 스치면 보안을 확인한다. 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에누마 그룹의 인장을 발견하고 페로사를 쳐다본다. 당신의 목줄은 누구의 것인지. 도시의 이간질을 도맡는 협잡꾼의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뜻을 같이 하기에 서로 이득관계를 눈치껏 분배하며 건드리지는 않지만, 막상 탐탁지는 않아하는 사이기 때문이다.
창고의 뒷편에 도착하자 에만은 눈을 느릿하게 끔뻑, 감았다 뜬다. 창고의 뒤편에 도착하자 에만은 눈을 느릿하게 끔뻑, 감았다 뜬다. 도착했다는 기사의 말을 뒤로 페로사가 먼저 내렸고, 한때 뻗는 손을 바라보기만 하던 에만은 지금 선뜻 손을 내민다. 온기가 가시를 잠시 누그러뜨렸기 때문이다. 다만 의문이 있는 것은 당신도 자신처럼 떠돌며 사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 의문처럼 눈을 깜빡 감았다 뜬다. 차에 내릴 적에 깜빡하지 않은 것은 질질 끌리는 코트 자락을 잡는 일이었다.
에누마 그룹의 로고가 새겨진 카드. 아무리 봐도 신용카드는 아니다. 어떻게 그녀가 그것을 구할 수 있었을까. 그녀에게 오늘의 일을 맡긴 이와 연관이 있는 걸까. 그녀에게 다시 한 번 피를 끼얹어 그녀에게서 사람의 모습을 지워버리고자 하는 그 의도에 연관이 있는 걸까. 어쩌면 이 짐승을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손을 잡고 이끌어내리면, 당신이 당신에게는 긴 코트자락을 조심스레 집어올리는 게 귀여워서 페로사는 웃다가 한 마디 건넨다. "공주님 같네." 어느덧 태양은 군청색 끝자락만 남기고 기울어지고, 오렌지색 가로등 불빛이 켜진다. 문득 한 대 피고 들어갈까 했으나, 자신의 담배가 다 떨어진 데에 생각이 미쳤다. 아까 나눠핀 담배는, 어떤 향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신의 입술의 감촉만 기억난다. 그래서 페로사는 당신을 잠깐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한 대 피고 들어갈까- 하는 말을 하는 대신에 멀어지는 자동차 엔진 소리를 배경으로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골목길에서 당신에게로 허리를 숙였다. 당신이 거부하지 않는다면, 다시금 한 번 그녀의 입술이 당신의 입술 위로 내려앉을 것이다. 그녀의 입술 위에 당신의 모양이 남을 것이다. 그녀는 당신에게 결핍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녀가 호소하는 것은 간단하다. 당신에게도 모자란 것이긴 하다. 그렇지만 어쩌면 서로에게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퍽 유쾌하고 친절했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이 꿈꾸고 있는 무언가를 나눌 특별한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러고 나서야 그녀는 허리를 피고, 창고 건물 옆에 딸린 계단으로 당신을 이끌었다. 얼마 오르지 않아 문들이 늘어선 복도가 당신을 반긴다. 몰풍경한 복도다. 창고에 딸린 사무실들 같은 곳인 모양이다. 패널로 이루어진 벽들과, 패드락이 달린 철문들.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최고 효율이자,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공간. 리미널 스페이스라는 표현이 적합할 듯싶다. 복도를 가로질러서, 그녀는 어느 철문 앞에 도달해 패드락을 누른다. 버튼이 눌리는 소리도 없이, 흔한 삐리릭 하는 알람소리도 없이, 당신의 귀에 겨우 들릴락말락한 찰칵 하는 걸쇠 풀리는 소리가 날 뿐이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간 그 너머 어둠 속에서, 당신은 그녀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낯설다고 해야 할지 낯익다고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든, 흐릿한 시트러스향과 살냄새, 공기를 떠도는 희미한 알코올 냄새. 모션센서가 장착된 현관등이 켜지고 페로사가 손을 뻗어 전을 켜지면, 살풍경한 복도와는 전혀 딴판의 공간이 당신 앞에 펼쳐진다. 타일로 장식된 현관문과 나무 패널이 깔린 마룻바닥, 현관 매트와 그 위에 대충 팽개쳐져 있는 실내화 한 켤레.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거실. 바닥에 깔려있는 널따란 카페트와, 쿠션이 잔뜩 쌓인 긴 소파와 TV, 연식이 좀 된 게임기, 사용감 있는 테이블 위에 이리저리 쌓여있는 주류를 주제로 한 잡지들, 외투 몇 벌이 대충 걸려있는 옷걸이, 채광창으로 내어다보이는 초저녁의 밤하늘, 바닥에 널부러진 수건, 거실 한켠에 놓인 다트판,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바의 것보다 난잡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녀다운 이런저런 술병들이 가득 늘어선 진열장, 낡은 냉장고와 오늘도 누군가 사용한 것 같은 주방...
떠돌이의 은신처라기엔 그 곳은 확고히 누군가가 오래 머물며 생활한 흔적이 가득 남아있었다. 조금 더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비록 완전한 집은 되지 못할지언정, 그녀는 자신이 머무는 곳에 애착을 붙이려고 최대한 노력한 모양이었다, 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녀는 당신을 위해 신발장에서 다른 실내화 한 켤레-그녀가 쓸 예비용으로 구비해놓은 것 같은, 당신의 발에는 꽤 클-를 꺼내어 마루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멋적게 웃었다. "집안 꼴이 말이 아니네." 그리고 그녀는 최대한 서둘러서 신발을 벗으려고 했다. 일단 저 바닥에 널부러놓은 수건부터 좀... 아 젠장 오늘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올 때 정리 좀 하고 나올걸.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제법 보드랍고 얌전한 모양새로 자리에 있었지만 머릿속은 아니다. 에만은 에누마 그룹과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도시의 빛무리로 자신을 숨긴 채 어둠을 이간질 시키는 협잡꾼 녀석이라 생각했고, 에누마 그룹은 에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에만의 입장에서는 협잡꾼이라 생각하는 것은 같되 그림자에 숨은 녀석이겠거니 단정 짓고 생각할 뿐이다. 뜻을 같이 하지만 과정과 그 이후의 행보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지하의 일이다. 각 조직이 다툴 때 에만 쪽에서 나름대로 손을 뻗으며 균형을 잡고 견제하지 않도록 했다. 에누마 그룹은 그 과정에서 견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을 얻고, 에만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힐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같은 저울에 놓되 중앙의 중심을 가까스로 잡았다 생각했다. 이득 아닌 이득을 추구했으나, 이 여인은 깃털이었다. 고작 깃털 하나가 내려앉는다 해도 아슬한 균형은 기울어질 것이다. 잘못 뻗었다가 공들여 세운 균형의 저울이 무너질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여인을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지켜만 보는 것이 가장 옳은 판단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애매한 감정이 상황을 허용치 않는다. 지켜보기엔 또 잃을 것만 수두룩하다며 상실의 날마다 켜지던 본능의 빨간 신호등을 켰다. 가치가 있고 없고는 이제 이성이 아닌 과거의 경험으로 쌓인 본능이 판단할 것이다. 만일 미치고 잘못된 판단이라면 에만이라는 존재는 낡아 부스러진 퇴물에 불과할 것임으로. 에만은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내려야 할 시간이다. 괜히 또 생각에 잠겨 가시를 세우고 의심을 품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겐 왕자님이 없는걸.."
에만은 이 과정에서 자신이 왕자를 뱉어놓고 우스워 속으로 차가운 냉소를 흘렸다. 탑에 갇히고, 계모에게 독이 든 사과로 죽을 위기를 겪으며, 무도회에 가지도 못하고 집안일에 시달리던 공주에겐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남이 본디 동화의 진행선이나 이 이야기에서 왕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도움을 바란 적도 있으나 머리가 커가며 인생에서 그런 건 사실 쓸모가 없는 부차적인 것임을 깨닫고 홀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공주는 왕자와 결혼하거나 옹기종기 모여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지옥불 가장 깊은 곳에서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두려워하는 마귀들의 극진한 시중을 받으며, 도시의 가장 빛나는 보물을 값어치 없는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렇지만 가끔은 정석적인 동화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페로사가 입을 맞추자 눈을 감고 옷자락을 한 손으로 모아 쥐듯 옮기며,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뺨 위에 얹었다. 겨울 색 눈동자에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잠시 일렁이다 사라졌다. 이 작은 여우가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순수라지만, 그 순수라는 가면이 아닌 진짜배기 순수를 언뜻 보였다. 새하얗다 못해 보기만 해도 다른 색으로 물들까 겁이 나는 그것을. 에만은 페로사의 이끌림에 천천히 발 디딘다.
"집이네."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은 삭막한 곳을 지나 희미한 걸쇠 풀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사람이 사는 곳에 당도한다. 비록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상냥한 집과는 거리가 있으나 애착을 붙이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곳이다. 집. 집이라고 명분은 붙일 수 있는 곳. 자신의 실제 거주처와 달리 제대로 된 사람 냄새가 난다. 에만은 주변을 둘러보다 수건에 시선을 고정하고 소리 없이 미소만 지었다. 예비용으로 구비한 실내화는 컸지만 나쁘지 않다. 조막만 한 발로 실내화를 신기 전, 서두르는 페로사를 보며 소매로 입을 가려 한껏 올라간 입매를 숨겼다.
"천천히 해도 좋아.. 하루는 아직 많이 남은 것 같거든.."
그리고 한 발 내디딘다. 옷자락이 끌리지 않게 코트를 조심스럽게 벗어 품에 가득 안고 눈을 느릿하게 끔뻑일 적, 코트에서 여인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잠시 옷자락에 뺨을 비볐다.
그러나 그 애매한 감성과 코에 익어가는 향기는, 에누마 그룹의 심볼이 가져다 준 차가운 이성이 당신을 바로잡도록 결코 내버려두지 않았다. 결국 또다시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골목 한가운데에서, 그녀의 입술이 상한선을 넘어버린 애정을 담고 당신을 엄습해온다. 당신은 마음을 차갑게 가다듬으려 했거늘 그녀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입술 위로 다시금 따뜻하고 약간 촉촉하게, 옅은 피향과 술 향기가 내려앉아 버리고 만다.
"그래... 아무도 없어. 왕자님도 왕도 주인도." 입술을 떼어내면서 그녀는 당신의 입술 위에 그렇게 속삭인다. "너와 나 둘뿐이야." 순수의 위에, 그녀는 푸른빛의 애정을 얹어버렸다. 푸른 유리와 같은 그것은 순수를 덧칠하거나 물들이지는 않았지만, 오렌지빛의 가로등을 여과하여 투명한 푸른빛의 그림자를 그 위에 드리워 버린다. 이것도, 물들인다고 표현하려면 할 수 있을까. 맑게, 그러나 선명하게. 어느샌가, 그녀의 애착은 당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당신의 손에 자신의 뺨을 기대고 잠깐 눈을 감았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이러고 있어달라는 듯이. 얼마 지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다시 손을 내밀어서, 뺨 위에 올라와 있는 당신의 손을 부드럽게 거머쥐었다. 이대로 이 문턱을 넘어버리면, 그녀의 더 많은 부분을 알아버리면, 이제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리고 당신은 그녀의 집으로 들어섰다. 고무판 위에 얄팍한 스펀지를 채우고 천으로 덮어 박음질해 마무리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슬리퍼는 방의 공기만큼이나 편안했다. 이 놈의 신발끈이 왜 이리 안 풀려, 하는 표정으로 신발을 벗던 페로사의 미간에 서린 주름이 당신의 말에 펴진다. "-그건 좋네." 하고 여인은 씨익 웃었다. 그제서야 그녀의 발에서 워커 한 켤레가 덜컥 떨어져나가서는 현관 마루 위에 떨어진다. 그녀는 그걸 평소처럼 그대로 내팽개쳐둔 채로 들어올까 하다가, 평소에는 안 하던 정리를 가지런히 했다. 그 외에도 운동화며, 샌들이며 하는 것들이 다 제멋대로 흩어져 있고, 바텐더 일을 할 때 신는 구두 두 켤레만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게 평소에는 눈에 짚이지도 않던 게 눈에 짚여 다 정리해두었다. 정리라고 해봐야 신발을 나란히 세워두는 것뿐이라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어깨에 대충 걸쳐놓았던 하네스를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슬리퍼-당신에게 내어준 것보다 좀더 낡은, 사용한 흔적이 역력한 슬리퍼에 발을 꿴 페로사는 자신의 옷가지에 뺨을 부비적거리고 있는 당신을 보다가 당신에게로 손을 내밀어서 자신의 코트 옷가지를 받아들었다. 당신이 그것을 내어주면, 그녀는 그것을 소파 쪽으로 아무렇지 않게 휙 집어던지고는 당신에게로 두 팔을 벌려보였다. 그리고 그 푸른 눈에 조금 뾰루퉁한 눈빛을 띄고 당신을 빤히 바라본다. 그녀의 뺨이 조금 붉다. 당신이 눈을 마주치면 시선을 조금 옆으로 피한다. 그리곤 조그맣게, "...여기 있잖아." 하고 입밖에 꺼내버리고 만다.
이 일상 끝나고 나서 에만이 갑자기 휙돌아서 날뛰다가 온 동네에 어그로를 거하게 끌거나, 서로 정체를 까고 난 이후로 연락두절하고 막 굴러다니거나(이전 스레에서 페로사가 에만 강제방문했을 때처럼) 하지 않는 한 페로사가 납치나 집착폭발 같은 걸 할 것 같진 않아서... ◐◑ AU에서 퓨리오사 한번 굴려보는 걸로(??)
차가움 대신 남는 온기는 옅은 피비린내와 술 향기, 왕자와 왕이 없는 대신 권선징악의 희생양인 동화 속 악당 둘, 순수에 얹는 애정은 한색. 모순적인 것들이 모이고 모였음에도 거북하지 않다.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 무거운 깃털이 점점 첫 번째 저울을 기울게 만든다. 맑고 선명한 애정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그 애정이 깃털에 더 무게를 싣고 바닥에 닿기 직전에, 저울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손을 부드럽게 거머쥘 적 에만은 혼란스러움을 능숙하고 들키지 않게 얼굴 뒤로 감춰내는 것에 성공했다. 슬리퍼는 제법 폭신하다. 아예 안 신느니만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인지 이 정도면 좋았다. 아직 밤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이 작은 온기를 기억할 시간은 충분했다. 웃는 모습과 함께 워커가 덜걱 떨어진다. 그 뒤로 에만은 입가를 가리고 미소를 유지했다. 정확히는 미소가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신발을 보고 이미 인간다움과 사람의 온기를 느꼈는데, 그걸 또 슥슥 치우는 모습이.
"그렇지, 좋다고 하니.. 기뻐. 느긋하고.. 오래 있을 수 있잖아.."
에만의 나이가 어리기에 어른에게 감히 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페로사는 귀여웠다. 그렇지만 동물을 보는 시선 보다는, 사람 그 자체를 보고 보드라운 미소를 한 스푼 얹은 것 같았다. 그때 이후로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고작 3번째의 만남인 여인은 에만이 침묵하고 감추던 것을 드러내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와 코트를 벗으면서도 쉽게 내려두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감추던 것이 한 번 드러났으니 무의식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뺨을 파묻어 느릿하게 비빈 것은 여인의 향취가 남았기 때문이요, 쓰디 쓴 거처에서 여인의 품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며, 그 온기가 아직 남은 것 같았기에.
눈을 살짝 내리감고 비볐을 적 손이 선뜻 다가온다. 에만은 눈을 동그랗게 뜨다, 못내 아쉬운 듯 코트 옷가지를 내밀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 또한 무의식이다. 에만은 오늘 모든 것을 무의식이라 퉁치며 얻을 생각이다. 코트는 소파에 반쯤 걸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다. 털퍽 소리가 유달리 크다. 에만의 시선이 코트에서 여인을 향한다.
두 팔을 벌린 여인은 그 푸른 눈동자에 이색적인 감정을 담는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순진무구하게 고개를 모로 기울이더니 눈을 마주친다. 선홍빛 뺨이 푸른색과 대비되나 퍽 잘 어울린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에만은 배시시 웃었다. 웃는 모습도 흔치 않았기에 이질감이 드는 모양새다. 찰나의 시간이나 미소는 곱게 접히는 눈에서 시작되며, 입매로 가장 마지막에 끝난다. 에만이 속삭인다. 여인이 입 밖으로 꺼내버린 단어처럼 작고 차분한 모양새다. 에만이 아직은 큰 자신의 옷 소맷단을 부여잡고 사뿐사뿐 앞으로 걸어 선다.
"오늘만 있는 거야..?"
까치발을 들어 시선을 맞추려고 했으나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에만은 소맷단을 잡은 팔을 양쪽으로 벌려서, 그대로 페로사를 품에 가득 안아보려 했다. 이윽고 품 속에 폭 파묻혀 눈만 들었다. 페로사가 내려다 볼 때, 동글동글한 눈매만 보이게끔. 그 커다란 눈을 한 번 끔뻑이고 눈웃음을 쳤다. 더없이 순수하고, 욕망이나 의도를 담지 않은 미소였다.
"오늘 뿐이면.. 나는 오늘이 끝나는 순간부터 네 온기가 그리울 거야. 오늘을 곱씹고 다시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쉬워 할 거고.. 네가 오늘 뿐이 아니라고 하면 매일매일이 기쁠 거야. 언제 다시 이 따뜻함을 느껴볼지, 그 순간만 손꼽아 기다릴 거야.."
그러니까 말해줘. 에만은 고개를 비비며 페로사를 조금 더 품에 안아보려 했다. 볼주머니에 뭐든 넣는 욕심 많은 햄스터처럼 자신의 팔 안에 조금이라도 더 안아보듯.
오늘만 있는 거야? 하고 건네어지는 질문에, 페로사는 잠깐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려 뜸을 들였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뭐라 대답을 내어놓는 것보다, 당신이 품에 안겨오는 게 빨랐다. 귀로 들려온 문장의 의미를 붙잡고 있던 그녀의 사고를 품 안에 느껴지는 감촉이 지배했다. 품 안에 안겨오는 조그맣고 성그란 것이 향내를 풍기며 그녀의 가슴팍에 자기 모양을 남겨놓고 있었다. 메마른 것을 자신으로 축이려는 것처럼 꼭 붙들고 있는 당신의 가늘고 서늘한 팔이 조금씩 자신의 온기로 물들어가는 것 같았다. 자신의 품 안에 당신의 단 향기가 남는 것 같았다. 그게 왜인지 모르겠지만 흡족했다. 자신의 주제를 잊어버리고, 분에 넘치는 것을 바랄 만큼. 분에 넘친다-넘친다고 해도 상관없다. 자신의 주제에 걸맞는 선은 이미 애진작에 넘어버렸다. 당신을 품에 들였고 집에 들여버렸다. 눈에도 들이고 코에도 들였다. 당신이 이 도시의 어디를 가더라도 찾아갈 수 있을 거라 자신할 만큼 들여버리고 말았다. 당신에겐 푸른 그림자가 드리웠는가. 그녀에겐 하얀 물이 들었다.
그녀는 애써 그 사실에서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유일하게 생각을 돌릴 거리라고는 당신이 건넨 오늘만 있는 거야? 라는 말의 의미뿐이었는데, 그것마저도 당신이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로 그녀에게 전해버렸기 때문이다. "꼬맹아..."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눈만 빠끔히 들고 치는 눈웃음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당신은 굳이 나직이 조곤조곤 건네는 말로 선명한 감정을- 탐욕이나 욕망 같은 말과 궤를 같이했으되, 그런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희고 맑은 그것을. 내가 그런 감정의 대상이 되어도 되겠니? 하는 반문을 되돌려줄 틈마저 주지 않고 말이다. 아니, 이건 이미 전부터 그랬었지. "윈터."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당신이 그녀에게 알려준 이름을 정신없이 뇌까리는 것뿐이었다.
"정말이지, 나같이 엉망진창인 여자를 어쩌다 그렇게까지 원하게 됐니." 당신이 품에 더 깊이 안겨들자, 페로사는 손을 들어 당신의 머리를 천천히 쓸어보았다. 명주실같이 손 안에 감기는, 적발과 섞인 채도 낮은 금발이 부드럽다.
"갖고 싶어?" 그녀는 반문했다. "예약하고 바에 찾아오는 것 말고도, 지금 이런 것들?" 그녀의 말대로였다. 여기는 엘리시온이 아니었고, 엘리시온 밖에서의 그녀는 바텐더가 아닌 페로사 몬테까를로였다. 그래서 그녀는 나직이 말했다. 말하면서 조금 가슴이 아팠다. "네게 충분히 내어주지 못할 텐데. 그만큼 자유로운 몸이 아니야, 나는." 자신이 괴물임이 떠올랐다. 괴물의 목에 마땅히 채워지기 마련인 목줄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그렇지만... 내가 내어줄 수 있는 만큼은 내어주고 싶어." 당신을 거절하거나 밀어내기엔, 너무 가까워져 버리고 말았다. 바에서의 삶이 아니라, 바 밖에서의 삶도 나누고 싶을 정도로.
"이따금 식사라도 한 끼씩 나눠먹거나.. 서로의 집에 놀러가거나, 같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영화라도 보거나. 그런 거라도 할 수 있도록. 아, 일단 그 전에 지금은 좀 씻고 싶네. 오늘 좀 바쁘게 돌아다녔거든..." 하며 그녀는 킥킥 웃었다. "자기. 내가 날 너한테 내어주면, 너는 나랑 뭐가 하고 싶은 거야?" 이런, 또 그 호칭이다.
품으로 파고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코트에 왜 뺨을 비볐는지, 팔을 벌리는 것도 무시할 수 있는데도 한없이 무르고 약해진다. 그렇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늘은 지켜보는 사람도 없고, 페로사가 입이 가벼운 사람도 아니니 이렇게 굴어도 될 것 같았으며, 자신이 무슨 역할을 맡는지 몰라도 될 것만 같았다. 가득한 온기와 시트러스 냄새가 만족스럽게 닿는다. 눈웃음을 치는 모습이 당신이 아는 나이보다 조금 더 어린 행동이다. 눈이 마주쳤을 적 당신의 품속에 가려졌으나 입도 환히 웃었을 것이 분명했다. 꼬맹이란 말에 잠깐 눈을 반쯤 뜨는 모양새였으나 이내 눈을 감았다 뜨며 고했을 뿐이다. 희고 맑은 욕망을 종알종알 내뱉으며 나름의 반격을 가했다.
윈터. 그게 아니라고 정정할까 했으나 일말의 남은 이성이 붙잡는다. 아직은 안 돼. 에만은 느릿하게 "으응." 하고 답하며 고개를 폭 파묻는다. 입술을 벙긋거려 목소리가 작았겠지만, 가까운 거리였던 만큼 확실하게 귀에 들릴 정도였다.
"이 도시에 엉망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이 도시는 엉망이다. 겉보기엔 멀쩡하고 찬란하지만 속은 저 바깥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은 물론이요 끔찍한 것까지 몇 배는 더 얹은 곳이다. 도시의 사람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엔 멀쩡하고 평범하지만, 속은 아니다.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고, 거칠고, 추레하다. 머리를 천천히 쓸어주는 손길이 제법 맘에 드는지 품에 파묻은 고개를 느릿하게 비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머리카락이 고개의 느릿한 움직임에 따라 살랑인다.
"갖고 싶다고 하면 욕심이야..?"
에만은 고개를 다시 든다. 이번엔 오뚝한 콧날의 일부도 어느 정도 보일 정도로. 이 여우는 자신이 어떻게 고개를 들어야 귀엽게 보이는지, 그 정확한 지점을 아는 것 같았다.
"주겠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을 거야.. 욕심이라도 가질래."
까치발을 든 발을, 조금 더 올려본다. 이대로 더 자세를 지탱하면 무너지겠지만 그 이전엔 내려올 것이다.
"충분히 내어주지 못한다고 해도 좋아.. 자유롭지 않은 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잖아.. 나는 그 자유롭지 못한 것 중에서, 내어줄 수 있는 모든 걸 줘도 좋을 거야.."
욕심쟁이. 내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닌 모든 것이라 굳이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의 욕심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목줄을 끊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그 협잡꾼 말고 내가 먼저 당신을 발견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젠 흥미가 있다는 시답잖은 이유도 필요 없다. 거창한 무언가의 이유가 자신을 꽉 채우고 말았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패배다.
한때 패배를 선언했던 얘기가 당신을 타고 흐른다. 자신은 그럴 수 없다 생각했던 것. 그렇지만 괜찮다. 이전에도 그랬듯 뒤틀린 도시의 사람은 정상적인 방법과 뒤틀린 수가 공존한다 하지 않았는가. 잠을 같이 잤으니 이제 다른 것도 가능할 것이다. 버티지 못한다 해도 미카엘이 아닌 윈터라는 모습이 새로 생기면 되는 일이다. 앨리스가 정상적인 학교생활과 행복한 삶을 영위하듯 일상적인 삶은 에만과 미카엘의 모습을 한 윈터가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비틀리다 못해 뒤틀린 발상. 그럼에도 괜찮다. 당신이라면 이렇게 되어버려도 될 것 같다.
씻고 싶다는 말에 제법 익숙하게 꼭 안았던 힘을 나른하게 뺀다. 까치발을 폭 내려놓고 뭐가 하고 싶냐는 말에 고개를 기울인다. 자기 소리가 껄끄럽지 않고 간지럽다. 무심결에 중얼댄다.
"일단 오늘은.. Netflix and Chill..?"
그리고 눈을 깜빡였다. ..어쩌면 그 chill의 뜻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chill이라는 마냥, 순진한 태도다.
이 도시에 엉망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이봐, 난 이 도시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엉망진창이야. 하는 말이 나갈 뻔했다. 절대로 안 돼. 눌러참았다. 쓴웃음이 되었다. 당신에게는 사람이고 싶었다. 당신이 기억하는 바텐더이고 싶었다. 입가에 흐르는 피비린내는 몸에 남은 냄새로- 적어도 킬러들이 종종 하나씩 갖곤 하는 기벽의 흔적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했다. 페로사는 자신의 가장 따뜻한 부분을 당신에게 내어줄 준비는 되어있었으나, 가장 추한 부분을 당신에게 내어보일 준비는 아직 안 되어 있었다. 당신의 머리를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매만지는 이 손이, 당신의 욕심에 기꺼이 쥐어줄 손이 당신에게 투박하고 손톱 하나 꾸미지 않은 손으로나마 남았으면 했다. 핏줄이 불거지고 뼈가 두드러지고 칼날 같은 손톱이 뻗어나온 앞발이 아니라.
"욕심이지. 아주 미친 욕심." 자세가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겠다. 오늘은 보름이 아니니까, 이 모습으로 얼마든지 당신을 받아안아줄 수 있다. 자세가 무너져 쓰러져봐야, 그녀의 품 말고 쓰러질 곳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이 이미 파묻혀있는 이 곳 말이다. "네 욕심이기도 하고, 내 욕심이기도 해." 당신이 그녀에게 그러하듯이 그녀 역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쥐어줄 준비가 되지 않았으나, 서로에게 닿고 있는 이 부분이라도 페로사는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신이 원하고 있는 만큼.
며칠 전에 당신을 패배시켰던 그 이야기들, 홀로 가슴속에 담겨 있을 때에는 아무 의미 없던 것들. 그것을 페로사는 당신에게 나누어줄 것이다. 그 비워진 자리에는 당신이 담길 것이다. 입가에 흐르는 피냄새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입맞춤을 건넨 그 순간부터, 자신이 굳게 닫아걸어놓고 있던 마음 속의 어딘가가 허물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허물어져버린 것 같아."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무너뜨린 당신이 그것을 새로이 주겠다고 말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걸." 나쁘지 않은걸, 싫지 않은걸... 잊어버린 입버릇인데 다른 의미로 그녀의 입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당신이 자신을 끌어안았던 팔에 힘을 풀자, 페로사는 당신을 끌어안았던 팔을 풀어내며 당신이 편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면서 셔츠의 목단추로 손을 옮기며, 머릿속으로는 일단 좀 씻고 나서 뭔가를 좀 먹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신의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 순진한 얼굴을 하고 쏙 밀고 들어왔다.
셔츠의 목단추에 얹히려던 손이 당신에게로 뻗어왔다. 그녀는 당신의 턱을 살며시 쥐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녀가 당신의 위로 푹 내려앉았다. 당신이 허물어버린 마음의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또 왈칵 엎질러진 기분이었다. 입맞춤은 길지 않았다. 장난이라도 하듯 얇은 입맞춤을 한 번 감질나게 한 페로사는 깜빡이는 당신의 눈을 마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 같이 소파에 앉아서 나란히...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그리고 당신의 순진한 얼굴에 장단을 맞추어, 얼굴에 걸린 눈웃음을 평소의 느긋한 웃음으로 바꾸었다.
"그러면 혹시 너 욕실 쓸 거야? 아니면 내가 좀 쓰게. 변명같아서 말을 안 했는데, 오늘 오전 내내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꼴이 말이 아니거든." 그러던 페로사의 웃음에 짓궂은 기색이 걸렸다. "아니면 같이 씻던가."
아무래도 난 이대로 잠들어버릴 것 같아... (꾸닥) 그러니 미리 인사해둘게. 오늘 밤도 에만주랑 에만이랑 보낼 수 있어서 즐거웠어. 덕분에 내일 하루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에만주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답레는 나중에 쓸 생각 하고 자러 가. 에만주가 나한테 말했듯이 나도 오래 기다릴 수 있고, 에만주의 하루도 피곤하지 않고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하니까. 잘 때는 푹 잠들고, 좋은 꿈 꾸길 바라. (쪽) 항상 고마워요. 🥰
쓴웃음을 언뜻 보았으나 묻지 않는다. 이럴 땐 굳이 묻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 머리에 닿는 온기를 만끽하듯 파고들 뿐이다. 서로 간의 비밀을 한쪽은 일방적으로, 일부를, 그것도 추측이 아닌 제대로 된 사실로 알고 있으나 입 열지 않는 것은 알량한 업계의 규칙 때문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의 온기 때문이기에. 추한 부분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은 이쪽 또한 마찬가지다. 에만 또한 사랑스러운 여우로만 남고 싶지 누군가의 목을 물어뜯는 포식자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미친 욕심이라.. 싫어?"
품 안에서 고개를 갸웃 기울인다. 욕심이라 해도 좋다 종알거리곤 바스스 웃는다. 두 사람의 욕심이라는 문장이 제법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욕심도 미쳤다 불린다면 모든 것을 쥐는 날엔 어떤 말을 들을까.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는 욕심이 되는 걸까, 그렇다면 제법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허물어졌다 해도.. 부서지지 않았으니까 안심해."
보기 좋게 진 건 본인 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서로 망가진 부분을 주워서 다시 고쳐 끼웠는데, 막상 서로의 부분이 바뀐 느낌이다. 그리고 그것은 제법 꼭 맞는 모양새였다. "..나쁘지 않구나. 기뻐." 하고는 느릿하게 웃는다. 여전히 희미하고 감정이 옅어 그 의미도 잘 모를 메마른 웃음이지만 아예 웃지 않던 것에서 많이 발전한 셈이다. 까치발을 내리고 품에서 손바닥 한 뼘 정도의 거리로 떨어진다. 그리고 뒤로 한 걸음 더. 이정도면 여인이 편하게 환복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여인이 입을 맞추는 것이 아닌가. 감질나는 짧은 입맞춤에 에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뻑, 놀란 듯 눈을 감았다 떴다.
..에만은 넷플릭스 앤 칠이라는 단어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재밌는 드라마를 보며 소파에서 쉬는 것이라고 답할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모든 면에서 명석한 눈치를 보였으나 이런 순간만큼은 의도하지 않은 도시 바깥의 순수함이 물들어있어 그 용왕마저 자신의 이마를 수십 번 치며 넌 연애하면 상대를 말려 죽일 게 분명하다 언급하곤 했다. 지금도 그렇다. 넷플릭스 앤 칠의 단어 정의를 제대로 알게 되는 날 에만은 베개를 수없이 걷어차다 끝내 박살내리라.
입맞춤에도 굴하지 않던 에만의 동그란 눈의 눈동자가, 길쭉한 동공이 결국 수축한 것은 여인이 짓궂게 덧붙인 어떠한 언급 때문이었다. 에만은 상큼해졌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닌 직설적인 의미다. 오늘 하루 묻은 피를 싹 지워냈기 때문이다. 보송한 단내가 아닌 시트러스 향이 에만에게서 난다. 빠르게 씻는 것이 민폐를 끼치지 않을 방법인 것 같아 욕실 안에서 체구가 작게끔 모습을 바꾼 것은 비밀이다. 다만 갈아입을 옷이 마땅치 않았기에. 에만은 소파에서 얌전히 앉아 소매를 파닥였다. 여인의 옷이다.
에만은 이 상황이 제법 우습다 생각했다. 에만은 눈치가 빠르기에(크게 착각하는 것이 본인은 연애 눈치가 있다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옷차림이나 행동이 대다수 연애 이후의 상황임을 알기 때문이다. 현재 에만의 이 생각은.. 그나마 드라마를 봐오며 기른 눈치가 있어 맞춘 것 같다.. 장한 일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않을 것이다. 여인은 뒤이어 씻으러 들어갔고, 이제 나오면 완벽한 넷플릭스 시간을 갖겠지. 장하다 한 말은 취소다. 에만은 고개를 느릿하게 기울이다,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소파에서 허리를 뗀다. 사람이 온전하게 삶을 영위하는 장소는 용왕의 집과 앨리스의 집을 제하곤 이제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기 때문에.
답레 이어두고 갈게. 지금쯤 로로주가 푹 잠들었길 바라.😊 나도 로로와 로로주랑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즐거웠어. 오늘 하루도 근사할 거야. 좋은 하루 되길 바라고, 으음. 오늘은 잠이 마땅히 오지 않아서 출근하고 졸아버릴까 두렵긴 하지만... 피곤하거나 그러진 않을 것..? 같네.😂 느낌이 그래..(끄덕) 좋은 꿈 꾸고, 일어나서 봐요.(잠든 로로주 이불 덮어주기)(쪽)
승자도 패자도 없다. 오늘 하루를 내어줄 사람을 찾아낸 두 떠돌이가 있을 뿐이다. "아까 차에서 말했잖아. 나는 미친 여자라고." 미친 욕심- 그래, 이 도시는 광기의 도시다. 모두가 이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환락과 욕심에 미쳐 있다. 모두가 미친 도시라면, 그 중에서 미치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미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가장 평범한 욕심이야말로 가장 미친 욕심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순수와 광기는 때론 구별되지 않는다. 어떤 것이라도 때가 묻고 피가 묻어 잘못되어 뒤틀려버리기 십상인 이 일그러진 도시에서, 일그러지지 않고 평범하게 제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어쩌면 너한테라면 부숴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당신의 입술에 입맞춤을 남긴 뒤, 그녀가 덧붙인 말이었다. 하얀 타일로 빈틈없이 덮여있는 욕실은 어쩌면 꽤 차가워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병실이나, 수술실이나, 영안실처럼. 그러나 그녀가 거기에 꾸며놓은 것들은 결코 그 욕실을 그렇게 보이도록 두지 않았다. 따뜻한 난색의 조명과 색색깔의 비누, 레몬향에 민트향이 가미된 트리트먼트와 자몽향의 바디샴푸에 라임향의 린스. 목욕하는 데 쓰는 물건들은 시트러스 계열 향기를 선호하는 걸까? 그녀의 품에 안길 때마다 코끝에 살며시 걸려오는 그녀의 향기들이 그 병 안에 농축되어 들어 있었다. 구강청결제는 별 특별할 것 없는 민트향이었는데 그것으로도 그녀의 입에 배다시피 한 데킬라 향을 가리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그리고 특별한 날이나 기분 내킬 때 쓰려고 사둔 걸까 찬장 안에 모셔진 배스밤들 등. 결과적으로 한번 샤워를 마치고 난 당신은 그녀의 향을 한가득 머금게 되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향을 완전히 잊지 않을 수 있었는데, 산 지 며칠 안 된 것 같아보이는 보습용 크림에서는 당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몽글몽글하고 달콤한 비누향이 났기 때문이다.
씻으러 들어갈 때 빌려줄 만한 옷이 없는데 이거라도 입으라고 쥐어준 셔츠와 짧은 바지는 역시나 당신에게는 퍽 컸다. 돌핀 팬츠의 허리끈을 당신 허리에 맞도록 조이고 보니 A라인 숏팬츠가 됐다. 당신이 옷을 다 갈아입자, 자신이 갈아입을 옷을 옆구리에 끼고 있던 여인이 부엌에서 나와서는 "편하게 있어.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고." 하며 당신에게로 다가왔다. 머리끈은 풀어서, 그 긴 머리카락을 등과 허리로 잔뜩 늘어뜨린 채였다. "내 머리카락이 머리카락이라 좀 걸릴 것 같은데..." 하며 느긋하게 웃던 그녀는, 당신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대며 나직이 속삭였다. "기다려줄 거지?"
그녀가 욕실 문을 닫고 들어가고, 닫힌 문 너머에서 부스럭부스럭대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본격적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등허리까지 내려가는 길고 숱 많은 곱슬머리를 감안했을 때 그녀 말마따나 그녀가 샤워를 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짧지는 않을 것 같다.
텔레비전을 켜봐도 별 건 없다. 지역 뉴스 채널로 맞춰져 있는 케이블 TV는 당신이 잘 아는 내용, 혹은 당신이 손을 댄 내용을 방송하고 있을 뿐이다. 홈쇼핑 채널도 다큐멘터리 채널도 애니메이션 채널도 영화 채널도... 별로 특별할 것은 없고, 평소에 방영하는 것들뿐이다. (페로사 역시도 뉴스 채널 이외에 다른 채널은 별로 눈길을 주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래도 다행히 넷플릭스는 설치돼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생각하는 넷플릭스 앤 칠을 즐기기에 모자란 것은 없을 것 같다. 찬장에는 여러 가지 술들이 가득 있었는데, 이런저런 술병이 이만큼 요만큼 저만큼 비어 있는데 데킬라 병은 다섯 병이나 있었고 그 중 두 병은 빈 병이었으며 한 병은 3분의 1 정도 남아있었다. 어지간히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거실과 연결된 부엌. 무기고. 그녀의 침실. 창고. 욕실과 따로 마련된 화장실. 두 군데 정도는 들러볼 수 있지 않을까. 어딜 먼저 가볼까...
시트러스 향기가 코 끝에 보다 명확히 걸린다. 이것저것 섞인 시트러스 향은 이 작은 향이 모이고 모였기 때문이었나? 한 번 샤워를 마쳤을 뿐인데 당신의 향이 가득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사라져버리지는 않았다. 보습용 크림에서 몽글몽글하고 단 비누 향이 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신은, 그때 헤어지고 나서 이렇게라도 날 기억해 보고자 했던 건 아닐까. 하고 작은 망상을 해본다. 변덕이나 취향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 망상이 실제라면 만족감이 차오르고 기쁘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겠지.
옷을 갈아입을 적엔 셔츠와 바지가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돌핀 팬츠도 컸기 때문인지 숏팬츠가 되어버린다. 팔의 하박을 덮을 듯 말 듯 한 소맷단을 가만히 바라보다 품을 재본다. 새삼, 아까도 체구 차이를 실감했지만 매번 새롭다. 부엌에서 나온 페로사를 물끄러미 바라본 에만은 얌전히 손을 앞으로 모은다.
"먼저 쓰게 해줘서 고마워.."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다. 차이를 실감한지 얼마 안 되었기에, 눈앞의 여인이 또 생경하다. 긴 머리카락이 등허리에 닿는 걸 보니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괜히 손을 들어 잔머리를 귀 뒤로 쓸어 꽂는다. 그렇지, 앨리스도 저 정도로 치렁치렁한 머리였지. 어쩌면 미카엘도. 참 다행인 것은 허공에 대고 머리를 꼬는 버릇이 오늘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느긋하게 웃다가도 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나직하다. 에만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분명 평범한 넷플릭스 시청인 것 같은데, 이렇게 부드러워도 되는 걸까.
기다리는 시간은 짧지 않을 것 같으니, 조금씩 구경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남몰래 종종, 소리 없는 걸음으로 이곳저곳 호기심 있게 구경해 보기로 했다. 민폐가 되지 않는 선으로 구경하면 되겠지. 가령 소리 없이 켜본 TV는 곧 불의 마녀의 기일이 다가온다는 재 없는 내용만 방송하고 있고 넷플릭스가 설치됐다는 것과, 찬장에서 유달리 눈에 띠는 것은 데킬라며, 이곳저곳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음, 작은 일탈이다.
에만은 여기서 고민에 빠졌다. 평범한 바빌론 시티의 뉴 고모라 지하 사람의 뇌로는 당장 무기고에 가서 이 도시의 무시무시함을 직면해 보거나, 창고를 탐험하며 숨겨진 시체나 고문 기구를 발견하며 유레카를 외치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무난한 것이 좋겠다. 부엌을 향해 종종, 다시 걸어본다. 긴 옷깃이 까치발로 된 잰걸음에 팔랑거렸다.
부엌, 에만의 삶으로는 제법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고, 가본 지도 오래된 곳이다. 용왕은 칼도 아닌 '청경채'가 네 손가락이라도 베면 어쩌냐며 금이야 옥이야 길렀기에 부엌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에만에게 있어 부엌은 지하만큼 무시무시한 마굴이 되어 있었다. 만약 마굴이 맞고 그놈의 '청경채'에 손가락이 베인다 해도 뭐 어떤가. 호기심만 채우면 되는 일이다.
별난 일이지만, 당신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몇 가지의 작은 변화와 흔적을 남겨놓았다. 당신이 찾아낸 그것은, 그것들 중에서 당신이 확인할 수 있는 변화 중의 하나였다. 아직 당신에겐 망상에 가까운 추측에 지나지 않겠지만. 당신의 향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퍽 유사한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코끝에 어렴풋이 남은 어떤 냄새와 비슷한 냄새를 의식한 것이 맞았다. -그녀에게 한번 물어볼까. 부끄러워할까, 아니면 솔직하게 대답해줄까.
생경한 온기에 고개만 끄덕이며 어안이벙벙한 당신의 모습을 쳐다보던 그녀는, 차마 질문을 꺼내지 못한 당신을 보곤 온기를 한웅큼 더 얹어줄 뿐이다. 당신의 귓가에 따뜻하고 말랑한 것이 꾹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번에 귓가에 울리는 쪽 하는 소리는, 귀에 아주 가깝게 닿아왔다. 간질간질한 냄새가 남는다.
민폐가 되지 않을 선이라면, 마음놓고 구경해도 좋겠다- 당신더러 편하게 있으라고 했지, 여기저기 괜시리 뒤적여보지 말라곤 한 적 없으니까. 당신은 우선 부엌으로 향했다. 생소하지만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검소한 나무 가구 위주로 이루어진 그 주방 역시도 누군가가 생활하고 있다는 생활감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최근까지도 사용한 흔적이 역력한 수세미, 싱크대 위의 건조대에 올라앉아 있는 설거지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접시 두어 점, 제각기 제멋대로의 양만큼 남아있는 조미료 통들과, 제법 큰 냉장고. -열어보면 사람 고기는 없다. 사과주스와 콜라, 루트비어 정도는 있다. 그리고 이런저런 베리류 과일들이 밀폐용기에 분류되어 들어있다. 딸기, 블루베리, 라즈베리... 의외로 이런 걸 좋아하는 걸까? 그 외에는 냉장고에서 꺼내봤자 그대로는 먹기 어려울 식재료들과 소스, 드레싱 정도다.
서넛이 둘러앉아서 쓸 수 있을 크기의 식탁에는 의자가 둘뿐이었다. 하나는 오래 꺼내두고 사용한 티가 나 빛이 바래어있는데, 하나는 부자연스럽게 새것이다. 하나만 쓰고 다른 의자들은 창고에 넣어두고 있다가, 당신이 씻는 동안 하나를 꺼내둔 모양이다. 식탁의 한켠에는, 그녀의 바에서 본 것과 거의 같은 바텐딩 도구들이 늘어놓아진 선반이 하나 있었다. 손때를 꽤 탄 것은 물론 먼지가 앉지 않고 물기가 조금 남아 있어 최근까지도 사용한 티가 난다. 데킬라 말고도 다른 것도 제법 마시는 모양이다.
그 옆에는 또 두어 권의 잡지가 있다. 잡지를 퍽 좋아하는 걸까. 그러나 대부분 바텐딩이나 주류와 관련있는 거실 탁자 위의 잡지들과 달리, 식탁 위에 있는 것은 요리와 패션 잡지다. 요리잡지는 낡은 티가 났지만, 패션 잡지는 최신간이다. 패션 잡지를 정기적으로 구독하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거실의 탁상 위에 있는 잡지들 중에서는 패션 잡지가 없었으니까.
시선을 들어보면 식기들이 얹힌 선반이 있다. 각양각색의 유리잔들이 걸려있는 선반도 있다. 바에서 본 것들이다. 콜린스 글라스, 온더락 글라스, 하이볼 글라스, 소서 글라스, 마티니 글라스... 각 종류별로 하나씩밖에 없었는데, 마티니 글라스는 두 개다. 그 중 하나의 모가지에는 아직도 떼지 않은 가격표가 붙어있고.
전기 인덕션이 아니라 가스로 때우는 가스레인지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고, 커다란 냄비 하나가 느릿한 김을 내뿜으며 끓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의 근원지가 거기인 모양이었다. 육수를 내고 있는 것인지, 이런저런 조개와 채소들을 거름망에 넣어놓고 약한 불로 찬찬히 끓이고 있었다.
아참... 그리구 답레는 자고 일어나서 써줘 에만주. 나 이제 자려고 누웠어. 같이 자러 가자. (옷깃꾸왑) 요즘 자꾸 초저녁에 잠들어서 오히려 에만주랑 있는 시간이 짧아지는 게 수면패턴이 어긋나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서 오늘은 안 자고 버티고 있었거든. 에만주 수면시간이 부족한 게 전부터 신경쓰이기도 했고... 😳
그러니까... 혹시 답레나 진단, 잡담 같은 걸 올렸는데 내가 반응이 없거든 잠든 거라 생각해줘. 인사는 미리 해둘게. 오늘 하루도 고생많았구, 내 하루를 행복하게 해줘서 고마워. 에만주도 너무 늦지 않게 잤으면 좋겠어. 자고 일어나서 다시 만나. 많이 좋아해. 잘 자. 😚
에만: 아..? 에만: (갑작스러운 키스에 k.o 당함) 에만: 아, 그, 그게... 조, 좋아해.. 에만: 그러니까, 이런 것도 좋고, 당신도... (품 속으로 파고 들어감)
키 큰 로로도 좋아! 기억의 이유도 낭만적이고 묘사대로 잡지를 좋아하는 것 같네.. 태블릿은 어떤 용도일까?
에만: 209 캐릭터가 어린시절 저지른 잘못은? > 김에만 응애 시절에 저지른 가장 큰 사고는 이것저것 바이러스도 만들어보고, 장난을 쳐보다가 일대의 인터넷을 다 다운 시켜버린 일 아닐까..🤔 벌로 외출 금지에 일주일간 아이스 바 금지를 당했지만..😂
038 캐릭터의 눈의 특징을 설명해주세요. > 가장 눈에 띠는 건 길쭉한 세로동공에, 색이 아주아주 옅은 벽안이지. 동공은 짙은 황색에 가까운데, 고양이 같기도 하고 뱀 같기도 한 느낑으로 찢어져있어. 그림으로 그리면 잘 안 보이니 오렌지 계열에서 명도 조금 낮춘 색 아닌가 싶고.. 미약한 고양이상에 속눈썹이 길다는 정도일까..
223 좋아하는 과일 > 청포도? 껍질이 단단하게 터지는 느낌을 좋아하거든. 체리도 좋아할 것 같네. 사과는.. 한국의 품종이랑 다르게 서양 품종은 껍질이 조금 덜 질기고, 알이 단단하고, 크기가 작으면서, 향이 굉장히 깊거든. 단맛은 약하게 나고 풍미 위주라 해야하나. 먹어본 바로는 그랬는데.. 아무튼 그런 이유로 사과도 좋아할 것 같아. 한국 사과는 갈아먹지 않는 이상 별로라 할 것 같네.🤔
정말이지, 같이 맞춰주다니.. 영광인 걸.(꼬옥) 오늘은 저녁에 못 올 가능성이 커요. 참취는 안 된다 참취는..(파들!) 나도 때마침 침대네. 로로주가 잠든다면 토닥토닥 해주다가 같이 잠들어야겠다. 어제 하루도 고생 많았고, 오늘 하루도 힘내보아요. 늘 같이 있어줘서 기쁘고 로로와 로로주가 있어서 행복해.😊 많이 좋아해, 좋은 끔 꾸고 깨는 일 없이 푹 잠들길 바라. 잘 자!😘😘
몽글한 단내는 흔적을 남겼다는 작은 만족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망상에 가까운 추측이라고는 하지만, 이 단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묘한 만족감을 준다. 심리적인 요인뿐만이 아닌, 상큼한 것을 뒤로 포근한 단 향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딱 맞는 조합 같기도 했으니.
다만 물어볼 기회는 놓쳐버렸다. 귓가에 따뜻하고 말랑한 촉감이, 그리고 도시에선 익숙하지만 자신에게는 생경한 소리가 닿았다. 예고하지 않은 애정 공세에 눈이 동그래진다. 새하얀 피부의 뺨이 옅은 분홍색 파우더를 톡톡 친 듯 발그레한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닫고 난 뒤엔, 잠깐 고개를 돌려 여인을 쳐다봤을 것이다. 어쩌면 욕실로 들어가 버렸을지도 모르는 모습을. 주방을 습격했다. 습격은 거창한 단어였나? 탐험했다. 자라오며 주방은 마굴이나 다름없는 곳인데도 호기심이 넘치는 터라 참을 수 없었다. 맡아본 적 없어 생소하지만, 맛있을 것 같은 조합의 냄새가 났다. 생활감 넘치는 주방이 생경하다. 주방이 이런 곳이었나? 고개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가령 조미료의 배열이나, 물기 젖은 수세미나, 접시나..
냉장고엔 사람 고기는 없지만, 대신 베리류가 가득하다. 이런 걸 좋아하는 걸까, 어린 날 읽었던, 거대한 드래곤이 새끼 양을 베리처럼 톡톡 집어먹었다는 대목이 떠오른다. 거기서 나오던 드래곤 이름이 뭐더라. 투슬리스였나. 아무튼. 신기한 것 투성이다. 앨리스의 집 냉장고엔 이미 조리된 것들이나 반쯤 조리된 밀키트만 가득한데, 페로사는 직접 해먹는 부류였던 걸까. 새로운 정보를 알았으니 문은 소리가 나지 않게 닫기로 했다.
뒤를 돌면 바텐딩 도구가 보인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가 보였다. 지거, 머들러, 스트레이너, 바 스푼.. 기초적인 것부터.. 아, 아이스 픽은 익숙하다. 안 좋은 의미로. 잡지를 보니 요즘도 활자를 읽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고개를 기울인다. 에만이나 앨리스나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를 제외하면 활자와는 멀리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나머지는 핸드폰과 태블릿, 노트북이 모든 것을 대신한다. 생활 잡지는 들고 다니며 보기엔 너무 아날로그 하다는 것이 이유다. 이윽고 보인 것은 각종 칵테일용 글라스와 가장 기본적인 칵테일 글라스, 그러니까.. 뭐더라? 마티니 글라스만 두 개다. 하나는 새 거인 걸 보니 잔의 이가 나가기라도 한 걸까.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언가 보글보글 끓는 냄비다. 육수를 내기라도 하는지 거름망 속에 보이는 건 이런저런 조개나 야채 같은 것이다. 당근은 없는 것 같다! 즐거운 주방 탐험은 성공적이었다. 에만은 종종 부엌을 나섰다. 이번엔 어딜 가볼까.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방인가. ..방으로 가야 할까? 매너를 지켜야 하는데! 도시 사람이 무슨 매너야! 잠시 머리의 자아가 충돌한다. 차선책으로 창고라도 가보자. 이건... 도시의 불문율이니까 괜찮을 거야.
욕실에 들어가기 전 당신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당신을 등진 채로 아직 증기가 남아 있는 욕실의 역광을 받으며 당신에게 고개를 반쯤 돌려 눈웃음을 짓고 있는 페로사의 옆모습이었다. 코끝에 걸리는 당신의 향기가 퍽 마음에 들었다.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마치 허락이나, 확답, 확언 같은 것을 처음으로 받아본 것만 같아서- 제한당하고, 거절당하고, 몰수당하고, 쫓겨나가고, 쫓겨다니던 자신의 삶에 마침내 무언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누릴 수 있는 것을 하나 허락받은 것 같아서. 그 눈웃음은 짓궂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금 행복해 보였다. 욕실 문이 닫혔다.
당신이 육수 재료를 휘적여보지 않은 게 다행이다. 아랫쪽에 반토막을 낸 당근이 있었으니까. 물론 육수만 넣고 뺄 것이고, 오늘 당신에게 대접할 요리 특성상 육수에서 당근 맛을 콕 집어서 느끼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당신이 오늘 받을 저녁상에는 확실히 당근이 없는 셈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름에서나 억양에서나 그녀는 이탈리아 사람 티가 났다. 이탈리아풍 요리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당신의 귀에 걸리는, 욕실 문 너머에서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쏴아아 하는 물소리가 조금 새롭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 여인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으나, 어쩌면 알고 싶었던 것보다 더 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마티니 글라스가 망가져서 새로 산 걸까, 라고 하기에는 바의 그것만큼이나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잔들은 전부 다 멀쩡해보였고, 기존에 갖고 있던 마티니 잔도 금이나 이는커녕 흠집 하나 없이 말갰다. -며칠 전에 크림을 사면서 새로 산 것이다. 장을 보다가 문득 당신 생각이 나서, 쓸 일이 없을 거란 것을 알면서도 무심코. 그땐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이 이렇게 됐다.
무언가 조리기구라기엔 몹시 살벌한 무언가가 있다거나, 끔찍한 식재료가 있다거나 하는 거창한 기대는 공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주방에 차려져있는 것들은 그저, 평범하고 안온하며 느긋한 일상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당신은 고개를 돌렸다. 거실을 가로질러, 다른 방으로 향한다. 육중한 문고리를 비틀어 열어보면,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관하기 위해서 배치해놓은 가구들이 보인다. 안 쓰는 의자와, 낡은 서랍장, 공구함, 말통을 비롯한 어디에 쓰는 것인지 모를 양철 통들, 무엇이 들었는지 모를 플라스틱 박스들.
그러나 그 중에서는 확실히 당신의 이목구비를 잡아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책상이 대어진 한쪽 벽면, 그리고 그 벽면을 통째로 뒤덮고 있는 탐정의 벽을 방불케 하는 각종 메모들과, 지도들과, 사진과 이름들. 압핀에 매여 있는 붉은 실들. 사진들은 대부분 당신에게 낯선 얼굴이었으나, 몇몇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갑작스레 실종되어 버려서 당신의 계획에 뜻하지 않은 호재 혹은 달갑지 않은 변화를 야기하거나, 때때로는 중대한 방해가 되기도 했던 실종자들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그래, 아무리 푸근한 일상을 바라며 이 거처를 자신이 바라는 것들로 따뜻하게 채워나간다고 해도, 아무리 따뜻한 천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헤메고 헤메어 다다른 곳이 이 광기의 도시인 이상 누구라도 어딘가 잘못된 부분이 있겠지. 당신에게 딱히 보여주고 싶지 않은 비일상은 이렇게 뒷방에 쟁여놓았던 모양이다.
보드에 걸린 모든 사진들은 전부 붉은 펜으로 X표가 쳐져 있었다. 딱 한 사람을 빼고. 마치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은, 쿨톤인데도 어두워서 칙칙하기 그지없는 얼굴빛을 하고 자색의 눈동자로 허공을 공허하고도 차갑게 바라보고 있는, 길다란 얼굴상에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덥수룩하게 늘어뜨린 음산한 인상을 한 3-40대는 되어보일 것 같은 남자. 당신에게는 어쩌면 아주 고약하게 낯익은 얼굴- 에누마 금융 그룹의 채무자산관리부 부장, 안드라스 레저.
책상 위를 보면, 이 보드를 만드는 데 썼을 것 같은 필기구들과 압핀과 붉은 실이 있다. 그리고 약통이 있다. 낯선 약들. 여러 종류의 알약도 있고, 앰플에 든 주사약도 있다. 향락용? 치료용? 신체능력 증진용? 당신이 알고 있는 약물들 중 어떤 것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안드라스 레저에 관해 메모해 둔 내용들이나 책상에서 발견한 약, 둘 중에 하나는 자세히 살펴볼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살펴보다가 그녀가 나올지도 모른다. 탐험을 해보고 싶은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비록 무시무시한 당근의 존재를 알지는 못했지만 주방 모험은 즐거웠고, 앞으로 에만이 청경채에 손을 베인다며 출입을 금지 당한 용왕의 주방에 출입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좋은 기회였다. 아마 요리는 이탈리아풍이지 않을까? 여인의 억양에서는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날 적부터 히어로 부모 밑에서 자라 비일상적인 삶을 살았으니 제대로 된 일상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으나, 여인을 통해 하나하나 알아간다. 조금씩 더 알아간다면 아까 여인이 욕실에 들어가기 전 지었던 행복한 미소의 의미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윈터라는 새로운 자아가 생기는 걸까, 미카엘이라는 자아로 남아있을까.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찰나의 안온하고 느긋한 일상을 뒤로하며 창고로 향한 것은 현재로서는 비일상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벽면을 차지한 것부터 이 도시의 성향을 알려주지 않는가. 흥미가 생겨 사진을 하나하나 훑어본다.
아는 사람이 몇 보인다. 여기 이 남성은 갑자기 사라져서 에만의 계획을 수월하게 해준 존재고, 여기 이 여성은 중요한 순간에 사라져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끔 만든 존재다. 붉은 X표가 그려진 것은 죽였다는 뜻인가? 혹은 복수에 성공한 건가? 오늘 맡은 피비린내도 이 사람들 중 하나인 건가.
아무리 이 도시에서 보기 드문 온기를 품었다 해도 정착한 곳이 이곳인 이상, 보통의 것을 기대해서는 아니되며 비일상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에만도 잘 아는 사실이었으나 오늘따라 조금, 아니. 제법 냉소가 스민다. 결국 우린 바빌론 시티의 사람이다. 붉은 X를 지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사람의 사진에 시선이 멈춘다.
그리고 이 사람은..
자연스레 입으로 엄지가 간다. 반듯한 오른손 엄지를 잘근잘근 물기 시작했다. 에만은 특이한 분위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차가운 냉기가 함께 하는 것 같고, 품에 안으면 온도가 현저히 낮은 사람이다. 몸의 온도는 여전하나 주변을 감싸는 것 같은 차가운 공기가 가라앉는다. 잘근잘근 씹던 엄지는 반듯하던 손톱이 온데간데없다. 본래의 손은 제법 엉망이다. 겨우 자란 것 같은 손톱이 딱 소리가 나서 다시금 부러졌다.
"...하."
안드라스 레저. 이 새끼가 왜 여깄지? 홀린 듯 낯익은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다 휙, 아래를 본다. 뭐라도 있는 건 아닐까. 이 사람이 여기 있는 이유 같은 것 말이다. 그렇지만 보인 것은 낯선 약이다. 향락을 위한 것인가? 지병이 있나? 아니면.. 에만은 잠시 고민한다. 피가 나기 직전까지 엄지를 물다 멈춘다. 냉기가 몸을 감싸며 오른손 엄지손톱이 원래대로 자란다. 약과 레저. 둘 중 하나는 용기 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시간을 너무 소비했다. 쓸데없는 모험에 도전했다가 여인과의 시간이 흐트러지면 도망치는게 더 나을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아무리 에만이 겁이 없다 해도 맹수의 홈그라운드에 발을 내디디는 건 지하로 충분하다. 이런 일상적인 곳이 아니라.
에만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천천히 자리를 빠져나오려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소파에 앉아 발을 꼼질대려 했을 것이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보자마자 답레를 쓰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순진무구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있는 당신을 뒤로하고 당신이 이 방에 찾아왔다는 흔적을 찾아내는 것과, 당신이 이 방을 탐험해보고 있는 순간을 그녀에게 들켜버리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라는 문장을 쓰고 있어.
페로사(전자): ...자기. (싸늘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음) 지금 뭐 하는 거야?
페로사(후자): (자려고 누웠을 때) 자기. (입술에 쪽) 창고에는 가지 마. 페로사: 거긴 아직.. 보여줄 준비가 안 됐어. 응?
당신은 지나친 모험을 지양하기로 하고, 당신이 눈에 담은 단편적 정보만을 담아두기로 했다. 약들... 마법의 우표나 수상한 가루 같은 것은 아니고, 제대로 된 알약 블리스터와 주사용 앰플 병에 든 것들. 몇몇 개는 이미 사용했는지 이미 개봉된 블리스터도 있고, 빈 앰플도 있다. 트란작, 브로말, 베이로스라는 약의 이름. 제조사의 로고나 정확한 성분표 같은 것은 없이 약의 상품명과 QR코드 정도만 찍혀있는 라벨들. 그 QR코드를 찍어보면 뭔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나 여기서 괜히 알아보는 것은 시기상조다. 집에 가서 검색해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안드라스의 사진 아래에는, 메모지 수십 장이 꽂혀 있었다. 일일이 들추어볼 시간은 없을 듯하다. 괜히 건드려서 누가 들추어본 흔적을 내기도 그렇다.
애초에 그녀는 냄새만으로 당신이 이 방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챌 테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순진무구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있는 당신을 뒤로하고 당신이 이 방에 찾아왔다는 흔적을 찾아내는 것과, 당신이 이 방을 탐험해보고 있는 순간을 그녀에게 들켜버리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이름 모를 약들. 그리고 킬보드. 그녀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광기의 도시의 그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지나쳐 욕실로 들어갈 때, 당신에게 보이던 그 애착이 어린 행복한 미소... 과연 그녀는 당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바라고 있는 그 이름모를 것을 당신에게 안겨줄 수 있을 만한 존재일까. 당신은 그녀에게서 무엇을 바라고 있고 무엇을 얻게 될까. 그녀는 당신에게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 것일까. 아직은, 모른다.
거실로 나오자, 욕실에서는 어느덧 물 쏟아지는 소리가 뚝 그쳐 있다. 아마 샤워를 끝내고 몸을 닦고 있거나, 아니면 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다. 다행히, 그녀가 당신에게서 감추고 싶어하는 것을 당신이 뒤져보고 있는 장면을 그대로 들키는 건 면했다. TV의 불빛이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방을 오렌지색과 군청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낮은 음질의 음악과 함께, 앵커도 캐스터도 없이 이미지와 글자로만 진행되는 일기예보 방송이 켜져 있었다. 어느덧 슬슬 올해 첫 장마가 찾아올 때가 된 모양이다. 바빌론 시티의 빠르게 찾아와 늦게 떠나는 여름은 시도때도 없이 열대성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4~5일 단위의 장마도 일 년에 몇 번인가 찾아오곤 했다.
욕실 문이 덜컥 열리더니, 페로사가 나왔다. 허벅지를 살짝 덮는 딱 달라붙는 스포츠용 레깅스에, 민소매 크롭티, 그리고 그 위에 후드집업을 대충 걸친 모양새다. 금발의 머리카락은 수건으로는 전부 다 말리지 못한 물기가 축축하게 남아 그녀의 어깨와 등으로 아무렇게나 쏟아져 있다. 페로사는 손을 뻗어서 어깨에 쏟아져있는 머리카락들을 목 뒤로 넘긴다. 욕실에는 헤어드라이어도 있고, 당신도 헤어드라이어를 썼을 수도 있지만 페로사는 헤어드라이어를 쓸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저 머리숱에 저 길이에 심지어 곱슬머리이기까지 하니 머리를 말리려면 오랫동안 고생을 해야 할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일단 씻기부터 하자고 생각하다가 손님 대접을 못 해줬네. 간식이라도 좀 먹을래?"
당신의 침입을 눈치채지 못한 듯이, 당신이 소파에 앉아 TV를 얌전히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듯 페로사는 당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주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기의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범죄도시의 그늘 사이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피어난 조그만 민들레 같은 소박한 일상이 이 크지 않은 집에 가득 펼쳐져 당신의 저녁을 물들이고 있었다.
부엌이 좋은 것을 알게 된 모험이었다면, 창고는 의문만 가득 남는 모험이었다. 이름 모를 약과 킬보드의 존재. 그리고 에누마 그룹의 개입. 에누마 그룹 소유의 카드도 가지고 있었던 걸 보니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사람이 비밀로 남기고 싶어 하는 일이 있으며, 에만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만 보며 살았다. 그렇지만 단 찰나의 우연으로 만난 인연인 여성 앞에서 에만은 물렀다.
대체 본인도 왜 그런지는 모른다. 애착이 어려있던 행복하던 미소가 떠올랐다. 과거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보였던 비슷한 미소가 떠올랐으나 뇌는 긍정하지 않는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도 모른다는 이유로, 고작 그런 심경의 변덕으로 더 파헤치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언젠가 다시, 일할 시간이 찾아오면 여인에 대해 찾아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 그때 호기심을 해결하자. 물론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이 흔적은 남겠으나 손대지 않았으니 참작의 여지는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나오길 잘했다. 물소리가 그쳐있지 않은가. 에만은 TV로 시선을 옮겼다. 어둑어둑한 방을 일기예보가 가득 채운다. 곧 장마가 온다. 에만의 눈이 가라앉는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날씨가 흐리고, 눅눅하며, 축축하다. 감기에 제일 잘 걸리는 날씨다. 장마 때 찾아오는 감기는 보통 감기가 아니라 판단력과 사고를 흐리게 만들어 일을 방해했다. 그뿐일까, 비가 오면 올수록 미친 녀석들도 날뛴다. 날뛰는 것들이 균형을 무너뜨리려 들어 제압할 때면 에만도 다쳤다.
그렇지만 가장 싫은 것은 비가 오면 사람이 죽는다. 누군가 죽든 말든 상관없는 것이 이 도시의 삶이지만, 에만은 비가 오는 날 생기는 죽음을 싫어했다.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비 오는 날 변덕이 광증 수준으로 심해져 오락가락했다. 사람이 죽는다. 에만이 죽일 것이다. 제법 많이, 비가 그칠 때까지. 날씨 얘기가 싫어 에만은 툭툭 리모콘을 들어 별 거 없는 영화나 보기로 했다. 저녁 시간대지만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주기 위한 편성표를 짰는지 가족 영화를 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했는지 가난한 아이가 초콜릿 속에서 금색 티켓을 발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초반부의 중요한 장면은 이제 중요치 않게 됐다. 욕실 문이 열고 나온 페로사 때문이다. 옷차림이 잘 짜인 근육은 물론이요 곡선까지 훤히 드러난다. 그나마 후드집업이 몸을 가린다 해도. 에만은 천천히 시선을 피했다. 어쩐지 부럽고 예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에만의 몸뚱이는 빈약해서, 곡선이라곤 허리밖에 없었으니까. 괜히 자신의 드러난 다리를 본다. 운동을 해야 할까. 물론 작심삼초다.
"..이렇게 편하게 있는 것도 대접받는 느낌인걸.."
당신 앞에선 무르고 물러서, 하지 않아도 될 얘기도 나오고 만다. 에만은 이 포근한 일상이 나쁘지 않았다. 현실을 내려둘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다음에 생각이 나서 일에 대한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게끔 헤어지면 오늘의 기억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한 걸음 더 앞으로 걸어보고 싶다는 충동도 들었다. 작고 흉포한 맹수가 작은 토끼가 되는 과정이었다. 에만은 다시 화면을 향해 눈 돌리며 다리를 올리고, 몸을 웅크린다. 큰 옷이 무릎을 덮었지만 올라간 다리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치 짧은 원피스를 입은 것처럼 둥근 원형을 그리며 흘러내린다. 그 사이로 에만에게는 컸던 돌핀팬츠와, 희미하게나마 허리가 드러났다. 아마 이 꼬맹이는 자신이 지금 옷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자캐가_17살의_본인을_만나게_된다면 > 3년 전의 에만..? 우.. 우와..👀 김에만 그 나이의 자신을 붙잡고 이것저것 경고하지 않을까.
"너 절대 그 조직이랑 결탁하지 마, 그 다음 장마 때 통수 맞고 용왕까지 나서야 해결 됐어. 그 조직이 말썽인게 아니라 네가 야마돌아서 그 새끼들 다 죽이고 가족까지 손대려 했단 말이야. 인내심을 좀 길러." "너 대학 제때 가. 아니, 차라리 지금 가! 학점만 따면 조기졸업이고 너 5월 졸업 못하면 12월 졸업이야. 교수가 이 도시에서 가장 미친 새끼니까 잘난체 하지도 마. 차라리 대답을 마. 대학원 끌려가. 절대 현혹 되면 안 돼. 대학원 생각도 마!!!" "..너, 이번엔 뵈러 가지 마. ..가지 말라면 가지 마."
🤦♀️
이룰_수_없는_소망을_이루는_꿈을_꾼다면_자캐는 > 이거 희망고문이지..? 김에만 꿈에서 깨고나서 한참이고 눈 뜬 모습 그대로 있다가 몸 일으키면서 바로 새가 되어선 창문 밖으로 나가버릴 거야. 그렇게 바람 두어시간 쐬다가 돌아오면서 생각 정리를 하겠지..?
자캐가_자고_있는_모습을_서술해본다 > 세 가지 상황으로 볼 수 있는데..
1. 일하다 잠깐 여가시간이 생겨 잠드는 순간이면 용왕이 주변에서 경호해. 용왕이 자신의 모피 숄을 어깨에 덮어주고, 에만은 책상에 얌전히 엎드려 자고 있어. 대신 잠을 옅게 자는 편이라 낯선 인기척이 조금만 느껴져도 바로 눈 뜨면서 일어나. 용왕은 네 손님 아니니 더 자라고 하고.
2. 과제는 뭐, 대학에서 인재라 불려서 잘 내는 편이지만 일과 과제를 병행하며 나흘 밤 새다 결국 갔을 때.. 용왕이 경호하는 건 똑같지만 책상에 모로 머리 박고, 팔은 축 늘어져서 잠드는데 이게 앉아서 죽은 사람들 모습이랑 똑같은데다 옆에서 총격전이 벌어져도 못 일어나.. 용왕이 주기적으로 손가락을 코 밑에 대서 숨 쉬는지를 확인해. 이건 배터리 방전 수준이 아니라 일주일치 에너지를 다 끌어다 쓰는 거라 진짜 시체처럼 자거든.🙄
3. 로로의 품에서 잠들었거나, 옆에 있을 때. 아무것도 없을 때 혼자 잘 경우엔 인형을 끌어안고 자는데, 천장을 보면서 누운 채오 인형을 품에 가득 안은 자세라 가끔 인형에 눌려서 숨이 막히면 인형을 머리맡에 고이...굴리듯 떨어뜨림.. 로로 품에서는 온기 찾아서 파고들지도 몰라. 병아리들 따뜻한 곳 들어가 자듯이 에만도 따뜻한 곳에서 자는 걸 좋아하거든. 자세가 변하지 않기도 해. 한 번 안정된 상태로 잠들면 곤히 잠들어서 뽀뽀를 해도 안 일어나는게 흠이지만..
아무 일 없을 거야! 0.< 아마..도? 손.. 몹쓸 대사.. 안 되겠다 김에만 깍지 서비스 출동! >:3 에우우 ;0;..(쏙 들어가서 부빗)(꾸시꾸시)(꼬옥)
옆에 로로가 있으면..? 욕심쟁이~ 그렇지만 이런 질문 좋아해! 에만이가 숨을 잠깐 깊게 들이마시고 내쉰 뒤에 이게 현실이고 현실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잠든 페로사 옆으로 조금 더 밀착하지 않을까.. 약간 살 닿기 직전에 온기만 닿듯이. 깨우지 않고 그렇게 온기에 의지해서 다시 잠들 것 같아. 아니면 손이라도 잡고 다시 잠들거나.
에만: 아.. 에만: 나, 과제, 해야 하는데..(품 속에서 꾸벅꾸벅) 에만: 당신이 자야 하는 거 아니ㅇ...(그대로 넉다운 해서 잠들어버림)
김에만씨.. 의외로 잠드는 건 한순간이라(이유: 교수의 횡포(?)) 말하다가도 품 속에서 조금만 따뜻하게 해주고 쓸어주면서 잠들 각 세워두면 툭 잠들어버린다구..
앨리스.. 대학원은 지하보다 두려운 곳임을 알게 되었다나봐(?) 분명 대학 입학할 때는 .oO(앨리스는 대학원도 졸업해서 착실한 사회의 일원이 될 거야) 같은 상상을 했겠지만 역시 상상은 상상이었고 심슨 짤처럼 빵 조각 던지면 주워먹는 대학원생의 삶은 참혹했던 거지..(대체)
라고 말하자마자 예고도 없이 졸아버렸네. 아마 답이 없다면 잠든 걸지도 모르겠다.. 미리 인사할게. 어제 하루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기뻐요.😊 오늘 하루는 푹 쉬고, 잠든다면 부디 좋은 꿈 꾸면서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 평안한 새벽 되고, 좋아해요.🥰🥰
우왓.. (홍당무) 얼마든지 욕심부려달라구. 요망.. 요망할 수밖에 없지.. 에만이 얼마나 요망하게 요훅하는데!!
페로사도 피로가 쌓여있었던데다 에만이랑 같이 있으면 여러모로 좋은 감정들(그 중엔 편안함과 나른함도 있음)이 증폭된달까 한결 편안해져서 쉽게 잠들 것 같지. 햇볕 들어오는 마룻바닥에 웅크려 자는 페로사랑 옆에 쏙 끼어드는 에만이 보고 싶다(?)
>>사실 앙큼한 나년이 화려하게 방으로 들어온 거임 야옹~<<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꼭 보고싶닼ㅋㅋㅋㅋㅋㅋㅋㅋ
페로사: (뜻밖에 유머코드가 적중해서 끽끽대고 웃음)
앗... 졸아버렸구나. 얼른 잠들어. 답레를 금방 쓸 것 같진 않으니까. 나도 오늘 밤에도 함께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어. 에만주도 충분히 쉬고, 푹 잠들고 개운하게 일어날 수... 앗 똑같은 문장이네. 우리 어느새 인삿말이 꽤 닮게 됐구나. 나도 많이 좋아해. 잘 자. 😊😘
그녀의 피부는 붉은 편이었다. 코카서스계 인종의 피부 중에선 어두운 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에만의 시선이 이리로 닿아오는 걸 의식한 걸까 타이밍이 안 좋았던 걸까,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하니 그녀는 후드집업의 지퍼를 채워서는 지익 하고 올려버린다. 그러나 꽤 품이 큰 후드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상반신의 체격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한다. 떡 벌어진 어깨라던가, 당신의 허벅지보다도 더 두꺼울 상박이라던가. 하반신은 애초에 후드집업이 가려주지 못했기 때문에, 타이즈 아래로 굵은 실루엣과 쩍쩍 갈라진 근육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보였다. 매력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조금 징그럽겠다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타이즈 아래로 드러난 분홍색의 맨살 여기저기가 이런저런 흉터 투성이여서 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부엌으로 향하려던 그녀는 TV 화면을 스치고 있는 장면을 보고는 방향을 틀어 당신이 앉은 소파로 다가왔다. "오, 내가 좋아하는 영화잖아."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신이 눈을 뗀 영화가 그녀를 끌어왔다. 가까이 다가선 그녀의 몸에서, 아까 길거리에서 맡았던 것보다 더 선명한 시트러스 향기가 난다. 살 냄새는 한결 옅어졌지만, 한결 더 따뜻하고 맑아진 향기였다. "정확히는 움파룸파들이 춤추는 장면을 좋아하는 거지만..." 하며 운을 떼며 당신에게로 시선을 돌린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손이 당신의 허리께로 쑥 뻗어온다. 무엇을 하려는 걸까-
놀라서 보면 별 것 하지 않는다. 그저 당신의 무릎에서 스르륵 흘러내린 옷자락을 정리하고 추려줄 뿐이다. 돌핀팬츠까지 감추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살며시 드러난 허리는 감추어주고자 부드럽게 옷매무새를 다듬어주고, 그녀는 됐다, 하고 미소지으며 당신과 시선을 마주쳤다. "옷이 너무 큰 게 흠이네. 네 옷부터 건조기에 넣어놨는데, 다 마르면 돌려줄게." 당신을 주시하는 눈에 담겨있는 열기띈 빛은 어쩌면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어하는 듯했지만, 그녀 스스로는 이것을 아직 따뜻한 목욕물의 열기가 덜 빠진 탓이라고 규정짓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서 당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삭삭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손길에 담긴 것은, 오늘 몇 번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의 것이었다. 아직 서투르지만 솔직하기 그지없는 그것은 애정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녀는 다시 당신에게로 숙였던 허리를 들어올리려 했다. 요리를 마저 하러 갈 모양이다.
낮잠을 푹 잔 모양이구나. 난 에만주의 평균 수면시간이 균일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일주일 단위로는 충분히 쉬고 있다니 걱정은 좀 내려둘게. 나는 충분히 휴식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요즘 이상하게 자꾸 눈이 일찍 떠져서 난감하지만. (지퍼 앞섶 지익 열어줌) Q.페로사 후드집업 왜잠갔어요 A. 에만 손으로 내리라고
(욕심 많은 사람이라 미안합니다 ._.) 1. 고양이고 강아지고 일단 페로사를 보면 겁에 질리는 통에.. 😂 그래도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고양이려나? 2. 보통은 못 참지만 에만이라면 OK (이런 여자... 절레절레) 3. 짜두고 찍어먹는 편이 케첩의 양을 조절하기도 편하고 감튀의 질감도 살릴 수 있으니 좋아해. 4. 페로사의 말을 들어보시죠 페로사: (자와자와)꼭 둘 중에 하나여야만 해? (둘 다 좋아함))
에만의 피부는 제법 창백했기에, 그림자 지는 부분만 창백한 분홍빛을 어리곤 했다. 그에 비하면 제법 건강한듯한 피부 때문인지, 에만의 시선은 여성에게 닿고 말았다. 다만 지퍼를 채웠으니 더 볼 수는 없겠다.
페로사는 건강한 체형이었다. 건강함을 넘어 우월한 체격을 가진 멋진 사람이다. 에만은 징그럽다 생각하기보다는, 이 사람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혹자는 콩깍지가 깊게 쓰였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객관적이고 제멋대로인 앨리스의 시선으로 봐도, 냉정하고 미의 기준이 확실한 다른 아이덴티티의 시선으로 봐도 마찬가지였다. 에만은 이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갖는 동경의 시선 때문이라 생각했다. 다음 모습은 저런 체격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 말이다. 에만은 타인에게 부러운 점을 하나하나 모아 가져보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에만은 시선을 돌린다. TV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려 했다. 유쾌하고 명랑하며, 한없이 따뜻한 세상이다. 티켓을 보며 기뻐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는 할아버지를 보던 에만은 인기척이 느껴지자 고개를 돌린다. 페로사가 돌아왔다. 아마 영화 때문인 것 같다. 좋아하는 영화였구나, 에만은 제대로 본 기억이 없는 영화다. 늘 자고 일어나서 후반부만 잠깐 보다만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시트러스 향기가 선명하다. 에만은 고개를 느릿하게 기울인다. 입을 다무는 모습이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왜 그래…?"
질문을 하기가 무섭게 손이 허리께로 뻗친다. 눈을 동그랗게 뜨다 옷을 정리해 주자 그제야 아, 하고 자신이 어떤 꼴이었는지 깨닫곤 눈을 동그랗게 뜬다. 바스스 웃어버렸다. "그렇지만 나쁘지 않은걸." 하고는 가볍게 커다란 소매를 팔랑여 본다. 사람은 뜻하지 않게 시선을 알아채곤 한다. 그렇지만 넘기는 사람이 있고, 받아채는 사람이 있다. 에만은 의도 없이 넘기듯 받아 가는 사람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그 예다. 에만은 서투르고 솔직한 애정을 받아 갔고, 머리를 손바닥에 가볍게 비비곤 말갛게 웃었다. 오늘만 이렇게 줄 거야? 묻지 않아도 눈길이 그랬다. 허리를 들어 올리려 하자 조심스럽게 따라 일어선다. 그리고 당신이 부엌을 향해 아예 몸을 돌려버릴 적, 팔을 쭉 뻗었다.
폭, 그게 정확한 단어겠다. 에만은 페로사를 뒤에서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등에 얼굴을 폭 파묻은 것이다. 멈춰 서면 파묻힌 품에서 "계속 가도 되는데.." 하고 부엌으로 같이 가기를 종용한다. 등에 고개를 파묻어 앞이 보이지 않으니 당신의 걸음에 이끌려 뒤뚱뒤뚱 느릿하게 걸을 것이 뻔하다.
아직 페로사는 에만에게 다른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에만의 이름이 에만이라는 것도 모른다. 윈터라는 가명의 꼬마- 그뿐이었다. 그녀와 당신은 오늘 하루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었으나, 서로의 알맹이만을 서로에게 보여주었을 뿐 껍질은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 당신은 운좋게 조금 엿볼 수 있었지만. 그렇지만 지금은 서로의 알맹이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 같다. 당신도, 그녀도. 당신은 아닌가? 어쩌면 그녀도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자 하면, 전부 담고 싶어하는 욕심쟁이였으니까. 오늘 하루, 서로간의 암묵적이고 달콤한 협의 하에 보내게 된 이 시간은 어쩌면 일종의 탐색전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어디까지 나눌 수 있을까. 최고의 부분을 나눌 수 있다면 최악의 부분도 나눌 수 있을까? 오늘 처음 만났을 때 약간 나누었지만, 그것을 넘어서 그것보다 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의 강건한 신체는 그녀의 최악의 부분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 하고 페로사는 웃었다. 그러고 보면 당신이 즐겨입는 후드티도 딱히 당신의 몸에 맞는 사이즈가 아닌 헐렁한 오버사이즈 핏이었으니까. 그래도 왠지 자신의 옷과 자신의 향을 뒤집어쓰고 나쁘지 않은걸, 하고 팔랑팔랑 소매를 흔드는 모습이 퍽 귀여웠기에, 페로사는 당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손이 스쳐지나갔을 적 당신의 하얄 정도로 푸른 눈과 시선이 마주친다. 순진무구하면서도 탐욕스러운 시선... 잠깐 페로사의 손이 멈췄다. 어디까지 원하는 거니. 하고 말해보려다가, 페로사는 그만뒀다. 그 대신 당신을 한 번 가볍게 포옹하고는 놓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당신에게로 숙였던 허리를 세웠다. 그리고 주방 쪽으로 발걸음을 딛는데, 무언가 뒤에서 폭 안겨온다.
페로사는 주방으로 가려다 말고 멈칫 멈추어서서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은 당신을 보며 눈을 깜빡인다. 그녀의 입가에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미소가 걸렸다. "정말이지. 어디까지 원하는 거니." 하고, 가볍게 말해본다. 가벼운 말이니 너무 진지하게 대답할 필요 없다. 페로사는 대답을 듣는 대신 당신에게로 돌아섰다. 그리고 또다시 한 번 당신의 어깨를 팔로 끌어안고는, 허벅지를 감싸안았다. 세상이 휙 뒤집히면서 몸이 번쩍 들려올라가는 감각이 이젠 좀 익숙하게 느껴질 것도 같다- 정신을 차려보면 당신은 또다시 그녀의 품에 들려안겨져 있다.
"응, 같이 가자." 계속 가도 된다는 말은 거절과 승낙을 동시에 받았다. 내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다면, 그녀는 곧 당신을 들어안은 채로 주방으로 걸어가서는 당신을 위해 마련해둔 새 의자에 당신을 앉혀줄 것이다.
"아, 맞다. 윈터. 혹시 뭐 알러지가 있거나 하는 음식은 없어? 새우라던가." 아, 새우 요리려나?
제법 사랑스럽고 단 알맹이, 그리고 각자 보이지 않는 가죽. 어쩌면 그 가죽이 서로의 역린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이 알맹이로 만족하는 것 같다. 에만은 조금 더 욕심을 내볼까 생각한다. 처음 겪어보기 때문에 더 가져보고 싶었다. 그 껍질이 아무리 흉하더라도 이 도시에서 흉하지 않은 자 어디 있는가. 천천히 알맹이를 담아보며, 최악의 부분도 나눌 수 있을지 가늠하기로 했다. 다만 에만 걸리는 것 제법 있으니 자신의 껍질은 드러낼 수 없다는 점이다. 미카엘은 죽은 사람이니까. 죽은 사람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까? 이런 사정이 있었다 해도 도시의 그림자 그 자체가 되어버린 사람을 받아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말갛게 웃어 보일 뿐이다. 꼭 이 도시에 물들기 전에 사라져버린 작은 유령처럼.
"나는 커다란 옷을 좋아하니까.."
에만은 진심으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부끄러움이 많아 다리를 드러내는 것만 제외하면 마음에 드는 차림이다. 커다란 옷은 안정감을 주고, 체격을 가리기엔 안성맞춤이다. 앨리스는 이것저것 다 입어본다지만 에만은 꼭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했다. 작은 차이점이 큰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법이기도 한다고 주장했으나, 직고하자면 사이즈에 맞는 옷도 마른 체형 때문에 품만 커다랗게 보일 뿐이었다.
에만은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옷만큼 좋은지 한 번만 짓던 말간 미소를 꽤 오래 유지한다. 오늘만 이렇게 쓰다듬고 안아주는 걸까? 나는 매일 밤이 외로울 텐데. 여인의 손이 멈춘 것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말하지 않기로 했다. 입 밖으로 내기엔 제법 수줍다. 포옹을 거절하지 않고 폭 안겼다. 그게 기폭제였다. 따뜻하고 포근해서, 마치 온기를 찾는 병아리처럼 졸졸 쫓아와 등 뒤에서 폭 안지 않고서야 배길 수 없었다.
따뜻하다. 고개를 꾹 디밀고 있다 괜히 뺨을 비벼보던 에만은 파묻고 있던 고개를 빼꼼 들어 올린다. 눈을 크게 한 번 깜빡이는 모습이 자못 순진하다. "..다 주면 고맙..." 가벼운 말에 덧붙이는 가벼운 농담을 던지려다, 세상이 뒤집힌다. 말하던 도중이기 때문에 툭 끊겨 에븝, 하고 놀라는 소리밖에 나지 않는다. 익숙해진다 해도 갑작스러운 행동은 에만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더군다나 인형을 안듯 이리도 쉽게 안아 올린다면 더욱.
나는 같이 걷고 싶었는데! 그렇지만 안겨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포근한 온기가 가장 잘 닿으니까. 에만은 얌전히 품에 안겨 주방으로 향했다. 그래도 작은 불만은 가시지 않았는지 아랫입술이 자그맣게 비죽 튀어나온 모양새였다. 아, 아까 봤던 새 의자. 자리에 앉자 무릎을 끌어당겨 안으려다, 이내 내려놓고 다소곳하게 정돈한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생기는 버릇인가 보다.
"...딱히 없어."
다행스럽게도 안 맞는 식재료는 없다. 설겅설겅한 익힌 당근만 빼면 에만에게는 팔각과 고수 같은 향이 강한 향신료도 제법 잘 맞는 편이었다. 하나 있다면 약물 정도겠다. 에만은 알아채기 어렵게 표정을 잠깐 굳혔다, 다시 무표정으로 풀어낸다. 대신 페로사를 가만히 쳐다보며 주방에서 뭘 하는지 구경하려 했다.
"다 원하면." 일순간 세상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그 한순간에도, 흔들림이 끝나고 보면 그녀가 이 크지 않은 집 안에 꾸려놓은 하루- 이제는 당신도 기꺼이 함께 푸근히 감싸드는 이 하루는 무엇 하나 흔들리지도 무너지지도 않은 채 남아있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이 곳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푸르스름한 눈으로 당신과 시선을 맞추어 내려다보며, 그녀는 입을 벙긋거려 당신에게 속삭였다. "너도 다 줘야지." 농담을 했다가, 제시를 받아버렸다. 정확히 당신이 내어주는 만큼 내어주겠노라고. 그러니 그것은 일종의 허락이나 다름이 없었다. 너는 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허락. 그러고 나서야 그녀는 당신을 의자 위에 내려놓았다.
"지겹다 싶으면 언제든 다시 TV를 보러 가도 좋아. 바로 뚝딱 나오는 건 아닐 테니까." 하면서 그녀는 당신을 의자에 앉히고 고개를 냄비 쪽으로 돌렸다. 그 덕분에 당신의 얼굴 표정이 잠깐 굳어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냄비로 가서 푹 끓인 육수에서 육수재료가 담긴 망을 건져내어 싱크대 위의 선반에 올려두고는(거기서 아마 당신은 뒤늦게야 다른 재료들 사이에서 쏙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반토막난 당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벽에 걸려있는 까만색의 앞치마를 꺼내어서는 목에 걸쳤다. 그리고 허리끈을 뒤로 돌려 묶어보려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장난스레 웃으며 당신에게로 다가와서는 기볍게 뒤로 턴해서 당신에게 등을 내보여준다. 아까 욕실에 들어갈 때 그랬던 것처럼 당신을 돌아보면서, "네가 묶어줄래?" 하고 눈웃음을 짓는 그녀. 당신의 눈 앞에 까만 끈 두 개가 그녀의 허리에 걸쳐져 있다.
품 안은 여인의 보금자리처럼 푸근하고 따뜻하다. 흔들리고 무너지지 않는다. 옛 잔재처럼 망가져있지 않다. 이 하루는 온전하며 많은 것이 들어차있고, 여인이 내어준 하루이며, 자신의 속을 채워주는 기묘한 감정이 가득한 날이었다. 긴 속눈썹을 위로 들어 올리자 바다처럼 푸르스름한 눈동자가 보인다. 그 넘실거리는 눈동자 속에 온전히 자신이 담겨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몰라 거울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았던 에만은 생경한지 여인의 눈만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도..?"
대답 대신 눈을 감는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올려 뺨을 비벼본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온정에 푹 담기며 일순 모든 것을 내어줄 뻔했다. 허락을 받긴 했지만 둘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페로사가 있는 세상은 진절머리가 날 만치 아름다웠고, 눈부셨으며, 어두컴컴한 그림자 속에 기거하던 에만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여인은 아마 다시 그림자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했다.
"으응."
고개를 돌렸기에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점이다. 에만은 지겨운 걸까, 생각해 본다. 지겨운 것은 늘 있었기 때문에, 가끔은 새로운 지겨움이 필요한 법이라 생각했다. 에만은 뒷모습을 가만히 구경한다. 그 너머에서 육수 재료가 담긴 망을 봤을 때, 저 육수도 내가 모험 속에서 확인했지 하는 뿌듯함이 샘솟다 뚝 멈춘다.
당근! 저 극악무도한 녀석이 있었다니! 익힌 당근은 에만의 숙적이다. 날당근은 먹을 수 있지만 익힌 당근은 특유의 향이 강하고 물컹한 식감이 애매했다. 익을 거면 푹 익어야 하는데, 심지는 굳세고 겉은 부들부들한 그 느낌이 싫었다. 그런 끔찍한 녀석이 맛있는 냄새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니. 에만은 당근을 모난 눈으로 노려봤다. 그것 때문에 여인이 허리의 끈을 뒤로 돌리려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에만은 인기척이 느껴지고 나서야 고개를 든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유를 모르는지 멀뚱멀뚱 쳐다보다, 장난스레 웃으며 가볍게 뒤로 턴하는 모습에 상황을 파악하고 짧게 웃었다. 가볍고도 흐린 웃음이었으나, 확실한 사실이라면 이 작은 꼬마는 오늘이 에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후로 가장 많이 웃어본 날이라는 것이다.
"응, 예쁘게 묶는 건 자신이 없지만.. 노력해 볼게.."
팔을 조심히 뻗는다. 잠깐 생각에 잠긴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라, 등에 폭 안기듯 팔을 뻗고는 끈을 쥐고, 느릿하게 떨어져 리본을 매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도 이마는 등에 툭 기댄 상태였다. 리본을 묶는 시간은 짧다면 짧았지만, 섬세하고 아주 희미하지만 온기가 묻어 나왔다. 애정이라 말하기엔 아직 수줍고도 작으며, 자각하지 못한 것 말이다.
"..다 됐어."
에만은 천천히 리본을 쥔 손을 놓는다. 손재주가 없다더니, 리본 하나는 참 예쁘게 매어뒀다. "뒤로 묶었으니 안 보여서 다행이다. 안 예쁘거든.."
"당장 달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 천천히. 하고 그녀는 입모양으로 말했다. 잘 알았다. 아직 서로에게 알아가야 할 것이 많다는 것도. 서로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도. 겨우내 차갑게 얼어붙은 손은 미지근한 물에 담궈도 따끔따끔 아리다. 그러니, 그녀는 서두르지 않는다. 당신에게 문은 열어주었으되, 당신을 그 안으로 억지로 잡아끌지는 않는다.
아주 망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망가진 것들 사이에서 온전한 것을 주워낸 것이고, 얻어오거나 산 것도 있다. 어쩌다 보니 훔치다시피 갖게 된 것도 있다. 망가진 것을 고친 것도 있다. 그런 것들이었다. 그녀의 삶 중에서, 가장 온전한 것들을 끌어모아 구성한 것 한가운데로 그녀는 당신을 기꺼이 이끌어왔다. 마치 종종 그러는 것처럼, 당신을 끌어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보내는 시간은 어떤 의미에서, 그녀의 더 크고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포옹인 셈이었다. 바깥의 걱정거리 따위는 잊고, 마치 매일 이랬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느긋하게 보내는 보통의 일상이 가득한 하루. 이 하루가 지나면 당신은 또다시 광기의 도시의 그늘 한복판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아직 지나지 않았으니 지금은 즐겨도 괜찮겠다.
"왜, 육수 재료에 뭐 들어가면 안될 거라도 있어?" 거름망을 뜨악한 배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쏘아보는 당신을 보고 페로사가 긴 속눈썹을 깜빡이며 물었다. "딱히 문제되는 건 없다더니- 걱정 말라고. 맛있을 테니까." 앞치마를 내리면서 뒤따라오는 그녀의 말소리에 웃음기가 어린다. 그리곤 당신에게 등을 들이댄다. 이마를 등에 툭 기댈 때에는, 그녀의 등근육이 이마에 와닿았다. 리본을 묶어달랬더니 머리를 기댈 줄은 몰랐는지 그녀는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뭐라 따지지는 않았다. 당신이 기대어오는 감각을, 그녀는... 그래,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서늘한 몸에 자신의 온기가 스멀스멀 옮겨붙는 그 순간을. 그녀의 몸은 밀리지 않고 당신의 머리를 받쳐주었다. 여전히 따뜻하다. 당신이 아까 썼던 것과 같은 바디샴푸 냄새와 섬유유연제 냄새가 은은하게 난다.
"안 예쁘면 어때." 하고 그녀는 웃었다. "이 매듭, 아까워서 못 풀겠는걸..." 풀어달랄 때도 당신에게 맡길 것 같다. 까만 앞치마를 한 채로, 그녀는 다시 스토브로 다가갔다. "바로 되는 건 아니니까, 지겹거나 하면 다시 거실에서 TV라도 좀 보고 있어. 넷플릭스는 확실히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프라이팬에 익숙한 솜씨로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 세 알을 던져넣고는 페퍼론치노를 부수어넣는다. 조금 볶아 기름에 향을 우려내고, 토마토 페이스트 깡통을 열어 토마토를 부은 그녀는 냉장고에서 팩에 포장되어 있는 조개며 새우들을 넣어준 다음 찬장에서 화이트와인을 꺼내 붓는다. 팬을 흔들자 후르륵, 하고 팬에 불길이 일어나는데 그녀는 이게 아주 당연한 일인지 태연한 표정이다. 잠깐 화륵 일어난 불은 급히 일어난 만큼 급히 꺼졌다. 페로사는 태연하게 에만을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아, 맞아... 식전주를 잊었네. 윈터, 혹시 괜찮으면 거실에 있는 술 진열장에서 팔리니라고 쓰인 병 하나 찾아줄 수 있어? 나 레몬이요- 하고 온몸으로 어필하고 있는 병인데."
작고, 평화로운, 어쩌면 당신에게는 낯선, 그녀의 저녁. 그녀는 이런 순간들을 당신과 만끽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서두르지 않는다. 매일 급하게 살아오던 날 주어진 첫 기회고, 제대로 된 온정을 배울 기회가 없을 때 찾아온 느긋한 자비다. 한없이 낯설고 서투르지만, 쉬이 싫증을 느낄 수 없으며, 이 도시의 광기 중 단언컨대 으뜸이라 할 수 있었다.
아예 폐허가 된 것보다는 수십 배는 나은지라, 거들떠도 보지 않던 집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긍정적으로 재고될 가능성이 트였다. 바깥은 잊어버리고, 삶의 목표도 잠시 내려놓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느껴보지 못했던 보통의 일상이다. 아니, 느껴보았나. 그래, 느껴보았다. 그때의 고통이 크고 상실감을 이기지 못해 잊었을 뿐이다. 하도 오래 된 일이라며 그때의 고통을 시체처럼 싸늘하게 식혀냈다.
감정을 상자에 쑤셔넣고 못을 박았다. 아물지 못하고 곯고 썩던 것의 못 하나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다만 이것도 순간일 뿐이겠지, 내일이 되면 다시 못이 빠져 아물어가는 자리에 못을 박아두고 가장 깊은 곳으로 숨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이 지금은 아니다.
"아아아아니..."
느릿하게 부인한다. 저 극악무도한 녀석이 있다 말했다가 꼬맹이에서 다시 애기로 격하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저 육수용 채소를, 그러니까, 당근을 쓰지는 않을 것 같으니 일단 안심하자. 당근이 쓰인다면 남몰래 밀어두면 될 것이다. 아마도. 에만은 그런 생각을 저 멀리 치워두고 이마에 등을 툭 기댄다. 따뜻하다. 뒤를 돌아보듯 머리카락이 사락거리는 소리가 나자 "..싫은 건 아니지..?" 하고 짧게 묻는다. 손가락을 꼼질대며 리본을 묶던 것도 잠시 멈췄으나, 이내 다시 움직였다. 따뜻한 온기 때문에 일부러 더 느릿느릿하는 감도 없잖아 있다. 같은 냄새. 혹 타인이 같은 냄새가 난다 느껴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불문율. 묘한 만족감과 뿌듯함. 당신에게 물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이마를 떼는 것도 못내 아쉽다.
"앞으로는 더 예쁘게 묶는 연습을 해야겠는걸.."
짤막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후의 행동을 구경한다. 넷플릭스가 있다고 쳐도 구경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재료를 가볍게 부수어 넣거나 팩에 담긴 것을 넣은 뒤, 볶는듯한 일련의 행위를 뒤로 팬에 불길이 인다. 그게 또 신기해서 쳐다보게 된다. 오픈 키친 레스토랑이나, 아르카디아의 야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을 가정집에서 볼 수 있을 줄이야. 신기한 듯 눈을 둥글게 뜨고 있다, 식전주 소리에 고개를 기울인다.
"팔리니..? 응, 가져올게.."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며 거실의 술 진열장, 하고 되뇌어 본다. 작고 평화로운 날. 잊고 싶어 잊어버리고 낯설게 변모한 그 순간이 다시금 익숙하게 다가온다. 의자에서 내려와 종종걸음으로 거실로 향했다. 술 진열장을 바라보며 레몬, 팔리니, 레몬.. 하고 두어 번 중얼거리고는 샛노란 병을 발견해 팔을 뻗는다. 다행스럽게도 섬세함은 일상에서도 어디 안 가는 것이라, 다른 술병을 치거나 하는 불상사는 없다. 색부터 상큼해 보이는 병을 잠시 쓸어본다. 그리고 다시 주방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다.
이것이 시간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의 완전한 대체가 되지도 못한다. 정확히 당신에게서 떨어져나간 그 균열을 없었던 것처럼 덮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당신을 낫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에게 새로운 안식처를 안겨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당신에게 이런 것을 쥐어주고 있는지 모를, 이 여인과 함께라면. 여기에 적응하려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당신은 내일이면 이 안식을 미루고, 다른 껍질 속에 파묻어 잊어버릴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당신은 그녀에게 아주 긴 기간을 청구했지 않은가.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언젠가는 못이 빠진 자리에 다시 못을 박는 게 고통스러운 순간이 올지도 모르지.
"그으으으래?" 당신의 느릿한 어조를 따라하며 페로사는 장난스레 웃다가, 이내 킥킥대는 소리를 내어버린다. 저것들 중에서 정확히 뭘 꺼려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그 중 하나 꺼림칙해하는 게 있다는 것을 감추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꼬맹이라느니 애기라느니, 그런 표현을 당신이 싫어했었지. 그러면 싫어하는 식재료도 딱히 없는 거지- 하고 당신에게 물어보려던 페로사는, 싫은 건 아니지? 하고 조심스레 질문해오는 에만의 목소리에 눈을 깜빡였다. 입을 열어 무언가 대답을 할까 했으나, 그것보다 이게 나은 것 같아 등 뒤로 팔을 돌리고는 등에 기대어져 있는 당신의 머리를 손으로 사락사락, 하고 가볍게 쓰다듬어준다. 충분히, 당신이 그 온기를 만끽할 수 있도록.
생각해보면 이탈리아는 프랑스만큼이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었지. 벌써부터 꽤 그럴듯하게 맛있는 냄새가 난다. 새우가 반질반질한 분홍색으로 익어가는 게 당신의 눈에도 보인다.
"응, 그거 맞아." 페로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레몬이라고 온 몸으로 주장하고 있는 병이라는 그녀의 말은 그렇게 틀리지 않았다. 뭐 레몬 모양이거나 하는 건 아니었고 레몬 그림이 크게 그려져있거나 한 것도 아니었지만, 초록색으로 쓰인 팔리니 리몬첼로라는 로고만으로 충분히 그 안에 든 내용물의 냄새를 알 수 있었다. 에만이 그녀의 벽장을 뒤적이는 사이, 그녀는 이미 다른 것들도 준비를 해둔 모양이다. 스튜는 잠깐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 뜸을 들여두고, 식전 에피타이저로 그렇게 화려한 것까진 아니었지만 타타르 소스와 연어살, 치즈와 햄이 올라간 간단한 카나페를 준비해두고, 태이블 위에 와인글라스 하나와 하이볼 글라스 하나를 꺼내서 얼음을 담아두고, 쿠페빵과 오렌지를 하나씩 꺼내서 도마 위에 올려놓은 채로 샴페인처럼 보이는 까만 병-자세히 보면 프로세코 병이다-을 따고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된 이탈리아식 저녁 정찬 코스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추고 싶어하는 듯 보이는데, 당신의 식사량에 대해 미리 경고를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당신의 식욕이 평소에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지 않던가. "이리 줘볼래?" 하고 그녀는 손을 내민다.
리몬첼로 병을 내어주면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고, 바에서는 쓴 적이 없던 지거를 꺼냈다. 유리로 된 투명한 것이었는데, 덕분에 당신은 그녀가 잔에 술을 얼마나 따르는지 볼 수 있었다. 리몬첼로 60밀리리터, 프로세코 40밀리리터, 잔의 남은 부분은 탄산수로 적당히 채우고, 오렌지 휠을 가니쉬로- 칼집을 내서 잔 모서리에 끼우는 게 아니라, 구부려서 잔 안에 통째로 밀어넣는다.
"자... 바텐더의 추천입니다. 팔리니 스프리츠." 하고 그녀는 농담을 했다. 아니, 여긴 엘리시온이 아니라 페로사의 집인데. 그녀는 와인 글라스는 당신을 위해 밀어주고, 자신이 마실 것도 하이볼 글라스에 따른 다음에 두 종류의 카나페가 담긴 접시를 당신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당신의 건너편에 마주앉았다.
에만은 제법 모난 눈을 한다. 처음 봤던 날처럼 사납지는 않지만 나름 뾰족하다. 야생의 맹수에서 집고양이의 시선으로 페로사를 빤히 쳐다보다 아랫입술을 비죽 내민다. "응..." 하는 걸 보니 아니라고 부정하려다 또 얼버무리는 것 같다. 그 뒤로는 등을 돌린 당신에게 기댔으며, 머리를 쓸어주는 손길에 눈을 잠깐 감고 기뻐했을 뿐이다. 하루지만 오늘 하루는 완벽하게 당신에게 길들여졌다. 이탈리아는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맛있는 냄새. 반질반질하게 익어가는 새우가 보이는 팬을 흘끔 바라보다, 페로사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요리하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라는 동경이 담긴 눈이었다. 당연하다. 앞서 말했듯 앨리스는 밀키트요, 에만은 사 먹는 샐러드가 끝이며 둘 다 부엌은 마굴이라는 신념을 지닌 사람이다. "맞구나." 하고 작게 웃던 에만은 페로사가 준비한 다른 것들을 찬찬히 훑어본다.
에피타이저, 빵, 코르크 마개를 따는 프로세코는 기분 좋은 딱 소리가 난다. 완벽하게 이루어진 정찬 코스는 아니더라도 구색을 맞춘 것이 보인다. 그마저도 온정이 깊게 묻어나기에, 에만은 간지러운 속이 익숙하지 못하기에. 이 따스한 광경을 보며 입술을 작게 오물거릴 뿐이다.
"나, 그렇게 많이 먹지는 못해.."
병을 건네주며 멋쩍게 고개를 숙인다. "...기껏 차려주는데.. 맥빠지게, 이제 말해서 미안." 하고는 눈을 굴린다. 그래도 나름 되는 곳까지는 먹어보겠다는 듯. 부스스 웃는다. 어쩌면 자신도 이렇게 자신의 식성까지 알려주게 될 줄은 몰랐나 보다. 하기사 식성마저 알려주는 것은 큰 약점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테니.
그 멋쩍던 상황도 사라져간다. 지거에 따르는 와인과 팔리니, 그리고 와인 글라스에 담기는 가니쉬까지. 바텐더의 추천이라는 말에 결국 누그러져 작게 웃어버린다. 아이처럼 맑고 유령처럼 희미하다. 카나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잔을 조심스레 쥐곤 페로사를 잠시 쳐다본다.
"..고마워."
평소처럼 순수하고 말갛지만 어딘가 희미하다. 어쩌면 이게 진짜 미소일지도 모르겠다. 무서운 겉껍질을 벗어내면 알맹이는 한없이 여리다. 잠깐 잔을 기울인다. "식사 예절이 맞는 지는 모르겠지만.. 건배라도 할까?"
평소처럼 순수하고 말갛지만 어딘가 희미하다. 어쩌면 이게 진짜 미소일지도 모르겠다. 무서운 겉껍질을 벗어내면 알맹이는 한없이 여리다. 잠깐 잔을 기울인다.
"식사 예절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건배라도 할까?"
만일 하게 된다면 이 작은 여우는 잔을 들고 미소 지을 것이며, 꼬리를 칠 것이다. "맛있는 요리와.. 요리사인 페로사를 위하여." 라고. 대체 이 고리타분하고 짓궂은 건배사는 어디서 보고 배운 건지.
"그래 보이더라." 페로사는 시원하게 수긍했다. 그럴 만도 하다. 당신은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지만, 그녀에게는 당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원래 모습만을 안겨주었다. 당신의 원래 모습은 소년인지 소녀인지 알 수 없는 가느다란 체구의 아이에 가까운 모습이었고, 당신이 좋아하는 오버사이즈의 옷으로도 당신의 뾰족한 어깨와 왜소한 체격을 다 가릴 수는 없었으며, 무엇보다 당신은 그녀의 품에 숱하게 자신을 던지면서 당신의 체격에 대한 데이터를 충분히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얼굴상부터 살쪘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가는 팔다리와, 앙상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선명하게 와닿는 당신의 늑골... 건강이 곧 재산이고, 세끼 빠지지 않고 충분히 챙겨먹는 것이 건강이라는 낡은 신념을 고수하고 있는 그녀에게는 당신의 그런 왜소한 체격이 안쓰럽게 다가왔을 것이다.
"미안하긴 뭘." 그러나 다행히도 낡은 신념을 가진 것치고, 그녀는 '왜소하면 많이 먹어서 찌워야지!' 같은 낡은 사고방식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식욕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는 그녀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먹지는 못한다는 당신의 말이 어색한 분위기로까지 치닫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쓸데없이 사려깊은 사람이었고, 그녀에게 있어 당신은 한없이 여린 사람이었으니까. 그녀 기준으로 2인분으로 준비한 식사이긴 했지만, 당신의 앞에 놓이는 것은 그렇게 큰 접시가 아니었다. 우연히 때려맞춘 것이지만, 당신이 평소에 먹는 샐러드의 양과 비슷한 크기의 스튜 접시가 당신의 앞에 놓였다. 그것보다 한결 큰 그녀의 접시가 반대편에 놓이고서야, 냄비받침 위에 스튜가 담긴 냄비가 내려앉았다.
"고마워하기보단 기뻐해줄 수 있어?" 그녀는 장난스레 윙크했다. 당신이 잔을 집어들고 건넨 말에는, "네가 건배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바에 방문한 동안 당신이 건배를 청한 적 없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식사예절 같은 건 나도 다 기억 못해." 그녀는 잔을 들었다. 그리고 기꺼이 당신과 건배를 나누었다. 챙, 하고 가볍게 잔이 부딪는 소리가 난다. "멋쟁이 손님과... 함께 보내는 오늘 하루를 위하여." 당신이 꼬리를 치는 데에 맞받아서, 그녀도 웃으며 건배사를 건네어왔다.
잔에 입을 대어보면, 지나치게 달콤한 리몬첼로의 풍미가 드라이한 프로세코의 풍미와 어우러져 부담스럽지 않은 맛이 되어 당신의 입 안에 감겨온다. 코끝에 걸리는 오렌지 냄새와 험께, 레몬향과 포도향을 머금은 상큼한 탄산이 당신의 입안을 씻어내는 것 같다. 오늘 저녁을 장식하기로 그녀가 선택한 잔의 맛은 그러했다.
유령처럼 희미한 그 모습이 마치 잠깐 눈을 돌리면 사라질 것 같아서, 페로사는 최대한 당신에게 자신의 흔적을 많이 남겨두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당신이 언제고 그것을 떠올리고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혹은 자신이 찾아갈 수 있도록..
수면부족에는 연속성 있는 질 좋은 수면이 필요합니다.. uu (쪽) (빗질) 진짜로 뜯어말리거나, 억지로 자러 가라거나 하고 싶지는 않지만 에만주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했으면 좋겠어. 그래야 오래 만나지. 그러다 어 이거 슬슬 위험한데 하고 보면 이미 조져져있는 게 몸이라서.. 👀 응, 오늘은 일찍 잤으면 해요. (부비적)
말은 쉽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지..😂 어째서 사람의 시간은 여가시간 24시간 일하는 시간 8시간이 아닌 걸까..🙄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드네.😔 (부빗) 나도 로로주랑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으니까. 건강한 삶을 위하여..🥺 하기사, 아.. 여기서 조금 더 일하면 위험할 것 같은데.. 하고 정신 차리면 병원에서 링겔 맞고 있지..👀 일찍 잘게요, 으음. 3시 쯤?😗
그리고 로로 이렇게 예쁘게 건배사 받아치면 반칙이야.. 반칙 우우..🥺🥺 로로주를 한참 쓰담쓰담 해줘야겠어. >;3 오늘의 상이랍니다.(쪽)
🤙 앞으로도 많이 약속해주면 좋을 텐데. 아, 나 지금 누워있으니까, 혹시 답레를 썼는데 리액션이 없다면 잠든 거라고 생각해줘.
그래서 더 나쁘게 굴 것입니다. 각오해라 흥. (그러나 쓰다듬는 손길엔 정직한 머리 무브먼트..)
(꼬-옥) 페로사를 표현할 만한 픽크루는 이전 스레 때 다 써버린 게 아쉬워... 또 뭔가를 그려봐야 되는데 그럴듯한 구도가 안 떠오르네 👀 이번의 에만은 확실한 세로동공이구나. 잘 참고해둘게. 뽀얀 모습이 어느 순간 훅 사라질 것 같아 아련하고 안타까운데, 예뻐...... (앓다죽음)
앞으로도 약속 자주 할게요🥰 나도 15분 이상 말 없으면 잠든 거니까.. 응. 미리 인사해둘게.🥰 로로주랑 이렇게 대화할 수 있어서 기뻐. 주의 반이 지나갔우니 조금만 더 힘내자. 항상 좋아하고, 오늘은 서로서로 일찍 잠들어요. 좋은 꿈 꾸길 바라..!!
우우 아직 퐉스짓 한참 남았는뎁..(쓰다다담!!)
이전 어장 정주행을 할 때마다 보배로운 픽크루를 보고 있다구 0.< 구도는 늘 어려운 법이지. 그림의 악마 뭐 그 리지 백작이 방해하는구나.(뽀담) 정직한 야옹이상이지 >;3 지하에서 한바탕 우당탕 한다길래 직접 중재하러 나갈 준비를 할 때, 저렇게 피로에 찌들어서 오늘도.. 파견.. 이런 표정을 짓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심폐소생술)
다행스럽게도 강요보다는 수긍하는 타입인 듯싶다. 어릴 적에는 그래도 남들만큼은 먹는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아니었다. 먹기 버거운 일이 생겨났다. 고의는 아니었다. 어쩌면 타의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필사적으로 살아남고자 해봤으나 되는 일은 없다. 제 몸 챙기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겨났다. 챙길 시간에 일을 해야 한다. 이젠 커다란 옷으로 체격을 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 앨리스의 생활은 고역이었다. 남들이 먹는 만큼 같이 먹어줘야 했고, 때로는 그 이상의 것을 요구했다. 잠시 자리를 비우면 모조리 게워내야 했다. 그렇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렇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우연이겠지만, 작은 크기의 스튜 접시는 에만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꼭 맞다. 사소한 일상을 억지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점이 가슴 한구석을 뭉글뭉글 채웠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에 잠시 낯간지러운 사람처럼 눈을 깜빡인다. "응... 기뻐." 희미하고 말갛게 웃어버린다. 도시의 뒤틀린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기쁨과는 궤를 달리하는 몽글함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후 앙큼한 건배사로 상황을 무마하려 들었다. 좋아하지 않는 쪽이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잔을 맞댄다는 것 자체가 등등한 위치에 있어본 적 없기에 익숙하지 않다. 에만은 잔을 맞대며 눈을 깜빡인다. 꼬리를 치면 배로 되받으니, 이것마저 새롭다. 자신이 멋지지는 않지만.
잔을 입에 가져다 대고 가볍게 한 모금 목뒤로 넘긴다. 레몬의 맛있는 부분만 모아둔 팔리니는 자칫 달기만 할지도 모르나, 풍부한 프로세코의 향이 혀를 깔끔하게 한다. 식전주로 딱이다. 혀를 지나치게 적셔 입맛을 떨구는 정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질나게 하는 정도도 아니다. 완벽한 식전주는 온통 이탈리아로 범벅 되어있어, 마찬가지로 여인을 연상케 한다. 오늘 하루는 고사하고 페로사 몬테까를로라는 여인 자체로 물들이겠다는 듯.
강요보다는 수긍하는 타입이 맞았다. 어릴 적에는 남들이 다 먹는 것도 먹지 못했고, 그래서 누군가를 위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다. 오랫동안 주린 친구에게 힘들게 구해온 먹거리를 먹였다가, 그것으로 인해 그 친구가 목숨을 잃었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아이들은 꽃에 물을 주다가 뿌리가 썩어버린 꽃이나, 귀엽다고 마구 어루만져 주다가 스트레스를 받아 죽어버린 햄스터를 보고 배우는 것이었으나, 시궁쥐처럼 도망다니는 삶에서 그걸 그렇게 아이 눈높이에 맞춰 배울 만한 기회는 많지 않았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 쉬운 것은 많지 않았다. 남들보다 비싼 값을 치르고도 별로 쓸데는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아닌 주제에 인간의 삶을 사는 법을 배워보았자 무엇하는가... 적어도 얼마 전까진 그랬다.
그런데 그것들이 마치 퍼즐처럼 차곡차곡 맞아떨어져서는, 당신과 함께하는 이 순간을 나른하고도 편안하게 채우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당신 스스로에게는 멋쟁이가 아닐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어느 날 찾아든 멋쟁이 여우였다. 어린 왕자를 찾아온 게 아니라, 화물은 다 떨어져나가고 고장난 엔진만 남은 비행기를 붙들고 뚝딱거리고 있는 조종사에게 찾아온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밀쳐내야 하는데, 멀어져야 하는데, 그만 인간으로 사는 법대로 대해버린 것이 실수였다. 한번 품속에 들어오자 밀쳐낼 수가 없었다. 어찌나 가까웠는지, 속을 읽혀버리기까지 했다.
속을 읽힌 사람 특유의 뜨끔하는 반응이 나왔다. 파르란 시선이 감춤없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사라지다니 무슨..." 하고, 뿜어버릴 뻔한 칵테일을 간신히 넘기고는 둘러댔지만 이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둘러대는 것을 그만두고, 그녀는 손을 뻗어서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직이, 눈웃음을 지으면서. "진짜지?" 하고, 약속이라도 받아내려는 듯이.
바빌론 시티에 잘 개입하지 않는 정부가 특수부대를 바빌론 시티에 파견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에만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페로사에게 연락을 취해보지만 받지 않는데, 불길함에 페로사를 찾아나선 에만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너덜너덜한 모양새로 버려진 덤프트럭 짐칸에 올라타 있는 페로사를 보게 되고... 같은 일상도 언젠가는 돌려보고 싶은(못됨)
1. 『고마워, 내 사랑』 (페로사는 당신을 바라본다. 얼굴에는, 이젠 당신과 함께할 때면 늘 걸고 있던 미소가 선명히 걸려 있다.) (그녀는 당신을 부드럽게 끌어안더니 볼부비부비를 시전했다.) (...아침에 눈을 떠 그녀를 마주칠 때마다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2. 『죽일거야』 "내 이름, 잘 들어둬... 언젠가 나한테 죽게 될 거니까." "페로사 몬테까를로. 내 이름은 페로사 몬테까를로다."
3. 『한 번 더 말해줘』 바에서, 평범한 경우) "아아, 가만- 주문이 뭐였었지? 한 번만 더 말해줄 수 있어?" 특별한 사람에게) "좀 더 가까이서 말해줄래?"
속을 읽힌 사람들은 으레 눈동자가 흔들리거나, 말을 얼버무리거나, 과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페로사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었다. 칵테일을 뿜을 뻔했다든지, 아니면 파란 눈동자가 물결치듯 흔들린다든지. 에만은 둘러대려는 듯 얼버무리는 말에 아무런 말 없이 페로사를 가만히 쳐다봤다. 단지 말간 미소와 함께 다시 식전주를 한 모금 가볍게 머금을 뿐이다. 이런 쪽에서는 눈치가 없는 듯하면서도 있는 사람이었던지라, 제법 얄미운 모양새일 수도 있겠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엔 잔을 내려놓고 가만히 고개를 디민다. 당신의 손에 온전히 모든 것을 맡기는 건, 오늘 채워진 하룻밤의 신뢰 때문이다. 잠깐 빠진 감정의 무쇠 못 때문이고, 아주 약간의 미카엘이기 때문이다.
"응. 적어도 당신의 앞에서는.. 사라지지 않을게."
뭘 믿고 이런 약속을 해내는지, 자신도 의문이 들었으나 그것은 오늘이 아닌 나중의 일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라질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마음만 가득했기에. 에만은 천천히 카나페 하나를 들어 씹는다. 연어 카나페에 먼저 손이 가는 이유는 선홍빛 색깔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기름지고 보드라운 살결이 바삭한 크래커의 식감과 함께 물렁거리며 녹아들어 간다. 타타르 소스의 맛이 혀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에만은 그게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런 카나페는 자주 먹었지만 대학 파티 때나 가끔, 많이 모이기 때문에 대용량으로 만들어 먹는 싸구려 재료가 아니었기에 한결 새로운 세계가 트인 듯싶다. 식전주로 입가심. 한 모금 한 모금 천천히 마신다 한들, 무한하지 않기에 줄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렇게 누군가와 같이 먹는 건 오랜만인 것 같아.."
작은 덧붙임이다. 기쁘네, 하고 수줍게 말하는 것도 오로지 이 순간이 기쁘기 때문이며, 작은 여우가 무시무시한 가시를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많이 늦었네. 언제 자러 갈 거야? (에만주수면시간보장위원회) '죽일거야'의 대사는 이전 스레에서 페로사의 과거사에 대해 1부 독백을 다 쓰게 되면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게 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그때 원흉도 그로스만이라는 성씨를 썼으면 어땠을까 하고 에만주에게 물어보려다 말았었지. 페로사는... 애정표현을 할 때 말보다 제스쳐로 할 때가 있어. 😊
페로사: ...운명이라고 하면 너무 유치하려나. 페로사: 원인 같은 건 찾지 말자. 지금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페로사: (쪽) (꼬옥) (쓰다듬) 페로사: ...네가 품에 안겨오는 이 순간이 좋아.
1. 『사랑해』 "유감스럽네. 그 사랑은 너 혼자 하는 것 같은데." "..나도." (꼬옥 안고 까치발을 들어 입을 맞추려 했다.)
2. 『죽일거야』 "음, 그래. 그럴 수는 있고..? 용 써봐, 내가 그 노고를 치하해줄지.. 어떻게 알겠어. 그런데.. 무섭네. 일단 패널티를 일방적으로 주도록 할게.. 손목이랑 발목 중에 골라보지 않을래..?" "..진정해.. 무사하니까, 괜찮은 걸.. 그런 녀석에게 너무 화내지 말아줘.." "당신이 손댄다면 어디라도 좋을 거야. 그렇지만 여기." (에만은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기회는 한 번 뿐이야.."
3. 『지옥으로 떨어지길』 "난 이미 지옥에 떨어져 왕이 됐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머리를 맞더니 돌았구나." "..어째서 네가.. ……아니야.. 네 말인데, 내가 따르지 않을 이유는 없어.. 그렇지만.. 나는 다시 혼자 떨어지고 싶지 않아... 나와 같이 가줘. 응..?"
이 세 가지 입니다! 열심히 해주세요! #shindanmaker #당신의_대사 https://kr.shindanmaker.com/893746
아, 내가 에만이랑 같이 요리해보는 일상 생각하고 있는 건 또 어떻게 아시고(?) 그리고 이제 주방 한켠에 다소곳이 놓여있는 의약품상자(?) 안가... 안가 안가 88 널 두고 어딜 가 (미쳐벌임) 계속 안아줄게.. 죽일거야 대사 뭐야 (사망) 내가 죽을게요 아니 같이죽자 아니 같이살자 지옥 같이가자 가보자고 으아악
로로.. 약속한 거야(?) 에만이랑 같이 지옥 #가보자고... 그렇지만 이미 연심으로 이루어진 관계 썰 나왔죠? 맛있죠?(대체) 오늘은 어... 오늘도 4시는 안 넘길 예정이야! 약속 <:3~ 우우 그로스만.. 역시 여기까지 쫓아오는구먼.. 나쁜 녀석들(대체) 제스처 표현이 가끔은 말보다 더 스윗할 때가 있으니까 0.<~
속을 읽힌 것을 감추려는 방법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운 방법이 많다. 딱 잡아떼기, 얼굴표정 유지하기, 유연하게 화제 돌리기, 윽박지르기 등등. 그러나 그녀가 당신에게 내어보인 반응은 훨씬 일상적이고, 훨씬 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었다. 무방비한데다 천진난만하기까지 했다. 이 도시의 사람같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당신이 읽은 그 마음이 이 도시의 사람이 가질 만한 마음이 아니었고, 그녀가 당신을 마음에 받아들인 방식이 이 도시의 사람의 방식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그녀와 함께 보내고 있는, 이 소박한 방- 그녀에게는 좀 작아보이는 방 안에 그녀가 정성들여 꾸며놓은 이 방도 이 도시와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는 것이지 않은가.
당신의 마음 속의 못을 빼버린 건 그 괴리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시무시한 이빨과 발톱을 갖고 있는 늑대가, 발톱도 내려놓고 이빨도 다물고는, 당신의 뺨을 핥아주며 따스한 털가죽으로 덮인 품을 내어주는, 그런 별나고 이상한 호의가 손에 들고 있는 괴리감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당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이빨이나 발톱보다도 위협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에게도, 그녀에게도.
그러나 그래도 좋았다. 이미 돌이키기엔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것을 없는 것으로 하느니 차라리 이것에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를 입더라도 떠안고 말겠다고 그녀는 이미 결심했으니까. 당신이 건넨 약속에, 페로사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면 약속하자. 네가 사라지지 않으면, 나도 사라지지 않겠다고." 솔직히 그렇게 공정한 약속은 아니다. 겨울 숲의 정령처럼 나풀거리는 당신에 비해, 그녀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만큼이나-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안정감있는 실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약만 잡는다면, 연락만 한다면 언제든지 만나볼 수 있는...
당신이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면, 그녀는 당신과 마주잡은 손을 부드럽게 잡아당길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뺨에 입맞춤을 남기겠지. 엄지 지장 대신이라는 듯이. 그리고 나서는 카나페 하나를 집어서 당신에게 내밀어올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러네."
하고 그녀는 빙긋이 웃었다.
"식후주도 원하면 줄 테니까, 마음껏 즐겨."
오늘 저녁은, 이상할 정도로 당신에게 상냥했다. 이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맞이한 저녁처럼.
비일상으로 가득한 곳에서 느껴지는 일상만큼이나 이상한 것이 있을까. 이 도시에서는 바깥의 일상이 비일상이며, 일상이 비일상이었기에 에만에게 다가오는 괴리감은 컸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다가온 괴리감이 못을 빼버리고, 큰 상처를 남긴다. 이 상처는 평생이고 낫지 않아, 이따금씩도 아니라 자주 기억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사라져버리면 앓다 죽어버리겠지.
마녀의 저주보다 끔찍한 것이며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약점이겠다. 이 거대한 늑대의 털가죽 속이 마음에 들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다. 되레 좋다. 차라리 이런 상처를 입어 다행이다. 만약에 상처조차 없었더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만나게 되었겠는가.
아마 당신과 나 둘 중 하나는 죽거나 죽이는 끝을 맞았겠지. 안타까운 일이나 아직 남아있는 비일상의 무의식은, 죽기에 나는 아직 아까운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남긴다. 킬보드를 남긴 당신도 그렇겠지만 나는 특히나,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지옥 한가운데로 밀어버린 그 사람이 살아있기에, 그리고.
"너무 일방적이야."
에만은 부스스 웃었다. 마주 새끼손가락을 걸어온다. 일방적이다! 언제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그림자에게 실재감 있는 사람이 이리 말해버리면, 일방적이지 않은가. 불공정 계약은 하지 않거나 이쪽에서 걸어오는 주의지만, 오늘은 용서해 주기로 했다. 에만은 마주 잡은 손을 당겨오자 순순히 끌려왔고, 뺨에 입을 맞추자 눈을 동그랗게 뜨다 부끄러운지 시선을 살짝 내렸다.
"정말이지.."
방심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내민 카나페를 받아먹고는 입을 천천히 오물거린다. 이것도 맛있다. 열심히 받아먹고, 씹어 삼킬 적엔 가시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됐다. 그 나이의, 어쩌면 조금 더 어릴지도 모르는 순수한 모습. 갖지 못했던 날을 보상받듯 오늘 하루는 편안하다. 식후주도 있다니, 이렇게 대접받아도 되는 걸까 싶어 카나페 하나를 집어 올리고, 마찬가지로 당신 쪽으로 내민다. 길고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아." 하며, 어쩌면 작은 장난을 사랑스러움 속으로 숨긴 그런 모습을 보였을까.
당신에게 있어 그녀는 낯선 방식으로 당신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겨버린 사람이었다. 발톱과 이빨보다 부드러운 털가죽이 당신에게 더 큰 상처를 입혔다. 그럼에도 당신은 그것을 밀쳐내지 않고 오히려 이 순간에 더 깊이 몰입했으며 이 향기를 더 깊이 흠향했다. 당신이 따로 냄새를 지우지 않는다면, 당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당신을 마주쳤을 때는 당신에게서 낯선 냄새가 난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오늘 시트러스향 피를 흘렸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삶에 파고들어 있는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바텐더와 손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오늘 당신과 그녀는 서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해버렸다. 그럼에도 아직 불분명한 것은 많다. 더군다나 당신이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비해, 그녀가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은 더욱 적을 텐데도 그녀는 당신에게 손가락을 내밀어버리고 만다. 그러니 어찌 보면 공정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방면에서 밸런스가 맞춰지고 있는 것은 그녀는 꿈에도 모르겠지만. 알았다고 한다면 지금 당신의 뺨에 지금과 같은 따스한 입맞춤을 남겨줄 수 있을까? "누가 멋대로 사람 속을 읽으래." 하는 나직한 말소리가 들릴락말락한 쪽 소리의 뒤를 따라 당신의 귀로 흘러들어온다.
페로사는 자신의 몫의 카나페를 집으려 손을 뻗다 말고, "아─" 당신이 집어준 카나페를 보고는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입을 쩍 벌리고 그것을 받아먹는다. 새빨간 입천장과 날카로운 치열들. 혓바닥을 살짝 내밀어 카나페를 받아먹으면서, 그 이빨이 당신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콕 찌른다. 날카롭다고 해도 뾰죽뾰죽한 것이지 상어 이빨마냥 면도날 수준은 아니었기에 그것은 상처까지는 내지 않고 당신의 피부에 장난 수준의 가벼운 흔적만을 남겼을 뿐이다.
카나페를 받아먹고, 페로사는 스튜를 떠서 당신의 그릇에 담아주기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 신 맛은 열에, 비린내는 와인에 날아가고 토마토의 감칠맛만을 머금어 입을 벌린 조개들과 발갛게 익은 새우들, 설겅거리지도 물컹거리지도 않게 잘 익은 야채들이 퍽 먹음직스럽다. 버섯, 감자, 양파... 다행히도 그 몹쓸 당근은 없다. 자신의 그릇에도 음식을 담은 뒤 그녀는 손을 모아 잠깐의 기도를 올린다. 누구한테 올리는 기도일까. 어쩌면 습관이 아닐까. 몇 초쯤 되는 침묵이 지난 뒤 그녀는 수저를 집으려다 말고 말했다. "입에 잘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카나페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어쩌면 오늘 저녁을, 어쩌면 오늘 이 시간을 두고 하는 말일까.
응. 아예 오렌지 필링 말고 라임을 넣어볼까 했는데, 그냥 민트만 추가해도 나쁘지 않더라구. 라임 사러가기도 귀찮고..😔 있는거 대충대충 넣고 하루에 여러잔 마실 때 귀찮으면 대충 비슷한 재료 비슷한 배합으로 셰이커 하나 돌려서 쓰까는게 홈테일이지 뭐...(이러면 안됨)
딜버터 같은 걸 자주 만들기도 하고, 향신료 같은 걸 깨작깨작 자연스럽게 사게 되더라고. 돈은 좀 많이 깨지지만..😔 음식 할 때 조금조금 넣어먹으니 후회는 없어!😊
설거지 귀찮다고.. 대충 속에서 쓰까먹어도 알코올인데 뭐.. 병 주둥이 닦고 푸어러 세척도 귀찮다고.. 어느 순간부터는 지거도 관리하기 귀찮다고 소주잔으로 계량을 하고 있는 날 발견하게 되고 ..🤦♀️ 소주잔 거의 찰랑하게 두면 그게 2온스니까 어떻게든 된다고!!(대체)
에만: (눈 동글) 에만: 아..아..?
오늘은 만우절! >;3 사실 에만이는 로로에게 할 거짓말도 있대!!
에만: 사실.. 그게.. 에만: ...내 이름은 에만이 아니라 나메(Name)야..!!!(대체)
같은 시트러스 향 피가 흐르지만 자신은 너무나도 잘 사라지는, 겨울날 녹아내리는 눈 같은 존재, 여인은 많은 비밀을 가진 존재. 조건으로만 보면 서로 대등하지만 한쪽은 그 정보를 모른다. 일방적으로 편향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리. 에만은 입을 열지 않는 것이 현명한 방법임을 알고 있다. 따스한 입맞춤을 뺨으로 만끽하고 부스스 웃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 것도 알고 있다. 다 보이는 걸 어떡해. 작게 튀어나오려는 말을 꼭 삼키곤 아이처럼 자그마한 웃음소리를 내는 것으로 상황을 일단락한다.
집어 든 카나페를 받아먹는 것을 가만히 본다. 어쩐지 그 모습이 인간보다는 짐승의 것과 비슷하다. 아마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특유의 치열 때문일 것이다. 페로사의 치열은 인간의 것과는 다른 모양새지만, 그렇다고 흉하다 생각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 개성은 중요한 요소기에, 여인도 그 개성을 가져본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이다. 왜, 박박 민 머리에 곰의 치열을 이식한 사람도, 한쪽 눈 공막을 검게 물들인 사람도, 손톱이 요란한 사람도 있지 않은가. 페로사도 한때 치기 어린 선택을 한 건 아닐까. 물론 에만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직 깊은 사정까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부드럽게 콕 찔리는 느낌이 나쁜 것도 아니었거니와, 새하얀 피부에 작은 자국만 남는 정도니 제법 신기하다. 물리면 어떤 느낌일까? 아프겠지. 어쩌면 확실한 표식이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에만은 역시 개성이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만다.
"..아, 잘 먹을게.."
스튜가 담긴 그릇을 받아든다. 자리에 내려두면 예쁜 모양새다. 잘 익은 해산물, 겉보기에도 물러터지지 않은 야채, 당근이 없다는 점에서 아주 큰 가산점이다. 무시무시한 녀석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 에만은 그럼에도 먼저 스푼을 뜨지 않는다. 타인이 먼저 먹을 때까지 먹지 않는 것은 에만이 가진 최소한의 예의거니와, 몸에 밴 습관이요, 더군다나 여인이 기도를 올리기 때문이었다. 에만은 신이 죽었다 생각하며 한 술 더 떠 본인이 죽였다 선언하는 사람이었기에, 기도라는 행위 자체가 생소했다. 침묵이 끝난 것은 여인의 첫마디 때문이었다.
"이런 건 처음인데.. 마음에 들어."
잠깐의 침묵 뒤로 답한 것은 상투적인 말이나, 이 까칠하고, 자신은 청부이니 일상을 내어줄 수 없다던 여우의 입에서 니오기엔 위화감이 없잖아 있는 것이었다. 수저를 같이 들었을 적, 에만은 여인을 흘끔 쳐다본다.
"당신은..? 평소보다 나은 것 같아..?"
음식에 대해 묻는 듯 싶으나 오늘 하루를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전히 에만은 첫술을 뜨지 않는다. 단지 순수한 의문을 담고,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일 뿐.
아마도 답레는 자고 일어나서 줄 수 있을 것 같아.. +.+ 핵심문장은 나왔는데 나머지 지문을 쓰다가 졸 것 같아. 잡담 조금 하다 스르륵 잠들 것 같은걸..
미리 인사하자면, 오늘도 특별한 밤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내가 에만주랑 있으면 행복한 만큼 에만주도 행복하면 좋겠는데... 너무 늦게까지 깨있지 말구 에만주도 금방 잠들었으면 좋겠다. (에만주수면시간보장협회) 잠들게 되면 푹 자고, 예쁜 꿈만 골라서 꾸길 바랄게. 꿈에서 페로사 나와라
조금 전에 들어와서 지금 답레 쓰는 중이야. 답레 올리면서 에만주가 아직 안 들어왔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이제야 거의 다 와가는구나.. 답레 다 쓰기 전엔 들어오겠네. 오늘 하루도 애썼어. (토닥토닥) (쓰담담) 얼른 정리하고 푹 쉬자. 피곤하면 오늘 하루는 일찍 누워보는 건 어때?
꾸욱, 하고 당신의 손가락을 여인의 이빨이 물어올 때 어쩌면 당신은 정말로 짐승의, 그것도 허기진 짐승의 아가리에 손을 밀어넣은 것만 같은 섬뜩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깡마른 손가락 위에 붙어 있는 새하얀 살을 이빨이 지그시 누를 때, 그녀의 푸른 눈동자 안쪽에서 무언가 일렁이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맹수의 그것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당신의 입에서 카나페를 받아먹은 페로사는, 비어버린 카나페 접시를 옆으로 밀어놓기 전에 잠깐 눈을 감고는 눈두덩과 미간을 꾹꾹 눌렀다. 페로사는, 속으로 마치 벼랑 끝에 멈춰선 것처럼 줄달음치는 심장을 거머쥐고 호흡을 평소처럼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그녀는 이 도시의 사람다운 고급스러운 방법을 쓰기로 한 모양이다. 부드럽게 콕 찌르는 선에서 멈출 수 있었던 게 정말로 다행이었다고 페로사는 생각했다. 아, 또다. 또 그 광기가 나를 쥐어짠다. 어찌되었건 바스스 웃음을 흘리는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는 아까의 그 심상찮은 기색을 다시 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페로사는 식탁 한켠에 놓여있는 냅킨을 뽑아 후드티의 목께에 슥슥 끼우고는 크게 한 술을 뜨다가, 당신이 건네어온 반문에 그릇에서 당신에게로 시선을 들었다.
바에서 보던 차가운 도시 사람의 모습과 달리, 어느덧 자신의 옷을 입고 수더분한 모습이 되어 일상에 부스스하게 되어버린 모습이 퍽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자신까지 진정되는 것 같아, 지금까지 혼자였기에 아무 의미 없이 삭막하게 보냈던 일상이 자신이 지금까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자신까지 축여들어오는 것 같아 페로사는 빙그레 웃었다. 마음속이 말라붙는 게 아니라,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문득 이런 나날들이 계속됐으면 했다.
"나이를 먹으니 아침밥이나 쉬는 날의 식사는 혼자 하는 일이 많아서 말이지, 휴일에 누군가 같이 밥을 먹어준다는 것 자체가 평소보다 나은 거야."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이 그것마저 덮어버리고 그녀의 입을 멋대로 움직이게 했다. "그런데 왜일까... 그게 너니까, 좀더 특별한 기분이 드는데." 그 특별한 기분을 뭐라고 딱 꼬집어말할 수가 없었다. "나한테는 익숙한 하루인데, 오늘 하루가 묘하게 낯설어. 그런데 그게 싫지가 않네." 그래서 좀 더 겪어보고 싶었다.
"바보같지." 하고 씨익 웃으며 그녀는 수저를 입안에 쑥 밀어넣고는 우물거리며, 옆에 가져다놓은 빵그릇에서 잘게 잘라놓은 쿠페빵을 집어들었다. "생각해보면 이 도사에서 입에 올리기에는, 엄청 사치스러운 일이지만."
>어쩌면 그 침울의 원인중 하나가 나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 에만주가 뭐 때문에 그런 걱정 하는지 알겠다. 괜찮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꼭끄랑) (쓰담담) 에만주가 갑자기 날 버리거나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으니 안심해도 좋아. 다만 언젠가 내가 별로 소중하지 않게 되면 꼭 말해줘.
캐오분리가... 나름대로 잘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짹짹이가 내 고정관념을 깨부쉈지 무서운 사람들 많더라.. (끌어안은 채로 엄살부리기)
에만주랑 함께 보내는 새벽 싫어하지 않아 ㅋㅋㅋㅋㅋㅋ (페로사주 사전: '싫어하지 않아' 페로사주 혹은 페로사가 쓰는 말로, '좋아'와 동의어이다.)
머리 한구석에서 붉은 등이 켜진다. 날선 치열이 손가락을 지그시 누르기 전, 그저 손을 내밀었을 그 순간부터 천천히 신호를 보내던 붉은 등은 손가락이 살갗에 뾰족하게 닿는 순간 등골에 소름을 끼치게끔 하며 머리를 온통 새빨갛게 물들였다. 현대의 인간들은 짐승을 우리 밖에서 마주하지 않는 삶을 누리며 살지만, 위험한 짐승을 마주했을 때의 본능은 수렵생활을 하던 인간의 삶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마련이다. 에만은 그 직감을 오늘, 태어난 이래 처음 겪어보았다. 푸른 눈동자에 일렁이는 것을 봤기 때문이고, 닿던 순간의 감촉이 인간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에만은 도망치는 것 대신 웃는 것을 택했다. 자연에 던져진다면 목이 물려 죽었을 테지만 이곳은 문명의 한가운데이며, 페로사의 행동으로 미루어보되 아직 목을 물려 죽기엔 이른 감이 있어 보였다. 고급스러운 인간의 겉가죽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기우였을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면 기우겠다. 자신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니 오늘도 잘못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곧 비가 오니까 슬슬 머리가 헛것을 준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저번에도 기껏 기른 머리카락이 뱀으로 변해 목을 죄려 들었다 생각했기에 악을 지르며 가위로 숭덩 자르지 않았던가. 샤워 도중 보드라운 거품이 쇠못이 되어 온몸을 긁고 피를 냈다 생각해 있지도 않던 고통에 짐승처럼 울며 빌지 않았던가. 세상이 온통 녹색과 난색으로 이루어져 걷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떠도는 먼지가 만들어내는 음을 보고 색을 듣지 않았던가. 각설탕은 제법 맛있었다. 그러니까, 단순한 기우니까, 여인의 개성이니까, 여인이 그럴 사람이 아닐 테니까.
그러니까, 더럭 겁이 났다. 사실 나만 이 온기를 받아들이고, 이 소소한, 도시의 기준으로는 비일상인 것이 좋다 생각하는 건 아닐까? 사실 다 환상이 아닐까? 아이처럼 순수하게 묻고 동그란 눈동자로 여인을 바라본다. 불안한 기색은 없다. 숨기는 건 익숙하다.
여인이 빙그레 웃었다. 환각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교하다. 이야기를 듣던 에만이 여인을 멍하니 쳐다본다. 동그란 눈동자가 크게 깜빡, 감겼다 뜨인다. 현실이구나. 환각은 에만이 절대 바라지 않을 말을 하고, 아무런 일도 없다는 양 웃어넘기며 식사를 종용했을 테니까. 그렇게 천천히 끌어내릴 테니까. 그렇지만 여인은 한 마디를 더 덧붙여 쐐기를 박았다.
"..아니야, 나도, 낯설어. 특별하고.."
에만은 자신의 혀가 움직이는지도 모르고 더듬더듬 단어를 뱉었다. 도시에서 올리기엔 사치스럽고도 이상한 것이지만, 낯설고도 익숙한 것이지만. 적어도 가짜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린 다 바보인걸."
결국 또 해사히 웃어버렸다. 스튜를 작게 한술 떠 입에 넣어 무마한다. 고작 한술이지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맛을 느끼기도 힘들다. 조금만 느슨해져도 고장 난 눈물샘이 눈물을 뚝뚝 흘리게끔 만들 것만 같았다. 스튜를 삼키고 "맛있어." 하고 느끼지도 못한 감상평을 남긴 뒤에, 속을 정리했다. 환상이 아니니 지금을 최대한 즐겨. 그렇게 몇 번을 되뇌고 나서야 맛이 좀 돌아온다. 아, 이거 정말 맛있구나. 에만은 다시금 한술 뜬다. 정말 실재하는구나.
"마음껏 사치를 부려도 될 거야.. 이 도시에서 사치는 환영이잖아. 그러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정말. 뭐든 쥐여주고 싶다. 사치를 부리게끔 하고싶다. "그럴 수 없다면.. 내가 부릴게.." 짐승에 매료된 광인의 순수하고도,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광기였다.
어쩌면 페로사가 자기 자신이 마음속에 걸어두었던 목줄을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의 손가락을 애써 이빨 사이에서 놓아주었을 때 당신의 눈가에 어린 기색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순간 자신이 이런 기색을 희미하게나마 내비칠 때 사람들이 흔히들 느끼곤 하는 두려움이나 꺼림칙한 기색이 아니라, 현실에서 멀어지는 사람 특유의 흐릿해지는 기색이 당신의 웃음에 살며시 묻어나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착각일까. 그러나 그게 착각이라도, 역시 당신에게서 약속을 받아냈음에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는다.
페로사는 두 번째 숟가락을 자신의 입에 밀어넣고는, 마음껏 사치를 부려도 될 거야, 하고 확언을 해주는 당신의 말에 대답보다 먼저 식탁 옆에 있는 다른 냅킨 한 장을 꺼내어들어 당신의 입가에 묻은 스튜를 톡톡 찍어내어 닦아주었다. 그리곤 냅킨의 깨끗한 부분으로 당신의 뺨을 한 번 매만져보았다. n분의 1로 존재하는 것만 같은 당신이, 어느 순간 훅 사라져버릴 환각이 아닐까 확인해보는 것처럼. 그리고 얼굴에 조금, 안도한 기색을 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마음껏 사치를 부려도 된다며,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래... 그러면, 마음껏 부려보자구." 냅킨을 옆에 내려두며, 페로사는 대답했다. "그러니 너도 마음껏 네 원하는 대로 해. 내게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고."
식사를 하고, 원한다면 디저트도 먹고, 식후주도 마시고... 소파에 나란히 붙어누워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다가, 원껏 끌어안기도 하며 밤을 보내고, 마음껏, 당신에게 없었던, 자신이 바랐던 하루를 누려보자고, 바텐더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튜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빠른 속도로 줄어갔다. "디저트나 식후주가 필요하면 말하고."
응 맞아.. 나는 전부 다 본 적은 없지만 그 OST는 좋아하거든. ( ) 그래도 에만이나 에만주가 별로라고 하면 디즈니로 틀어야지 어쩌겠어 (사악) 잘 잤어? (쓰담담) 아직도 컨디션이 안 좋다니... 곧 나아지길 바랄게. 아무튼 답레는 느긋하게 줘, 느긋하게. (쪽)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데도 맛이 난다 거짓말을 했다. 감상평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삼키고 한참이 지나도록 느껴지지 않던 맛이 입안에 가득하게 퍼진 것은, 입가에 닿는 냅킨의 촉감 때문이었다. 자신의 환각 때문에 일방적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니다. 페로사는 자신과 같은 생각과 뜻을 공유하는 사람이었다. 일 때문에 공통점을 가진 것이 아닌, 이 도시에서 사치나 다름없는 온정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신했다.
그 사실이 얼마나 낯설고도 묵직하게 다가오는지. 내가 당신에 대해 모르는 만큼 당신도 이게 얼마큼의 감정인지는 모르겠지.
뺨을 매만지자 에만은 눈만 들어 올려 여인을 쳐다본다.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는 일은 쉽다. 나중에 이 감정이, 불시에 몰아치겠지만 그때 감당하면 되니까. 여인이 왜 이러는지 시선이 대신 질문을 건네오나, 사치라는 답변엔 부스스 웃고는 다시 한 숟갈 떴다. 기껏 닦은 것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게끔 이번엔 제법 조심스러운 태도다.
"나는.. 이미 많은 사치를 부리고 있는데. 음.. 더 욕심부려도 된다고 당신이 말한 거야."
내 마음대로 한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테니까, 이쪽에서 완급을 조절하는 수밖에 없겠다. 욕심부려도 된다 했으니 주변을 청소하고 싶다는 가장 먼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더 편하게, 더 깊게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당신이 싫어하겠지. 생각을 밖으로 뱉는 대신 잘 익은 새우와 야채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삼켰다. 그 이후로는 제법 일상적인 일이다. 삼키고, 잠깐 여인을 보며 무슨 말을 하려는지 고민하다 다시금 먹고, 삼키고.. 다시 여인을 보고..
"..아, 디저트.. 내 배가 버틸 수 있을까."
그렇지만 디저트라는 단어를 뱉자마자 이 작은 유령은 금세 실존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식후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디저트라 하지 않던가. 빠르게 줄어가는 스튜는 어느덧 반을 넘게 먹어치운 상태였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뒤로, 에만은 고민하던 말을 뱉기로 했다.
"..그리고.. 나중에, 내 집에 초대해도 될까."
그때는 앨리스의 물건을 치워야겠다. 용왕에게 오지 말라고도 해야겠다. 아마 한참이고 고민하던 것은 오늘 일에 대한 답례였던 듯싶다.
비가 오면 사람이 죽는다. 그 사실이 괴로웠다. 그래서 에만은 죽기 전에 먼저 보내주기로 했다. 빗소리가 시끄럽기 때문이다. 그런 소리를 만든 건 사람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비가 그칠 때까지 보내주기로 했다. 비가 오면 반드시 죽을 사람들이 고작 몇 시간 덜 살 뿐이다.
에만은 자신이 선행을 하고 있다는 양, 자신이 만든 붉은 웅덩이 사이에서 천사처럼 말갛게 웃었다. 걱정 마. 무서웠지, 내가 널 구원하러 왔어. 사랑스러운 어조는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어, 방금 전까지 죽어간 지하의 사람들이 있음을 목격했어도, 천사가 그 상황을 보다못해 나선 것은 아닐까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켜 혼동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런데, 너무 시끄러워.
에만은 침묵 속에서 선고했다. 오로지 비 내리는 소리 뿐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도록, 인과율의 역전을 인간에게 강요하듯 에만이 속삭였다. 좀 조용히 해봐. 피가 튀고 이제 아무도 없는데도, 계속 시끄러운 것 같다. 비는 욕심쟁이다! 얼마나 더 바쳐야 조용해지는 걸까? 비가 오면 사람이 죽는다. 그 사실이 괴로워서.. 소리가 난다. 시끄럽다. 비가 오면 사람이 죽는다. 시끄럽다. 비가 온다.
당신이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은 잘 모르겠다. 자신이 당신에게 느끼는 감정도 잘 모르고 있었기에. 이것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감정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것 같아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실재감있게 만들고, 그녀의 온정에 사실감을 부여했다. 마찬가지로 헤매이고, 상처입고, 유랑한 끝에, 자신의 상처를 핥아주는 이를 만나 함께 그러안고 따스한 온기를 공유하고 있는 당신과 마찬가지의 방랑자라는 것을 낯설고도 묵직하게 증거했다. 페로사는 냅킨을 옆에 내려두었다. 다시 닦아줄 수 있도록. 사실, 닦는다기보단... 그것을 핑계로 당신이 정말로 거기 있는지 만져보려던 욕심에 가까웠지만.
"...그래, 욕심." 그녀는 빙긋이 웃었다. 당신을 바라보는 눈길에서 애착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마음껏 부려줘." 그녀는 눈을 감았다. 당신이 애착을 부릴수록, 자신이 비로소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까. 정말이지 이상한 만남이야, 하고 페로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부릴 수 있는 만큼 다 부려줘. 그게 내가 네 옆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니까. 그러나 그것을 비로소 제대로 만끽하려면, 비로소 제대로 살아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삶에 묶여있는 족쇄를 끊어내야 했다. 이걸 어떻게 끊어낸단 말인가. 범죄도 성격도 능력도 그 이유가 아니요 태생을 그 이유로 정부에게 쫓기는 자신과, 정부를 협박 수단으로 삼아 자신에게 족쇄를 채워둔 기업. 지금까지는 순응하며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지만, 당신과 함께 보내는 지금 이 순간에서 페로사는 비로소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그 이후로는 일상적인 일이다. 마저 스프를 먹고, 잠깐 에만과 눈을 마주치면 빙그레 웃어주고, 다시 수프를 먹고... 그리고 당신이 건네온 말에 대답하고.
"아이스크림 한 스쿱 정도면 괜찮으려나? 딸기 하나 얹어서." 좋아하거든, 딸기, 하는 말로 침묵을 채워나가던 그녀는 그 뒤에 당신이 덧붙인 말에 눈을 치떴다. 날카롭게 찢어져 긴 속눈썹과 우묵 패인 눈두덩이 맹수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눈이었지만, 놀라서 눈을 치뜨자 왠지 소녀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그녀의 발밑에서 스멀스멀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집이라면─" 아까 그 폐허는 아니겠지, 거기엔 자주 머무른다고 했으니까. 그녀는 치떴던 눈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며 빙긋이 웃었다. "좋네, 그거. 언젠가 여유가 되면 너희 집에도 데려가줘. 그리고, 스튜는 정 배부르면 다 먹지 않아도 좋아." 그녀의 스튜 그릇도 거의 다 비어가고 있긴 했다.
우우, 나도 로로주 아끼는데..🥺 사랑스럽고 요망하기까지 하지! 포근하고 든든하고(2차 예찬중) 로로는 에만에게 있어 마찬가지의 낙원이자 든든한.. 성 같은 느낌일까. 왜, 공주가 있는 탑은 드래곤이 썩 꺼져라~ 하고 불을 뿜어 이방인을 태우잖아. 원래는 공주를 납치한 악역이나 다름없지만, 비틀어서 생각하면 공주를 시답잖은 것에서 지키는 존재니까.
뒤틀린 동화다운 뒤틀린 해석 좋아. 빨간망토는 늑대랑 같이 사는 거야(?) 용이 공주님을 납치한 이유가 뭐겠어(??) 암흑가의 정점과 그 오른팔인데 충성이 아니라 연정으로 맺어진.. 정장 입고 한창때 시절 하던 것처럼 옆머리 박박 밀어버리고 마스크 가면 딱 쓰고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보냈다. 하면서 범죄조직 보스의 사무실이나 한창 분쟁이 벌어지는 장소에 등장하는..(망상으로 뇌절시작)
상처를 핥아주는 당신은 마찬가지의 상처로 피투성이다. 다만 차이점은 목줄의 유무다. 본인이 바깥에 의해 상처받았으나 자유롭다면, 당신은 그 상처는 물론이요 목줄을 쥔 존재까지 있다. 채 아물지도 못하는 상처를 가진 당신이, 목을 죄는 갑갑한 사슬을 풀어주길 바란다면 직접 나서겠지만, 아직은 지켜볼 뿐이다. 나선다 해도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쓰다듬고 품었다.
참 우스운 일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누군가의 의사는 묻지 않고 쉽게 주무르고 쓰다 질려버리면 버리는 지하의 참모이자 배후지 않던가. 상처 입은 짐승이 있다면 그 상처를 약점 삼아 강제로 길들이고, 새 상처를 새기고, 휘두르며, 그러다 죽기라도 하면 애도하지도 않고 과자 봉지를 버리듯 쓰레기통에 쉽게 버리던 존재였을 텐데, 지금은 여인 하나에 이렇게까지 세심해지고야 말았다.
깊이 파고들지 않고, 상처의 깊이를 보며 자중하고, 때로는 인내한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지도 모를 일 아니던가. 욕심을 부린다 쳐도 이 작게 그어둔 자신만의 선이 그나마의 목줄과 브레이크를 거는 일등공신일 테다.
"응? 좋아.. 좋아해."
딸기를 좋아하는구나. 냉장고 탐험을 했을 때는 설마 했는데, 이제 보니 제법 귀여운 입맛이다. 아이스크림에 딸기, 좋은 조합이다. 행복한 디저트가 될 것이다. 차치하고, 에만은 답례를 표하듯 제안했다. 앞서 그어둔 작은 선을 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던가. 고작 식사 중의 짧은 순간이었으나, 그마저도 중한 것이었다.
여인이 놀라는 것은 어둠 속이나 빛무리에서 낯선 것을 발견한 맹수와도 같았으나, 치뜨는 그 모습이 수줍고도 사랑스러운 그 나이대의 여성 같은 것이다.
"오늘 그곳은 아니야."
폐허는 아니라며 작게 덧붙인다. 여인의 짧은 반응 때문이다. 다만 분위기는 폐허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으나, 나중 일이다. 에만은 옅게 마주 웃었다. "나중에, 꼭."
그리고 당신의 배려에, 에만은 잠시 고민하다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래도 많은 양을 남기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두세 스푼을 남겼으니, 이 정도면 네 생각보다는 많이 먹은 것이다. 에만이 수줍게 웃았다.
이 짐승 혼자만의 힘으로는 자신의 속박을 벗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 주인이 이 짐승에게 채워놓은 것은 견고한 목줄뿐만이 아니라, 이 짐승이 쉽사리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담장 또한 있었다. 그리고 그 담장 밖에는 이 짐승을 잡아가기 위해 혈안이 된 사냥꾼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마당에 묶어놓은 짐승이 통제불능이 되어 주인을 물어뜯으면, 주인은 대문짝을 열어 사냥꾼들을 담장 안으로 불러들이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녀 혼자 내버려두면 그녀가 스스로 목줄을 끊고 당신에게로 다가오거나 할 수 없다. 이 작은 반역의 주도권을 그녀에게 계속 남겨두되, 당신이 그녀를 도와주어아먄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나레이터의 말이 '당신'에게 닿을 리 없는데, 아직 그녀에 대해 어렴풋이 윤곽만 잡아 알 뿐인 '당신'에게 들리지 않을 말을 하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는, 어쩌면 조만간에 그녀에 대해 소상히 알게 될 날이 가깝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수많은 방랑자들의 피난처를 내버려두고 그녀는 이 광기의 도시로 흘러들어오게 되었는가?
물론, 이 여성을 어떻게 대할지, 무엇을 해줄지, 그 결정권은 오롯이 '당신'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당신은 이 여성을 당신이 평소에 다른 이들에게 대하듯 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걸까. 의뢰인과 수뢰인으로서가 아니라, 손님과 바텐더로서 만난 시점에서부터 어긋나버린 걸까. 아니면 그때 그 날,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몸을 날려서 당신의 머리 혹은 흉곽을 부수어버렸을 7.62mm 탄환을 등으로 받아내는 그 순간부터 잘못되어 버린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느냐를 따지기에는 이미 어긋나버린 게 너무 많다.
그럼에도, 어긋난 길을 거듭해 도착한 여기 이곳에, 모든 것을 걸어보고 싶다*고 한다면...
적어도, 그녀는 당신이 어느 정도의 마음을 그녀에게 주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더라도, 당신이 누구에게나 쉽게 내어주지 않는 것을 내어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당신에게 그러고 있는 것처럼. "입맛에 맞았다니 다행이네." 그녀는 싱긋 웃으며 식기를 정리했다. 그러다가 당신에게 되묻는다.
"팝콘은 필요없어?"
아, 그러고 보니 그녀와 넷플릭스를 보기로 했었지. 그 동사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서로간에 사소한 오해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아직 그 오해를 만회하기에는 늦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오해가 아니게 만들거나.
(안아준 로로주에게 부빗부빗)(갸르릉) •0• 그게 무슨 말이람 로로주 매일 빛이 나는 답레를 주는데에.. 열 내리면 쓸게요, 약소옥..👀(그래도 마지막 문장은 써버린 에만주)
팝콘! 천천히 먹다보면 괜찮지 않을까. 안 괜찮을까. 넷플릭스를 본다면 뭘 볼까? 에밀리, 파리에 가다? 너무 식상한가? 브리저튼? 음, 이건 같이 보기엔 내용이 좀 그런가? 너의 모든 것? 이건 너무 무서운데. 이 작은 여우는 동글동글하게 페로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상 흑심 일절 없고 순수하게 오늘은 뭘 볼까 싶은 눈동자로.
👀👀👀 좋아해주니까 좋아~(쪽) 사실 로로라는 애칭은 앨리스가 지어줄 예정이야. 페'로'사 몬테까를'로'니까 로로래.😗
그랬었구만... (쓰담담) 해열제를 먹는 것도 도움이 될 텐데 해열제는 집에 없으려나..? 정말 이중고네. (쓰담담) 에만주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줄게. 가보자고... 아참, 앞으론 스포를 발견해도 관련된 대답도 스포로 해줘 >.0 혹시 누군가가 원치 않은 목격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이렇게라도 하는 걸로...
목떡 찾기, 어렵지 응응.. (쓰담담) 찾다 못해 보컬로이드 유저분께 커미션을 넣었었던가. 그 목소리 아직 기억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3 해열제... 없더라구.. 왜 상비약은 다 챙겼다 생각했는데 해열제가..😔 로로주 피곤하면 일찍 자도 좋아. 앗 아앗. 답레에도 스포 처리를 해야할까. 검열도 좋지만, 응응..🤔 원치 않는 목격은 바라지 않아. 그렇지만 가끔 습관적으로 린넨을 쓸지도 모른다는 점 양해 부탁해..😂 참치틀딱이라 그래(아무말) ;0;~ 그랬었지.. 생각해보면 그것도 누군가의 자캐라서, 아무렇게나 써줘도 된다고는 하셨지만 염치가 없는 것 같아 금세 내렸지만..<:3 기억해줘서 고마워..(쪽)
싫어. 에만주가 자러 갈 때까지 같이 있어줄 거야. (쓰담담) 핫하! 에만주수면시간보장위원회다! 제때 잠들지 않는다면 페로사주의 잠도 없을 테니 신중히 생각하시지! 하필이면 해열제가 없다니. 그것도 나아지게 되면 챙겨두자... 이마는 잘 식히고 있지? 열이 날 때 해열제가 없다면 이마를 식히는 게 가장 유효해.
에만의 목소리를 찾아보려면 우타이테 계열로 찾아보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 마후마후라던ㄱ(쪽당함) 아유, 귀여워... 에만도 좋아하고 에만주도 좋아해. (쓰담담) (쪽)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는 모르겠다. 첫 만남? 술김에 불어버린 자신의 비참함? 허리를 안았을 때? 지하에서 만나 피비린내를 익숙하게 받을 때? 어쩌면 그 이전? 기억하지 못하는 이전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꼬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꼬인 만큼의 대가는 톡톡히 받아내고 있다. 어긋난 만큼 받아내면 된다.
아무리 여인에게 한없이 무른 사람이 된다 해도 영혼 자체에 새겨진 수지 타산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지금도 충분히 쉽게 내어줄 수 없는 것을 내어주었고, 받고 있지만 더 많은 대가를 받아내고 말 것이다. 에만은 욕심이 제법 많은 존재였다.
"아, 도울게.. 맛있었으니까..."
에만은 식기를 정리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돕는다. 어느 정도 빈 접시를 옮기는 것은 물론이요, 수저를 싱크대에 내려놓는 것도 도왔다. 식탁을 닦기까지 하는 것은 제법 동양의 것과 비슷한 예의범절이다. 필히 용왕 탓이다. 손님이라고 해도 도울 건 도와야 한다며, 그게 예의라고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정도로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당연히 앨리스는 자기 얼굴이 예의 그 자체라 괜찮으니 엿이나 먹으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에만도 어차피 난 남의 집에 안 갈 건데? 라고 항의했으나 앨리스가 용왕의 그러니까 네가 친구가 없지.라는 말에 간단히 논파 당하고 말았다. 에만은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지하에서도 더럽게로 소문난 인성을 가진 용왕에게 친구 얘기를 두 번 들었다간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개박살이 났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탓인지 에만은 눈치를 보며 돕는 것이 아닌, 이 행동이 마냥 자연스럽게 자신이 해야 하는 일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일부러 한 행동은 아니었으나 우연히 일상적이고 가장 소소한 순간까지 같이 행하고 말았다.
"팝콘?"
팝콘! 지금은 배가 부르지만, 천천히 먹다보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 안 괜찮을까. 에만은 제법 진지한 고민을 하듯 눈을 감았다. 고민은 짧지 않았다. "당신이 바란다면." 하고 책임의 화살표를 돌리기로 한 것이다.
그것보다, 넷플릭스를 본다면 뭘 볼까? 에밀리, 파리에 가다? 너무 식상한가? 브리저튼? 음, 이건 같이 보기엔 내용이 좀 그런가? 너의 모든 것? 이건 너무 무서운데. 무서운 거, 잘 볼까? 아니면 잔인한 건? 선정적인 건 조금 그렇고.. 작은 여우는 동글동글하게 페로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상 흑심 일절 없고 순수하게 오늘은 뭘 볼까 싶은 눈동자로.
👀 생물학적 한계는 있지만 기타 다른 질병에는 쉽게 안 걸리니까(심지어 메로나도 한번을 안걸렸다구) 에만주도 너무 걱정 안했음 좋겠어uu...! (쫍) (쓰담담) 천재.. 라기보단 페로사 목떡찾다가 딱 저 무비가 보였고... 순간 머릿속으로 스토리라인 하나가 쫙 지나갔다... (원래 없었던 페로사의 과거사 탄생비화)
이것을 거래라고 친다면, 확실히 이것은 공정한 거래였다. 당신은 당신이 가장 감추어놓고 있던 것들을 페로사에게 거리낌없이 내어놓고 있었고, 그녀는 당신에게 부족했던 것들로 당신을 끌어안아주고 있었다. 거래라기에는 너무 이상한 논리가, 아니 어쩌면 논리로도 설명이 안 될 무언가가 이 밤을 채워나가고 있긴 했지만. 이것이 거래인지도 모르고 그녀는 조금씩조금씩 당신에게 이 밤을 나누어주고 있었고, 당신에게 나누어준 밤의 빈자리에 생소한 탐욕이 자라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손님한테 그런 걸 시킬 순 없는데...!" 하고 페로사가 황급히 달려들어 당신의 손에 들린 그릇을 받아들었으나, 싱크대에 담긴 식기들을 한번 물로 씻어내다가 당신이 수저를 거두는 것과 식탁을 닦는 것은 막지 못하고 빼앗기고 말았다. "이래서야 원." 하고 그녀는 멋적게 머리를 긁다가, 뭔가 이상한 생각이라도 한 건가 시선을 피하며 뺨을 붉혔다. 아니, 딱히 이상한 생각은 아니긴 했는데, 너무 탐욕스러운 욕심이긴 했다.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을 정도의 관계가 되면 좋겠다니, 그건 너무 큰 욕심이잖아. 매월 보름달이 뜰 때마다 지하실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리는 동거인을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런지... 아,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자, 하고 중얼거리며 그녀는 생각의 타래를 어렵사리 끊어내기로 했다.
어쨌건, 이로써 당신은 용왕의 그러니까 네가 친구가 없지- 하는 말에 반박이 가능하고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성까지 지킬 수 있는 명제를 하나 얻게 됐다. 적어도 오늘 밤을 같이 보낸 지금, 적어도 그녀는 당신을 기꺼이 친구라고 불러줄 수 있을 테니까. 긴 듯 짧은 요상한 오늘 하루 동안 당신과 그녀는 서로의 많은 영역을 공유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면 한 봉만 튀기자고. 버터 앤 솔트로 괜찮지?" 하면서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어 인스턴트 팝콘 한 봉지와 딸기 한 팩, 시럽을 꺼냈다. 식후주까지 생각하면 그걸 먹을 시간이 충분하려나- 아니, 오늘 밤은 충분히 기니까 괜찮겠지. 하면서 페로사는 에만을 돌아보며 뭔가 물어보려고 했다. 식후주를 어떤 것으로 내면 좋을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네 그 무슨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동글리며 이쪽을 바라보는 새하얗게 보이리만치 푸르른 눈동자를 보고, 페로사는 잠깐 입을 닫았다. 재밌는 거 보는 거야? 하는 천진난만한 반문에 페로사는 눈을 깜빡이다 뭐가 그리 웃긴지 키들키들 웃었다. 그녀는 당신을 떠보듯 질문을 던졌다. "너- 넷플릭스 보면서 있자는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지." 그리곤 식탁 위에 내려놓은 것들을 두고, 당신에게로 저벅저벅 다가와서는- 당신에게로 허리를 숙였다. 잠깐만, 이라고 뭐라 할 틈도 없이 20센티미터를 넘는 키 차이가 너무도 쉽게 좁혀졌고, 그녀의 길다란 속눈썹 사이 푸르른 홍채의 주름이 보일 정도로 그녀가 가까워져왔다. 그것도 이내 속눈썹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다.
정말 느닷없는 키스였다. 오늘 얼마나 재밌는 걸 보냐는 것에 대한 대답치고는 정말로 이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탐욕스럽게 당신의 숨을 빼앗고 자신의 숨을 당신에게 채워넣으며 서로의 호흡을 섞어갔다. 그녀의 두꺼운 입술이 당신의 입술을 힘있게 짓눌러왔다. 당신의 입안에서 다시 식전주로 마셨던 프로세코 향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어떤 짐승도 이런 방식으로 마킹을 하지 않지만, 그 입맞춤을 무언가에 빗대고자 하자면 짐승의 마킹이라고 해야 가장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에우우~~~👀👀👀 파문기사 로로..ㅋㅋㅋㅋㅋ 맞다 뱀파이어물 로로도 있었지... 그 로로도 정말 좋아하는 걸 0.< 에만이의 모습은 별거 없는데에에에..🤔 사실 하이틴 말이야, 그때 픽크루가 로로는 단발이고 에만이는 포니테일이었잖아? 그거 노린거였어. 그때는 에만이가 장발이지롱😂
햄식이가..? 우리 햄식이가 여기서 나온다고..? 결혼해요...(진짜 중증)(?) 에만이는 반전해도 에만이라서..🤦♀️🤦♀️🤦♀️🤦♀️
아무튼 남자 버전 페로사라면.. 이름은 빌라르일 테고, 더 둔감하고 무던해서 얼레벌레 그냥 친한 동생 하나 생긴 느낌으로 와하하 웃으면서 수더분하게 대해주다가 지금 딱 이 시점쯤에 요망한 에만의 작업(?)에 단단히 빠져서 어어? 어어어? 하다가 이게 BL인지 NL인지 분간안되는 괴연애에 풍덩 빠져버리게 되지 않았을까 싶고(뇌절스위치 ON)
그렇긴 하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른 거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시선으로 보일 수 있는 거잖아. spo를 걸어두는 것만으로도 의도치 않은 노출 같은 걸 상당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나름대로 갈등을 최소화하고 상판 참치들의 상판 라이프와 에만주의 상판 라이프, 우리 이야기를 위해서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나 혼자 낸 자구책이니 에만주는 에만주가 쓰고 싶은 대로 써도 좋아 uu
손님한테 그런 걸 시킬 순 없다는 입장과 손님이니 해야만 한다는 입장의 짧은 충돌이 행동으로 일었다. 아무리 페로사가 그릇을 받아든다 한들 에만이 수저와 식탁을 사수했으니, 사상의 대립으로 보면 유교사상의 1승이요, 사람의 관계로 보면 동등하다 할 수 있겠다. 에만은 부스스 미소를 지었다. 깨끗해진 식탁에서 몸을 떼고 페로사를 쳐다본다. "그래도 더 빨리 정리할 수 있잖아." 작은 농담을 건넸지만, 페로사는 어째 시선을 피하며 뺨을 붉히는 모양새였다.
무슨 생각을 했길래 저럴까? 애석하게도 NaC의 뜻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입장이기에 여인이 왜 저렇게 됐는지 알 수 없는 듯싶다. 중얼거리는 것에 귀를 기울여도 드는 생각은 다음엔 유교와의 싸움에서 져줘야 하는가에 대한 것뿐이다. 아마 하루가 지나고 돌아가서 용왕에게 있었던 일을 말한다면 용왕은 반듯한 그의 이마를 깨부술 듯이 팍팍 치며 사람 복장 터뜨리는 건 물리적인 선에서 그쳐야지, 왜 정신적으로도 그러냐며 대체 무슨 문제가 있길래 너는 그 많은 로맨스 드라마를 봐도 배우는 게 하나 없냐는 말과 함께 앞으로 험난할 예정을 지켜볼지도 모를 도시의 사람들을 대신해 앓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에만은 최소한의 반박할 거리가 생겼다. 친구가 생겼잖아! 이제 나 친구 있어! 라고 외칠 기회 말이다. 이렇게 타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웃고, 밤을 보내기까지 하면 친구지 아니면 무엇이겠나? 앨리스의 업적을 에만이 먼저 달성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한 사안은 맞지만, 이 반박은 훗날, 용왕이 이마를 치다 못해 더는 버티지 못한다며 2주간의 금주를 그만두고 고량주를 들이키게 될 명분이 되었다.
"응."
캐러멜도 좋지만 버터 앤 솔트가 제일 무난하다. 가끔씩 소금 덩어리가 씹히지만 팝콘이란 원래 그 맛으로 먹는 것 아니던가. 내려놓는 것은 시럽, 딸기 한 팩, 그리고 인스턴트 팝콘이다. 음, 그래도. 천천히 보면서 먹다 보면 속에서 용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길 바랄 뿐이다. 에만의 타의로 이루어진 식욕이 일하기를 바랄 뿐이고, 같이 있어준다면 그때의 고통도 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천천히 식욕도 되살아나겠지. 에만의 눈이 가라앉기 보다 동글동글해진 것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떠올리기 보다 오늘 뭘 볼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 더 컸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느닷없이 여인이 웃지 않던가. 자신이 말실수를 했나 고민하듯 고개를 한 번 갸우뚱 기울인다.
"다른 뜻이 있어..?"
넷플릭스는 넷플릭스 아니던가? 보면서 편히 쉬기가 아니면 대체 무슨 뜻이 있을까. 눈을 커다랗게 한 번 깜빡였다. 왜 다가오는 걸까? 얘기해 줄 것이 있는 걸까. 허리를 숙였을 때, 에만은 다시금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크던 키 차이도 쉽게 좁혀지고, 긴 속눈썹 아래로 자리 잡은 푸른 홍채도 뻔히 보인다. 가깝고도 가깝다 생각했을 때, 비밀 얘기라도 해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순진무구한 생각도 여기까지였다.
느닷없는 키스였기에 당연히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이상했다. 대답 치고는 강렬하다. 제대로 된 키스라곤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을 살았기에, 탐욕스러운 당신의 행동에 맞추긴 버거웠는지 호흡을 섞을 때 가느다란 호흡이 목을 타고 흘렀다. 힘 있게 짓누르는 감각이 아찔해 흠칫 몸을 떨었다. 짐승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지만, 짐승이 자신의 것이라 흔적을 남기는 것 같았다.
여인이 탐할 만큼 탐하고 나서야, 에만은 겨우 떨어져 나올 수 있었다. 저번과 같은 모양새다. 자그맣게 벌어진 입술은 발갛게 열이 올랐고, 뺨 또한 상기되어 있다. 눈가는 열감에 의해 눈물이 고여있는 모습이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술기운은 없고, 맨정신이라는 점이 그렇겠다. 저번과는 달리 이번엔 제법 놀란 눈치다.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둥글게 홉뜬 눈이 두어 번 깜빡이더니, 이내 손을 들어 자신의 입술을 더듬는다.
혼란스러운 눈길이 페로사를 향했다. 그래도 눈치가 아예 없는 건 아닌지, 잠깐 고민하듯 시선을 왼쪽 아래로 한 번, 그리고 다시 페로사를 한 번 쳐다본다. 이 시점에서 페로사가 쐐기를 박는다면, 조만간 걷어차일 이불이 이 여우의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치다 못해 각인될 것은.
"귀여운 꼬맹이 같으니라고." 결국 그 호칭이 돌아와버리고 말았다. 이 도시에서 이렇게 눈치가 없고 순진무구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퍽 신기했다. 아미티스 대학에를 가도 이 정도로 순진무구한 사람은 없을 텐데. 아니, 오히려 청소년이 미성년이라는 제약 하에서 누리지 못했던 온갖 쾌락들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것이 대학 생활 아니던가. 더군다나 개방적이고 탐미적이며, 나쁘게 말하면 방종하기 짝이 없는 이 도시에서는 그런 노출도 더욱 강할 게 뻔했다. 그런데 여기 이 이제사 갓 성인이 되었을까 한 조그만 아이는 마치 그런 것을 전혀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하고 무방비했다.
눈을 뜬 페로사는 문득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바보같은 고민을 그만두기로 했다. 누구도 손댄 적 없는 뽀얀 모습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긴다는 희열을 연상의 의무로 포장하면서. 외딴 물류창고 지역에 몰래 마련한 임대주택이라 누구 한 명 엿들을 사람도 없는데, 페로사는 굳이 당신의 귓가로 다시 고개를 기울여왔다. 그리고 손을 뻗어 당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나직이 뭐라뭐라 속삭인다. 넷플릭스라도 보면서 차분하게 있자는 게 무슨 의미이고, 보통 어떤 뜻으로 통하는지. 관용어와 속어, 유행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단다.
그리고 페로사는, 귀엣말을 하는 것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당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는 손이 단지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서만 아니라 당신이 물러서지 못하게 막아서려고 하는 의도도 있었던 것일까. 당신의 귀- 귓구멍 바로 옆에 다시 한 번 뭉근하고 따뜻한 게 쪽 하는 선명한 소리와 함께 촉촉한 흔적을 남겨버리고는, 당신의 귓가를 무언가 뾰죽한 것들이 콕 찌른다. 좀전에 카나페를 그녀의 입에 물려주었을 때, 손가락 끝에서 느낀 그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조심스레 내쉬는 숨을 귓가에 남겨놓고서야 그녀는 조용히 허리를 들어 다시 원래의 눈높이로 돌아간다. 그녀의 손은 한 박자 늦게 당신의 머리에서 떨어져나간다. 확실히 쐐기를 꽂아버린 것이다.
바텐더와 고객- 하룻밤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친구- 집주인과 손님- 단어의 정의들이 다시금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 같다.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 네가 생각했던 대로 편하게 있어도 되고, 네 좋을 대로 해." 하며, 그녀는 나른한 웃음과 함께 머리 뒤쪽에서 눞이 묶여 있던 머리카락을 툭 풀어버렸다. 높이 묶은 상태에서도 허리에 닿을락말락하던 길고 나슬나슬한 머리카락들이 등으로, 어깨로 대중없이 쏟아지며 굽이친다.
얼굴에 띈 나른한 기색을 부러 짐짓 쾌활한 기색으로 바꾸며 그녀는 당신에게 천연덕스레 질문을 던져왔다. "식후주- 디저트 대신 마실 수 있는 것, 와인, 더티 마티니, 아니면 맵고 짠 거. 뭘로 해줄까?"
내가 오늘 낮잠을 거하게 자서 잘 수 있을까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리에 누워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좀 늦긴 했지만 자러 간다니 다행이야.. 오늘도 같이 있어줘서 행복했어. 아이구 내가 님자를 두고 어딜 간다구 자꾸 그랴... (번쩍 안아듬) 그럼 이제 우리 자러 가자. uu 나도 많이 좋아해. 에만주도 좋은 꿈 꾸고 푹 쉬었으면 좋겠네. (쫍) 자, 굿나잇 키스도 받았으니 이제 자자.
느닷없는 입맞춤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황에 꼬맹이 소리까지 들을 줄이야. 항의하고 싶지만 그 생각이 든 것은 여인이 말을 꺼내고 한참 뒤였다. 그만큼 에만은 상황 파악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고, 둥글게 홉뜬 눈으로 한참이고 멍하니 있었다. 이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순진무구함. 이유야 많다. 이 겉껍질은 용왕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기 때문이요, 아미티스 대학에 재학 중인 앨리스에겐 불문율이 있으니.
특히 앨리스가 이 도시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쾌락에 찌든 것 같고, 제법 화려하게 생겼으며, 향락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을 가졌어도 아미티스 대학 사람들은 앨리스에게 손 뻗지 않는다. 졸업을 앞두고 교수에게 찍혔기 때문이다. 앨리스의 학점은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빠르면 5월 졸업, 늦어야 다음 졸업인 12월 졸업. 제대로 학점을 채운다는 가정 하에 1년 이내로 졸업이 확정된 건 뻔한 사람이었다. 이런 앨리스를 놓칠 수 없다며 교수가 진득하게 붙잡고 늘어지니, 같이 술이라도 마시자고 했다 교수의 레이더에 걸려 앨리스 대신 연구실의 희생양이 된 그레이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도 없다. 대학에서도 손 뻗고 싶은 사람은 많으나 이쪽도 얼떨결에 청정구역이 되어버린 사례였다.
하여튼 이쪽이나 저쪽이나 무방비하고 순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 에만의 삶이었다. 넷플릭스 앤 칠의 의미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것도 의미 그대로 받아들인다. 탑 안에서 자란 라푼젤처럼 청순하다 할 수 있겠으나, 오늘 라푼젤은 성 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귓가로 고개를 기울이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생경한 기분이 들어 눈만 깜빡인다. 페로사가 결국 쐐기를 박듯 숨겨진 비밀의 문을 열어버렸고, 에만은 뭔가 말하려 입술만 잠깐 뻐끔거리다 결국 뺨이 달아오르고 말았다.
"ㅇ, 아, 아우우."
달아오른 뺨을 가리듯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으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뭉근하고 따뜻한 것이 흔적을 남기고, 귓가를 쿡 찌르는 감각에 몸을 흠칫 떤다. 다른 곳도 익숙하지 않지만 귀는 특히나 약한 것 같았다. 손가락 틈새를 벌려 빼꼼, 여인을 바라보던 에만은 머리에서도 떠나가는 온기에 상황을 전부 파악하고 만다. 오늘, 아니, 내일 돌아가서 마주할 자신의 이불은 하루 종일 걷어 차이다 갈기갈기 찢기겠구나. 앓듯이 작게 우우 소리를 내던 에만이 다시금 벌렸던 손가락 틈새를 닫고 손에 고개를 아예 파묻는다.
분명 오늘 하루의 시작은 피비린내였는데, 이젠 그 관계가 녹아버린 것 같다. 한 걸음만 더 가면 돌이킬 수 없이 흐무러지고 말 것인데도 욕심을 내고 싶다. 아직도 속에 담긴 감정이 뭔지 긍정하지 않고, 명명하지도 못했는데 섣부른 욕심이 계속 등을 떠민다. 강요할 생각은 없다지만 마음이 두 개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욕심에 떠밀려 흐무러질 것인지, 아니면 아직은 단단하게 버틸지.
에만이 다시금 벌린 손가락 틈새로 보인 것은 높이 묶인 머리가 툭 풀리며 굽이치는 머리카락이요, 제 마음과도 같다. 손을 천천히 내려 주먹을 반쯤 쥔다. 입가를 가린 모양새가 마냥 수줍다.
"..디저트 대신으로.. 그러니까.. 그게.."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니 단 게 당겼나 보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볼을 붉히며 우물우물 답하고는, 시선을 살짝 들다 머뭇거린다. 그리고 한 걸음 다가가 팔을 뻗었다. 폭. 대뜸 여인의 품에 안기려 한 것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해 숨을 곳을 찾는 것 같았다.
에만과 앨리스의 사정을 페로사는 모른다. 그러나 다만 당신이 이상할 정도로 말간 건 안다. 누구 하나 입은커녕 손도 댄 적 없는 말간 사과알같이. 만일, 당신과 그녀가 좀더 느리게 가까워졌다고 한다면 과연 자신이 이렇게 말간 당신에게 함부로 이빨자국을 내어도 되는지- 그리고 이 광기의 도시 한가운데에서 당신만이 어떻게 이렇게 말갛게 남아있을 수 있는지 저품어린 의문을 가질 법도 한 페로사였으나, 당신도 알지 않는가. 그러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것을. 그 피비린내에 피비린내로 대답해버린 것은 그녀에게 어떤 허락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무엇에 닿는지도 모르고 허락을 먼저 받아 조금 어리둥절하던 페로사에게 있어, 조금씩조금씩 보이는 당신의 모습은 허락받은 것이 무엇인지 그녀에게 알려주는 일일 뿐이었다.
그래서 순진하기 그지없게 얼굴을 붉히며 녹아내리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페로사는 어라? 하면서 움찔 물러서기보단 자신에게 있는 대로 당신을 솔직하게 대해주기를 택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택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그런 것이 오늘 낮부터 당신에게 내내 그랬다. 온통 뺨이 붉어져서 어쩔 줄 몰라하는 당신을 양 팔 벌려 끌어안는다. 그냥 그녀가 자신의 있는 성정을 당신에게 아낌없이 베풀기로 해서 그런 것이고, 다른 누군가의 차지가 되거나 어쩌면 영영 그 누구의 차지도 되지 못했을 애정을 당신의 것으로 내어주마고 마음을 굳힌 것인지, 아니면 길지 않은 삶을 (한동안 정점으로 군림하느라)애정이라곤 모르고 살다가, 한낱 평범한 사람으로 대해져 애욕의 대상이 되는 맛을 방금에서야 깨달아버린 것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탄탄하면서도, 당신 한 사람이 차지하기에 딱 알맞게 푸근하다. 조금 숨이 막힐지도 모르겠다. 짐승에게 물렸는데 도망칠 곳이 짐승의 품뿐이라니. 우습다. 당신과 달리 그녀는 태연하다 못해 즐기는 것 같은 게 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이렇게 꼭 끌어안고 있을까?" 그녀는 품에 파묻힌 당신을 내려다보며 얼굴에 미소를 건다. 평소의 쾌활한 미소가 아니라, 그녀의 바에서 본 바 있는 나른하게 풀어진 미소다. 빈정거리는 것도 놀리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것뿐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해 줄 모양이다. 아무래도 폭풍이 지나간 게 아니라, 폭풍의 눈에 들어와버린 듯하다. "소파에서 기다려도 되고, 아니면 내가 마실 거 준비하는 거 구경해도 되고. 어떻게 할래?" 그녀는 당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페로사의 오늘 풀 해시는 예쁘다_또는_잘생겼다란_말을_들은_자캐는 (손님에게 들었을 시)"뭐, 스물아홉 치고 이 정도면 제법이지. 그래도 말해줘서 고마워." (어떤 사람에게 들었을 시)"...예쁘다, 잘생겼다, 그런 말들... 흔한 말이지만, 너한테서 들으면 의미가 달라져. 날 좋아해주고 있다는 거잖아." (쪽) "너도 정말 예뻐." 자캐가_심심함을_해소하는_방법 "잡지를 읽던가, 내 장비들을 점검하던가..." "무슨 장비냐고? 엇, 그게, 어, 레포츠를 좀 하거든. 클라이밍, 클라이밍." 자캐가_좋은말양파를_기른다면 "좋은말 쪽만 기르지. 나쁜 말은 어지간하면 입에 담을 일이 없는 게 좋아." #shindanmaker #오늘의_자캐해시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첫번째 해시에서 나도 깜짝 놀랄 정도의 EDPS를 페로사가 해버리는 바람에 충격먹었다..
페로사: 113 남들에게는 별 거 아닌데 본인은 무서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질문받았을 시)"비밀." (어떤 사람에게 질문받았을 시)"...보름달." 176 고맙다는 말을 주로 하는 쪽인가요 아니면 듣는 쪽인가요? "아무래도 접객업이다 보니 하기도 많이 하지만 듣는 경우가 더 많지."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고마움에서 나오는 인사를 받아본 사람은 없어." "......아직까지는." (페로사는 얼굴을 붉혔다.) 109 운동화 vs 구두 vs 샌들 "기능 면에서 가장 선호하는 건 튼튼한 운동화고, 바빌론 시티는 후덥지근하니까 가장 신고 싶은 건 샌들인데, 직장 드레스 코드 때문에 구두를 제일 많이 신어. 제-엔-장."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난 포기할 거야. 다 관둘 거라고." 페로사: "...그 동안 고생했어. 자, 한 잔 하라고. 시원한 걸로 준비해뒀으니."
"꽃을 구경한다? 선물한다? 신경 쓰지 않는다? 향을 맡는다? 꺾는다? 장식한다? 무언가를 만든다? 먹는다?" 페로사: "흠." 페로사: "누가 주느냐에 따라 다르지." (특정 질문자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페로사: "어... 너? 좋지. 아마 술병에 물 담아서 장식해두고 있다가 마를 때쯤 되면 압화로 만들지 않을까? 화분이면, 한번 키워봐야지." 페로사: "넌 어때?"
"네 성격 중 가장 특이한 점은?" 페로사: "흠- 비밀." (특정 질문자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페로사: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지. 많이 접해봤잖아." (쪼-옥)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770083
1. 『두려워』 "두려움이 결여된 용기를 보고 객기라고 하는 거야." "난 아직 내 목숨이 아깝다고."
"...그래. 미련이 생겼다고나 할까." "떠나기도 싫고, 보내기도 싫어." "...그러니까. 이따금 내가 형편없는 겁쟁이처럼 보여도, 날 미워하지 말아줘."
2. 『네가 준 선물, 길이 간직할게』 "뭐야, 오늘 무슨 날이야? 이야, 멋진데- 마시기 아깝겠는걸."
"...이런 걸 받아볼 줄은 몰랐어. 고마워. 예쁘네." "사랑해."
3. 『싫어』 "흠- 미안하지만 안되겠는걸. 오늘 밤은 조금 바빠서."
"이제 와서? 늦었어. 넌 내 거야. 나는 멀리서도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고, 네가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네 냄새를 쫓아갈 수 있을 거야. 그래... 난 미쳐버렸고, 돌아버렸고, 정신도 놔버렸지. 넌 도망칠 수는 있겠지만 숨을 수는 없을 거야. 네 육신이 더 원한다고 울부짖는 게 느껴지니까*..."
1. 『꺼져』 (불친절한 손님을 상대로)페로사: "여긴 내가 일하는 우리 바인데." 페로사: "꺼지려면 당신이 꺼지는 게 맞지 않을까?" 페로사: "좀 도와드릴까?"
(오랜 적을 상대로, 말싸움 상황)페로사: (킥킥)"왜. 후달리냐?" 페로사: "겁줘서 미안하네~ 오늘은 우리가 끝장을 볼 날이 아니니 안심하라고."
(오랜 적을 상대로, 접전)페로사: "이제 와서 누구 맘대로?" 페로사: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이야."
(특별한 사람에게 들었을 시)페로사: (잠깐 말문이 막힘) 페로사: "...이봐." 페로사: "왜 그러는 거야...?" 페로사: "무슨 문제 있어?" 페로사: "이유라도 말해줘."
2. 『날 두고 가지마』 (술취한 손님을 상대로)페로사: "당신이 가셔야지." 페로사: "너무 드셨어. 콜택시 불러놨으니 타고 가셔. 비용은 고객님 계좌에서 청구될 예정이구요."
(업무 동료를 상대로, 상황이 안 좋을 때)페로사: "젠장. 기다려봐. 퇴출 수단이 곧 올 거야." 페로사: "부조금 낼 돈 따위 없으니까, 넌 살려보낼 테니 안심하라고."
(특별한 사람을 상대로, 일상에서, 직장 혹은 다른 용무 때문에 가야 할 때)페로사: "아니아니... 나 오늘 일찍 나가봐야 하는 날인 거 알잖아." 페로사: "어쩔 수 없네." (웃음) "연차 써버릴까?"
(특별한 사람을 상대로, 위기 상황에서)페로사: "걱정하지 말아..." 페로사: "지옥 끝까지 함께하기로 했잖아." 페로사: "같이 살기로 했으니, 죽는 것도 함께여야지." 페로사: "물론 그게 오늘은 아닐 테니, 꽉 붙들기나 해." 페로사: "말했지. 난 항상 플랜 B가 있다고."
3. 『웃기지마』
이 세 가지 입니다! 열심히 해주세요! #shindanmaker #당신의_대사 https://kr.shindanmaker.com/893746
츄라이.. ㅋㅋㅋ 알다시피 메즈칼 중에 아가베 웜을 넣어서 파는 것들도 있잖아.. 그런 술병 꺼냈을 때 나올 만한 회화 아닐까.
페로사: 앗... (붙들림) 페로사: (머리 쓰다듬어주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 꺼냄) 페로사: 아, 점장. 급하게 연락해서 미안한데... 오늘 좀 급한 일이 생겨서 말야. 어, 그룹 관련된 일은 아니긴 한데 그 비슷해. 어, 미안해. 그렇게 됐어. 고마워. 응, 당연히 그래야지. 알았어, 끊을게. 페로사: ...흐응. 그래. 귀중한 연차인데... 너한테 쓰기로 했어. 자, 그래서 내 어젯밤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도 네 것이 됐는데. 페로사: 뭐가 하고 싶어? (나른하게 웃음)
아참... 전부터 에만주가 인외 좋아한다고 해서 물어볼까말까 한 건데 👀 수인 농도가 어느 정도까지면 좋은지, 어느 하나를 딱 집어서 말할 수 없다고 하면 포용 가능한 농도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물어보려고 했었어.
아가베 웜...(파들) 그런 거구나. 나는 자체는 먹더라도 막잔은 죽어도 못먹어... 아직 벌레랑 안 친해..(파들!!!)
에만: (통화 내용 들으면서 부스스) 에만: 으응, 오늘 귀한 연차 써주는 거지..? 오늘 하루도 같이 있어주는 거지..(깊게 파고들면서 뺨 부빗) 에만: 같이 바다도 보러가고.. 아르카디아도 가보고.. 그리고.. 에만: 나아, 오늘 밤에느은.. 넷플릭스도 보면서 쉬고 싶은데..(배시시)
이제 다 배워먹는다 김에만.. 각오해라 로로~ >:3
싫어의 대답...:0..
에만: 이 도시에서 미친 사람이 많다지만.. 당신만큼 미친 사람이 있을까. 가끔은 당신이 두려워.. 숨고 도망쳐버릴까 하는 마음도 있지.. 에만: 그렇지만 당신의 광기를 받아줄 사람이 나 말고 누가 있을까. 그렇지..? 에만: (쪽) 그렇다고 해줘. 내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줘야지, 응? (뺨 더듬)(키스)
>:3!!!! 그리고오 인외는 다 좋아해~ 나 사족보행도 괜찮고 완전 복슬 퍼리도 ok야..!!!(로로주: 이쯤되면 취향 아닌거 찾는게 더 빠르겠는데?)
페로사: 오, 그래야지... (개 주둥이로 으르렁) 페로사: 내 삶에 말도 없이 들어온 게 누군데, 내 목줄을 새로 매어준 사람이 누군데. 너와 함께 죽거나, 너의 손에 죽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했잖아. 페로사: (뺨에 입맞춤을 당하자 사람 얼굴로 돌아옴) 으응. (키스 받아줌) 마음껏 좋은 소리로 울어. 들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까. (다시 키스)
이쯤되면 취향 아닌거 찾는게 더 빠르겠는데 🤔 로로 전투시의 모습 묘사에는 별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지나가다 싸우는 사람 둘을 목격하면 어떻게 할 생각?" 에만: 아. 팝콘.. 팝콘..(팝콘 사옴) 재밌는 건 혼자 보면 안 된댔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 바빌론 평균
"내가 졌어. 너에게 이길 수 없었어. 그게 다야. 할 말은?" 에만: 당연한 결과야... 가랑비에 옷 젖는 게 순리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잖아. < 제법 오만함
"난데없이 길을 걷다 시비가 걸리면?" 에만: 넘어가. 어차피 내일 얼굴 팔릴 사람이니까. 앨리스: 뭐야 XX 부모님 무한대냐? 미분해서 0이야? 왜 시비야 C8 대가리 깨지고 싶어? 너 상조 들었냐? 너 랩탑으로 머리 안 깨져봤지, 내가 오늘 깬다 딱 ㄷ(용왕한테 붙잡힘) 아 놔봐 저게 먼저 입을 털잖아 입을!! 야!!! 강냉이 몇갠지 제대로 기억해라 내가 후려 쌔빌줄 알아!! 에만: 쟤는.. 안 참고.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770083 에만의 오늘 풀 해시는
쉬는시간에_엎드려_자고_있을_때_누가_깨운다면_자캐_반응은 : 에만이라면 "아... 응... 왜.. 불러.. 아직 5분 남았지 않아..?" 하면서 눈 부비면서 일어나거나, 특별한 사람이 깨우면 "5분마안.. 5부운.. 왜에.." 하면서 칭얼대면서도 폭 기대면서 일어날 거야.
앨리스는 쌩까.. "나.. 어제 도합 30분 잤어.. 많이 잤지..? 나도 알아..." 이러면서..
자캐가_숙제를_처리하는_법 : 김에만 유일하게.. 사람답게 곡소리를 내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바로 과제할 때야.. 항상 조용하고 나른한 것 같은 김에만씨.. 이제 동거하다 방 안에서 흐아아아악 으아아악 아아악 소리 나면서 반쯤 우는 소리 나면 무조건 과제하는 소리고..
한 30분정도 곡소리 하며 내가 졸업만 해봐라 거들떠도 안 본다아아 이러다가 잠잠해지면 훌쩍거리면서 과제하는 거지.. 어차피 쉽다고 하지만..(재수없음) 그런 거 있잖아, 숙제는 이름만으로도 하기 싫어지는 거..
자캐와_친해지는_방법은 : 천천히 하나하나 알려주면 친해질 수 있지롱 0.<
#shindanmaker #오늘의_자캐해시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에만, 어서오세요. 오늘 당신이 표현할 대사는...
1. 『와주리라 생각했어』 "아, 그래. 법적 보호자... 안 나타나면 이상하지.. 응.."
"..무서웠어.. 위험하니까 당신이 오면 안 된다고 생각핬는데, 그래도 당신이 와줬으면 했으니까.." (울먹)
2. 『널 어떻게 믿겠어?』 :뭘 믿고. 담보는?"
"..늑대인간이라니.. 아하하, 정말이지.. 도시전설을 믿기엔 나는 너무 커버렸는 걸.."
3. 『둘이라면 할 수 있어』 "나 혼자서도 충분해." "어, 그래. 충분하니까 가세요~"
섣부른 욕심에 불을 붙이는 건 자신의 마음도 있지만, 괜히 남 탓을 얹어보자면 당신의 탓도 크다. 차라리 짓궂게 넘어가면 되는데, 물러서며 지켜보면 되는데. 이렇게 계속 친절하게 한 걸음 더 다가와서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낮부터 계속. 그때 피가 튄 자국을 보고 도망쳤거나 침묵했다면 이 욕심을 그나마 누를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내가 술김에 당신의 소망을 부정하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모르겠다. 지금은 끌어안아주는 이 상황을 탓할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해두는 게 혼란스러운 속을 가라앉히고, 이름 모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에 도움이 될 테니까.
품 속은 따뜻하다. 남에게 주지 않은 애정일지, 아니면 자신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일지는 모르지만 이 따뜻하고, 단단하며, 조금은 숨쉬기 버거운 품 속에서 나가고 싶단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발갛게 물든 뺨이 천천히 식어간다. 눈을 느릿하게 감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한 번 비빈 뒤 여인을 올려다본다.
"치사해.."
그렇게 짐승에게 물리고 뜯기며 살았는데 도망칠 곳은 같은 짐승의 품이구나. 발악하듯 마지막 힘 쥐어짜 도망 쳐봤자 이곳은 짐승의 도시일 뿐이구나. 당신도 짐승이구나. 그렇지만 다르다. 다른 것을 떠나 당신은 다른 의미로 자신을 잘근잘근 물어 안달이 나게끔 한다. 그걸 여유롭고 즐기는 듯하니, 그 사실이 제법 심통이 나기에 들었던 고개를 다시 폭 파묻어버린다. "정말 치사해." 한 번 더 툴툴대버린다.
아마 이 온기는 평생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나른한 미소도 익숙하지 않을 것이고, 이 품도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고요하고도 평온하다. 그게 당연한 건데 새삼 이상하다. 머리를 부드럽게 쓸며 제안할 때는, 에만이 눈을 데굴 굴렸다.
"구경할래.."
같이 있을 것이다. 소파에서 기다리기엔 지금 이 순간이 지나치게 외로운 탓이다. 또 자신의 탓은 아니라 넘어가버린다. 품에서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는지, 옹알거리듯 고개를 폭 박고 입술을 벙긋거리는 모양새였다. 그마저도 잠시 고민하다, 느릿하게 떨어지는 모습이 자못 아쉽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면 돼..?"
작은 순간마저 함께 하고 싶은지, 당신이 준비하는 것이 있다면 그 재료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려 했을 것이다. 오늘은 그러고 싶은 날이다. 또한, 오늘 식후주에 어울릴만한 넷플릭스 작품을 떠올리겠다는 핑계다.
마침내, 어쩌면, 당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를, 당신을 깨물되 해치지 않고 핥되 잡아먹지 않는 짐승. 어떤 비바람도 잔물결 하나 일으키지 못하는 단단하게 얼어붙은 호수 표면과도 같은 당신의 삶인데, 그 짐승이 닿은 곳마다 조금씩조금씩 녹아내린다. 당신은 그것을 그 짐승의 탓으로 돌렸다. 틀린 말도 아니고, 그녀 역시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지금 당신에게 그러고 있듯이, 당신이 자신의 품 안을 마음껏 독점할 수 있도록 당신의 어깨를 부드럽게 끌어안아줄 뿐이다. 치사해, 하고 당신이 꺼낸 말에, 당신의 머리에 닿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손이 좀 더 머문다. "알아." 심지어 안단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겠다고 하자, 페로사는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떼고 허리를 조금 숙인다. 이번에도 당신을 번쩍 들어안아주려나 보다. 품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당신을 옮기려면 아무래도 이 방식이 가장 편하니까. 이것도 익숙해지려면 익숙해질 수 있겠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기로 했지 않은가. 그 온기처럼, 그 품처럼, 그 나른한 미소처럼, 지금 이 공간을 메우고 있는 둘만의 사치스러운 평온함처럼. 이 도시의 모든 사람을 통틀어, 이 바텐더에게서만, 오직 당신만 누릴 수 있는 서비스처럼.
그녀는 당신을 번쩍 들어안았고, 다시 한 번 당신의 발 아래 존재하던 세상이 그녀의 품 안으로 기우뚱 기운다. 다시 의자에 앉혀놓고, 아무래도 당신을 끌어안은 채로 칵테일까지 만드는 것은 조금 무리였기에, 그녀는 당신을 안았던 팔을 뗀다. 당신이 옹알거리듯 하던 모양새가 마음에 걸렸는지, 그녀는 당신을 품에서 놓아주면서 당신의 입술 위에 얕은 입맞춤을 한 번 남긴다. 그리곤 조금 머뭇거린다. 당신이 그 정도로 괜찮다고 하면 다시 주방으로 향했을 것이다.
팝콘 한 봉지를 전자레인지에 돌려놓고, 아까 싱크대에 담궈두었던 마티니 잔을 꺼내서 바에서 하듯 빠르게 설거지하고 물기를 닦아낸 다음에 쿠키 하나를 부드럽게 부수고는 마티니 모서리에 보드카를 살짝 발라 쿠키 부스러기를 묻힌다. 은색 기사가 그려진 보드카 병과, 피스타치오와 올리브를 섞어놓은 것 같은 과일-아몬드를 한가득 맺은 아몬드나무가 그려진 병. 아마레또 2온스, 보드카 1온스, 얼음 한 컵, 설탕 한 티스푼, 바닐라 에센스 두세 방울, 바닐라 아이스크림 반 컵, 그리고 딸기 한 컵 가득을 믹서기에 집어넣고는 덩어리가 없을 때까지 간다.
마티니 잔에 3분의 2쯤 따르고는, 남은 것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가니쉬로 반으로 자른 딸기를 가니쉬픽에 꽂아올려서 마무리. "기분이 엄청 나쁘거나, 기분이 엄청 좋을 때 집에서 해먹는 레시피야. 어디선가 배워서, 나 혼자 먹던 레시피인데..."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다 튀겨진 팝콘 봉지와 마티니 글라스 두 잔을 쟁반 위에 올려두면, 오늘의 식후주 겸 디저트 마련이 끝난다. "누군가한테 대접해주긴 처음이네." 그녀는 쟁반을 들고 당신을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그럼, 넷플릭스 보러 갈까." 웃는 게 좀 짓궂다.
찝찝해...... (기지개 쭉쭉) (얼굴에 코 들이대고 킁킁킁) (다시 몸 둥글게 말고 골골골이) 아니, 오늘 현생 자체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어. 그러니 너무 걱정은 말기. 에만주랑 같이 있으면 기분 좋아지니ㄲ(털뭉치 상태에서 키스연타를 받으면 어떻게 해야되지?) (원래대로 돌아오면 되나?)
가득한 온기. 품을 독점하듯 파고들며 머리에도 와닿는 온기를 놓칠세라 손에 고개를 비빈다. 안다는 말에 제법 심통이 났는지 눈을 삐죽하게 치켜떴으나 가만히 노려보듯 하다 아랫입술만 툭 내밀고 다시 품에 고개를 파묻어버린다. 그렇지만 이대로라면 하루가 의미 없이 지나갈 것 같기에, 품에서 아쉬운 듯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대신 다른 품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그 짧은 시간에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더 느긋하게 떨어진 면도 없잖아 있다. 어린 여우는 제법 영악했다.
고작 두세 번 안겼는데, 안기는 과정 자체만은 수년 동안 안겨본 사람처럼 익숙하다. 그 이후는 익숙하지 않아 여전히 쭈뼛대며 어색하게 품 속에서 고개를 비벼본다. 따뜻한 온기와 나른한 미소가 공기를 따스하게 달군다. 평온한 하루 벽난로 근처에 있듯 따스하다.
오로지 당신에게서만 받을 수 있고, 페로사라는 바텐더에게서 독점하는 서비스와도 같다. 이 서비스가 당연히 자신만을 위해 주는 것이 되었으면 하는 오만한 욕심이 치민다. 조금 더 욕심을 내고 싶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나를 내어준다면, 당신은 온전한 나의 것이 될까. 의자에 앉고 품에 떨어질 적, 입술에 내려앉는 감각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머뭇거리는 모양새를 봤기에.
"얼마 만나지 않은 상대인데, 너무 무른 것 같아.."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에만은 팔을 쭉 뻗어 페로사의 양 뺨을 잡아보곤, 다시금 쪽, 하는 소리와 함께 가볍게 입술을 이마에 대었다 뗀다. 짤막한 버드키스를 뒤로 떨어질 적 말간 눈웃음이 스친다. 이마로는 모자랐는지 입술에 기어이 한 번 더, 쪽 소리가 난다. 그리고 주방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마법을 바라본다.
달콤한 쿠키, 없으면 안 될 설탕, 사랑스러운 딸기와 빠지면 섭섭한 아이스크림. 온통 달고 보드라운 것들만 가득하며 짭조름한 팝콘까지 준비된다.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싶어 눈이 생기로 제법 차오른다. 분명 마티니를 선호하던 것 같더니만, 이런 면에선 제법 아이 같은 입맛을 가진 듯싶다. 고개를 들어 페로사를 빤히 바라보던 에만이 조근조근 묻는다. "그럼 지금은.. 기분이 아주 좋은 거야..?" 짧은 질문을 뒤로 아랫입술을 비죽 내민다. 넷플릭스라 말하는 것이 짓궂기 때문이다. 툴툴대듯 "치사해.." 하고 우물댄 뒤로 의자에서 내려와 옆에 착 달라붙는다. 소파로 간다면 여지없이 옆에 또 달라붙어 앉을 것이다. 온기 찾는 병아리마냥.
"자기." 입을 맞추기 전 잠깐 멈추어선다. 그녀의 도톰한 입술이 살며시 벌어지며 나직이 속삭이는 말이 들큰한 향내를 싣고 당신의 입술에 날아든다. "그런 거 따지기엔 우리 너무 멀리 왔잖아."
그러고서야, 당신의 입술 위에 다시 한 번 더 잊기 힘들 따뜻한 흔적 하나가 뭉근하게 남는다. 호수 표면이 또 조금 더 녹았다. 한 번 더 녹았다. 두 번의 입맞춤을 나누고서야 그녀는 당신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바에서는 쓰는 모습을 본 적 없던 블렌더를 꺼낸다. 그녀가 원체 블렌더를 사용한 레시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는데, 블렌더를 사용하는 레시피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이것이었다. 가장 먼저 와닿는 딸기향, 밸런스잡힌 바닐라향과 아몬드향, 그 사이에서 흐려지지 않고 또렷하게 알코올향을 유지하는 슬러시. 보통은 혼자 마시는 잔이지만, 오늘은 누군가 이것을 같이 마셔줄 사람이 있다.
"딸기 숏케익 마티니래. 이름 재밌지." 용케도 그것이 마티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기에, 다행히 그것이 아무리 달고 부드럽더라도 마티니 애호가라는 당신의 명예에 먹칠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당신이 치사해, 하고 톡 투덜대자, 페로사는 손을 뻗어 당신의 머리를 한 번 헝크러뜨리듯 쓰다듬고는 다시 원래 모양대로 정성스레 머리를 빗어주었다. 그리곤 허리를 숙여서 당신과 눈높이를 맞추어온다.
"치사하지." 하면서 그녀는 당신에게 입맞춤을 해왔다. 좀더 탐욕스러운 그 입맞춤은 아까의 그것과도 비슷했고, 어쩌면 오늘 점심때 그녀를 만난 그 때, 그녀의 입에서 피냄새를 훔치고 자신이 묻혀온 피냄새를 먹여준 그 입맞춤과도 닮았을지 모르겠다. 피비린내는, 이제 혀끝에는 흔적도 없는데. "네가 오늘 나한테 처음으로 한 입맞춤만큼이나." 하고 그녀는 눈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이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서 언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르는 어긋남들이 이렇게 쌓여온 걸까.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마음이 흘러넘칠 것 같다. 그저 지금은 이 순간이 이렇게 계속 이어지기를 원할 뿐이다. 계속 이런 일상을 보낼 수 있다면. 어쩌면 너라면, 나는 이런 하루를 기꺼이 너와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비어있던 퍼즐조각과 같은 자신의 마음이, 맞추어질지도 모르겠다고. 그것은 아직 구체화되지 못하고 터무니없는 공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 하고 옆에 달라붙는 당신의 어깨를 페로사는 꼭 끌어안을 뿐이다. 나머지 한 손에는 쟁반을 쥐었다. 가죽이 아니라 천으로 피막을 씌운 소파는 푹신하니 몸을 기대기 딱 좋았다. 침실이 갑갑한 날이면 침대로 써도 되겠다. 그녀는 디저트 접시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소파에 비스듬히 거의 드러눕다시피 앉았다. 그리곤 자기 무릎 위를 톡톡 두들겨온다. 여기 앉으라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페로사주가 주는 답레는 여기까지..! 에만주는 답레 쓰지 말고 이제 눕자! (번쩍 들어안음)
페로사: 응. (품에 꼭 안아줌) 페로사: ...내 입으로 말할 땐 몰랐는데, 네가 말하는 걸 들으니까... 좀 낯간지럽네. (뒷머리 집어다가 끌어올려 자기 얼굴을 반쯤 가림) (귀가 빨개졌음) 페로사: 그래서 좋아. 페로사: 흠, 자기 말고 허니라고 부를까? (낯간지러움을 가리려는 듯 장난스런 웃음)
멀리 왔다고 해도 따질 것이 생긴 것 같다. 말해버릴까 고민하던 찰나 입에 뭉근하게 닿는 감촉에 고민도 생각도 사르르 녹아버린다. 안타깝게도 지금 따질 기회는 없을 것 같다. 녹아버린만치 보드라운 시선으로 블렌더를 바라보자니 앨리스의 의견이 치고 들어온다. 아.. 설거지 거리가 늘었다. 셰이크 시키는 사람은 고문 받아 마땅하며 쿠키나 초코가 들어가는 메뉴는 그 자리에서 사형 시켜도 옳다는데 너는 설탕과 딸기까지 넣게 만들었구나.. 넌 진짜 양심도 없.. 아, 우리 다 양심 없지. 에만은 무시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하기에는 쓸모도 없고 의미도 없는 생각이다. 대신 잔을 동그란 눈으로 하릴없이 쳐다보기로 했다.
"응.. 신기해. 얘도 마티니라는 거잖아."
가만히 바라보자니 딸기향은 물론이요 바닐라, 아몬드, 알코올의 내음이 코를 찌른다. 온갖 호화로운 것이요 노동력 투성이인 특별한 잔을 오늘 같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만히 바라보자니 딸기향은 물론이요 바닐라, 아몬드, 알코올의 내음이 코를 찌르는 것 같다. 그렇다고 투덜거림이 잦아드나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좋은 향이 난다 해서 넷플릭스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으."
머리를 헝클듯 쓸 때는 외마디 단말마를 뱉는다. 가느다란 모발은 정성껏 쓸어준다 해도 정전기 때문에 복슬복슬하게 뜨고 말았다. 눈높이를 맞출 적의 시선이 더 불만스럽더니, 입맞춤엔 아예 눈을 꾹 감아버렸다. 여전히 누군가의 탐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그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둔 거야..?"
입술이 떨어질 적에, 이 간지러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단 생각에 들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순간. 특별한 만남, 별것 없지만 이 도시에서는 제법 특이한 하루, 하루를 마무리하는 특별한 잔.. 아, 특별한 거. 덕분에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고야 만다. 착 붙을 적 눈이 제법 모나다. 할 말을 고르듯 잠시 고민하더니 욕심을 부리기로 마음먹었는지 끌어안는 손길처럼 허리를 폭 안는다. 툴툴거리기론 이 도시에서 따라올 사람 없다는 양, 모난 눈으로 묻는다.
"아까 자기라는 거. 다른 사람한테도 다 그렇게 불러..?"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부리기엔 지나친 욕심이라지만 이 도시에서 욕심 없는 사람을 찾느니 날개 달리고 머리에 뿔이 달린 말을 찾는 게 더 빠른 일이다. 폭신한 소파, 옆에 착 달라붙기가 무섭게 무릎을 두들기는 시선을 본다. 눈이 동그래지곤 한 번 무릎을, 그리고 페로사를 올려다본다.
"나.. 무거울 텐데."
진짜 앉아도 되는 건지 되묻고는 허락이 떨어진다면 아마 짧은 시간 수십수백 번을 고민하다 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멋쩍은지 괜히 품에 기대려 하며 고개를 푹 파묻었을지도 모르겠다.
설거지거리를 걱정하면 페로사는 웃으면서 원래는 혼자 만들어서 다 마시던 거라고 말하겠다만, 정말로 아무래도 좋은 일이니 그러려니 하자. 그것보다는 당신의 안에서 참을 수 없이 당신을 간지럽게 만드는 이 감정이 문제다.
당신이 던진 맹랑한 질문에 페로사는 눈을 치뜬다. 생긴 것이 본디 맹수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생긴 눈이고, 크게 뜨지도 않아서 당신만큼 땡그랗게 되진 않지만 생소한 질문에 조금 놀란 표정임에는 분명하다. 질문 자체는 바에서도 종종 받아봤다. 하지만 그 질문이 이런 태도로 날아드는 건 처음 겪는 일이다. 선명한 욕심. 당신이 은연중에 내비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당신이 대뜸 피냄새가 가시지 않은 자신의 입에 입을 맞춰온 이후로 이렇게 분명한 태도로 자신을 내어보이는 것은 이제사 두 번째로 겪는 일이라.
그녀는 우선 무거울 텐데, 하는 말에 다시 한 번 더 자기 무릎을 툭툭 쳐 보인다. 입가에는 쾌활한 미소를 띄면서. "무슨, 술짝보다 가벼우면서. 번쩍 들고 빙글빙글 해줄까?" 당신의 무게에 대한 그녀의 감상은 그랬다. 전에도 말했듯 당신은 그녀의 몸에 거리낌없이 여러 번 접촉하면서 당신의 체형에 대한 데이터를 충분히 안겨주었다. 그러면서 "가벼우니 걱정말라구-" 하면서, 한쪽 팔을 들어 위로 굽혀 L자-흔히 알통 자랑할 때 쓰는 그 포즈-를 만들어 보인다. 그녀의 몸에도 꽤 헐렁한 후디 너머로도 근육으로 꽉 들어찬 그녀의 팔뚝의 실루엣이 비쳐보인다. 그러면서 그녀는 문득 자신의 팔을 보더니 허탈하게 웃었다. "이게 어떻게 여자 팔이냐. 아무튼..."
그녀의 다음 말은 당신이 그녀의 무릎 위에 앉았을 때 이어졌을 것이다. 얼굴에 지은 쾌활한 미소에서 힘을 빼고, 나른한 미소로 바꾸어 지으면서.
"너한테만 그렇게 불러줬으면 좋겠어?" 얄궂게도, 질문에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돌아온다. 내가 탐나니? 하는 말을, 짓궂기 그지없이 돌려말한 것이다.
치뜨는 눈. 에만은 그 새파란 눈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여전히 모난 시선이다. 놀란 표정이라도 봐주는 일이 없었다. 줄곧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도 자기, 두 번째 만남에서도, 지금도. 자기라는 말이 너무 가볍지 않은가. 처음엔 대체 누굴 보고 자기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생각했지만 고작 몇 번의 만남 때문에 이젠 자신 말고 대체 누구에게 자기라고 부르는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페로사라는 사람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니 호칭엔 당연히 자유가 있겠지만, 마치 이미 손은 고사하고 품에 가득 담아낸 사람처럼 그게 마음에 영 좋지 않았다.
때문에 선명하게 욕심을 내비쳤다. 물론 대답이 없자 모난 시선이 사그라들긴 했다. 그렇지, 어차피 저 사람의 자유인데 내가 간섭할 이유는 없지. 제법 빠른 체념이었다. 이 도시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유용한 것은 체념, 그리고 타협하는 법이고, 에만은 거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편이기 때문이다. 대신 지금 품에 만족하기로 했다. 여인의 옆은 따뜻한데, 이 품마저 체념하고 싶지는 않았다.
"ㄱ, 그러지 않아도 돼.."
쾌활한 미소를 뒤로 내뱉는 감상은 슬쩍 거절하기로 했다. 에만은 번쩍 들리는 것도, 빙빙 도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만약 그런 걸 당했다간 믿었던 사람이 결국 나를 완벽한 꼬맹이로 취급한다며 자신의 방 이불 밖에서 나가려 들지 않을 사람이었다.
가볍다고 해도 정말 괜찮을까, 하던 생각은 여인의 팔뚝 근육에 적당히 물러난다. 근육으로 꽉 들어찬 것이 후드 너머로도 보인다. 에만은 시선을 여인의 팔에 한 번, 그리고 허탈히 웃는 여인의 얼굴에 한 번 두었다. 적어도 이 작은 여우의 눈에는 여자 팔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다는 양.
"여자 팔이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는걸.. 나는 좋아."
입발린 말처럼 들린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제법 편견 없이 자랐기에 여인의 팔이든 남성의 팔이든 상관없었다. 누군가의 노력이 있으면 그걸로 된 것이고, 아름답든 추하든 여인은 지금 에만의 눈앞에서 여인으로 남아있다. 그거면 족하다. 다른 건 필요 없다. 온갖 보물과 도시의 비밀을 손에 넣는다 해도 여인으로 남아있는 것보다 가치가 있을리도 없다.
무릎 위에 앉아 여인을 가만히 보자니, 이젠 또 나른하게 웃는다. 그게 또 익숙하지 않아 몸을 배배 꼬니, 자연스레 품에 기대 고개를 비비는 꼴이다. 순진한 눈망울로 여인을 바라보던 에만은 몸을 꾸물꾸물 움직인다. 무릎 위에 앉으라곤 했지만 어떻게 앉으라 지시하지 않았으니, 돌아앉게 되어버린다.
무릎 위에 몸을 돌리면 여인을 마주 보는 자세다. 그렇게 가장 가까이에서 빤히 여인을 쳐다본다. 조금만 허리를 뻗었다간 입이라도 맞출 수 있을 것처럼 가깝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다, 또 처음의 그 감질나던 버드키스를 입술 위에 쪽 얹어보려 한 것이다
"..당신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래도 괜찮다고 생각해..?"
짓궂은 돌려 묻는 말에 교양 있게 대처했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마음이 어떤지도 동시에 물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에만은 답을 기다리듯, 무릎 위에 마주 보고 앉아 눈을 순진하게 끔뻑인다.
그래도 3시 이전에 졸다니 나 대단해.. 아이스 된찌..ㅋㅋㅋㅋㅋㅋ... 나아는 아무것도 몰라아👀
으으이으이으 더 놀고싶은데 자야겠어.. 안 되겠다..🥺 로로주 많이 좋아해서 같이 오래 있고 싶은데에.. 꿈에서 놀면 되겠지..?🤔🤔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근사하고 행복한 일만 있길 기도할게! >;3 좋은 꿈 꾸고, 좋아해..(꼬옥)(부빗) 자자아.. 잘자아..🛌🛌
저런... (쓰담담) 그래도 생활패턴을 바꾸기로 한 효과가 벌써부터 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나도 오래 같이 있고 싶지만... 응, 곧 따라갈게. 먼저 가있어. 저녁에 에만주를 만날 생각만 해도 어떤 하루라도 근사해지니까, 너무 마음쓰지 말고. 에만주도 좋은 꿈 꿔. 잘 자요. (번쩍 들어안음) 같이 자러 가야지 어딜 도망가시나! (쭈-왑)
당신의 눈이 모가 난 것은 알고 있었다. 무언가가 당신의 탐욕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것이 당신의 눈을 그렇게 모나게 뜨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속을 간지럽히는 것과 어쩌면 같은 녀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의 탐욕을 자극하는, 자신의 마음속을 간지럽히는 그 무언가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페로사는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릎 위에 앉으라고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당신을 부르다가, 부스스하게 내놓는 감상에 키득키득 웃는 것뿐이었다.
"다행이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는 당신의 어깨를 그 팔로 받쳐안아 자신의 품 안에 뉘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리모컨을 집어들려 했다... 그 손이 멈춘 것은 당신이 자신의 무릎 위에서 자신에게 돌아앉았기 때문이다. 나른하게 웃는 얼굴로 물끄러미,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푸르른 당신의 눈을 페로사는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깐 말문을 잃었다. 당신의 눈에 가득 담긴 그게, 이름을 잊어버린 그것이 넘실대는 게 보이는 것 같아서 절로 숨을 죽인다. 이대로 침묵하게 되면 무언가 일어나게 될 것 같아서, 페로사는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그러나 그 말문을 당신이 막아버렸다. 입술 위에 쪽 하고 내려앉는, 솜털같이 부드럽고 서늘한 입맞춤을. 짧은 입맞춤이었음에도 페로사가 입을 열지 못한 것은, 당신이 그 뒤에 덧붙인 말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것이 건드려버린 무언가다. 자신의 심장이 평소보다 빨리 뛰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심장을 채우는 이 따뜻한 피에 무엇이 실려있는지를... 그것의 이름을 알아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부터 심장이 몇 배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그렇잖아도 붉은 편인 그녀의 피부 위로 붉은 혈색이 서서히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가슴팍에서 무언가 와지끈, 하고 뛰쳐나와 당신을 잡아채어 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이 마음을 어딘가 쏟아낼 데가 필요했다. 페로사는 천천히 손을 들어, 당신의 뺨을 거머쥐었다. -다 너 때문이야. 하고, 터무니없는 책임전가를 마음 속으로 뇌까리면서. 그리고 그녀는 당신에게 깊게 입을 맞춰왔다. 욕심껏, 끈질기게, 숨이 모자랄 만큼. 리모콘은 소파 옆자리에 내팽개쳐진 지 오래였다.
"깜찍하네."
입맞춤이 끝나고 말을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숨을 고른 후, 그녀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하면 안 괜찮고, 자신에게만 해줬으면 하는 일... 벌써 오늘 하루 너한테만 해준 일이 많은데, 하고 항변해보려고 해도, 그럴 수도 없다. 당신도 오늘 하루 자신에게만 보여주고 해주고 들려준 것이 많아서다. 그러면 이것도... 페로사는 뺨을 감싸쥐었던 손을 옮겼다. 당신의 아랫입술을 그녀의 엄지손가락이 한 번 훑는다.
허벅지 위는 다행히 불편하지 않았고, 팔은 든든하며, 품 속은 여전히 따스하다. 마주 보듯 앉는다고 해서 그 법칙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나른하게 웃는 얼굴을 가까이에서 마주한다. 조금만 더 기울이면 입술이 닿을지도 모르는 거리를 다시금 체감한다. 눈더미에 지는 그림자처럼 새하얀 색조를 지닌 눈동자가 당신을 훑는다. 잠긴 후드 집업에 가려졌으나 온기가 느껴지는 몸, 감싸 안은 팔. 현재까지는 탐욕 없이 순진무구하게 앉았으니 으레 그렇듯 보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세로로 길쭉하게 찢어진 동공이 당신의 눈을 정확히 마주했을 때는, 에만 자신도 잠시 흔들린 것 같다. 나른한 미소를 그렸지만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는 바다를 보듯 푸르른 눈동자가 한없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침묵 속에서 고민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넘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을 텐데. 이름이 무엇인지 감히 정의조차 내릴 수 없는 이 감정을 지금 당장 드러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텐데. 당신이 내가 가진 감정을 같이 가지고 있을 리도 없는데. 방금 전 체념했는데, 감정은 눈치도 없이 또 꾸물꾸물 기어올라 기어이 이 사달을 만든다. 아주 잠깐만, 한 번만 드러내도 괜찮지 않으냐, 조금만 보여도 좋은 설득이 될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전부 이 도시에 살아가는 광인에 불과하지 않으니. 속삭이는 감정에 지고 말았다. 결과는 3초도 되지 않을 입맞춤이었다.
에만은 당신이 탐나지 않더냐 돌려 물어보던 것에 제법 교양 있게 답했다 생각했다. "대답이 느린 건 싫어.." 짧은 시간 동안, 이 상황에 대한 답을 조그맣게 촉구한 것은 이 침묵이 이유 모를 불안감 때문이다. 당신이 이 마음과 같지 않으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 그렇지만 침묵의 순간 뒤로 당신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진다. 잠깐의 탐욕을 비추고 순진무구하게 자세를 편히 하듯 몸 위에 손을 얹다, 제법 거센 고동을 느꼈던 것 같다.
"…페로사?"
자각이 무섭게 뺨에 온기가 닿는다. 따뜻한 손바닥에 고개를 기울이다, 깊게 입을 맞춰오자 눈을 감는다. 팔을 쭉 뻗어 당신의 등 뒤로, 그리고 목덜미에 감아낸다. 말 대신 가르랑대는 작은 숨소리가 새어 나오고, 등 위에 얹혀있던 가느다란 손가락이 피아노를 치듯 손끝을 세워 쓸어내듯 했다. 끈질긴 욕심에 목이 물린 어린 짐승이 겨우 발버둥 치는 꼴이었다. 차갑게 만들어진 식후주는 어느새 잔에 서름하게 냉기가 맺힌다. 깊은 입맞춤이 끝나 입술이 떨어지면 에만에게 생기는 변화는 늘 같다.
"내가..?"
헝클어진 머리, 새근새근 모자랐던 숨을 돌리는 모습, 발그레 상기한 뺨과 열감에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와 입술.. 다만 반쯤 풀렸어도 이번엔 치뜨고 불만스레 쳐다본다는 점이 다르다. 꼬맹이에 이어 깜찍하단 말까지 나오니 아무리 좋은 대답이라 한들 내면적으로는 불만이다. 그렇지만 그 깜찍하단 말도, 혼자 불러준다면 대놓고 불만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여우는 욕심이 많으니까. 오늘 하루를 같이 내어줬으니 당신도 내어줘야지, 입을 맞춘 만큼의 대가를 보여줘야지.
"…당신이 바란다면 나도 바라게 될 거야."
에만은 엄지가 아랫입술을 훑자 눈을 살짝 내리깔더니, 어색하게 무언가를 따라 한다. 이전에 당신이 바에서 자신의 검지에 깊은 탐욕을 짓누르듯 입을 맞춘 것이 떠올랐던 것 같다. 작고 어색하지만 촙, 하는 소리가 났다.
"왜냐면, 당신의 소망이 나의 소망이니까.. 그러니까, 나에게만 불러줘."
내리깔린 시선이 반쯤 들려 당신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작고 힘없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눈을 쳐다보면 살포시 휘어 있었다.
깜찍하다는 표현은 일종의 도피였다. 당신이 남긴 입맞춤, 온기, 욕심, 조그만 손길, 손을 마주쥘 때면 손안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움찔거림, 고운 눈웃음 안에 담긴 새하얗게 보이리만치 막막히 말간 푸른 눈, 헝클어진 머리카락... 품안에 안겨올 때 느껴지는 서늘한 체온이며, 힘을 잘못 주면 깨어져버릴 것 같은 가녀린 무게감... 그런 가늘고 가녀린 몸에 한가득 담겨서 자신에게 표현하는 욕심. 그걸 곧이곧대로 말해버리면 당신과 보내는 시간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남게 됐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될 것 같아서 일부러 표현을 돌려한 것인데-
그것마저도 열기 머금은 눈가를 불만스레 뾰루퉁하니 치켜뜨는 것으로, 당신은 막아버린다. 사실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마당에야 그렇게 막아서도 부질없다.
"깜찍하다는 말이 싫으면, 예쁘다고 해줄까? 아니면, 사랑스럽다고 해줄까."
돌려말하는 건 싫어해? 하며, 페로사는 당신의 헝클어진 머리를 가볍게 쓸어 가다듬어주었다. 아랫입술에 와닿는 말랑하고 여린 당신의 입술의 감촉이 간지러워서 가볍게 웃는다. 간지럽다. 아까전부터 자신의 마음을 간질이고 있던 것과 똑 닮은 간지러움이다. 문득 더 머금고, 더 괴롭히고, 더 욕심부리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또한 그만큼이나 욕심부려지고 싶어졌다. 당신의 입술 위에 닿은 손가락이 멈춘다. 그녀는 곱게 눈웃음을 지은 당신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끌어당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당신의 코앞에서 멈춰선 채로, 그녀의 입술이 조그맣게 움직이며 당신의 입술 위로 자신의 숨을 얹었다.
"내가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해주는 게 아니라, 네가 나를 원했으면 해."
하며 페로사는 당신의 턱에 얹은 손으로 당신의 얼굴을 받치고 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것처럼.
"한 번만 더 입맞춰주면, 너한테만 자기라고 불러줄게."
다가가지 못한다면 이 쪽에서 끌어당기는 수밖에는 없다. 그렇게나 욕심이 난다면 욕심을 부려줘. 나를 원해줘.
페로사: 250 배는 얼마나 자주 고픈가요? "음- 남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먹는 양에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177 겉 모습과 성격,행동의 갭은 어느정도? "몰라, 나는 나고 나답게 꾸미고 다니니까. 그런데 종종 날 더러 귀엽다고 하더라고." "이게?" (팔근육 과시)
075 비싼 옷 적게사더라도 오래 입기 vs 싼 옷 많이사서 짧게 입기 "둘 다 하지? 비싸게 주고 오래 입을 생각인 좋은 옷도 있고, 편하게 막 입는 옷도 있어. 다들 그렇지 않나?"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너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주의를 주자면?" 페로사: 흠. 미리 줘야 할 주의라... 뭐,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주자는 정도려나? 그런데 그건 기본 매너잖아. 딱히 없는 것 같은데. 페로사: 그냥저냥 얼굴 트고 지내는 것 이상의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주의를 줄 게 있는데, 페로사: 이번에.. 어느 애가 그럴 틈도 주지 않고 날 들이받았어.
"혹시 여기 이 부분에 대해 가르쳐 줄 수 있어?" 페로사: 미리 말하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에 관련된 거면 내가 딱히 도움이 되지 못할 거야.
"원하는 사람 한 명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어떤 자를 고를래?" 페로사: ... 페로사: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자유가 될 수 있어. 페로사: 한 명이면 돼, 한 명이면. 페로사: 누구인지는 말하기 좀 그렇고.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770083
페로사 TMI 주세요! 우리 페로사... 잘 먹는 음식이 궁금해요! "치즈와 고기는 언제나 옳지. 아, 연어도." 좋아하는 꽃은 있나요? "어─" "아직 나는 이 꽃을 제일 좋아한다고 내세울 만한 꽃은 없는데." 귀여움 속성이냐 멋짐 속성이냐 하나만 고른다면? "내가 생각하는 나는 둘 중에 어느 쪽이냐면 후자인데 종종 누가 날 더러 전자라더라고?" #shindanmaker #님캐TMI주세요 https://kr.shindanmaker.com/1084363
에만은 아직 어리지만, 그 이전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나이부터 시작되는 사람 간의 고전적인 유혹 게임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그 분야에서 일인자에 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서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달이 나는 상황에 직면하면 일인자에 선 사람들은 유연히 대처하곤 했으나, 에만은 게임의 하위권에 존재할 정도로 서투르기에 돌려 말하는 것도, 당기는 법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론상의 일인자가 되는 공식이 있을 뿐이지, 실제 게임을 시작하면 정론은 없다. 지금처럼, 이 서투른 여우는 자신만의 작은 방법으로 늑대를 이겨보고자 하고 있었으니. 에만은 머리를 쓸어주자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다.
"다 듣고 싶다고 하면 욕심일까.. 싫어해,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당신에게는 솔직하게 듣고 싶어.."
가볍게 웃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게 된다. 한 번 더, 손가락에 입을 맞추며 시선을 마주한다. 고운 눈웃음을 짓게 된다. 일부러 잘 보이기 위해 짓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이 좋은 건지 자연스럽게 지어진다. 지극히 본능적인 모습이지만 언제는 안 그랬을까. 가까이 끌어당기면 얌전히 끌려온다. 힘없는 모습이 타인보다 유독 두드러진다. 힘을 줘 반항해도 당신이라면 쉽게 끌고 올 것만 같다. 또 당신의 홍채가 보일만치 가까운 거리다. 숨을 가다듬은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숨이 또 얹히는 걸까.
"내가.. 당신을 원했으면 좋겠어?"
다가가지 말까? 아니면 다가갈까. 여전히 유혹 게임은 어렵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몇 편이고 봐도 실제로 따라 하기가 어렵다.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일단 앞으로 나아가면 될 일이다. 에만은 눈을 동그랗게 뜨다, 부스스 미소를 지었다. 그런 조건을 붙이지 않아도 입을 맞춰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러면 입을 맞출 수밖에 없다.
"욕심쟁이."
짧게 속삭이며 손을 뻗는다. 당신의 뺨을 서툴게 더듬다, 천천히 손을 뒤로 쓸어주듯 움직여 귀를 스치고, 머리를 쓸어본다. 그리고 끌어안듯이 입을 맞춰온다. 다가오지 말라 했음에도 결국 성큼 선을 넘어버렸다. 서툴지만 말갛고 순수한 탐욕이 차있다. 당신만치나 끈질기진 못했지만 같은 마음인 것을 알려주듯 자신의 선에서는 최대한 깊은 듯싶다.
"..아."
입술이 떨어질 적엔 참지 못하고 작게 웃음을 흘려버렸다. "넷플릭스 보기로 했는데." 어쩌다 유혹에 넘어가선, 이렇게 된 걸까.
사람이 포악해지는 순간은 주말 심야에 갑자기 들어오는 '네' 거친 연락과 불안한 격리해제 이후 술자리와 그걸 지켜보는 나라고 하더니만.. 친구가 술마시다가 필름이 끊겨서.. 가장 최근에 연락한게 나고.....(이후 깊은 현타에 잠긴 눈길로 생략..) 아무튼 데려다주고 왔어..🤦♀️
로로 귀여운데~ 팔 근육을 과시해도 귀여운 건 귀엽다!! 로로주도 귀엽다구(꽁기꽁기 올라온 로로주 쓰다담)(토닥토닥팡팡)(쫍!) 들이받았...👀👀👀 괜찮아 로로가 용서해줄거야..(아님) 멋짐 속성이라고요? 귀엽고 멋진 멋쁜염염 속성이라 해주세요.. 떡밥도 나중에 꼭 털어주시구요(?)
로로.. 누가 대사 하나하나 요망하래.. 같이 사라지자.. 아니 같이 살자.. 아니 우리의 세계를 만들자.. 아니 하..로로야.. 별 하나에 로로야.. 로로야.. 페로사 몬테까를로..(앓다 죽음)
페로사는 게임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인자를 원하는 것도 아니었고, 전문가를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었다. 돌려말하는 건 싫냐는 그녀의 질문에 당신이 싫어한다고 답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당신에게 말했다. 내가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해주는 게 아니라, 네가 나를 원했으면 해, 하고.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욕심쟁이라는 타박이 얼마나 앙증맞은지는 차치하고, 그것은 합당한 비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 내가 널 원하듯이. 너는 그러고 싶어?"
당신의 뺨을 잡아 자신의 입 앞까지 다가붙인 채로, 그녀는 속삭이듯이 반문했다. 마치 다 안다는 듯이. 여태껏 본능에 충실해온 당신이지만, 당신의 본능이 처음으로 겪어보는 지금 이 상황이 가져다주는 혼돈 속에서 당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안다는 듯이. 그런 당신에게 그녀는 마치 통행료처럼, 자신이 당신을 마음에 담았기 때문에 당신도 그에 답례해준다는 느낌이 아니라 당신이 자신을 원해서 마음에 담고 싶어한다고 말해주기를 요구해오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그녀의 대답이었다. 새삼스러울 일도 없다. 당신의 견해는 마땅한 것이었다. 모두가 저마다의 욕심에 취해 허우적대는 광기의 도시. 그녀의 삶을 이 도시에 대어보자면, 청빈하고 순결한 수녀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었다. 의미 없는 삶이라는 기도제목 아래에서 누구에게도 바쳐지지 않고 사그러져 말라붙어갔어야 할 그 모든 욕심을 일깨워낸 것은 다름아닌 당신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당신의 손길을 마음껏 만끽했다. 뺨을 더듬고, 귓가를 지나, 머리카락까지, 당신의 손이 닿는 어디든 그녀는 기꺼이 고개를 기울여 당신의 손에 한가득 자신을 쥐어주었다. 질겨도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와, 곱슬곱슬해서 윤기가 가득해 손에 부드럽게 엉켜오는 머리카락... 그리고 한가득 따뜻하고 축축한 온기를 머금은 풍만한 입술과, 그 안에 고여있는 욕심까지 모두. 짧지 않은 입맞춤이 끝나고, 흐릿하고 가는 궤적을 당신의 아랫입술에 한 번 더 입맞추는 것으로 지워낸 페로사는 가볍게 숨을 가다듬었다.
"넷플릭스를 보고 나서 해도 돼. 오늘 밤은... 우리 거니까."
당연한 표현이다. 확실히 명시적으로 당신은 오늘 밤을 그녀와 함께 보내기로 했으니까. 그러나 그것에는 명시적 의미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만 같았다.
페로사: ...할만하지? 서로 체온을 나누고, 향기를 섞고...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페로사: -자면서도 내가 들어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잖아. 거기다가 넌 아직도 잠이 많이 모자라니까. 페로사: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네 손으로 내 머리를 잘라줄 생각이 아니라면 이 머리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페로사: ...(꼭 안고 침대로 풀썩 자빠짐) (별 거부감도 없이 이불 같이 덮음) 으으응. (자세 고치면서 꼭끄랑)
당신이 나를 원하듯 나도 당신을 원하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혼돈 속에서도 끝까지 부정하던 감정은 푸르른 홍채를 마주하고는, 결국 그렇다고 답한다. 처음에 원하던 것과는 궤를 달리하게 되어버렸다. 당신을 그저 자신의 흥미를 채우고 쓸만한 패로 봤는데, 고작 두 번 더 만났다고 이젠 자신의 빈 삶을 채울 존재로 보게 되었으니 속으로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졌다. 사람답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발 들였는데, 결국 일말의 온정을 잊지 못했음은 제법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응, 그러고 싶어."
그렇지만 살아온 삶을 일부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어도, 당신에게 부정당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 에만은 잠시 침묵하다 입술을 오물거리듯 하더니 당신에게 답을 톡 뱉었다. 결국 당신에게 답례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건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내게 그렇게 다가오지만 않았어도. 또 제멋대로 남 탓을 속으로 쌓아두었다.
짧은 애정의 표시와 긴 입맞춤. 당신을 한가득 쥐어보고 온기를 만끽하다, 기어이 욕심을 냈지만 아직 서투르다. 고여있는 당신의 욕심을 한가득 삼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더니, 흔적을 지우듯 당신이 다시금 짧게 입을 맞춰올 때는 몸을 움찔 떨었다.
"으응."
작은 앙탈과도 같은 외마디. 이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향락 중에서 가장 약한 축에 드는 것인데, 약을 한 것처럼 몽롱하기만 하다. 계속 깊게 빠져들고 싶은 중독성이 있으며, 조금만 손대도 반향이 크다. 작게 웃어버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때는 온정보다 약이 더 좋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약보다 이게 훨씬 좋다 불현듯 떠올렸으니까. 우스운 일이다. 참 우스운 일.
"…응, 우리 거지.. 그렇지만.."
당신의 품에 파고들듯 몸을 기울인다. 속에 담긴 의미를 안다는 듯, 품에 파고들며 온기를 만끽하듯, 어리광을 부리듯 한 번 작게 바르작댄다. 친애를 표하는 고양이처럼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입을 작게 벙긋거렸다.
"나는 모르는 게 많고, 욕심도 많은걸……."
겨울 색, 하얀 눈더미 쌓일 때 지는 그림자 색, 유령 색…….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을 눈동자가 곱게 휘더니 작게 키득대는 소리가 들렸다. 두 팔을 뻗어 목덜미를 끌어안아 당기며 나지막이 속삭인다.
아.. 진통용도로는 예외. 다만 그거에 중독된 낌새를 보이면 큰일날지도. 에만을 위한 아편굴이 생길 거야... 모르핀 같은 진통제 계열 마약이 진통용으로 쓰일 때에는 중독성이나 의존성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어봤으니 괜찮을 것 같지만. 캐릭터의 사상은 오너의 사상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페로사주는 모든 종류의 약물 오남용, 납치 감금 등 타인의 자유로울 권리를 무단으로 훼손하는 행동에 반대합니다.
쪽 하면... 가중처벌이야... ^.^
페로사: ......! (용왕의 품에 안겨들려 있던 에만이 페로사에게 달라붙는 난처한 상황) (에만의 팔을 목에 건 채로 용왕을 에만째로 번쩍 안아드는 페로사) 당황스럽겠지만 인사는 나중에 나누자고. (수술실로 전력질주) (수술실에서 병원용 이동침대를 끌고 달려나오던 의사들과 마주쳐, 멈춰서서는 용왕을 내려두고 용왕과 힘을 합쳐 에만을 병상 위에 누임) ...얘, 우선 수술부터 받고 나와. (울먹) ......수술 끝나고 나면, 같이 이야기 좀 해보자...? (울먹이는 눈이 활활 타오름)
딱히 그런 상상까지는 안 해봤다. 그저 오늘 이 바에서 안면을 튼 친구가 지내는 거처가 거처치고는 너무 초라해보이고, 자신도 당신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동의한 참에 자신이 갖고 있는 조촐한 집에서 하루 푹 쉬기를 청한 것이 받아들여졌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넷플릭스를 보자는 그 말도 조잡한 장난질인 줄로만 알았다. 아마 저녁식사를 하고, 서로 농짓거리를 하며 깔깔대다가, 적당히 재밌는 영화 한두 편만 보고 푹 자게 될 줄 알았지. 자신의 입가에 남은 피냄새에 기꺼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입을 맞추어온 당신의 노골적이면서도 순결하기 그지없는 그 욕심 한 토막을 가장 생생히 접하고도 안일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해버린 것이다.
나는 어쩌다 당신에게 이렇게까지 빠져버리고 만 걸까. 어쩌다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당신을 붙들고 나를 마음에 담아달라고 강요하고 있는 걸까. 작은 짐승의 조그만 앙탈 같은 이 외마디를 어떻게 물들이고 싶어하는 걸까. 나는 감당할 수 없을 텐데.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르는데. 당신이 이 도시의 그늘에 어딜 얼마나 깊이 담구었는지도 알 수 없는데.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향하게 될 텐데.
아아.
"그러면, 알려줄까?"
나는 정말이지 미쳐버리고 만 모양이다.
"욕심부리는 법."
달. 서양 문화권에서는 흔히 달을 광기에 빗대고는 하던가. 나른한 눈웃음을 띄고 가늘게 뜬 그녀의 푸르스름한 눈이 넷플릭스 메인 화면이 떠 있는 tv 불빛만이 어슴푸레하게 조명을 비추고 있는 거실 가운데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한 쌍의 초승달 같았다.
귓가에 대고 속삭인 그녀는, 입을 벌려 탐욕스럽게 당신의 귀를 희롱했다. 그때까지도 당신의 턱을 붙들고 있던 그녀의 엄지손가락이 당신의 입술을 비집고 파고들어와 장난이라도 치듯 당신의 입안을 탐닉했다. 그녀의 가슴팍이 당신을 부드럽게 떠밀었다. 그녀의 다른 팔이 당신의 등을 붙잡고 당신을 서서히 소파 한켠에 밀어눕혔다. 풀썩 풀썩 하고 그 바람에 밀려난 쿠션더미에서 쿠션 두어 개가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모든 것이 당신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속에 있는 무언가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내고 부수어 버리고 싶다고. 당신이 불태워버린 것을 받아내고 싶다고. 아니 어쩌면, 더, 더 불태워 달라고.
그렇지.. 고문하는 선후배 사이도 아니고..🤔 사실 당시에 용왕님 부서는 고문, 배신자 전문 암살 부서니 신원의 안전 문제로 각자 자신을 상징하는 동물 가면을 쓴다는 설정이었는데, 용왕만 고문실에서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는 독보적인 또라이었으니...(끄덕) 지금은 김에만 우당탕탕에 너는 그 우당탕탕을 꼭 내가 오이팩 하고 있을 때 해야겠니? 가 되어버렸지만...(먼산)
에만: 미워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에만: 나도 사랑해, 페로사..(바스스) 에만: …내가 어떻게 당신을 말릴까..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해, 자기..(언고 싶지만 링겔 때문에 팔을 쉽게 뻗을 수 없음)(시무륵)
허어어 요망하기는.. 우우우우~~ 으악ㄱ 폰 모로 보고 있다가 엎어졌다.. 답레는.. 오전중에 줘도 괜찮을까..?🥺 드디어 수면시간 정상화?에 성공한 것 같기도 하고..(술때문이라고 죽어도 안 믿는 중)(자기합리화)
로로주도 일찍 자자아.. -0-.. (꼬옥) 오늘은 월요일이니까, 한주의 시작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새벽에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 오늘은 정말 근사한 하루가 될 것 같아.🥰 로로주 좋은 꿈 꾸고, 근사하고 개운한 하루 되길 바랄게.(쪽) 좋아해, 많이많이!(안고 침대로 폴짝)(폭신)(부빗)
아니, 내가 에만주 취향저격을 엄청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할래. (철면피) 이번에는 용왕님이랑 돌려도 재밌겠네. 나도 다른 부캐들을 좀 데려와볼까 🤔
페로사: (에만 어깨 꼭 끌어안아주고 쪽) 페로사: 나는 네 방패니까... 네가 낫는 동안은 너랑 계속 있어줄 생각이야. 페로사: 잡아족치는 건 믿을 만한 다른 친구들한테 맡겨볼까 싶어.
응응 답레는 나중에 써도 좋아. 이제 월요일이니까 굳이 오전중에 줄 필요도 없고 천천히 해. 술.. 적당히 마시면 좋지. 잠 잘 오고. 괜찮아 괜찮아. 푹 자. 응? 오늘도 같이 행복한 시간 보내줘서 고마워. 에만주랑 만난 이후로 매일매일이 새롭고 근사해. 에만주도 개운하게 잘 자고, 비록 월요일이지만 가장 덜 힘든 월요일을 맞이하기를 바라. 나도 좋아해. 으아악 (침대로 끌려감) (꼬오옥) 잘 자.. 😴
조촐한 휴식이었다. 온기가 있는 휴식, 온기가 있던 거처, 외롭지 않던 저녁식사, 별다를 일 없을 넷플릭스와 휴식. 그렇게 생각하던 것이 산산이 부서진다. 피로 시작한 만남은 오늘 하루가 조촐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예견했던 것이 아닐까, 순수한 욕심을 너무 드러냈던 것은 아닐까, 오늘 하루 내내, 아니, 처음 만난 이후부터 줄곧 생각하고 느꼈던 사실이지만, 이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무르고 이상해진다. 결정하지 못하고 수십 번을 갈팡질팡 했다. 결국 삶을 부정 당해도 괜찮고, 되레 더 부정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이겼다. 조금만 더, 더, 깊게, 그렇게 내가 완전히 부정당할 때까지.
오만하고 같잖은 자존심이 지금껏 그 사실을 허용치 않으려 바득바득 기어댔으나, 이젠 그마저도 흐무러진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 킬보드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당신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어 이 끝이 제대로 된 결말일지, 파국일지도 모르지만. 에만은 외마디 소리를 내곤 품에 기대며 뺨을 비빈다. 그렇지만 내 언제 파국으로 향하지 않던 결말로 가본 적이 있나? 도시에서 미친 사람으로 규정되지 않은 적이 있었나? 이 정도 모험을 감수하지 못할 사람도 아니거니와, 파국으로 치닫는다 해도 이미 깊게 빠져버린 이상 돌이킬 수 없다. 온기를 만끽해버린 이상, 벙긋거리며 속삭일 뿐이다. 목덜미를 안은 팔 때문에 당신에게 매달리듯 하며.
"알려준다면, 기쁠 거야……."
나는 배우는 걸 좋아하니까. 푸르스름한 눈이 달과 같다. 가늘게 뜨인 눈이 어슴푸레한 조명 사이에서 여상하게 빛난다. 에만은 그 빛에 홀린 듯 가만히 눈을 마주하다, 바스러질 듯 한 번 웃었다. 배움은 끝이 없고 파국으로 치닫는다 한들 만족하면 그만이다. 한 번 사는 인생, 망쳐도 보고 쥐어도 보며 가지고 싶은 것은 다 쥐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속삭이는 소리는 마냥 좋았지만, 귀에 와닿는 숨결과 명백한 희롱의 감각에 몸을 흠칫 떨었다. 한 번만 닿아도 몸을 웅크릴 정도인데, 계속되는 느낌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꼼질댄다.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려다 입술을 비집고 파고 들어오는 엄지에 말문이 막힌다. 한때 약에 취할 적 냈던 것보다 조금 더 떨리는, 가느다란 숨소리를 뒤로 떠밀린다. 상냥한 손길에 등을 맡기고 소파 한 편에 눕는다.
누울 적 풀썩 바람이 불어 부채꼴로 펴진 머리카락과 머리맡 아슬아슬하던 쿠션……. 비단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돌이킬 수 없다고, 무슨 바람이 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혀로 지그시 입안의 엄지를 누른다. 이내 우물거리듯 하며 샐쭉 웃어 보인다. 작은 도발 같기도 하나, 저도 모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작은 가르릉거림, 이내 품에 당신을 한가득 안는다. 안아야만 했다. 이제 당신을 온전히 가져야만 하니까. 쥐어야 하고, 그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해야만 하니까.
늑대는 여우를 앓았고, 여우는 지금껏 했던 약보다 더한 황홀감에 가득 취했다.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마티니는 한 입 떴지만 흐물흐물 녹아버려 도무지 수저로 떠먹을 수 없다. 넷플릭스 화면이 스쳐 지나갔지만 집중할 수 없다. 고장 난 인형처럼, 보지도 않고 계속 수저로 녹아버린 마티니를 떠먹으려 시도했다. 옷을 입긴 했지만 부스스하다. 세상의 진리를 깨닫고 넋이 나가버린 광인들이 딱 저런 모양새인데, 에만이 정확하게 그 예시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 이젠 입에 대지도 못하고 수저로 휘젓기만 한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말하자면.. 에만은 먹지도 못했으면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애초에 잔에 쿠키 부스러기를 리밍해놓은 것이라, 떠먹는 것이 아니라 잔을 기울여 마시는 칵테일이었으니 음용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차가움과 얼음의 질감이 많이 무뎌진 것이 아쉬울 뿐. 애꿎은 땀방울만이 송골송골 맺힌 마티니 잔에 담긴 내용물은 그러나 그 덕에 오히려 좀더 선명한 향기를 내고 있었다. 온도가 올라오자 알코올향이 조금 더 두드러진다.
"그래?"
하고, 나직하고 나른한 목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목소리가 흘러나온 곳에는 페로사가 있었다. 아까보다 좀더 태만한 자세로 모로 기울어져 있는 여인은 옷을 조금 바꾸어입고 있었다. 목까지 채워올렸던 후디의 지퍼는 배꼽까지 내려와 있고, 하의가 돌핀팬츠로 바뀌어 있었다. 감정에 한껏 온몸을 내던진 흔적이 그녀의 모든 부분에 역력했다. 당신이고 그녀고 하나같이 격류에 한 차례 휘말린 것 같았다. 아직도 열감이 남아있는 얼굴과, 힘이 풀어진 눈가. 온통 흐트러져 있는 금발. 그녀는 빨갛게 남은 당신의 흔적들을 한번 살며시 쓸어보았다. 따뜻하고 간지럽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의 목 주변에서 당신의 머리로 손을 옮겨, 당신의 부스스하게 헝크러진 머리를 쓸어보았다.
"좀 더 따라줄까?"
그녀는 나른하게 웃는다. 냉장고에 넣어둔 것이라면 만들고 난 직후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원래의 맛대로 먹을 만할 것이다. TV에서는 어느 서슬에 틀었는지도 모를 영화가 흘러나오고 있다. 라이언 고슬링이 자신의 차에 탄 강도들을 5분이 지났다고 쫓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TV에서 흘러나오는 OST를 따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I'm giving you a night call to tell you how I feel 밤에 네게 전화를 걸어, 내가 느끼는 걸 말하려고 I want to drive you through the night, down the hills 너를 태우고 밤이 되도록 언덕 아래까지 달리고 싶어 I'm gonna tell you something you don't want to hear 나는 네가 듣기 싫어하는 무언가를 말할 거야 I'm gonna show you where it's dark, but have no fear 어두운 곳이 뭔지 보여줄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There's something inside you 네 안에 무언가가 있어 It's hard to explain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They're talking about you boy 그들이 너에 대해 말하고 있어 But you're still the same 하지만 넌 아무렇지도 않지
기울여 마시는 잔인데 굳이 수저를 든 이유는 마시기 위해 잔을 들었으나 손이 덜덜 떨리기 때문이었다.. 고 에만은 변명하고자 했다. 결국 수저를 깔아둔 티슈에 탁 얹고는 쿠키 부스러기와 함께 마시고야 만다. 쭉쭉 들이키긴 여전히 손이 덜그럭거리니 무리고, 냉기가 무뎌져 알코올 내음이 두드러지는 달달한 마티니를 한 모금 겨우 넘겼다. 분명 30초도 안 된 시간도 전에, 먹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의식의 흐름대로 맛있다고 했지만, 막상 먹어보니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맛을 깊게 음미할 겨를음 없다. 아직도 에만의 정신은 저 멀리 어딘가를 유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저질렀다는 생각 한 스푼, 이제 큰일 났다는 생각 한 스푼, 산전수전 다 겪고 심지어 어른인데 왜 큰일 났냐는 자아와의 싸움 한 스푼, 좋았으면 됐다는 체념 한 스푼.. 여러 혼란이 서로 자신의 주장을 격렬하게 외치고 있었다. 정신이 나갈 법도 했다. 입을 잔에서 떼지 못하고 우물거리듯 대답을 뱉었다.
"응.."
덕분에 한 모금 더 먹게 됐다. 단 음식이 들어가고, 나직한 목소리도 들리니 자기가 더 미쳤다고 자랑하듯 싸우던 자아도 잠시 휴전에 돌입하고, 구역을 벗어난 정신도 이제 좀 살겠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온다. 눈을 흘끔 굴리니 여인이 보인다. 자신과 다를 바 없이 흐트러진 모양새다. 풀린 얼굴이나 어수선한 옷매무새, 그리고.. 에만은 시선을 피했다. 여인 만치나 자신도 엉망이다. 특히 뾰족한 이 덕분에, 당분간은 목이 드러나지 않는 긴 옷을 입어야겠다. 태만히 모로 기댄 당신의 품에 등을 기대듯 몸을 기울이며, 머리를 쓸어주는 손길에 고개를 맡겼다.
"다.. 먹고나면.."
말을 더듬대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라이언 고슬링이 나오는 영화는, 에만의 입장에서는 처음이었다. 아마 추후 터질 잔인한 장면에서 먹던 것을 내려놓고 천천히 품에 고개를 파묻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도시 사람이니 사람 쳐내는 건 일상이지만 이상하게 미디어의 잔인함에는 약했다. 당신의 흥얼거림에 고개를 기울이듯 턱을 슬쩍 올리며, 가만히 그 모습을 응시한다. 평화롭고 단란한 한때와도 같았다. 에만은 괜히 시선을 내려 잔에 리밍 된 쿠키를 야금거렸다. 쿠키 부스러기를 입에서 천천히 녹이듯 굴리다가도, 잇새로 자근자근 씹으며 당신에게 절대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는 양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리고 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두더니 몸을 더 뒤로 기울였다. 아예 푹 기대듯 하는 것이다.
이게 좀... 진짜... 에만주 글이 현장감이 생생해서 둘이서 나란히 영화 보고 있는 기분이라 힐링된다...(이런발언)
오늘도 고생많았어 에만주. 혐생이야 늘 예고도 없이 우릴 들이받는 못된 놈이니까.. 나도 오늘 씨게 받혔어.. (너덜) 체력 빠진 사람들끼리 부둥겨서 쉬어야지, 뭐. 에만주 답레를 보고 자러 갈 생각이었어. 어제 하루는 꽤 피곤한 하루였나 보네. 오늘 화요일은 에만주에게 좀더 상냥한 날이기를 빌게. 이제 자러 가자. 오늘도 만나줘서 고마웠고, 몸은 아픈 데 없고 마음은 에만주 덕분에 행복하니 됐어. 나도 늘 좋아해, 에만도 에만주도. (쪽) 조금 잡담을 하고 싶긴 하지만.. 에만주도 피곤해보이니까 잡담은 한가한 날에 하기로 하고, 자러 가자.
로로주도 혐생 때문에 고생이었구나.(보듬보듬) 로로주 말을 그대로 돌려서, 로로주도 상냥한 화요일이길 바라. 지금은 자고 있을까? 아니면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까..?🤔 어떤 시간이든 잘 보내고 있음 좋겠다. >:3..!! 나는 요즘 기절잠이 심해지고 있으니까아.. 서러워 서러워 서러워어 ;0;0;0;0;... 로로주랑 대화 많이 하고싶은데에에에
사위는 폭풍의 눈처럼 조용했는데 당신의 마음만이 웅성웅성 시끄러웠다. 우선 달콤한 것을 안에 들여 은근한 알코올 기운과 함께 시끄러운 내면의 의식들의 눈을 돌려놓고 나서야 어느 정도 제대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어떨까. 그녀도 당신만큼 혼란에 빠져있는 것을 나른한 미소로 감추고 있는 것일까- 하고 그녀를 바라보면, 적어도 당신만큼 혼란에 빠지진 않은 것 같았다. 후회도, 당황도 하지 않고, 그저 하루 저녁을 누군가에게 골몰하고 난 이 특유의 나른함만이 당신과 함께 있다는 행복감과 함께 드리워져 있을 뿐이었다.
그만큼 당신을 원하고 있었기도 하고, 자신이 주도했던데다, 당신이 그녀를 받아들이겠다는 시그널을 상당히 여러 차례 보냈던지라 아마 이런 상황에 대해서 당신보다는 훨씬 충격이 덜하겠지. "응, 더 마시고 싶으면 말해." 그래서 그녀는 훨씬 느긋한 태도로 당신을 품에 받아안으며 드라이버의 OST를 흥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면서 눈으로 당신의 목을 훑었다. 그녀의 눈에 그제서야 이 상황을 조금 낯설어하는 듯한 머쓱한 빛이 돌았다. 지금 구급상자를 가져와서 당신의 상처에 소독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그 생각이 들기 전에 당신을 먼저 품에 기대어누인 바람에 그러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OST가 페이드아웃됨에 따라 그녀의 노랫소리도 자연스레 끊겼다.
그녀는 이 순간이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품안에 꼭 안겨있는 왜소한 체격은 한때 품안에 안길 때마다 서늘했는데, 지금은 자신의 품과 별다를 바 없이 따뜻해져 있었다. 앞서의 다른 것들과 함께 당신에게 자신의 흔적을 충분히 남긴 것 같다고, 그녀는 무심코 생각하면서 TV 화면을 보며 저번의 그 드라이버 친구는 저렇게 5분만 태워준다고 쩨쩨하게 굴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는 잡담을 흘렸다. 그러다가,
"...어때?" 하고, 당신을 바라본다. "서로 체온을 나누고. 서로의 향기를 섞고... 지금 서로 같이 있구나, 하고 느껴보는 거." 아, 그때 바에서 했던 그 이야기인가. 스크린에서는 드라이버와 옆집의 여인이 만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영국 놈들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에만씨.. 엄마가 영국인이라 어..? 하며 고개를 들고 로로를 쳐다보고..(?)
에만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흑막으로_몰린다면 : 우와아아 •0•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럴 수 있을 사람으로 보인 거야..?"(평범하게 몰렸을 때)
"뭐라는 거야? 내가 왜? 돈 많이 주면 할 텐데, 그거 생명수당 안 주지 않아? 그러니까 안해, 안해-"(앨리스)
"…아니야, 이번엔.. 내가 그러지 않았.. 아니, 그러니까, 그게.. 아니야. 난 정말 아니야. 믿어줘."(페로사가 추궁했을 때)
"…너, 멍청하네. 내가 누군가와 같이 한다 생각하는구나."
에만의 모습이 뒤틀리듯 변했다. 흔히 대외적으로 알려진 '에만'의 모습이었다.
"내가 했어. 당연한 일이잖아."(페로사를 같이 의심할 때)
못생겼다는_말을_들은_자캐는 : 진심으로 안쓰럽단 표정을 지으면서..
"아.. 그렇구나.. 어쩔티비.." < ???
같은 말이나 하지 않을까.. 앨리스는 미쳤냐는 시선으로 쳐다보면서 "뭐래, 두족생물 같은게." 라고 반응하고..
천둥번개_치는_날_자캐는 : 비까지 내리면 김에만씨.. 사람을 썰어..(?) 로로가 곁에 같이 있어주는데 천둥번개가 치면 물리엔진 고장난 고양이처럼 화들짝 놀라서 후다닥 품 속으로 도망치지 않을까..?🤔 아니면, 먼저 잠들고 있었는데, 로로가 없으면 주변 둘러보다 냅다 이불 두르고 화이트씨 꽉 끌어안은채 우다다 달려와서 페로사에게 "비가 오잖아아아아.." 라면서 챱 달라붙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소위 말하는 어른의 관록이나, 연륜이라는 것이 저런 것일까? 자신은 난생처음 겪어보는 일의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했는데, 페로사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듯 평온하기만 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자신의 머리는 세상 모든 혼란을 다 떠안았는데 여인은 정 반대다. 어쩐지 그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심통이 난다. 물론 자신도 탐욕을 받아들이겠다 당당히 결심했지만, 막상 현실은 겪어보지 못했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자니 에만의 머리 구석에서 다시금 생각들이 제2차 전쟁을 위해 횃불을 들며 일어나려 들었기에, 에만은 아무런 말 없이 시선을 피하며 몸을 기대버렸다.
따스한 품 속은 오래 앉아 열이 스며든 빈백보다 훨씬 좋다.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좋아 잔을 내려두고, 무릎을 감싸 안으며 온전히 몸을 맡겨버린다. 움직일 때 머리카락에 쓸린 목이 조금 따갑지만 이 정도야 뭐 괜찮다. 무의식적으로 목을 쓸어 머리를 넘기고 다시금 화면에 집중했다. 쳐다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의식도 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흘끔 시선을 돌리니, 낯설고 머쓱한 빛을 마주하게 된다. 에만 자신도 이렇게 발견하게 될 줄은 몰라 잠시 머쓱함이 스쳐 지나간다. 괜히 품 속의 머리를 비비듯 하며 다시 화면으로 옮긴다.
아까도 생각한 거지만, 이 정도야 괜찮으니까. 누군가 칼로 찌르려 든 것도 아니고, 스친 총상도 아니고, 밧줄에 매달린 것도 아니요 그저 잇자국 남았는데 그게 뭐가 부끄럽겠는가. 이 도시에서 그런 자국 없는 사람 찾기가 더 쉬울 정도인데. 그렇게 남모를 합리화를 하며 자연스럽게 잦아든 목소리의 여운을 느끼듯 두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낯설고도 한없이 익숙하다. 너무 멀리 와서 돌아갈 순 없을까 망설이던 기회도 전부 걷어차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 믿었는데. 그게 당연했고, 돌아갈 수 없으니 빛바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완전히 다른 형태로 돌아와버렸다. 차갑고 서늘하던 몸은 지금 따스한 온기에 덥혀져 있고, 품은 인형이나 쿠션 더미가 아닌 누군가의 실제 온기다. 자신에게만 이 흔적이 남았을까, 아니다. 여인도 자신의 흔적이 남았다. 물리적인 것 말고도 내면적인 것으로도. 글쎄.. 그 친구, 영화 봤다고 얘기하면 째째하게 구는 거 아닐까.. 짧은 잡담을 나눈다.
"…뭐가? ..아."
체온, 향기를 모조리 섞고 실존을 느끼는 행위. 끔찍하게 싫다는 뉘앙스로 답했고, 자신은 그러지 못할 거라 선을 그었던 날을 떠올린다. 하물며 현관에서 포옹할 적에도 섞이지 못하면 미카엘은 또 윈터라는 모습을 만들어낼 생각까지 했는데. 에만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선뜻 뱉기 어려운 말인지 입술을 오물거렸다. 자존심은 내려두자. 이미 엎질러졌으니 그게 좋겠다.
(어찌저찌 이었지만 어딘가 불만족인 도자기공) 우우우..!!(깨장창 하려는 것을 겨우 막아냄) 피곤해서 그런 건가.. 답레 쓰기가 갈팡질팡..🥺 오늘도 별로 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로로주랑 같이 있다는 점에서 행복해. 먼저 자러 갈게요 ;0;.. 오늘은 비가 온대, 그렇지만 눅눅하지 않고 보송보송한 하루가 됐음 좋겠어. 늘 좋아해요, 잘 자요..!(쪽)
모든 답레가 다 완벽할 필요는 없어. 최대한 아름다운 장면이어야 할 답레가 있는가 하면 다음 상황을 끌어오기 위해 담백하게 쓰는 답레도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 괜찮아요 괜찮아. 그리고 에만은 뭘 해도 이쁜걸. 에만is뭔들
길게 있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해도, 현생이 바쁘니 어쩔 수 없지. 다음주쯤이면 한가로워지지 않을까 싶어. 응, 그러잖아도 창밖으로 불어오는 공기가 차갑고 습하더라. 에만주도 보송보송하고 행복한 하루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네. 언제나 이렇게 행복한 저녁 만들어 줘서 고마워. 많이 좋아해. 잘 자.
네가 나만큼 따뜻해져 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네 체온만큼 서늘해져 버린 걸까. 사실, 어느 쪽도 상관없다고 페로사는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과 페로사는 서로에게 조금씩 젖어들어가듯이 서로를 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네가 처음으로 맞이해보는 밤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아서, 페로사는 시선을 피하며 기대어오는 당신을 부드럽게 꼭 끌어안아 주었다. 얼굴은 조금 머쓱할지언정, 아까의 그것에 비해서는 훨씬 자상하고 상냥한 동작이었다.
당신은 목 긴 옷을 입기로 했고, 그녀는 어떻게 할까. 저번에 엘리시온은 방문했던 기억으로는 엘리시온에는 에어컨이 틀어져있지만(화이트 나이트 같은 고급 건물에 에어컨이 없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었다) 그래도 25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지. 그녀는 당신이 목에 남긴 흔적들을 그냥 두고, 여전히 당신이 알던 모습대로 단추 두 개를 푼 채로 근무할까? 자신에게 이런 흔적을 남길 만한 이가 있다는 것을 손님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녀가 그 말을 꺼낸 것이 벌써 며칠 전이었던가. 그 때만 해도 그녀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당신의 의견이 맞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광기의 도시에서 향유하기엔 너무도 위험한 것이요, 가장 큰 사치요, 광기의 도시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미친 짓이다. 그러니 당신이 끔찍하게 싫다며 거부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고, 선을 긋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쓸데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페로사는 당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살며시 쓸어주었다. 드라이버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옆집 여자의 남편을 만나고 있었다. "이렇다 저렇다기보단, 그래, 나는 이런 것을 찾고 있었는지도 몰라." 페로사는 당신을 안고 있는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어, 당신을 자신의 품 속으로 조금 더 깊이 끌어당겼다. 역시, 그녀는 아직도 따뜻하다. "바보같지?" 하고, 그녀는 키들키들 웃었다.
답레는 오전에 이어도 될까. 자세한 상황은 얘기해주기 어렵지만 답레 쓰던 도중에 갑자기 현생 관련해서 잠깐 일이 크게 터져서 멘탈 수복이 조금 어려운 상황이라, 미안해. 로로주 걱정시키지 않게 아침에는 좀 맑게 오도록 해볼게.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일단 로로주 먼저 자자, 이렇게 레스 남겨서 미안해요. 그렇지만 로로주가 있어서 좀 견딜 수 있는 것 같아. 좋은 답레 이어줘서 고맙고, 좋아해요. 아침에 잘 해결하고 멀쩡하게 올게. 약속?
앗. 현생 일이 생겼구나. 걱정하지 마. 현생 일이 우선이니 현생 일 먼저 해결해줘. 굳이 애써서 밝게 올 필요 없으니까, 여기엔 밝게 오기보단 편하게 와줬으면 좋겠어 uu 그리고 그런 말 할 필요 없어. 현생 일이야 굳이 자세히 안 말해줘도 되는 거고, 그런 걸로 전혀 벽 친다고 느끼지 않으니까.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잘 풀리기를 바라고, 오늘 밤도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게 됐으면 좋겠네. 오늘도 같이 있어줘서 고마웠어. 항상 좋아해. 에만도 에만주도... (쫍) 먼저 자고 있을게. 조심히 다녀와.
자상하고 상냥한 품이다. 이 도시에서, 다운타운에서 가족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옅게나마 겪을 수 있으나, 바깥에선 볼 수 없던 온기다.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던 것을 자신이 받자니 그 감정이 꽤나 생소하였기에, 에만은 품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만약 조금 더 친밀감을 쌓았다면, 아니면 이대로 천천히 쌓는다면. 이 작은 여우는 길들여진 한 마리의 맹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의 마음은 제법 열었으나, 단단한 비밀의 막이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막아 세우기 때문에 지금은 이렇게 품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며 애정을 보류했다. 품 속에서 느긋하게 기대 있자니, 시선이 페로사의 목으로 간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품 안에 있다 한들 체격은 제법 차이가 나는 편이며, 고개를 올리면 목이 먼저 보였다. 정확히는 턱 밑이. 에만은 손을 뻗는다.
"목에 자국이 좀 남았네."
작은 장난을 치기로 했다. 검지 하나를 세워 저도 모르게 앙 깨문 자국 손가락으로 톡 건드려보고 쓸어보는 것이다. 어쩌다 깨물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목 옆부분을 자근 깨물었음은 누구의 것이라 표시하기보단 열감에 취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옆의 다른 것은 표시 같지만. 슬쩍 시선을 피하다 당신의 외형을 기억해 낸다. 당신이 근무할 때의 모습은 분명 단추 두 개를 풀던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추파를 던지면 어쩌나 싶기도 하여 몸을 바르작대듯 더 달라붙으며 순진무구하게 눈을 한 번 깜빡인다.
"그거, 자랑할 거야..?"
그리 말하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목을 한 번만 더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곤 고개를 기울인다. 위험한 짓을 이리도 잘 해낼 줄은 몰랐다. 선을 넘고 꼬리를 살랑이며 영역에 발을 들여버렸다. 다짐하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으니, 차라리 후회라도 하지 말자는 식이 되어버렸다. 머리를 쓸어주는 손길이 낯설고도 한없이 기쁜 것이라, 얌전히 있게 된다. 영화의 내용을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팔에 힘을 주며 품 속으로 깊이 끌어당기자 인형처럼 얌전히 딸려온다. 어쩐지 저쩐지는 모른다. 감상은 필요치 않다. 그저 바라던 것이었다.
"응, 바보 같아.. 나도 바보 같지만."
그래, 내가 바라던 것도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신경 쓰이는 것은 곧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뿐이다. 에만의 눈이 천천히 화면을 바라보다, 눈빛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영화에 집중하듯 하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에만은 영화보다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번 비 오는 날엔 버틸 수 있을까. 침울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영화를 보다 말고 눈을 감고 고개를 기댄다. 그리고 슬쩍 한쪽 눈만 뜨다, 천천히 손을 들어 당신의 뺨을 쓸어보려 했다. 이내 당신이 쳐다보면 쓸어보던 손을 떼고 검지로 자신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말랑한 감촉이 제법 마음에 들었나 보다.
(머리 빗겨줌) 허브티, 천천히 즐겨보면 맛있어! 가끔 칵테일을 만들 때 시그니처 칵테일을 만들어보는 도전 계기가 되기도 하고.. 물론 나도 망해서 대충 좋아하는 것만 때려넣고 맛없어도 이게 얼만데.. 하고 마시게 되지만..🙄 로로주도 오늘 하루 고생 많았어..!!(호다닥 뛰어서 들어감)(포옥)(부빗)
원껏 끌어안았으나, 그 힘을 주는 방식은 갑작스럽지 않고 조심스러웠다. 깃털을 어루만지거나 달걀을 끌어안는 것과 비슷하달까. 당신이 그녀의 육신에서 건강함과 강인함을 느낀 만큼, 그녀는 당신의 몸뚱이가 가녀리다고 느낀 것이다. 욕심은 났으나 아직 익숙하지 않았기에 힘조절을 하게 된다. 조금씩조금씩 서서히 적응해간다. 무언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이 도시의 그림자가 드리운, 당신과 그녀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비밀의 막도 언젠가는 녹아내리게 될까?
"간지러워." 당신의 장난에 그녀는 키드득거렸으나, 이내 자신의 귀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한 박자 늦게 머릿속에서 연산해내고는 "엉?" 하고 묘한 반응을 보인다. 자국이라니- 하고 중얼거리며 인과관계를 역산해보던 그녀의 기억이 조금 전의 일에 닿았는지 그녀는 눈을 깜빡이다 얼굴을 붉히며 킥킥거리는 웃음을 터뜨리고야 만다. 바르작거리며 달라붙는 당신을 품 안에 꼭 끌어안으며, 그녀의 킥킥거리는 웃음이 나른한 눈웃음으로 변한다. 그리곤 대답 대신에 불시에, 당신의 입술 위에 느껴지는 감촉.
그것은 일종의 환영인사와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만의 영역에 처음으로 가까이 발을 들인 당신에게 남기는 것이었다. 인사와 같은 짧은 입맞춤이었지만, 어찌 보면 기념이었고, 어찌 보면 축복이었고, 어찌 보면 유혹이기도 했다. 더 다가와도 좋다는. "바보라도 좋아." 좋아, 하는 한 마디가 주어 없이 느긋하게 당신과 그녀 사이에 울려퍼진다. 손길이 다가와 뺨을 쓸자, 그녀는 당신의 손에 뺨을 기대어 부볐다. 이렇게 놓고 보자니 커다란 애완동물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광기의 도시를 누군가에게 기댈 곳도 없이 이리 떠돌고 저리 떠돌며, 그 그늘에 깊이 발 딛었음에도(누구보다도 깊이 딛었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지만), 거기에 섞이거나 물들지 않고 그저 진흙탕에 빠져버린 새처럼 그림자가 한가득 묻어버린 채로, 비틀거리며 마침내 자신의 둥지를 찾아내어 돌아온 것같이 품으로 기대어 파고들어오는 당신을 그녀는 꼭 안아주었다. 당신이 왠지 불안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당신의 뺨에, 당신이 가리키는 대로 짧은 입맞춤을 한 번 더 남겼다. 그리고 물어본다. "다른 거 볼래?" 영화는 한참 음모의 존재를 파악한 주인공이 드라이버 노릇을 그만두고 선명한 핏빛 발자국을 내딛기 시작한 대목으로 치닫고 있었다.
우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답레.. 출근답레..(결심) 로로주도 피곤하면 늦지않게 자는 거야..!!(손가락 꼬옥) 이미 느낀 것보다 몇 배는 행복하고 좋은 걸. 로로주가 있어줘서 정말 기뻐. 빈말이나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짜 기뻐! >;3!! 로로주도 푸우우욱 쉬자아 그래야 건강 챙기지!(쪽)(쪽쪽)(볼냠!) 오늘은 금요일이니 자안뜩 파이팅 해봅시다~!🥰🥰🥰 좋아해!! 예쁜 꿈 꾸기야!💓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하기만 하다. 간지럽다며 키득거릴 때는 희미하지만 같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 무슨 말인지 떠올리다 뺨을 붉히는 모습엔 목덜미를 빙글, 하고 한 번 쓸어 보이다 손가락을 거둔다.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마음에 든다. 지극히 일상적인 웃음소리, 앨리스가 아닌 모습으로 듣기는 얼마 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지금껏 들어온 것은 일상이 아닌 업무용 웃음이나 제정신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의 실소 정도였는데. 품 안에 가득 안기며 나른한 눈웃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술 위에 내려앉는 말랑하고 따뜻한 환대에 기어이 말갛게 미소 짓는다.
가까이 발을 들이며 선을 반쯤 넘었으니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념, 축복, 유혹……. 떠오르는 단어는 무한하며, 그중 부정적인 의미를 담은 것은 없었다. 에만은 페로사의 한마디에 "정말? 하고 되물어 본다. 더 다가가도 좋은지 속에 담아 묻듯 의뭉스럽고, 또 조심스럽다. 이게 실재하는 건지 다시금 의문이 들어 뺨을 쓸었을 때, 뺨을 기대어 부비는 모양새에 실재함을 깨달으며 거대한 짐승을 길들인 느낌이 들어 작은 만족감이 든다.
당신이 있다면 더 이상 밤은 외롭지 않겠지. 홀로 걷는 새벽이 두렵지 않고 영영 헤매기만 할 것 같던 삭막한 도시 속에서 안식처가 되어주고 길을 찾아주겠지. 온몸의 혈관을 타고 냉기가 돌아 꽁꽁 얼어버릴 적 따뜻하게 녹여주겠지. 당신은 내게 저기 바깥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체스 말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런 생각이 되레 후회되며 당신에게 모든 걸 맡기고 싶어졌다. 섣부른 마음일까 겁이 나버린다. 고작 몇 번의 만남 때문에 이렇게 빠졌음이 새삼 두려웠으나, 그렇다고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그래, 이런 경험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여러 번 만나야 한다지 않은가. 한 번 불꽃처럼 타올라보고, 때로는 버려져봐도 괜찮을 것이다. 상처받는 일은 익숙하니까. 안일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당신이 자신을 버릴 미래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지 못한 채.
온기가 느껴진다. 뺨에 닿는 온기가 불안한 마음을 잠시나마 가라앉힌다. 비가 와도 당신이 붙잡으면 괜찮아질까, 그때의 내가 알아서 판단할까. 사실 그때의 자신은 판단력이라곤 일절 없으니 되레 두렵다. 평소엔 약에 취해 가라앉혔다 해도 이젠 약을 할 수도 없다. 자신도 모를 오락가락하게 될 미래의 마음을 뒤로 에만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당신이 고른 거잖아. 난 괜찮아."
…그렇게 시간이 지나 문제의 장면이 나올 적을 서술하자면, 에만은 자신의 발언을 후회했다. 사람을 떠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도시요 에만 또한 남의 복부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을 시켜주었던 전적이 불과 며칠 전까지 있으며, 하물며 오늘은 사람을 두 동강 내고 오는 길인데 이상하게 미디어의 폭력에는 취약했다. 아니, 취약한 척인가? 화면과 자기 자신이 가진 자존감끼리 대립하는 통에 중간에 끼어버린 에만은, 눈치를 보다 자존감에게 이번엔 네가 졌다 선언하며 페로사의 품에 고개를 파묻으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88 쉬엄쉬엄 조금씩 쓰고 있어. 흐갸아아아 (볼 찰떡당함) (꼬리뿌리는 건드리지 않으려 했는데 😶) (긁긁) 지금 에만의 인격은 몇이나 있어? 대략적인 숫자로 대답해도 되고 거부해도 돼. (대답하면 엘리시온에 대한 조그만 tmi 하나가 풀립니다)
에만: 005 좋아하는 사람의 유형은? : '0'.. 자기 선을 적당히 안 넘는 사람을 좋아해. 공적인 상황에서는 눈치 빠르고 입 잘 다물어주는 사람을 좋아하지만..(로로 봄) 요즘에는...(말잇못)
348 가족과 함께 지내던/지내는 곳은 어디? : 아야... 혹시 하늘에서 떨어졌다, 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거 알아..? 👀
019 메신저와 sns의 프로필사진은 어떤 식? : 김에만 자체의 메신저와 sns는 앨리스가 대신하고 있어서, 함께 용왕이 자기 허리 바쳐서 찍어준 사진 아닐까 싶어... 이상적인 앵글을 위해 죠죠서기 하는 용왕.. 용왕 취급이 너무한 것 같지만 원래부터 굴리려고 생각했던 캐인 걸..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그거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어!(갑자기) 인격, 이라고 서술하지만 다중인격은 아니라는 이상한 설정이니까..🤔 다중인격 보다는 한 영혼에 n개의 정체성..? 인가..? 같은 사람이지만 아이덴티티가 완벽하게 구분된? 그런 거지. 거기에 겉껍질을 덧씌우는 능력이 있어서 완벽한 타인이 되는 거고.
만약 앨리스와 에만이 타인의 앞에서 똑같은 목소리나 말투로 같은 문장을 말해도 유사성이 느껴지지 않고, 의심하면 되레 불쾌감이 느껴지는 그런 느낌을 생각해두고 있어. 물론 로로나 용왕같은 무언가 초월적인 구분능력을 가진 존재에게는 통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3
그런고로.. 김에만이 가지고 있는 인격은 5개정도 돼!! >:3!!! 서로가 서로를 '같은 존재'로 인식하면서도 다르게 인식하기도 하고..
미카엘: 죽은 존재. '그날' 이후로 비내리는 날이 아니면 나타나지 않음. '걔'가 미카엘이 나오지 않도록 지키고 있어서 최근에는 나오지 못함. 앨리스: 어릴 적부터 미카엘의 친구였던 골빈 애. 미카엘의 유언대로 아미티스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하게 됨. 상속, 수혜자. 교수에게 고통받는 해커. 에만: 현재 주된 아이덴티티. 지하의 그림자를 움직이는 손 중 하나. 앨리스의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는 참모. 윈터: 페로사 때문에 임시로 만들어진 아이덴티티. 미카엘의 모습을 하고 있음. 유독 '걔'를 두려워함. '걔': 모든 인격이 입 모아서 제일 위험하다 하는 애. 비가 오면 미카엘이 튀어나오지 않게끔 막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로로와의 일상에서 '비가 오면 미친다'는게 얘임.
걔: 일단 내가 애를 달래는 법을 알았는데. 윈터: 아, 알았는데..? 걔: 아기도 울다가 신기한 걸 보면 방긋방긋 웃잖아? 윈터: 으응.. 걔: 그러면 사람 속을 좀 뒤집어 까다 보면 같은 사람이라도 다른 내용물인걸 보고 진정하지 않을까? 에만: 좋은 생각이네. 몇 명? 걔: 되는대로? 윈터: 페로사는 안돼.. 에만: 나머지는? 윈터: 죽든지.. 앨리스: 미친놈년새끼들...
피로 얼룩진 어두운 길을 홀로 저벅저벅 헤매어다닌 끝에,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낸 피난처. 이 피난처가 피난처로 끝날까, 당신은 언젠가 또다시 이 피난처를 떠날 날이 올까... 아니면 이 당신 한 사람 꼭 들어갈 만한 피난처가, 당신에게 새로운 무언가가 되어줄까. '당신'은 아직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오늘밤, 어쩌면 앞으로도, 더 이상 발과 피를 손으로 적시지 않아도 되고, 자신을 받아안아주고 자신이 마음껏 끌어안아줄 수 있게 된 누군가와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사실이 변하기에는 당신이 너무 깊이 들어왔고, 되돌아갈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다. 그녀의 부드럽고 따뜻한 환대는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없었을 때의 그녀의 밤은 어땠을까. 당신처럼 홀로 걷는 새벽을 두려워했을까?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길을 잃어 떠돌고 있었을까? ─당신이 평소에 다른 이들을 대하던 방식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만, 지금이라면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우연히 다른 방향에서 낯선 방식으로 마주친 그녀의 빈 자리는 당신의 모습에 딱 들어맞았다. 그래서 한 번 불꽃처럼 타올라보고 버림받아봐도 괜찮다고 당신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을 괜찮다는 말로 안일하게 덮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이 순간이 편안했기에. 그녀가 그렇게 여기고 있는 것처럼.
페로사는 자신은 괜찮다는 당신의 대답에, 알았어 하고 그것을 입으로 납득하는 말을 하는 대신에 손을 뻗어 당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감촉이 싫지 않았다-좋았다. 자신의 품안에 꼭 맞게 파고들어 자신이 표현하는 애정을 그대로 머금고 자신의 애정을 건네주는 것을 꺼리지 않는 당신에 대한 감정상의 이유가 가장 컸지만, 당신의 명주실같은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끝에 와닿는 감각 그 자체도 한 이유였다.
그래서 당신이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라이언 고슬링의 잔학무도한 액션을 아무 내색 없이 침착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당신과 그녀 사이에선 조금 살벌한 대화가 오갔을지도 모르겠다. 방금 저 동작은 제대로였다느니, 저기보다 좀더 아래쪽을 노리는 게 효과적이라느니 하고 폭력에 대한 품평이라는 기묘한 회화가 오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그 대신 스크린에서 눈을 떼며 페로사의 품에 고개를 파묻기를 택했다.
그러자 당신의 귀를 부드럽게 덮어오면서, 스크린에서 나오는 소름끼치는 음향까지 가려주는 것이 있었다. 아까 귀에 와닿았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온화하고 자상한 손길이었다. 그녀는 괜찮다는 듯 당신의 귀를 덮어주고는 당신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다른 걸 보고 싶으면 말만 해."
페로사: 265 약에 대한 생각은? "약? 어디 쓰는 약이냐에 따라 다르지. 필요한 약이 있고 불필요한 약이 있으니까." "항상 이런저런 구급약이 든 응급의료키트와, 강심제가 든 자동주사기 하나를 들고 다녀. 언제 어디서 필요할지 모르잖아." "...마약? 마약성 진통제라면 적재적소에 사용하면 위험부담이 적, 뭐, 향락용 마약? 그건 절대 안 되지. 인생과 인격을 부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야."
247 눈썰미가 좋은 편인가요? "눈썰미- 라기보단 콧썰미라고 할까? 네일이나 헤어스타일 차이는 못 알아보는데 향수나 목욕용품이 바뀐 건 금방 알 수 있거든." "하하하, 어떻게 아는지는 비밀."
160 자신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아, 늑대만 아니면 돼. 뭐건 좋을 대로 갖다붙이라구."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페로사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마지막_순간에서야_할_수_있는_말은 페로사는.. 속에 담아두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성격이라, 죽기 직전까지 안고 가다가 죽을 때가 돼서야 할 말은 별로 없지 않을까. 자신이 늑대인간이라는 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해도 말하지 않을 테고+에만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에만이 알아내게 될 테고. 자캐가_방송한다면 사실 페로사가 버튜버로 활동하는 상상도 해본 적이 있어.. 홀로라이브 EN ?기생 홀로느와르의 바텐더 담당.. 주로 하는 방송은 손캠 키고 칵테일 만들기 방송.. 자캐의_스탯을_체력_지력_사교성_미모_행운_재능_노력으로_각_항목마다_최대_10을_기준으로_작성해본다 체력 수치화 불가능 지력 5 사교성 7 미모 (에만주에게 맡김) 행운 2 재능 6 노력 9 #shindanmaker #오늘의_자캐해시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935 (머릿속에서 궁예를 떠올려버린 자기 자신을 책망하며 베란다에서 뛰어내림) (그러나 집이 1층이었던 탓에 그냥 토끼뜀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나 길고 상세하게 풀어줬으니 나도 그만큼 털어야겠는데...
화이트 (체스말) 이름을 가진 빌딩이나 조직 혹은 회사는 대부분 에누마 그룹과 깊은 유착관계를 맺고 있다. 화이트 나이트 호텔도 예외는 아니다. 엘리시온에 근무하는 직원들 중, 페로사 이외에도 늑대인간이 최소 1명 이상 있다. 엘리시온에 근무하는 직원들 중 일부는 에누마 그룹에도 직접적으로 소속되어 있다.
나한..테..? 우아악 나는.. 나는 천천히 조율해야지~~~ (조별과제 폭탄 돌리기급 시선회피)(손에 뺨 부빗)
에만: 욕심이 많아도.. 너무 많은 걸.. 에만: 전부 독점하면 더 내어줄 게 없잖아..(꼬옥)(쪽) 에만: 이 너머의 도시를 주겠다 하면 싫다 할 거고, 온전히 내 하나부터 열까지를 바라겠지.. 무려 나라니, 욕심이 너무 지나쳐. 에만: 그렇지만 싫지 않아.(다시 쪽)
투박하다면 투박할 손길이다.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배긴 자신과 달리 당신의 손은 어떤지 감촉을 느껴보려 했다. 다만 깨달은 것은 두피에 와닿는 온기부터, 얇은 머리카락을 사이사이 쓸어내는 감촉이 좋다는 감상 정도였다. 엉뚱한 상상에 가깝지만 고양이나 개, 여타 동물이 왜 쓰다듬어주는 것을 좋아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학가 근처에서 고양이로 변해 돌아다니고 사람 근처로 다가가면 조금이라도 쓰다듬으려 난리던데, 다음번에는 액체처럼 피하지 말고 손길을 받아보든지 해야겠다.
에만과 페로사. 양쪽 다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확실하게 숨통을 끊을 수 있는지 도가 튼 존재지만 안타깝게도 살벌한 대화가 나오지 않았다. 에만에게 존재하는 의외의 점 때문이다. 미디어의 폭력에 약한 폭군이라니, 붙여두기엔 제법 우스운 조합이지만 달리 보면 이 여우의 약점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품에 고개를 파묻자 살 내음이 옅게 느껴진다.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느낌이 든다.
"으으."
순간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느낌이 든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이 있으면 금세 진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오늘 이후 비 오는 날 그것이 활동한다 쳐도, 당신이 지켜줄지도 모른다. 에만과 앨리스, 죽은 미카엘까지 모두 그를 죽이고자 하였음에도 실패했는데, 어쩌면, 당신이라면. 생각을 차단하듯, 그리고 세상과 단절하듯 소름 끼치는 음향이 뚝 멈춘다. 귀에 부드러이 덮이는 손은 온기가 가득하다. 온화함 또한 가지고 있어 생경한 느낌이 든다.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을 적, 에만은 눈을 감았다. 뺨을 비비듯 슬쩍 고개를 기울인다.
목소리가 울린다. 귀에 덮인 손 때문에 당신의 목소리가 머리로 확실하게 전달된다. 신체의 안에서 울려 나오는 것이 목소리지 않은가, 심장 고동 소리를 넘어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울리는 듯싶어 그게 또 마음에 든다. 에만은 잠시 입술을 작게 오물거린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슬쩍 눈을 굴린다. 화면의 잔인한 장면에 작게 으, 소리를 내다가도 결국엔 또 자존심이 이겨야 한다며 비명을 지르는 것에 휘둘렸다.
"당신이 고른 거잖아, 나는.. 끝까지 보고 싶어.."
당신의 취미를 하나 공유해보겠다며 이리도 말썽이다. 같잖은 자존심을 세우며 아랫입술을 비죽 내민다. "그리고 나.. 괜찮으니까.."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을 뱉으며. 이 밤을 당신의 취미로 가득 채워보고 싶었다.
(글뇌가 이제야 돌아가서 머리 박살내는 중) 으으으으.. 면목이 없네... 그리고.. 으으음.. 잡담이랑, 정주행 하면서 나온 일상을 이것저것 다 읽어보고 있는데..
요즘 로로주 수면패턴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0;.. 자다깨다 하는 것도 그렇고, 로로주가 나 때문에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는 것 같아서..🥺 로로주가 피곤하다면 푹 쉬었으면 좋겠어. 나도 모처럼의 주말이니 푹 쉬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고. 로로주를 먼저 챙겨주길 바라..🥺🥺🥺 늘 걱정하고 있어..
액션영화 보면서 눈 가리는 에만이 귀여울 것 같다는 예상은 했는데, 그러면서도 자존심이랑 욕심이 같이 열일해서 끝까지 보겠다고 억지부리는 게 사랑스럽기까지 하네.. 다른 영화를 틀어주는 게 좋으려나..!
내가 수면패턴이 좀 주기적으로 망하는 편이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이틀~사흘 정도면 원상복귀되니까. 수면의 총량은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거기다가 지금은 저녁때 덜컥 잠들었다가 좀전에 깬 거라 컨디션 절호조.. 😂 항상 내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쓰담담담)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그 손은 당신 정수리의 절반을 넘게 덮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랗고, 손에도 근육이 들어차 단단한데다, 굳은살은 단단히 배겨 있었으며, 그 흔한 네일은커녕 무광 클리어도 안 올린 건지 반듯하고 짧게 다듬어진 손톱은 이렇다 할 광택도 없었다. 뭔가 지어내고 만드는 것보단 무언가를 부수고 파괴하는 게 더 익숙해보이는 그런 손아귀였다. 그렇지만 확실히, 지금까지 느낀 바대로 그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당신의 입에 닿은 딸기맛 디저트 칵테일도, 평소보다 좀더 많이 먹은 스튜도 전부 다 저 손끝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당신에게만은 예외라는 것처럼. 그 단단한 손은 당신을 상처입히는 게 아니라, 그녀의 품과 마찬가지로 당신을 감싸안았다. 아무 것도 염려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아,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액션은 좀 아니었나." 영화를 즐기는 게 아니라 견디는 당신의 모습을 보며 페로사는 머쓱하게 웃었다. 품속에서 눈을 굴리며 꼼지락대는 당신이 사랑스러워서 페로사는 또 한 번 더 당신의 정수리에 입맞춤을 남기고 만다. 자신이 기억하던 당신의 냄새에 자신의 냄새가 깊이 배인 게 흡족했다. 그러다 왠지 문득 영역표시를 하는 것 같아서 이래도 되나- 싶은 표정으로 잠깐 당신을 내려다보았지만, 개의치 않고 한 번 더 가볍게 입맞춤을 남겼다. 안심하라는 의도도 있었지만 이번엔 사심의 비중이 좀 높다. 그래, 사심. 이제 그녀는 자기 자신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다.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골랐다기엔, 그냥 리모콘 잡고 대충 눈에 익은 포스터를 골라잡아서 튼 것뿐인데. 뭔가 따지고 고를 정신이 없었으니 말야-" 농담조로 말하며 어깨를 으쓱한다. 마킹이 끝나고 나서도 남아있는 여열에 허덕이는 눈으로 영화를 침착하게 고를 만한 정신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니. 페로사는 당신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는, 당신의 손에 리모콘을 쥐어주었다. "사실은 네가 추천해주는 걸 보고 싶었거든." 자신을 상대방으로 채우고 싶은 것은 당신뿐만이 아니다. 그녀도 마찬가지겠지.
느껴본 손은 굳세다. 만드는 것보다 파괴하는 것이 더 익숙할지도 모를 손이다. 만일 자신을 죽이려 했을 적 만났다면 두렵다고 생각이 들 것이 분명했다. 목을 틀어쥐면 여린 목뼈는 엄지로도 쉽게 분질러질 것 같았고, 과장을 좀 보태자면 머리를 쥐면 으스러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당신의 손은 자신을 위해 많은 것을 만들어준다. 칵테일도, 스튜도, 이 온기도. 죽음에 대한 염려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타인이 지금 이 상황을 보면 기가 차지 않을까. 누군가는 죽을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 죽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애정을 담은 손길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니. 다만 문제는 현재에 대한 염려는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겠다.
작게 기함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스크린에서 눈을 돌린다. 꼼질대며 품에 깊게 파고들자 정수리에 쓰다듬는 손길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와닿는다. 잠들었다 일어날 적에도 느꼈던 감촉이었기에, 에만은 눈만 들어 여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래도 되나 싶은 표정에 멀뚱히 의문만 담아 눈을 끔뻑이다, 입맞춤을 남기자 눈을 내리감고 고개를 폭 기대버린다. 이제 페로사의 시선으로 보이는 것은, 다시금 이 작은 여우의 정수리뿐이다. 폭 파묻혀 그대로 가만히 있다 안고 있던 팔에 옅게 힘을 준다.
"아아안무서워.."
당근을 발견하고 가리는 게 없다고 부정하던 것과 비슷하게 이번에도 말을 늘리며 무섭지 않다 어필하였으나, 이미 엎질러진 액션이다. 여기서 확실해졌다. 아마 당신이 이 여우를 손에 쥐는 날, 한시도 떨어지지 않기 위해 폭 달라붙는 삶을 살 것이라고. 포옹에 큰 애착을 두고 말았으니 이제 당신의 책임이라는 것도.
에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에 익은 포스터를 골라잡았다는 건 이해하겠지만, 따지고 고를 정신이 없었다는 말에 이 영화를 보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오른 것 같았다. 뺨이 점점 발그레하게 물들고, 세로로 죽 찢어진 동공은 점점 작아진다.
"에우우."
부끄러움에 고개를 폭 다시 파묻다 손에 쥐여지는 것에 눈을 굴린다. 마킹을 떠올리니 치사하단 생각이 든 건지, 입술을 오물거리다 양손으로 버튼을 꾹 누른다. 잔인한 장면은 잠시 소강 되었지만, 이때 바꾸지 않으면 또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뭘 봐야 하지? 역시 브리저튼? 아니다. 브리저튼은 너무해. 에밀리... 아, 안돼. 디즈니..? 미쳤나?
"나도, 지금은 경황이 없는데.. 그래도 나, 인기 있는 건 자주 보니까..."
인기 있는 추천작 리스트를 느릿하게 바라본 에만은 되는대로 꾹 누르기로 했고, 후회했다. 크루엘라! 하필이면 디즈니라니. 내색하지 않아야만 하는 난관이 들이닥쳤다. 모르겠다. 에만은 일단, 다시금 품에 기대기로 했다.
오늘은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 요즘 로로주랑 같이 있어서 정말 기쁘지만, 로로주가 나로 인해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 나는 하루밖에 보지 못해도, 한 레스만 봐도 괜찮아. 그러니까 이걸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반드시 답레를 빨리 줘야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무리하면서까지 오지 않아도 돼. 편안하게 있어주먼 좋겠어. 내가 로로주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한 것처럼.
오늘 하루는 월요일이네. 우리 오늘도 힘내고, 한 주 즐겁게 보내자. 정말 좋아해! 오늘은 로로주, 일찍 자자 >:0!!!! 늘 고맙고 좋은 꿈 꾸기야?(쪽)(안겨서 부빗)
부담을 느끼고 있긴 한데, 그건 에만주가 기다리고 있어! 하는 압박보다는 내가 좋은 글을 써서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심에서 나오는 부담이라고 생각해. 에만주가 언제까지나 나한테 상냥하고, 오래 기다려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나도 에만주에게 그렇게 오래 기다려줄 수 있고.
그런데 어느 쪽이건 부담이긴 마찬가지고... 예쁜 글을 써주려는 욕심이 오히려 에만주에게 부담감을 주게 된 것 같아 미안하네. 응, 에만주 말대로, 좀더 느긋하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쓰기로 할게. 그렇게 말해줘서, 페로사주와 페로사를 소중히 여겨줘서 기뻐.
답레는 에만주 말대로 조금 여유롭게 다른 할 일 하면서 쉬엄쉬엄 써야겠다. 내 스스로가 나한테 주고 있는 부담 때문에 글이 더 안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니까. 그렇게 상냥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에만주도 에만도 많이 좋아해.
응, 이제 월요일이지. 에만주도 오늘 하루 무사하고 평화롭게 흘러가길 바라. 잘 자구 좋은 꿈 꿔. (쓰담담) (쪽)
좋은 점시임..(부비쟉)(파고들기) 요즘에 너무 일찍 잠들게 되네...🙄🙄🙄 좋은 현상이지만 좋지 않아..🥺
부담을 느끼고 있구나.. 어느 이유든 로로주가 편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면 좋겠어. 욕심도 좋지만 지치지 않게 페이스 조절 하자구.(꼬옥)
예쁜 글, 좋지. 그렇지만 로로주가 힘들어하고 무리하며 쓰는 글이라면 슬플 거야.. ;0;.. 건강도 멘탈도 최우선이라구!!!! (뽁실뽁실) 나는 부담 갖지 않았으니 걱정 말아요. 늘 로로주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길 바라. 쉬엄쉬엄, 잡담도 하고 딴짓도 하고 현생도 살면서 느그읏하게 주라구우.. 응응, 나도 좋아해. (눈치) 사실은 가족처럼 사랑해! 0.<(무리수) 그리고 미안해하면.. 벌금 물거야!!! 우우!!! >:0!!!!
오늘도 2시 이전에는 들어갈 것 같아 이렇게 미리 레스 남겨. 으으음.. 분명 요즘 내 나름의 과수면을 하고 있다 생각하는데, 그것 때문에 잠이 늘어버린 건지, 아니면..😶 아무튼, 막상 하루가 지나면 기다렸다는 듯 체력이 전부 사라져있어서, 당분간은 이런 반강제적 규칙적인 낡고 지친 수면 사이클을 유지할 것 같네...😔 조금 오래 있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는 점, 미안해. ;0;
로로주는 월요일 하루 잘 보냈을까? •0• 만일 힘든 하루였어도 오늘 하루도 버텨줘서 고맙고, 내일도 힘내보아요. 나도 힘내볼게.
만약 잠들어있다면 좋은 밤 되길 바라고, 좋은 꿈 꾸길 바랄게. 잠들지 않았더라면 무리하지 않길 바라. 오늘도 좋아해!
아프면 아프다 말하라고 하지 않을게. 여기는 상판이고, 카톡이나 전화를 할 수 없는 익명이니 내가 상태를 몰랐다 한들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아니야. 지금은 로로주 몸을 더 챙겨야 하는 상황이 맞다고 봐.
잠들었다면 더 잠들고, 따뜻한 물도 자주 마셔주고. 아직 몸이 무거울 텐데, 덧날까 무섭다. 우리 로로주 더 자자, 아프지 말자.. 많이 아팠구나. 으응. 괜찮아, 천천히 줘도 돼. 멍해서 글이 안 잡히는 건 당연하답니다. 약기운도 열감도 있는데 왜 무리를 하려고 그래, 나 어디 안 사라지니까 걱정 말고 푹 자요, 푹.
응. 손 떼고... 푹 쉴게. 얼른 나아야지 혐생도 살고 답레도 쓰지... 답레가 늦어져서 미안하지만 거기다가 에만주 걱정까지 시키는 건 싫으니까. 잠이 다시 들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눈 감고 누워있을게. 기다려줘서 고마워. 걱정해줘서 고마워. 많이 좋아해.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구, 에만주도 피곤하면 일찍 자기야. 몸이 자라고 하는 걸 거절할 필요는 없으니까. 잘 자...
푹 쉬어. 쾌차하길 바랄게. 미안하다 할 필요가 없으니 너무 침울해하지 말아요. 갑자기 아픈 걸 우리가 미리 알겠어? 아프면 쉬는 게 당연하지, 미워하지 않아. 요즘 무리했을 텐데 이참에 푹 쉬자. 나야말로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많이 좋아하고, 푹 잠들기야. 잘 자요, 오늘 눈 감고 일어나면 내일은 조금 더 개운하고 덜 아픈 하루가 될 거야. 다시금 말하지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로로주가 잠들 적에 아프거나 불편해서 깨지 않고 푹 쉬길 기도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