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이냐 초콜릿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화이트데이는 전통적인 사탕이지! 하는 입장과 사탕보다는 초콜릿이 더 맛있다! 하는 입장의 싸움이 시작되는데.... 사탕 VS 초코 그 세기의 싸움이 시작된다. 커밍쑨....
자, 잠깐만 이 스레 대립 스레 아니지 않아???
1. AT필드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하지 않습니다. 항상 서로 인사하고 사이좋게 지냅시다. 2. 참치 상황극판의 규칙을 준용합니다. 편파, 캐조종 하지 않도록 유의해주세요. 3. 수위는 최대 17금까지로 과한 성적 묘사는 지양해주세요. 풋풋하고 설레는 고등학생다운 연애를 합시다.(연플은 3/11까지 제한됩니다.) 4. 느긋한 템포로 굴러갈 예정입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5. 서로 다양한 관계를 맺어 일상을 풍성하게 해주세요.
"그거? 인터넷에 치면 레시피가 많이 나오긴 하는데. 동영상 많이 있는 곳 가면 실제 조리법도 많이 나와. 기회가 되면 언제 한 번 만들어줄까? 아. 하지만 식당에서 팔 정도로 엄청 맛있는 것은 기대하지 말고. 혹시 만들어준다고 해도 말이야. 사실 나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요리부의 그 선배가 요리를 더 잘할테니까."
가르쳐달라면 가르쳐줄수야 있지만 그것을 지금 여기서 하나하나 설명하기엔 아무래도 조금 힘들었다. 물론 갈비찜을 할 때 들어가는 재료의 비율은 자신이 어느 정도 가르쳐줄 수 있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맛이지. 그녀의 입맛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만약 기회가 된다면 언제 한 번 만들어주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하고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아마 저쪽 집에 전달해주는 거야 그리 어렵진 않을테니까.
아무튼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나 여유롭게 잘 먹는 채린의 모습에 은우는 괜히 분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녀가 하나 집는 것을 바라보며 그 옆에 있는 것은 그는 집어들었다.
"포기하면 재미없잖아. 어차피 패배한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재밌게 하는게 내 방식이야. 사실 내가 타바스코를 하나 먹어버린 이상 이길 확률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재밌으면 그만 아니겠어?"
딱히 자신이 진다고 해도 그는 별 상관없었다. 어디까지나 재밌으면 그만이었으니까. 특히나 이렇게 순전히 운에 맡기는 게임도 그에게 있어선 전혀 나쁘지 않았다. 지금은 패배하고 조금 분하더라도 이후에 떠올려보면 상당히 재밌는 추억으로 남을테니까. 생각을 마치며 그는 손에 쥔 사탕을 입에 쏙 집어넣었다. 부드럽게 흐르는 복숭아맛에 은우는 기분 좋게 웃어보이며 정말 여유롭게 사탕을 녹이다가 꿀꺽 삼켰다.
"이번 사탕은 평범하긴 한데... 너는 어때? 만약 이번에 네가 평범한 사탕이었으면 남은 두 개는 타바스코 사탕이라는 건데. 타바스코만 남은 것을 굳이 고를 필요는 없을테고 네 승리가 될 것 같은데."
경우에 따라서는 바로 선물을 끄집어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생긴 것은 미묘 하더라도 실제로는 맛있는 음식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게다가 대수도 맛있어 보이게 먹고 있는 걸 보면 괜찮을 겁니다! 우선은 이렇게 하나를 들고… 대수처럼 면 국물에 적셔서…
“음..? 음… 음…!!! 이거, 맛있다네요!!! 좋다입니다!!!”
극적으로 맛있다-기보다는 무난하다-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새로운 음식에 약간의 기이함과 공포마저 느끼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냥 맛있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평소라면 이정도로 고민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존재를 알아도 실체를 알지 못하는 것은 조금 두려운 것 역시 사실입니다. 결과가 좋으니 괜찮겠지만요!!!
“인터넷은 대단하다입니다! 무슨 정보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에요! 방안에 앉아서도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된다입니다!!!”
그 안에 쓰여진 글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어떤 상황에 어떤 것을 쓸 수 있는지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다들 별 것 아닌 것으로 들뜨고 흥분하는 그런 곳!!! 사실 그곳이 유토피아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조금 있기야 했지만 아무래도 헬렌이나 대수의 반응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하다는 거네요!!! 수첩에 친구비는 필요없다는 글을 써놓고 다시 대수를 향해 입을 열었습니다.
김밥이 맛이나 식감이 이상한 음식은 아니니 뭔가 극적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역시 뭔가가 많이 아쉽다고 느낀 그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충무김밥이라고 적힌 김밥은 먹지마. 그건 맛이 없거든."
심지어 이상하게 비싸다. 이 도시도 관광지는 많으니 충무김밥을 파는 가게는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돈이 엄청나게 많은 아가씨지만 왠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런식으로 돈을 낭비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응, 차라리 근처에 있는 횟집에 가서 바로 활어를 회쳐서 먹는게 더 좋지. 언젠가 이 녀석을 횟집으로 데려가면 한번쯤은 아주 큰 참돔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많이 행복한 가정이었다.
"에이, 인터넷으로는 친구를 만드는건 쉽지 않을걸?"
어쩌면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는 만난 적은 없었다.
"그걸로는 부족해. 꾸준히 적으면서 연습하는게 좋을거야."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부족한 어휘력이라 생각하지만 의사소통은 어느정도 되었으니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그런 말투를 옆에서 보면 재밌기도 하고.
이래놓고 우~니라는 별명에 서우가 질리면 다른 별명으로 바꿔버릴 터였다. 다운이라 불러도 좋다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러면 좋겠다고 하면 그러지 않겠다고 하는게 서우였다. 서우가 신경써야할 부분은 딱 하나였다. 애써 시무룩한 척, 풀 죽은 척 하고 있는데 그새를 못 참고 원래 본인 텐션대로 까르륵 웃어버릴까 그것을 조심해야했다. 지금까지 잘 참고 있다. 대단한 나!
“아마?”
서우도 우니를 만난 기억은 없었다. 입학식 때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모여있는데 기억하는게 있다면 그게 더 신기하다. 지루한 훈화 말씀을 들으면서 빨리 끝나고 집 가고 싶다는 생각이나 하지 않았을까. 만난 적 있다고 답해서 그 만난 적을 떠올리느라 고민하는 우니 앞에서, 입학식 때 어땠는지 떠올리고 있는 서우. ‘아마?’라는 대답부터 만난 적이 없단 사실은 들통났을텐데 아예 쐐기를 박고 있다.
“개학식?”
양철 나무꾼이다! 서우는 우니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녹이 슬어 삐그덕거리는 양철 나무꾼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도로시가 기름칠을 해주어서 구해주었다. 서우는 우니에게 기름칠을 할 수는 없으니 뻣뻣하게 마구 흔들리는 손을 마주 잡으려고 했다. 꼭 깍지를 끼어서 잡아 멈추면 기름칠은 못 해주어도 뻣뻣한 움직임을 강제로 멈출 수는 있겠다! 고민이라고 하기도 뭣한 입학식 기억 떠올리기를 끝낸 서우는 우니와 눈이 마주쳤을 때 즐거운듯이 웃고 있었다. 우니를 놀려먹고 그게 즐거워서 웃고 있는 거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하늘은 맑고 햇볓은 쨍쨍하니 낚시하기에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평소에 낚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할 생각이었다. 낚시를 하는 장소에는 엄청나게 많은 물이 있고 당연하게도 물은 빛을 반사시킨다. 게다가 그늘없는 장소에서 계속 그 자리에 있는건 상당히 체력을 손실시킨다.
"..."
당연히 파라솔같은 엄청난 물건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대용으로 챙이 긴 밀짚모자를 쓰고있었다.
"싸게 구해서 다행이었어."
고작 2만원에 구매한 이 밀짚모자는 푸석푸석하고 영 쓰는 촉감도 안 좋았지만 확실하게 자외선을 가려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간의 지혜. 다른곳은 탈지도 모르지만 얼굴쪽이 탈 일은 없을거다. 양동이에 4마리의 물고기가 찬 그 시간에, 얼굴을 아는 그 사람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긴 했지만 굳이 인사를 하지는 않고 그저 묵묵히 낚시대만을 바라보았다.
“그건 아는데, 따라 해도 그 맛이 안 난다고... 진짜? 그럼 좋지! 꼭 보내주기야? 그래도 네가 만든 거랑 선배가 만든 건 다르잖아.”
채린은 제안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받아들였다. 무려 갈비찜을 그냥 보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본래 목적인 레시피는 이미 뒷전이 되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채린의 관심사는 요리보단 음식 자체인지라 문제는 없었다. 사실 귀찮은 걸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직접 만들려고 한 것도 오기나 반발심에 가까웠으니까.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어지는 심리 말이다.
“재미를 위해 혀를 희생하다니 대단한 게임 정신이네.”
비꼬는 의미가 아니라 진심으로 채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도 이벤트는 좋아하지만, 손해를 입으면서까지 즐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게임만 해도 극한의 매운맛을 느껴야 하는 기본이요, 패배한다면 상품까지 줘야 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게 은우와 저의 차이일 듯싶었다.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 우선순위가 다르다고 하니까.
채린이 먹은 사탕은 이번에도 달콤한 맛이 났다. 연속으로 멀쩡한 것을 고르다니 아무래도 오늘은 운이 따르는 모양이다. 그냥 저보고 이기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은우는 어떨까? 하여 쳐다보니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렇다면 남은 사탕이... 채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제가 승리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버릇처럼 사탕을 혓바닥 위에서 굴리자 인공적인 과일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오늘 만큼은 그 맛이 생과일보다도 더 달콤했다. 승리의 맛이 어찌 달지 않을 수 있으랴. 채린은 몹시 기분이 좋아졌다.
“미리 준비해놓으라고 했지?”
채린은 의기양양하게 손을 내밀었다. 이 말만으로도 충분히 질문에 대한 답이 되리라고 본다. 우승 상품으로 무엇을 받게 될지 꽤 기대된다.
"한 번은 타바스코 모른 척 하고 먹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텐데 말이야. 운이 좋아도 너무 좋은 거 아니야? 어떻게 두 번 연속 그렇게 태연하게 달콤한 것을 먹을 수 있어?"
승패에 그다지 집착하진 않고 신경쓰진 않지만 그래도 졌다는 것이 조금은 분했는지 그는 아주 살짝 입술을 삐쭉 내밀다가 안으로 집어넣었다. 당당하게 상품을 내놓으라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 괜히 얄밉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짜증을 내거나 할 생각은 그에겐 없었다. 어쨌든 이건 게임이었고 그녀가 이겼으니 그에 대한 포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이어 그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후에 그 안에서 쿠폰을 한 장 꺼낸 후에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해인에게도 준 적이 있었던 디저트 카페 무료 이용권이었다.
"꽤 이름 있는 디저트 카페 무료 이용권이야. 일단 최대 한 명은 더 데리고 갈 수 있으니까 같이 가고 싶은 이가 있으면 같이 가 봐. 달콤한 디저트가 많다고 하거든. 내 나름대로 게임에서 이긴 이들에게 주는 화이트데이 선물이야."
물론 그녀가 이것을 좋게 받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자신이 준비한 것은 그것이었기에 다른 것을 내놓으라고 해도 그는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은우는 두 어깨를 으쓱하며 눈동자를 데굴 굴려 채린의 입꼬리나 눈, 그리고 표정을 체크했다.
"아무튼 갈비찜은 조만간에 아빠 통해서 보내줄게. 대신에 먹게 되면 꼭 평가 말해주는 거 알지?"
이제 3월의 허리를 지나가는 시간이 되었던만큼 봄기운이 물씬 풍기기 시작했다. 하나는 늘 그렇듯 산책을 하던 길이었는데, 산책길에는 늘 종종 대수를 마주치곤 했었고, 이 날도 그런 날이었다.
‘앗…!’
하나는 속으로 놀랐다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전까지 늘 모르는 척 옆에 앉아서 낚시를 하는 것을 잠시 구경했다가 물고기를 낚으면 박수를 치고 함께 기뻐하거나 소소한 이야기 -주로 날씨 같은 것-을 하곤 했었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던가. 무려 서로 이름도 알게 되었고 같은 학교 선배인 것도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도 이상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 사이이기도 했다. 그런데 분명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이상하게 대수는 묵묵히 낚시대를 보는 것에 자신이 착각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건가 그 짧은 시간에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리곤 하나는 고민 끝에 슬금슬금 다가가 대수의 옆에 앉는 것이었다. 으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하지? 하나는 고민 끝에 말을 건냈다.
채린은 한껏 거들먹거리며 승자의 여유를 즐겼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그러겠는가. 어떤 상품이 나올지 기대하며 기다리자 곧 제 손에 쿠폰 하나가 쥐어진다. 무언가 싶어 글씨를 읽으려 하니 그 전에 은우가 직접 알려준다. 디저트 카페 이용권. 화이트데이에 걸맞는 아주 달콤한 상품이다. 게임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잘 어울리게 짜여진 모양새다.
“아, 나 여기 가려고 했었는데. 좋아. 이건 잘 쓸게~”
타이밍도 좋지. 채린은 상품으로 받은 쿠폰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누구와 가야 할까? 부모님을 데려가기엔 동반 가능한 게 1명뿐이고, 친구를 데려가자니 마찬가지다. 일단 채린은 더 생각해보기로 하고는 쿠폰을 후드집업의 주머니에 넣었다.
“당연하지. 먹어보고 어땠는지 솔직하게 말할 거니까? 어떤 평이 나올지 나도 모른다?”
농담이라는 듯 웃는 채린의 말이 끝날 무렵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의자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시간이다. 채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권의 공책을 챙겼다.
“모래까지 돌려줄게.”
채린은 필기 노트를 흔들어 보이고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 막레할게~ 은우는 정말 뭔가를 즐길 때 본격적이구나~ 덕분에 데스캔디룰렛 재밌었어! 😆 본의 아니게 길게 붙잡게 되었지.. 고생했어~!
금방이라도 올이 풀어질 것 같은, 머리위에 씌여진 그 허름한 밀집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2만원으로 이걸 구매했다고 한다면 얼굴을 찡그리며 어디에서 샀냐고 물어볼 법 한 그런 엉성한 느낌이었으며 디자인이란 없는것과 같아서 실루엣만 보여주고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봐봐, 햇빛을 가려준다고."
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만족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햇빛을 걱정한다면 팔토시라도 하는게 좋을법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그런 패션아이템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 그럼 예비 양동이를 부실에 배치해놓는게 좋으려나."
아니, 그랬다간 부실이 물때냄새로 끔찍하게 변하게될 것 같다. 부실에 있는 시간은 적지만 그래도 부실. 앉아있는데 물때냄새가 나는건 너무나도 괴롭다.
"또 박수야."
개인적으로 그는 그녀가 옆에서 박수를 치는걸 좋아하지는 않았다.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모인(특히 어부아저씨들) 이 항구에서 이렇게 낚을때마다 박수를 치면 주변 사람들이 어떤 시선을 보낼지. 그래. 마치 흐뭇한 무언가를 봤다는 듯 한 그 뜨뜻미지근한 시선! 심지어 횟집 아저씨와 아줌마도 창문을 통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하나는 대수가 가리키는 허름한 밀짚모자를 눈을 깜빡이며 바라봤다. 올이 풀어질 것 같은 느낌의 밀짚모자는 그 모습이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오래 되어 낡아서 그렇게 된 것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하나는 마땅히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멋있다고 하기에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게요. 햇빛을 가려주네요."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자라는 것이 그 모자로서의 기능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햇빛을 가려주는가 아닌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름 대수의 이미지와 허름한 밀짚모자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동화에서 보는 베테랑 낚시꾼들은 늘 이런 허름해보이는 밀짚모자를 쓰지 않던가. 아닐 수도 있지만.
"아뇨, 저 때문에 그런 수고를 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부담스러운 마음에 양 손을 들어 허둥지둥 가로저으며 말했다. 부원도 아닌 사람을 위해서 부비를 낭비한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하나는 사양했다.
"?!"
하나는 박수를 치자 오는 대수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했다. 게다가 이어지는 말에는 리스크라는 부정적인 말이 들어있었다. 쿠궁! 하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했던 행동이 대수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나는 두뇌를 풀회전하여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민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대수에게 물었다.
"...큰 소리를 내서 고기들이 도망가는 것 때문인가요...?"
하나는 조금 시무룩한 태도로 제 머릿속에서 나온 것을 대수에게 물었다. 하나의 입장에서는 남들의 시선이 대수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듯 하다.
아차! 어류경매장이 있었지. 속으로 생각하며 하나는 양 손으로 입을 합 막았다가, 대수가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휴 내쉬었다. 아마 하나가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칭찬을 받으면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따듯한 시선에 대수가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에 가깝겠다.
"아, 그렇구나. 그것도 그렇겠네요."
하나가 미처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내 하나는 다섯번째 물고기가 통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잡은 것도 아니면서 괜히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횟집에 가져가서 파는 경우가 많지만 집으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기에 그렇게 말 했다. 학생이 부활동으로 낚은 물고기를 시중에 판매한다는 소리는 학교측에서는 그리 달가운 행동은 아닐 가능성이 있었기에 그는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 게다가 눈 앞의 그녀가 물고기를 집에 가져가느냐고 묻는 이유가 궁금했다. 여태까지 봐온 그녀의 성격에서 짐작컨데 뭔가를 추궁하기위해 질문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냉동된 물고기보다 더 신선해서 좋아하긴 하는데 역시 직접 손질해야한다는게 좀 그렇지."
물고기를 손질하는건 알고있지만 정말로 물고기를 구워먹기위해 비늘만 제거하는 것 뿐이라 영 그랬다. 바로 구워먹는데 내장까지 뺄 이유는 없기도 하고.
반장선거가 처음은 아니었다. 멋 모르던 초등학생 때부터 서서히 학생이라는 이름표에 적응을 해간 중학생을 거쳐가며 해인은 여러번 반장선거에 나가보았고 몇 번을 실패를 했다. 어린날에는 자신의 공약을 몰라준 친구들에게 실망하며 몰래 울기도 해보고 커서 중학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학년에는 인정할만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밀렸났다. 자신이 세운 완벽한 서해인이라는 이데아 뒤에 숨어서 그 이상의 그림자를 따르지 못한 실재세계의 서해인 본인에게 화가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제게 기회가 있으며 아직은 예행 연습이라는 말로 다독일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고등학교 반장선거에 떨어진다면 그때는 어떤 기분이 들까. 그 밀려오는 파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소녀는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는 답할 수가 없었다. 이미 결정을 했다면 돌아보지 않고 결승점까지 달리고서 제 머릿속의 검은 물살을 지워버렸다. 막 단상 앞에선 해인은 갑자기 자신이 구깃구깃 접힌 a4용지를 들며 처음 써본 연설문을 외우던 어린아이로 돌아간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교탁 앞, 항상 선생님이 자리하던 위치에 서서 바라본 교실은 일개 학생으로서 바라보는 교실과는 달리 맨 끝 복도쪽 뒷문 구석자리부터 햇살이 밝게 내리쬐는 창각까지의 넓은 정경을 보여주었다. 점차 웅성거리던 소리가 잦아들고 모두는 아니지만 반 이상의 동급생들이 자신을 쳐다보았다.
이제 시작이다.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사람, 손을 들어보세요.
모두가 들진 않았네요. 뒤늦게 든 친구들도 있고.
왜 일까요. 당연히 지루해서겠죠.
내가 지금 당장 이 연설에 집중해서 얻을 것이 없다는 생각과 어차피 인기순으로 뽑히겠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겠지 생각이 드니까. 당연히 지루할 수 밖에 없죠. 솔직히 마음만 같아서는 앞에서 연설하는 친구들보다는 책상 앞에 놓인 급식표를 보는게 더 즐거울거에요.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좋든 싫든 여러분의 지지를 얻어야 하고 제 연설을 듣게 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제일 먼저 급선무인 것은 반장이 누가 되든 당장 나의 일상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 서해인이라는 친구가 반장이 되었을때, 다른 친구들이 반장이 되었을때보다 확연히 나의 생활이 바뀔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 그래서 자신이 있냐고요? 자신이 있으니까 나왔겠죠. 지금부터 1학년 1반을 위해 제가 내세울 공약을 발표하겠습니다. 제가 재수가 있는지 없는지는 들어보고 판단하여도 늦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먼저 재미를 잡겠습니다. 인간의 정식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지만 몇몇 학자들은 우리가 지혜롭기보다는 놀이를 즐기는 호모 루덴스에 가깝다는 말을 했습니다. 놀이가 없으면 공부도 없고 휴식이 없으면 노동도 없습니다 . 그래서 제가 반장이 된다면 제일 먼저 쾌적한 놀이환경을 위해 교실 뒤 넓은 복도에 돗자리를 깔겠습니다. 교실바닥에 잘못 쓸려 다치는 일이 없어 아무렇지 않게 앉고 눕고 잘수 있는 1학년 1반만의 공간을 만들겠습니다. 아아, 벌써 그것말고는 없냐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진의를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듯이 아직 공약이 남아 있습니다. 새학기,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 그러면 제일 설레는 이벤트가 무엇일까요. 당연히 짝 바꾸기일 것입니다. 번호순으로 짝을 지정하는 반들이 있다는 말이 우후죽순으로 들리는데 적어도 1반만은 그런 일없이 제비뽑기로 짝을 바꿀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단순히 제비뽑기가 아닌 2주마다 자리가 바뀔때 제비뽑기 방식도 다양하게 변형해서 최대한 복불복의 스릴을 즐길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재미만 잡아서는 뭔가 2%가 부족합니다. 나는 노는것에 관심없고 그저 편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태어난 김에 고등학교 다닌다 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편안한 교실환경을 만드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반장으로서 바쁘게 학원갔다왔는데 또 머리도 감아야하고, 언제나 머리스타일로 피곤한 여자인 친구들을 위해 사물함에 누구나 쓸수 있게 드라이샴푸를 비치하겠습니다. 그러면 여자들은 편한데 남자들을 위한 공약은 어디있나요? 라는 의문이 절로 따라오겠죠. 당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체육시간에 탈의를 하면 항상 교실에서는 여학생들이 밖의 탈의실은 남학생들이 쓰는데요. 문제는 이 탈의실이 잘못하다가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학급비를 걷게 될텐데 제가 반장이 된다면 그 예산을 탈의실 앞에 가림막을 다는 데 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의 편의를 위해 매일의 급식을 칠판에 제가 적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급식표를 잃어버려서, 또는 보이지 않아서 여기저기 물으러 다닐일은 없을겁니다.
자, 그럼 지금 제 말을 듣고 계신 유권자 분들은 손을 들어주세요. 모두가 들었네요. 지금 제 말에 많은 친구들이 집중하고 설득되었다 믿어도 되겠습니까? 보십시오. 저는 1반의 모든 구성원들을 이끌어갈 저력이 있는 반장입니다. 망설이지 말고 저를 뽑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여전히. 몇번째일지라도. 똑같이 반복되는 학기의 첫 시작일지라도. 모두의 앞에서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가슴이 떨렸다. 고개를 들고 웃으며 단상을 내려오는 해인의 마음이 작게 쿵쿵 울렸고 동시에 편하게 하라는 말이 스쳤다. 그래 그래서 이번에는 누군가의 완벽한 연설이 아닌 반 친구들을 위한 편한 연설을 해보려고 노력했어. 다시 자리에 앉으니 창 밖으로 파란 하늘이 꽃이 만개하듯 펼쳐지고 자신을 응원해준 여러 친구들과 갑작스런 만남이었지만 유쾌하기도 했고 의외의 감상을 남기기도 했던 선배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거기에 다만 붙이면 유명한 섬유 유연제 광고하나 뚝딱이다. 다우니...... 그나마 그냥 우니라 부르는 게 다행인가. 그렇지만 우니는 성게알의 이름 아닌가. 이런 것까지 신경쓰면 너무 째째해보이려나. 다운은 복잡한 심경을 내심 밀어내고는 웃음을 터뜨리는 서우를 바라보았다. 콧잔등의 주름이며 익살스러운 눈꼬리까지... 그러다 다운은 약간의 장난기를 발동한 것인지, 아니면 복수라도 해주려는 심산인지 작게 중얼거린다.
"그럼 넌 푸딩해. 머리가 딱 푸딩이네."
하면서 만족한 것인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니와 푸딩이라니 둘 다 먹을 거에다 노란 것이니 꽤 잘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학식?"
다운은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데굴데굴 굴렀다. 손이 마구마구 흔들렸지만 이미 생각에 빠진 몸은 삐걱삐걱 서우의 움직임을 겨우 따라갈 뿐이었다.
"그... 내가 개학식날 너한테 말 걸었었나? 아니면 부딪혔다거나 이야기를 나눴다거나..."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여놓던 다우의 표정이 그쯤 경직되었다. 목석같던 그 얼굴에 금이 갔다. 굳이 표정을 말로 표현하자면 '엥?' 정도가 되겠다. 서우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서우의 눈동장 담긴 감정의 의미를 깨닫는다. 악의는 없지만 장난기 그득한 얼굴이다. 다운은 입을 삐죽이더니 종래에는 한숨은 내쉬었다. 하아... 손으로 제 이마를 짚고는.
"너 나 놀리려고 그랬구나? 됐어. 나는 내가 치매라도 걸린 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너는 아무렇지 않다 이거구나. 정말 손 발이 떨리고 눈이 떨리고 늑골이 떨리고..."
말수가 적던 다운의 입에서 속사포같은 한탄이 튀어나온다. 원래 이렇게 말 많고 익살스러운 성격인가 싶지만 서우의 저 인싸력에 다운도 어느정도 영향을 받은 게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신나게 놀림 받은 것과 상대의 이름을 모르는 건 또 별개였으므로 다운이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우가 급 시무룩해지자 다운은 또 그게 미안해서 어영부영 손을 올렸다, 등도 쓸지 못하고 내렸다.
“푸딩 맛있지! 난 우유 푸딩이 제―일 좋아. 우~니는 푸딩 좋아해? 아! 나 머리 풀면 더 푸딩같을걸?!”
어색하고 서먹한 사이에 만나 그 적만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것을 ‘아이스 브레이킹’이라고 한다던데, 서우한테는 ‘아이스’가 존재하지도 않았고, 이 정도면 ‘브레이킹’이 아니라 고운 가루로 빻아버린 수준이다. 그렇게 조잘대더니 서우는 쪼그맣게 양갈래로 나눠 묶어둔 머리카락을 풀었다. 반지만한 작은 고무줄에 붙잡혀있던 머리카락들이 멋대로 뻗치기 시작했다. 결 상한 곱슬머리는 아주 짧은 단발로 내려왔고 척 보기에도 부스스했다. 머리 묶은 자국까지 남아 산발의 더벅머리다. 부스스한 더벅머리를 하고서 제 머리 꼬라지가 어떤지도 모르고서는 ‘더 푸딩 같지 않아?’라는 뜻으로 환히 웃는게 바보같기도 하다. 그러고서 서우는 두 개의 고무줄 중 하나는 입술 사이에 물었고, 다른 하나로는 다시 머리를 묶기 시작한다.
“응, 개학딕. 아니면 이팍딕?”
머리끈을 물고서 말하니 발음이 이빠진 어린아이만 못하다! 다행히도 양철 나무꾼 우니의 움직임을 멈추는데 성공해서, 서우의 양 손은 다시 머리를 묶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셔틀콕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잊어먹은 것 같다.
“이제 들켰어? 우~니 바―보!”
우니가 한숨을 쉬고 한탄까지 늘어놓는데, 왈가닥은 꺄르륵 꺄르륵 누가 보아도 재밌어 신난 모습이다. 그래도 우니가 손발이 떠릴고 눈이 떨리고 늑골이 떨린다고 하니 그 말이 뇌리에 박혔는지, 행동 하나를 취하려고 했다. “떨지마, 떨지마~!” 손을 쭉 뻗어서 우니의 어깨 언저리 팔뚝께를 토닥토닥 하려고 했다! 누구 때문에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하면 참 밉살스럽다.
“서…아…? 서아는… 동생 하나 더 생기면 동생 이름으로 쓰면 되겠다….”
서우, 서오. 두 남매의 이름이다. ‘서’를 돌림자로 쓰고 있었는데 셋째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어울릴 것 같다. 개학한 지 2주 정도 돼 가지만 반 친구가 이름 모른다는 이유로 삐질 위인이던 서우는 고개를 숙였다. 사실대로 내 이름을 잘 모르겠다고 말했으면 안 삐졌을거니 우니 탓이라고 합리화를 끝냈다. 시무룩한 척도 풀 죽은 척도 아니고 삐진 척도 아니고 정말로 토라졌다!
“우~니 미워….”
밥 먹으러 갈래! 라고 외치려다 지금 밥 먹으러 못 가고 있던 이유를 용케도 기억해냈다. 아까까지 그렇게 하기 싫어 발라당 드러눕기도 했었으면서, 얌전히 셔틀콕이나 줍는다.
답레랑 갱신~~~~~ 서우 너무 제멋대로라 아주 한 문단마다 감정 상태가 휙휙 바뀌는게............... 서우 만난 애들 피곤하겠다란 생각이 ☺️............. 그리고 다운주 늦었던 건 괜찮다굿~~!! 다운이가 이름을 맞췄다고 해야할지 아닐지 모르겠어서 일단 적힌 그대로 서아로 받았는데~~~~ 아니라면 다시 써올테니까 말해줘~~~!!!! ☺️☺️☺️☺️
어. 시트에도 적혀있긴 하지만 은우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는 것을 비밀로 하고 있어! 일상툰 느낌으로 해서 자기 주변의 에피소드들을 웹툰으로 그려내고 있거든! 물론 날 것 그대로는 아니고 약간의 변경이나 약간의 왜곡 같은 것은 있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서 아마... 은우가 직접 등장할래? 하고 물어보진 않을거야! 아무래도 자신이 작품을 그리는 것을 알면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일부러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그런 경향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 말이야.
ㅋㅋㅋㅋㅋㅋ 중화 특유의 달달한 맛이 있지! 짜장면이라던가~ 요즘에는 배달로 먹는 것보다 직접 식당에 가서 먹는게 너무 좋더라. 배달 시켜먹으면 식고, 불고, 포장용기 감성 없고 흑흑... 하지만 귀찮아서 배달을 시켜먹게 되고 또 후회하고 악순환...? ㅋㅋㅋ큐ㅠㅠㅠ 최근 식당에서 짜장면 먹었는데 넘 맛있었어
아앗! 그냥 내가 일상 돌렸던 것들을 정주행했다는 그런 의미야! 사실 정주행을 해도 크게 막 뭐가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기도 하고! 그냥 은우 관련으로는 시트의 너구리상 말이 있어서 그런지 동물의 숲에 나오는 너구리 이름을 본따서 은돌이가 별명이 되었다..라는 뭐 그런 건 있지만!
화이트데이는 3번이나 타바스코 사탕 먹기 룰렛 같은 것을 울구면 아무래도 또 저 짓하네가 될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우연히 마주쳤다라고 하면 뭔가 서로 의식하는 거 없이 바로 끝날 것 같으니 아주 가볍게 은우가 아침 일찍 등교해서 운동장에 미스터리 서클을 그리고 있으면 하늘이가 호기심을 보일까?
새 울음소리가 연하게 들려오는 정말로 이른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아직 학교에 등교하진 않았겠으나 은우는 상당히 빠른 시간인 이 시간대에 학교에 이미 등교를 끝낸 상태였다. 자신이 주번이라서? 안타깝게도 은우는 이미 저번주에 주번을 했기에 한동안 주번 일을 할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왜 이 시간에 학교에 등교를 했는가? 그것에 대한 답은 어제 집에 와서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미스터리 서클' 영상을 본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상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아주 커다란 그림이긴 하나 그것이 은우를 그만 자극하고 말았고 결국 이른 아침, 은우는 운동장으로 나간 후, 운동장에 달리기 트랙 등을 그릴 때 쓰는 기구를 꺼내왔다.
그리고 그는 신나게 그 기구를 앞으로 굴리면서 운동장에 커다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슨 그림을 그릴까 고민하던 그는 마치 어릴 적, 만화에서 나올 법한 오징어 외계인 모양의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 먹으며 아주 커다랗게 오징어 머리 부분을 천천히 그렸다. 학교 창문에서 바라보면 아주 커다란 오징어가 보일법한 그런 느낌으로 정말로 세심하게 그리는 것이 역시 웹툰을 그릴 정도의 그림 실력이었다. 물론 펜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구로 선을 긋는 것 정도였으니 세심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본격적으로 학생들이 등교를 마친 후에 창문에서 이 그림을 보면 웅성웅성 거릴테고 그는 그 광경이 너무나 재밌을 것 같다고 확신했다. 재미가 없으면 다음부터 안 그리면 될 일이고 선도부나 다른 곳에서 자신에게 뭐하는 짓이냐고 찾아오면 그건 그때의 일이었다. 딱히 이 활동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며 나름 와- 하는 정도로 끝나는 아주 가벼운 장난에 지나지 않았기에.
미나라는 친구가 생겼다고 해서 내 일상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튿날도 여느 때 처럼 학교에 갔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 때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의식하게 되긴 했지만, 대뜸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내 일상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는 기분은 꽤나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등교가 즐거워졌다거나 그런 것은 또 아니지만
"오늘은 크림빵이랑 소보루빵인가."
항상 이용하던 제빵점에서 '오늘의 빵' 2개를 사서 봉투에 담아 나온다. 내가 등교하는 시간은 꽤 이른 편이었다. 이유야 당연하지만, 정시 등교를 하게 되면 사람이 북적거린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한적한 시간을 택해서 오늘도 변함없는 통학로를 걸어 변함없는 교문을 지나서 변함없는 운동...
아니, 이건 뭐지..
평소와 다를게 없을거라 생각하며 들어선 운동장에 무언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미스테리 서클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꽤나 규모가 거대한 그림이었던 터라 위에서 내려다 본다면 모를까 내가 서있는 평면에서는 그림을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건 그렇다 치고, 도대체 누가..
적잖이 당황스러운 얼굴이 되어 외계인의 소행은 아닐거라 생각하면서도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본 나는 곧 다시 고개를 내려 운동장을 둘러보다가 맞은 편에 서 있는 한 명의 남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저 아이인가. 선도부가 본다면 큰일 날텐데.
뭘 더 그리면 좋을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거리던 은우는 이내 눈을 다시 떴다. 그러다 저 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학생을 한 명 확인할 수 있었다. 거리가 있다보니 학년을 구분할 순 없었으나 그럼에도 일단 여기의 학생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고 그는 흥미로운 표정을 짓다가 바로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바로 근처에서 멈춰섰다. 자연히 그가 자신보다 선배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그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이름이..어..하늘? 하늘 선배!"
파란색 명찰과 거기에 쓰여있는 이름으로 그의 학년과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그는 마침 이렇게 있으니 아이디어를 구해볼 생각으로 싱긋 웃으면서 뒷짐을 지며 살짝 다가가다가 멈춰섰다.
"선배는 큰 운동장에 뭔가를 그린다면 뭘 그리고 싶어요? 아무거나! 남이 봤을 때 불쾌한 거 아닌 것 내에서."
답이 나오면 그것을 그릴 생각이었다. 혼자서 답을 못 찾으면 다른 누군가에게 의견을 구해보라고 하는 것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물론 별로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구하겠으나 일단은 들어본 이후에 생각할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있는 그의 모습에 설마 외계인과 교신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알쏭달쏭 한 생각을 하던 중에 그가 나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성큼성큼 발을 옮겨 다가오자 움츠러들어버렸다. 그야,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려놓은 자가 저렇게 흥미롭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면 경계심이 생길 수 밖에 없지 않나? 아님말고.
"..어, 그렇네.. 좋은 아침이네."
생각보다 예의를 차려서 인사를 건네오는 그의 말에 긴장은 어느정도 풀어졌지만, 아직 사람을 대하는 것은 어색한지라 얼떨떨한 표정은 그대로였다. 내 앞에 서 있는 학생은 2학년으로 정은우라는 이름을 명찰에 매달고 있었다. 봄 바람에 하늘거리는 연갈색의 머리, 장난끼 가득한 눈매에, 싱글거리는 미소. 그런 첫인상 만으로도 그의 성격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글쎄.."
인사 뒤에 그의 입에서 나온 질문에도 나는 역시 당황한 기색을 내비출 수 밖에 없었다. 운동장에 무언가를 그린다는 상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그림이라면.. 나는 흠.. 하면서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는 턱을 받치고서 고민했다. 넓은 운동장이라는 캔버스에 어울릴 만한 그림, 유년기의 나라면..
"아마.. 고래?"
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것보다, 이거 아이디어를 줘도 되는건가? 공범으로 몰리는거 아니야?
고래라는 말이 나오자 그는 살며시 옆으로 돈 후에 자신이 그린 오징어 그림을 바라봤다. 확실히 오징어를 그렸으니 그 옆에 고래가 입을 쩍 벌리면서 잡아먹으려는 그런 느낌을 그리면 나름 어울리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면 뭔가 미스터리 서클 느낌은 안 나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는 곧 구도를 바꿔서 오징어 아래에다가 고래 모양의 뭔가를 그리기로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채택! 와. 고래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선배 아이디어 괜찮네요! 저기에 오징어 그림을 그렸는데 뭔가 저것만 그리면 썰렁할 것 같아서 뭘 그리면 좋을지를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고래라. 고래. 괜찮네요."
아. 기왕이면 뭔가 고대 느낌의 고래를 그려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자신이 한 게임 중 고대종 느낌의 고래는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떠올렸다. 지금의 고래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허나 생각해보면 고작 하얀 선을 긋는 것 정도로 그렇게까지 세심하고 디테일하게 표현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왜 굳이 고래를 고르셨어요? 고래 좋아하세요?"
별 의미는 없는 질문이었다. 그저 호기심과 약간의 흥미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답을 안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고.
오징어와 고래, 향유고래였나. 그런 육식성 고래 종들은 대왕 오징어를 먹고 산다고도 했다. 이거, 나도 모르게 천적 구도를 만들어 버린걸까.. 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고래가 오징어를 잡아먹는 장면의 그림을 연상하게 됐다. 위에서 본다면 꽤 멋진 그림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 옆에 있는 은우라는 후배의 몫이니까.
내 아이디어가 그의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채택 이라 외치고서 아이디어를 칭찬하는 그의 말에 나는 꼬부라진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며 멋쩍게 웃었다. 웃어도 되는건가.. 그러니까 나중에 공범에 불려가는거 아니냐구.
그러나, 그는 어떤 고래의 그림을 그릴 것인지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 되더니 이내 무언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는 또 다시 두 눈을 빛내면서 내게 왜 고래를 골랐냐는 질문을 던져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참 표정의 변화가 다이나믹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어색한 웃음 밖에 지을 줄 모르는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어렸을때, 고래를 좋아했어."
지금은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확답할 수 없었다. 자라오면서 그런 거대한 생물ㅡ흔히 공룡이라던가ㅡ에 대한 동심에 기반한 동경이 사라진 탓일까.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고래에 대한 동경은 많이 희석된 상태였다. 그때에는 왜 그토록 고래를 좋아했던 것일까.
"그렇구나. 확실히 고래처럼 큰 동물이 어린 나이에는 되게 어필이 잘 되잖아요? 저도 티라노사우르스 엄청 좋아하고 그랬는데! 아. 나중에 티라노도 그려볼까. 그런데 티라노는 어떻게 그리더라."
고래에 이어서 티라노까지 그려볼 생각인지 그는 오른쪽 턱에 손을 괴면서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주머니 속에 있는 스마트폰을 떠올리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검색하면서 확인하면 되지 뭐! 굳이 말로 표현하진 않으며 그는 두 어깨를 다시 한 번 으쓱하며 뿌듯한 표정을 계속 이어나갔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가운데 자신의 머리카락을 살짝 스쳐 지나가자 그는 손을 뻗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했다. 그러다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는 두 손으로 박수를 짝 친 후에 그를 바라보며 제안했다.
"그럼 고래는 선배가 그려볼래요? 원래 좋아하는 것은 자신이 직접 그려야 더 재밌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못 그려도 괜찮고! 지금 여기가 무슨 미술 경연대회도 아니잖아요? 잘 그린다고 상 주는 것도 아닌데."
키득키득 웃어보이지만 그가 거절한다면 굳이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다. 스스로도 운동장에 저렇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마냥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어 그는 괜히 어깨를 으쓱한 후에 시계를 확인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만약 안 그린다면 10분 정도 후에 교실에 올라가서 창문으로 보세요! 아주 멋지게 그려놓을테니까."
아. 대신 제가 그렸다는 것은 비밀. 알죠? 오른쪽 눈을 살짝 감아 윙크를 보내면서 그는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티라노도 그려볼까 라는 그의 말에 무심코 그의 행동력에 감탄하여 잠시 놀란 눈이 되었지만 이내 그런 그의 마음에도 조금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기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도 어린 아이들에게는 공룡을 모티브로한 완구가 인기상품이니까. 왠지 동심이 간질여지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요즘은 티라노가 반질거리는 피부의 공포스러운 도마뱀이 아니라 새처럼 깃털이 달려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학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들어봤다.
멋이 없다는 이유로 완구 등에서는 그 학설을 배제하는 것 같지만, 뭐 아직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확실히 깃털 달린 티라노라면 조금 깨는 느낌이긴 하다.
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가 헝클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런 잡념에 빠져있다가 고래는 선배가 그려볼래요? 라고 내게 말해오는 그의 말에 다시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평소라면 가볍게 거절했을 그의 말에 나는 "그래 볼까." 라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이 내 동심을 자극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 버린 탓이다. 그 날 이후로 나도 꽤나 대범 해진걸까..
"괜찮아, 나도 공범이니까."
이후에 선도부에게 걸려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나는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붙이며 서로만의 비밀이라는 듯 조용히 말했다. 요즘들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지만, 아무렴, 이 조그마한 일탈이 내가 마음의 껍질을 부수고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수 있을까. 그런 마음도 있었다.
자신도 그려보겠다고 답하는 모습에 은우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먼저 성큼성큼 걸어 선을 긋는 기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손잡이를 꼬옥 잡은 후에 천천히 끌고 왔고 그에게 넘겨주듯 살며시 내밀었다. 사용방법이야 그냥 앞으로만 가면 그릴 수 있으니 그리 어려울 것은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으나 혹시 모를 일이기에 그냥 가볍게 사용법을 알려주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누가 보기 전에 후딱 들어가면 되는거고 설사 걸린다고 해도 저에게 오지. 선배에게는 안 올걸요?"
어떻게 보면 은근히 익숙하다는 듯, 그는 정말로 태연하고 가볍게 대답했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걸린다는 것을 걱정하지도 않고 너무나 익숙하게,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는지 그는 가만히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다 싱긋 웃으며 비어있는 한 공간을 손으로 가리켰다.
"구도로 보면 저기에 그리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먼저 그린 선에 닿지 않게 조심조심하면서 자유롭게 그려봐요. 못 그려도 상관없으니 그냥 정말로 그리고 싶은 느낌으로 그리기!"
적어도 자신은 그에 대해 간섭할 마음도 없으며 비웃거나 웃을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 그는 태연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살며시 그에게서 멀어지며 거리를 두었다. 혹여나 그가 그림을 그리는데 방해가 될까 싶은거였다.
"아. 뭔가 신문부 애들이 오면 되게 재밌을 것 같은데. 정체불명의 그림. 누가 그렸는가! 이런 기사가 뜨면 뭔가 엄청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에요. 선배와 제 그림 둘 다 엄청 멋지게 잘 잡힐걸요?"
그가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운동장에 선을 긋는 기구 ㅡ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나중에 검색 해보니 라인기라고 한다.ㅡ 가져와 내밀며 사용법을 말해주자 나는 고맙다며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 마냥, 왈가닥한 아이가 아니라 이렇게 세심한 부분도 있구나. 사실 이렇게 장난스러운 성격을 가진 사람은 나와 맞지 않는 타입의 인물일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지금까지 사람을 제대로 마주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만든 생각의 틀 안에 갇혀있던 것이다.
"전과가 많은가 보네."
익숙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답지 않게 농담을 하고서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내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언행에 주의를 하기 시작한 초등학교 6학년,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나도 그 처럼 의연하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처를 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좀 달랐을까.
"응, 분명 못 그리겠지만.. 해볼게. "
그가 가리킨 비어있는 공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꾸했다. 그림이라고는 초등학생 저학년 때 까지만 노트에 낙서처럼 끄적여본 게 다라서, 내가 생각한 대로 고래의 이미지를 잘 그려낼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가, 응, 확실히 그럴지도."
신문의 한 면을 장식할 운동장에 그려진 그림을 상상하며 피식하고 작은 웃음을 흘리고서 그가 가리켰던 공간에서 라인기를 끌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 눈에 보이는 규모가 아니니 나름 고래의 모습을 그린다고는 하지만, 글쎄 결과적으로는 어떤 그림이 나올까.
"적어도 중학생 때는... 여러가지로요. 아. 하지만 억울한 것도 있다고요! 아. 글쎄. 중학생 때 축제 때 폭죽이 안 터진다는 소식을 전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어서 옥상에 올라가서 제가 적절한 타이밍에 제 사비로 폭죽을 사서 몇 개 터트렸다가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몰라요. 제가 제 사비로 한건데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가 싶다고요. 대형 축제처럼 막 엄청 터트린 것도 아니고 그냥 몇 개 조금 터트린건데."
물론 정말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의 목소리는 억울하고 짜증난다기보단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식으로 설명하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상당히 가벼웠다. 아무튼 그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은우는 흥미롭다는 듯이 살며시 근처를 따라다니면서 선을 확인했다. 물론 이게 정말로 고래 모양일지, 애초에 자신이 처음에 그린 그림이 정말로 오징어 모양처럼 보일지도 위에서 확인하진 않았기에 그는 알 수 없었다. 아무렴 어떠랴. 이렇게 그리고 나중에 웅성웅성거리는 분위기가 그에겐 재미였기에 더더욱.
"그렇다니까요. 신문부에서 이거 절대 놓칠리가 없는데! 물론 그 이전에 누가 와서 지워버리면 말짱 도루묵이지만요. 하지만 분명히 누가 그림을 그린 것을 확인하고 필시 SNS에 올린다고 핸드폰으로 찍을테니까 절대 잊혀지진 않을걸요?"
자신이라도 이런 그림이 등교했는데 있으면 찍어서 SNS에 올릴 것이기에 은우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말을 마치며 조금 더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는 소리없이 천천히 그의 옆을 따라 걸어가며 선의 형태를 살폈다. 확실히 이렇게만 가면 커다란 고래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두 어깨를 으쓱했다.
"고3 스트레스도 가끔 이런 거 하면 풀릴걸요? 지금도 조금 기분 괜찮지 않아요? 공부하는 것보다 말이에요."
그가 말해주는 일화에 푸스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라면, 폭죽이 안 터진 것에 대해서 아쉽다는 생각만 했을텐데, 그는 행동을 함으로서 비록 잔소리를 들었을지 언정 이렇게 이야기를 꺼낼 만큼 자신만의 소중한 추억을 하나 만들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추억거리로 남을 만한 일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추억거리로 남은 것은 그녀와 함께 했던 시절의 일들 밖에 없다.
그녀가 떠나가고 나서 부터는 나름 혼자서 잘 걸어왔다고 생각했던 나날들이 돌이켜보면 잿물처럼 탁한 색으로만 얼룩져있었기에 마음 한켠이 괜히 씁쓸해져왔다.
"응, 지워버린다 해도 누군가는 분명 기억 할테니까."
중의적인 말이었을까. 눈에 보이는 모습이나 형체는 지워져버릴지 언정 기억에 한번 각인 된 것은 기억 속에서 계속해서 아른거릴테니까. 이것도 나름대로 재밌거나 신기했던 추억으로 나나 다른 사람에게 남겨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마음 위에 커다란 고래의 그림을 덧그려 씌운다. 커다란 고래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 크기 보다는 아니, 그렇게 큰 몸집을 하고서도 대양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그랬을 터인데 나는 어째서 작은 어항 속에 스스로를 가두게 되었을까.
"그러게,"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 보다는 이렇게 은우라는 아이와 그림을 그려나가며 마음 속에 얽혀있던 응어리가 조금 풀리는 듯한 기분에 미소지으며 그를 마주보았다. 혼자라면 생각해 보지도 못했을 일이고, 실행해 보지도 못했을 일이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학년의 끝을 알려주기 마련이었다.따뜻한 봄날, 이제 3년동안 지내오던 교내를 완전히 떠나는 졸업생들의 아쉬움과 기대가 섞여 있는 소음.
" 선배, 오래 기다리셨죠. "
죄송해요. 늦어서. 중앙 현관을 가로질러서 가로수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 벚나무 아래로 여학생이 다급하게 뛰어와서 건네는 목소리가 이제는 완전히 조용해진 풍경에 섞여든다. 한손에는 졸업장을, 다른쪽에는 깁스를 하고 벚나무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던 유정의 시선이 가까이 다가오는 여학생에게 향했고 괜찮다는 듯 좌우로 고개를 내저어보였다.
" 진짜 이대로 갈거에요? 나 방금까지 엄청 시달리고 왔다구요. 당장 선배 데려오지 못하겠냐면서. 궁도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성격이 드셀까.. " " 역 근처 맥에서 한턱 쏠게.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 " 됐어요. 졸업하는 사람한테 얻어먹을 생각 없네요. "
후배의 장난스러운 투덜거림에 유정은 눈을 가늘게 접고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은 교내를 가로질러서 천천히 귀가를 시작했다. 전철역까지 나란히 어깨를 마주하고 걸어가면서 두 사람의 대화는 명확한 주제없이 시시껄렁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추억을 되짚어서 내려가는 것 같은 주제들이 가볍게 둘의 입에 오르내리길 반복했다. 유정의, 버릇같은 능글맞은 웃음에 후배는 늘 그랬던 것처럼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이어나갔다.
" 고등학교는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죠? 어디로요? " " 한국으로 갈거 같네. " " 활은? "
유정은 후배의 질문에 잠시, 입을 다물고 그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던 대화가 그대로 끊어지자, 후배는 그 자리에 붙박힌 것처럼 멈춰버렸다. 선배? 부르는 목소리가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유정은 알아차리고 뒤이어 걸음을 멈춰냈다. 졸업장을 들고 있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고, 곧바로 제 앞머리를 쓸어넘긴 뒤 손을 밑으로 떨어트린 유정은 후배를 향해 상체를 돌렸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이 그 하늘색 눈동자에 스며든다. 속을 알 수 없는 여유롭고 느긋한 미소로 유정은 후배를 바라봤다.
" 미안해. " " .... 왜요? 한국에서 하기에는 힘들어서 그런가요? "
선 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아서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후배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자, 유정은 후배와 자신 사이에 있는 거리를 없애고 가까이 다가가서 몸을 숙였다. 한뼘- 아니 두뼘쯤 차이나는 키 때문에, 후배의 위로 그늘이 졌다. 일어날까? 교복 더러워지겠다. 조용한 유정의 목소리에 후배는 홱 하니 고개를 치켜들고 유정과 시선을 맞췄다. 후배가 아는 유정은 이런 사람이었다. 사려깊은 행동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
" 어휴, 얼굴 못생겼다." " 진짜 짜증나.. "
내민 자신의 손을 붙잡으면서 꿍얼거리는 후배의 반응에, 예의 눈을 가늘게 접고 키득거리는 능글맞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유정은 후배를 일으켜줬다. 짜증난다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면서도 치맛자락을 툭툭 털어내고 손수건을 꺼내 엉망이 된 얼굴을 닦아내는 모습을 가만 바라보던 유정은 말이 없었다.
" 라인정도는 답해줄 수 있으니까 보고 싶으면 라인해도 돼. " " 안할건데요. 선배 짜증나. 진짜 싫어. "
궁시렁거리며 후배는 유정을 지나쳐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 뒷모습에서 여러가지 감정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유정은 씩 미소를 지었다가 후배가 벌려낸 거리가 무색하도록 금새 거리를 좁혔다. 새초롬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후배의 모습에는 모르는 척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거야 그렇죠! 일단 저는 기억할거고 선배도 분명히 기억날걸요? 원래 추억이라는 것이 이런 자잘한 것에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이야 별 거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시간 지나면 와. 내가 아침에 일찍 가서 막 누군지도 모를 후배의 그림 옆에 고래 그렸다! 이러면서 웃을 날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물론 은우가 보는 하늘은 자신처럼 가볍고 경박하게 생각을 할 스타일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 차분하게 그땐 그랬지. 정도로 끝내는 스타일로 그의 눈엔 비쳤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자신이 말로 표현하는 거니 자신의 스타일로 해도 상관없지 않겠나 생각하며 그는 괜히 오버 액션을 하면서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냈다.
허나 뒤이어 들려오는 덕분에 고맙다는 그 말에 그는 가만히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한 행동이 고맙다는 인사가 나올만한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허나 깊게 생각하지 않으며 은우는 그냥 순순히 그 감사를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두 어깨를 살며시 으쓱하면서 그가 그리는 그림 쪽으로 시선을 돌린 후에 입을 열었다.
"천만에요! 이런 작은 것만으로도 선배를 알게 되고, 스트레스 조금 풀 수 있게 되었다면 오히려 영광이죠! 오히려 무시하지 않고 이렇게 응해줘서 고맙다고 해야할지. 고3이라면 아무래도 바빠서 이런 행동에 응하지 않을 확률이 크잖아요?"
응해주는 것에 오히려 역으로 감사를 표하면서 그는 가만히 생각을 하다 뒷짐을 지며 아주 살짝 떨어진 상태에서 그림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려고 했다. 크게 그린 그림이니 같은 시선에서는 아무래도 그 형태를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래봐야 선이 땅에 진하게 그려진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았으니까. 역시 누군가가 지우기 전에 빠르게 교실로 올라가서 확인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자신의 교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내렸다.
"공부하다가 너무 피곤하고 뭔가 자극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2학년 1반으로 와서 저를 찾아봐요. 재밌는 거 있으면 선배도 끼워줄테니까요! 이래보여도 제가 화이트 데이때 타바스코 사탕을 가지고 와서 일반 사탕과 섞은 후에 러시안 룰렛처럼 해서 놀았던 전적도 있거든요! 아하하하! 패가 더 많지만."
나로서는 지금 운동장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마냥 자잘한 일도 아니거니와 그런 것을 제쳐두더라도 지금 마음속에 느껴지는 이 감정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기억 속에 남은 후회가 나를 움직여 다시금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줬으니까. 닿지 않을 사과보다는 닿지 않을 감사가 낫다. 그러한 마음의 변화가 일었다.
내가 그에게 뱉은 고맙다는 말은 그에게 당황스럽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입장에서는 특별히 감사를 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을테니까. 그러나 그가 나에게 제안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렇게 감정이나 추억으로 될 만한 일을 남기지 못했겠지.
"이른 시간이고, 특별히 할 것도 없었는 걸"
그리고, 특별할 것도 없는 날이 되었을 거다. 무신경한 초점을 거두고 조금 더 집중해서 주변을 둘러보면, 이전에 요리부실에서 미나를 만났던 우연처럼 이런식으로 하루에 특별함을 만들어나갈 우연들은 많았을 것이다. 뭐.. 이번 같은 경우에는 스케일이 워낙 크다보니 그냥 눈에 들어왔을테지만, 아무튼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나도 은우라는 2학년 후배를 만났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게.. 너였어?"
집에서 동생에게 들었다. 화이트데이에 타바스코 사탕 룰렛을 하는 이상한 선배가 있었다고, 아무튼 그런 소문이 퍼졌던 모양이다. 유쾌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그 주인공이 내 앞에 이 은우라는 아이였을 줄이야. 무심코 피식 웃음을 흘려버렸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와 두 하얀 선의 경계가 맞닿았다. 다 그린건가? 정말 내가 생각했던 대로 고래의 모습으로 그려졌을지 기대되는데.
유정주의 캐릭터 파악과 상황선정에 도움을 주기 위한 아진이의 방송은 어떤 느낌인가 특집~ situplay>1596456105>316 situplay>1596456105>401 situplay>1596456105>497 situplay>1596458077>155 situplay>1596458077>204 situplay>1596459108>134 situplay>1596459108>346 situplay>1596459108>687
"전 3학년이 아니라서 모르지만 제가 아는 3학년 썰을 보면 정말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공부만 하루종일 하는 이도 많다고 하던걸요. 특히 여긴 명문고고 말이에요."
일단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곳인만큼 3학년의 분위기도 아무래도 공부 쪽에 조금 더 치중되지 않았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이전 미나를 떠올리면 마냥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으나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절로 은우의 표정이 시무룩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정말로 내년이 되면 나도 이런 짓을 못하겠구나. 그래도 캔디맨은 조금 하고 싶은데. 그런 속마음을 중얼중얼거리다가 이내 그의 물음에 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 저 맞을걸요? 저 말고 타바스코 사탕 가지고 온 이가 또 있다면 모를까?"
그래도 어지간하면 자신이 아닐까하고 은우는 생각했다. 애초에 화이트데이때 타바스코 사탕을 가지고 오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아. 의외로 엄청 소문이 난 모양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일부러 얄궂게 피식 웃었다. 이렇게 모두에게 하나의 추억을 선물해준 셈 칠 생각인지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싱글벙글 그 자체였다.
아무튼 하늘이 그림을 완성한 것으로 보이자 그는 일단 전체적으로 볼 생각이었는지 가만히 까치발을 들어올려 자신의 시선을 올렸다. 선의 형태가 전부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두 손을 가볍게 털었다. 여기서 더 그려도 뭔가 복잡해질 것 같으니 이쯤에서 그림 그리기를 끝내는게 좋겠다고 판단하며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이 정도로 그리고 각자 교실로 가서 그림 확인해볼까요? 잘 그려졌는지 말이에요! 선생님이나 다른 애들이 교실에 오면 복잡해져서 못 볼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560 방송실에 사탕 삥뜯으러 가는 유정...🤔 확실히 그건 가능성 있겠는걸...분신물은 유정 성격으로 분실물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분실물을 주워서 방송 부탁하러 가는 느낌일텐데..엄! 오케이 바이 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뭐 상황이 맞다면 더 이어질 수도 있을테고. 우리 둘다 지금으로서는 이 두 상황말고 다른 상황이 안떠오를 것 같은데 어때? 두 상황 중에 하나 정할까? 선레는 누가할래? 다이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재수없게 들릴 수도 있으려나 잠시 생각이 스쳤지만, 뭐.. 괜찮겠지. 그렇다고 학업을 게을리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집으로 귀가하고 나서는 할 것도 없으니 보통 잠들기 전까지는 복습이나 예습을 해두는 편이기도 하고. 굳이 그 이유를 따지자면 방과후에 어울려 놀 친구도 없어서 마냥 공부만 하는 것이 취미로 굳어져버렸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만...
"동생이 말해줬거든, 그런 선배가 있었다고. 그게 너 일줄은 몰랐네."
내 귀에도 흘러들어 올 정도로 소문이 퍼진 만큼 모두에게 기억될 만한 추억을 선물(?) 해준 것은 맞을거다. 적어도 우리 학교엔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면서, 화이트 데이가 돌아오거나 타바스코 캔디를 볼 때ㅡ흔치 않겠지만ㅡ마다 떠오를 만한 기억이니까. 그런 기발한 장난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것 같다.
아무튼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라인기의 손잡이를 잡고있던 손을 털어내며 그어진 하얀 선을 따라 운동장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아직까지는 정말 고래의 모양을 하고 있는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응, 슬슬 다른 아이들도 올 시간이고, 그렇게 하자."
내심 기대되는 마음도 있었기에 얼른 높은 곳으로 가서 완성된 그림을 보고싶었다.
//이쯤에서 막레로 할까?? 하늘이는 어차피 별관으로 가야 할 테니까 가는 길이 같지 않으니! 그림에 대한 건 후일담 형식으로 쓰려고 하는데 어때?
동생이라. 1학년일지 2학년일지 살짝 호기심이 생기긴 했으나 그는 굳이 그것을 묻지 않았다. 뭔가 동생이 누군지 캐묻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으니까. 언젠간 알 수도 있거나, 혹은 자신이 타바스코 룰렛을 했던 이들 중에 한 명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나름대로 리스트를 그려보려고 했다. 물론 떠오르는 이는 없었기에 그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네! 그러면 저는 이거 갖다 놓고 교실로 갈테니까.. 들어가보세요! 선배!"
라인기를 가지고 온 것은 자신이었으니 다시 이것을 몰래 갖다놓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몫이었다. 과연 걸리지 않고 잘 갖다놓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겠거니 생각을 하며 그는 라인기를 살짝 들어올린 후에 더 선이 그이지 않도록 나름대로 조심해서 그것을 체육창고 쪽으로 운반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그림을 보고 싶은지 그의 발걸음은 상당히 빠른 걸음이었고, 라인기를 갖다놓은 후 교실로 들어간 후에 창문을 바라보는 행동 역시 상당히 빨랐다. 이내 보이는 커다란 오징어와 고래 그림은 조금 삐뚤한 면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그럭저럭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 진짜 미스테리 서클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으나 저건 저거대로 괜찮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 그럼 애들은 언제 오려나."
일부러 모르는 척 하고 있어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이후에 찾아올 혼란은 필시 재밌을 거라고 느끼며.
/그럼 이걸로 가볍게 막레를 할게!! 일상 수고했어! 하늘주! 후일담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해도 괜찮아!
그림은 남겨도 범행도구를 현장에 남겨 놓을 수는 없었던 탓에 우리는 라인기를 운동장 한 쪽에 있는 체육 창고에 다시 넣어 놓았다. ㅡ은우 혼자 정리한다고 했지만, 같이 범행을 저지른 의리가 있지 나도 같이 동행했다.ㅡ 은우는 2학년이라 본관에 교실이 있고 3학년인 나는 별관에 교실이 있었기에 우리는 창고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서 각자의 교실을 향해 돌아가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다시 한번 대담한 일을 벌여버린 나였지만, 이번에는 놀라움 보다는 재미와 어서 그림을 보고 싶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우리의 그림은 과연 어떤 모양으로 운동장에 그려져 있을까. 설레는 발걸음으로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나는 사람이 없어 한적한 교실의 창가에 붙어 운동장에 그려진 은우의 오징어와 나의 고래 그림을 내려다 보았다.
푸핫, 하고 나는 그려진 그림에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누가 보았다면 마치 어린 아이 처럼 해맑은 웃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게, 내가 그린 고래 그림은 그야말로 어린 아이의 낙서와 비슷한 모양이었으니까.
물구멍이 있어서 고래라는 것이 연상 되긴 하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그저 커다랗고 뚱뚱한 생선이랑 다를 게 없었다. 어째, 고래 그림을 주로 그렸던 초등학생 때보다 그림 실력이 퇴화한 것 같은데, 덕분에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혼자 키득거리며 그림을 구경할 수 있었다.
오징어와 고래를 닮은 이상한 생선.
그것을 보고 문득 떠오른 어렸을 적의 기억에, 나는 노트를 펼치고 회상하듯 글을 끄적였다. [제목 : 바다를 꿈꾸는 소년] situplay>1596466066>94
글을 다 써내려 갈 때 쯤에는 하나 둘 학생들이 등교를 하기 시작했고 운동장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서 당황한 선도부나, 교실에 들어와서 우리가 그려 놓은 그림을 보며 수다를 떨며 웃기도 하며 떠드는 학생들의 표정이 썩 즐거워 보였다.
신문부도 이런 이슈거리는 재빠르게 캐치 해서 사진을 찍어가고, 기사를 준비하는 듯이 왁자지껄했다. 그런 학교에서의 광경을 지켜보며 그림을 그려낸 범인 2명은 아마도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겠지.
그림은 지워져도 추억은 지워지지 않을 거다.
나는 딴청을 피우는 척 턱을 괴고 있었지만 자꾸 느물거리며 지어지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으음- 좀 무리했나. 아프네. 가볍게 주먹을 말아쥔 손으로 툭 하니 반대편 어깨를 한번 두드리다가 펼쳐서 천천히 누르는 것처럼 가볍게 주무른 뒤에 스트레칭 겸 어깨를 몇번 돌리면서 유정의 걸음은 명확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막연히 본관으로 향하고 있었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치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켜서 교실을 나서서 본관으로 걸음을 옮기는 시간동안 쌓인 라인 메세지에 답장을 보내기 위해 한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유정은 가디건 주머니에 비어있는 손을 밀어넣었다. 늘 가디건 주머니에 넣어뒀던 사탕을 꺼내기 위한 그 행동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흔한 초콜렛 몇개도 안잡히는 텅 비어 서 먼지만 떨어질 것 같은 가디건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손으로 제 이마를 탁하고 짚었다.
어쩔 수 없이 비어버린 가디건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아니 사실은 실시간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당을 채우기 위해서 유정의 걸음은 자연스레 매점 방향으로 틀어졌고 멈췄던 걸음을 재촉하려할 때, 유정의 귀에 교내 방송이 들려온 것은 아마도 떨어지는 당을 무료로 채우라는, 신의 계시가 아니었을까싶다. 방송실로 찾아오면 사탕을 주겠다- 라는 방송을 듣자마자 유정의 걸음은 금방 방향을 틀었다.
유정의 목표는 매점에서 방송실로 바뀌었다.
큰 키 만큼이나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오기라도 했는지 유정은 금방 방송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3년동안 헛다니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방송실을 자주 와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방송실 앞에서 피어스를 잔뜩 끼워놓은 귓가를 긁적이던 유정의 손이 문으로 향한다. 똑똑- 가벼운 노크로 방문을 알리고, 곧 방송실 문을 열었을 것이다.
방송용 방음부스의 문을 닫고 나온 아진은 츄파츕스 타워를 방송부 부실 테이블 위에 턱 세워놓았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이 츄파츕스 타워가 얼마나 듬성듬성 민둥산이 되어있을지 모를 노릇이지만, 한 군데도 빠짐없이 도르륵 늘어서 있는 새 츄파츕스 타워를 보는 아진의 마음은 푼푼했다. 애초에 방송부에서 사탕 나눔함~ 하고 방송했다고 해도 얼마나 올지도 의문이고, 딱히 아무도 안 오더라도 한동안 방송하면서 하나씩 까먹을 간식이 모자라진 않을 터였다. 심지어 화이트 데이용 방송부 이벤트라는 명목으로 부비로 샀으니 지출은 제로. 방송부원들 중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야 당연히 방송부원들도 이 츄파츕스 타워를 오며가며 하나씩 까먹을 수 있다는 달콤한 제안을 거절할 리 없으니.
"나하하하하."
계획대로야 풍의 썩소를 지으면서, 아진은 하나도 빠짐없이 완전한 츄파츕스 타워의 영광스러운 첫 개시를 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아진의 손이 츄파츕스에 닿는 것보다, 유정의 손이 방송부실의 문을 노크하는 게 더 빨랐다. 아이쿠 하며 뒤돌아본 아진은 문을 열어주려 방송부실 문으로 부리나케 다가갔으나, 유정이 문을 여는 게 더 빨랐다.
"아이쿠야."
열린 문 너머로, 오전의 햇살이 느릿하게 쏟아지는 방송부실의 전경이 보인다. 이런저런 메모들과 방송일정, 게시물, 공고, 학사일정 등이 어지럽게 나붙어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메모보드와, 방송용 대본이며 템플릿 등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장과, 방송기재 수납함, 그리고 방송부원들을 위한 방송비품용 사물함 등등과, 방송부원들의 사사로운 기호품 서적들이 꽂혀있는 책장-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츄파츕스 타워. 그리고 그 옆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하얀 머리를 한 부스스한 인상의 2학년생의 얼굴에 걸려있는 느른한 웃음.
"방송부에 어섭셔- 사탕 받으러 오신 거여, 선배님? 진짜 누가 받으러 올 줄은 몰랐는데."
나하하하, 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웃는다. 작년부터 방송부의 방송을 맡아 하기 시작했기에, 목소리만은 유정에게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그 듣다가 잠들기 딱 좋은 목소리의 주인은 이렇게 생겼었구나. 목소리의 주인은 손가락으로 안경을 쿡 밀어 안경을 고쳐썼다.
"1인당 한 개여. 선배님이 처음이네. 에이, 첫 개시는 내가 하려고 했는데." 하며 아진은 능청스레 웃는다.
이게.. 고퀄? 😵 답레는 편히 써주면 되어~ 분량도 텀도 신경 안 쓰니께, 딱 한 줄이라고 해도 이을 껀덕지만 있다면 OK니 맘편히 다녀옵셔~ 내가 누워서 폰참치를 하는 성향이라 폰으루 띡띡띡하다가 까무룩 잠들어버릴수 있응게 답레 올라왔는데 리액션이 없거던 잠든 줄 알아줘야.....
실시간으로 떨어지고 있는 당으로 인해, 유정은 시선을 다른 곳에 돌리기보다 방송부실에 세워져 있는 츄파츕스 타워에 뒀다. 테이블 위에 아름답게 올려져 있는 게 지금 유정의 눈을 잡아두기에 충분했지만 그 옆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학생을 향해 눈을 돌리고 눈을 가늘게 접으며 키득키득 웃음을 지었다. 미안해- 하고 사과하는 건, 유정의 몸에 배어있는 것이었다. 어정쩡하게 서있는 여학생마냥, 애매하게 문틈 사이에 멈춰있던 걸음을 옮겨서 유정은 방송부실에 완전히 들어선다.
그제서야, 방송부실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가볍게 방송부실 전경을 훑어보며 양손을 가디건 주머니에 밀어넣으며 한쪽 어깨만 으쓱인다.
"3학년에게 당이라는 영양분은 소중하거든. 내 일용할 당분을 위해서라면 본관까지 오는 수고정도야-"
능글맞은 웃음을 거둔 뒤에 유정의 얼굴에 자리잡은 것은 속을 알 수 없는 여유롭고 느긋한 미소였다. 그나저나 이런 애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스피커를 통해 듣는 목소리보다 훨씬 더 잠들기 딱 좋은 목소리려나. 생각은 굳이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나 말고 사탕 가지러 올 애들도 없어보이는데. 매점에도 사탕은 팔잖아? 그러니까 두개는 안될까?"
차분하고 조용한 반응이기는 하지만 유정은 분명히 장난스레 농담처럼 말하며 능청맞게 웃는 후배를 향해 가볍게 윙크를 해보였다. 곧이어서 버릇처럼 눈을 가늘게 접어내며 키득거리는 웃음을 터트리고는 테이블 위에 있는 츄파츕스 타워에서 가장 좋아하는 딸기우유 맛을 찾으려 손을 뻗었다.
동의를 하는 것 같더니만. 유정은 들리지 않게 혀를 짧게 차며, 츄파츕스 타워에 실시간으로 당이 떨어지고 있는 같은 학교 선배가 손을 뻗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한 후배의 행동에 타워를 향해 뻗어냈던 손을 제자리로 당겼다. 곧이어 툭 하니 블로킹을 하고 있는 후배의 어깨에 올렸을테지만. 거부하거나 피하지 않는다면 툭툭 두어번 두드린 뒤에 떼어냈을 것이다. 그런 일련의 행동을 하면서 그 밝은 하늘색 눈동자는 후배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고 속을 알 수 없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조용한 목소리로 꽤 다정한 문장을 내놓은 유정은 후배의 어깨를 두드렸던 손을 반대편 어깨에 올려놓았다.
" 부비 지원은 충분히 되고 있지 않아?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방송부 후배님, 백아진 후배는 이 타워가 하루만에 민둥산이 될거라고 생각하는거야? "
이미 불렀지만, 이름으로 불러도 되지? 하는 말을 갑자기 처음 보는 선배에게 이름이 불린 상대가 불편한 기색을 느끼지 않도록 천천히 덧붙히면서 유정은 피어싱이 빼곡한 제 귓가를 긁적였다. 저 타워가 5일을 버텼다? 게다가 이걸 작년에도 했다는 뜻이지? 생각하다가 검지를 세우고 제안하려는 후배를 가만, 응시했다. 이어지는 제안에는-
내리깐 듯한 눈매에 여전히 느른한 웃음을 지은 채로 아진은 대답했다. 그리고, 손 안에 쥐이는 아진의 어깨- 기분 탓일까, 왠지 사람의 어깨가 아니라 옷을 입혀놓은 마네킹의 어깨에 손을 얹은 것과 같은 무기질적인 선득함이 있다. 아니, 그저 체격이 마른 편인데다 몸이 찬 편이라 그럴 뿐일까? 툭툭 두드려보면 이 후배가 멀쑥한 허우대(유정이 장신일 뿐, 이 후배 역시도 167센티미터쯤은 되어보였다)에 비해 상당히 깡마른 체격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부비와는 별개로, 부비로 이런 걸 당당히 살 수 있는 건 화이트데이나 할로윈 같은 기념일뿐이니까~"
하며 아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슨배임 좋을 대로 부르셔~ 알벨트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찜이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또는 호 모(胡某)나 기무라 모(木村某)로 생각하여도 괜찮다. 다만 사람이라는 동물을 주인공 삼아가지고, 사람의 세상에서 생겨난 일인 줄만 알면.*" 하고, 멋깔나게 한국 근현대 문학의 한 구절을 읊조리면서 말이다.
"내 전임 DJ는 되게 잘생긴 선배님이셔서, 츄파츕스 타워 사놓고 화이트데이에 사탕 받으러 오라고 하면 방송실 입구가 미어터질 정도로 줄을 서서 하루는커녕 점심시간을 못 넘겼다나 뭐라나~ 슨배임도 내 전임 DJ를 보신 적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선배님이 이쪽으로 손을 뻗고 있던 것 같은데 이거 맞으신감?""
하며, 아진은 츄파츕스 타워에서 딸기우유맛 하나를 쏙 골라서는 내밀어주었다.
"이건 방송부가 드리는 거고."
그 다음에 아진은 츄파츕스 타워가 아니라 다른 데로 손을 뻗었다. 그 옆의 의자에 널부러져 있던 그녀의 가방임직한, 아니 백아진이라는 명찰이 옆구리에 딱 붙어있는 크로스백을 열고 잠깐 뒤적이나 싶더니 그녀는 그 가방 안에서 막대사탕이 아니라 양쪽을 꼬아 포장해둔 알사탕 하나를 쏙 꺼내어 정에게 내밀었다.
"이건 이 후배님이 슨배임께 드리는 거여. 아- 친구들한테 하나씩 나눠줄랬는데 슨배임이 가장 먼저 가져가네."
졸지에 화이트데이 사탕을 받았다.
까만 봉지에 자줏빛 유광으로 상표가 프린팅된 Funcraft's라는 처음 보는 상표의 알사탕이다. 라즈베리 갤럭시 맛. 까만 봉지를 까보면 펄이 들어간 것 같은, 빨간색에 가까운 자줏빛 알사탕이 나온다. 입안에 톡 까넣으면, 멘솔이 조금 첨가된 라즈베리맛 캔디.
"그거 반쯤 먹으면 팝핑캔디로 바뀌니까, 입안에서 뭐가 빠다다닥 한다고 놀라지 마시구. 아무튼 그거 드리는 대신에, 방송부에서 사탕 두 개 받았다는 건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야~"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때, 느낀 기분은 생소하다면 생소할 따름이라서 유정은 손을 떼어내는 선택지가 아니라 선득하게 느껴지는 마른 어깨를 쥐지 않았다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장신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서 오늘 처음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의 물꼬를 튼 후배의 키가 작은 편은 아니라는 걸 안다. 대신, 제 손을 타고 느껴졌던 그 깡마른 어깨의 감촉을 유정은 쉽게 잊지 않을 게 분명했다.
" 그런거 방송부에서 챙기는구나? "
제 어깨를 툭 두드리다가 마사지를 하면서 후배를 가만 바라보며 느긋하고 여유롭게 대꾸하던 유정의 표정은 이어지는 말에 잠깐 전원이 꺼진 기계같은 표정을 지어보인다. 처음 듣는 말이기도 했고, 문장 사이에 함정처럼 느껴지는 한자는 한국에 온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수업을 3년동안 들었는데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유정은 생각했다. 그런 바람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기는 했어도, 계속 이어지는 아진의 말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 그래? 내가 방송실에 온건 오늘이 처음이라서. 게다가 얼마나 잘생겼든 나만할까? "
딸기우유맛 츄파츕스를 받자마자 겉포장지를 요령좋게 뜯어서 입에 넣으며 유정은 대꾸했다. 차분하고 조용한 대꾸였으나 말미의 문장은 짖궂은 농담이었다. 달달한 게 입안으로 들어온 것이 만족스러워서 느긋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얼굴에 가득 짓고 아진의 행동을 가만 지켜보던 유정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키득키득 웃는다.
아, 해랑고의 교목이 벚나무라는 사실을 아는가요. 멀리 갈 필요 없이 해랑고 내에도 벚나무가 많습니다. 특히 매점 옆에 있는 엄청나게 커다란 벚나무에 꽃이 피면 그 광경이 정말 아름답죠. 그 벚나무가 귀신들린 나무라던가 누가 목을 매고 죽었다던가 하는 괴담이 들리긴 하지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는 그 벚나무 아래에서 고백을 하면 행복하게 산다거나 어쩐다나…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금은 더 효과가 높을지도 모르지요.
그나저나 지금 학교는 떠들썩합니다. 왜냐고요? 다들 암암리에 조금씩 해왔던 동아리 홍보를 대대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죠. 3월 모의고사가 끝난 것이 전통적인 부홍보 시작인 것처럼 선배들이 신입생 및 부서가 없는 학생들을 여러 이벤트 및 꼬득임으로 홀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부서의 인원이 많으면 많을 수록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여러 혜택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1학기에 하는 문화제도 영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1학년 때 열심히 부활동을 해서 이제 2학년이 된 친구들은 그 성과를 내고 싶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입생을 많이 유치하는 것이 그것에 도움이 되겠지요.
물론 그것과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들뜬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에요.
>>687 아무튼 질문이라. 신우는 은우가 퍼레이드를 해준다고 하면 과연 어떤 반응일까? (이보세요?!) 그리고 두 캐릭터는 MPC인거야? 아니면 NPC인거야?
>>692 은우의 모의고사? 음. 언제나처럼 중위권 정도일 것 같은데! 물론 학교에선 말이야!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명문고니까 그래도 2~3등급 정도가 나오지 않을까하고 예상해보겠어!! 학교에서 중위권이지. 다른 학교에 비해선 아무래도 은우도 성적은 꽤 높은 편일테니까!
그리고..다운주가 시트를 내렸구나. 음. 잘 가! 다운주! 다음에 또 어딘가에서 볼 수 있으면 보자!
>>695 두 캐릭터는 mpc이다~~! 캡과 일상을 돌리면 고를 수 있는 것이다~ 신우는 싫어하겠지만 은우가 조그면 거절을 못할 것 같긴 해 ㅋㅋㅋㅋ 업고 다니면 한숨 쉬면서 한 손으로 얼굴 싸맬 듯? 부학생회장이라서 시선 집중엔 익숙해지긴 했지만(신우:이런거에 익숙해지진 않았어;) 올리고 보니 은우랑 너무 이름이 비슷해 미안한데...??
왠지 하나는 그럴 것 같아서~ 옆에서 해인이가 잘 달래 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해인이는 모고 잘 보았는지?
>>703 아이고 고마워 ㅋㅋㅋ 아차 했다고~ 정신+()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우라는 이름이 예쁘더라고 그래서 우가 들어가는 친구들이 많은 건가? 엄청 싫어하면 단호히 거절하니까 괜찮아. 은우라면 신우를 퍼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퍼레이드 했던 것으로 (땅땅)(결정)
교육과정이 바뀌었나? 하고 아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야, 아진은 정이 외국에서 전학온 줄을 모르고 있으니까. 학년이 다르기에 복도에서 스쳐지나갈 일도 적었고, 정과 아진이 이렇게 개인적으로 만난 것도 오늘이 처음이다. 정의 이국적 매력이 묻어나는 이목구비에서 정이 귀국자녀라고 짐작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진은 사람 이목구비 생긴 걸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지양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이국적인 이목구비인데 일본에서 왔다고 하면 더 당황스러울지도.
"본인 생각보다 튼튼하니까, 한 대 맞는다고 안 죽어~"
때릴 수도 있었어, 하는 말에 아진은 눈을 치뜨며 빙그레 웃어보인다.
"옛날부터 이렇게 챙기곤 했다더라~ 뭐 나야 낯선 친구들이랑 선후배님들 얼굴 새롭게 보고 좋지. 움직이는 게 귀찮걸랑."
아진의 얼굴에 걸린 미소는 곧 느긋하고 헐렁한 것이 되었다. 무슨 햇볕에 앉아서 한가로이 일광욕하고 있는 늙은 장닭같은 웃음이다. 파스락 하고 츄파츕스 포장지를 단숨에 뜯어 입에 집어넣는 유정을 보고, 아진은 키득거렸다.
"뭐 슨배임 얼굴도 좋긴 하네."
하며 아진은 자기도 레몬맛 츄파츕스 하나를 타워에서 쑥 뽑아다가 집어들었다. 그러나 아침 손톱을 어제 깎은 참이라 포장지가 잘 벗겨지지 않는다. 유정이 눈을 접으며 웃음을 묻혀 건네준 질문에, 아진은 마침 잘됐다는 듯 츄파츕스 포장지와 씨름하다 말고 그걸 유정에게 쑥 내밀어온다.
아진의 말에 한참, 그 밝은 하늘색 눈동자를 깜빡이던 유정은 느긋하고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2학년이랑 마주칠 일이 없으니까 이해해. 내가 일본에서 오기도 했고, 한국 교육과정은 일본보다 어렵더라. "
여유만만하고 느긋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짓고 아진의 말에 대꾸하는 유정의 목소리는 흔들림없이 차분하기 짝이 없었다. 학년이 다르기도 하고, 처음 봤으니까 모를 법도 하지. 하고 여전한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말을 덧붙히고 유정은 잠시 귓가를 긁적였다. 나름대로 멋쩍다는 표현이었을까. 한대 맞는다고 안죽는다고 이야기하는 말이나 그 뒤에 이어지는 말에는 입을 가만히 다문 채 고개를 끄덕여, 집중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뜯어낸 츄파츕스 포장지와 아진에게서 받은 사탕을 가디건 주머니에 밀어넣는다.
" 그렇게 반응해주면 내가 농담이라고도 못하잖아. "
가디건 주머니가 늘어나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것 마냥 유정은 양손을 주머니에 밀어넣은 상태로 예의 눈을 가늘게 접어낸, 눈웃음을 짓고 키득거리며 한쪽 어깨를 으쓱였다. 손도 대지 않고 입 안에 넣은 츄파츕스를 굴려내며 단맛에 심취해있던 유정의 시선이 아진의 말과 함께 내밀어온 츄파츕스를 가만 바라봤다. 능글맞은 웃음을 짓던 얼굴에 특유의 미소를 띄우고 있는 게 속을 읽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 당연하지. 줘봐. "
받아든 츄파츕스 포장지를 뜯어내는 행동이 한두번 뜯어본 솜씨가 아니었다. 게다가 사탕 부분에는 손을 대지 않고 막대쪽을 아진에게 돌려서 건네주는 행동또한 자연스러웠다.
서구적인 이목구비에서 보자면 영국 노팅엄이나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왔다고 하는 게 더 그럴싸할 텐데, 뜻밖의 출신지가 나오자 아진은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이내, "그렇구먼- 멀리서도 오셨네." 하고 너스레를 떨며 웃는 얼굴이 된다.
"해외라. 한 번은 나가보고 싶은데 나가볼 수 있으려나."
파스락, 하고 순식간에 노란색 알맹이를 드러낸 츄파츕스를 보고 아진은 오오, 하며 멋진 재주를 보았을 때 흔히 하듯 가볍게 박수치는 시늉을 하고는 유정이 내미는 츄파츕스를 받아들고 입에 쏙 물었다. 새콤한 맛과 어우러져 당이 슬며시 돌자, 그녀의 핏기없이 하얀 얼굴에도 입맛에 맞는 것을 입에 넣은 사람 특유의 이거지~ 하는 표정이 돈다. 아진은 안경을 고쳐쓰며, 방송부 테이블에 딸려있는 의자를 가볍게 슥 끌어내어 거기 걸터앉았다. 그러면서 정에게도 앉고 싶으면 앉으라는 듯이 허리를 숙여서 의자를 슥 끌어내준다.
"일본이라면, 일본 어디?"
하고 간단한 질문이 건네어져 온다. 하지만 그녀의 신체부위 중에서 유일하게 생기를 띄고 있다 할 만한 부분이었던 녹색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으로 보아, 아진은 정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기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뭐,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되지만. DJ 노릇 하다 보니 다른 사람 사연 듣는 취미가 생기더란 말씀이야─" 그러고 보면 교내 점심시간이나 방과후 방송 중에, 분명 사연 읽어주기 컨텐츠도 있었지.
아진의 의문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유정의 대답은 꽤 익숙해보였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이것보다 더 엄청난 반응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와 비슷하게 입학했을 때의 반응도. 그렇다보니 익숙했다. 아진의 너스레에 예의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비행기로 몇시간 밖에 안걸리는 거리라는 대답까지 덧붙히며 유정은 포장지를 가디건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한꺼번에 버리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 해외에 나가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테지만. 진학이냐, 간단한 여행이냐, 아니면 취업이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네. "
한참을 입안에서 녹여내고 있는 바람에 금방 작게 줄어든 츄파츕스를 이로 물어서 바스라지는지 확인하고는 유정은 친절하게 꺼내지는 의자에 앉은 뒤에 아진의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에 대꾸하고는 가만히 아진을 응시했다. 자신과는 좀 상황이나 사정이 다를 수도 있을테지만 그걸 감안하고 고르고 골라서 대답했다고는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른다. 유정은 바라보고 있던 밝은 하늘색 눈동자를 깜빡이던 것도 잠시 눈을 접고 키득거리는 웃음을 터트리고는 교토, 하고 짧게 대답을 했다가 텀을 두고 말을 이었을 것이다.
힙하다- 재밌는 표현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정의 인생사에 그런 수식어를 붙인 걸까가 궁금하지만, 이 나른하고 니힐하게 웃고 있는 DJ에게 그걸 물어보는 건 꽤나 시간낭비일 테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깡마른 몸을 하고 얼굴에 점이 많은 이 창백하면서도 나른한 후배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더 많아보이는 타입이니까. 이유가 있거나 코드가 맞아서 시간을 오래 보내야 정말로 친해질 수 있는 그런 타입이었다.
"진학이라던가 취업이라던가 하는 건 나한텐 너무 먼 얘기고, 여행이 적당하려나."
하며 아진은 씨익 웃다가, 교토, 라는 말에 반색을 했다.
"거긴 일본에서도 수학여행의 성지라며?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건축물들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던데."
여름의 교토라, 좋겠네- 하고, 가본 적 없는 풍경을 한번 제멋대로 머릿속에 그려보기라도 하듯 잠깐 눈을 감고 있던 그녀는 듣는 쪽이 익숙하다는 정의 말에 그럴 수 있지- 라는 말을 입을 벌려서 소리내는 대신에 씨익 웃는 얼굴 표정으로 말해보였다.
"듣는 쪽이 익숙한 것도 좋지.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걸."
하며, 아진은 의자에 앉은 채로 땅을 박찼다. 등받이에 바퀴가 달려있는 의자는 아진이 발을 박차는 발길질대로 툭 떠밀려서 아진을 싣고 어딘가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그녀가 굴러간 곳에는 방송부실보다 음악실에 있어야 더 적합할 것 같은 신디사이저와 믹서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뭔지 모를 음향장비들의 전원을 툭툭 킨 다음에, 정을 보며 질문했다.
"듣는 것은 좋아한댔지? 교토 말이야... 이런 느낌이려나."
하고 아진은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키보드 앞에 앉은 존재는 후줄근한 교복을 입은 창백한 얼굴의 고등학교 2학년생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무언가로 거듭났다.
아진의 힙하다는 표현에, 앉은 의자에 조금 편하게 기대고 눈을 가늘게 접어서 키득거리는 웃음을 터트리며 혼잣말을 흘려냈다. 혼혈일 때 얻을 수 있는 재능은 뭘까. 곧 있을 3월 모의고사 영어 영역이 조금 강하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데 장벽이 낮다는 것 정도라고 유정은 생각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어보이고는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반응이나 대답을 끌어오기엔 처음 본 이 방송부 소속인 후배에게는 실례일테니.
" 난 개인적으로 겨울의 교토를 좋아하지만 여름의 교토는 한번 가보는 건 추천할게. "
다른 건 몰라도 풍경은 끝내주거든. 하고 유정은 아진의 반응에 숟가락을 얻는 것처럼 반응을 보였다. 자세를 고쳐 앉아서 그런지 발끝이 닿을 것 같아서 앉아있는 의자를 살짝 뒤로 빼냈다. 그러고보니 그다지 돌아다니지는 않았네. 가끔 대회때문에 이동하는 와중에 몇번- 정도였을테고. 이제는 아주 작아진 사탕을 이로 깨물어서 부숴버린 입안에 남은 건 사탕이 붙어 있던 막대 뿐이라, 유정은 의자가 굴러가는 소리에 그 행동을 가만히 볼 뿐이었다.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건 커뮤니케이션 쪽 이야기였는데. 조금은 당혹스러울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유정의 표정은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 내가 좀 막귀여서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지만- "
연주가 끝나자 언제 의자를 거꾸로 돌렸는지 모르겠지만 등받이에 양팔을 걸치고 거꾸로 앉아있던 유정은 진심을 담아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 서정적인 음계가 복잡할 것은 없었지만, 피아노 위를 노닌다기보단 거문고 줄 위를 노니는 것에 더 가깝게 건반의 완급을 조절하는 손가락이 우아하게 춤을 출 때면 거문고 줄 뜯는 소리가 났고, 피리를 부는 악사의 숨결이 그녀의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마치 이름을 잃은 옛 신이 학의 깃털로 짠 옷을 입고 이 순간 잠깐 건반 앞에 내려와서, 녹색 눈을 빛내며 오래전에 잊힌 곡조를 한 소절 연주하는 듯했다.
"여름의 교토는 이런 느낌이려나?"
하고 정을 웃으며 돌아보았을 때, 녹색의 눈을 빛내던 이름 잃은 신은 다시 차분하고 후줄근하게 내려앉은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되돌아왔다. 정의 박수 소리에, 아진은 의자에서 일어나 한쪽 발을 뒤로하고 치맛단 양끝을 잡고 살짝 들어보이며 꽤 고풍스런 답례를 취했다.
"막귀면 어떻고 금귀면 어때- 듣기 좋았다면 그걸로 됐어."
생각해 보면, 학교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하는 컨텐츠 중에는 익명 사연 낭독이나 DJ의 독백 외에도 DJ가 골라서 재생해주는 노래들 또한 있었다. 누구나 다 알 만한 명곡도 있는가 하면, 선율은 좋은데 누구의 노래인지 모를 곡들도 있었다. 그 노래들 중에, 이 후배가 작곡해서 연주하는 곡도 있었던 걸까?
"다른 곡들도 더 들어보고 싶으면, 유튜브에 Plaster wing이라고 검색해봐."
제법 유튜브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의외로, 정말로 그 채널명을 검색해보면 각종 음악 장르 카테고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그 채널에 92만 명이나 되는 구독자가 몰려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자를 돌려서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앉아서 등받이를 안는 것같은 자세를 취한 채 연주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정은 속을 알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클래식하지 않은 건 처음 듣는 걸지도 모르겠다. 제쪽으로 옮겨지는 아진을 보고 생각한 것이었다.
" 겨울이랑 여름 중에 여름을 좋아하나봐? "
교토라고 이야기한 뒤에 보인 아진의 반응으로 유추하기는 했지만 기분나쁘지 않도록 주의깊게 살피며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유정은 아진의 답례에 박수를 쳤던 팔을 올려서 등받이에 올려놓고 그 위에 턱을 괴며 독특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아아- 하고 상체를 조금 더 가까이 해서 끼익 하는 소리가 능글맞아보이는 웃음과 비슷하게 울렸다.
" 이정도로 굉장한 연주를 들었는데 딱히 이쪽에서 보답해줄게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멋진 연주였어. 다른 사람처럼 보일 만큼. "
교내의 방송이 울려퍼질 때는 언제나 친구라고 부르는 몇명의 인원들과 시끌벅적하지 않더라도 늘 시시하기 짝이 없는 수다를 떨기 때문에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가끔씩 귀에 익은 곡들 사이에서 처음 듣는 곡이 들렸던 건 이 후배의 데모 곡이었을까. 다른 곡이라고 하는 거 보니 진짜인 모양이다. 유정은 아진의 말에 치마 주머니에 넣었던 핸드폰을 꺼냈고, 읽지 않은 라인은 제쳐두고 유튜브에 검색한다.
그렇다... 억시 예리한 은우주(? 일상이 돌아가는 것은 참으로 보기 좋은 광경인 것이지~ 아진이 정이 일상도 정말 잘 보고 있다구! 멀티가 안된다 하더라도 느긋하게 스레를 즐기면 되는 것이야~ 맞아~~ 새판은 벚꽃인거야~~~!! 그리고 4월 일정에는 중간고사가 있는 거야~~~(?
시원하게 불어오는 맞바람을 맞으며 하하 웃음을 터뜨리다가 자신의 행동에 저가 민망하였는지 흠흠 헛기침을 하고 다시 작게 웃었다. 고삼이 되면 절로 몸이 뻐근해지는 걸까. 동급생들 중에서는 오래 앉아있는 편이지만 아직까지 낮에 몸이 굳어본적은 없어 해인은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겉으로 보여지는 하늘의 마르고 하얀 낯이 작년과 비슷해 보였다. 운동을 즐기는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니 방학때 실내에 있다가 간만에 바깥에 나오니 적응이 덜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의 말로는 그가 평소보다 많이 공부하지는 않았다고 하니 소녀는 지나치게 오지랖을 부리며 걱정을 하는 대신 일시적인 적응 문제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혹여라도 추후에도 마음에 걸린다면 바다에게 말하면 될 일이었다. 그 이후는 자신이 관여할게 아니겠지만.
비슷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 동상이몽의 시간을 정오의 해가 비추고 해인은 고개를 숙여 금방 바람에 너덜너덜해진 연설문을 바라보다 들려온 말에 몸을 바로 세웠다.
"그러려나. 잘 모르겠지만 나는 고삼이 아니니까 오빠가 나보다 더 잘 알거라고 생각해. 어쩌면 각자의 목표가 달라서 그렇게 보일수도 있고 또..."
일단 말해두자면 입학생 대표는 단순히 중학교 내신순으로 뽑는거니까. 단순하게 앞에나가서 연설문 읽는 거고 엄청 대단하지는 않아. 익숙하게 선생님들 앞에서 했듯 겸양의 말이 먼저 나오지만 앞의 사람이 선생님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해인의 표정은 풀려있었다. '자랑스러워' 눈을 살짝 접으며 칭찬에 고마운 듯 그리고 자신의 성과에 자랑스러운 듯 미소짓다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음, 나는 그래, 해볼 수 있는 걸 다 하고 싶어. 그렇게 하려면 내가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어쩌면 좀 듣기 싫은 말일 수도 있는데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기도 하니까."
반만 맞고 반은 아닌 말을 하며 소녀는 "바다는 대신 활발하고 옆에 있으면 즐겁잖아. 나도 내가 재미없다는 건 알아." 라 가볍게 너스레를 떨었다.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면 따로 도시락을 싸오는 걸까. 소녀는 질문을 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식사에 방해 안되게 조용히 연습할게라고 감사의 말을 하였다. 다 완성되지도 않은 연설문이라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이제는 크게 여기저기 들리도록 말하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마주한 사람이 안면이 있는 그라서 다행이라 여기며 계단으로 통하는 문 옆의 벽에 기대어 서고 조용히 활자를 읽어내려 갔다.
아진은 요상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 나름대로 일리있는 답변이기도 하다. 또한 묘하게 뜻밖인 답변이기도 하다. 이 창백하다 못해 새하얀 후배는 햇살 한 번 제대로 못 본 것 같아 어딘가에 나다닌다는 것 자체가 익숙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었다. 방금 신디사이저를 가지고 아름다운 연주 한 편을 자아내는 모습으로 보아하건대, 바깥으로 나돌아다니는 날보다 자신의 아늑한 방에 칩거하며 노래를 자아내는 일이 더 익숙해보이는 그런 소녀였으니까.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또 요상하긴 해도 이상할 것은 아니다. 이런 창작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종종 영감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 영감을 제공해주는 행위들 중 하나로서 여행은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는 행동이었다. 교토의 하늘 아래서 밀짚모자를 눌러쓴 채로 웃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려면 상상해보지 못할 것도 없다.
"들어주는 그 자체로 보답이니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돼야~"
하고 아진은 빼빼 마른 손으로 다시 의자 팔걸이를 거머쥐며 걸터앉아서는 발로 바닥을 툭 밀어 테이블 쪽으로 도르르르 굴러왔다.
"내 나름대로, 내 노래 하나하나에 내 영혼조각을 쪼개넣는다는 생각으로 노래를 쓰고 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줘서 나도 놀랐어."
익숙한 걸까 한 번의 발구름으로 방향과 거리까지 정확히 원래 위치해 있던 테이블 앞에 도달한 아진은, 거지반 녹아내린 입안의 사탕을 깨물어서 마무리했다.
"그렇지만 역시 구독자 숫자보단 노래를 들어줬으면 좋겠네. 뭐, 구독같은 거 안해도 되지만, 내가 만든 노래들 중 괜찮은 것들을 올려뒀으니 종종 생각나면 찾아와서 들어달라구."
흐헤헤헤헤헤. (널부러짐) 인생. 죽갔다. 답레가 말도 없이 너무 늦어져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유정주........ (대굴박) 어제도 철야해서 오늘 아침 여덟 시까지 일하다가... 투표하고 이제사 집에 도착해서 씻고 좀 어쩌고 자시고 할 틈이 나는구먼......... 씻고 자야것다... 자고 일어나면 저녁이 될테고 그때쯤이면 사람들이 좀 와있것지.. 다들 내 몫까지 행복한 휴일 보내야... 잘 지내야혀..
안녕안녕이야! 캡틴!! 어서 와라!! 바쁜 하루 보낸다고 정말로 수고 많았어!! 벌써 자야 한다니. 뭔가 상당히 피곤한 하루를 보낸 모양이로구나. 그러게! 한 달 정도가 되었네!! 시간이 은근히 빠르다면 빠르단 말이지.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아마 주말 동안에는 못 올 것 같아. 으음. 사람들이 조금 한가해지면 좋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되었다!
피곤한 하루도 피곤한 하루지만 원래 일찍 자는 편이라서 그렇다~ 은근히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3월이라 바빠지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고 그렇네~ 느긋한 일상 스레이니까 바쁘면 쉬었다가 시간이 나면 오고 그래도 괜찮은데 말이야 은우주는 주말에 일정이 있는 모양이구만! 잘 다녀오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