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 Picrewの「랭구포」でつくったよ! https://picrew.me/share?cd=R2z8KXnFhF #Picrew #랭구포 꽤 가무잡잡해서 색에 무게감이 있는 아이- 그러나 정확히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채도가 높다기보다는 명도가 낮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새까만 머리카락, 까만 눈동자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색이지만 머리카락은 곱슬기가 좀 심해서 나름대로 신경쓰고 있는 부분. 가지런히 선이 곧은 이목구비를 갖고 있고, 속쌍꺼풀이 있는데 눈을 크게 치뜨거나 뭘 잘못 먹고 자서 얼굴이 부은 게 아니면 잘 안 보인다. 그 외에 얼굴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왼눈에 찍힌 눈물점과, 후술할 피어싱 자국. 몸은 운동부라는 이름값을 하는 건지 잘 관리되어 있고, 근육 비율이 높은 신체형상은 전체적으로 날렵하면서도 어깨도 충분히 넓어 옷발이 좋은 스타일. 키는 184센티미터. 한쪽 귀에는 아웃컨츠와 스너그를 따라, 반대쪽 귀에는 귓바퀴를 따라 피어싱 자국이 줄줄이 나 있다. 왼어깨에는 기계로 된 심장 문신이 새겨져 있다. 여러모로 '학생의 방정한 품행과 단정한 용모' 같은 것과는 담 쌓은 듯한 모습이지만, 그나마 평소에 교복은 그럭저럭 잘 차려입고 다니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피어싱도 끼지 않는다.
성격 / 해야 되는 일과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이외의 쓸데없는 일은 피한다는 본인의 주관적인 합리주의에 입각해 살아가는 말수 적고 무뚝뚝한 소년. 그러나 천성 자체는 상냥해서, 지금 자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 같은 게 있다면 외면하지 못하고 도와주게 된다. 그 찢어진 눈과 짙은 눈썹, 딱벌어진 어깨에서는 쉽사리 연상할 수 없지만 쑥스러움을 매우 많이 타기에, 무뚝뚝한 얼굴 뒤에 쑥스러움을 숨겨놓고 인간관계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기에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정말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꽤 경계가 풀어져 그 나잇대 소년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해야 되는 일은 확실히 해야 한다는 주의이기에 다른 사람과 협동을 해야 하는 의무적 활동, 특히 축구부 활동 같은 것에서는 충분히 훌륭한 노력과 협동심을 보여준다. 또한 탐미적인 기질이 있어 본인이 한번 마음에 든 것은 손에 넣고야 마는 성격인데, 귀의 피어싱이라던가 문신 역시도 그런 기질의 일환인 모양이다. 교칙에 대해서는 본인 멋대로의 합리주의에 입각해, 범죄 안 저지르고 소동 안 일으키고 다른 사람 학교생활 방해만 안 하면 되지- 하는 입장이다. 그래, 아직 인간미를 어설프게 덜 버린 그런 아이였다. 오지랖을 부리던 버릇이 서서히 흐려져가던 아이였다. 사람을 미워하는 연습을 차곡차곡 해나가며, 삶의 의미를 덜어내가던 아이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소년의 가슴팍에 쾅 떨어지면서 그 모든 게 어긋났다.
기타 / * 기타? 상당히 잘 친다. 밴ㄷ 어쩌고 하다가 말 돌린 것을 기억하는가? * 정확히는 축구부라는 듯하다. 팀에서는 에이스까지는 아니더라도 팀의 주축 중 하나라고 한다. * 발이 매우 빠르다. 교내 100미터 달리기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한다. * 공부를 배우고 싶다고 한 이유는, 여기서 말할 수는 없지만 특히 유별난 이유는 아니다. * 위로 나이터울이 꽤 있는 친형이 하나 있다. * 종종 일일 아르바이트를 한다. 일일 아르바이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일정 선택이 자유로운데다, 일당으로 받기에 월급이 떼일 일이 없어서라고 한다. * 가족이 집에 모이는 게 드문 일이다. 아버지는 외지에서 근무하고, 형은 독립했으며, 어머니도 야근이 잦다. 그나마 형과는 자주 만나는 편이다. * 어머니 명의로 된 혼다 줌머가 있는데, 현민 본인도 이륜원동기 면허가 있어서 종종 타고 다닌다. 아르바이트 갈 때 요긴하게 쓴다고 한다. 형이 두고 간 커다란 바이크가 있지만, 2종 소형 면허가 필요하기에 내년에 취득할 예정... 이었으나 지금은 좀 고민중이다.
외모 / https://picrew.me/share?cd=ATuZWBp2Cz 유달리 색이 연했다. 흰 물감을 섞어 연해진 것이 아니라, 맑았다. 검은 머리칼도 새카맣지를 않았고, 하늘색의 눈동자는 저 멀리 푸른 것을 투명한 물방울로 비춰보는 듯했다. 노을지는 하늘 아래 서 있으면 주홍빛으로 물들고, 아이가 보는 풍경은 거울에 비춘듯 눈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크게 구불거리는 반곱슬은 가슴 아래까지 닿는다. 숱이 많아 복슬복슬해보인다. 꽤나 두꺼운 눈썹이 살짝 보일 정도로 단정히 내려온 앞머리 옆으로, 왼쪽 귓가의 옆머리는 굵게 땋아 귀를 드러냈다. 오른쪽 귀에는 뚫은지 얼마 안된 피어싱이 세개. 귓볼에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한다. 키는 아직 크고 있는 중으로 157cm. 몸무게는 평균.
성격 / 구름 같다. 머리 위 하늘에서 동실동실 떠 있는 구름처럼 그저 있을 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겉돌지는 않았지만 혼자였다. 조용하고 묵묵히 자리에 머물고 있다가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웃음을 짓는다. 다가갈 거리를 내어주지는 않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옆에 다가와 있고는 했다.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 볼 수 있는 구름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듯이. 쉽게 호의에 가득찬 말을 건넸고, 짓궂은 장난을 치고, 보드라운 미소가 상냥했다. 구김없고 밝은 아이라는 건 대화 몇 번으로 알아챌 수 있지만, 그뿐이었다.
기타 / · 쉽게 넘어진다. 무릎과 손바닥에 반창고가 없는 날이 드물 정도. · 걸음 속도가 느린 편. · 갑자기 나는 큰 소리에 약하다. 화들짝 놀란다. · 비 오는 날, 비 구경, 장마철을 좋아한다. 비 맞는 것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는 듯. · 눈물은 적은 편. · 학교랑 집은 매우 가깝다. 등교는 아침 일찍, 하교는 밤 늦게 한다. · 귀에 뚫은 피어싱 셋 중 하나만 범고래 모양 피어싱을 하고 다니며 남은 둘은 다 투명이다. 교칙이 신경쓰여서. · 열일곱의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늘 하고다니는 고래 지느러미 장식의 목걸이가 있다. 학교에서도 셔츠 아래 하고 다닌다.
성공했다- 랑은 의기양양했다. 소리만 낸 후에 네가 눈을 깜빡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려고할 때 이미 이 장난이 제대로 먹혀들어간 것 같아 뿌듯했다. 그래서 방글방글 웃으면서 간식 가지러 가겠다고, 네 품에서 나오려고 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네가 부루퉁한 표정을 지어도, 너도 한 번 그랬으니 랑도 한 번 그런 것 뿐이라고- 한 번씩 주고 받았으니까 상황 종결이라고 생각한 것은 둘 중에 랑 뿐이었나 보다.
"잠, 채현민!"
잠깐만이라고 말할 새도 없었다. 허리를 안고 있던 네 팔에 힘을 줄 때 말했어야 했다. 하다못해 좀 더 랑과 너 사이에 있던 공간이 작아졌을 때, 좀 더 밀착됐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이미 발이 땅에 닿지 않게 되어버렸는데 잠깐만이라고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지는 생각치 못했다. 네가 떨어트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공중에서 의지할 곳-심리적인 것 말고도-은 너밖에 없어서 랑은 반사적으로 너를 붙잡았다. 한 쪽 팔은 네 목 뒤로 감았고, 다른 손은 네 어깨를 붙들었다. 토라진 시선을 마주하니, 떨어트리면 가만 안 둔다고 말하는 것 같다.
"왜에- 넌 만족 못 해?"
나도 토라질 줄 안다는 듯한 목소리다. 랑은 네 어깨에 폭 얼굴을 묻었다. 네가 몇 시간이고 들고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아서, 이러다 금방 내려줄 것이라고 생각하고서는 네게 기대고 있다.
목과 어깨를 감싸안으면서도 오히려 불퉁스레 토라진 듯이 바라보는 너를 현민은 똑바로 마주보았다. 자세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한 자세인데, 빨간 얼굴을 하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은 삐져 있는 독특한 광경이다. 한 번씩 주거니 받거니 했다는 사실은 현민에겐 별 상관이 없는 듯하다. 현민은 확실히 이게 일단락됐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안해줄 거야? 하고 부루퉁한 목소리로 쿡 찔렀는데도, 오히려 만족 못 하나며 어깨에 고개를 파묻어버리는 널 보고 현민은 다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면 내가 하지 뭐."
네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또다시 아까의 그 상황이 되풀이됐다. 그 온기며 향기는 지금 그의 품에 들려안겨 있으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번에는 분명히 들리는 쪽 귀 옆의 뺨에다가 한 번, 따뜻하고 보드라운 자국이 쪽 소리와 함께 찍힌다. 그리곤, 또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선물 하나 더 있잖아."
현민은 허리를 숙이며, 네가 청하던 대로 널 내려주려고 했다. 네 두 발이 땅에 조심스레 닿는다. 그래, 참지 못한 현민의 욕심이 빚어낸 해프닝 때문에 잊어버릴 뻔했지만, 아직 열어보지 않은 선물상자가 하나 더 있다. 간식을 가지러 가기까지 열어봐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물론, 그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지만. (네가 짚고 넘어가길 원한다면 말이다)
한 번씩 주고 받았으니 상황 종결이라고 생각하던 중에, 네가 한 번 더 입맞췄다. 그리고 이 입맞춤으로 아까 전 귀와 뺨 그 사이에 닿았던 촉감도 입맞춤이 맞다는 것을 확실시했다. 랑은 네 아무렇지 않은 척이 얄미워서, 내려주려고 하면 네 품에 파고 들었다. 너를 감싸안고 있는 팔에 꾹 힘을 주었다. 좋아서 빨개지는 거라고 했었으면서, 왜 계속 아무렇지도 않아 해- 랑은 투덜거리고 싶었다. 그래도 랑이 네게 입맞추었을 때 빨개졌었던 것 덕에 참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네게 얼굴을 묻고서 랑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처럼 아무렇지 않을 척을 할 준비다.
"또 하면 막을거야."
네 품속에서 고개를 들어올린 랑은 조그만 목소리를 흘리면서 문장을 끝맺을 온점 대신 네 눈물점에 쪽 입맞추었다. 네 눈가에 입맞추고서야 네 품에서 톡 떨어져 조심스레 발이 땅에 닿았다. 랑은 일부러 더 짓궂게, 곧장 다른 선물상자로 손을 뻗었다. 내려오자마자 휑하니 너를 시선에 담지도 않고 선물상자를 챙겨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는게 꽤나 버거웠다. 힘든 걸 숨기는 것보다 이런 떨림을 숨기는게 더 어렵다고, 랑은 결국 얼굴빛을 태연하게 유지할 수 없었다. 그래도 꿋꿋이, 조금은 뻔뻔하게 군다.
수제 초콜릿이 아니어도 되고 현민이도 그렇게 말할 거 같지만 이 나잇대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 @@ 초콜릿 먹고 싶은 거 참고 어떻게 가정실습실에서라도 ㅋㅋㅋ ㅠ.ㅠ 만들지 않으려나..... 현민이 운동하니까 견과류 같은 거 많이 넣어서 에너지바 느낌으로 만들고 싶어할거 같다
현민: 아, 하긴... 원래 재료의 양이 이것보다 많았겠구나(의미심장). 현민: (뺨에 쪽) 현민: 고마워. 현민: 누군가한테 이런 거 받아보는 거... 처음이거든. (사실 그동안 다른 사람들한테는 철벽 치고 있었어. 2월 14일엔 집을 비우고 어디 멀리 갔다온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거나)
현민: (눈웃음이 올라오다가 결국 웃어버림) 현민: (랑이 끌어안고 머리 쓰담쓰담) 현민: 뭐, 네가 해준 초콜릿이 있는데 그 정도야. 현민: 그리고 어차피 초콜릿이나 견과류 같은 건 운동할 때 부스터로 많이들 써. 현민: 응. 화이트데이. 현민: 사탕이려나- 달콤한 거면 뭐든. 푸딩이라던가.
얼굴 모양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충분히 뜨거워져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당신이 가슴팍에 쾅 떨어지던 날 얼굴은 빨개지면서도 너 지금 나한테 작업 거냐고 툭 쏜다던가, 걸렸다면 미안합니다! 하고 네가 한가득 당황해서 쏟아낸 말에 알면 잘 부탁합니다, 하고 대답해놓고는 뜸을 들이다가 공부. 하고 덧붙이는, 그런 것과 궤를 같이 하는 장난이었다. 요컨대 현민의 역습이라고 해둘까.
그렇지만 그 역습은 항상 이자까지 두둑하게 쳐서 반격당하곤 했다. 결국, 쪽 하고 네 입술이 눈가에 와닿는 간지럼에 현민의 표정이 녹아내리고 만다.
"......"
다시 반격을 하려 해도, 이미 자신이 네게 충분히 지독한 장난을 쳤기도 하고, 네가 또 하면 막을거야- 하고 못까지 박았으니 뭔가 더 할래야 할 수도 없다. 현민은 그저 네 어깨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아주 약간 더 줘서, 너를 조금, 눈치채기도 힘들 정도로 조금 더 꼭 끌어안아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널 놓아주었다.
오늘도 집 늦게 들어갈거같아 잠을 너무 못자서 눈따갑다 ㅎ.ㅠ....... 그래서 말인데 썰풀이 같은거로 적당히 마무리 지어도 돼? 꼭 돌리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만 돌리는 정도는 괜찮아 @@ 나머지는 적당히 발렌타인 때처럼 하고 싶어........ 그리고 재미를 못 느끼고 있어...... ㅇ.ㅇ 현민주 말대로 놀러오는 곳인데 재미를 못 느끼니 일처럼 생각된다 ㅜ.ㅜ...........
그리고 현민주가 없을까 걱정하진 않아 무통보는 겪은 적 있어서 그러려니 하는 장도라 ~.~ 걱정한다면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상황을 걱정해 답레를 이었으니까 이어주는 것 뿐인 느낌? 억지로 잇는 느낌 같은거 랑이는 앤캐인 것도 아니고 루즈해지면 안 그래도 랑이는 느린 편이라..... 그런 생각이 드네
잘한다던가 못한다던가 스스로 초조해하고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최고의 파트너라거나 좋은 파트너라거나 같은 말에 노심초사할 필요 전혀 없어 꾸준히 만나준다던가 현민이를 좋아해준다던가 하는 것만으로도 랑주는 최고의 파트너인걸 말없이 사라지는 최악의 파트너만 되지 않으면 되니까 모두 괜찮은 거고 다 잘되어가고 있는 거야
나는 오히려 랑주가 그런 이야기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날 믿어주는 것 같아서 안도하고 있어 혐생이 힘들어서 재미를 못 느끼게 될 정도로 지쳤다고 하면 템포를 느긋하게 가져가거나 아니면 랑주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나한테 솔직히 말해줘 난 랑주의 의견에 맞춰줄 수 있으니까 전에도 랑주, 현생 바빠서 접속 뜸해진 적 있었잖아? 그 때처럼 느긋하게 템포 가져가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난 여전히 기다릴 수 있어 ( u u)
솔직히 말하자면 어....... 일정 좀 알려주면 좋겠어 어제는 현타를 좀 맞았거든 ㅇ.ㅇ..... @@....... 답레 뿐만 아니라 그냥 썰 풀다가도 1시간씩 그러면 기다릴 때 지쳐서....... 당일이라도 알려주면 좋겠어. 이건 나도 조심할게. 미리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어..... 기절잠하는건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수위를 어느정도로 하고 싶은건지 궁금해. 17금을 원하는거야? 오너들끼리 유사연애.... 비스무리한 걸 하고 싶은지도. 이건 알고 있는 거 같지만 어떻게 받아줘야할지 잘 모르겠거든....... 응원 고마워......
>>115 1. 그 미안...... 말도 없이 잠들어버려서 미안해 일정은 보통 7~8시 넘어 저녁부터 제대로 스레에 올 수 있지만 최근에 부업을 시작하다 보니 스레에 100% 붙어있는 게 아니라 간헐적으로 오락가락하는 상태라서 100% 10분~20분 내로 후딱후딱 대답을 줄 수가 없는 상황이야 그게 좀더 오래 걸리게 될 수도 있고 그렇지만 최대한 자주 체크하고 대답 빨리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2. ( @ @) 어어어 이건 랑주에게 최대한 맞춰줄 생각이야 나는 상판 자체의 선을 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는 편이지만 낮게 가자는 쪽 의견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3. 단순한 애정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부담스러웠구나 그 부분에 있어선 앞으로 주의할게
랑주도 그렇잖아도 혐생이 바쁜데 그렇게 대기하고 있을 필요까진 없어 ( 8 8) 너무 부담갖거나 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오늘 하루는 온전히 스레에 투자할 수 있다고 하면 내가 얘기할게 현민이는.. 스킨쉽을 좋아하긴 하는데 얘가 말주변이 없어서 애정표현을 그렇게 하는 거라 ( @ @) 랑이가 막으면 막히고 밀어내면 밀려나잖아. 모럴에 걸릴 상황이나 묘사는 나도 원치 않으니까 ( 3 3) 자연스럽게 랑주나 랑이가 원하는 흐름대로 되길 바라고 있어 2번이나 3번 모드 랑주가 어떻게 반응하냐보다는 랑주가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 . .)
그거면 좋아 충분해 @@ 사실 요즘 일도 일인데 못 자고 못 쉬니까..... 스트트레스성으로 구토를 하기 시작해서 몸도 문제라....... 이런말 하면 걱정할거 같아서 말 안하려고 했는데 ㅠ.ㅠ........ 이것저것 정말 예민하고 피곤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현민주가 잘 받아줘서 고마워..... 나는 별로 터치하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나보다 랑이가 걸어둔 제한이 더 많으니까.... 랑이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은거야 ㅇ.ㅇ 새삼 갑작스럽지만 랑이가 막으면 막히는 현민이도 귀여워 3번은 말 그대로야 해도는 상관없어 내가 반응을 못하고 무시하는 것처럼 되도 괜찮다면 ㅇ.ㅇ......
볼펜은 시험볼때.... 만년필은 쓰기 힘들거 같아 촉 상하면 어떡하지 할듯 현민이한테 편지 쓸 일 있으면 그때 써보지 않을까 조심스러움ㅋㅋㅋ 무방비 상태 공격 성공 ~.~ 랑이 뿌듯하게 내려간다 어머님ㅋㅋㅋㅋ 현민이 내일 팥밥 먹는거야? 하루자고 가면 랑이도 먹겠네 ㅎ.ㅎ
드디어 대망의 연락처인가.... 아무래도 아빠를 알려줄 거 같다 엄마라고는 해도 새엄마니까.... 쭈볏거리면서 알려줄거야 랑이도 이렇게 눈이와서 늦게 가야한다는 예상하고 있었고.... 번호 알려드리고 나서 바로 아빠한테 문자 넣지 않을까 지금 있는 친구네 어머님이라고 상황 요약해서 알려주고
만년필 촉이야 쓰면서 길들이는 거고, 여차하면 교체도 가능하니까 괜찮다고 아버지가 알려준 대로는 전해주겠지만 현민이도 만년필에 대해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라 좀 아리송할 것 같지 그렇지만 랑이가 만년필로 편지쓰는 모습은 정말 예쁠 것 같아 현민이 뭐라 반격도 못하고.. 그저 홍당무 팥밥은 글쎄에 상황 좀 보도록 할까
현민이랑 랑이가 간식 갖고 올라가면 현민이네 어머니가 랑이네 아버지에게 정중하게 전화드려서 따님 같은 반 친구 현민이네 어머니라고 알려드리고 따님께서 우리 집에 놀러왔는데 때마침 폭설이라 눈이 잦아들 때까지만이라도 따님을 저희 집에서 데리고 있어도 괜찮겠냐고 요청하시지 않을까
원래는 현민이네 어머니가 저녁때 랑이를 차로 데려다줄 예정이었지만 눈이 20cm 넘는 두께로 쌓여버리고..
그리고 그 사정도 모르고 2층으로 올라와서 서로 간식 나눠먹느라(정확히는 현민이가 랑이한테 먹여주느라) 여념없을 두 사람
랑이도 처음 받아보니까 @@ 잘 몰라도 필기할 때 쓰기는 너무 아깝고 부적 같은 느낌으로 갖고 다니려나 싶기도 하네 들고 다니기만 하고 쓰지는 않는 거
랑이 아버지야 긍정... 랑이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랑이 아버지도 차 끌고 오려고 했는데 폭설에 실패핼 거 같다 오히려 그때는 먼저 아까 통화했던 랑이네 아버지되고 날씨 때문에 데리러가기가 불가피한데라고 전화걸지 않을까 전화하는 내내 랑이 잘 있느냐고 물어볼 거 같다 현민이네 어머니가 과보호하는 성향을 눈치채실 지도
캐주 두 사람은 다 OK했고 현민이도 OK하고 있으니 랑이만 OK하면 되겠네 ( u u) 현민이 랑이 손등에 키스한다..
현민이 어머니: 항상 현민이랑 놀아줘서 고마워. 우리 막내가 낯을 많이 가려서 집에 친구 데려오는 일이 별로 없어 걱정했거든. 현민이 어머니: 할아비 닮아서 고집불통에 부족한 점이 있는 아이지만, 앞으로도 우리 현민이랑 자주 어울려주련? 같은 말씀을 현민이 어머니가 한번 하셔야겠네
현민: 닦아달라니까. (여전히 보고 있음) 현민: 안 닦아줄 거야? (접시에 남아있던 크림 좀 찍어서 랑이 코에 쿡찍음)
요즘 로판을 보고 있어서 그런가 꿈꿨어 랑이랑 현민이가 나오는 꾸밍렀는데..... 자다깨거 오타가 너무 심할거 같다 아까 집들억와서 잠깐 누워야지 했다가 까ㅁ빡 잠든거가.... 그래도 잊어버리기 전에 적으려고... @@
랑이 백작 영애 였는데 귀 문제가 똑같아서 최대한 사교계 데뷔를 늦추고 늦추다 그래서 무슨 백작네 영애는 엄청 못생겼더라 성격이 고약해서 꽁꽁 숨긴다더라 사실 마녀의 자식이다 이런 소문이 무성해졋거 뒤늦게ㅜ사교계 데뷔햇는데 사실 너무귀하고 귀한 딸이라 숨긴거엿구 소문만 믿던 사람들 놀라는 중에 현민이랑 마주쳣어 왠지 기사엿던거 같은데..... 칼.... 이 하리춤에 있었느데 로판을 가볍게 볼 뿐이지 그런 설정은 잘 몰라서 모르겟다 @@
>>157 천한 신분으로 자라다가 실력 하나가 우연히 기사의 눈에 들어서 종사부터 시작해 기사로 성장한 현민이. 실력 하나는 확실해서 귀족의 신임을 사 호위기사로 채택되었지만 본인 실력뿐 뒷배같은 것은 당연히 없어서 다른 기사들에게 질투어린 무시를 당하기 일쑤. 인간관계는 당연히 파탄이고, 삶에 어떤 희망이나 바람도 없이 어느 날 어떤 전장에서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어가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인 현민이... 사실 종사 시절부터 랑이의 호위기사로 내정되어서 수련을 받았었으며, 랑이가 사교계에 데뷔하는 그 날 현민이도 함께 정식 호위기사로서의 첫 임무를 시작하는데, 어렸을 시절부터 알음알음 창문 밖으로 쏙 빠져나온 랑이랑 그런 랑이와 같이 자주 놀던 현민이의 사이에는 이미 친근감과 그 이상의 감정이 서로도 모르게 싹트고 있었고 (???)
시험 보상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 현민이도 그런데 왠지 긴가민가해서 이게 시험보상이야 아니면 뭐야 하고 물어볼려다가 만...
현민: (일어나 앉으면서 랑이도 같이 끌어안은 채로 상반신 들어올려서 자기 품에 기대누임) 현민: 이러면 되지. 현민: 더 누워있을래?
현민이 로판 너무 ㅠ.ㅜ............... 황궁의 기사가 되어도 할 말 없는 인재인데 바깥에서 기사로서 자란 현민이랑 갇혀자란 랑이...... 맛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바깥에 못 나가는 랑이한테 현민이가 꽃 꺽어다줄 거 같아 랑이는 간식같은 거 몰래 주고 그러려니 정식 호위기사로서 첫 임무..... 아가 때부터 봐왔고 네가 지켜야할 사람, 널 지켜줄 사람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나란히 마주보고 서는건 처음인 @@ 와아와.......
랑이도 그걸 몰라하고 있어 지금 한게 오로지 보상 때문에 한게 맞는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한건가 싶은데 랑이가 랑이 마음을 잘 몰라서 @@
랑이 : (폭) 랑이 : (깐쵸를 안은 나를 안은 현민이) 랑이 : 마트료시카 같아. 랑이 : (부빗) 랑이 : 그래도 들어가자아. 너 감기걸려-
둘다하면 된다 엔딩은 작위 받고 결혼엔딩이지만 거기까지 다다를동안 속앓이하면 돼 현밍이 전장에 불려나갈때마다 랑이 마음아파서 큰일났다 이 새벽에 눈물흘릴것만 같아 정말 큰 전쟁에 나가게 됐을때 떠나기 전에 둘끼리 한밤중에 서로 맹세하는 것도 보고 싶다 거의 결혼하는 수준으로 @@........
띠용하는 현민이 옆에서 눈 동그래지는 랑이 어차피 하루 신세지기로 했고 기왕 옷 갈아입을거면 씻고 올 거 같지 씻고 나와보니 현민이 향 범벅이여라 샴푸가 겹쳤다거나..... 머리 말려달라고 하고 싶다 랑이는 오늘 현민이랑 있는 기분 엄청 제대로 느끼겠다
새칫솔이랑 슬리퍼 @@ 누가.... 아주머니....? 하면서 아주머니한테 꾸벅 인사하러 갈거 같지 이제 화장지워져서 안 부끄러워한다
그럴수 있어 88 랑주 요즘 피곤하니까 나도 종종 그러는걸 그런데 랑이네 회사는 왜 자꾸 연휴에 일하래??? 특근수당은 제대로 주는거지??
확실히 랑이는 게임이랑은 별로 친하지 않을 것 같지 건축영상 같은 건 흥미롭게 봐주려나
( 8 8) 랑이가 이렇게 순수하고 착한데..
현민: ...부끄러워해도 돼. 현민: 그렇지만, 네가 부끄러워하느라, 미처 행복하지 못할까 봐. 현민: 내가 너랑 있을 때 행복한 만큼, 네가 나랑 있을 때 행복해했으면 좋겠어. 현민: 네가 충분히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내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꼭 밀어내줘. 현민: 조금 밀려난다고 다른 데로 가버리거나 하지 않을 거니까. 현민: 가끔... 네가 너무 좋아서, 너무 과하게 표현해버릴 때가 있어서. 현민: 그만큼 네가 좋아.
ㅎ.ㅎ...... 끝나면 그럴일 없을건데 가끔씩 너무 많이 계약 수주가될 때 있어서 ㅎ.ㅠ......
공부하느라 잘 안 했을 거 같지 하지만 공부 잘 하는 애들이 노는 것도 잘 논다는 말에 입각해서 한 번 하면 잘한다는 설정을 붙일게 마인크래프트 좀비도 현민이가 싸우면된다고 알려주면 잘하지 않을까 슬라임 좋아할 거 같고..... 엔더맨 커다랗고 까맣다는 점에서 네모현민이다~ 하지 않을까
나는....... 나는 그렇지 않은데 댕댕이 현민이만큼 개~늑대 현민이도 좋은 아 현민이가 좋은거구나
랑이 : 너, 좋으면 부끄럽다며. 랑이 : 나도 그런 거 같아. 랑이 : 나도 그래. 랑이 : 밀어내는 건 잘하고 있어- 랑이 : (현민이 볼 뿌닛) 랑이 : (히히)
크리스마스는 현민이 저녁 먹고나서 둘이 같이 영화보다 까무룩 잠들고 다음날 일어나서 같이 아침먹고 랑이 돌아갔다~ 라는 걸로 마무리인걸까? 새해 되는 12시 잡는 것도 좋고 새벽에 해보는것도 좋고 (겨울방학이려나?) 반배정은 방학 중에 그... 예비소집일에 받았었던가 예비소집일도 좋고 ~.~ 개학해서 2학년 첫날도 좋아 화이트데이 지금부터 돌려도 화이트데이날 까지 갈수도 있을거 같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겨울방학과 봄방학 기간 동안 잠들어있던 학기 중의 루틴을 깨우기에는 2주면 충분했다. 규칙적 생활이 몸에 배어있는 현민은 말할 것도 없고, 너도 네 나름대로 규칙있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을 테니까. 변한 것이라곤 아파트 단지 출입구에서 기다리던 현민이 네가 사는 아파트 동 현관에서 널 기다리기 시작했다는 정도일까. 까만색과 하얀색의 더플백 가방을 메고는, 교복 위에 바람막이를 덧입은 차림으로 털복숭이 고양이를 얹은 채로 말이다.
언제나처럼, 네 손을 꼭 잡은 그 소년과 함께 너는 등교길에 오른다. 별로 특별할 것은 없다. 시시콜콜한 잡담 몇 마디. 새 학기에 대한 감상 몇 마디와, 2학년 올라와 처음 만나뵈는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원정경기 스케줄. 그리, 이번달 말에 청소년 축구 리그 시즌 개시라고 했던가? 그러면서 잡담을 하다 보면 학교까지 오는 것도 금방이다. 네가 사는 아파트 단지와 학교가 그렇게 멀지 않았으니까, 재래시장에 언제나처럼 깐쵸를 내려놔주고, 학생주임 선생님은커녕 수위 아저씨도 교문에 나와 있지 않은 이른 시간에 교문을 통과한다.
가장 먼저 가는 곳은 교무실이다. 언제나 그렇듯, 교무실에 들러서 반 열쇠를 받아들고 잠겨있는 교실 문을 여는 것은 너와 그의 몫이다. 원래대로라면 주번의 몫이긴 한데, 아직 너보다 일찍 학교에 나오는 주번을 본 적이 없다 보니 아침에 교무실에서 열쇠를 받아다 반의 문을 여는 것(과 불을 키는 것, 거기에 날씨가 쌀쌀하면 히터를 켜놓는 것)은 사실상 너와 그의 몫이었다.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은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자리가 네 자리였고, 그 옆이 소년의 자리였다. 네가 불을 켜고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 동안, 현민은 히터에 전원을 넣었다. 반에 설치된 히터의 조작반이 쓸데없이 높이 위치해있기 때문에 히터를 조작하는 것은 자연스레 현민의 몫이 되었다. 그는 히터를 키고 와서는 네 옆자리에 앉으며 언제나처럼 더플백을 올려놓고 가방을 지익 열었다. 도시락통을 꺼내려는 모양이다.
"아침 먹을 거야?"
언제나처럼 하는 행동 뒤에는 언제나처럼 하는 질문이 여상스레 따라붙는다.
그렇지만 사실 오늘이 마냥 평범한 날은 아니었다. 현민의 가방 속에는 평소에 넣어다니는 샐러드와 닭가슴살 구이가 든 도시락통 외에도, 특별히 준비한 간식을 담은 상자도 있었던 것이다.
방학과 학기 중에서 랑의 일상은 별로 바뀐 것이 없었다. 사복을 입고 가던 도서관과 교복을 입고 가는 학교, 장소만 달랐을 뿐이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이제부터 나이를 한 살 더 먹고서 2학년이 되었다고 해도- 아무리 열심히 돌려도 제자리에 머무는 쳇바퀴같은 일상이다. 하지만 작년 늦가을, 초겨울 즈음부터 랑에게 작은 변화가 일었다. 이름도 제대로 알까 말까 하던 같은 반 친구가, 앞의 수식을 다 떼어내고 오롯이 친구가 되었고 친구에서 멈추지 않았다. 멈춰만 있던 랑은 겁을 내서 움츠리고 말 만큼의 꽃이 피었다. 겨울에서 혼자 향유하려고 했다. 백색의 세상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손끝이 시리고 코끝이 시려도 감내하겠다 고집했다.
하루에 한 송이씩 꽃을 건네받았다. 어쩔 때는 두송이를 받기도 했고, 저럴 때는 다발을 품에 안았다.랑은 그게 전부 네가 옆에 있기 때문에, 네가 꽃을 주었고 그걸 받았을 뿐이라고 믿었다. 네가 떠나면 분명 이 꽃들도 시들어 사라지고, 기억할 수 있는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면 금방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말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랑은 하나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겨울방학 동안 네가 합숙훈련으로 떠났을 때, 랑은 네가 주고간 꽃송이들만 애지중지하려고 했더니 문득 돌아본 풍경이 꽃밭이었던 것이다. 네가 머물고 간 모든 곳이 전부 그렇게 피었다.
"응-"
집에서는 먹지 않는 아침을 학교에서 먹는다. 교실 열쇠가 늘 걸리던 자리에 걸린다. 랑은 창가 자리에 가방을 걸었다. 축구부 훈련을 간 네 모습을 보고만 있다가, 몇 번 급습으로 수업하던 선생님이 랑이 집중을 않으니 질문을 던지고는 했다. 늘 정답을 골라 말하며 쏙쏙 잘 피해갔다는 건 넌 모를 이야기였다. 네게 하지 않은 이야기가 쌓이고 있는데, 랑은 이 모든 이야기를 어떻게 언제 말해야할 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늘 그랬다. 마음은 받는 것도 어렵고 주는 것도 어렵다.
"요즘 꼬박꼬박 아침 먹으니까 이번에 등수 오르겠다."
장난기 어린 웃음과 별 의미없이 흩어지는 소모성 농담.
"아침에도 너랑 있어서 좋아."
그리고 이어붙은 말에 마음을 건네보았다. 서툴러서 조금 맥락이 맞지 않은 것도 같지만, 다음번에는 조금 더 나아지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것도 공부가 필요하다면, 랑은 공부만큼은 자신있었다. 지금 가방에서 꺼내는 것도 오늘 시간표에 맞춰진 과목별 정리노트들 몇 권이다. 네가 선물해준 볼펜이 담긴 필통도 있었고.
그리고 랑이네 부모님이랑 현민이랑 만날 일이나 이야기 물꼬를 틀 일을 생각해봤는데 비오는날 새엄마가 랑이 우산 갖다주러 오는것만 생각나 방과후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우산 들고온 새엄마 교실에 있던 랑이는 창문 밖으로 그걸 확인했고 현민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새엄마가 교실로 올까봐 가방 챙겨서 체육관(비오니까 실내로 옮겼을 거라 믿고)으로 뛰가는거 비 다 맞은 채로 축구부고 뭐고 현민이부터 찾을 거 같은 느낌 @@
랑이네 새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왔다고? 확실히 랑주 말대로 그런 이벤트가 한 번 필요하긴 해 현민이는 그런 뒷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으니까 비 다 맞아가면서 호다닥 체육관에 뛰쳐들어온 랑이 보고 눈 화등잔만하게 뜨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겠지 타월 꺼내다 랑이 머리 닦아주고 외투부터 입혀준 다음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거야 다만 랑이가 바라는 것과 랑주가 바라는 건 다른 것 같은데 랑주는 삼자대면을 원하는 거야?
랑이랑 내가 원하는 건 과거를 알린다로 동일해 현민이한테 이야기해야 한다고 바라니까 너한테 계속 거리를 두었던 이유를 밝히고 싶어하니까 ㅇ.ㅇ 다만 계기가 필요한 것 뿐이야 누구에게 이야기해볼 일이라고는 없던 일들이라서 작은 스파크가 일어야 불이 이는것처럼 ㅇ.ㅇ 다만 삼자대면은 저 상황에서 랑이랑 현민이랑 만나봐야 알 수 있을거같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눈안개 속에서, 너는 너와 마찬가지로 눈안개 속을 헤매이고 있던 누군가와 부딪혔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과 같은 처지일 뿐인 방랑객이려니 했다. 금방 갈라설 줄 알았다. 제각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리킬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서 떠나가버릴 줄로만 알았다. 한 번의 부딪힘으로 끝일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네가 부딪힌 이 까맣고 곱슬곱슬한 녀석은 너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안개 속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너를 목적지로 삼기로 하고, 새까맣고 부숭부숭한 꼬리를 흔들면서 쫄래쫄래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쫓아냈다면 그 녀석은 기꺼이 다시 눈안개 사이로 멀어져갔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를 쫓아내지 않았다. 이따금 그가 네게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면 밀어낼 때도 있었으나, 그러나 너도 종종 그를 쓰다듬어주고, 끌어안아주고, 멀어진다 싶으면 다가가곤 했다. 그래서 그는 너를 떠나가지 않았고, 너와 함께 언젠가 어딘가에,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마음으로 그리는 어딘가에- 이 눈안개로 뒤덮인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닿기를 소망했다.
여전히, 가리킬 수 없는 목적지를 목표로 하는 것은 같았다. 그러나 혼자서 방랑이었던 길은 둘이 함께하자 여행길이 되었다. 그리고 너는 어느샌가, 그와 함께 꽃이 한가득 만발한 어딘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너는 고등학교 2학년의 새 학기에 도착했다.
"등수 오르면 좋지."
하던 현민은, 네가 뒤이어 덧붙인 말에 교실을 한번 둘러보고는, 네 뺨에 쪽 하고 가벼운 입맞춤을 대답으로 남겼다.
"나도."
마음은 받는 것도 어렵고 주는 것도 어렵다. 그것은 너뿐만 아니라 이 소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해보지 않았던 일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익숙하지 않으면 조금씩조금씩 알아가면 된다. 그래서 그는 너와 함께 그것을 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니 조금 서툴러도 좋다.
그는 필통을 꺼내놓은 뒤에, 책상 위에 도시락통을 톡 꺼내서 올려놓았다. 드레싱으로 양념한 로메인 상추와 보라색 양배추, 토마토, 구운 파프리카와 적양파 약간, 삶은 계란과 구운 닭가슴살 소시지, 캐슈너트 한 줌으로 구성된 도시락 반합이 두 개. 네 몫으로 네 책상 위에 하나 올려두고, 자기 몫으로 또 올려둔다. 학교에서 먹는 아침도 꽤 익숙해졌다.
함께를 꿈꾼다는 건 지난 몇년간 너무 상처받아서 꿈꾸는 것조차 겁나했는데- 어느샌가 너와 같이 있는 그림을 상상하는게 자연스러워졌다는 걸 문득 떠올렸다. 방금도 너랑 있어서 좋다고 작년 여름에만 하더라도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을 말을 직접 소리내었다. 그 문장이 랑의 목소리로 들렸다. 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스스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남들보다 조그맣게 들리지만 분명히 온전히 말하고자 해서 말한 그대로 고스란히 귀에 울린다. 짓궂은 장난을 치기 좋아하는 건 변함없었지만 수줍음이 만연한 건 또렷했다.
"나도 등수 오르면 선물 받아?"
작년, 1학년 때 랑은 네 성적이 오른 것에 대한 선물로 입맞춤을 약속했다. 말하는 무게가 조금 더 무거워졌다는 걸 랑은 느꼈다. 장난스럽게 웃는 눈꼬리가 여전한데 쉽사리 뺨에 색이 물들었다. 곱게 물든 연분홍빛, 하이얗고 맑은 피부가 그렇게 물드니 꼭 잘 익어 물든 복숭앗빛이다. 네게 곧잘 홍시가 열리던 것처럼, 여기에는 철 이른 복숭아가 풍년이었다.
"내년에도 같은 반 되면 좋겠다-"
뺨에 남은 입맞춤에 너와 눈을 맞추고서 웃는다. 연한 색감 위에 드리워진 꽃잎 그림자와 보드라운 미소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너를 위한 것이다. 랑은 달각이는 소리와 함께 도시락통을 열었다. 익숙해진 학교에서의 아침 식사는 랑에게 정해진 행동이 하나 있었다. 꼭 너에게 한 입 먹여준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 때 랑이 먹는 것을 보고만 있던 네 모습이 생각나기 때문이었다. 네가 이렇게까지 랑의 식사를 신경써주는데, 네게 운동하다 먹을 간식을 챙겨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서- 그러다보니 랑도 모르게 네게 한 입을 꼭 먹이게 되었다.
"아- 하세요~."
닭가슴살 소시지를 조각내고서 보랏빛 양배추, 구운 양파, 구운 파프리카를 같이 꿴 후 다른 손으로 아래를 받쳐 네 입가로 가져간다.
"내가 너한테 뭔가 상으로 줄 만한 게 있는지 잘 모르겠어... 난 욕심이 많아서, 좋은 게 있으면 우선 너랑 같이 하고 싶어하니까. 시험성적 나올 때까지 못 기다릴 것 같은데."
수줍음이 익숙해졌을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얼굴을 붉히는 쪽은 네 쪽이고, 너를 마음에 품는 데 익숙해진 이 아이는 이제 별로 얼굴을 붉힐 일이 줄어들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봄빛을 한가득 뺨에 머금고 눈웃음을 짓는 너를 보고 있으면, 결국 현민의 뺨에도 어쩔 수 없이 홍시빛이 모락모락 퍼져버리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네가 소년에게 칠해주었던 색깔이다. 네게는 이길 수 없다. 소년은 조금 시선을 피했다가, 피해봤자 부질없는 일인 걸 깨달아서 다시 너와 시선을 맞췄다.
"같은 반이면 좋겠지만, 같은 반이 아니더라도 문제는 없을 거야."
하며, 그도 이제 제법 당신과 비슷한 눈웃음을 짓는다. 그러면서 달칵 하고 도시락통 뚜껑을 열고는, 수저통에 넣어온 포크를 하나 들어 손잡이를 네게 내밀어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밀어져 오는, 아 하세요, 하는 말과 따라오는 한 입. 처음에는 거절했었다. 어쨌건 너를 위해 준비한 건데 너한테 준 걸 다시 받아먹는다는 게 현민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양을 하려고 했더니, 네 눈빛이 꼭 '이걸 받아먹지 않으면 나는 일주일 내내 너한테 삐져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받아먹었다. 그러나 그것도 몇 번인가 하다 보니, 결국 네 행동은 또다시 현민에게 또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그는 순순히 "아-" 하고 입을 벌려서는, 네가 건네어주는 한 입을 쏙 받아먹는다. 그렇게 한 입 받아먹을 때면 그의 뺨에선 늘 쑥쓰러운 기색이 스물스물 피어나곤 했다.
왠지 그러다가 또 말실수를 할 것 같아서, 현민은 네가 건네준 샐러드와 소시지를 우물거리며 자기 역시도 똑같이 소시지 한 조각과 양파, 파프리카를 포크에 꿰어서는 너한테로 내민다.
"자, 너도 한 입 먹어."
그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신혼 같네, 같은 바보같은 소리를 입에 덜컥 올려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장난으로 한 말에 대해 돌려받은 네 대답은 다시 답하기까지에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내가 너한테 뭔가 상으로 줄 만한 게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에는, 하마터면 나한테는 네가 선물이야- 하고 불쑥 말해버릴 뻔 했다. 네가 욕심을 부리는 걸 언제나 랑도 탐내고 있다. 계속 나한테 욕심부려주면 좋겠다고 랑도 욕심부린다. 그 욕심의 끝은- 과분한 생각, 당치도 않는 바람, 주제넘는 요구, 그럼에도 네게 탐하고 마는 최대의 욕심. 시선을 피했던 네가 다시 시선을 맞추면, 랑이 시선을 피했다. 지금 말고 나중에- 나중에 말하자고 생각했다.
"받, 받고 싶은 건 있어. -지금은 비밀."
랑은 얼마나 떨리는지 네게 받고 싶은 것은 있다고,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정말로 감히 말해버린 것이다. 받고 싶은 것이 당최 무엇이길래 랑은 그것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좀 더 붉어졌다. 분명 네게 장난을 치려고 한건데 자신이 놓은 수에 되려 당해버려 부끄러워지니 우우, 혼자서 조금 꽁해졌다.
"문제 없어도... 같은 반이 좋아."
애꿎은 도시락에 심술이다. 네가 쏙 받아먹어주고 나면 곧 랑이 먹깨비가 되고는 했는데, 오늘은 포크로 폭폭 찌르기만 하면서 입에 가져가질 않는다. 랑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면, 자신의 입과 손을 원망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왜 반찬투정 부리는 어린 애처럼 구느냐고 소리치고 있었다. 배배 꼬여서 못되먹은 것도 어느 정도까지지, 배하랑 못났다- 변명의 여지도 없는데 랑은 다른 것을 탓했다. 새로 2학년이 되어서, 봄이 오고 있어서, 네가 상냥해서, 갖은 이유들을 머릿속에 나열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심술의 이유는 전혀 다른 것이다. 너도 빨리 내가 좋아서 부끄러워 해, 같은 반 아닌 경우는 생각도 말고 나랑 내년에도 같은 반 하고 싶다고 말해줘.
"...맛있어."
뺨 물들인 채 의미없는 포크질만 할 줄 알았더니, 네 목소리에 곧잘 받아먹는다. 랑은 오물거리면서 생각했다. 또 괜히 틱틱거려서 넌 괜히 억울해지기 전에 입을 가득 채워버리자- 드디어 랑의 포크가 입에 물렸다.
현민은 네게 항상 그랬다. 그는 항상 네게 선을 그어주지 않았다. 네가 밀어낸 만큼 둥실 밀려나고, 네가 다가오면 아무런 저항도 없이 널 품에 푹 받아안았다. 그는 너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였으면 좋겠다, 어느 정도면 적당하겠다 하고 너를 가로막거나 묶거나 밀어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네가 덜컥 말해버릴 뻔한, 간신히 목구멍 아래로 꿀꺽 밀어내린 그 마음이 언제든지 다시 튀어나올 수 있도록 그 여지를 활짝 열어주어 버리고 말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네가 삼켜버린 말이 그에게 들릴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그랬다.
"기다릴게."
하는 말까지도.
문제 없어도 같은 반이 좋아, 하는 네 말에, 한창 소시지며 야채를 포크에 꿰고 있던 현민은 눈을 감았다. 네가 피운 꽃이니 네가 책임져야지. 내가 너에게 피운 꽃은 내가 책임질게. 네가 피운 꽃이 홧홧하게 귀며 뺨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제 현민은 네게 말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네게 솔직하게 말했다.
"네가 반이 갈라지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는 게 싫어서 그렇게 말했지만, 그래도... 응, 나도 너와 같은 반이었으면 좋겠어. 계속 너랑 같이 있고 싶으니까."
하면서, 그는 네게 포크를 내밀었다. 네가 쏙 삼켜버리고는 오물거리자, 이른 봄에 때아닌 홍시가 매달린 얼굴을 하고도 그는 해거름하니 너를 보며 웃어버리고 만다.
재촉, 해도 되는데- 다행히 이 말이 소리나지는 않았다. 랑이 나중으로 미룬 이유는 도시락 먹다가 말하기에는 좀 그렇잖아- 라는게 전부였다. 예쁘게 말해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언제나 네가 랑에게 예쁜 것들을 한아름 안겨주고, 쥐어주고,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랑도 이 욕심을 소리내어 보여줄 때가 된다면 예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처음 하는 고백을 이렇게 엉겹결에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랑은 기다리겠다는 너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
이번에도 랑의 입은 오물거리느라 답을 하지 않았다. 소시지, 양파, 파프리카, 그리고 또 기타 등등. 분명 뭔가를 먹고 있고 맛있다고도 말했는데 지금 무얼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실 안의 공기마저도 달게 뜬 것 같았다. 이 어색한 고요함은 분명 무색무취인데, 랑에게는 분홍색으로 보였고 달콤한 향이 맡아졌다. 달콤한 향에 집중하면 그 속에는 너의 향이 넘실거린다. 혼자 꽁해져 부리던 심술이 오래 갈 리가 없다.
"너도 먹어- 훈련도 가야하면서."
도시락 비우는 속도를 보니 먹깨비는 먹깨비다.
"간식도 많이 안 먹으면서."
여기서 말한 간식은 네가 도시락을 챙겨준 이후로부터 보답으로 챙기던 것이다. 랑은 뺨을 붉히고서 하는 핀잔이 오롯이 핀잔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듯 하다.
재촉, 해도 되는데- 그러나 그러기에는, 그가 괜히 서둘렀다가 벽에 코를 들이박은 경험이 워낙에 많았다. 너와의 경험은 무엇 하나 곱씹어보아도 향기롭고 행복한 것이 아닌 게 없었지만, 전부 다 잘 된 일들만 있지는 않았다. 네게 익숙해지는 한 과정이었다. 네게 다가갈 때와, 너를 기다릴 때를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을까. 도시락 먹다가 말하기에는 좀 그렇잖아- 현민도 어렴풋이나마 그것에 공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가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현민에게 있어 이 침묵은 전혀 회색이 아니었다. 아침 햇살에 잠긴 교실에 둘이서 앉아 도시락을 나눠먹는 것. 딱히 서로 이야기같은 걸 하지 않아도, 이렇게 소소하고 소박하게 보내는 시간 하나하나가 현민에게는 행복이었다.
"그래야지."
현민이라고 해서 도시락 먹는 속도가 느리진 않았다. 특출난 먹깨비라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현민의 일일 칼로리 소모량은 18세 남아 평균에 비교해보았을 때 압도적으로 높았으니까. 나이 열여덟이 되기 전부터 현민은 밥심이란 게 무엇인지 몸으로 느껴 알고 있었다. 그렇게 허겁지겁이나 게걸스럽게 먹는다는 느낌 없이, 단정하게 입에 쏙 넣어 꼭꼭 씹어먹는데도 소시지며, 파프리카며, 샐러드들이며 하는 것들이 쓱쓱 사라진다.
"잘 먹는데. 왜."
솔직히 말하자면, 현민이 네게 챙겨주는 도시락만큼이나 네가 현민에게 챙겨주는 간식도 그에게 있어 훈련의 격렬한 칼로리 소모를 보충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고 있었다. 현민은 입 안에 가득 채웠던 샐러드를 꿀꺽 넘기고는 네게 말했다.
"그러면 오늘 간식은 이따 오전훈련 끝나고 같이 먹을까? 아니면 점심시간에 먹어도 되고."
랑은 공부할 때 간식을 곧잘 먹고는 했는데, 요즈음은 더 그랬다. 3월 모의고사가 벌써 1주일 남짓 남아서 공부 양이 더 늘었기 때문이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간식을 까먹는 시간도 길어졌다. 한입크기로 포장된 초콜릿, 입에 물고 먹을 수 있는 막대사탕, 하나씩 쏙 집어먹기 좋은 젤리, 잠이 오면 계속 오물거릴 수 있는 껌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랑이 간식을 먹는 양껏 네게 챙겨주면 네게는 며칠 나눠 먹을 양이 될 것이라고, 랑은 믿었다.
"오늘 간식?"
오늘은 화이트데이보다는 3모 D-10이었다. 간식을 같이 먹자는 것부터 랑은 고개를 갸웃였다. 운동하면서 먹으라고 챙겨주는건데- 훈련 끝나고 뿐만 아니라 점심시간에 먹어도 괜찮다니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심지어 네가 준비해온 간식이라는데, 랑은 눈을 깜빡거린다.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는걸까, 랑은 고민했다. 곧 있으면 3모인 거랑, 곧 있으면 청소년 축구 리그 시즌이 시작된다는 거랑, 오늘이 며칠이더라, 3월 14일이던가- 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이유를 깨달았다. 무슨 간식인지 궁금해 고개를 갸웃이며 눈만 깜빡거리는, 동그랗던 랑의 표정이 금새 변해버린다.
"그, 쉬는 시간은 짧으니까- 점심시간에 먹자."
랑은 함박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함박웃음, 함박꽃의 함박이 붙은 단어인데- 랑은 정말로 함박꽃이 활짝 만개하듯이 크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함박꽃은 보통 무슨 색이 제일 많은지 랑은 모르지만, 지금 피어난 함박꽃은 분홍색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점심시간을 기대하고는 하지만, 전혀 다른 이유로 점심시간을 기대하게 되었다. 화이트데이에 네가 조금 준비해왔다는 간식이 사탕이라고 확신해버릴 것 같아서 곤란했다. 조금 일러도 3월 모의고사 힘내라는 의미로 간식을 챙겨줬을 수도 있다는 거다. 계속 공부를 도와주기도 하니까 그런 간식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면 안 된다고- 그렇지만 랑은 사탕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샐러드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너를 살짝 바라본다.
친어머니 직업이 프로듀서(겸 싱어송라이터)야 겸 싱어송라이터는.... 완전히 싱어송라이터라고 하기에는 노래는 주로 안 하시는편 무튼 랑이는 어릴때부터 엄마랑 노래하는게 일상이었고 자연스럽게 취미이자 좋아하는게 엄마랑 노래하기였어 랑이가 한 말이 가사가 되기도 하고 흥얼거린게 곡의 일부분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그러다 초등학교때 랑이 귀가 나빠졌지 그래도 친엄마는 문제 없다고 취미생활을 이었는데.... 중학교때 이혼까지 하게 됐고 랑이는 친엄마도 밉고 노래하던 기억이 아픈 기억이 된거야 그때 아빠가 쐐기를 박아버렸어 공부에 전념하자고 나중에 어른된 후 그때 취미로 해도 늦지 않다고 귀가 나쁘니 음악쪽으로 직업 갖기 어려울 것 + 남들보다 할 수 있는게 적으니 공부하자고.... 그렇게 취미를 완전히 잃었다! 라는 이야기 비오는 날 친엄마가 학교에 오는 일 + 현민이 공연 보는 일이 생기면 현민이도 금방 알게되지 않을까 싶다
당연한 딴죽이 돌아온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서 그 조그만 몸으로 칼로리를 그렇게나 섭취하고도 살 하나 안 찌는 게 현민의 눈에는 꽤 신기했다만, 건강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현민이 간식을 먹는 양도 네게 뒤지지는 않았다. 네가 챙겨주는 간식들 중에서도 현민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열량이 충분한 초코바나 견과류 등이었다. 슬슬 시즌 오픈이 다가오면서 하루의 훈련량도 점점 늘고 있었으니. 그러면서도 그는 너와 함께 공부하는 시간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적당히 먹는 건 괜찮지. 응, 간식."
하고 끄덕이는 현민의 뺨에, 이상하게 쑥쓰러움의 색이 덧입혀져 있다. 단순히 간식 먹자는 말에 곁들여 띄우기에는 어색한 색깔이다. 그에게 있어 오늘은 3모 D-10이 아니라, 조금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네가 마침내 그 다른 의미를 눈치채자, 현민의 귀에까지 쑥스러운 색깔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응, 점심시간에 먹자."
현민은 그렇게 빨갛게 단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맞추자니 쑥스러웠고, 시선을 피하자니 네 얼굴에 한가득 걸린 행복한 미소가... 너무 예쁘고, 너무 뿌듯해서. 현민은 자기 자신이 조금 바보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힘겹게 샐러드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이대로 보고 있으면 널 따라 함박웃음을 지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너는 현민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기대해도 돼? 하는 그 꽃분홍색 작은 말에, 현민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귀에서 펑 소리와 함께 김이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아까 쑥쓰러워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했던가. 취소다.
적당히 먹는 건 괜찮다고 덧붙는 네 대답이 랑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가 아하하, 조그맣고 명랑한 웃음 소리를 흘리도록 했다. 너무 많이 먹어도 안 된다는 말에 별로 많이 먹지 않았다고 툴툴거리려고 했는데, 오늘 네가 준비한 간식은 먹어야 한다는 듯이 적당히 먹는 건 괜찮다고 따라붙은 말이- 랑에게는 너무나도 귀엽게 느껴졌다. 쑥쓰러워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네 모습을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느꼈음에 랑은 놀라고 말았다. 랑이 생각하는 것보다 마음에 네가 심어둔 씨앗이 훨씬 더 많이 컸기 때문이다. 다른 간식들을 금지 당해도 오늘 네가 준비해준 간식은 먹어야겠다.
"오늘 급식 뭐였더라-"
샐러드를 오물거린다. 편식을 하질 않으니 급식에서 뭐가 나와도 랑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딱 한가지 신경쓰일게 있었는데, 학교에서 오늘은 화이트데이니까 학생들에게 기념으로 사탕 같은 간식을 급식으로 주자고 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아니면 그 외 달달한 간식이라거나, 무엇이 되었든 화이트데이를 기념하는 간식은 네가 주는 게 첫번째였으면 좋겠다. 안 먹으면 되는 일이지만 기분이 그렇다. 너무 유치한 생각같다고, 스스로 느꼈지만 유치해도 상관없어- 라고 이어서 생각해버린다. 여전히 샐러드 맛은 잘 모르겠다. 랑은 이 샐러드가 단 것 같았다.
"우으으-"
조그만 소리가 났다. 동시에 랑은 얼굴을 폭 감싸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도시락이 책상 위에 없었다면 콩 박아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말해버리면 안 되는데- 이렇게 두근거리게 만들면 어떡하느냐고 탓할 사람은 너 밖에 없다. 단순히 마음을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해야할 말이 많은데, 어떻게 말해야할지 몰라서 정리된 것도 하나 없는데 정돈치도 못한 말이 툭 튀어나오려고 한다. 그러니 고개를 숙이고서 잠시 눌러담았다.
"말로 해, 말로- 밥 먹을 때는 깐쵸도 안 건들여!"
얼굴에서 손이 떨어지면 여전히 빨갛다. 뺨에 오른 열을 가라앉히는 건 생각도 않았다.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랑은 말을 참아낸 것만으로 만족했다. 다시 손에 포크를 쥐고, 거의 다 먹어버린 샐러드를 콕콕 찌른다. 그러면서 부끄러워 툴툴거렸다.
얼굴이 빨개진 와중에도 네 까르륵 웃는 소리가 좋았다. 네 손짓, 네 말 한 마디가 씨앗이 되어 소년의 가슴에 심겼다. 봄이 되자 민들레가 활짝 피었다. 가을도 되지 않았는데 씨앗들이 봄바람을 타고 네게 날아왔다. 정신을 차려 보면 꽃밭 한가운데... 그래, 현민도 꼭 그랬다. 정신을 차려보니 네가 온 사방에 활짝 피어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네 차례다.
"검색해보면 나오겠지만... 우리 학교 급식이 맛없던 적이 별로 없으니 괜찮겠지."
네가 먹깨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현랑고의 급식수준에는 큰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현랑고 급식이 퍽 잘 나오는 편인 게 네 먹깨비화에 일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글쎄 교내에서 이런 기념일 같은 것으로 간식거리를 나누어줄지는 의문이다. 사립명문인 현랑고는 '오랜 전통이 있는 학교'답지 않게 교풍이 퍽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보수적인 부분이 남아 있었다. 교내에서 피어싱 착용 금지라던가 하는 부분들 말이다. 오늘 조례에서도 담임 선생님이 아마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학생답게 보내라, 3모 10일 남았다' 같은, 네가 아까까지 하고 있던 생각과 비슷한 말을 할 것이라는 걸 미루어보면, 급식에 화이트데이라고 사탕 하나씩을 딸려주는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그리고 전적으로 기분 탓이지만, 너는 이미 네 짝꿍에게서 달콤한 걸 이미 꽤 많이 받아버린 것도 같고.
"나 공부 별로 못해서...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현민은 쑥쓰럽게 웃어보였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걸린 쑥쓰러운 미소가 아침햇살에 말갛다.
"응, 마저 먹자."
남은 식사는 얼마 가지 않아서 끝났다. 이제 반 아이들이 속속 들어오고, 조례가 끝나고 나면 현민은 오전 훈련을 받으러 반을 떠나게 된다.
너무 졸립다... 갱신할게.... 잠들어서 미안해 ㅠ.ㅜ 여태 바빴던거 10일까지라고 기한이 정해져서 아마도 11일부터는 여유로울 거 같아
>>367은 뿌까머리 하고 나와놓고 현민이보니까 부끄러워한단 느낌이라고 생각했고 >>373은 현민이한테 사진 보내주려고 찍는 거 아닐까 싶다 현민이 체육대회 때 출전 종목 많을 거 같고 그럼 바쁠테니까 ~.~ 폰에 알림 울려서 봣더니 다음 경기도 이기고 와! 하고 톡 와있는? ㅎ.ㅎ 랑이는 체육대회 때 경기 참가 빠지는 대신 체육대회위원회에 자진했을거 같은 느낌이 있다 몇학년 몇반 누구누구 무슨 종목 출전해야한다고 알려주고 다니고 다음 경기할 수 있게 운동장 세팅하고 그런거
네가 주는 간식만 기대되고 말았다. 부담스러우면 어떡하지- 싶을 정도로 아직 1교시는 커녕 조회시간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점심 시간 생각만 들었다. 곧 있으면 모의고사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수업 시간에 집중해야하는데, 랑은 큰일났다고 느꼈다. 오전 훈련 끝나고서 먹자고 말을 바꿀까도 싶었지만, 그러면 2~3교시 끝나고서 오는 너와 같이 간식 먹으면서 있을 시간이 쉬는 시간 10분 밖에 되지 않아서 그건 싫었다.
"누가 가르쳤는데 공부를 못한대-"
랑은 예쁘게 웃고 있는 네 두 뺨을 감싸쥐었다. 시선이 마주치도록 했다. 랑의 옆은 창가였고, 창문으로는 아침 하늘이 푸르렀다. 랑의 눈색도 꼭 그 하늘색처럼 맑게 푸르렀는데, 다른 점은 노을이 졌다. 아침놀로 물든 듯 발갛게 띈 뺨이 랑에게만 있었나 하면 네게도 있었다. 랑의 손에 쥐어져있다. 랑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널 가만 바라보다가 뿌닛 네 얼굴을 찌부내버렸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샐러드를 먹는다. 얼마 남지 않아 금방 도시락이 비었다.
"현민아."
이르게 등교하는 랑과 너를 이어서 평범히 반 친구들이 등교할 시간이 다가온다. 1교시 시작하기 전에 너는 훈련 받으러갈테고, 복수의 기회는 지금 밖에 없었다. 아직 아무도 등교하지 않은 걸 한 번 반을 둘러보고서 확인한 랑은 곧 네게 쪽 입맞춤을 남겼다. 네가 남겼던 것처럼 뺨에 랑의 입술이 짧게 톡하고 닿았다. 네 코 끝에는 분명 랑이 늘 머금고 다니던 네게는 익숙해지고 말았을 향기가 훅 다가왔다.
잠들 수 있지 괜찮아 그렇구나, 랑주가 여유로워진다니 기쁘네 그때까지 지금 하는 일 잘 풀리길 빌고 얼른 여유 찾아서 못 쉬던 거 다 쉬고 못 하던 거 다 하면서 힐링하자
랑주한테 되갚아주고 싶어서 픽크루 찾아헤매고 있는데 현민이를 구현할만한 픽크루가 없다
이런 불효자녀석
진행위원으로서 교무실에 뭐 가져다둘 게 있거나 교실에 누구한테 말 전해줄 게 있어서 가져다놓거나 전해주고 다시 다음 할 일을 하러 한적한 복도를 가로지르던 랑이랑 잠깐 교실에 뭐 가지러 갈 게 있거나 화장실에 좀 들리던 참이던 현민이가 단 둘밖에 없는 한적한 복도에서 마주치는 게 보고 싶다 창 밖에서는 모두들 체육대회 하느라고 왁왁 바쁜데 햇빛이 비스듬히 비쳐들어 푸르스름한 복도에서 둘이 조용히 마주보는 그 순간이 보고 싶다
반티.. 현민이는 등번호 몇 번 하게 되려나 14번 랑이한테 뺏겼대요
축구부 애들은 반티 대신 축구부 유니폼 입고 체육대회 하는거면 등짝 14번 커플넘버겠네 (별게 다 커플)
손으로 한가득 꼬옥 그러안은 현민의 새까만 눈동자에는 네가 담겨 있었다. 아니, 너만이 담겨 있었다. 그 까만 눈동자는 너를 포함한 교실의 모든 풍경을, 창가를, 너를, 네가 등지고 있는 하늘을 모두 비추고 있었지만, 그 눈에 비추이는 사물들 중 오로지 너만이 그 눈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그 까만 눈동자마저도 그저 까만색이 아니라, 너와 소년의 얼굴에 같이 피어나 있는 고운 봄 색이 섞여있는 것만 같았다. 네 손이 따스했을까, 현민의 미소가 무방비해졌다. 그리고 그러기가 무섭게 네 손이 그 웃음을 푹 좌우로 짜부라뜨려 버렸고.
그러나 그 웃음은 좌우로 푹 찌부러졌음에도 그치지 않고, 푸흐흐흐흐 하고 소리나는 웃음이 되어버렸다. 그는 대신 손을 뻗어 네 뺨을 조물거리고는 놓아주었다.
식사는 오래지 않아 끝났다. 이제 좀 있으면 다른 친구들이 반으로 속속들이 등교할 것이다. 거기서 조금 더 기다리면 담임 선생님이 오셔서 조례를 시작할 것이다. 조례가 끝나고 나면 이제 2교시까지는 현민은 훈련을 받으러 가야 한다. 그러니, 그 전에...
마치 공명하는 것 같다. 그가 네게, 네가 그에게,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되울림은 조금씩 커지고 선명해지고 분명해진다. 이제 그 되울림이 무엇인지 감히 다른 이름을 붙이지 못할 정도로, 그것은 그 어떤 도움이나 배움도 없이, 너와 그 둘이서 만들어낸 마음이 되어간다. 네가 그의 뺨에 톡 입맞추자, 입맞춘 지점에서부터 따스한 온기가 너와 그에게 죽 퍼져나가는 것 같다. 현민은 새삼스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너를 보다가, 푸슬푸슬 웃었다.
현민이가 크헉 일어나고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힉 소리내버린 랑이 하필 그 수업시간 담당 선생님이 소음(ex. 볼펜 딸깍이는 소리)을싫어하는 선생님이어서 둘다 나란히 교실 뒤에 나가면 좋겠다 교실 뒤에서 얌전히 서서 수업듣나 했더니 장난치다가 들켜서 이제는 복도 밖으로 ~.~
무언가 다가올 때 랑은 향기부터 기억했다. 너의 향이라고 확신하면 랑은 기꺼이 그 손길에 응할 수 있었다. 네 손만이 주는 그 따스한 느낌도 잘 알고 있어서, 랑은 뺨을 만지작거리는 네 손에 조금 고갯짓했다. 네 손에 뺨이 꼭 떠안기도록 살짝 고개가 기울었다. 뺨을 만지고 있는 네 손길도,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도, 네게서 나는 향기도, 네가 웃는 소리도 랑은 마음에 품었다. 랑은 언제나 하얀 구름 같아서 마음을 온전히 내보이는 일이 별로 없었다. 살랑이는 말, 가벼운 몸짓은 익숙하다. 그래서 네게 이 마음을 말하게 된다면, 첫 마디는 어느 꾸밈말도 없이 딱 한 마디로 시작하고 싶었다. 랑은 그렇게 바랐다.
"이따가는 애들 있잖아."
언제부턴가 랑은 네 손길에 움찔거리지 않게 되었다. 네가 일부러 시야로 손의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아도, 너에 한해서만 놀라는 일이 줄었다. 오밀조밀 섬세하고 조심스레 세공한 유리 장식처럼 함부로 건들지 못하도록 내고 있는 거리가 선명했는데- 이제 네게는 그 거리가 무의미하다.
"응."
랑은 쓰다듬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업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기에는 1교시도 2교시도 네 생각을 안 할 수는 없겠지만, 네 응원을 받은 만큼 열심히 할 것이다.
2교시가 끝났다고, 쉬는 시간이 시작한다는 종이 울렸다. 랑은 3교시 교과서와 노트, 프린트물 등을 미리 꺼내놓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을 가는 아이들도 있고 매점을 가는 아이들도 있고, 다른 반에 교과서를 빌리러 가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랑은 그저 교실 문 언저리 복도에 서있을 뿐이었다. 복도에 서서 지나다니는 아이들 사이를 구경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은데, 찾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 내내 문제를 다 풀거나, 시간이 나면 고개를 돌려 창문가에서 찾던 사람- 바로 짝꿍을 기다리고 있다. 무릎에 있는 상처가 다 나으면- 그 때는 계단 아래까지 마중을 가볼까 랑은 생각했다.
"앗."
너를 찾는 건 쉽다. 키가 커서 또래 애들보다 머리가 높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눈에 잘 보였다. 너를 발견하자마자 랑은 방글 웃었고, 네가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이 정도 거리면 조금 뛰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욕심부렸다.
네 생각도 잊고 온전히 집중했다, 라고 하면 당연히 거짓말이겠지. 이제 와서 현민이 그럴 수는 없다. 물론 집중하기는 해야 한다. 오전 훈련은 대부분 전술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격 훈련, 수비 훈련, 패스 훈련, 스몰사이드 게임과 풀 게임까지. 몸만큼이나 머리도 훈련에 집중해야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훈련 중간중간 쉴 틈이 있을 때마다, 문득 고개를 들어 파르랗게 물든 초봄 하늘을 볼 틈이 있을 때마다 현민은 그만 네 생각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저 하늘로 푹 빠져들고 싶다. 네게 풍덩 빠져버리고 싶다. 아직 어른이 안 된 소년- 소년이라기에도 어리고 순진한 동화적 망상이 현민을 채우곤 하는 것이다. 그가 네가 있는 교실 창가를 종종 바라보면서 하는 망상, 네게도 닿았을까.
2교시가 반 넘게 흘러갈 때쯤, 훈련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땀 닦고 옷 갈아입고 각 반 교실로 올라가라는 코치의 해산령. 탈의실을 거쳐 유니폼에서 운동복으로(운동부 아이들은 훈련 중이 아니더라도 체육복 차림이 허락되었다-그들은 학교 지정의 체육복이 아니라, 자기 사비로 산 기성 브랜드 체육복을 입고 다니는 게 보통이었다) 갈아입은 축구부 아이들은 삼삼오오 제 갈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매점에를 가는 부원도 있었고, 화장실에를 가는 부원도 있었다. 현민도 화장실에 들러서 세수를 좀 하고 갈 생각이었다. 3월의 찬바람도 무색하게 얼굴에 땀이 많이 났던 참이다. 옷을 갈아입으며 땀을 한 번 다 닦아내긴 했으나, 네가 있는 교실에 올라가려면 제대로 세수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어쨌건 화장실에 들리려면 현관으로 들어가긴 해야 한다. 그 검은색과 하얀색 더플백을 어깨에 매고 뻐근한 다리를 끌고 터덜터덜 현관으로 올라오는 그의 눈에, 계단 아래에까지 마중을 나와 있는 네가 보였다. "야, 네 마누라 나왔다." 동기 친우가 짓궂게 옆구리를 쿡 찔렀다. "더헉." 하고 현민은 움찔했다. 그리고 "알아, 임마." 하고 툭 쏘았다. 자신에게서 현관에 서 있는 푸른 눈의 여자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얼굴색에 화색이 피어오르는 현민을 보고 축구부 친구는 킥킥 웃었다. "좋을 때다."
그런데 현민의 눈에 네가 갑자기 쪼르르 뛰어오는 게 보인 것이다. 현민은 너에게로 걸어가던 발걸음을 조금 재촉해 속도를 올렸다. 네가 뛰어오는 것처럼, 현민도 거의 경보를 하다시피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읏차."
네 눈에 세상이 조금 기울어진다 싶은 그 순간, 너는 네 몸이 익숙한 감촉의 품 안으로 푹 파묻히는 걸 느꼈다. 검은색 몸통에 하얀 소매가 달린 운동용 저지. 그리고 그 안에, 근육들이 네게 편안한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는 단단한 근육질의 품. 코끝에 걸리는 옅은 땀냄새와 숲 냄새, 그리고 온기.
"뭘 또 여기까지 내려왔어."
네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현민은 타박하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결코 네게 타박이 되지 못했다. 타박이라기엔, 그 말에는 너무도 따스한 애정이 금방 알 수 있도록 한가득 묻어 있었으니까.
넘어져도 넘어지는 줄을 모른다. 언제나 랑이 넘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건 랑을 보고 있던 다른 사람이 먼저 알아채고는 했다. 랑은 네 손을 꼭 쥐면서 옆에 나란히 서고 싶었다. 그러고는 방긋 웃으며 놀랐지- 하고 너스레를 떨 작정이었는데, 랑의 몸으로 균형감각을 잡는 일은 조금 까다로웠다. 하지만 랑이 네게로 가까워지는 만큼 너도 랑에게로 가까워지고 있어서- 넘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라면 대차게 넘어져 무릎에 반창고가 늘었을 건데, 랑은 네 타박같지 않은 타박에도 까르르 웃을 뿐이었다.
"현민이다-"
이미 네 품에 폭 파묻혔겠다, 랑은 꾹 너를 한 번 안았다. 뭘 또 여기까지 내려왔냐는 말에 답할 생각이었지만, 답 자체는 조금 미뤄두었다. 지금 당장은 너를 채우고 있다. 너와는 전혀 다른 조그만 몸이, 전혀 다른 향을 담고 있지만 비슷한 온기를 품고서 꾹 와닿는다. 그 다음은 네 품에서 부빗거리는데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이나 네 품에 얼굴을 한껏 부벼오는 움직임 자체가 너를 조금 간지럽힐 수도 있겠다.
"그래서 싫어?"
난 좋은데- 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말한 것만 같은 착각이 인다. 랑은 너를 꼭 끌어안고, 네게 쓰다듬도 받고, 네 품에서 부빗거리기도 하고, 2시간 남짓 떨어져있던 것 치고는 조금 과하게 너를 채우고는 만족했다. 그리고서야 네게서 조금 떨어지면서 너를 올려다보며 늦은 답을 들려주었다. 뭘 또 여기까지 내려왔냐는 말에 대한 답. 싫으냐고 물어보고 있지만 서운한 기색은 하나 없는게, 아무래도 네가 그렇지 않다 답할 것을 이미 확신하고 있다.
원래 세상 일이라는 게 항상 자기 마음대로는 되지 않는 법이지만, 원하던 대로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옆에 나란히 서도, 품에 굴러떨어져도 현민과 함께 있게 된다는 건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그래. 나 여깄어."
하고, 자신의 품을 폭 파고드는 네 머리를 현민의 손이 쓰다듬는다. 옆에서 아까 말을 걸었던 축구부 친구가 짜아식 좋을 때다~ 하는 말을 입 대신 얼굴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머금고는 그들의 옆을 스쳐지나간다. 보통 이럴 때는 무심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해주는데, 큰일이다. 네가 품 안에서 부비적거리는 바람에 얼빠진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딱히, 이 미소를, 억지로 삼키고 싶지 않다. 현민은 네가 자신의 품 안에서 자신을 마음껏 만끽하도록 놓아주었다. 품 안이 네 향기로 물드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 자신의 냄새를 느낄 때면 거기서 자신뿐만 아니라 너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채현민 내 꺼! 하고 낙서해놓는 마냥, 아이같이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낙인이었다.
"알면서 그러냐." 현민의 웃음이 >:D 모양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좋지."
하면서 현민은 널 품에서 놓아주었다. 당연하게도 네 확신이 빗나갈 일은 없다. 작년 가을부터 계속 소년이 품어왔던 확신이, 이제는 너마저 옭아매었다. 뿌리가 퍽 깊은 그것은, 흔들림없이 너와 소년을 묶어주었다. 소년만이 묶여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네게까지 뿌리를 내리고 말았다. 현민은 네게 손을 내밀었다. 네가 손을 내민다면 꼭 마주잡는다.
랑은 너의 웃음 모양을 따라했다. >:D 모양으로 일부러 눈썹도 끝이 위를 향하도록 코를 찡긋거리고는 방글 웃었다. 그 표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원래 랑이 생긴 모양대로 푸스스 흐트러진다. 랑은 네 목소리 듣는 일이 정말로 좋았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소리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세상에 못 들어본 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지만, 어떤 소리도 네가 이렇게 말해주는 목소리나 웃는 소리에 절대 견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늘도 고생많았어-"
발꿈치가 들린다. 손도 쭈욱 위로 뻗었다. 랑은 네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너의 머리카락은 곱슬기가 심했는데- 통통 가벼운 손길이 개구지게 머리를 슬 헝클어놓는가 싶었다. 그래도 네가 가르마를 타고 다니던 대로 머리카락을 넘겨주었고, 그대로 내려오던 손이 네 뺨도 쓰다듬고 간다.
"응- 없어."
손을 잡는게 이렇게 자연스럽다. 랑은 마주잡는 움직임 사이로 손가락을 얽었다. 궂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었던 손이라서, 말랑하고 보드라웠다. 깍지를 끼고는 너를 향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걸음을 뗄 것이다. 교실에 다와서도, 자리에 갈 때까지 랑은 손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네가 놓지 않는다면, 창가자리 둘의 책상까지 닿아서야 손이 놓일 예정이었다.
네 손이 뻗어올라가자, 현민은 무릎을 구부려 네 팔길이에 머리를 맞추어주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네 손가락 사이에 기분좋게 감긴다. 억세지만 유연하고 곱슬곱슬해서, 손가락 사이로 스치는 감촉이 선명해 쓰다듬는 맛이 있다. 눈을 꾹 감고 네 손길을 만끽하고 있는 현민을 보노라면 커다란 개라도 쓰다듬고 있는 것 같다.
네 표정대로 푸스스 웃는 얼굴로 쓰다듬는 너와, 그런 네 손길에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맡기고 만끽하고 있는 현민. 삼삼오오 교사로 흩어져가는 운동부 학생들과 다른 학생들이 보기에는 누가 봐도 영락없는 커플이다. 실제로, 현민에게서 아직 커플은 아니라는 말을 들은 친구는 "에이 그게 커플이 아니면 빌게이츠가 부자가 아니겠다" 하는 말로 응수하기도 했다. 네 손이 그의 뺨을 스치자, 현민의 눈가에 잠깐 힘이 들어가 찌글해졌다가 네 손이 부드럽게 쓰다듬고만 떨어지자 풀린다. 아까 뿌닛 하고 얼굴 뭉갠 그 순간이 떠올랐나 보다. 봄이 그의 뺨에도 찾아왔는가 따뜻하다.
교실로 올라가는 동안에, 현민은 널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눈을 감고도 그의 손인지 알 수 있을 그 커다란 손은, 여전히 네게 따뜻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복도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보기에도, 반에 있던 아이들이 보기에도 영락없는 커플인데, 커플이 아니라는 게 이상하다. 그렇지만 마음만큼은 충분히 가까웠다. 이 관계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의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다 괜찮았다. 네가 손을 풀자, 현민도 네 손을 놓아주었다.
"다음 교시 뭐였지?"
다른 아이들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평범한 일상이라는 듯, 네 손을 태연히 놓아주고 가방 지퍼를 지익 열며 현민이 질문했다.
조그만 야유를 보냈다. 조금만 일찍 그 말을 했더라면 뺨을 쓰다듬기만 하는게 아니라 살짝 꼬집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네가 눈가에 힘을 주어 찌글해진 것을 본게 먼저였고, 랑은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아무도 안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조그맣고 빠른 입맞춤이 쪽 떨어진다. 어디에 남겼느냐고 하면 네 눈가에 있는 점이었다. 찌그러진 눈가를 피게 하려다 나온 행동이었다. 손가락으로 꾸욱 눌어도 충분했겠지만, 이렇게 마주보고 서있으 때 네가 키를 맞춰주지 않으면 입맞추는 건 하기 어려워서- 기회를 잡았다고 하는게 옳았다. 네 뺨에 찾아온 봄에 꽃도장을 찍었다.
교실까지 올라오면 창가자리에 앉았다. 이전 교시 내내 너를 바라보던 자리였는데, 이제 바라보는 방향이 바뀌었다. 창가 너머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 영어~."
책상에 미리 꺼내두었던 영어 교과서 들어서 보여준다. 교과서 뒤에 쏙 가려진 얼굴은 고개를 갸웃여서 옆으로 나온다. 작년에 제일 성적이 많이 올랐던게 영어였던 기억이 있다. 문법이랑 단어가 받쳐주면 수업 시간을 조금 빠져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테니까- 랑은 필통에서 미리 주황색 펜과 네가 선물해주었던 볼펜을 찾아 책상 위에 달그락 꺼내놓는다. 네 공부 목표는 수능 평균 4등급이 목표니까, 영어는 3등급까지 올려놓아도 괜찮을 거 같다는게 랑의 생각이다.
"오늘 본문 한댔어- 이쪽 페이지."
랑은 교과서와 노트를 챡 펼친다. 교과서는 새것처럼 깨끗했고, 노트는 예습해둔 부분을 펼쳐놓았는지라 이미 진도가 나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네 손을 잡고 나란히 교실로 걸어올라가는 현민의 얼굴은 훨씬 더 봄색이 완연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너와 그가 어떤 관계건 간에, 너의 친구들은 아무래도 네 손에 꼭 쥐여 너와 함께 오르내리는 그 소년을 네 '서방님' 정도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반 아이들 사이에서는 꽤 신기한 화젯거리일 것이다. 작년 1년 동안, 그날 네가 그와 충돌하기 전에도, 그는 꽤나 철벽같은 대인관으로 구설수에 가끔 오르내리곤 했으니까. 그리고 네가 그 철벽을 보기좋게 뚫어버린 것이다.
"아, 영어..."
현민은 죽상을 썼다. 언어학적 소질이 있는가 언어와 영어는 곧잘 배웠으나, 곧잘 배우는 것과 싫은 것은 별개의 영역이었다. 물론 수학만큼은 아니었지만 영어도 그렇게 좋아하는 과목이 아니었다. 현민은 교과서와 노트를 꺼내 펼치고는 필통에서 삼색 볼펜과 샤프를 꺼낸다. 그러면서, 현민은 하품을 짝 했다. "그나마 본문해석이면 좀 편하게 들을 수 있겠네." 그리고 그게 복선이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현민의 눈이 까무룩 감기는 게 네 눈에도 보였다. 처음에는 그도 까무룩 눈이 감기다가도 깨서 자기 허벅지를 볼펜으로 찌르거나, 혀를 이빨 사이로 쏙 내밀어서 지그시 깨무는 등 잠을 깨려는 액션을 취하려고 노력했으나, 이내 그런 시도마저도 소용없이 깜빡 감긴 눈꺼풀을 들어올리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피곤하기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하는 고된 훈련은 말할 것도 없고, 방과후에도 당신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 보내던가, 휴일에는 종종 일일 아르바이트나 형들과 어울린다고 외출을 하거나 하는 일도 있었고. 물론 방과후의 당신과 공부하는 시간은 반쯤은 공부하고 반쯤은 서로 꽁냥거리면서 말랑대는 느긋한 시간이 되곤 했지만, 3월 모평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지금은 학교 수업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성실한 면학의 시간이 되어있었다. 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도 피로가 쌓이는 양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진 선생님이 본문을 풀이해주시느라 현민이 꾸벅꾸벅 조는 것을 발견하지 않았고, 발견을 하더라도 운동부는 딱히 터치하지 않는 게 관행이었지만... 너는 어떻게 할까. 조금은 졸게 둘까, 아니면 깨울까.
하품을 하는 너를 보았고 랑은 고민에 빠졌다. 오늘 방과후에는 조금 쉬엄쉬엄할까- 라는 고민이었다. 랑도 모의고사가 가까워지며 잠을 몇시간 줄였으니 피곤하기는 했지만, 너처럼 매일 몇시간씩 운동을 하지 않으니까 네 피로도가 심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화이트데이기도 하니까 이런저런 핑계로 조금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무엇보다 랑은 벼락치기를 믿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둔게 있으니까 하루 쉬고 잘 달리는게 더 중요할 것 같았다.
예습을 해두어서 랑은 조금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있었다. 선생님의 필기를 받아적으면서도 네게 다시 짚어줄 부분을 체크한다거나, 너를 돌아본다거나 하는 여유가 있어서- 수업이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졸린 걸 어떻게든 참아보려는 너를 보았다. 수업 시작 전에 했던 고민이 확정지어졌다. 오늘 방과후에는 조금 느릿하게 나가기로 했다. 대신 느리게 나가도 네가 놓치는 부분은 없어야 하니까 주황색 펜이 바빠졌다. 오늘 하루 조금 느슨하게 챙겨도, 네가 목표로 한다 말했던 대학의 입결 컷을 생각하면- 오늘 영어 수업은 못 들은 셈 치고 처음부터 다시 짚어줘야겠다.
"현민아?"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가 네 귓가에 닿았을런지, 꿈속에라도 들어갔을지- 아니면 꿈도 없이 깊은 잠에 빠질만큼 피곤한지 모른다. 랑은 어느새 옆에서 꾸벅 조는 듯 싶더니 아예 눈이 감긴 널 보았다. 자게 놔두어야할지, 아니면 깨워야할지 고민하는 작은 목소리였다. 망설이던 손길은 네 손 위로 올라앉았다. 네 손 위에 포개졌던 랑의 손은 한 번 불렀을 때 반응없는 듯한 네 팔뚝으로 향했다. 팔뚝에 손이 닿았을 때도 반응이 없다면- 랑은 네 옆구리를 콕 찌를 예정이다.
확실히 너와 함께하고 나서 현민의 성적은 놀랄 정도로 급상승했다. 11월 모평에서도 네가 내건 조건을 달성했고, 기말고사에서는 교내 상위 50% 내에 입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노는 애들과 공부하는 애들이 뒤섞여있는 평균적 편차치의 고등학교라면, 공부 안하던 아이가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해서 교내 성적을 부쩍 올리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현랑고는 편차치가 높아 정시보다 수시가 어렵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학교라는 것을 감안하면 현민의 성과는 너의 도움을 그가 성실히 따라왔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간헐적으로 수면에 빠지는 상태에서, 반쯤 수면상태에까지 빠져들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3모뿐만 아니라 청소년 리그 오픈이 다가왓으니, 현민은 말 그대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가볍게 조는 것도 이해가 갔다. 네가 그의 이름을 소근소근 불러도, 응, 하고 속살거리는 대답은 돌아오는데 눈꺼풀은 떠질 생각을 안 한다. 아니 대답이라기보다는 잠꼬대다, 꾸닥꾸닥 졸면서도 꿈 속에서도 너와 함께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어디서든, 너와 보내는 게 그에게는 행복이었으니까. 같이 놀건, 공부를 하건... 꿈 속에서 만난다고 해도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확실히 피로가 꽤 쌓여있었던 건지, 팔을 쥐고 흔들어도 현민의 고개가 보블헤드처럼 살짝씩 흔들릴 뿐, 현민은 입으로 들릴락말락한 잠꼬대 몇 마디를 웅얼거리는 것 말고는 잠에서 깰 것 같지가 않아보였다. 얼굴에 손을 대어보던가, 아니면 특단의 대책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렇게 피곤해서 깜빡 잠들었는데, 깨워야하는 건지 랑은 모르겠다. 선생님이 눈치채기 전까지만 자도록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원래도 선생님들은 운동부의 경우에는 싫은 소리를 별로 하지 않는 것도 같았다. 오늘 방과후에 공부해도 괜찮은건지 아예 모르게 되었다. 이렇게 피곤해하는데 느릿하게 진도를 빼는건 무슨, 아예 취소하고 싶어졌다. 랑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이왕 잘 거라면 편하게 자는게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현민아- 엎드려서 자-"
그렇게 자면 목 아플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엎드려서 자는 것도 편한 자세는 아니겠지만 앉은 자세로 꾸벅꾸벅 조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랑은 선생님 귀에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속살거렸는데, 잠결인 네게도 들릴지 모르겠다. 네 몸을 가눠주기에도 행동의 제약이 걸린 수업 시간이었다. 잠꼬대인 것 같아도 답을 하긴 하니까 엎드리는 건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 기대서라도 자게 해주고 싶은데- 하지만 아무래도 살짝만 너를 깨워서 네가 직접 다시 자세를 잡고 자는게 빠를 것 같았다. 랑은 흔들어보아도 깨질 않았는데 어떡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네게 신경을 쏟다가도, 선생님이 진도를 얼마나 더 나갔는지, 여길 의식하는지 확인하느라 조용한 수업 시간 동안 참으로 바빴다.
"채현미인."
랑은 네가 허벅지를 볼펜으로 찔렀던 걸 기억했다. 꼬집는 정도로는 못 깨어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랑은 널 바라보다가- 네 손가락 한마디 옆부분을 이로 콕 물었다 내려놓는다.
ㅎ.ㅎ..... 진짜 콕 물었다 이제 자러가야지 @@ 현민주 잘자구 좋은 꿈꿔 그리고 랑이가 콕 문거... 저번에 아랫입술 문거보다 더 세게 물었을거야 손가락은 조금더 콕 물어도 입술보단 피 잘 안나고 덜 아프니까 이렇게 보니까 랑이가 더 개과 같기도 하고 여우가 개과이긴 하던데
네가 하는 말이 들리긴 들리는 건지 대답은 꼬박꼬박 한다. 잠꼬대로 하는 콧소리 같은 게 아니라, 네 목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였지만 발음의 처음과 맺음이 분명한 대답이다. 그렇게 대답은 똑바로 하는데 무거운 눈꺼풀은 들릴 생각을 안 한다. 영어 선생님만의 목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영어 선생님이 칠판을 짚으며 학생들을 돌아보셨지만- 현민이 꾸벅꾸벅 조는 걸 발견하시진 못한 듯했다. 아니, 발견했다. 다만 현민을 깨우려고 노력하고 있는 네 모습을 보고는 일단은 넘어가주겠다는 건지 다시 칠판으로 시선을 돌렸을 뿐이다.
현민의 고개가 다시 꾸닥 꺾였다. 네가 부르는 소리는 아무리 낮은 소리라도 잘 듣는데 네가 손을 집어 들어올리는 것은 모르는지 잘 자고 있다. 그러니까 네가 현민의 손가락을 콕 깨물기 전까진 말이다. 그의 손가락을 콕 깨물자 그의 몸이 움찔하는 게 이빨 사이에서 느껴졌다. 시선을 들어보면 졸다가 깬 사람이 그렇듯이, 현민의 감겼던 눈이 어벙벙하게 깜빡거리고 있다. 그는 눈을 몇 번 더 깜빡이다가- 당신을 보고 조용히 묻는다
아직 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듯이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 네 모습을 보고 있던 랑은 조그맣게 웃었다. 수업 시간이니까 웃음 소리를 최대한 줄여 푸스스 웃으며 곱게 접은 눈매가 너를 바라본다. 방금 콕 깨물었던 네 손가락을 쥐다가, 자연스레 깍지를 낀다. 많이 졸렸냐고 어르고 달래듯이, 랑은 깍지를 낀 네 손에 잼잼 손을 쥐었다 폈다 장난을 쳤다. 드디어 너와 눈이 마주치고, 네 질문에 그렇다고 랑은 고개를 꾸닥거린다.
"응, 목 아플 것 같아서 깨웠어. 엎드려서 자자-"
선생님은 랑이 현민을 깨우는 줄 알고 넘어갔겠지만, 랑도 널 깨우려고 한 것은 맞았지만- 수업을 듣게 하려는 건 아니었다. 편하게 엎드려서 자길 바라서 깨운 것 뿐이다.
"아, 담요도 있어."
네게 허리치마처럼 둘러주었던 그 담요였다. 물고기 무늬가 아로새겨진 담요, 새로 세탁해온듯 랑의 자리 옆 종이가방에 담겨 있었다.
방금 전에 독해를 시작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본문의 절반 이상이 진행돼 있다. 현민은 잠시 화이트보드에 필기된 내용과 자신의 텅 빈 교과서의 괴리감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깍지를 꼭 쥐고 있는 네 손의 온기에 푸스스 미소를 띄어버리고 말았다. 고개를 꾸닥거리는 네가 귀여워서 머리라도 쓰다듬어줄까 했는데, 그러지는 못하고 네 손을 한번 꼭 쥐어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아니, 괜찮아.. 지금부터라도 집중해야지. 쉬는 시간에 잘래."
하며, 현민은 네 교과서와 칠판을 한 번씩 흘낏 번갈아보더니 훌륭한 동체시력을 쓸데없이 낭비(낭비...인가?)해서, 지금 선생님이 어디까지 해설을 하고 있는지를 찾아내어 그 지점부터 펜을 올려놓았다. 그러던 그는 선생님의 눈치를 한 번 보더니, 고개를 기울여서 네 어깨에 머리를 얹고는 한번 슥 부볐다가 천천히 들어올린다. "쉬는 시간에 덮어줘." 영어 선생님이 해석을 하다 말고 뒤를 돌아본 게 그 순간이었다. 현민은 느긋하게 들던 고개를 빳빳이 세웠다.
"자 여기서, 또다시 중의적인 문장이 등장하는데, 이걸... 오늘이 며칠이지? 그래, 14일이지, 이 팔자좋은 청춘들아. 출석번호 14번, 일어나도록."
문제가 있다면 그 14번이 채현민의 번호라는 점이었다.
"네, 선생님."
현민은 뭐라 필기도 못하고 한 손에는 교과서를 쥔 채로, 꼭 잡고 있는 네 손은 책상 아래로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위기의 순간이다.
"해석할 수 있겠냐?" "해보겠습니다." "좋아. Every student didn't do their homework. 이 문장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중의적 표현인데,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Every student didn't do their homework. 번역하면 모든 학생들이 숙제를 하지 않았다, 라는 문장인데, 이는 단 한 명도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 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으며 학생들이 더러는 숙제를 해왔지만 더러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 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Every가 가리키는 범위와 not이 가리키는 범위가 서로 맞물리지 않아서 문장에 빈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모범적인 정답이다. 앉아."
─그러나, 네가 현민과 함께 보낸 시간은 현민에게 있어 그저 너와의 관계만을 남기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름답게 핀 꽃밭에 나비들과 새들도 날아들듯이, 네가 그에게 남긴 것은 그저 그의 가슴에 활짝 피어난 꽃들뿐만이 아니었다. 너와 보낸 시간이 행복했을 뿐만 아니라 알차기까지 했다고 증명하듯이, 현민은 자다가 방금 깬 흐리멍텅한 머리로도 네가 어제 예습하면서 짚어주었던 내용을 완벽히 떠올려내고 대답하는 데 성공했다. 현민은 다시 네 옆자리에 앉았다.
"하여간 신기해. 창가에 앉은 애들이 딴짓하는 것 같길래 찍어보면 대답은 잘해요."
그러나 영어 선생님이 거기에다 그만 한 마디를 더 툭 얹어버렸다. 반 애들 사이에서 농담에 반응하는 가벼운 웃음소리가 나직이 일었다가 가라앉았다.
"피곤한 건 알겠는데 집중해라. 자, 그러면 이 문장의 중의성을 수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때까지도, 현민은 네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현민은 널 돌아보며 우쭐한 얼굴로 눈웃음을 쳤다.
랑은 노트 한 권을 슥 네 책상 위로 밀어 보낸다. 랑이 예습한 노트인데, 오늘 수업 끝날 때까지의 진도를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을 양이 정리되어 있었다. 짝꿍의 자리로 건너간 공책 위에 주황색 펜도 슥 넘어온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주욱 공책의 왼쪽 옆 공백에 세로로 포물선이 그려진다. 깜빡 잠들어 놓쳐버린 부분을 체크해준 것이다. 조금씩 예습도 해주고 있었지만, 그래도 놓친 부분 필기를 옮겨적으려면 보고 베낄게 하나 있어야 하니까- 너와 가까운 쪽의 손, 잡고 있는 손을 놓지 못해서 쓰질 못하니 주황색의 선은 삐뚤빼뚤했다만, 필기는 익숙한 그 글씨체에 익숙한 색깔들이었으며 보고 옮겨적기 쉬울만큼 깔끔했다.
"...!"
아주 작은 소리가 나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히읗 발음이 나려던 것도 같고, 이응 발음이 나려던 것도 같았던 소리는 네가 어깨에 닿아와서였다. 수업시간인데, 손가락이나 손을 잡는 것보다는 훨씬 큰 동작이라서 랑은 조금 놀란 소리를 내려다, 수업시간이기 때문에 눌러삼켰다. 뺨에 조금 분홍빛이 돌았고, 너를 한번 흘겨보려 했는데- 선생님이 뒤를 돌아보아 그러질 못했다. 네가 고개를 빳빳이 세운 만큼이나 랑도 조금 몸이 굳어 칠판을 바라보았다. 걸렸을까, 걸리지 않았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도 못 본 듯 했다. 긴장을 풀고 근육이 이완되나 싶었는데 금방 또 다시 굳고 만다. 14일, 14번, 네 번호였다. 출석번호도, 등번호도 14는 네 것이었는데- 이렇게 불려 일어났다는 건 분명 문제 하나는 풀어야할테다. 제발 쉬운 거, 어제 알려줬던 거를 물어보길 바라며 책상 아래로 쥐고있는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간다.
"심장 아파..."
다행히도 네가 완벽하게 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힘이 주륵 빠진 듯 책상 위로 엎어졌다. 머리가 책상과 콩 부딪힌다. 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농담에 웃는 듯 했고, 랑은 너를 바라보았다. 랑은 지금 조금 복잡했다. 수업시간에 그러면 안 된다고- 아까 어깨에 부벼온 걸 짚고 넘어가야할지, 아니면 가르쳐준 것을 쏙 외워 잘 기억하고 답도 제대로 한 네게 잘했다고 뿌듯해하며 좋아해야할지, 이 둘이 고민이었다. 그래서 마냥 웃지도 못하고 마냥 흘겨보지도 못하고 입술만 꾹 찌푸리고서 있었다.
"우으, 얄미워-"
고민하는 와중 네가 우쭐하게 웃으며 눈웃음 친다. 얄미운데, 그만큼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쭐거리는 모습이 마냥 귀엽다고만 느껴지고- 잘했다고 칭찬도 하고 싶어지고, 그럼 네가 대답을 대신해서 하고는 했던 행동이 하나 떠올랐다. 선생님 몰래 해도 될 것 같은데- 까지 생각하고서는 랑은 다시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새로 필기하고 있던 교과서 위로 얼굴을 두번이나 묻은 탓에 덜 마른 잉크가 뺨에 묻어났다. 당연히 랑은 눈치채지 못한채 다시 일어난 후에는 이어서 필기할 뿐이었다.
네가 건네어주는 노트를 보고 현민은 고맙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그가 입을 떼는 것보다 그의 출석번호가 불리는 게 더 빨랐다. 현민은 우선 영어 선생님의 질문에 먼저 대답하기로 했다.
다행히 현민은 절거나 망설이거나 헤메이거나 우두커니 서 있거나 하는 일 없이 훌륭하게 대답을 마쳤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널 바라볼 수 있었다. 다만 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찌글한 얼굴로 자신을 쏘아봐야 할지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자, 현민의 얼굴에 걸려있는 미소도 어정쩡한 게 되었다. 왠지 어색한 기류가 흘러서, 현민은 그 기류를 끊어보고자 아까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기로 했다.
"노트, 고마워."
하고, 현민은 다시 선생님의 강의에 시선을 돌리려 했다. 그렇지만 그의 시선에 무언가 걸리는 게 하나 있었는데, 다름아닌 네 뺨이었다. 네 뺨에 찍혀있는 필기자국을 가만 바라보다가, 현민은 고개를 숙여 가방을 소리없이 뒤적여서는 얇은 물티슈 곽을 하나 꺼내서 티슈 한 장을 뽑아들었다.
"랑아."
하고, 현민은 나직이 속삭이는 소리로 너를 불렀다. 네가 고개를 돌려 현민의 쪽을 바라보면, 현민은 손에 웬 물티슈를 들고 네 뺨을 살며시 톡톡톡 두드려올 것이다. 무언가를 닦아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뭐야? 하고 그를 바라보면, 그는 볼펜 자국이 남아있는 물티슈를 보여주고는 푸스스 해거름하니 옅은 미소를 네게 띄워줄 것이다.
< # 이 아래의 문장은 이후에 별 행동을 하지 않고 장면을 건너뛰고 싶거든 답레의 소재로 사용하시오 > 이후의 수업시간은, 별 탈 없이 지나갔다.
갑자기 수업시간 바뀌어서 체육시간이면 좋겠다 원래 체육 잘 빠지니까 체육복 잘 안 챙기던 랑이 심지어 3모 때문에 자습할줄 알았는데 수행평가 관련해서 수업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 수행평가는 챙겨야싶으니까 현민이 체육복 빌려서 현민이 명찰 박힌 체육복 입고 다니는게 보고 싶다 이 빌드업은 전부 이것을 위한것이었다 학생커플들 한번쯤은 다 하지 않을까싶은 명찰 바꿔달기 ㅎ.ㅎ 명찰을 바꿔다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옷을 얻었지만
필담이다. 랑은 포스트잇을 하나 떼서 책상에 붙였다. 네가 훈련을 가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랑은 네 책상 위에 포스트잇을 붙이고서 낙서를 해놓고는 했다. 샛노란 포스트잇 위에 네가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주었던 펜을 쥐고서 끄적인다. 동그랗고 조그만 글씨가 적혀 내려간다.
'바보' '수업시간에 또 그러면 방과후에 진도 두배로 뺄거야 -n-'
아무래도 아까 선생님한테 들킬 뻔 했을 때 많이도 긴장했는지 삐진 표정도 그려놓았다. 하지만 펜은 멈추지 않았다. 손을 놀리는 걸 보면, 이번에도 글자만 적은게 아니라 그림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삐진 표정 이모티콘보다는 조금 더 그림다운 걸 그리는지, 중간에 색도 한 번 바꾸었다. 파란 펜이 들렸다가 곧 랑이 손을 떼고서 보인 포스트잇 내용은 위에 적어둔 내용에서 한 칸 정도 띄우고서 적혀 있었다.
'그래도 대답 엄청 잘했어' '세마리 토끼 잡은 현밍이 멋지다!'
그려진 그림은 토끼 얼굴이 셋 있었다. 한 마리는 옆에 축구공이 있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책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남은 한 마리는 옆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대신 눈이 파란 색이었다. 토끼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랑은 포스트잇에 한창 글씨를 적어두고서, 다시 수업에 집중하려나 싶더니- 네 목소리에 너를 바라보았다. 응, 하고 답하듯 동그랗고 토끼의 눈처럼 파아란 눈동자가 마주한다. 그리고 곧 눈을 깜빡 감아버리는데, 뺨에 뭔가 닿았기 때문이다. 톡톡톡 부드러운 손길이 떠나고 나면 다시 눈을 뜨고서 고개를 갸웃인다. 잉크가 묻어난 물티슈. 네 미소에 답하듯이 랑도 살포시 말랑한 미소를 보인다.
영어 선생님의 강의를 따라, 교과서와 노트에 필기를 하며 잠에서 깬 부분부터 다시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하던 현민의 눈가에 뭔가 보였다. 샛노란 포스트잇은 시야 언저리에서도 눈에 잘 보였다. 그는 그리로 시선을 옮겼다. 자신이 크리스마스 때 선물해주었던, 이젠 네 손에 들려있는 게 퍽 익숙하게 보이는 은빛의 펜이 써내려가는 깜찍하고도 단정한 글씨체- 읽는 데에 지장은 없지만 악필인 자신의 필체에 비해 예쁜 네 글씨에 시선이 멈춘다. 글씨도 예쁘게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어, 현민은 자신이 정말 중증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현민은 그것을 보고 웃다가, 그 옆에 토끼 세 마리가 쫑쫑쫑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현밍이는 또 어디서 나온 별명이냐..."
하고 네게만 들릴 정도로 중얼거리던 현민은, 파란 눈의 토끼를 잠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 물티슈를 꺼내서 네 뺨에 묻은 잉크를 톡톡톡 두드려 닦아주었다. 네가 말랑한 미소를 짓자, 현민은 잠깐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선생님은 칠판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고, 학생들은 선생님이 칠판에 무언가를 적는 동안 지시해 둔 본문에 딸린 문제를 풀이하느라 자기 교과서에 코를 박느라 여념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주변을 살펴본 현민은, 너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얼굴에 방끗 미소를 짓더니...
네 뺨에 다시 한 번 소리없이 톡, 하고 따뜻한 입맞춤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볼펜을 뻗어 고마워, 하고 적어둔 네 필담 옆에 그 알아볼 수는 있는 악필로 한 마디를 적었다.
현민: 이 고주망태야 (옆구리 걷어참) 제민: 으억 제민: 어이구... (비틀비틀 일어남) 현민: 어이구는 내가 할 소리다. 잘 거면 침대에 제대로 누워서 자야지 한겨울에 거실에서 자다가 입 돌아갈라고. (현민이 부축) ((키차이)) 현민: 배하랑, 소파에 앉아서 좀 기다릴래? 이 고주망태 좀 침대에 뉘어주고 올 테니까. 제민: 어허어... 머야... 어, 이 짜아식 봐라아. 쟤가 걔!#$@#%#! 현민: 아직도 혀 꼬이는 거 봐라.
현밍이는 또 어디서 나온 별명이냐- 하는 중얼거림을 들었다. 바로 옆자리에 있기도 하고, 조용한 수업시간 필기소리만 사각이는 중에 네 목소리를 놓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제일 좋아하는 소리이니 만큼 다른 소리보다 잘 들린다. 랑은 숨죽여 웃는다. 현밍이라는 귀엽게 굴러가는 발음을 네 목소리로 듣게될 줄은 몰랐다. 네 이름을 조금 혀 짧게 발음했을 뿐인 별명이지만 마음에 들었다.
네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동안 랑은 너를 바라보았다. 랑은 선생님이 칠판에 새롭게 필기하는 내용이나, 교과서 본문 문제 풀이의 답이나 예습을 톡톡히 해두었으니 조금 놓쳐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너는 꾸벅 조는 시간동안 놓친 필기도 있는데, 쉬는 시간에 자겠다고 지금은 집중한다고 말했던 거랑은 네 행동이 다르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네가 무얼 하려는건가 보고 있었는데, 보게 된 것은 네가 방끗 지은 미소였다. 오감보다 육감이라던가, 랑은 왠지 큰일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네 미소에서 이런 예감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큰일났다.
숨을 삼키는 작은 소리와, 그보다도 작은 떨림. 손에서 들고 있던 펜이 톡 책상 위로 떨어졌다. 랑은 뺨에 남은 온기가 열기로 오르는 걸 느꼈고, 도화선이 된 그 온기를 남긴 주인을 바로 눈으로 쫓아갔다. 입술을 앙다물고 조금 원망스러운 듯한 눈빛이었는데, 복숭앗빛이 아니라 홍옥빛을 띠고 있는 두 뺨이 너를 미워하는 표정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타박하는 표정으로 보이도록 만든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수업시간에 어떻게,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방금 포스트잇에 그렇게 적어두었는데- 그러고보니 네가 무언가 적고 있다.
'이 바보야!!!!!!!!!!!'
내가 오늘은 쉬게 해주려고 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저질러버리면 어떡하느냐고 묻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다. 느낌표가 끊임없이 그려진다. 포스트잇을 뚫고 나가기 전에 멈추었다.
반을 감싸고 있는 것은, 필기구 사각이는 소리들, 선생님의 마커펜이 화이트보드를 똑똑 두드리는 소리, 이따금 창가를 스쳐가는 초봄 산들바람 소리가 섞인 하얀 모래바람 같은 정적.
커다란 달덩이같은 게 네 뺨에 쾅 떨어졌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아무도 보지 못했고,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연둣빛에 잠긴 교실에 너와 그만 붉다.
포스트잇 한 줄을 메운 이 바보야! 하는 타박에 그는 멋적게 웃었다. 그뿐이었다. 창밖의 새소리며, 책상에 비쳐 그의 얼굴을 밝히는 말간 봄날 햇살이 야박하기만 하다. 네 뒤흔들리는 마음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너에게 봄날이었다- 하고 속삭이기만 하는 것 같아서. 그래. 봄이다. 네가 도착한, 그가 도착한... 너와 현민이 도착한, 봄날이다.
랑이네 친어머님 이야기했을 때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고... @@ 평범히 대중가요 듣는 사람이라면 작사/작곡가 중에 많이 유명한 사람이라는 정도겠지만 음악계 종사자들 입장에서는 와닿는 느낌이 다를테니까 노래실력은 가수들에 견주진 못하지만 음색이 독특하신 편... 젊을 적 몇 곡 부른걸 돌려듣는 팬들도 있고 그리고 그 음색은 랑이가 물려받았다 @@
물론 제민도 랑이 친어머니를 당연히 알 거야 그렇지만 현민이네 형제 성격상 현민이건 제민이건 랑이는 랑이로 떼어놓고 볼 거야
밥 먹으면서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어? 아니라면 급식 먹은 뒤로 뛰어도 될 것 같아
현민: (랑이한테) 괜찮아. 제민: 뭐야, 내가 뭔가 잘못했냐? (뒤통수 벅벅) 제민: 그래, 이거 저번에 영국 공연 가서 사온건데. (알루미늄 통 안에 든 쿠키 모음) 제민: 우리 서브기타가 너한테 뭐 못된 짓은 안했고? 현민: 내가 형이냐? 제민: 아니 아까부터 형 취급이 왜 그러냐. 나 섭섭해!
둘의 계절이 봄으로 접어들었을 때, 시간의 계절도 봄을 향했다. 둘은 한창 봄바람에 따스하게 흔들거렸지만 밖의 봄은 아직 찬 기운이 가시지는 않았다. 봄꽃을 피어나는 걸 시샘하는 추위라고 꽃샘추위라 부르고는 했는데, 이번 봄은 이 두사람을 시샘하는 것만 같다. 3교시가 끝나고서 랑은 수업시간에는 할 수 없었던 말을 했다. 다음부터 수업시간에 그러면 정말로 진도 2배로 빼버릴 거라고, 오늘만 봐줄테니까 다음부터는 그러지말라고- 아직도 엷게 남은 발간 물과 함께 꼭꼭 당부했다. 다음 4교시 과목을 준비하면서 랑은 말 몇 마디를 늘어놓았다. 점심 빨리 먹고 싶다는 이야기가 물꼬를 틀었다.
보폭도 작았지만, 서둘러 걷다보면 금방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십상이라 랑은 느릿하게 걸었다. 그래서 랑은 점심시간 급식실 레이스에서 뒤처지는게 당연했고, 오히려 랑도 늦게 가는 걸 선택했다. 뛰어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섞였다가 휘말려 넘어지면 혼자 다칠 일이 둘 다칠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점심을 늦게 먹는다고 투정부린 적도 한 번 없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점심을 빨리 먹고 싶었다. 그러면, 1시간이라고 정해진 시간 속에서 너와 같이 간식 먹으며 보낼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종소리가 울렸다. 4교시가 끝났고, 4교시 과목 담당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기도 전에 반 아이들이 먼저 우르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현민은 얌전히 야단맞는 개처럼 풀죽은 자세를 하고는 네 말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수업시간에는 안 그럴게, 하는 말이 수업시간 아닐 때는 해도 되지? 하는 말로 들린 것은 네 착각일까...? 뭐, 그는 네 말을 잘 들으니 다른 곤란한 때가 있으면 그때 또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이다. 점심 빨리 먹고 싶다- 하는 말에, 현민은 맞장구를 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너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너와 함께 점심 간식을 먹으며 보낼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날 테니까. 그의 생각은 가방 속을 향했다.
4교시는 사탐 시간이었고, 현민에게 당부한 보람이 있어 현민은 이번에는 얌전히 모범적으로 수업에 집중했다. 수업이 30분쯤을 넘어가자 그만 고개를 푹 떨구고 잠들어버렸지만 말이다. 너는 어쩌면 현민이 이대로 푹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몰랐겠지만, 그것도 안된 것이 수업이 끝나갈 때쯤 사회 선생님이 툭 던진 농담에 반 아이들이 전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려버리는 통에 그가 잠에서 깬 것이다. 물론 4교시 수업 종료가 5분 남짓 남은 시점에서 잠에서 깬 것은 현민에게 있어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네가 빨리 점심 먹고 싶다고 말했을 때, 현민의 머리에 문득 스쳐간 게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의자를 드르륵 밀며 손을 내밀어오자, 현민은 네 손을 맞잡으며 빙그레 웃었다.
"점심 빨리 먹고 싶다고 했었지?"
그러니까 묘하게 산책나가기 직전의 커다란 개를 연상케 하는 이 눈빛은, 드물게, 현민이 뭔가 (자기 생각하기에)재밌는 일을 떠올렸을 때 띄는 그런 눈빛이다.
그러고보면 네가 쉬는 시간에 자겠다고 했었는데- 랑이 널 야단치고 말아서 쉬는 시간이 줄어들고 말았다. 그렇게 시무룩해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고, 잠이 부족해보인다고도 생각되고, 훈련하고 온지 얼마나 됐다고 당연히 피곤할텐데- 생각이 주욱 이어지면 랑은 금방 담요를 꺼냈다. 팔락이던 담요는 네 무릎에 덮어주었고, 이제 조금이라도 푹 자-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서 사탐 시간에는 네가 꾸벅거려도 깨우지 않았는데 상황이 도와주질 않았다.
"응? 응-"
너무 잠깐 눈을 붙이면 되려 피곤함이 배가 된다. 그래서 랑은 네가 피곤해할 줄 알았는데- 왠지 대략 1시간 전만 해도 풀죽은 강아지처럼 보이던 네가 지금은 신난 강아지처럼 보였다. 점심 먹을 생각에 신난걸까- 랑은 고개를 옆으로 가누고는 너를 바라보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랑은 네가 빙그레 웃는 모양이 좋았다. 반짝이는 눈빛도 좋았다. 그래서 궁금해하면서도 랑은 마주 방긋 웃었다.
"그럼 너랑 둘이 더 많이 있을 수 있잖아-"
네가 손을 맞잡아주면 꼭 힘을 준다. 반 아이들도 거의 다 빠져나가니 지금 이렇게 말해도 놀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톡 솔직하게 말한 랑은 눈을 반쯤 접고서 눈웃음 지었다. 수업시간에 네가 닿을 때마다 놀라고, 빨개져서는 무슨 말도 못하고 표정만 조금 찌글이던 모든게, 절대 네가 싫어서 그런게 아니란 확신을 갖도록 한다. 수업시간이 아니라면, 보는 눈이 없다면 랑도 네 뺨에 쪽 입 맞출 수 있다. 오늘 아침처럼.
으아아악 설마 혹시 현민주한테 말하는 줄 안건가 ㅠ.ㅜ!!!!! 미안해 놀랐겠다 어떡해 ㅠ.ㅜㅜㅠ!!!! 랑이가 가족(아빠, 친엄마, 새엄마)한테 저런 속마음을 갖고 있을 거 같다고 적은 거였어 '다른 사람'은 각각 새엄마, 아빠 등을 가리키는 거였고 친엄마한테도 다른 사람이 언급된 건 내가 싫어 떠난거잖아- 라는 뜻으로 쓰이는 부분이었고 @@ 책임감/의무감/미안함/자기만족 때문에 달갑지도 않은 가족놀이~쇼윈도를 하는게 아니냐는거였고 힘들다고 말해도 바뀌는게 없다는거는 랑이가 혼자 살아갈 수 없단 걸 스스로 아니까....... 여기까지 말해달란건 랑이가 가족들한테 가족하기 싫다고 그렇게 말 못하겠으니 대신 말해달라거 한거고 @@
라면 끓여먹으려고 가스불 키다가..... 랑이는 가스불 켜지는 소리도 물 끓는 소리도 안 들릴 거 같아서 랑이네 아버지가 절대 부엌 출입금지시켰겠구나- 부엌에 들여도 불을 못쓰게 했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랑이가 얼마나 답답할까.... 랑이는 혼자 어떻게 살지 자취는 못하겠다 이 생각 들어서..... 집=가족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게 아닌가 라는 말에서 시작된 그.......... 라면 끓여먹는게 이렇게 큰일이네.........
너는 그 휴식이 현민에게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민에게 있어, 네 따스한 손길과 무릎에 얹어준 담요에 묻어 있는 좋은 냄새와 함께하는 잠깐의 쪽잠은 충분한 휴식이 되어주지는 못했지만 그가 잠깐 동안에 취할 수 있는 최고의 휴식이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쯤 사회 선생님의 농담에 폭소하는 반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부스스 잠에서 깬 현민은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 피로가 퍽 많이 덜어진 표정이었다. 그런 얼굴로, 네 말에 어떤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지 웃으면서 눈을 반짝일 때는 평소의 그 냉소적인 무표정 뒤에 가려져 있던 현민의 좀더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이 드러나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현민이 그런 웃음을 네게 그렇게 내어보일 수 있는 이유는, 너 역시도 현민에게 많은 것을 내어보여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웠을 뿐이지, 너 역시도 못잖게 이 소년을 마음에 담고 있다는 것을. 네가 소년에게 건네주는 온기며 향기는 벽에 부딪혀 되울리는 메아리 같은 것이 아니라, 네게서 나온 대답이라는 것을. 지금 이 소년이 서 있는 봄날의 꽃밭에, 너 역시도 나란히 서 있다는 것을.
그게 좋아서, 현민은 자신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웃음을 네게 웃을 수 있었다.
"그러면, 랑아. 잠깐만."
현민은 네 손을 잡고 있던 손을 놓으려 했다. 그 손을 놓으면, 손과 손이 떨어져 섭섭한 것도 잠시- 단단하고 억세지만 따뜻한 팔이 네 어깨와 허벅지를 치맛자락째로 감싸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민이 뭘 하려 하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네 세상이 조금 기우뚱하는 것 같더니 현민의 두 팔이 널 자신의 품으로 번쩍 들어서 안아올렸다. 마치 옛 동화에 나온 용감한 기사가 공주님을 안아들 때 하던 것과 똑같은 자세로.
"우리, 점심 빨리 먹자. 목 꽉 잡아."
반 아이들이 다 몰려나간 교실이, 갑자기 네 뒤로 쑤우욱 멀어지기 시작했다. 교실이 멀어지더니, 복도가 엄청난 속도로 뒤로 멀어졌다. 그의 품은 너를 꼭 안고 있었고, 그래서 너는 그의 품이 역동적으로 뒤틀리고 움직이며 운동하는 그 모든 동작 하나하나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균형을 느끼는 감각이 흐릿한 만큼 현민의 품의 움직임이며 열기는 네게 더 생생히 와닿았다.
< 이 아래부터는 선택적으로 답레 소재로 사용해주세요 >
아이들이 몰려가는 중앙 계단 대신 현민은 동쪽 계단을 선택했다. 서로 점심을 먹겠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중앙 계단에서 아이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동안, 현민은 너를 안은 채로 계단을 두세 개씩 겅중겅중 뛰어내려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동쪽 현관으로 나와 있었고, 현민은 너를 안은 채로 혼잡스런 급식 줄에 끼어들어 상당히 앞쪽의 줄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고서야 현민은 너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주방 이야기는 현민이네 어머니도 아 이건 좀.. 할 것 같지 그러면 따님한테 냄비에서 절대로 눈 떼지 말라고 교육한다거나, 접시를 들고 나르다가 엎지르는 게 걱정이면 서빙카트를 사주거나 할 수 있지 않냐고.. 따님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마네킹으로 키울 참이냐고, 마음은 십분 알겠지만 따님을 정말로 걱정하고 위한다면 그렇게 해선 안된다고 하실 듯
손이 놓였다. 깐쵸에게 이끌려가다 처음 너와 마주쳤던 등교길, 그 때 처음 잡았던 네 손은 이제 펜만큼이나 많이 잡아서- 랑은 네가 손을 넣는게 못내 아쉬웠다. 단 한글자 소리내었는데 그 목소리에 아쉬움이 잔뜩 묻어날 만큼이었다. 그리고 맘껏 아쉬워하기도 전에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시야가 기울었고, 많이 높아져있었다. 늘 올려다보던 네 얼굴이 바로 옆에 있고, 네 두 팔은 랑의 어깨와 허벅지를 감싸안고 있었다. 조금 늦게 랑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네가 목을 꽉 잡으라고 말하기도 전에 네 목 뒤로 팔을 걸었다. 조금 놀랐고, 많이 부끄러웠다.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자세를 하고 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너 설-!"
설마 이대로 뛰어가려는 거 아니지- 하고 묻기도 전에 세상이 빠르게 멀어져갔다. 랑은 순간 크게 놀라서 네 어깨에 얼굴을 묻어버렸는데, 네가 뛰면서 생기는 움직임과 이 속도감에 곧 익숙해져 다시 고개를 들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며 샴푸 향을 흘린다.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라, 정말로 뛰어가는 속도감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잠시 네 목에 감았던 손을 떼어 붙잡았다. 혹시라도 머리카락이 네 얼굴에 부딪칠까봐 그랬다. 그것도 잠시, 다시 네 목에 손을 걸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는데- 네가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내려가는 흔들림에 놀라서였다. 랑이 깜짝 놀랄 때마다 흠칫거리는게 고스란히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한 것이, 급식 줄까지 무사히 도착한 후 랑의 표정은 꼭 피터팬과 함께 네버랜드의 하늘이라도 날아본 듯 했다. 처음 롤러코스터를 타보고서 무섭기도 했지만- 신나서 들뜬 어린아이의 설렘과 신남을 닮아 있었다.
"이렇게 점심 빨리 먹는 거 처음인 거 같아- 고마워."
그래서 내려놓기 직전, 랑은 주변을 슬쩍 확인하나 싶더니- 네 목에 감아두었던 손을 풀었다. 네 두 뺨을 소중하게 감싸안고서 소리없이 쪽 입맞췄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오로지 설렘으로 물든 뺨을 하고서 배시시 웃는다. 얄궂게도 입술이 아니라 코끝에 살포시 내려앉은 입맞춤과 함께 랑도 땅에 내렸다. 이제는 익숙한 눈높이가 되었다.
땅이 발에 닿지 않는다. 잘 기능하지 않는 반고리관은 네 뒤로 빠르게 흘러가는 풍경들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네 뒤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주었다. 네 몸이 마치 허공에 붕 떠서 날아가는 것처럼. 걱정 많은 너의 아버지 때문에라도 네 스스로는 하지 못할 비행非行인데, 현민과 함께 날아가는 이 순간은 비행飛行이 되었다.
동쪽 현관에서 튀어나와 급식 줄에 끼어든 현민을 두고, 이런 토픽에 민감한 네 반 친구들이 너한테 호기심이 잔뜩 어린 질문을 해올 수도 있다. 현민은 공주님 안고 나타난 기사님 비슷한 놀림을 오후 훈련 내내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현민이 너를 내려놓을 때, 설렘 가득한 봄색 입맞춤이 코끝에 톡 남은 건 너와 그만이 알 것이다. 또다시, 그의 얼굴 위로 철이른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현민은 그것에 대해 뭐라 말을 하려 했다. 그는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나 별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대답을 쑥스럽게 내려놓을 뿐이다.
"...별말을 다."
뒷줄에 다가붙은 현민의 친구가 현민의 어깨를 반갑게 툭 치며 웬 기사님이 공주님 안고 날아왔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현민은 문득 그래 내 공주님이다 인마, 하고 너스레를 떨어볼까도 했으나 아까 영어 시간이 끝나고 네가 한 말이 기억나서 조금 눈을 굴리다가 내기 벌칙이다 인마, 하고 대답했다. 무슨 벌칙이냐고 묻는 말에 3~4교시 동안 안 졸고 수업 듣기, 하고 대답해주며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는 현민에게 네 조금 겁먹은 질문이 날아왔다. 현민은 너를 보더니 쿡쿡 웃었다. 그리곤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랑은 있는 힘껏 뛰어본 적은 5년도 더 전의 일이다. 초등학생이던 랑이 아무리 빨리 뛰어봤자, 지금 네가 뛴 것보다 빠르진 않을 것이다. 속도감에 머리카락이 날린다거나, 눈을 찌푸리게 된다거나- 너는 랑에게 잊고 있던 것을 하나씩 일깨워준다. 뜀박질로 이는 바람 같은 것 뿐만이 아니라- 누군가 함께한다는 즐거움이나 마음을 주고 받으며 느끼는 설렘,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방법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알려준다. 보답하고 싶은 것에 비해 턱없이 작은 입맞춤은 너를 봄꽃으로 피워냈다. 네가 나로 인해 행복하다면 정말 기쁠거야, 랑은 그렇게 생각했다.
"피곤해했으니까 그렇지이."
별로 안 무거웠대도 축구공보다 가볍겠어- 하는 말이 덧붙는다. 네가 쓰다듬어줄 때도 계속 시무룩해하는 표정이더니, 쓰다듬이 끝나고서야 다시 입을 연다.
"너 오늘 숙제 내줄거야."
입술을 삐죽이는게 고약한 숙제라도 내줄 것 같았는데,
"푹~ 쉬기. 내일 검사할 거니까!"
어떻게 검사할 건지가 궁금한 숙제를 내준다. 아무래도 으레 명절날 할머니들이 손주 보고서 빼빼 말랐다니 허약하다니 하는 필터가 랑에게 끼어진 모양이다. 3월 모의고사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작아져버렸다.
@@ 친구네에서 잤다가 저녁에 돌아오려고 했는데... 오전즘에 택배가 하나 더 왔다고 문자가 와서 @@... 그래서 친구랑 같이 집에 왔었어 그 택배도 모르는 택배였고..... 누가 잘못 시킨거면 좋겠는데 또 아무도 모르는거였고 택배사랑 담당기사가 똑같아서 담당기사 연락처로 연락드렸는데 잘 모르겠어 일단 지금은 집이긴 해 11시쯤에 돌아왔어 @@....
이종격투기..... 랑이 많이 힘들어 하긴 할거 같다 어디 잘못 다치기 쉽다는게...... 정말로 크게 다치면 어떡하지 싶을 거 같지 축구도 다칠 수 있지만 격투기랑은 다르니까 @@ 응원하러 시합 보러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축구경기장도 소리는 시끄럽지만 격투기..... 는 아픈 소리가 난다는게 @@....
이제 다시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으로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마음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은 나를 배반한 사람들과 아직 나를 배반하지 않은 사람들뿐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너랑 있으면 좋아."
양 뺨에 봄꽃 색을 들인 채로, 현민은 너에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이 세상 무엇보다 무겁대도 난 널 가볍게 들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서 그는 너를 쓰다듬었다. 최근에 스쿼트 120kg 기록을 세웠다느니 하는 숫자놀음으로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방식을 통해서 너를 안심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건 좀 멋대가리가 없겠다 싶어서 현민은 그냥 어설픈 말솜씨로나마 자기가 느낀 바를 네게 솔직히 전해주기를 택했다. 그러다 네가 입술을 삐죽이며 토라진 표정으로 숙제 내줄거야, 하는 말에 현민은 눈을 깜빡이다가 조금 긴장했는지 얼굴을 굳혔다. 아무리 네가 아까 경고로 그쳤다지만 아까 사회 시간에 한 짓도 있고 해서. 그런데 네가 툭 내어놓은 생뚱맞은 숙제에, 현민은 그만 킥킥 웃어버렸다. 그리고, 눈웃음을 지으며 덧붙인다.
"그거 나 혼자서는 못하는데."
그리곤 네 손을 꼭 잡는다.
"그러니까, 기왕 숙제 내준 거, 내가 잘 하는가 같이 봐줘."
코치한테 자신이 운동하는 자세가 어떤지, 아니면 너에게 자신이 문제풀이를 한 방식이 맞는지 봐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일견 비슷한 것 같았지만, 네게 건네어진 그 요청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색을 띄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같이 쉬자고. 3월 모의고사의 존재감이, 그들의 앞에 늘어서 있던 배식 줄만큼이나 빠르게 줄어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현민은 식판 두 장을 집어 네게 한 장을 건네어주었다.
네가 말하는 좋아- 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의심하지 않는다. 잠깐 타오르고 꺼지고 마는 불꽃이라거나, 한때 랑이 너에게 그랬듯이 네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랑이 그랬듯이 가벼운 말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나를 마음에 들였고, 그래서 나랑 있으면 좋은 거라고- 랑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랑은 네게 대답할 수 있다. 나도 너랑 있는게 좋아- 라고 답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 꽃물을 들이고서 그렇게 말하는 네가 너무 고와서 다른 말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도 너 들어올릴 수 있을까?"
그래서 말을 한 번 돌렸다. 너랑 있으면 좋기 때문에, 나는 네가 이 세상 무엇보다 무겁대도 난 너를 가볍게 들어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에서 화자만 바꾼 것 뿐이다. 랑이 너를 들어올 릴 수 있을지, 랑은 못 들어올린다고 생각해서 말을 맺으면서 조그맣게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농담을 한 것처럼 쿡쿡 웃는 소리가 난다. 그러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겨우 말을 돌려서 참아낸 그 말, 그 마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랑은 네게 묻고 싶었다. 어떻게 너는 작년부터 나한테 이런 마음을 품고 표현할 수 있었느냐고, 겨우내 힘들지 않았냐고 묻고 싶었다. 선물로 받고 싶다는 걸 말하고 나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난-"
거절,
"벌준 거였는데. 그러면 상이잖아-"
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오늘은 푹 쉬기라는 숙제는, 숙제이긴 해도 상과 벌 둘 중에 고르자면 상이었다. 난 3모 계속 준비해야지- 라고 말할 수 없었던 랑은, 툴툴거리나 싶더니 네가 꼭 잡은 손을 다시 고쳐잡는다. 깍지를 끼기 위해서 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로 랑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얽힌다. 깍지를 끼고 나면 너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열심히 감시할거니까 제대로 쉬어야 돼~."
장난기 어린 웃음 후에 네가 건네준 식판을 건네 받았다. 식판이 하나둘씩 채워지는데, 네 아침 도시락이 효과를 톡톡히 발하고 있는지 받는 양이 눈이 보이도록 줄었다. 급식 아주머니들이 놀랄 정도였는데, 급식 아주머니들 사이에는 언제부턴가 같이 밥먹기 시작한 저 남자애를 좋아해서 다이어트하는 거 아니겠냐- 라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가 나왔다.
현민이 그 말을 꺼낸 건 발렌타인 데이 저녁즈음이었다-로 시작해서 24일 복귀날 시점으로 써오면 되려나 장소는 어디? 현민이네 집? 아니면 현민이 복귀날에 어디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려나? 아니면 합숙 버스가 학교 앞에 애들 내려줄 텐데 현민이 온다는 소식 듣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려나?
거기서부터 열흘 더 전인 14일, 그러니까 발렌타인 데이 날에 너와 함께 초콜릿을 갖고 이러니저러니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현민이 네게 불쑥 그렇게 말했다.
"야, 나 다음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부트캠프 합숙 훈련 있어..."
입학식을 치른 예비 축구부원들에게는 축구부 생활을 익히며 기존의 축구부원들과 손발을 맞추어나가는 축구부 생활의 시작이, 기존 축구부원들에게는 방학 연휴 동안 풀어진 기강과 느슨해진 팀워크를 다잡고 잠들어 있던 경기장의 감각을 깨우는 것이 훈련의 목적이라고 하던가. 겨울방학 기간에도 주기적으로 주에 2번씩은 훈련일정이 있긴 했지만, 부트캠프는 개학에 앞서 겨우내 잠든 감각을 깨우고 봄방학 기간 동안 축구부 시즌 일정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훈련이었다. 그래서 모든 축구부원들이 건강상 혹은 관혼상제상의 문제가 없으면 의무적으로 참가해야만 하는, 3박 4일의 장기 훈련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마 다음주 월 화 수는 나 너 못 봐."
그 말이 네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무겁게 다가왔을까 아니면 가볍게 다가왔을까? 네가 준비되건 준비되지 않았건 시간은 흘렀다. 지난 학기의 가벼운 복습과 다음 학기의 예습, 영단어 암기와 문법, 종종 소꿉놀음 같은 스킨쉽과 같이 느긋하게 보내는 시간이 뒤섞인 일주일은 빠르게 지났고, 다음 주 월요일에 현민은 연락이 끊겼다.
합숙 훈련을 시작하면 핸드폰도 모두 거두어간다고 했던가. 가족에게의 연락도 축구부 학부모들을 모아둔 단톡방에 저녁 점호 때의 단체사진을 올리는 게 전부라고 현민의 어머니가 네게 말했었다. 그렇게, 그 소년이 없는 사흘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은 목요일 저녁 다섯 시다.
세 시쯤에 네게 연락이 왔었다. 이제 핸드폰 돌려받고 차에 탔노라고, 다섯 시쯤이면 버스가 우릴 학교 앞에 내려줄 것이라고.
그 말대로였다. 네가 도서관에서 일찍 나와 학교로 바삐 발걸음을 놀릴 때, 현랑고 축구부 합숙훈련이라는 플래카드가 차 앞뒤 유리창으로 걸려있는 관광버스 한 대가 한적한 도시의 도로를 가로질러 학교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학교에 도착했을 때에는, 삼삼오오 흩어져가는 다른 축구부원 아이들 사이로 네게 너무도 익숙한 옷차림을 한, 익숙한 키에 익숙한 얼굴의 소년이 보였다. 초봄의 짧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차가운 입김을 흘리며 초봄의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는, 네가 크리스마스에 선물해주었던 바로 그 더플백을 옆구리에 찬 채로 현랑고 축구부의 로고가 새겨진 캐리어를 옆에 끼고는 하늘로 두었던 시선을 내리며 누군가를 찾듯이 주변을 두리번 살피기 시작했다.
월, 화, 수. 하루, 이틀, 사흘. 반나절 넘게 보지 못 하는 하루를 더해도 나흘, 고작 나흘이라고 생각했다. 잘 다녀오라고, 다치지 말라는 말이나 했었던 것 같다. 랑은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랑은 평소에도 네가 없으면 혼자였다. 어딜 가도 땅에 기우는 그림자는 한 사람 몫이었다. 너와 함께한 시간보다 혼자 있던 시간이 훨씬 길었다. 두배보다 길었고, 지구가 태양을 둘러 한 바퀴 빙 돌아도 부족했다. 랑은 자신이 있었다.
11월 초 즘이었겠다. 처음 너로 하루를 색칠하고서 집으로 돌아갔을 때 적막하고 삭막한 그 집의 공기가 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방문을 닫고서 괜히 피어싱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너와 하루를 보내는게 익숙해지고, 내일에도 네가 있는게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질 때는 더 이상 공기가 무겁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서, 깜빡 잠들기 전에 너와 보냈던 오늘을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었다. 랑은 몰랐다. 네가 익숙해졌다는 걸 랑은 몰랐다. 깨닫게 됐을 때는 잠시 너의 부재가 찾아왔을 때였다.
주고 받았던 메세지 목록이 갱신되지 않는다. 24일에 보자고 보냈던 마지막 메시지 옆 읽지 않았다는 숫자 1이 얄미웠다. 앞으로 사흘 후까지 사라지지 않을 숫자인데, 랑은 괜히 그 1을 빤히 바라봤다. 그런다고 사라지지 않는 걸 아는데, 이전에 주고 받았던 메세지를 곱씹어 읽었다. 메세지를 읽으면 네 목소리가 들린다. 옆에 있지 않아도 네 얼굴을 떠올릴 수 있고,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는 그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라고 랑은 생각했다. 훈련이 다 끝난 후에야 읽을 수 있겠지만 메세지를 보내보았다. 오늘이 훈련 첫 날이네, 새로 들어온 후배들이랑 인사는 해봤어? 나 보고 싶어도 힘내! 첫째날의 메세지는 역시 옆에 1이 붙어 있다. 나중에라도 보면 얼마나 응원했는지는 전해질거야- 랑은 내일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째날로 메세지는 끝났다. 낯선 곳에서 훈련하고 자고해서 피곤하겠다, 밥은 맛있는 거 나와? 맛없어도 꼭꼭 먹어야 튼튼한 거 잘 알지! 그런 말들을 보내다가, 보고 싶다- 라는 네 글자를 입력했기 때문이다. 랑은 직접 톡톡 두드려 입력한 글자임에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조용히 공부만 하던 도서관에서 폰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펜이 굴러 떨어졌다. 휴대폰부터 다시 주워 화면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전송되지는 않았고 랑은 그 글자들을 지웠다. 채팅을 들어가지도 못했다. 무슨 말을 보낼지 겁났다. 그렇게 그 날의 공부도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책을 덮지는 않았는데 글자가 머리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진작 너와 함께 있는 것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랑은 그 좋다라는 말이 네가 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건지를 하룻동안 고민했다. 필기를 하다가도 정신을 차리면 네 이름을 적어놓았고, 축구공을 그려놓았고, 24를 끄적였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에도 네 생각이 쫓아다녔다. 집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춘 얼굴에 이른 봄꽃이 핀 것을 보고, 랑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엎어졌다. 이불을 팡팡 걷어차는 소리가 났다.
셋째날, 랑은 느리게 깨달은 사실을 인정했다. 너를 좋아하는게 맞다고 받아들이자마자, 사무치기 시작했다. 고작 나흘이라고 생각했던 부재가 이렇게 커다랄 줄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정신을 차려보니 집 앞이 아니라 네 집 앞에 와 있었다. 어떡하면 좋아- 랑은 밤길 한가운데 주저 앉았다. 도서관에서 나온 건 기억나는데,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 기억도 없고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나질 않았다. 얼굴을 폭 감싸고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내일이면 네가 돌아오잖아- 생각하니 무언가 와닿았다. 너일리 없는데, 혹시나 하고 고개를 들어올린 랑의 뺨에는 밤길 골목 가로등 아래서도 또렷한 봄기운이 만연했다. 닿아온 것은 깐쵸였다. 네 어깨에 곧잘 올라가 앉아있던 고양이, 랑은 깐쵸에게 하소연을 했다. 네게 말못할 비밀이다. 깐쵸야아- 나 어떡하면 좋아- 울먹이는 것도 같은 목소리 때문인지 깐쵸는 랑이 안는 것을 허락했고, 랑은 깐쵸를 꼭 안고서 고개를 떨궜다. 나 현민이가 너무 많이 좋아, 너무 많이 좋아서 이상해- 큰일날 거 같아- 깐쵸에게 말할 뻔 했던 고백은 삼켜냈다. 고백한다면 네게 처음으로 말해야지, 랑은 고집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까지 시간이 흘렀다. 너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하지에 대한 탐구가 오늘의 공부였다. 도서관을 가는 것치고는 예쁘장하게 차려입었다. 잊지 않고 네가 사주었던 머리끈으로 땋은 머리카락을 매듭지었다. 네게 어떻게 이 마음을 말해야할지 랑은 한참을 고민하고 또 앓았지만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이 드디어 네게 연락이 왔다. 5시까지 학교로 가야했고, 랑은 2시간이 그렇게 짧은 줄 처음 알았다.
"현민아-"
아직 학교로 향하는 중이었는데 네가 타고 있을 버스가 휑하니 학교로 지나갔다.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어서 걸음을 재촉했고, 발을 디딜 때마다 혹시라도 넘어지지 않게 조심했다. 무릎에 생채기가 나면, 너는 상냥하고 따스한 아이니까 금방 눈치채고서 걱정할 지도 모르니까- 조금 빠른 속도를 냈을 뿐인데도 랑은 숨을 골랐다. 평소보다 빨리 걸어서가 아니라, 드디어 학교 앞에 흩어지는 다른 축구부원들 사이로 네가 보였기 때문이다. 랑은 네 이름을 불렀다. 누군가를, 나를 찾던 네 눈을 마주치면 랑은 여지껏 조심하고 주의했던게 무의미하게 달음질을 쳤다. 다행히도 네 품으로 넘어졌다. 범고래 꼬리가 랑의 목에서 흔들렸다. 네가 괜찮냐고 물어보았어도 랑은 대답할 수 없었다. 온기, 향기, 심박, 랑은 너를 만끽했다.
훈련이 힘들지 않았는지, 지금 많이 피곤하지 않는지, 다친 곳은 없이 잘 다녀왔는지, 물어봐야할 게 많았다. 아까 도서관에서는 분명 훈련에 대해서 조금 운을 띄우고 나서 훈련하는 동안 그랬구나- 하고서 나는 네가 없는 동안 내 마음이 어땠다고 이야기해주면 그게 제일 낫겠다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처음 네게 하게 되는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 힘들었지, 그 무엇도 아니었다. 랑의 팔이 너를 꾹 안아온다. 애정어렸으면서도 네가 어딜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는 것도 같았다.
"좋아해."
어떤 꾸밈도 없이 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제일 간단하고 쉬운 말, 그렇지만 여태 말하지를 않았던 말.
"좋아해, 현민아."
입김이 흩어지는 초봄의 초저녁인데 랑은 달뜬 뺨이- 머리에 열이 너무 올라 고장난 것 같았다.
"나 너를 좋아해."
입술이 달싹거린다. 세번이나 너를 좋아한다고 말해버린 랑은 이 마음을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채 일 년도 되지 않았다. 네가 품에 쾅 떨어진 것은 겨우 11월이었고, 이제 12월과 1월을 지나 2월이 반쯤 지나가는 시점이었다. 그래, 현민이 그것을 깨달은 지는 오래 되지 않았다. 내가 너를 짝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스스로 품은 마음의 가치며, 무게며, 열기를 아직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가늠을 해보기엔 너무도 귀중했고 너무도 무거웠으며 너무도 뜨거웠다. 그래서 현민은 그것을 고요히 눌러담았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네게 사흘 하고도 한나절이 더 되는 시간 동안의 공백을 선언했다. 네가 그것을 너무도 쉽게 답삭 받아들이고 가볍게 말하는 것을 보고, 현민은 자각했다. 자신에게 네가 갖는 의미와, 너에게 자신이 갖는 의미가 같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와닿는 느낌은 달랐다.
내색하지는 않았다. 합법적으로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기쁜 날에, 간식을 나누어먹으면서 한껏 기분좋아하고 있는 네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너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은 잊어버리고 있던 일이었지만, 현민은 스스로의 감정을 감추는 데에 능숙했다. 에너지 절약주의적 생활양식. 해야 하는 일은 최대한의 효율로 빨리 끝내고, 불필요한 일은 하지 않는다. 이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일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하지 않는다. 조용히 삭인다. 혼자서 삼켜 없애 심장 속에서 녹여버린다.
그렇게 현민은, 잊어버릴 뻔했던 옛 습관을 상기하면서 너와 함께 7일을 더 보냈다.
-합숙훈련은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혼자 남은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곰인형을 끌어안으며 별이 뜨문뜨문 떠 있는 밤하늘을 창밖으로 내어다보는 건 현민에게 있어 꽤 오랫동안 해온 일이었다. 네 집에 너를 바래다주고 아파트 단지 현관으로 돌아나오면서도 네가 들어간 엘리베이터 문을 한 번 힐끔 돌아다보고, 현관을 떠나 아파트 단지 공터를 가로지르다 말고 멈춰서서 네 집이 있는 층을, 아무도 나와서 손을 흔들어주거나 하지 않을 베란다를 한 번 올려다보고, 그렇게 밤하늘 아래 멈춰서서 멍하니 생각에 잠기고... 가슴 속에 응어리진 열기가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을 가슴속으로 가만히 삭이는 것도 현민에게는 익숙했다. 마음은 보답받지 못한다- 그에게는 담담하게 당연한, 참인 명제였다.
그래서, 그 장소가 바뀐다고 해서 갑자기 그것을 참지 못하게 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어찌됐건 해야만 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는 충실했고 효율적이었기에, 그는 착실히 훈련을 받았다. 새로운 후배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고, 손발을 맞추어보았다. 다만 둘쨋날, 스몰사이드 게임을 해보고 있던 와중에 현민의 눈에 문득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 중에 마치 구름 위에 서있는 새하얀 북극여우 같은 구름이 살랑살랑 지나가는 게 있었다. 측면으로 파고들어 포지셔닝을 하다 말고 구름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현민은 아직 패스가 익숙지 않은 후배가 너무 높게 띄워 보내준 패스에 그만 얼굴 정면 클린히트를 허용할 뻔했다.
현민은 실감했다. 이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도, 정리하지 못하겠다고. 이 마음이 보답받지 못한다고 생각해도 거두지 못하리라고. 아마 나는 평생을 너를 앓다 죽겠다고. 생애를 지독한 병에 걸려버렸다고.
어떻게 정리할 수 있겠는가. 옷을 갈아입으려, 양치를 치려 짐에 손을 댈라손 치면, 그 짐은 네가 사준 범고래 색깔의 더플백 안에 들어있다. 씻을라 치면 가슴팍에서 여우꼬리 모양의 펜던트가 달랑거리고 있다. 네 향기가 남아있다. 자신의 삶에 네가 너무 많은 흔적을 남겨버렸다. 목에 걸려 있는 여우 꼬리 모양 펜던트를 움켜쥔 채로, 현민은 마지막까지 훈련을 이수했다. 여우 모양의 구름은 현민이 타고 학교로 복귀하는 관광버스의 차창 밖으로까지 그를 놓치지 않고 따라왔다. 문득 잠이 들었다 깨었을 때는, 멀리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는 여우를 쫓다가 감독 선생님의 다 왔다, 일어나라 하는 구령에 잠에서 깨었다.
그렇게 현민은 잠에서 덜 깬 머리를 버스 밖의 아직 차가운 초봄 공기로 씻으며, 오와 열을 맞추어 감독 선생님의 마지막 훈시를 듣고 다음 훈련일정과 개학에 따른 훈련일정을 공지받은 뒤에 삼삼오오 흩어져가는 축구부원들 사이로 더플백과 캐리어 하나 덜렁 든 채로 학교 운동장에 툭 버려졌다. 현민은 차디찬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여우 구름은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어디 갔을까? 하고 그는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때, 그가 잠든 사이에 땅으로 폭 내려앉은 새하얀 북극여우가 현민에게로 달려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자기도 모르게, 현민은 캐리어를 툭 떨어뜨리고는 네게로 달렸다. 네가 품 안에 그 몸을 거의 자빠지다시피 푹 엎어뜨리는 것을 품안에 받아서 마주 꼬옥 끌어안고 나서야 현민은 지금 네가 여기 이 곳에 자신을 맞이하러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왔구나- 라고 네게 말하려 했다. 그러나 네가 입을 열어서 말하는 게 더 빨랐다. 입이 열릴 때,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 힘들었지, 하는 말이 나오려니 했다.
그는 병을 안은 채로 너를 따라오고 있었다. 혼자서 떠돌면 방랑이지만 둘이서 떠돌면 여행이겠거니 했다. 네 뒤를 몇 발짝 떨어진 채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리킬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너의 뒷모습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백설의 운무 속을 네 뒤를 따라 헤매었다. 아마도 앞으로 계속 이렇게 기약없이 헤메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너는, 전혀 다른 말을 그에게 꺼내어놓았다.
마침내, 네 몇 말짝 뒤에서 가만히 서 있던 새까만 털복숭이를, 아무것도 모르고 이것이 좋아하는 마음인지도 모르다가 알게 되어도 모른 체하면서 너를 쫄래쫄래 따라오던 이 소년을, 너는 돌아본 것이다.
"이제야."
현민의 얼굴에, 자신이 짓는지도 모르는 미소가 흐릿하게 피어올랐다. 이 웃음을 자아내는 감정을 무어라 한 마디로 꼭 집어 설명할 수가 없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오는 열기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냥, 너를 꼭 끌어안은 채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랑은 네 두 뺨 위로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네가 짓고 있는 표정은 분명 웃음이었는데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 떨어트릴 것만 같아서, 랑은, 랑도 눈가에 꽃이 피어난다. 하지만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눈물 흘리는 일은 없었다. 단지 네가 얼마나 괴로웠을지를 이제야 알았기 때문에 그게 멍울졌다. 랑은 네가 고작 나흘 남짓 곁을 떠났을 뿐이었는데, 네게 랑은 언제나 곁에 있으면서도 너를 홀로 두었다. 너는 그걸 다 감내하고도 계속해서 랑의 곁에 머물러주었다. 지독한 짓을 해버렸다. 내가 입었던 상처를 핑계로 네게 그을림을 남겼다. 랑은 바랐다. 그 자국을 지우고 새로 칠할 수 있는 기회를 네가 허락해주면 좋겠다고- 그리고 너는 랑이 한 말과 같은 말로 답을 주었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랑은 네 두 뺨을 쥐고 있는 손을 천천히, 그리고 또 부드럽게 아래로 이끌었다. 그럼 너는 랑에게 눈높이를 맞춰줄 때 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을 숙여줄테고- 그러면 랑은 네 이마에 톡 부닥친다. 이마가 닿아 정말로 코 앞보다 가까운 거리에 물빛 눈동자가 아지랑이 피어오르 듯 일렁인다. 너와 눈을 맞추면 까만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을 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같아졌음을 알았다. 랑은 살포시 눈을 감았다. 쪽, 하고 떨어지는 입맞춤은 이전번처럼 가볍게 톡 남은 것이 아니었다. 꽃물로 색을 입힌 스탬프를 찍듯 조심스럽게, 하지만 제대로 자국이 남도록 지그시 꾸욱 머물렀다가 떨어진다. 스탬프는 네 입술 위에 남겼는데 어쩐지 그 자국은 랑에게도 남았다. 두 뺨이 상기된 색이 얼마나 고운 설렘의 빛을 띠는지 랑은 모르고 있었다. 이마를 맞대고서 있다가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간지럼을 태우고도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것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네가 좋아하는 그 아이가 네게 툭 꺼내놓은 그 마음이 더욱더 순박하고 천진난만하게 반짝이는 것 같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배시시 웃으며 눈을 곱게 접어 찡긋거리더니, 곧 깜빡이며 눈을 뜬다. 랑은 여전히 네 두 뺨을 소중히 감싸쥐고 있었는데- 그렇게 너와 시선을 줄곧 맞추며 잠시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또렷히 너를 눈에 담았다. 눈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동그랗게 뜬 눈은 집요하게 너를 쫓는다. 그러다가 입을 열어 이유를 밝힌다.
"많이 보고 싶었어. 그래서 지금 봐도 봐도 모잘라-"
웃음 소리가 섞이며 흩어진 어미는 다른 것도 섞여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는 것에 대한 어색함과 부끄러움, 민망함, 간지러움 등이 있었다. 랑은 구름처럼 구는게 편할 뿐더러 아플 일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네게도 줄곧 그렇게 굴었고, 그렇기 때문에 네게 있는 그대로의 것을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 마음을 소리내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이 소리 들려? 나 심장 엄청 빨리 뛰고 있어. "
내 귀에 들린다면 분명 네 귀에도 들리겠지- 랑은 애정을 늘어놓았다.
"너 생각하면 이래. 나 너 진짜 많이 좋아하나 봐, 이제 알았어. 나 이러다 네가 너무 좋아서 큰일날 것 같아-"
어린 아이가 보물 상자에 모아둔 것을 우르르 바닥에 쏟아놓고 자랑하는 것처럼 서투르고 중구난방이었지만, 한 가지, 행복해하고 있단 건 확실했다. 네가 랑에게 심어준 행복이 이렇게 한가득 피어서 드디어 너를 반긴다. 누가 보아도 사랑에 빠진 봄날 그림자 아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랑은 이제 한 가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면 네 두 뺨을 놓아줄 생각이었다.
"현민아."
네가 북극여우를 닮았다고 했었다. 네 목에 걸린 여우 꼬리, 이제는 품 속에서 그 꼬리가 살랑이는 것 같다.
네가 무엇을 하려는지 얼핏 알 것도 같았기에, 현민은 널 끌어안았던 팔을 풀고 네게 반 발짝쯤의 간격을 내어주었다. 그 간격은 물러서거나 멀어지는 것과는 달랐다. 너를 안아주는 또다른 방법이었다.
뻗어가는 손끝에 닿는 초저녁의 공기가 못내 차다. 그러나 그 공기를 가로질러 현민의 뺨에 손을 얹었을 때, 그의 뺨은 항상 그렇듯 따뜻했다. 그의 뺨을 붉히는 것은 홍시가 아니라, 네가 시시때때로 너도 모르게 그의 가슴에 흘렸던 꽃씨들이 초봄에 하나둘씩 톡톡 터뜨리는 꽃망울이었다. 황량한 대지에 뿌려진 재는 씨앗이 떡잎을 틔우고 나아가 꽃대를 올리는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도, 너에게도. 네가 그의 뺨을 조심스레 쥐고 아래로 끌어당기면, 그는 언제나 그랬듯 아무런 저항 없이 고개를 숙여 네게 눈높이를 맞추어준다.
"많이 기다렸어─"
하고, 그는 말했다. 뭔가 더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 입을 네가 막았다. 현민의 눈에 끼어있는 속쌍꺼풀이 보일 정도로 그가 가까워졌다. 새까만 눈동자가 입술 위에 닿는 감촉에 그의 눈이 커지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네가 눈을 감음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이상하게도, 이전에도, 크리스마스에도 느껴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네가 입술 위에 남겨주는 감촉이 생전에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것만 같았다. 생경했고, 울렁거렸다.
림밥같은 것도 바르지 않는 그의 입술은 썩 부드럽지 않았다. 거칠다거나 버석버석하다거나 할 정도로까지 메말라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부드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입술은 따뜻했다. 네가 안겨주는 온기를 너무도 쉽게 머금었다. 그는 입술을 떼지 않았다. 네가 떨어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네가 충분히 꾸욱, 하고, 네 마음을 그의 입술에 얹어놓고 물러서서야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래도, 괜찮아."
하고, 현민은 배시시 웃는 너를 보곤 언제나 그렇듯 네 시선의 범위 안에서 손을 들어올려 네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가다듬었다. 문득, 새삼 현민은 네가 참 예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네 하늘빛의 눈동자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 이 운동장에 너와 자기 단 둘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동안 가슴 속에 있는데 혀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서야 알아챈 말들을 재재 조잘조잘거리고 있는 네가 너무도 예쁘다. 네가 와르르 쏟아내는 그 반짝이는 말들이 너무 낯익고 너무 예쁘다. 나는 너를 앓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하고, 현민은 생각했다.
그러다, 네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듯 던진 질문. 현민은 너를 내려다보다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그리고는 양 팔을 벌려서, 방금 내어준 반 발짝의 간격을 다시 좁히며 너를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현민: 나도 랑이 너 좋아해. 현민: (쓰다듬) 현민: Don't you give up, nah nah nah... I won't give up, nah nah nah... Let me love you... Let me love you... 현민: ... (코러스도 다 못 부르고 따라서 잠듬)
따스했다. 부드럽게 감싸쥐었던 네 두 뺨도 그랬고, 지금 다시금 폭 빠진 네 품 속도 따스했다. 랑은 네 품 속에 꾹 안겼고, 마주 너를 안아주었다. 고개를 가누어서 오른쪽 귀를, 조금 흐릿해도 들리는 쪽의 귀를 네 가슴께로 향하게 했다. 심장 두근 거리는 소리가 애탔다. 어느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게 똑같은 박자로 울리는게 버거웠다. 랑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네게서 받아온 마음은 차고 넘쳐서 이제는 네게로 다시 흘러간다. 네 목소리가 답해주지는 않았지만, 네가 이렇게 끌어안은 행동이 목소리 없는 답이 되었다. 네가 너무 좋아서 큰일날 것 같다고 했는데, 랑은 그 말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현민아."
손가락 끝에 들어간 힘조차도 예민하게 느껴졌다. 너를 안고 있는 자세 그대로 랑의 손가락끝이 네 옷을 그러쥐었다. 살짝 쥔 손짓은 네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 걸 참아내려는 발버둥이었다. 겨우 네게만 들릴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속삭인다. 랑은 고개를 뒤로 젖혀서 너를 올려다보았다. 해가 너무 좋아서 계속 그만 바라본다는 꽃이 생각난다. 너는 여태 계속 해바라기로 피어있었겠지- 생각하면 네가 너무 좋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 벌써 고장난 거 같아."
다시 고개가 숙여진다. 네 품에 톡 머리를 기댄다. 네가 안아주고 있는데도 계속 안아주면 좋겠고, 또 쓰다듬어주면 좋겠고, 네 손을 잡는 마지막 손은 내 손이었면 좋겠어-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하지 못 했다. 계속 말하다가는 끝도 없이 말하게 될 것만 같았고, 랑은 그래도 일말의 이성이 남아있었다. 네가 방금 합숙 훈련을 끝내고 돌아온 상태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푹 쉬지도 못하게 길거리에서 부둥켜안고 세워둘 수는 없는데- 네가 너무 좋아서 이 마음에 집어삼켜질 것 같은 랑은 딱 하나만 말하기로 했다. 랑의 목소리가 네 품속에서 뭉개진다. 작고 떨리는 목소리는, 소리에 색을 입힐 수 있다면 분명 분홍이다.
"또 뽀뽀하고 싶어."
너무 작고 떨리는 목소리가 묻혀서 네게 닿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나도- 나도 뽀뽀해줘."
다시 고개를 들고 또렷하게 소리내었다. 한없이 부끄러워서 빨개진 얼굴이, 네가 붉어질 때마다 곧잘 널 놀리고는 했었던 그 아이가 너랑 똑같이- 아니, 너보다도 붉게 물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철 이른 붉은 장미가 피었고, 단풍물이 들었고, 동백 봉오리가 맺혔다. 네가 안 해주면 어떡하지- 하고 떨리는 긴장감에, 이런 말을 직접 소리내어 네게 눈을 맞추고서 또박또박 말했다는 부끄러움에, 정말 바라서 말해버리고 만 욕심이 한 표정에 드러난다. 꼭 다물어 긴장되어보이는 입술이나 발간 볼빛, 너를 깜빡깜빡 올려다보고 있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다 보였다.
채현민: 354 러닝 시점 캐릭터의 최우선 목표/소망은 "다 이뤘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대로." "이대로 계속,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거."
335 미래로 갈 수 있다면 언제 쯤으로 가고싶은지? "지금이 좋은데." "한 순간도 건너뛰고 싶지 않아."
091 물건정리는 어떤 식으로 하는 편? "책상 위에 올라가는 다용도 케이스를 몇 개 두고, 카테고리를 정해두고 그 안에 집어넣어." "손톱깎이나 족집게 같은 금속성 관리용품이나, 상비약, 필기구... 기타용 소모품들... 그런 식으로." "따로 마련한 케이스에 보관하는 것들도 있어."
바람이 바뀐다. 살을 에이듯 메마르고 차가웠던 겨울 바람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길을 잃고 인간불신의 안개 속에서 헤매던 너와, 어느덧 안개 속에서 너를 따라오기 시작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적지 않은 인내심으로 네 뒤를 따라온 소년. 네가 그 소년을 돌아보았을 때, 조금씩 다른 바람이 너와 그에게로 불어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차갑고 아직은 삭막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공기가 달라지고 있다. 너와 그의 발걸음이 지금까지 닿지 못했던 어딘가로 도달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그는 당신을 꼭 안아주었고, 쓰다듬어주었다. 당신이 잡은 손을 놓지 않기로 했다. 이제 당신이 그와 나란히 가고 싶다고 했기에. 그는 기꺼이 당신의 뒤에서 당신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주었다. 문득, 현민은 그 달라진 바람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알 것 같았다- 네 입에 실린 목소리에 분홍색이 입혀져있는 것을 본 순간, 그는 어렴풋이 직감했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가슴속에 네가 한가득 피워버렸던 꽃이, 네 가슴속에도 한가득 피어버린 것 같다고.
그래서, 현민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도달한 곳은 우리의 마음인 모양이라고.
아직 꽃이 전부 다 만발하지는 않았고,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있고, 아직도 차가운 안개가 남아있으며, 바람은 여전히 차지만, 이제 곧 봄이 찾아올 마음이라고.
"으응."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그들에게 닿지 않고 스쳐간 계절의 색채들을 한가득 머금은 네게 입을 맞추면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만 같았다. 그러나 현민은 그것을 바라고 너를 따라오지 않았던가. 애초에 돌이키기엔 너무 먼 길을 오지 않았던가. 현민은 한 팔을 들어 네 뺨을 조심스레 쥐고는, 다시 한 번... 이번에는 그가 고개를 숙여왔다. 가까이, 더 가까이. 평소에는 온통 새까맸기에 잘 구별이 가지 않았던 그의 동공과 홍채가 구별될 정도로. 자다 일어나서 얼굴이 부을 때가 아니면 쉽게 드러나보이지 않는 속쌍꺼풀이 보일 정도로. 현민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네게 꾸욱, 하고 입을 맞췄다.
입술이 떨어져나갔지만, 그는 고개를 뒤로 떼지 않았다. 입술이 닿을락말락하는 거리에서 그는 속삭였다. 속삭이는 소리였고 입술을 움직이는 것도 보기 힘든 거리였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에게는 똑똑히 들렸다.
금방 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또 시간이 이러네 @@ 일 말고.... 일하느라 신경 못 썼던 것들 좀 해치웠어 ㅠ.ㅠ 아침부터 일어나서 저녁에 집 들어왔더니 너무 피곤해서 조금 잔다는게 밤 12시가 넘었네........ 말 못해줘서 미안해 답레는 지금부터 쓰러갈게 @@.... 현민주는 피곤하면 자러가줘......
이제야 눈치챈 마음이, 이제서야 받아들인 마음이 그 동안 알아봐주지 못한게 서럽다는 듯이 자신을 뽐냈다. 굳이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움직이지 않아도 네가 좋아서 못 견뎌하는게 쉽사리 보일 정도였다. 네가 여태 기다려준 시간에 비하면 고작 사흘 밖에 되지 않는 너의 부재 뿐만 아니라- 여지껏 겪어왔던 랑이 맺어왔던 관계의 시작과 끝, 그 끝이 너에게도 해당할까봐서 그냥저냥 흘러가기만 했던 시간이 안타까웠다. 계속 겁먹어 있던 시간이 억울하게 네게 좋아한다고 말하는게 달았다.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너무 달아서, 그만큼이나 벅차서 한 번 말하면 두 번 말하고 싶고, 두 번 말하면 세 번, 네 번, 또 다섯 번- 셀 수 없도록 말하고 싶다. 지금도 끝을 생각하면 겁난다. 불안하고, 두렵고, 아픈 기억만 남아 아직도 가려두고 있는 한쪽 귀에서 들릴 수 없는 그때의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네가 기꺼이 옆에 있어주어서 혼자 떨기만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랑에게 네가 이만큼이나 스며들어왔기 덕분이다.
"괜찮아서 더 큰일이야."
큰일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말갛게 물든 뺨과 꼭 닮은 웃음 소리가 울린다. 네가 좋아서 고장나버리는 것은 큰 걱정이 아니었다. 정말 큰 걱정이라면, 나는 네가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만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네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나는 계속 변함없을 수 있을까, 단지 내가 네 옆에 있다는 이유로 너까지 못들을 소리를 듣거나 겪지 않아도 될 나쁜 일을 겪으면- 랑의 걱정은 그런 것이었다. 마지막 걱정이 제일 염려스러웠다. 너에게 해야할 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였다. 우선 오늘은 네가 좋다고 요동치는 이 마음에 집중하고 싶다.
뺨을 쥐는 네 손길에 응하듯 고개를 조금 뒤로 젖혔다. 가까워진 네 얼굴을 보고는 입꼬리를 동그랗게 말아서 미소지었다가, 예쁜 눈웃음 이후로 눈이 그대로 감긴다.
"응, 오늘부터 나 네 여자친구야."
수많은 동화책에서 저주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키스를 받으면 풀리고는 한다. 랑은 저주받은 것도 없는데, 저주가 풀린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환하고 반갑게 웃었다. 방긋 웃으며 코 앞에 있는 네 눈을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는 콕 네 입술에 다시 입맞췄다. 이전에 응석부리고 욕심부렸던, 스탬프를 찍는 듯했던 입맞춤보다 짧았다. 애교부리는 것처럼 가벼운 쪽 소리가 입술 사이에서 들려온다. 입맞추고 나서 하늘색 눈동자는 동그랗게 뜨이질 못하고 반달 모양으로 접혀있었는데, 네게 계속 눈웃음 짓고 있어서였다.
수학만 하지는 않을거야 해야할 과목은 많지... 우선은 모의고사 평균 4등급이 목표지만 대학교 입결컷 높댔으니 @@
랑이 라면.... 불닭 ㅎ.ㅎ? 랑이도 매운맛 내성 자체는 높은데 색이 연하다보니 금방 빨개질 거 같아 매운 거 먹고 열 오르는거나 입술 빨개지는거나 @@
느끼고 있습니다 정말 귀여워서 뽀뽀 쪽
못마땅하게 찌글 @@ 귀여워.... 라고는 해도 랑이 애초에 춤신청을 안 받을 거 같지 현민이 춤신청만 받을 거 같아 그야 노래 듣고서 박자에 맞춰 춤춰야하는데 듣고서 / 춤춘다 둘 다 까다롭지.... 랑이야말로 현민이가 다른 사람이랑 춤출까봐 @@... 기분 별로일 거 같네 현민이가 와주면 빵글이면서 조심조심 춤추다가도 다른 사람이랑 안 췄느냐고 우물쭈물 물어볼거 같다
"이제 그만 나를 놓아 줘. 라는 말을 들으면?" 채현민: "........." (착잡한 얼굴이 되었다.) "당연히, 보내줘야지. 내게서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뭐, 상대방 공격수한테 그런 말을 들은 상황이라고?" "그런 말은 경기 종료 휘슬 불고 난 뒤에 하라고 해."
이제 더이상, 마음에 피어나려고 하는 꽃봉오리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너를 따라오면서 얼마나 오래 그 꽃봉오리를 붙들고 있었을까. 자칫 혼자 너무 이르게 피어버릴세라, 네가 피는 것도 기다리지 못하고 혼자 시들어버릴세라 노심초사하면서. 그러나 결국 그는 봄바람이 부는 데까지 도착했다. 그래서 그 시간도 그 노력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지금 활짝 피어나버린 네 마음을 바라보며, 이제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껏 피어나도 되니까. 네 빛깔에 그 빛깔이 스몄으면 자신에게도 네 빛깔이 스며있고, 네가 떨면 같이 떨어줄 테다. 네가 외로워하면 같이 외로워할 것이고, 어딘가로 가고자 하면 같이 갈 수 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떠돌지 않아도 된다- 너와 소년의 여행길은, 이제 비로소 시작됐다.
"큰일이면 어때. 이제 함께인데."
하는 말로, 현민은 당신에게 다짐했다. 그의 눈을 올려다 마주보면 그의 까만 눈동자에 빛이 한가득 어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네 눈을 퍽 닮은 그 빛무리는 단연컨대, 행복이었다. 그러니 적어도 첫 번째 큰 걱정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게, 너와 함께 보낼 시간은 행복할 테니까... 네가 변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해주기만 한다면 현민은 그러면 그 변화마저도 기꺼이 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너와 함께 가기로 약속했기에, 네가 아직 꺼내지 못해 너 혼자 짊어지고 있는 짐과 같은 이야기도, 네가 함께 져달라고 하면 기꺼이 짊어져줄 것이다. 현민은 언제든지 그럴 수 있었다. 한 마디 말로 이것을 전해주기에는 부족했기에, 현민은 너와 함께 걸어가는 여행길을 통해서 길게 오랫동안 그것을 알려줄 작정이다. 그의 말대로, 이젠 함께니까.
현민은 주머니를 뒤적여 핸드폰을 보고 날짜를 확인했다. 2월 24일- 이 날짜를 캘린더에 저장,
그러나 네가 입을 쪽 맞추어왔을 때 그 생각은 머리에서 깡그리 지워져버리고 말았다. 상관없다, 늦저녁쯤에 다시 떠올릴 수 있을 문제니까. 현민은 자신의 입술을 쓸어보았다. 따뜻한 온기며, 말랑한 감촉이며, 네 향기까지... 그의 얼굴이 또다시 조금 붉어져버렸다. 현민은 너를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랑아. 오늘은 어떻게 보내고 있었어...?"
"나는,"
"오늘을... 이 저녁을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마지막 말을 네게 털어놓을 때는 현민의 눈에 기울어져 가는 노을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네 눈동자에 한가득 담겨 있는 것처럼.
귀나 가족에 관해서는 랑이는 화낼 의지 같은 건 없어 누군가 귀를 갖고 뭐라고 한다면 현민이가 주변에 없길.... 바라겠네 이런 이야기를 숨길 수 있다면 하고 바랄거야 랑이는 견뎌낼 수 있지만... 현민이한테는 불필요한 고통이라고 생각해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상황에 있는 걸 달가워할 사람은 없을테니 ㅇ.ㅇ... 가족한테는 이야기하다 감정이 격해지면 우는 편 아닐까 지금 랑이라면 울지도 않겠지만...
햄이랑 치즈는 >>50 이거 보고 한 말이었는데 @@ 양상추랑 토마토도 말했을 거 같지만 딱히 육식이 아닌 것도 아닌게... ㅎ.ㅎ..... 편식도 안 하고 딱히 기호도 없는 편이었지만 현민이가 랑이한테 생동감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해 뭘 먹어도 입어도 딱히 상관없어- 였다가 이것보단 그래도 이게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ㅇ.ㅇ
ㅋㅋㅋㅋㅋㅋ 양상추 잎.... 하긴 햄이랑 치즈가 있는데 양상추랑 토마토보다 더 많이 먹겠지 햄 먹다 걸리면 치즈 먹고 치즈 먹다 걸리면 토마토 먹고 토마토 먹다 걸리면... 의 순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면 소문이든 친구가 말해주든 어찌됐든 현민이 귀에 들어갈테지만... 랑이가 말할 일은 없을 거 같다 ㅇ.ㅠ 랑이한테는 걱정거리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재수없어서 돌걸려 넘어진 정도... 다만 그게 남들한테는 늘 도로포장 평지인 거고... 남들과 다른 부분이 있는 랑이한테만 돌박힌 흙길일 뿐이지 맞아 이것도 하이틴이다 @@
어? 그..... 축제에서 하는 베스트드레서 콘테스트 커플 부문 상 타겠다고 신랑신부마냥 입고서 상타내서 반에 상금을 주고.... 둘이 옷갈아입고 오겠다고.... 교복 챙기러 교실로 가다가 둘만 있는 교실에서 하면? 완전 가능 아닐까??? 18살들이 결혼이 얼마나 인생에서 얼마나 중대한 것지도 모르고 서로 결혼하기로 약속하는 거 너무 귀엽지 않을까 그리고 나중에 드림스컴트루까지 완벽한데 ㅎ.ㅎ
랑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곧 배시시 웃는다. 그 질문을 무마하기 위해서 지은 웃음이었는데- 답하기 곤란한 질문인 것은 아니었다. 오늘을 어떻게 보내고 있었는지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었다. 2월 24일, 오늘 하루는 너만 남았다. 랑이 방학을 보내는 여느 날이 그렇듯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도서관을 가고나서 늦은 밤에 도서관이 닫을 때서야 집에 돌아오고- 그런 하루랑은 조금 달랐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네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다른 무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랑이 기억하는 부분은 너 밖에 없었다.
"너 생각하고 있었던 거 밖에 기억 안 나."
이 저녁을 잊지 못하겠다는 네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목소리도 글자처럼 새길 수 있다면 좋겠어- 랑은 바랐다. 만약에- 언젠가 완전히 귀가 들리게 되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랑은 평생 네 목소리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잊으면 안 돼! 첫 기념일이잖아."
노을 아래 입김을 뿌옇게 흘리던 너의 모습부터, 지금 노을을 한가득 담고도 어렴풋이 랑의 모습까지 비치고 있는 네 눈까지- 랑도 너와 같았다. 이 저녁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저녁 뿐만이 아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색다른 두근거림,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온몸이 가득 채워져 애타는 느낌, 처음 네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순간 너의 표정, 그 모든 것이 저녁이라는 단어 하나에 담겼다. 짧은 단어 하나로 정의했지만 그 안에는 소중하고 반짝거리는 것으로 가득찼다.
"당연히 집 가야지! 너 많~이 쉬어야 해."
랑은 네가 합숙훈련 후에 방금 돌아왔다는 걸 절대 잊지 않았다. 랑은 네 캐리어 손잡이를 먼저 쥐었다. 도서관에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늘 들어있는 것만 메고다니는 가방 정도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네게 집 말고 다른 곳을 갈 선택지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군다. 아마도, 네 손을 잡고서 남은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기에는 힘들다는 걸 알게 되면- 네 손도 캐리어도 놓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멈춰서 고민할 지도 모르겠다.
식판을 집어든 현민은, 네게 식판을 바로 건네어주지 않고 널 바라보고 있다가 네 손을 집어서 자신의 가슴팍에 툭 올려둔다. 콩, 콩, 하고, 근육으로 덮인 늑골 너머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심박음. 그때 아직 봄이라고 하기에도 이른 늦겨울날, 그 소년의 품 안에서 들었던. 아니 그보다 일찍 너를 향해서 그렇게 뛰고 있던. 그 날 이후로, 너와 같은 박자로 계속 뛰고 있는 그 심박음. 널 바라보며, 현민은 나직이 말했다.
"벌써 들고 있잖아."
현민은 네가 대답하기 전에 "자." 하고 네게 식판을 내민다. "네가 없는데 그게 무슨 휴식이야." 하고 조그맣게 투덜대는 소리와 함께. 참 중증이다. 그리고 나서 현민은 다시 손을 내밀어 네 손을 깍지껴서 잡는다. 식판을 한 손으로 쥐고, 다른 손은 서로의 손을 꼭 쥐고 급식을 받으러 배식구로 다가오는 소년소녀를 보고 누가 저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겠는가. 다만 그래도 역시 배식을 받을 때는 위험하니까 잠깐 손을 놓고 식판을 양손으로 꼭 쥘 수밖에 없다.
"푹 쉬어야지."
하며, 열심히 감시할 거니까- 하고 자신을 장난기어린 웃음이 지어진 눈으로 바라보는 랑을 마주보고 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축구부라 좀 더 주세요."
네 먹는 양은 줄었지만, 현민의 먹는 양은 그대로였다. 오후 훈련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생각해보면 저 정도는 먹어야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너와 나란히, 현민은 네 발걸음에 맞추어서 어디서 밥을 먹을까 둘러보았다. 마침 창가 쪽에 자리가 나 있었다. 현민은 네가 가고 싶어하는 자리로 갈 생각이었다. 다만- 여기서 현민은 조그만 고민에 맞닥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