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스스로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그들은 반성하는 대신 짐승들을 탓했다 그러나 그들은 짐승의 삶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그것에 대해 거짓말 할 수 없었다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오." 페로사는 낄낄대고 웃었다. "바깥 사람들은 나를 셰바 사람이라고 할 텐데, 너는 나를 바깥 사람이라고 부르네. 졸지에 이쪽도 저쪽도 아니게 되어버렸는데, 이를 어째야 하나." 푸른 눈웃음이 조미료로 그려진다. 그녀의 잔인한 점은 그것이었다. 그녀가 상냥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다른 사람과의 선 너머를 겁내는 피피를 위해 팔을 길게 뻗어서 피피의 코앞에 차갑고 분명한 선을 그어주었을 것이다. 당신과 나의 관계는 딱 여기까지, 바텐더와 손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그러면 피피는 무감정한 푸대접을 오히려 편안히 받아들이며 주문한 대로 나온 술을 홀짝이며 편안한 가시방석에 앉아서 앤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을, 그녀는 자신의 코앞에만 최소한의 선을 그어놓았을 뿐 그 외의 다른 선은 그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상냥하지만 지혜롭지 못했기에.
"우리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니까." 삶은 원죄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그렇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해쳐야만 한다. 비단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복마전과 같은 뉴 베르셰바가 아니더라도, 바깥에서도 누군가가 하루 살아갈 영양분을 얻기 위해 어떤 동물이나 식물이 죽어야 하고, 누군가가 합격하기 위해 누군가가 탈락해야 한다. 그저 이 비탄의 도시에 굴러떨어진 이들 앞에 놓인 제로섬 게임이, 다른 곳에서 겪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가혹할 뿐이다. 누군가 그것을 법률을 어긴 범죄라 하면 수긍하겠으나, 잘못이라 하면 그녀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한테 잘못이 있다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야."
누군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 곳에서 반평생을 보내어온 페로사에게, 그런 숭고하기 그지없는 고민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뉴 베르셰바의 가혹한 삶은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갔고, 그 중에서 그녀가 돌려받은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피피가 지금 입에 올리고 있는 것은 그녀가 되찾지 못한 것들 중의 하나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유쾌하고 살갑게 대하는 것은, 그것이 옳은 일이거나 선한 일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에게 잔인하고 악랄하게 대할 필요가 없어서일 뿐이다.
"악에 대항할 방법은 악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페로사는 훨씬 속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해야 하고, 선하게 살려면 악한 짓도 감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결국 삶은 투기장 비슷한 게 될 수밖에 없지. 저 밖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아. 너도 바깥 소식이 실려있는 신문을 한 번이라도 읽어봤으면 알걸." 페로사는 웃었다. 그녀는 바깥 돈을 어딘가에 조금씩 저금해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깥 소식에도 어느 정도 귀를 터놓고 있었다. 그 모든 국가와 국가 간의, 민족과 민족 간의 분쟁들......
"그렇지만 넌 여기 살아있잖아, 피피." 페로사는 지적했다. "네 스스로 자살하지 않고, 오늘도 앤빌에 왔잖아.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차이는 그것뿐이야."
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본능적으로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무의식이 알지 못하니 의식이 강박을 형성했다. 사내의 보호자는 살인자였고, 주기적으로 자신에게 칼을 찔러넣었으며, 동시에 그가 흉통에 시달릴 때 끌어안아주었다. 경계와 애정의 담벼락이 허물어진다. 그것과 동시에 한 가지 지식을 습득한다. 사랑은 아주 얄팍한 것이며, 살의 또한 아주 얄팍한 것이다. 같은 몸뚱아리에서 갈라져 나온 히드라의 머리와도 같은 것이 감정이다. 그러므로 피피는 페로사가 선을 그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절망했으며, 또 두려워했다. 앤빌 또한 결국 사탕 봉지로 이루어진 누각과 다름이 없었다. 당신 목소리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 플라스틱 쪼가리에 붙어 있는 설탕이, 누군가에겐 또 위로가 되어서...
"적어도 바깥은 위선은 떨며 살아갈 수 있겠지."
이 일련의 모든 과정이 어리광임을 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선인이 아니다. 그리 될 수 없다. 그 불가능성이 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다. 프로스페로는 내일 아침 술이 깬다면, 이 대화와 상관없이 다시 시체에 칼을 박아넣을 것이다. 페로사가 그 사실을 알기에 지껄인다.
"하지만 정작 당신도 파란 칵테일을 좋아하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프로스페로는 무언가를 가진 기억이 없다.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를 때에는 행복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그가 결핍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하여 불행해졌다. 알기에 생성된 박탈감이다.
"그래, 신문. 신문 좋지. 특별한 일이 실리잖아.. 특별한 일. 사람이 죽은 일이 뉴스감이라고. 내가 그걸 알았을 때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몰라. 세상에, 사람이 칼에 찔려 죽은 게 신문 1면 감이라니... 나는 오늘 아침에도 사람 하나 동맥을 땄는데."
실없이, 바람을 섞어 웃었다.
"블루 스카이 달라고 하면 화낼 거야, 바텐더?"
빌어먹을, 자살하려면 너무 노력이 많이 들더라고.
"우리끼리 이야기해봤자.. 어차피 당신이나 나나 여기서 썩어가는 건 매한가지인데."
차이라면 당신은 희망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저 박탈감만을 느낀다. 나의 희망은 소멸과 동의어라서, 차마 그것을 추구할 수가 없다.
내용이 궁금하다면 그쪽이 궁금한 것이었다. 원작자가 의도한 결말과 미국 출판당시의 결말이 달라 그것은 큐브릭의 영화로 이어졌다고 한다.큐브릭의 영화에서 나온 결말은 분명 일반인 관점에서는 어두운 결말을 가지고 있었기에, 원래의 결말은 주제부터가 달라지지 않을까하고 그부분에 흥미가 있었다.
"도발?"
건내주려는듯 하다 갑자기 동작을 바꾼 상대를 보자니 아무래도 순순히 넘겨줄 생각이 없어진 모양이다. 단순한 장난인가? 아니면 어떤 이유라도 생긴걸까? 어느쪽이든 도발에는 응해주는게 나에게 있어서는 편했다. 이 도시에서 겉보기 나이로 어려보이는 내가 혼자 돌아다니는 것에는 그만큼 내가 그러고도 위험에 크게 노출되지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응."
나는 그대로 달려가는 척 앞으로 무게중심을 일부러 앞으로 쏠리게하여 앞으로 넘어지는 구도를 하려고했다.
"칵테일이라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 위스키 이름이야." 가방도 구찌에서 만들면 구찌라고 부르고, 에르메스에서 만들면 에르메스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스키도 라벨에 붙은 이름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지는 법이다. 페로사가 제롬에게 따라준 것은 다른 것과 섞이지 않은 위스키였다. 그저 조그만 변덕으로, 제롬에게 필요할 거라 생각해서 꽃 가니쉬를 올려주었을 뿐이다. 페로사는 더 이상 간섭하지 않고 물러서려고 했다. 제롬이 딱히 그걸 바라지 않는 모양이니.
그러나, 제롬이 '차라리 선택하지 않을래' 라는 말을 뱉는 순간, 페로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는 흔들리려는 표정을 다잡았다. 그녀는 아까까지 자신이 데킬라를 따라마시던 글라스에 탄산수를 한가득 부어서 들이켰다. 바텐더가 간섭해도 되는 대화가 있고, 간섭하면 안 되는 대회가 있다. 이 대화는 후자라는 것을 페로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스타로테가 안주 이야기로 환기를 시켜준 게, 그 짓궂은 표정이며 호칭이 차라리 반가웠다.
"아─아, 젠장. 내 정신머리 좀 봐." 페로사는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은 손으로 자기 뺨을 가볍게 툭툭 치고는 안주 접시를 준비했다. "기본 안주 없는 날은 없고, 몇 주나 얼굴 안 비춘 친구한테도 예외는 아니야. 술잔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까먹은 거지." 캐슈넛과 병아리콩- 그리고 로테를 위한 말린 무화과와 열대과일, 제롬을 위한 치즈와 비스킷, 초콜릿이 곁들여진 기본안주 접시가 제롬과 아스타로테의 사이에 덜컥 놓였다.
사실, 오늘 이 안주 접시가 제 노릇을 다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페로사는 황량한 극지의 벌판처럼 말라붙어가는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담배 팩을 꺼내어서는 손목을 탁 털어 새 담배꽁초를 꺼내어물곤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무대?" 아스타로테의 말에 페로사는 앤빌에 마련된 무대를 눈짓했다. 아직 괜찮은 가수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무대 집기들은 모두 반짝반짝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주크박스에서 음원을 임시로 끌어오는 게 아니라, 음원을 재생하는 데 사용할 노트북도 무대 뒤의 스태프룸에 제대로 마련해놓았다.
스태프룸으로 향하는 문고리에 손을 올리며 페로사는 한 마디 했다. "그래, 아직 무대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뭘 부르고 싶은지 말해봐."
역시나, 서적과 영화의 결말 때문이었을까? 특히 그런 차이에 예민한 이들은 그저 '그렇구나.'하며 흘러넘기는 것이 아닌, 본격적으로 흥미를 가지며 찾아보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 또한 그러한 이유에서 이 책을 집었을테니,
"그 마음, 왠지 알것 같네요~"
물론 그녀가 이 도시에서 그러한 인물들을 아얘 못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주 보는 편도 아니었다. 대개는 그런 결말 차이를 가지고 시덥잖게 생각하여 책에까진 손을 뻗지 않거나, 아얘 책과 거리가 먼 이들도 많았으니까... 즐길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 그녀에게도 꽤 인상적인 부분으로 와닿았다.
"네~ 도발이랍니다~?"
순순히 넘겨줄 생각이 없던, 정확히는 서점을 나서면 건네어주려고 했던 그녀였기에 그 행동에 장난스러움이 담겨있지 않다곤 할수 없었다. 다만 상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생각이었는지 그대로 대응하며 이쪽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정확히는 달려가는듯 하면서도 체중을 실러 앞으로 넘어지려는 자세였을까? 바깥도 아닌 실내이기에 그리 멀지 않은 거리, 몇발자국만 달음박질해도 금방 상대에게 덮쳐들수 있는 거리였던만큼 그녀는 짐짓 놀란듯한 표정과 함께 뒤로 넘어가는가 싶다가도 상대방과 마찬가지로 몸을 숙여 받아넘기려 했었다. ...확실하게 이야기하자면, 달려드는 상대방을 튕겨내는 것이 아닌 그대로 받아내려 하는 행위였을까? 키야 얼마 차이나지 않을진 몰라도 그녀에겐 사람 한명쯤은 거뜬히 받아낼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었다. 아무렴, 그러지 않으면 매일같이 제 살림살이들을 싸들고 돌아다닐 수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충격을 완화해줄만한 요소가 자신에게 있었으니 상대방도 그리 큰 반동을 받진 않을 것이다.
"어머나~ 서점에서 이렇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신다면 점장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거라구요~?"
그와중에도 끈질기게, 제 가슴 위에 올려두었던 문제의 책은 그녀의 다른 손에 쥐어져 높이 들려있었다.
ㅋㅋㅋㅋㅋㅋ 상황이 너무 구체적인데요 ㅋㅋㅋ 이미 비슷하게 하고 있어서 앞에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음. 서로 안 보이는 곳에 있고 아스가 제롬이 제롬이 인 걸 모른다는 상황으로 치면.... 야, 부터 시작해서 상소리도 좀 섞어가며 말하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나왔더니 왠 제롬이를 발견하고.... 딱 3초간 굳었다가 다시 돌아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려나. 으아악 으아아악(음소거) ㅋㅋ
이 도시에 있어서는 그렇게 책에 대해 논할 사람이 없기도하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꽤 높게 평가해주고싶다. 물론 눈앞에 상황에 있어서는 그리 높게 평가를 주고싶지는 않지만서도. 사람으로서의 교양을 높게 평가해준다는 의미였다.
"2차대응"
어떤가하면 받아내려는 방식에 있어서도 생각은 해놓고있었다. 밀쳐지면 밀치려는 팔을잡고 역으로 끌고들어가 넘어뜨린 다음 뺏는 계획이고, 그건 기본적으로 내가 상대를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상대 공격을 흘려보내고 역으로 무너뜨리는 행위의 일부였다. 다만 이런 경우에 있어서는 오히려 내가 공격으로 나가는 방향이 되는거겠지.
받아내는 상대에게 오히려 받아내는 것이 독으로 작용하게 한다. 그 힘이 빠진상태로 들어갈 때, 팔을 뻗어 그대로 상대의 높이 들어올린 팔을 낚아채 억지로 내 몸방향으로 끌어 당기려 했다. 물론 일반인의 신체를 감안해 적당히 아픈 정도로만 악력을 조정한다.
"후후후... 역시 어디든지 사람은 거기서 거긴가보네요~ 새빨간 하늘만 보이는 도시에서도 이렇게 취미생활을 가지는 분이 계시다니,"
그렇기에 발동한 장난기였겠지만, 그것과 이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지 쉽게 굽히려들지 않는 상대방을 보면서도 그녀는 그저 맑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안개낀듯 흐릿한 보랏빛 시선은 여전히 백금발의 소녀를 바라보며 곱게 휘어있었고, 마치 자신의 행동을 간파하기라도 한듯 또 다른 대응으로 받아낸 상대방이 먼저 공격권을 가지려는듯 팔을 잡아오는 감촉이 느껴졌다.
"아하하하~ 이거, 이렇게 격하게 나오시면 곤란한데요~ 물론 이 경쟁을 시작한건 제쪽이지만~"
적당히 조절한듯한 악력에 마지못해 내려가는듯 싶던 도중, 지금 상황에서도 충분히 대화와 협상이 가능하단 이야기에 그녀는 바로 팔에 힘을 주었다. 마치 녹슬어 돌아가지 않는 벨브처럼, 그리고선 한껏 웃는 표정과 함께 닿을듯 말듯한 거리까지 얼굴을 가까이 했을까, 상대도 눈치가 빠르다면 이질감을 느낄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의 눈 안쪽에서부터 비춰지는 안광은 분명 일반적인 동공의 반사광으로는 구사할 수 없는 빛이었으니까,
"Mamzelle... 이건 협상의 태도가 아닌걸요? 우리... 잠깐 릴렉스 해보는게 어떨까요~?"
이질적인 눈빛을 제외하곤, 그녀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미소로 응대했다. 아마 상대가 더 공격적으로 나올수록, 그녀 역시 강하게 나올 심산이었나보다.
블랙 코핀 오피스텔은 페로사와 마찬가지로 전직 배틀리언 출신인 사람이 세운 블랙 코핀 코퍼레이션이라는 700위권의 조직이 운영하고 있는 복합주거시스템이야. 오피스텔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거대한 담장으로 외부와 격리된 주거단지에 가까워. 블랙 코핀 코퍼레이션의 중무장한 경호부대가 24시간 경비를 서고 있고, 단지 내에 슈퍼마켓이나 다양한 식당, 헤어샵, 건샵, 약국 등 도시에 거주하기 위한 필요한 인프라가 다 갖춰져 있어. 단지 내에 사격장도 마련돼 있고, 외부의 병원 조직과 제휴를 맺어서 긴급 병원 후송이나 의사 왕진 서비스도 제공받을 수 있어. 거주민이 개인적인 사정(이직 등)으로 소속이 잠시 동안 없어지면 일시적으로/서류상으로 블랙 코핀 코퍼레이션 소속을 제공하는 무료 서비스도 있어.
입주는 100% 회원제로, 블랙 코핀 레지덴셜 멤버쉽에 등록하려면 르메인 패밀리에 3년 이상 몸담은 적이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기존 멤버의 추천이 있어야 돼. 기존 멤버의 추천을 받았다고 해도 엄격한 신상조사가 동반되고, 이 신상조사에서 입주민으로 들일 시 블랙 코핀 오피스텔의 보안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입주가 거부될 수 있어. (이 경우 신상조사는 외주를 주기도 하는데, 에만 같은 유명한 해커에게도 외주를 주었을지도?)
다만 기존에 입주한 회원이 동거인을 들이고 싶다면 절차가 조금 더 가벼워지는 편이야. 딱히 멤버쉽 회원이 아니더라도 기존 멤버의 보증만 있다면 동거할 수 있어. 다만 동거인이 블랙 코핀 오피스텔에 어떤 식으로든 정도 이상의 피해를 입히면 동거인은 물론이고 동거인에게 보증을 서 준 기존 입주민까지 책임을 지고 퇴실해야 돼. (퇴실부터 시작이고, 테러를 일으키거나 하는 등 정도가 심하면 블랙 코핀의 적으로 간주되어 공격당할 수도 있어)
블랙 코핀 오피스텔에도 앤빌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거주민 수칙이 있는데, 에만과의 일상에서 나온 것처럼 '복도에서는 거주민끼리 절대 대화 금지' 수칙이라던가, '합의 없이 다른 호실 방문 금지' 수칙이라던가, '블랙 코핀의 인가를 받지 않은 유인물 배포 금지'라던가... 상식적인 매너에서부터 시작해서 대부분 서로간의 사생활 및 신상을 은연중에 알게 되는 걸 차단하고, 블랙 코핀 오피스텔 내에서 분쟁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수칙이야. 블랙 코핀 오피스텔 밖에서 발생한 분쟁을 오피스텔 안으로 끌고 오지 말라는 조항도 있어.
기존 거주민과 동행하고 있는 외부인의 출입에 대해서는 크게 제지하지 않는 편이야. 외부인이 혼자서 블랙 코핀 오피스텔에 들어오려면 내부 거주민의 초대가 필요해. (물론 외부인이 그걸 모르고 블랙 코핀 오피스텔에 왔다가 입구에서 가로막힌다고 해도, 내부인에게 연락해서 내부인이 인터콤으로 경비실에게 그 사람을 초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내부 거주민의 초대를 받았다는 조건을 충족시킨 것으로 간주하고 들여보내 줘)
하지만 외부인과 동행하거나 외부인을 초대한다는 행동 자체가 그 외부인을 자신이 보증(동거인에게 하는 보증과 똑같은 거야)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초대받은 외부인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외부인뿐 아니라 외부인을 들여보내준 거주민에게도 불이익이 발생해.
아참... 내부 거주민의 '초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건 상대에게 구두 혹은 서면으로 초대를 보내는 것뿐 아니라 경비실에도 누구를 초대하겠다고 사전에 신청을 해둬야 돼. 한번 신청한 초대는 특별히 일정을 설정해두지 않는 이상 초대 신청이 접수된 시점부터 4시간 동안만 유효하고, 한번 입장한 외부인은 입장 시점으로부터 72시간만 머무를 수 있어.
>>205 레이스 호텔에서 천천히 독립하는 거지~ 'v'나름 고민하는 중이야~ 사회 초년생의 .oO(독립한다 쳐도 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독립해야 하는데..) 의 고민이라고 해야하나..🙄 동거하다 다른 곳으로 이사갈 수도 있는 거구..🤔 아무래도 미네르바의 부엉이의 아이덴티티는 비대면보다 대면이라는 점이니까.
그래서 피피와의 만남이나 타캐릭의 만남을 고려해서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저번에 피피와 만났던 카페 사일런트 같은 곳에서 만나면 어떤가.. 하는 설정도 고민중이야.
>>243 이렇게 말하면~~ 조인트 까일 때까지 깐족거리고 싶잖아요~~~~!!!!!!!!!!!! 시안이랑 사업파트너를 맺은 후로 둘이 폰번은 교환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진이 보내는 문자 막 씹을 거 같아요 '동상ㅎ 언니가 넝담 하나 해줄까ㅎ?' '뀨' '큰일났어. 당장 우리 회사로 와주길바래.' 'ㅁㄴㅇㄻ' 이런 것도 보낼 거 같은데(씹을 만 함) 사업 얘기만 대충 답변해줄 거 같죠!!!!!!
그래서 시안이 못 씹고 회사까지 와볼 만한 문자를 몇 개 생각해봤어요~~!!!!!
'동생한테 어울리는 옷을 샀으니까 빨리 와주길 바래' > 환불 빨리 하라고 욕하면서 올 거 같음 '혹시 애인생겼어? 이제 일은 싫은 거야?' > 그냥 짜증나서 패고싶음 '아리따운 20대 처자 냐오롱에서 외롭게 기다리는중' > 그냥 진짜 ㄹㅇ 짜증나서 패고 싶음
이 중에서 어떤게 괜찮으실지~~~~!! (불쾌하셨을 시 : 저는 언제나 진의 재수없음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거리낌없이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도시에 살고 있는데 자신이 저지르는 행동 하나하나에 죄책감을 느끼는데 그 죄책감은 자의식으로 강제로 만들어낸 죄책감이고 그런 죄책감마저 없어지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는 사이코패스가 되어버릴 위험성이 있는 장의사가 바에 와서 술을 마시며 시체를 잘라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바깥에 나가면 좀 나아지려나 하고 있는데 어떻게 달래줘야 할까... (답레 7차시기)
향이 좋은 것을 보면, 적어도 아무 위스키나 내어준 것은 아니겠지.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아마 위스키를 가지고 페로사와 한참이고 대화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물론 이런 이야기야 다음 기회에 얼마든지 해도 괜찮겠지만... 하필이면 이런 이유라니. 씁쓸함에 위스키 잔의 끝을 손가락 끝으로 매만졌다. 짙은 색을 띠는 위스키의 수면에 작게 파문이 일었다.
"아프네...하하..."
같잖다는 말이 어째서 이렇게 아프게 꽂히는지. 씁쓸하게 웃음을 뱉으면서도, 정작 진짜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차가운 시선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는데. 그 같잖다는 말에 무언가 부정당한 기분이라,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제롬은 위스키의 잔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아직 많이 남아있는 위스키를 입 안에 털어넣고 싶다는 충동이 강했다. 그럼 이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현실도피에 불과한 행동이지만. 제롬은 자신의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아스타로테의 손길은 여느 때보다 차가웠다. 단순히 여인이 찬 술을 마셨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인의 시린 분위기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옷깃을 잡힌 것에도 제롬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씁쓸하게 미소지으며 아스타로테를 바라볼 뿐. 페로사가 보기에 꽤나 답답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나 이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그는 알지 못했을까.
"나 때문에 화가 난 걸 알아. 그러니, 내게 다 풀어. 부디 그랬으면 해. 내가 여기서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결국 둘 다, 내게는 괴로운 선택일 뿐인걸. 네가 그런 벌을 내게 준다면, 나는...."
관계를 무너지게 만드는 선택. 결국 선택은 할 수 있어도 결과는,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하여 아스타로테의 화가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다면. 벌을 받음으로써 풀릴 수 있다면... 기꺼이. 손을 놓자 제롬은 놓아진 손을 느릿하게 뻗어 다시 술잔으로 가져갔다. 한모금 마시자 위스키는 절반이 넘게 사라져버렸다. 충동을 억제하여 겨우 이정도다.
여인의 종 잡을 수 없는 행동을 그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무슨 행동을 할지, 무슨 노래를 부를지. 고개를 살짝 돌려,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344 어떻게 하시게요? 확? (헤실)(입술쪽)(이마쪽)(코끝쪽) 이렇게 아스 성향 하나가 봉인되어 버리는 건가요오오... 아스에게 독설을 듣는 건 저도 가슴아프긴 하니까요~ 이쪽은 아스에게 미안해서 그런 거긴 하지만... 아스에게 지은 업보가 너무 크다... 하지만 그 성향도 언젠가 볼 수 있었으면 싶네요~
읏... (파르르)(고개 푹) 나빴어요...(머리 쓰담) 그렇게 우물우물 하면 자국 남아요..?
(일상상황 컨설턴트) 평소의 호위인 브라이언이 경조사/부상/질병 등의 이유로 부재중인 와중에, 카두세우스에서 붙여준 다른 용병을 운전수삼아 차에 탄 채로 베르셰바를 지나가다가, 카두세우스와는 무관한 다른 조직간의 항쟁으로 인해 발생한 폭탄테러에 휘말리고 만다. 호위는 파편에 맞아 즉사하고, 브리엘은 큰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폭발의 충격파+차량이 전복된 충격으로 기절. 폭발의 여파로 모두가 도망간 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브리엘뿐이나, 차의 연료탱크에서 누출된 연료에 불이 붙기 시작한 상황. 그러나 이때 지나가던 쥬가 기절한 상태로 위기에 처한 브리엘을 보고 브줍을 하게 되는데. (???)
"그래. 작은 부분에서 다르지. 여기에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면 어디서 총알이나 날아오지 않을지가 제일 큰 걱정이지만, 밖에서 오토바이를 탈 때는 과속 딱지를 떼게 되지 않을지가 제일 큰 걱정이라거나 하는 거 말야." 확실히 페로사는 피피가 내일 아침에는 또다시 시체에 칼을 박아넣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에 별 개의치 않는다. 적어도 그것이 페로사가 친근하게 여기는 사람의 시체이며, 피피가 시체로 만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 비탄의 도시에서 죽음은 사람들의 곁을 얼마나 가까이 걷고 있는가.
"저 밖에서는 적어도 위선이라는 가면이 누군가를 칼로 찔러죽이거나 하는 일들을 금기로 낙인찍고 범죄로 규정하니까. 서로와 서로 사이의 최소한의 가드레일이 되어주니까. 그런 가드레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있지만, 없는 것보단 낫지." 비탄의 도시 밖에는 여기보다 훨씬 명확한 가이드라인들이 있다. 평화로운 삶이 위협받지 않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적 안전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가이드라인을 의식하는 피피라면 만일 뉴 베르셰바에서의 삶을 깨끗이 청산하고 바깥에서 살아갈 기회가 주어졌을 때 훌륭히 멀쩡해보이는 한 명의 바깥 사람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그 밖의 풍경을 보고 자신의 낙원을 연상할 수 있지 않겠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야. 내가 뒤에 두고 온 모든 것들은, 분명히 파란 하늘 아래에 있었으니까." 그 사진을 말하는 것이겠지. 몬테까를로 가족의 행복한 한때가 찍혀 있던 그 사진을.
페로사는 칵테일 글라스를 꺼내고, 피치트리를 반 넘게 따랐다. 싱그러운 복숭아향. 그리고 옆에 따로 슈터 글라스를 꺼내두고, 보드카 조금과 그것보다 약간 많은 블루 큐라소를 따른 뒤 섞는다.
"물론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이 붉은 하늘 아래에서 새로운 조그만 낙원을 찾았어... 하지만 그래서 불안해. 그 하나를 제외하면, 난 이 붉은 하늘 아래서 무언가를 빼앗기기만 한 기억밖에 없어서 말야. 어쩌면 저 밖에서는 그런 걱정을 좀 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여전히 하고 있어. 그래서 이번에도 달러로 챙겨달라고 했던 거고. 그래, 우린 셰바 사람이고. 우리 삶은 X됐고, 우린 빌어먹을 핏구덩이에서 굴러먹고 있지만... 그래도 난 포기할 생각 없어." 그녀는 바 스푼을 잔 모서리에 기대고 슈터 글라스에 만들어놓은 혼합물을 조심스레 따라넣었다. 근육이 불거진 손 모양새에는 어울리지 않는 섬세한 움직임이다. 투명한 액체와 푸른 액체가 깔끔한 층을 이루는 푸른 하늘이 잔 안에 그려졌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 손은 찬장에 손을 집어넣어서는 타바스코 소스만한 크기의 병을 하나 꺼내서는 칵테일 글라스에 톡톡 떨어뜨렸다.
"썩어가는 게 한탄스러워? 손이 더러워지는 게 비참해서 못 견디겠어?" 잔 안으로 떨어진 액체는 꿈과 같은 하얀 구름이 되어 하늘에 떠올랐다. 잔 안에 조그만 하늘을 만들어서, 그녀는 그것을 프로스페로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러면 네 마음속에도 아직도 조그만 파랑새가 살아있는 거야, 피피. 너를 위한 낙원을 바라는 희망이, 마음속에 네가 바라는 낙원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말야. 너도 결국에는 네가 마음놓고 살아숨쉴 수 있는, 살아있다고 실감할 수 있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낙원을 찾고 있는 거잖아. 스스로의 지금보다 훨씬 나은 어딘가를."
입에 대고, 들이킨다. 새콤하고 달큰한 오렌지향에서부터 복숭아향까지. 그리고 그 사이에 알코올향과 더불어 희미한 박하향을 머금고 피어나는 편안한 청량감. "─그것만큼은 죽이거나 버리지 말아줘, 피피. 손에 썩은 피를 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스스로가 비참해서 아픈 순간이 있더라도, 그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거니까." 무엇이라 해야 할지 모를 홀가분함이 그 한 잔에 있었다. "너는 그저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고 있는 것뿐이야."
응접실로 걸음을 옮기면서 브리엘은 잔에 담겨 있는 위스키를 반쯤 목으로 넘겼다. 은은하게 거슬릴정도였던 두통이 기세를 탔는지 더 통증이 밀려오는 게 위스키로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반쯤 남아서 소리없이 위스키가 찰랑거리는 잔을 응접실 테이블에 올려놓고 브리엘의 손은 테이블 위에 굴러다니는 아스피린을 집어들고 하얀 알약을 손바닥 위로 굴러떨어트렸다.
시안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지 않은 채, 브리엘은 스스로에게 침전될 뿐이었다. 사람에게 얻은 상처는 사실 사람으로 치료받을 수 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상처를 치료하려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했으니 상처를 치료하기보다 상처로 인한 감정을 조절할 수 없을 때면 스스로를 상처입히는 것 밖에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브리엘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안의 격앙된 목소리를 그저 들으며 손바닥에 놓여진 알약 두개를 입안에 넣고 위스키를 이용해서 넘기고는 브리엘은 하, 하는 버릇과 같은 헛웃을을 지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너는, 나한테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니?"
빈 잔이 테이블과 부딪히며 맑지 않은 소리가 났다. 자신과 반대 방향에 있는 현관으로 걸어가는 시안에게 건네는 브리엘의 말은 잡겠다는 의도는 없어보였다. 그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지도 않은 채로 붙박힌 듯 서있는 모습은 어딘지 지쳐보일 뿐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장난이나 농담을 받아쳐줄 만큼 유연한 사람이 아니였다. 멀쩡하게 살아온 삶도 아니거니와 지금도 멀쩡한 삶은 아니였으니까. 마녀가 마녀로서 불리는건 물론 대부분은 적에게 자비가 없는 미치광이 작전을 펼친 이유도 있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사적인 관계가 없이 마치 감정없는 인간마냥 아군에게도 대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나 바꿀 생각은 없다.
적당히 이 상황에 있어 힘으로 찍어누르고 빨리 처리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했으나, 뜻 밖의 예상을 빗나간 사실이 있었다. 이 마경에 있어서는 일반인이라는 것이 꼭 일반인이라는 가정을 벗어난다는 그 사실. 이 마경에 있어서는 바깥과 다른 기술력이 담긴 결정체들이 있다는 사실을 눈의 이질감과, 지금의 행동에 대응하는 힘의 작용으로 확실하게 눈치챘다.
"뭐하는 녀석이냐."
붙들고 있던 팔에 힘이 꽉들어가 있는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풀고 뒤로 몇보 걸어 거리를 벌린다. 눈앞의 존재는 일반인은 아니거나와 나는 그 기이한 눈빛에 사람조차 아니리라고 느꼈다. 그것은 기계에서 느끼는 예리한 감각이었으니까.
"길거리에서 조차 방심하지 못하겠군."
홀스터의 권총에서 미리 안전장치를 풀어두고는 경계하며 나는 의외에 결과에 문장형 대화를 하고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농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의사, 공격적인 행동은 매우 유연하면서도 그 안에 있는 감정은 딱딱하다못해 제대로 들어차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언행이었다. 물론, 상대방 역시 이런 도시에서 산다면 언제나 감각을 곤두세운 채로 길거리를 돌아다녀야 하며 언제든 달려들어 누구보다 먼저 선취점을 획득하는 것이 당연하다.
과연 이곳의 토박이인지, 아니면 자신처럼 외지에서 온 존재인지. 그렇다면 그 외지에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턱이 없었고,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은 딱히 캐낼 생각도 없었다. 때때로, 어떤 인간은 '이곳에 왔다는 이유 자체'를 역린으로 여기기도 하니까...
"유감. 본인 철저 무력 사양."
상대방의 어투를 따라하면서도 그녀 특유의 환한 미소는 여전히 지울 생각이 없었다. 여유라면 여유일까, 아니면 소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대처일까. 비록 이곳이 눈뜨고도 코가 베이는 마의 소굴이라 할지라도 멀쩡한 취미생활을 가지는 이들이 존재하듯, 죄책감은 버렸을지언정 인간성만큼은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 그녀 나름의 가치관이다.
물론 그녀는 어느쪽이든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전 그저 떠돌아다니는 길거리 화가일 뿐이랍니다?"
상대 역시 그 이질감을 확실히 알아챘는지 거리를 벌리며 경계하는 태세를 보이자 그녀도 고요하게 빛나고 있던 차가운 눈빛을 거두고서 평소처럼 흐릿하고, 약간의 온기마저 느껴지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후후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면, 전혀 적대할 생각이 없는 대상에게도 거리낌없이 무력을 휘두르는 것도 너무 각박한 삶 아닌가요?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면... 중립적인 대상은 선공을 하면 적대적으로 변하고, 주민을 공격해 평판이 떨어지면 마을을 지키던 골렘이 처벌하러 오고, 보호 미션에서 시민을 공격하면 점수가 떨어지는 것처럼요~
...아, 너무 마니악한 주제였으려나요~?"
설령 이곳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한들, 오기 전에 저질렀다 한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왔든, 타인이 무엇을 해왔든, 아무 의미 없었다.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악인으로 거듭나건, 뉘우치고 깨달으며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건, 그것 역시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본질을 흐린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겠지만.
모든 것은 본인의 의지대로, 신조차도 감히 예견할 수 없는 변칙성으로... 인간은 자아와 가치관으로 스스로의 길을 밝히는 법이었다. 이 어찌나 어리석고도 현명하며, 추하고도 아름다운가. 그것이 그녀가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였다. 달리 큰 이유도 없으며, 사전에 짜여졌던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455 그거야 제 미들네임이 'ABLE'이기 때문이죠. (?) 쥬 가능 주. (??) 난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쥬 또한 그러하다. 까다로워? 오히려 좋아. 호불호가 확실하다는 거니까, (극한의 가능충) >>457 친해질수록 더 격식을 차리는 쥬랑은 다르네~ 그래서 브브가 더 귀여워.
"필요없는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이쪽도 사양이다. 워낙에 이런식으로 원인 제공을 하는 잔챙이들을 박살내는데 익숙해져서 손부터 먼저나가는건 사과하지."
본래에도 먼저 걸어오는 싸움에는 속전속결이지만, 요즘들어 부쩍 귀찮은 일이 많아 민감해진 경향이 없지는 않았다. 가령 매서커과의 펄버라이저라던가 그 미치광이는 몇년전 재회를 기점으로 어쩔수 없는 악우로서 상대해줘야만 했고, 조금 관련없지만 커넥션의 대표는 그냥 마스터랑 가까운 관계인게 거슬렸다. 사적인 관계니까 내 문제였지만 그건.
과거에도 현재에도 나 역시 깨끗한 인간도 아니였거니와 각박하게 손을 피로 적시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 먼 옛날 돌아갈 수 있는 곳을 잃었을 때부터 젓가락을 쥐는 것보다 칼과 총을 쥐고 싸우는 법을 배우고 허무함 밖에 없는 복수를 성사하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그 결과로 공허한 채 방황했고, 지금은 그저 방황하지만 않을 뿐 여전히 깨끗한 일을 하지 않는다. 명령받은 일이라면 뭐든 하니까.
진은 성가신 여자다. 거기엔 어떤 이견도 있을 수 없다. 당장 시안서부터가 인정할 것이다. 사업파트너랍시고 전화번호를 가져가놓고는 한다는 게,
N월 N일 {ㅁㄴㅇㄻ)
N월 N일 {이번 거래 계획에 대해서 올려놨어. 정보팀에 연락하면 서버 열어줄 거야.) (확인했어요.}
N월 N일 {동상ㅎ 누나가 넝담 하나 해주까ㅎ) {왜 답 안 해?) {너도 가둬버릴까보다) {됐어 ㄲㅈ)
N월 N일 {사건이생겼어 사무실로 빨리 와주길 바래)
N월 N일 {백만벅 줄게 답 좀 해봐) {됐어 ㄲㅈ)
이랬으니까.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더욱 더 성가시고, 짜증난다고 할 수 있었다.
N월 N일 {애인 생겼어? 이제 사업 따위는 싫고 사랑의 도피를 한다 이거지?) (뭐라는 거야 진짜}
그래서 시안이 진의 사무실에 찾아온 것이다! 인스타 카페처럼 후미지고 찾기도 어려운 사무실을 찾아왔단 건 진의 어그로 계획이 대성공이란 뜻이다. 아아. 그 때가 결국 와버린 건가... 진은 서랍 속 고이 모셔두던 선물상자를 꺼내든다. 그리고 시안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그의 표정은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동상~~~~~~!!!!!!!!"
진주임?
"누나가~ㅎ 동상을 위해ㅎ 선물을 준비했찌ㅎ"
공주 옷을 꺼내드는 것이다. 진짜 킹받고 꼴받는 년이 아닐 수가 없다. 조인트로 기강을 잡아야 이 깐족거리는 텐션이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어머나~ 전 그런 잔챙이가 되긴 싫다구요~? 음... 어느쪽이냐면... 유유자적 한량이나 은둔자 같은 거겠네요~ 게다가 저도 예민하실수 있는 기분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잘못이 있으니... 쌤쌤인 걸로 하죠 뭐~"
딱히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런 도시에선 누구나가 민감하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고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되는 그런 입장에 있다면 이렇게 호전적으로 나오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습관일테다. 단지 그것에 유감을 표하며 측은하게 느끼는 것은 그녀의 몫, 그럼에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강경하게 나서야 하는 것은 상대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바뀔지언정 상대에게 강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강압적인 것은 어느쪽이든 불쾌할테니까, 그런 부분에서의 쾌락을 원하는 것은 아마 마조히스트들 뿐일 것이다.
"음~ 글쎄요~ 굳이 그쪽으로 따진다면... 전 아마 800번대 모델이 아닐까요?"
상대의 익숙한 인용에 그녀역시 웃으며 받아쳤다. 만약 베르셰바에 잔존한 데이터가 거짓이 아니라는 명제로 따져보면, 어찌되었건 자신은 그런 입장이었을테니까.
비록 시작은 적대적이었으나 종극엔 완전히 인간의 편으로 돌아선 부분에서도...
거기까지 생각하니 갑자기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되살아난 존재가 오로지 그녀뿐이라 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슬픈 일이었다. 가능하다면 찾고 싶었으나, 일전에 만났던 무기상의 말을 빗대어보면 그것 또한 확실치 않은 정보였다. 자신같은 이는 고사하고 전투병기조차 존재할지 아닐지 의문 그 자체니...
그렇다면 자신은 어째서 그것에 집착하는가,
어째서 자신처럼 어딘가에 묻혀있을 이를 찾으려는 것인가,
르메인에 의해 탈취되어 무슨 일을 겪고 있을지 모를, 제 동료일지 적일지도 모를 이를 어째서 찾으려 하는 것인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그 불안은 거짓말같이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큰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하기에 움직일 뿐인 본능이었다.
"아얘 없다곤 할수 없는 걸요? 비록 살인적인 독기가 가득한 마경이라 할지라도, 그곳이 어떤 생명체도 없이 버려지지 않고... 꿈틀거리는 존재가 있다는건 분명 어딘가엔 정화자도 존재하는 법일테니까요. 그것이 어떤 의미로 작용하던 말이죠."
한껏 웃고있는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가며 가지런한 치아배열이 드러났다. 과연 그것을 눈에 담은 당신은, 그것조차 인간답지 않다고 백안시할만큼 냉담과 광기에 절여진 존재였을까?
서로 말이 오갈수록 사이 사이를 흐르는 공기가 건조해져 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청량하고 시원한 술도 그 메마름을 해소시킬 수는 없었다. 아주 잠깐, 다른 얘기로 환기를 시킬 수는 있어도. 결국 얘기의 결론이 나기 전엔 이 분위기는 유지될 것이었다. 아. 모처럼의 칵테일이 갈증을 달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롯시, 가끔 그러는 거 보면 정말 귀엽다니까. 천하의 롯시가 까먹는 것도 있구나. 하고 말야."
그 잠깐 환기 된 사이로 여인의 가는 웃음 소리가 섞여들었다. 후후. 꾸며낸 것도. 작위적인 것도 아닌. 그저 그 상황이 즐거워서 흘리는 웃음. 제롬에게도 자주 보였던 웃음이지만 지금은 그 웃음 뒤로 보이는 한기가 더 짙었다. 웃음 지은 눈으로 그렇게 싸늘한 시선을 보낼 수 있다는 걸 여인으로 하여금 깨닫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음. 그걸로 부탁해."
여인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스태프룸으로 가려는 페로사를 향해 여인이 노래 제목 하나를 읊어주었다. 원곡이 아닌 어느 믹스 버전이 있으니 그걸로 해 달라는 자잘한 추가요청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페로사가 음원을 찾으러 간 사이 여인은 스툴에서 일어났다. 앉은 자국이 난 원피스를 슥 슥 털고. 목을 단단히 죄고 있던 셔츠의 윗단추를 두개 툭 툭 풀어 펄쳤다. 그리고 무대로 향하기 직전. 여인은 제롬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너는 선택해야 해.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내 선택을 헛된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거라면. 잘 생각해 봐.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
스쳐가는 그 말이 조금은 누그러진 듯 들렸을지도. 그것을 눈치 채기 전에 여인은 이미 무대로 향하고 있었다.
검은 구두로 또각 또각 걸어, 일전에 한 번 올랐던 무대로 올라가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섰다. 이번엔 마이크를 빼지 않고 스탠드를 조절해 맞췄다. 그리고 후, 하는 입김으로 마이크의 성능 테스트를 한 번. 가볍게 손을 흔드는 걸로 다른 손님들을 향한 인사도 한 번 한 뒤에 짧은 멘트를 앞세웠다.
"그런 말이 있지. 열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역시,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가장 확실한 표현은 역시 말이 아닐까. 제 아무리 좋은 행동일 지 라도 그것을 납득 시켜주는 말이 없다면. 이해를 도와줄 말이 없다면. 호의도 폭력이 되고. 악행도 선행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그러니 그대들이여. 해야 할 말은 아끼지 말아. 때를 놓친 말 역시 아쉽고 안타깝기는 매한가지 아니겠어."
여인은 멘트를 마친 뒤 마이크를 살짝 두드려 페로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간주가 길지 않은 곡이었기에 노래는 금방 시작되었다. 일부러 마이크에서 반 걸음 물러났는데도 여인의 성량은 앤빌의 홀을 가득 채웠다.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가 자아내는 음색은 원곡과는 다른 여인만의 곡이 된 듯한 느낌도 살짝 있었을지도.
"Walk on through a red parade and refuse to make amends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하고 이 상황을 바꾸려 하지도 않아 It cuts deep through our ground and makes us forget all common sense 결국 분별력을 잃고 서로 깊은 상처를 입은 채 끝이 나겠지
Don't speak as I try to leave 'cause we both know what we'll choose 내가 떠나려 하는 것처럼 말하지 마 우리는 서로 무얼 선택할 지 알고 있잖아 If you pull, then I'll push too deep and I'll fall right back to you 네가 날 당긴다면 난 널 밀다가도 네 안으로 뛰어들 거란 걸"
가사에 맞춰 호소하듯 손을 뻗기도 하고. 아련하게 눈을 내리감기도 하며. 여인은 노래했다. 노래할 뿐이었다.
"'Cause you are the piece of me I wish I didn't need 왜냐하면 넌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내 반쪽이니까 Chasing relentlessly, still fight and I don't know why 끊임없이 뒤쫓으며 계속 싸우는데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If our love is tragedy, why are you my remedy? 우리의 사랑이 비극이라면 어째서 네가 내 해결책인 걸까 If our love's insanity, why are you my clarity? 우리의 사랑이 미친 짓이라면 어째서 네가 내 명료함인 걸까
why are you my clarity..."
혼잣말 같은 마지막 소절을 부르고 나자 반주도 그에 맞춰서 끝이 났다. 여인은 다시 한 걸음 물러나 제법 그럴싸한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무대의 화려한 조명을 뒤로 하고, 바의 아늑한 조명 아래로 돌아와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아 술잔을 들었다. 아무 말 없이. 마른 목을 술로 적시기만 했다.
시답잖은 이야기에 시답잖은 이야기로 응대했지만 요컨데 인간한테 우호적인 로봇이라 인정하는 늬앙스의 말이었다. 하이테크 이상의 기술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른다. 기껏해야 자신은 분해할 수 있는 장비나 사제폭탄이나 지뢰의 해체법을 아는 수준에서의 기계 지식만 있을 뿐이니까. 눈 앞에 있는 존재는 하이테크의 산물이다. 그것도 거의 인간이랑 기본적으로는 구분이 안가는 선에서의.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있어서 선과 악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각자의 의견이 행동을 만들뿐이지. 거기에 정의니 질서니 하는 대의로 포장을 해서 말이다."
정화자는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어떤 이익이 있든, 혹은 어떤 감정이 만들었건 어떤 선동이 만들었건 이유와 의견이 존재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열심히 인간은 이원론적인 포장을 씌우는 재능이 있을 뿐이다. 수많은 전장에서 내가 인간을 논하자면 인간은 회색빛이다. 흰색에도 검은색에도 가까워 질 수 있는.
"그치만 아무리 은둔자라도, 신변에 위협을 받는다면 경고 정도는 한다구요~? 무엇보다... 아무리 이곳이 무법지대라 해도, 저는 엄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싶진 않거든요."
요컨데 말하자면, 싸워도 싸울 자리를 봐가면서 하는 타입이란 뜻이었다. 마치 범우주적으로 모인 초인들이 신적인 힘이 담긴 구슬 일곱개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만화에선 항상 공터나 황무지에서 전투가 일어나는 것처럼, 비록 그것이 작가가 배경과 사물을 그리기 버거워 최대한 간략화시키려 했던 것이라 해도 말이다.
"...저마다 좋지 않은 기억은 하나쯤 있잖아요? 마치 제게는 그 영화의 1편과 같은 이치로 와닿겠죠...
...아무리 그래도 전 액체금속까지 사용할 정도는 아니라구요~ 세계관적으로 사기캐 아닐까요 그런건~? 그러다간 이곳의 조물주가 '님 밴입니다.' 할지도 모른다구요~ 보세요~ 이렇게 말랑말랑하고, 찌르면 피도 나올거라구요~?"
한껏 숙연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언제 울적한 표정을 지었냐는듯 태연하면서도 능청스럽게, 차원을 넘나드는 농담을 던지는 그녀였다. 게다가 마치 증명해달라면 해줄 수도 있다는듯이 상대가 검류를 가지고 있다면 갈라보라고 했을 것이고, 상대가 만류하지 않는다면 제 손톱을 이용해서라도 찢어보였을 것이다. 어차피 상처는 금방 아물테니까, 물론 그부분에서 이미 인간성은 개나 줘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겠지만, 일단 근본은 다르다는것 정도는 말 해줄 수 있고,
다른 의미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인간과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테니
오로지 학살만을 목적으로 만든 전투병기보단 약할지 모르나 단지 인간보다 고강도의 금속재질 골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고, 그에 맞춰진 생물학적 장기가 들어차있으며, 그 800번대 로봇처럼 피스톤 펌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멀쩡한 근육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설령 있다 한들 이곳에서 선과 악을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있다고 해도 서로의 의견차이와, 확대해석하자면 정의의 반대인 또다른 정의만 있을 뿐이겠죠. 그것이 잘 짜여져있으면 정의, 정형화되지 않으면 혼돈 정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그녀는 언제나 빗대어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학처럼, 누군가는 그것에 질색하겠지만 무릇 철학이라 함은 모든 탐구의 기초였다. 의심 없이는 개선점을 찾지 못하며, 시도 없이는 변화를 초래할 수도 없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항상 탐구하려는 인간만큼이나 무한한 지식에 강욕을 품고 있었다.
인간은 각자의 개별적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타인과 선을 긋고, 나 아니면 남이라는 형체없는 이차원적인 틀을 만들어 그것을 정형화된 삼차원적인 공간에 내세워두었다.
어차피 그런 틈도, 경계도 없다면, 모두 별볼일 없는 한 무리의 존재면서도...
"음~ 사실은 처음부터 여기 서점을 떠나는 즉시 드리려고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네요~ ...모쪼록 여유가 있으시다면, 저와 잠깐 어울려주시겠어요?"
그녀는 한결 차분하면서도 곱게 휘어진 눈매로 웃어보였다. 아랫눈에 드리워진 도톰한 살갖이 마치 초승달 같은 모양새를 만들어냈지만, 그것엔 어떤 악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유혹, 이라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치 그에 대한 대가를 먼저 지불하듯, 그녀는 순순히 당신에게 책을 내밀어보였다. 그 손길엔 억지로 잡고 안놓아줄 것 같은 힘도, 도로 뺏으려는 계략도 숨어있지 않았다.
"아, 물론 제 이야기를 무시하시고 아무 일 없다는듯 채가서 먼저 떠나셔도 전 말리지 않을 거랍니다?"
도망칠 명분은 확실하다. 이날 이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음 거래에는 부하를 대신 보내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이대로 당신과 연락을 끊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안은 질끈 눈을 감는다. 이미 충분히 피곤한 상태였기에, 지금은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쨍하는 소리에 시안은 발이라도 걸린 듯, 휘청이다 멈춰 선다. 돌아서지 말고 나가라고. 당신의 그 황량한 얼굴을 또 바라보지 말라고. 남이니까. 걱정 같은 건 하지 말라고. 그렇게 자신에게 속삭이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돌아서면 병든 것 같은 당신의 모습을 본다. 지친 당신을 위로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지쳐보이는 당신을 위로 하기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버려 둔 채 다시 돌아서야 하는 것일까.
"친해지고 싶었다는 말. 그렇지만 이젠 됐어요."
다가온 시안의 불퉁한 어조의 답.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청록색 눈이 화가 난 사람처럼 당신을 노려본다. 테이블 위를 구르는 약통. 지금 모습이 정키들과 다를게 뭐인지. 무력하게 끌려갔던 때와 다른 힘으로, 위스키 병을 빼앗으려 한다.
"전부터 거슬렸어. 남 목숨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기 몸은 신경 안 쓰나 봐요?" "그쪽한테 좋은 선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내가 병신이지. 내놔요." - (머리박)
그런 문자를 받을 때마다 고민하게 되는 것이 있다. 사업 파트너인데도 차단을 할까 말까 하는 고민. 몇 번이고 차단 버튼에 손가락이 갔지만. 그래도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 했으니, 잡스러운 문자들은 무시하며 참았던 것도 이제 한계가 온 것일까. 문을 박차고 들어온 시안은 그 꼴 받는 당신의 얼굴을 노려본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것이, 당장이라도 한 대 칠 것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리본 달린 하늘하늘한 옷을 꺼내들면, 정말 치려고 하는 것인지.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냥 돌아선 채로 나가버리라고, 위스키가 넘어과 동시에 어슴프레 남아있는 약의 쓴맛이 혀에 감도는 걸 느끼면서 브리엘은 나른한 기색이 있는 눈매와 눈썹을 아래로 늘어트린 채 생각하고 말았다. 무슨 관계인지 정의할 필요가 없는 사이에서 걱정이나 관심으로 인해 소모되는 감정은 이제 지긋지긋할 뿐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하지도 않은 일에 죄책감을 가진 채 언젠가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만큼은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얄팍한 실로 이어진 관계들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누구도 자신을 신경쓸 필요 없도록.
"너는, 나랑 친해질 필요없어."
그냥, 돌아선 채로 나가버리면 됐을텐데. 다시 다가온 시안의 대답에서 느껴지는 기색에 브리엘은 헛웃음 내지는 한숨처럼 짧게 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위스키 병을 빼앗으려는 힘에 꽤나 순순히 내주는 건 무슨 이유일까. 지금에와서 쌀쌀맞다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을 거부한 게 미안해서일까. 남목숨은 생각하지만 자기 몸은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한부류였다. 이 도시는 모르겠지만 밖에서는 딱 한부류였다.
동태복수. 그 법전이 적힌 곳에서의 실상은 신분에 따라서는 똑같이 갚아주는게 불가능했다지만 이 무법지대에 있어서는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기본적인 행동 방식으로 퉁 칠 수 있었다. 원본은 분명 과잉처벌에 대해 조정하기 위함이라던가. 그 이상의 과잉대응은 나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저 마다 가지고있는 빌어먹을 과거라는 녀석이겠지."
딱히 그런 이야기까지는 관심없었다. 그저 지나갈 사람이랑 목적때문에 잠시 마주친 정도가 아닌가. 캐물을 생각은 없다.
"대부분 이 마굴에서는 그저 생존 본능만 가득한거 같지만."
살기위해서 죽이는게 가장 많지않을까. 나아가 생존본능은 더나은 생존을 위해 다양한 욕망으로 뻗어나간다. 결국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한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과거를 보자하면 결국 살기위해 끌려다닌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왜 나는 이런것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은 한참이나 해봤지만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끌려다녔다. 그 결과가 명령에 따라 일을 할 뿐인 내가 생긴 것이니까.
"하나만 확신할 수 있다면 어울려주지."
어차피 한가한 날이고 두번 외출을 계획하는 것보다 상대에 어울려서 지금의 목적을 모두 달성하는 쪽이 나에게 있어서는 편했다. 나는 눈 앞의 상대가 인간성을 시험하고 있는 것 조차 별로 신경쓰지 않은 채 그렇게 말했다. 단지 이율배반적으로 말이다.
페로사가 아스타로테 몰래 제롬한테 이렇게 했어야지 이자식아 하고 알려주고는 넌 문제를 보고 답지를 본 거야. 문제와 정답은 알지만 해결과정은 모르지. 지금은 답 정도는 알고 있으니 위기는 모면하겠지만 언젠가 해결과정을 모르는 게 문제가 되는 순간이 올 거다. 잘해보라구. 진짜로 너한테 '잘해볼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말야. 같은 말을 하는데 괜찮습니까 아스주
몬터규라는 성씨를 가진 한 귀족이 아루어지지 않는 어려운 사랑의 고난을 자신의 친척인 로미오 몬터규(그는 실존인물은 아니었으나, 어찌되었건 유명한 인물이고 같은 성씨니까)가 겪은 비극에 빗대면서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한 수도원에 주문제작했다는 위스키인 비르투오소. 두 번째 몬터규가 로미오의 결말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했는지, 그의 사랑과 지금 제롬의 술잔에 얹힌 개나리아재비 꽃에 얽힌 이야기를 평소와 같은 밤이었다면 제롬에게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어지간하면 제삼자로 있으려고 했는데, 이대론 안될 것 같으니 너한테 귀띔을 좀 해줄게. 넌 방금 최악의 선택지를 고른 거야."
그러나 지금 페로사는 세 번째 몬터규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무대 장치의 준비를 끝내고 아스타로테가 무대로 올라가는 사이, 페로사는 아스타로테를 등진 채로 비워진 잔들을 정리하는 척하며 제롬에게 나직이 귀띔했다.
"로테는 네 생각보다 훨씬 어리고 여려. 본인에게 별로 소중하지 않은 것이나 본인이 해야 할 일에는 가차없고 매섭지만, 본인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니까, 무언가 소중한 게 생기면 그것이 가져다줄 행복을 기뻐하기보다 그것이 없어질 때의 상실의 고통을 먼저 두려워한단 말야. 네가 네 마음을 섬뻑섬뻑 여기저기 퍼주고 다니는 타입이라면 쟤는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마음을 아껴놓고 있는데 그게 상처입을까 봐 무서워하는... 살아온 세월이 길 뿐이지, 아직 어린 애라고."
귀띔이라기보단 윽박지름에 가까운 것 같긴 한데 기분 탓이다. 페로사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 귀띔을 이어갔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네가 주도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로테한테 없는 믿음을 네가 줘야지. 그 둘 중에 하나를 고르거나, 둘 중 어느 쪽도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네가 세 번째 선택지를 제시했어야지. 네가 능동적으로 로테를 리드해줘야지. 그런데 수동적으로 벌은 다 받겠다느니 선택은 네가 하라느니... 넌 이제 성인이고 다 컸어. 네 여자는 네가 리드해야 될 거 아냐. 물론 로테가 리드하는 순간도 있겠지. 그런데 지금은 네가 리드해야 되는 순간이야, 제롬. 걔가 원하는 건 자기 뒤를 쫄래쫄래 따라올 쫄따구나 강아지가 아니라, 같이 손을 잡고 때로는 이끌어주고 때로는 이끌려질 동행이라고. 로노브나, 포레나, 나 같은 것에는 비교할 수도 없이 굳건한 동행자 말야."
무대에서 마이크를 쥐고 아스타로테가 몇 명의 손님들에게 토크를 늘어놓는 동안. 페로사는 나직한 어조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는 체감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그녀가 말하는 억양을 들어보니 그녀가 확실히 이탈리아 태생이라는 것이 티가 난다. 말 뒤에 저절로 모음이 생겨나는 것이라거나, 후려치는 듯한 악센트라거나.
"로테는 지금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그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 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해줘야 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아스타로테를 등진 채로 옆눈질로 제롬을 바라보았다.
"난 네가 이 문제를 틀린 채로 놓치기를 바라지 않아. 그래서 방금 네게 답을 알려줬어. 그런데 이러면 너는 문제와 답만 알고 해결과정은 모르는 게 돼. 해결과정은 내가 알려줄 수 없어. 그 답을 아스타로테에게 어떻게 풀어내고 납득시켜줄지는 네가 정해야 한다는 거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나는 말이지... 내가 너한테 이런 귀띔을 해준 게 아무런 보람 없는 삽질이길 바라고 있어. 내가 이런 귀띔을 하기 전에 네가 이미 유사하거나 더 나은 결론을 내렸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그러니, 잘해봐, 제롬. 너한테 아직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다행히, 전주가 끝나기 전에 페로사는 자신이 할 말을 모두 마쳤다. ─분명 제롬도 억울한 점이 있을 것이다. 본인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억하심정이 있더라도 페로사에게 반론하는 것은 지금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데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제롬이 지금 무언가를 말할 상대는, 페로사가 아니라 아스타로테다. 반론을 할 틈도 없이,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페로사는 빈 잔 정리를 끝내고, 바텐더의 의자에 올라앉아 아스타로테의 노래를 감상했다. 앤빌의 조명이 조금 어두워지고, 무대로 스포트라이트가 드리워진다. 앤빌에 예고없이 찾아온 디바를, 페로사는 추억에 잠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빌어먹을 곳만 아니었더라면, 쟤는 빌보드를 휘어잡는 스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노래가 끝났다. 몇 명의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환호로도 크지 않은 바를 충분히 채우고 짧은 공연이 성공적이었음을 알리는 데에는 충분했다. 무대에서 내려온 디바에게 페로사는 말을 건넸다.
"그거 얼음이 꽤 녹아서 싱거워졌을 텐데- 새 잔으로 마시고 싶거나 다른 걸 마시고 싶으면 말만 해."
"아아~ 그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신조 말인가요? 재밌게도 그 곳에선 하등 쓸모없는 법률이었죠? 참, 거기도 거기지만 여기도 장난 없네요~
원인 제공은 물론 제가 했지만요~?"
다시금 곱게 휘어진 웃음과 함께, '장난이 없다.'는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며 그녀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작게 키득거렸다. 함무라비 법전, 분명 받은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기에 과잉대응 방지를 꾀했다곤 하나... 장난을 친 그녀와 다르게 그 복수로 당신이 장난을 걸어올지는 미지수였다.
살의 없는 저항, 정도라면 어느정도 납득할 수는 있겠다만. 그래도 좀 냉랭하고 기계적일지언정 융통성은 충분히 갖춘 당신이 한켠으론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그녀였다. 제 아무리 인간의 몸이라 해도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어엿한 인간에게 기계적임을 걸고 넘어진다니, 꽤나 우스운 명제일지도 모르나 어차피 기본상식은 아득히 넘어선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이곳, 뉴 베르셰바였다.
"후후후... 그런거죠~ 빌어먹을 과거, 말할 수 없는 비밀, 잊고 싶은 일들...
뭐 그런 자질구레한건 지금은 필요 없잖아요?"
지금 은연중에도 알 수 있으나 어차피 나중에가도 알게 될 터였다. 처음부터 무력한 인간을 연기하며 당신 앞에서 곧장 쓰러져버려도 될 것을 굳이 맞부딪히고, 자신의 정체를 거리낌없이 드러냈던 그녀의 행동처럼...
하지만 그래선 좌중의 흥미를 유발할 수 없는 플롯이요, 긴장감이라곤 하나도 없는 엉터리 연극에 불과했다. 기에서 승이 없으면 전으로도, 결로도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당연히 오늘 안에 끝나죠~ 저라고 해서 카페에 밤새도록 죽치고 있는 타입은 아닌 걸요?"
무엇보다 그녀는, 당신이 자신에게 할애하는 시간을 터무니없이 늘릴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까지 염치없는 인물은 아니니까, 말 그대로 잠깐 어울렸다가 할 일을 위해 자리를 떠도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꺼냈다는 제안이 카페였다는 부분만 제외한다면,
"오늘 같은 날은 달콤쌉싸름한 케이크 같은 것들이 끌린단 말이죠~ 가뜩이나 소란스러운 이 도시에선, 매일같이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건 그게 직빵인 걸요?"
전혀 모르는 대상... 어쩌면 지금 뒤돌아선 순간 자신의 등을 노릴 수도, 아무렇지 않게 앞에서 심장에 칼을 꽂을 수도 있는 존재에게 이렇게 태연한 모습으로 티타임을 권유하는 것은 베르셰바에서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그녀가 헛살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그 세기말 로봇처럼 심장을 찔려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일까?
어떤 의미로든 그녀 또한 베르셰바에선 정상인이었으며, 그것은 곧 이레귤러임을 뜻하고 있었다.
"마굴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생존본능으로 가득하죠~ 그렇다면, 마음의 양식을 쌓기 전에 몸의 양식도 쌓는것 또한 생존본능 중 하나 아닐까요?"
심리상담 전문 조직 Healing Process는 공식적으로 상담자의 신변정보를 완벽하게 보호해 준다고 홍보해 왔다. 물론 뉴 베르셰바를 살아가는 이들 중에서 완벽한 정보보호라는 문구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지만. 뭐 그런 것과는 별개로, 오늘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아야는 이러한 조직의 보안원칙을 어느정도는 지키자는 주의였다. 하필이면 카운터 담당 직원이 밀린 연차를 내버린 탓에 땜빵으로 앉게 된 걸 생각하면, 세바의 고객들에게 친화적이라고 하기는 힘든 철학이었다. "아야야야, 어쩌피 어지간해서는 손님도 찾아오지 않는 시기라서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되긴 하지만 말입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려도 탓할 사람 없을 정도로 한산한 건물이긴 했다. 기실, 예약손님이 아닌 이상 예정에 없는 손님이 오는 일이 거의 -물론 예외는 언제나 있었다.- 없는 조직인지라 말이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이번에는 포도맛 막대사탕을 비껴 문 채로 한산한 카운터를 지키고 있기도 잠시. 누군가가 찾아왔기에 자세를 고치며 새로운 손님을 맞이할 자세를 잡는다. -여전히 막대사탕은 삐딱하게 물고 있었지만-
>>625 그렇지~ 그게 자커와 상판의 묘미 아니겠어? 0.< (뽀다담) >>626 안주로 잘근잘근 씹는 도중에 걔한테 카톡이나 인스타 디엠이 온다? 이제 모인 애들중에서 하나가 주변 슥 훑더니 "오~" 한다? 소주 한 병 더 시키고 제 2차 얘는 뭔 낯짝으로 지금 연락하냐 토론이 시작됩니다 따단
그러한가? 사내는 본질적으로 곤충이다. 인간이 아니다. 그것을 자각하기에 강박으로 온 몸을 무장했다. 갑각 달린 여섯 다리가 아니라, 부드러운 살결로 이루어진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싸한 가면을 써도 자기 자신에게까지 본질을 감출 순 없다. 사내는 바깥에 나가는 순간 영원히 이방인으로 살아야 한다. 그곳은 살충제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그 곳을 질투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봐봐, 여기서도 관점이 다르잖아, 우리."
한숨처럼 사과쪼가리를 질겅였다.
"살면서 낙원은 없어. 낙원은 죽을 때나 볼 수 있는 거고.."
그래, 이것은 열등감이다. 자신은 선택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단 분노다. 나는 어째서 일방향의 길만 걸어야 하였는가. 희곡에서는 악인을 벌하고, 선인을 치하한다. 악인은 악한 선택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악인에게 악한 선택지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면? 선함의 존재조차 몰랐다면? 존경해 마지않는 재판관이시여, 이래도 제 가슴에서 살 일 파운드를 도려내야 하덥니까.
"사탕 봉지도 입 안에 넣고 굴리면 단 맛이 나기도 하니까... 잘 지켜, 페로사. 입 밖으로 뱉지 말고."
사탕 봉지를 말한 문장은 작게, 술주정처럼. 그 뒤의 문장은 잘 들리도록. 정상적인 애정 형성하지 못하는 이가 줄 수 있는 최대의 응원이다. 어차피 이것 또한 그에게는 플라스틱과 다름없다.
"예쁘다, 응."
인공적으로 만든 하늘은 픽셀로 이루어진 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어쩌면 이걸 만든 사람들도 더 나은 하늘을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가진 것에 온전히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존재할까. 하늘의 맛은 청량하고, 달고, 끝맛에서 박하가 맴돌았다. 당신들은 이런 삶을 누리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가. 대체 어째서.
"당신은 보리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사랑을 더 강하게 하리다...*"
머지않아 떠나야만 하는 것을 사랑해야 하기에.* 또 어딘가의 시구 웅얼거린다. 취했다.
"나는, 아픈 사랑은 더 이상 안 하려고."
비단 인간에 대한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 또한 사랑이다. 파랑새는 그것을 먹고 자란다더지.
"그래도 너는 그런 거 많이 해. 내가 너한테는 질투하거나 화 안 낼게. 너는 괜찮을 것 같아."
상대가 웃고있는 걸 보자면 저게 전자회로로 이루어진 기계가 맞는가 싶을정도로 뱃속에 소악마가 들어있는 표정이었다. 인간은 이정도의 기술까지 도달할 수 있었는가. 어쩐지 이미 읽었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떠올랐다. 나는 SF라면 필립 K.딕 보다는 로버트.F.영이나 쥘 베른쪽 취향이었지만.
"당신의 과거가 어떠한들 관심은 없지만, 이 도시의 깡통은 감이 안좋으면 인간이랑 구분이 안간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알았군."
단순히 책이나 사고 끝낼 외출이 이렇게 예상외의 미래를 만들어나갔다. 이 인간을 닮은 깡통때문에. 그렇다고 잔챙이를 만나는 것과는 달리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저 왠지 모르게 뜻밖의 경험을 하게되는구나 하는 억압되어있던 내 어린아이 적인 호기심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그 동심에 지금은 어울려도 나쁘지 않은건가.
"다행..아니 카페라고?"
뭘하나 했더니 이야기를 듣자하니 카페에서 케이크나 먹자는 그런 제의였다.
"처음보는 사람한테 간이 부은 행동을 하는군. 아니지 깡통은 간이 없나?"
어느새 상대를 깡통이라 멸칭하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 진것처럼 나는 그리 말하고는 해당 제안에 대해서 굳은 표정을 풀고서 말했다. 애초에 오늘 외출의 마무리가 그곳에서의 한정 케이크를 노리고 있었으니까. 동행자가 생긴셈이다. 웃기게도 말이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 날이다. 우선 나쁜 소식을 먼저 말하자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고, 좋은 소식이라면 일이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잘 생각해 보니 둘 다 나쁜 소식 같지만. 오늘 의뢰는 제법 복잡한 편이다. 의뢰인은 정보를 조작하길 원했다. 그렇지만 의뢰인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했고, 오락가락하는 의뢰인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가 필요했다. 평소 같으면 의뢰인의 말을 믿고 정보의 바다를 유영하겠지만, 가끔 육안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생길 때가 있다.
가령 오늘 받아야 할 상담 기록 같은 것이 그렇다. 상담 조직의 자료를 해킹해서 빼오면 되는 일이라고들 하지만 에만은 직접 보는 것을 선호했다. 가끔 본인이 아니라 타인이라고 혼동하는 사람이 찾아와 일을 그르친다면 수습하는 것도 여간 고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만은 지금 의뢰인이 자신이라 주장하며 상담 기록을 위임받기를 희망한다는 서류와, 진짜인지 의심이 가는 의뢰인의 신분증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가면을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서며 후드를 깊게 눌러 썼다. 오늘 날씨는 빌어먹게도 따뜻하다. 변덕스러운 셰바 날씨는 어제만 해도 한겨울 같더니만 오늘은 또 봄날씨인 것이다. 에만은 건물 하나를 휙 올려다보고 글자를 읽는다. Healing Process. 느릿한 발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막대사탕을 문 사람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꾸벅인 에만은 주변을 둘러본다. 셰바답지 않게 한산하다.
그렇읍니다. 페로사는 희망병자고... 범죄자 주제에, 베르셰바에 사는 주제에 자신과 자신 주변 사람들이 다 잘되고 행복했으면 바라는 뻔뻔한 파렴치한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리모스레를 관통하는 '무고한 악인은 없다'는 주제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캐릭터인지도 모르지요. 모쪼록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모두들.
너무 대뜸 말했나? 에만은 미리 연락이라도 넣었어야 했나 생각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미심쩍은지 말끝을 흐리는 카운터 데스크의 여성을 마주한 에만은 잠시 머뭇거렸다. 다행스럽게도 메뉴얼을 읊어주자 에만이 후드의 끈을 괜히 손가락으로 꼬았다.
"아, 그게. 죄송해요. 아무것도 준비 안 하고.. 대뜸 말했네요.."
저 메뉴얼에 부합하긴 하지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단어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조합한 에만은 일단 가까이 다가가기로 했다. 카운터 앞에 서서 잠시 주머니를 주섬 거렸다.
"본인은 아니지만..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어서요.. 저희 쪽 의뢰인이거든요.. 그런데.. 이쪽에서 상담받았고, 본인이 맞는지 저도 헷갈려서.."
의뢰인 머리가 반쯤 돌았다는 걸 완곡하게 돌려 말한 것이었다. 후드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작은 편지 봉투였다. 편지 봉투 안에는 본인을 '연 지'라 주장하는 남성이 이곳에서 상담을 받았으며, '미네르바의 부엉이'에게 자료를 위임하길 원한다는 자필 서명이 쓰인 서류와, 신분증이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한 번만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상담을 애초에 받았다고는 하는데, 찾아보기론 자료도 없는지라.. 도와주신다면.. 감사하겠어요.."
>>732 어 듣고싶다고 한건 아니었는데 (입안에 갑자기 쏟아진 꿀단지에 어안이벙벙) 페로사: ■■■, 안 자고 있었─ 페로사: ? (눈 깜빡) 페로사: 뭐야. 오늘따라 귀엽네. 오늘따라 외로웠어? (쓰담담) 페로사: 무슨 일이 있었더라면 네가 가장 먼저 알았을 거야. 네가 걱정할 일은 없었어. 달링. 페로사: 나는 오셨어요-보다는 잘 잤어요-를 더 좋아하지만, 오셨어요-도 사랑해줄 수 있어.
비록 지금은 전자화의 힘을 빌려 A.I.를 영혼으로 삼아 인간으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녀 역시 한때는 인간이었을테다. 지금은 잊혀진 기술의 복원력으로 성분만 약간 달라진 채 재구성되었을 뿐, 자신의 몸을 오롯이 가지고 있기에 어쩌면... 인조인간, 더 넖은 범위에서 쳐준다면 유사인간이란 명칭도 가능할 터였다.
...물론 그런것까지 구분할 정도로 감성적인 사람이 과연 이 도시에 남아있겠냐만은... 그녀가 인간에 매우 근접한 존재이면서 이상하게도 불쾌한 골짜기가 일어나지 않는단 것은, 의심이 곧 납득으로 화한다는 것은 당신도 부정할 수 없을 터였다.
인간의 신경다발과 유사한 생체조직은 그녀를 꿈꾸게 만들었으며,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후후후... 지나가는 모기도 낚아챌 수 있을만한 동체시력을 가진다 해도 쉽게 구분 못할거라구요~? 애초에 전 그걸 목적으로 만들어졌는걸요. ...뭐어, '자기의 흥미가 동하면 뭐든지 만들고 보는 건샵 주인장'처럼 메카닉에 대해 정통하다면 또 모를까요~"
아마 지금쯤이면 당사자는 괜시리 귀가 간지럽거나 재채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시덥잖은 상상을 하며 화사하게 웃는 그녀였다.
"네~ 카페죠~ 얼른 나서지 않으면 좋은 기회를 놓치고말거라구요~? 아, 기회는 고사하고 자리라도 남을지 모르겠지만요~ 거기, 무슨 이유인진 몰라도 사람이 꽤 붐비더라구요~"
이것 또한 넖은 범주에선 '도발'에 속할지도 모를 터, 좁은 범주에선 '재촉'이라고 하는 것에 더 가깝겠지만 말이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제 본체라 불릴 것이 지금도 0과 1로 이루어진 얊디 얊은 선을 빠르게 오가고 있었기에 '어째서 그 가게가 붐비는가,'에 대한 화제를 모를 리가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태연하게 모르쇠 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입에 올렸다간 그러잖아도 '깡통'인 호칭에서 '머저리 깡통'으로 더 격하될지도 모르니.
"에이~ 농담은 딱 그정도만 해주세요~ 저도 간은 있는걸요? 애초에 멀쩡하게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는데, 간이 없을 리가 없잖아요? 간을 냉장고에 넣었다고 거짓말하는 토끼도 아니고 말이죠~"
자연스럽게 자신을 지칭하는 당신의 언어가 '깡통'이라는 것은 분명한 멸칭이긴 하나, 지금껏 베르셰바에서 불려왔던 자신을 향한 음담패설보단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가령 '멍청한 젖소'라던가 하는 인간성조차 추락시킨 멸칭보단 말이다.
하얀 마녀는 마법과도 같이 상대의 머리를 꿰뚫는다 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을정도로 시력과 시야확보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던 나였다. 다만 동체시력에 대해서는 평균적이었다. 기계를 구분할 능력은 아까와같이 대놓고 스스로를 밝히는게 아니라면 모르는게 당연했다.
그리고 하나더 의문이 드는 것이 있는데,단순히 기계회로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무리 이 도시의 특이점을 가진 기술과 접목했다하더라도, 과연 그녀가 완전히 기계인가? 라고 생각한다면 의심스럽게 넘어갈 부분은 있었다. 자연스러운 감정은 오히려 완전한 로봇이나 레플리칸트에선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보여주고는 했으니까. 오히려 그녀는 어느정도 인간이 섞여있는 것은 아닐까? 호기심은 들었지만 그걸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상대를 의심할 줄은 알아야하는 것 아닌가? 깡통에는 행복회로가 달려있나?"
순순히 넘어가는 나는 순순히 넘어가서도 만약에 상황에 대응할 자신이 있기에 한다지만 그쪽은 잘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건가? 내가 만약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마음에 들지않는다는 변덕으로 파괴를 노리는 것도 가능했다. 그럴일은 없겠지만. 명백한 이유가 없으니까.
"한정케이크를 노리는 것으로 전력이다."
아무리 이렇게 썩어빠진 도시라도 한정 케이크를 노리는 사람은 많을터다. 사치든 혹은 맛이든. 그러니 붐비겠지.
"기행은 없다. 그저 사람들이 이런곳으로 지나가나 싶은 길을 쓰는것뿐이지."
나나 당신같은 사람만 지나갈수있는 좁은 틈새로 지나가고는 한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역시 흔치 않은 일이었구나. 에만은 서류를 지켜보는 동안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삭막한 셰바의 분위기와 달리 이곳의 공기는 오늘 바깥 날씨처럼 참 포근하다. 공기를 비롯해 분위기마저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는 건물 내부는 쉽게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분위기도 잠시 흐트러지고 말았다. 여성의 답변 때문이었다.
"부엉이라 불러주시면.. 돼요."
아무래도 좋을 질문에 어색하게 답한 뒤 경청한다. 상담 기록은 있지만 한번 오고 더는 오지 않았단다. 에만은 미심쩍었던 부분이 들어맞아 새삼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일단 의뢰인은 실존하는 인물이니 그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지 떠올렸다. 정신 상태가 그렇게 불안한 의뢰인이었는데, 실존하는 인물이고 주장하는 것이 정확하다면 배로 골아파질 일이 아닌가. 남은 상담이라도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판단해야겠다.
"그렇군요.."
자료가 없다. 에만은 가면 속에 가려진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방금 전에 했던 생각은 취소다. 그 부족한 부분의 정보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오늘은 아마 돌아가서 밤새 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에만의 가면은 별다를 것 없는 플라스틱 제다. 매끈하고 새하얀 가면에 검은 물감으로 대충 웃는 얼굴을 그려둔 가면 너머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그 안에서 살의를 담을 사람은 아니었다.
"무기, 요..?"
에만은 잠시 머뭇대다 후드 주머니에서 카람빗 한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카운터 위에 올려둔 뒤 한 번 더 머뭇거리더니 "잠시만요.." 하고 고개를 내려 제 신발을 쳐다본다.
"……신발도, 벗어야 할까요.."
굽 안에 담긴 날선 나이프 때문이었다. 벗으라 하면 벗고 여성의 뒤를 따를 것이고, 아니라면 그저 신고 조심조심 뒤를 따랐을 것이다.
페로사: 압생트를 마시면 환각을 본다거나 미친다거나 하는 괴담이 있었지. 그래서 한때는 거의 범유럽적으로 압생트가 법적으로 금지됐던 때도 있어. 페로사: 그런데 실제로,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들어서 압생트의 성분분석을 해봤더니 튜존이라는 성분이 검출된 거야. 페로사: 압생트의 주재료들 중 하나인 쓴쑥에 포함된 성분이었는데, 이게 진짜 환각성분이었지.
페로사: 그렇지만 그게 결국 압생트를 음용하는 데에는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왜냐고? 페로사: 오로지 압생트만 마셔서 튜존을 환각을 볼 정도로 섭취하려면, 압생트를 4백 리터는 마셔야 되거든. 페로사: 환각이고 나발이고 급성 알콜중독으로 죽는 게 빠르다 이거야. 이거 도수가 70도짜린데......
페로사: 압생트의 매력포인트는 환각 같은 게 아니라, 진을 따위로 만드는 압도적인 풀때기향이지. 페로사: 환각을 보고 싶거든 압생트에서 환각제를 찾지 말고, 그렇다고 진짜 환각제를 찾지도 말고,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유튜브나 보자구. 유튜브에도 충분히 재밌는 것들이 많으니까. 페로사: 아니면 적당한 양의 압생트를 마시고 기분좋을 정도로 취해서 자는 것도 좋겠지. 페로사: 그런데 바에서 압생트를 마실 거면 압생트만 마시던가, 압생트는 마지막에 마셔. 페로사: 풀때기 향이 입안에 엄청 질기게 남아있어서, 압생트를 첫 잔으로 마시면 그 뒤에 뭘 마시든 압생트 맛일 테니까.
"자 따라오면 됩니다 아야야야. 여러모로 문서화해서 저장해놓은 자료가 많아서 이렇게 따로 꺼내와야 하는 거네요-"
-어쩌면 나중에 상담 받게 된다면, 부엉이 님의 기록도 이 지하실 어딘가에 차곡 차곡 쌓여가게 되겠고요. 이렇게 말하며 홍채 인증까지 마친 후에 방화문을 아야가 열자, 수많은 서류가 보관된 녹색 조명의 지하실이 모습을 들어낸다. 수많은 상담자들의 기록이 담긴 종이들 사이를, 아야는 평범하다는 듯이 해치고 지나가더니 이내 한 곳에 멈춘다.
"-여기에요. 원칙상 서류 반출은 안되고- 내용 기억하거나 필사한 다름에 가져가면 될 거 같네요."
이내 서류철 하나를 에만에게 건내는 것이었다. 내용이 별로 없다기에는 생각보다 두깨감이 느껴지지는 했지만, 딱히 그게 나쁜 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서류철 안에는 아마 적당히 내용은 많이 있을 거 같다 생각해도 될 거 같지만... 연출은 에만주 자유!
그대로 나가지 못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추운 자로 서있을 당신의 모습을 좀처럼 머릿속에서 떨쳐 낼 수가 없어서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순간이 후회로 남지 않길 바라면서 당신에게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을까. 취한 것인지, 아니면 이제서야 당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기라도 한 것인지. 시안은 거부 없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는 위스키 병을 약통이 놓인 테이블에 내려놓고서, 여전히 굳은 얼굴로 당신을 바라본다.
"왜요?"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다, 침묵이 길어질 무렵, 쏘듯이 시안은 되묻는다. 그저 궁금할 뿐이다. 왜 그리 모든 것에 등을 돌리고, 호의적이지 않은 것인지. 모든 것을 소모하여 지칠 대로 지쳐 보이는 듯 느껴지는 당신의 모습. 공허하게만 보이는 눈동자를 보고서 당신이 거부하지 않는다면, 시안은 당신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 한다. 닿으면 시안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을까. 그대로 시안은 당신을 응접실 소파를 향해 살짝 밀어내려 한다.
"피곤해 보이니까 쉬어요."
다시는 돌아서지 않겠다는 듯 말하며, 위스키 병을 챙겨 천천히 돌아서는 시안의 얼굴은 슬퍼 보인다.
쥬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는_좋아하는_사람이_행복하다면_자신과_이어지지_않아도_좋은_쪽_그렇지_않은_쪽 》이어지지 않아도 좋은쪽? 혹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얼마든지 자신의 감정을 포기할 수 있는건 미련한 행동이라고 꼬집었지만,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과 이어져서 불행해진다면, 그게 더 미련한 행동 아닐까?
아야: 037 특별한 성적취향이 있나요? 아야주: 특별한 취향이라... 있네요! 그러니까... 누군가 자신을 길러주기를 바란다거나, 음음, 자세한 건 시크릿! 144 생일 선물로 받고싶은 것은? 아야: 편지? 아니면... 모르겠네요 아야야야. 사실, 선물을 챙겨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데. 127 냉장고는 하루에 몇 번 여닫을까요? 아야: 모르겠네요 아야야야. 집에 있어도 평소에 안 여니까 하루에 10번을 넘어가지는 않을 거 같네요.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아야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정신은_그대로이고_몸만_어려진다면 딱히 바뀌는 건 없을 것 같네요. 평소처럼 출근하고 평소처럼 다니고... 어라 위험하겠는데. 자캐가_새벽까지_깨어있다면_그_이유는 그날따라, 꿈꾸기 무서워서. 혹은, 새벽에 여러 생각들을 감당하지 못해서 자캐가_질색하는_것은 불닭볶음면, 진상중의 진상인 고객, 그리고 새벽의 자신.
위스키병을 응접실 테이블 위로 올리는 시안의 행동을 따라, 브리엘의 구리색 눈동자가 비스듬히 움직였다. 타인의 목숨은 생각하지만 자신의 목숨이나 건강에는 무지한 부류는 스스로 생각해보면 의사라는 직업밖에 없었다. 그 수많은 되돌리기에는 늦어버린 죽음과 어떻게든 되돌려놓은 생명의 경계선에 서있는 사람들. 느릿하게 구리색 눈동자가 깜빡여지더니 곧 굳어있는 시안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키 차이가 조금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선처리였을 것이다.
왜요 라고 쏘듯이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에 지끈지끈 울리는 두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눈가 사이를 한번 문질렀다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늘 하던 버릇이라서 이상할 건 없었다.
"왜, 이제 좋아하지 않을거라면서?"
어깨에 손이 얹어지기 직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브리엘이 내놓았다. 어이없다는 식의 헛웃음도 없이 무감한 목소리로 대답을 내놓던 브리엘은 시안의 손이 어깨에 얹어지자 반사적으로 그 손을 밀어내듯 치워내려는 것처럼 자신의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 행동은 곧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다. 장갑을 끼지 않은 무방비한 맨손을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리엘의 몸은 이어지는 행동을 피하거나 거부하지 못한 채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냥 그대로 몸을 돌린 채 나가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왜 그렇게 다시는 돌아서지 않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걸까. 사람이란 어째서 이다지도 귀찮은걸까.
"당신이 있어서 더 피곤할거라고는 생각 안하나봐. 볼일이 끝났으면 그만 돌아가줄래? 조금 쉬고 싶은데."
A-13 구역 분수대를 중심으로 북쪽엔 커다란 신문 회사가 있다. 불의 마녀 로즈밀을 필두로 한 구획의 지배 조직, 13일의 금요일이다. 말이 신문사지 그 누구도 쉽게 신원을 특정할 수 없는 사람만 모였고, 그만큼 비인간적인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보스인 로즈밀이 이전 지배자인 요제프 그로스만을 산 채로 불태웠다는 사실은 구획에 파다하게 퍼져있다. 보스부터 말단까지 비인간적이란 특성을 따랐기 때문인지 건물도 사람 사는 곳 같지는 않았다. 정갈하다 못해 칼처럼 반듯한 각도로 지어진 건물엔 늘 가면 쓴 사람이나, 얼굴을 드러내되 본인의 얼굴이 아닌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아무리 신원을 특정해 보려 해도 이 사람들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실존하는지도 모를 인물만 가득했다. 그런 무시무시한 킬러가 모인 건물의 7층에는 소회의실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무시무시한 킬러들의 신원을 전부 가려버린 와일드카드이자 아이가 있기 때문인지 유일하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다. 오늘도 방은 너저분하다. 푹신하지만 싸구려인 침대, 그 위에 널브러진 토끼 인형, 쪽지를 접어둔 도리토스 빈 봉지, 윙윙 돌아가는 환풍 팬 소리, 구석에 처박혀 때타지 않은 장난감 상자, 키보드.. 그렇지만 오늘은 키보드 소리가 나지 않는 대신 평소보다 배는 소란스러웠다. "아저씨, 나- 아-파!! 살살해!" "귀청 떨어진다!" "그렇지만- 아프단 말이야! 좀 더 살살 빗을 수는 없어?" 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빽빽 뱉는 소리에 얼굴에 큰 흉터가 있는 남성이 머리에서 빗을 떼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다름 아닌 신입사원 일라이 빌이다. 그는 어느덧 13일의 금요일에 입사하게 된 지 반년이 넘어가 신입사원에서 정사원이 됐다. 지금은 척 모리슨이 처형으로 죽은 뒤 새로 편성된 킬러 부서, 하트의 일원이기도 하다. 여전히 사람을 쏘는 일을 망설여 내부 처형자로 일하긴 하지만, 어느덧 이 도시에 적응한 사람이라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둘도 없는 친구기도 하다. 척 모리슨이 처형으로 죽기 전 모종의 유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적어졌다지만, 그와 아이는 허구한 날 사소한 이유로 다투는 것이 일상이었다. 보다 못한 누군가 나잇값 좀 하라며 일라이를 나무라려 해도 아이가 먼저 '우리는 척 모리슨으로 이어진 친구-'라며 일라이를 먼저 비호했다. 서로 자주 다투긴 해도 온정이 싫지는 않았나 보다. 비록 둘의 나이 차이는 3배가 났지만, 좋은 친구였다. "그러니까 요 맹랑한 꼬맹이, 누가 머리 안 말리고 자래?" "나는 앤데 새벽에 자는게 말이 돼? 피곤해서 쓰러진 거야!" "셰바에서 흔한 일이잖아!" "안 흔해! 아저씨는 바깥 사람이 무슨 셰바 얘기야!" 지금 그와 실랑이하는 조그마한 아이는 꼭 커다란 털 뭉치를 뭉쳐놓은 것처럼 생겼다. 거대한 고양이 같기도 했다. 처음 보던 날에도 아이의 머리카락은 풍성하고 길었지만, 성장기이기 때문인지 반년 새 머리카락이 훌쩍 자랐다. 그 때문에 아이의 머리카락이 엉키기라도 하는 날엔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일라이는 아이의 머리를 빗어주며 골머리를 앓았다. 끝단이 엉켰지만 아무리 살살 빗질을 해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잘라버리면 끝날 일이지만 그럴 수도 없다. 잘린 머리카락을 버렸다가 신원이 특정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이가 위험에 빠지거나, 아예 죽어버린다면 로즈밀은 무너질 것이고, 여왕을 따르던 조직의 궤멸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일라이는 하는 수없이 빗을 내려놓고 그 커다란 손으로 아이의 엉킨 머리카락을 잡았다. 귀찮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손가락으로 미세한 가닥씩 집어 살살 당기자 머리카락은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며 툴툴댔다. "이러면 나갈 시간이 줄어드는데." "그래도 쿠키는 안 줄어드니까 걱정 말아." "치사해! 나는- 바깥공기가 마시고 싶은 거야!" "창문 열면 되잖아?" "그거랑 이거는 달라!" 평소 같으면 창문 공기로 만족하지 못한다 했겠지만 오늘은 말을 뚝 끊어버린다. 아이의 표정이 부루퉁했다. 오늘 아이는 달에 한 번 있는 귀한 날이기에 더 심통이 난 것 같았다. 다름 아닌 쿠키를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유일하게 셰바 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날. 일라이는 아이가 중요한 존재인 걸 알기 때문에 막연히 위로할 수는 없었지만, 내심 동정하고 있었다. "그래, 다르겠네. 거의 다 풀었으니까 얌전히 있어. 머리가 엉켰다고 둘러대면 10분 정도 늦는 것 정도야 하트께서도 봐주실 거니까." 그렇지만 그 동정심을 표하는 대신 엉킨 머리가 어느 정도 풀리자 다시 빗을 들어 머리를 매끄럽게 빗어주었다. 동정심을 표하는 건 셰바에서 사치이기 때문이다. 그건 일라이도, 아이도 잘 알고 있다. 아이는 얌전히 있는 대신 화장대에 턱을 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곧 8살이 될 아이인데도 10살은 더 먹은 것처럼 깊은 한숨이었다. 아이가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아랫입술을 비죽거렸다. "아저씨." "그래." "나, 바삭바삭 녹는 쿠키도 살 거야." "머랭 쿠키 말하는 거지?" "설탕으로 만든 쥐도 살 거야." "폰던트로 만든 쥐 말이지." "몰라, 그런 거. 이름은 잘 모르지만 다 사버릴 거야. 여기 망할 때까지 살 거야!" "그래,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오늘은 네 날이니까. 그런데, 설마 그만큼 산다고 해서 여기가 망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저씨는 날 바보로 알아!" 아이는 빽 소리를 지르다 잠깐 망설였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정말 망할까 하는 눈치였다. "…2개씩 사면 망하지 않을까?" 일라이는 결국 크게 소리 내 웃었다. 머리는 어느새 단정하게 빗겨 엉킨 부분이 없었다. 일라이는 빗을 내려놓고 옆에 있는 리본을 집어 들었다. 새카만 리본은 며칠 전 로즈밀의 새 측근인 하트가 준 선물이다. 인형을 안고 있을 때면 어릴 적 본 영화가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영화 속 세계는 셰바만큼 이상하다 했고, 이 조직과 연관이 깊다 했다. 아이는 리본을 빤히 쳐다보다 오늘은 그 영화가 뭔지 물어보기로 다짐했다. "안 망해. 걱정 말고 맘껏 사." "진짜?" "나도 반년새 월급 많이 올라서 돈 많아. 폰던트 쥐는 열 마리도 살 수 있다고." "우와! 진짜?" "물론이지." "……그렇지만 다섯 마리만 살래." "왜?" 일라이는 머리 위에 리본을 얹어주며 매무새를 다듬었다. 아이는 고개를 올려 일라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목소리를 확 낮췄다. "이건 비밀이야." "그래,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하나는 내 거고, 하나는 퀸 거야. 왜냐면.. 멀리 가셔서 당분간 오지 않을 테니까, 오면 맛있는 걸 드릴 거야. 그리고.. 하나는 당 오빠 거고, 하나는 하트 거야." "나머지 하나는?" "……비밀이야." 아이가 고개를 휙 돌리자 일라이는 귀엽다는 듯 킥킥 웃었다. 안 봐도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이를 더 건드려보면 또 다툴 게 뻔하니 일라이는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서기로 했다. 아이는 익숙하다는 듯 의자에서 일어섰고, 준비된 경호인력이 아이의 주위를 에워쌌다. 아이는 가장 중앙에 있는 일라이에게 번쩍 안겨선 그대로 7층 소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바깥은 늘 신기하다. 사람들이 많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저기선 또래 친구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재밌나 보다. 지켜보는 보호자가 왜 웃는지도 모르겠다. 제과점으로 향하던 아이는 또래에서 한참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아이를 위해 멈춰주지 않았다. 한 걸음이라도 늦었다간 총에 맞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일라이의 어깨에 손을 짚고 조금 더 고개를 쭉 빼들려다, 경호인력이 아이의 어깨 위에 손을 얹자 다시금 웅크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마저도 제과점의 단내가 끼치자 사그라들었다.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빵이 발효될 때 나는 냄새, 달큼하게 오븐 속에서 구워지는 빵 내음, 이미 진열된 각종 빵과 쿠키의 고소한 향기가 코를 찌르고 비강을 타 폐를 듬뿍 적셨다. 언제 시무룩했냐는 양 아이는 냉큼 일라이의 품에서 내려와 진열대로 향했다. "오늘도 버터쿠키겠지?" "아니! 오늘은 저거랑- 저거!" 경호원의 질문에 아이는 투명한 비닐에 포장된 알록달록한 머랭 쿠키와, 분홍색 폰던트로 만든 설탕 쥐를 가리켰다. "그리고 쥐는 다섯 마리.. 아, 하나.. 둘.. 셋.. 아저씨!" "왜, 꼬맹이." "어쩌지? 저 아저씨들도 주려면 세 마리나 더 사야 해.." "사면 돼지. 아까도 말했지만 열 마리는 더 살 수 있다고."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새삼 일라이를 대단한 듯 쳐다보다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진짜?" "그래. 더 고를 거야?" "아니.. 아저씨 진짜 멋지다. 나도 저만큼 살 수 있는 사람으로 커야지." "그래, 그래. 어서 쑥쑥 크기나 해라."
아이는 트레이에 폰던트 생쥐 여덟 마리와, 머랭 쿠키를 올리고 계산대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오늘은 처음 보는 여성이 계산대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평소 같으면 살집 두둑한 아저씨가 라푼젤, 왔니? 라고 했을 텐데 그런 말도 없었다. 아이의 시선에 여성은 친절하게 웃었다. 어린아이를 좋아하는지 영업용 미소에 숨길 수 없는 웃음이 묻어 나왔다.
"오늘 삼촌이 아프셔서 내가 대신 일하기로 했단다." "진짜요? 아프면 안 되는데! 홉킨스 아저씨한테 아프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그래. 어디 보자.. 폰던트 생쥐 여덟 마리.. 머랭 하나구나. 다 합쳐서 9천 400벅이란다."
일라이가 1만 벅 지폐를 서스럼없이 내밀자 아이가 눈을 홉떴다. 나중에 자신도 크면 꼭 일라이처럼 망설임 없이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라고 다짐하며, 여성이 주섬주섬 작은 봉투에 담아온 것을 포장하는 것을 바라봤다. 여성은 그런 아이를 흘긋 보다가 봉투를 잠시 올려두더니 주방으로 덜컥 들어가 버렸다.
"잠시만 기다리렴."
아이가 기다리기도 잠시, 달그락 소리가 들리더니 머잖아 여성이 종이컵에 무언가를 담아 돌아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 작게 속삭였다. 물론 일라이에게도 들릴 만큼 목소리가 작지만은 않았지만,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려는 것 같았다.
"이건 삼촌이 없으니까 주는 선물이야." "진짜요?" "물론! 밀크티 마셔본 적 있니?" "…아뇨." "홍차 전용으로 나온다는 특별한 티 허니도 넣었단다. 홉킨스 삼촌에겐 비밀이야?"
아이는 컵홀더를 끼워주며 밀크티가 든 종이컵을 건네자 말갛게 웃었다. 일라이는 그런 여성을 보며 감사하다 고개를 거듭 숙이고 제과점을 나섰다. 아이는 그새를 못 참고 작은 플라스틱 캡을 열어 냄새를 맡아봤다. 좋은 냄새가 났다! 아이가 고개를 캡을 다시 꽉꽉 닫고는 고개를 들어 일라이를 올려다봤다.
"10분도 아까운 것 같아! 나 어서 가서 먹어볼래!"
산책이랍시고 언제 어디로 도망 칠지 모르는 아이를 돌봐야 하는 입장에서 모든 경호인력과 일라이가 간절하게 바라던 바였다. 일라이는 이름 모를 천사에게 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아이를 번쩍 안아들고 다시금 건물로 돌아갔다. 건물에 돌아간 뒤 아이는 봉투를 뒤적거려 폰던트 생쥐를 경호인력에게 하나하나 쥐여줬다. 경호원들은 자신의 손바닥보다 작고 어린애들이나 먹는 설탕 쥐를 받았다며 그 모습을 보던 다른 부서원에게 놀림을 당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는지 아이의 리본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번 머리를 토닥여주고 자리를 떠났다. 오늘도 한 건 했다. 아이는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7층까지 올라갔다.
"손 먼저 씻어." "씻었어!" "옷도 갈아입고." "그건 싫어! 티- 타임을 가질 거란 말이야!"
아이는 서둘러 자리를 만들었다. 노트북은 구석에 치우고, 1인용 소파에 덜컥 앉아 폰던트 생쥐를 그 앞 싸구려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특별히 홍차 전용 티 허니를 넣은 밀크티를 다시금 열며 아이는 뿌듯한 듯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라이는 아이가 어서 맞은편에 앉으라고 성화를 내자 못 이긴다는 듯 털썩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아이는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밀크티를 맛봤다. 처음엔 혀만 살짝 담갔다가, 이내 한 모금 눈을 질끈 감고 입에 머금어 삼켰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양손으로 고이 잡은 종이컵을 내려다봤다.
"향긋해! 입안에서- 우유 꽃이 피었어! 나도 이제 어-른이 된 것 같아!" "아직 한참 멀었다, 꼬맹아." "그렇지만 이제 홍차도 마실 수 있으니까 어른인 거야." "그게 어딜 봐서 홍차야? 아직 한참 멀었지!" "아니야!"
투닥거리며 이따금씩 시시덕대던 아이는 홀린듯 설탕 쥐도 먹지 않고 열심히 밀크티를 마셨다. 그 사이 하트가 7층 소회의실로 들어섰고, 일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트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그러든 말든 이제 밀크티에 푹 빠진 것 같았다.
"일라이 빌. 잘 있었나? 내게 보고도 없이 여기 있을 만큼?" "한 번만 봐주시죠, 하트.. 아이가 어서 티타임을 갖고 싶다고 졸라서요." "티타임?" "밀크티를 선물 받았거든요." "어쩐지 오늘따라 조용하다 했어. 그래서, 제과점에 왔으면 뇌물이 있어야지?" "폰던트 생쥐 어떠십니까?" "세상에! 아가가 그런 것도 사 왔니?" "욱."
만담을 깨는 소리는 헛구역질로 시작됐다. 두 사람이 아이를 돌아봤다. 토기가 치밀었는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던 아이는 멍하니 손을 내렸다. 토했다. 뭔가, 토했다. 아이는 자신의 두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새빨갛다. 방금 손바닥 위로 또 뚝뚝 뭔가 떨어졌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코가 따끈따끈했다. 속도 뜨겁다. 밀크티를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그렇지만 이렇게 새빨간 색이었나? 아까 본 밀크티 색은 연하고 예쁜 곰돌이 색이었는데……. 아이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두 사람을 쳐다봤다. 하트가 다급하게 문을 열고 로즈밀을 부르짖고, 일라이가 아이를 덥석 잡기 위해 다급하게 성큼 뛰는 것을 뒤로 아이의 시야가 멀어지고 이내 빙글 돌았다. 그리고 세상이 뚝 끊겨버렸다.
"퀸!! 퀸! 아이가 눈을 떴습니다!" "맙소사, 아가, 내 얼굴 보여? 누군지 알아보겠니? 응?"
아이가 눈을 뜬 것은 닷새가 지나고 나서였다. 아이가 눈을 뜨자 검은 고양이 가면을 쓴 하트가 다급하게 아이에게 말했고, 아이는 정신을 차리기가 무섭게 숨을 들이켜다 몸을 웅크렸다. 몸속이 불타는 것처럼 뜨겁고 아팠다. 아이는 양팔로 자신을 부둥켜안더니, 그대로 빼액 울음을 터뜨렸다. 로즈밀이 다급히 아이를 안아주며 달랬지만 아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이가 몸을 떨며 울자 하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 발만 동동 구르며 옆의 토끼 가면을 쓴 남성을 쳐다봤다.
아이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자 로즈밀은 아이의 등을 쓸어주며 품에 안았다. 아이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참담했다. 지킨다고 해놓고 아이마저 잃어버리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로즈밀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렇지만 그 생각보다 아이가 아프다고 우는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로즈밀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토닥여주며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달랬다. 아이는 훌쩍거리며 품속에서 뜨거운 이마를 기댔고, 연신 콜록댔다.
한참을 어르고 달래자 아이는 고통에 지쳤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다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 적은 양의 아편이라도 구해야 할까 깊게 고민하던 로즈밀은 기절한 아이를 다시 눕히며 파르르 떨리는 숨을 가다듬었다. 순식간에 다시 사랑스러운 여왕처럼 표정을 가다듬었지만 목에 잔뜩 선 핏대와 하얗게 질린 주먹에 주변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불안한 듯 서로 가까이 붙어있던 하트와 클로버는 자연스럽게 손을 뒤로하며 명령을 기다렸다.
"주동자가 킬러였다고요." "가족으로 사칭하기 위해 홉킨스 씨를 납치한 뒤 폭행하고, 고문해 정보를 얻은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킬러는 붙잡았나요?" "진작 붙잡았습니다. 연루된 조직도 지하 2층에 가둬둔 상태입니다." "내가 없어도 일처리 하나는 빠르군요. 클로버, 내 아이가 왜- 해독했음에도 아프다 하는 거죠?" "…아기씨가.. 독에 면역이 없기 때문입니다. 독으로 해독해야 했던지라.. 곧 괜찮아지실 겁니다."
로즈밀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온몸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결단을 내린듯 차분하게 입을 뗐다.
두 사람이 나가자 로즈밀은 숨을 가쁘게 색색대는 아이를 바라보며 무릎을 꿇더니 그대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킬러를 비롯한 연관 조직은 그 아이가 알아서 가지고 놀 것이다. 겸손과 순종의 미덕을 부르짖겠지. 그렇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아이를 노리는 손이 생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로즈밀은 셰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바깥의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었다. 로이드가 말했던 상냥하고 자상한, 아이에게 어떤 때도 묻지 않은 순수함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로즈밀은 결국 참지 못하고 숨죽여 울었다. 셰바에서 나고 자란 이상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848 둘 다 맛있는데...?!? 둘 다 아스에게 너무 어울려요 으윽 퐉스.... 아스는 사귀기 전엔 전자 사귀고 난 다음부턴 후자가 아닐까 생각중 제롬이가 씌워주는 건 우산 없어보이는 아스에게 어느 쪽으로 가? 하면서 살짝 우산 기울여주는 거라던가... 모른척 아스에게 우산 씌워주는 거라던가...
아. 망했다. 누굴 불러야 하나. 하교 시간에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가 조금은 원망스러워지려 하던 때였다. 망연자실 하늘을 보던 제 위로 드리워지는 우산 그림자에 눈을 깜빡였다. 옆을 보자 저보다 키가 조금은 큰 소년이 서 있었다. 분명, 같은 반이었나. 아니었나. 그건 잘 모르겠지만. 제게 우산을 기울여줬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서. 소녀는 조금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하얀 손이 슥 올라와 툭 하고 소년의 손에서 우산을 떼어냈다. 아무도 없는 현관에 우산이 나동그라졌다. 그렇게 비어버린 손을 소녀의 손이 살포시 쥐더니 냅다 빗속으로 이끌었다. 금방 지나갈 소나기는 제법 세찼다. 다섯 걸음만 나가도 흠뻑 젖어버릴 빗속으로 소녀는 달렸다. 소년을 데리고. 아하하. 웃는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경쾌하게 울렸다.
한참을 달리다 비가 그치고서야 소녀는 뜀박질을 멈췄다. 여즉 소년의 손을 꼬옥 쥔 채로 돌아보며 해맑게 말했다.
야행성. 적어도 에만은 재밌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가면 사이로 부스스 웃음을 흘렸다. 그마저도 기운 없는 웃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야행성이 맞긴 하다. 밤낮을 구분 짓지 않고 일한다지만 이상하게도 막상 어느 시간대라도 눈 붙이면 뜨는 시간이 밤이기 때문이다.
되묻는 소리에 에만은 고개를 한번 끄덕인다. 신발 속에도 칼이 있다는 뜻이었지만, 여성은 어쩐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듯싶다. 그렇다고 정정할 여유는 없었다. 당초 신발 벗으면 맨발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빈틈 많게 웃는 모습에 에만은 내심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막연히 부럽다고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느긋한 분위기에서 느긋한 성품을 가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피와 살이 튀는 곳에서 누군가의 상담을 해준다는 것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며 얌전히 뒤를 따른다.
…언젠가 상담을 받을 날이 올까? 온다면 어떤 주제일까? 너무 쓸데없는 생각이었나 잡념을 떨치고 방화문을 여는 모습을 지켜본다. 지하실은 수많은 서류가 있다. 이러니까 자료를 찾기 어려웠지. 아직도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여러 기록 사이를 지나며 에만은 여러 이름을 본다. 죄 처음 보는 이름뿐이라 기억에 남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 필사.. 그래도 될까요..?"
서류철을 받아든 에만은 두께감이 느껴지자 과연 오늘 내로 필사를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몸을 가볍게 떨었다. 일단 제일 첫 장을 넘겨볼까.. 에만은 하나하나 천천히 읽는 듯하면서도 제법 빠른 속도로 서류를 훑었다. 그리고 어느 한 부분에서 멈췄다.
상담자는 혈육이 자신을 살해하러 올 것이라며 불안을 호소. 환각증세 호소.
(다음장)
자신의 혈육이 지하 투기장의 사회자라 주장.
해당 지문은 당사자의 동의를 얻고 작성했음을 명시함. ─ 난 권력 다툼의 희생자에요. 위 그 녀석은 미쳤어요! 날 죽이러 올 거야! (중략) 지금은 요양 조직의 간호사로 일하면서 그 안에서 숨어 살고 있어요..
찾았다.
"이 부분만.. 필사해도 괜찮겠죠.. 혹시, 종이..가 있을까요. 펜은 있는데, 종이가 없어서.."
자캐가_죄를_저지르기_전에_누군가_신이_보고있다_라고_한다면 *후흐- 하는 가벼운 웃음소리* "신이 버린 도시에서 하기엔 그럴듯한 농담이네." "아, 난 날 짜증나게 하는 놈들 중에서 신 운운하는 놈이 제일 싫더라. 너부터 죽여줄게."
마법에_걸려_세상의_많은_사람들이_자캐를_좋아해주는데_자캐가_소중히_여기는_사람들만이_자캐를_싫어하게_된다면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 있어. 페로사는 온 몸을 던져서 그 마법을 푸는 방법을 찾았지. 아마 같은 일을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다면... 글쎄. 아마 워스트 엔딩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마저 외면당하고, 몸의 기력마저 모두 소진해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해골 같은 몰골로 더러운 뒷골목에 쓰러져서, 운명 앞에 희망이란 얼마나 허망한가-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실감하며 죽어가겠지.
자캐는_결혼상대로_어느정도 바람 안 핌. 순애파. 술 잘 마심. 술도 하고 담배도 하지만 매우 건강함. 요리 그럭저럭 잘함. 운전 그럭저럭 잘함. 수입 괜찮음. 아이가 생기면 휴직하고 담배도 끊을 자신 있음. 퇴근시간이 좀 문제려나. 뭐야 얘 여잔데 왜 조건 써놓고 보니 남자같지.
사랑한다는_말을_기대했냐는_말을_들은_자캐의_반응 -"아니, 뭐.. 보통 이런 타이밍에는 그렇지. 기대했다고 하면 어쩔 건데? 그렇게 말해줄 거야? 내가 말했잖아, 우린 어차피 평생 사랑할 것도 아니니까, 진심 담지 않아도 된다고." "..아, 설마 질렸어? 질린 거야? 그럼, 그건.. 조금 곤란한데.." "난 아직 당신 좋아해서.."
어째서일까. 분명 당신의 눈은 맹금류의 그것과 닮았는데도 스스로 말하길, 단순한 시력이었다면 궤를 달리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동체시력에 관해선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편은 아닌 것으로 해석되어 들려왔다.
"후후후... 그래도 그만큼 눈이 좋다는게 또 어딘가요~"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당신이 적대적으로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그녀는 얼마든지 호의를 품을 의향이 있었고, 행여나 유감스러운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녀는 사람을 쉬이 놓는 법이 없었다.
물론 그녀 스스로도 안되겠다 싶은 이는 내칠지도 모르나, 아직까진 그런 이들을 이 도시에선 마주친적이 없었다. 아무리 그녀에게 적대적으로 대한다 한들, 약간의 체벌과 정당한 선의 복수가 전부인 그녀에겐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일은 결코 간단히 일어나진 않는 법이었다.
그녀의 인간을 향한 호의는, 어쩌면 신의 그것과도 닮아있었으니까...
"음~ 어쩌면 행복회로가 오버클럭으로 구동 중인게 아닐까요~♡"
사람의 변덕은 행운만큼이나 변하기 쉬웠다.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 상황을 역전할 수 있었으며 그렇기에 가장 까다로운 계산식을 사용해야 했다. 우습게도, 결국 인간이 구축해낸 빌드에 맞춰진 그녀였지만 어느새부턴가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것을 인간을 해하는데에 사용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이런 도시에선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선 다른 사람을 해할줄도 알아야 하거늘, 그녀는 어째서인지 그것을 매우 꺼려했다.
로봇의 3원칙 같은건 쓸모없었다. 그녀는 이미 죽은 자를 되살린 것이기에 로봇의 범주에 해당되나, 신체를 재구성해 탄생한 존재이기에 인조인간의 범주에도 해당되는 교집합적인 존재니까.
인간에게 우호적으로 행동하라고 프로그래밍 된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알고리즘은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정말로 혼란기의 베르셰바를 바로잡으려 했던 존재라면 그런 메뉴얼 따위 필요 없을 테니까.
그럼 어째서? 이유는 간단했다.
죄책감.
그녀는 이 마경에서 죄의식을 가지는 몇 안되는 인물에 속했다.
혹자는 그렇게 말했다. '고도로 발전된 과학은 마법과 다르지 않다.'라고, 그게 정말 가능하다면 그녀가 존재하는 것도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닐거라 생각했다.
혼을 불어넣어 움직이는 자동인형을 만들고, 숨을 거둔 인형사의 이야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책이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탄식과 후회가 만들어낸 당대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우던 결정체, 그것이 세상에겐 죄의 산물이 될지라도...
"어머나~ 그럼 더 서둘러야 하는거 아닌가요~?"
앞서나가는 당신에게도 들릴 정도의 웃음소리는 그러잖아도 길을 서두르는 이에겐 놀리는듯이 들릴지도 몰랐으나 그 목소리엔 어떠한 악의도, 조롱도 담겨있지 않았다. 여느때처럼 그녀는 약간의 익살스러움과 장난을 더했을 뿐일까, 이래선 나중엔 소악마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터였다.
"일반인들은 보통 '그걸' 기행이라고 하거든요~"
이런 곳으로 지나가나 싶은 길, 그녀에게도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어지간히도 좁게 느껴지는 사잇길을 지나는 것은 분명 이 도시에서는 흔치 않은 행동이 분명했다.
>>882 으악 으아아악(머리깸) 아스타로테 진짜 퐉스.... 어떻게 이런 생각을...(부들부들)
시작은 괜한 참견이었다. 비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에,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어 가만히 지켜보았다. 언듯 보기에 우산이 없어 난처한 듯 싶었다. 우산을 내밀기까지 고민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무의식적인 행동에 가까웠을까. 우스운 것은, 그는 여인을 몰랐다. 오며가며 상급생의 교실에서 얼굴을 본 기억이 날 뿐이었다. 선배인지, 아닌지.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우산을 씌워준 소녀를 살짝 내려다본다. 그 눈빛에 순간 짓궂음이 서려, 그는 당황한 듯 몸을 주춤거렸다.
순식간이었다. 소녀의 가녀린 손이 자신의 손에서 우산을 가져갔다. 우산이 나동그라지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소녀의 손에 이끌려 비가 내리는 길가로 뛰어갔다. 처음엔 당황하여 몇번 휘청거리면서도, 소년의 시선 끝에는 소녀가 있었다. 비를 맞으면서도 웃는 소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는 소녀를 따라 달리고, 소리없이 웃음을 흘리고, 옷이 젖는지도 모른 채 비가 그칠 때까지 소녀를 따라 뛰었다.
소녀가 뜀박질을 멈추자 소년 역시 발을 멈춘다. 이어진 소녀의 말은, 소년을 또 한번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된다면, 응. 좋아."
거기에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으슬으슬한 한기가 몸 전체에 도는 가운데, 유일하게 따뜻했던 손 덕분이었다. 부드러운 소녀의 손에 쥐여진, 자신의 손.
대답을 하고 나니 어느새 비가 그친 것을 알아차렸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빛 한 줄기가, 소녀의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 해맑은 웃음이 물방울에 반사된 햇빛과 함께 반짝거렸다.
여전히 웃는 상으로 바라보던 아야는 이내 걸치고 있던 외투 안에 손을 넣더니 작은 사이즈의 스케치북을 꺼냈다.
"주머니가 여러개 있는 옷이라서 이런 것도 들어갑니다 아야야야. 덕분에 자주 입고 있네요."
자연스럽게 한장을 북 뜯어서 건내주- 기 직전 다시 황급히 종이를 회수한 후 반으로 접어 어찌어찌 다시 품 안으로 넣는다. 언뜻 보기에도 각종 글씨들이 빼곡히 쓰여진 부분이 보이는 종이였다.
"...방금 이미 쓴 종이를 드릴 뻔 했네요 아야야야. 제가 정신도 없었지."
이내 다시 종이를 뜯어내서 건낸다. 하얀 종이와는 대조되게 창백한 톤이었던 볼은 이미 발간 색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그건 그렇고, 진짜 별 의미 없고 대답 안해도 되는 질문이기는 한데, 하나만 해도 될까요?"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서 질문을 하나 던지는 아야였다.
"-혹시, 요즘 들어서 고민거리나- 아니면 저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라거나. 그런 것들 있으신가요?"
-그리고! 상담하는 이로서의 마음가짐과 명예를 걸고 비밀은... 지키려고 노력할게요! 나름대로 마지막은 진심이었다. 무안함에 직업병 비슷하게 던진 화두기도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이- 부엉이 씨에게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게 아야의 마음이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가볍게 던진 화두로서였다. 거절해도 그러러니 하고 넘어가고 대답해도 한두마디 정도 참견할 정도의.
그러게 매 맞을 짓을 대체 왜 하는 것인지. 제 옆구리에 손을 얹으며 한심하다는 얼굴로 진을 바라본다. 식당에서 놀림당했던 것까지 해서 때린다면 그 정강이뼈에 금이 갈 만큼 때려도 부족할 것이다. 아예 가루가 되도록 부숴버려야지 조금이나마 만족할 수 있을까. 이어지는 제 물음에 대한 답에 시안은 썩은 얼굴이 된다. 우기는 꼴이 나잇값을 못한다. 내가 미쳤지. 이런 인간이랑 사업을 하게 되다니. 앞으로를 생각하니 한숨만 나와 고개를 내젓다가, 달려드는 당신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어올려진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고. 죽여버릴 거란 듯 매섭게 노려본다. 들린 당신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대로 돌려지고, 이내 내동댕이쳐진 시안은 미동도 없이 쓰러진 채로 있는다.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에 어이가 없는 것도 잠깐. 노한 웃음소리를 내며 시안은 분노로 파들파들 몸을 떤다.
>>909 음 역시 제롬주 이런 반응 기대했다구 (꼬오옥)(부빗)(이마볼입쪽쪽쪽) 동급생일까 싶었는데 역시 선후배가 좋겠지 1년차도 좋고 2년차도 좋고 그렇게 아스네 집에 간 제롬이는 현관에서부터 팔짱 낀 남정네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뱀파 썰도 맛있지만 학창시절 썰도 너무 좋다 젠장 모든 평행세계의 제롬이를 다 가질테야....
>>939 으으으으 아스주 나빠요 이런 반응을 노리신 거지...(꾸왑)(품에 넣기)(쭈왑) 제롬주는 2년차가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입학식에서 우연히 만난 것도 가능하고 졸업식때 만나서 꽁냥대는 것도 가능하니까(아무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제롬이 얼어붙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전 모든 평행세계의 아스를 가질래요~ 아스랑 아스주 너무 좋아요...좋아해...
>>957 헤이즈 입장에서는 아픈 모습 안 보여주려고 약 먹기 시작한 건데, 더이상 약으로도 힘들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아야가 모르는 이유는 간단해요. 이걸 알고 있다고 가정하면 아야가 이렇게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거 같지가 않아서. 모르니까 이렇게 살고, 아직도 마약도 가끔 투여하고, 헤이즈 생각도 가끔이나마 웃으며 할 수 있는 거죠?
>>965 (품안에서 둥굴)(고롱고롱) 딱히 노린 건 아니지롱 에 진짠데 근데 2년차면 같이 다닐 시간 1년 밖에 없어서 아스가 아쉬워해(?) ㅋㅋㅋ 어느쪽이든 일단 좋으니 상관 없겠지만 원래....아무도 없는것보다 누가 아래층에 있거나 옆방에 있는게 더 스릴 있(잡혀감) 히히히 뭐든 좋아해주는 제롬주도 너무 귀엽고 이쁘고.. 에잇 볼이나 내놧 (볼냠쫩)
주먹을 그러쥐고, 페로사는 팔뚝을 쉽게 돌렸다. 수갑이 무슨 플라스틱마냥 투두둑 부숴졌고, 팔에 매어놓은 밧줄들은 닳아빠진 노란색 고무줄이라도 된 듯이 후두둑 끊겨나갔다. 심혈을 기울여 고안한 모든 수단이 마치 우스운 모조품이나 장난감에 지나지 않기라도 하다는 듯이, 그녀를 물리적으로 구속해둔 모든 장치들이 무슨 CG를 보는 것마냥 자연스럽게 파괴돠고 터져나가는 모습이 가히 초현실적이었다.
"이건 날 묶는 데 올바른 방법이 아니거든. 그리고, 이런 거 필요없잖아?"
공간이 모자라 채 그녀에게 걸지 못한, 아니면 예비용으로 사뒀을 다른 구속구들. 페로사는 그 중에서 적당하다 싶은 것을 두 개 집어들었다.
"넌 이미 날 어디로도 가지 못할 만큼 충분히 속박했는데."
하나는 자신의 목에 걸고, 거기에 줄을 달고, 그 손잡이에 다른 걸 하나 채운다. 페로사가 부드럽게 손목을 거머쥐어온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길다란 줄의 손잡이가 수갑에 묶여 손목에 채워진다.
>>978 (무릎에 앉힘)(품에 등 기대게 해줌)(쓰담쓰담) 아무리 봐도 노리신 건데.... ㅋㅋㅋㅋㅋ 아스 너무 귀엽잖아... 졸업 이후에는 같이 살면 되지 않을까요 읍읍(?) 아스주 ㅋㅋㅋㅋㅋㅋㅋ 아스주는 이런 걸 좋아하신다...메모... 으아아앙 제 볼~~!!!!(볼 늘어남)(헤실) 시간이 흘러 OL이 된 아스랑 대학생 제롬이... 아니면 대학 선후배 사이인 제롬아스... 후후 아이디어는 넘쳐난다...
>>988 아닌데 히잉 (울망한 눈으로 올려다보기) 동거의 ㄷ만 나와도 칼을 빼 들 든든한 남정네들을 과연 제롬이가 설득할 수 있을까... (메모 뺏음) 이런 건 메모하는거 아니에요 호호 우리 착한 제롬주는 기억하지 않아도 된답니다아 으윽 언젠가 다 해보고 싶어... 에유가 이렇게 즐거운 앤캐는 또 첨이라 요즘 매일이 행복해 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