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걸려서 뭔가 답을 찾은 거 같은데 2초만에 까먹어버렸지 뭐야 내 인생이 그렇지 뭐 이따 보자고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제롬의 일과는 별개로 여인은 앤빌의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칵테일이 몹시 고팠었다. 못 해도 주에 한 잔은 꼬박꼬박 마시던 걸 몇 주나 끊었으니 나름의 금단 현상이 없었겠는가. 금주 아닌 금주를 끊게 해준 것에 대해서는 제롬에게 고마워 해야 할 지도 몰랐다. 이 일이 없었으면 여인이 앤빌에 오게 되는게 언제였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을 테니.
투박한 구리 머그잔에 담긴 술은 나오자마자 은근한 향으로 갈증을 불러 일으켰다. 얼른 들어서 몇 모금 들이키자 맛과 어우러진 향이 한층 더 신선했다. 적당한 청량감은 머릿속을 맑게 해주었고. 동시에 여즉 남아있던 울음의 흔적을 얼굴에서 사라지게 해주었다. 그만큼 조금 더 차가운 표정이 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잔을 내려놓고 습관적으로 손을 뻗던 여인은 목적지 잃은 손을 든 채로 페로사를 보며 말했다.
"롯시이. 오늘은 기본 안주 없는 날이야, 아니면 몇 주나 얼굴 안 비춘 친구한테는 안 주는 거야?"
톡톡. 하고 평소라면 접시가 있었을 자리를 두드리는 손짓과 히죽이는 표정, 평소처럼 돌아온 호칭이 페로사에게는 조금 얄미웠을 지도.
서로 술잔을 한 번씩 기울인 후에 여인과 제롬의 대화는 이어졌다. 페로사는 일단 관망할 생각인지 주문 받은 술을 내준 것 외엔 말이 없었다. 롯시는 그런 점이 참 좋아. 여인은 페로사를 보며 웃다가도 제롬을 향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차게 식은 얼굴을 내보였다. 어느 쪽이 진심인지. 어느 쪽도 진심이 아닌지. 알기 어렵게.
"...같잖네."
무얼 고를래. 라는 물음에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겠다며 여인이 지켜보고 선택하라는 말에 툭 하니 흘러나온 말이었다. 여인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시선만 옆으로 돌려 제롬을 보았다. 인형의 눈이 거기 있을 제롬을 비추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제롬이 손을 잡으려 했을 때, 피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주 잡지도 않았다. 시선만큼이나 차가운 손은 그저 잡혀 있어 줄 뿐이었다.
길게 이어 진 얘기는 정말 듣고 싶은 것이긴 했으나. 이런 식으로 듣고 싶지 않았다는 생각이 더 컸다. 어째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걸까. 왜일까. 여인은 제롬의 얘기가 끝난 후에도 잠시간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듯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술을 천천히 마셨다. 반쯤 빈 술잔을 코스터 위에 올려놓으며 여인이 말을 꺼냈다.
"내가 사람인 이상. 항상 똑같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가능하면 내 철칙을 지키려 했어.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는 거. 그러니까 당장은 아니어도 네가 언젠가 너에 대한 걸 얘기 해줄 거라 어디선가 믿고 기다렸던 거야. 하지만 너는 그 믿음을 깼고. 나는 그것에 대해 화가 났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고서야 너한테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거든."
여인은 제롬이 잡고 있던 손을 빼내어 제롬에게 뻗었다. 하얀 손이 손끝으로 제롬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가 싶더니 휙 내려가 제롬의 옷깃을 잡아 쥐었다. 손을 따라 천천히 돌아서 제롬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 날 나는 이미 준비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어. 네가 어떤 사람이든. 무엇을 감췄든.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어. 그런데 너는 그걸 네 생각만으로 망쳐버렸지. 앞서 말한 선택은 그런 널 위한 벌이야. 제제. 네 행동으로 인해 너와 내 관계가 무너지는, 아니, 네 손으로 무너지게 만드는 선택을 하는게. 내가 네게 주는 벌인 거야. 그것만큼 네게 괴로운 일은 없을 테니까. 아니 그렇니."
거기까지 말한 여인은 잡을 때처럼 예고 없이 손을 놓고 몸을 돌렸다. 손을 올려 머리를 슥슥 빗어 정리하고 꺼진 폰 액정에 얼굴을 한번 비춰보고는 페로사를 보며 물었다.
"롯시. 무대, 지금 쓸 수 있어? 오랜 만에 왔으니 한 곡 뽑아 줘야지."
대체 무얼 하고 싶은 건지. 무엇을 생각하는 건지. 여인의 행동은 종 잡을 수 없었을 터였다.
시안의 뺨에는 그 홍조가 아직 다 가시지 않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난 후에는 공허뿐이다. 제 감정이 어떠했는지도 모르겠고, 뒤늦게 몰려오는 피로감에 지쳐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는. 텅 빈 상태가 되어 버린다. 혼이 나간 듯 꼼짝하지 않은 채, 시안은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을까. 고개를 돌려 당신을 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힘에 겨운 탓인지 돌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당신의 목소리 밖에 듣지 못하는 거지만. 시안은 그런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돌아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느낀다. 처음부터 기대했던 건 없었겠지. 키스를 할 수 있겠냐는 당신의 말에 용기를 내어 답했던 건데. 이번에는 제 수치심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도망칠 생각을 한다.
"그래요. 이젠 안 좋아하게 되었으니까요. " "그리고 진정 내게 아무것도 아닌 건 없는데. 그러길 바라는 거 같으니, 그렇게 생각할게요."
갈라지며,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
"그럼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데요?"
격한 감정을 느끼며 시안은 그렇게 말한다. 선물도, 어떠한 말도 당신의 기분을 좋게 할 수는 없다. 영영 당신의 웃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할 것 같다 생각한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당신을 보나, 재빨리 숙여낸다. 그리고 시안은 돌아서며 당신과 반대로 현관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