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의 눈송이 이월처럼 따스한 마음 평소라면 북소리에 맞춰 행진하거나 만우절의 거짓말에 속지 않겠지만 유월의 결혼식에는 가장 멋진 춤을 추기를 의지의 힘, 줄리우스와 아우구스투스 아아 당신도 알지, 그저 우리 뿐이라는 걸 구월에 돌아온 새로운 학기에는 너도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여인이 먼저 말을 건 것에 의미는 없었다.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쩌다 같은 가게에서 어쩌다 같은 시간대에 만난 사람에게 사소하든 거창하든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그것이 후에 어떻게 될지 여인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 도시에서 인연이란 그런 것이었다.
자신을 훑는 시선, 이 짧게나마 있었다고 느꼈다. 선글라스 때문에 확실하게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머리부터 발 끝까지 길게 훑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그런 시선은 익숙했다. 첫 거래를 트기 위해 만든 자리에서 상대가 보내는 듯한 시선은 너무 흔했다. 일일히 반응할 필요도 없이.
"통이 큰 것에 비해 꽤나 신랄하구나."
새로운 지폐가 진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몇 장이고 얼마 일지 가늠 해보려다 관뒀다. 상대도 매번 세어가며 주는 것도 아닌 듯 하고. 저만한 금액을 주는 건 모종의 이유가 있을 수도 있으니. 오늘은 오프 날인 만큼 깊게 생각하는 건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곧 새로 나온 잔과 치즈 플레이트를 보고 역시...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음. 처음이네. 지나가는 길에 적당히 들렀지."
정확히는 돌아가는 길이지만 지나가는 길도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잠시 가볍게 잔을 흔들어 얼음과 위스키를 섞고 한 모금, 아니, 짧게 반 모금만 채워 넘겼다. 위스키의 알싸한 맛과 향이 사라지기 전에 치즈 조각을 입에 넣어 두 맛과 향이 섞이는 것을 즐기고. 잔에 가볍게 손을 대고서 말했다.
"초면에 그런 호의를 받기엔 부담스러우니. 마음만 받으마."
이 자리에 우연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기 위해. 정중하며 간략하게 진의 제안을 사양했다. 그리고 다시 술과 치즈를 삼켰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건네준 약이었다. 스텔라는 싱글싱글 웃으며 약이 섞인 술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 했던 말은 흘려들었다. 가족의 오빠는 약을 건네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란다고. 이걸 섞은 술을 마시면 네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포근해질 것이라고 했다.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할것이고 약효가 끝나면 네가 그토록 혐오하는 거리에 던져진 것처럼 아플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니 이렇게 아플테니 그 고통을 경험하고 끝내라고. 스텔라는 근육통이 심한것인지 총에 맞은 자리가 아픈 것인지 아프다고만 말했고 숨이 넘어갈듯했다. 한 손으로 옷자락을 꼭 붙잡고 그 어린 스텔라처럼 피피를 의지하다가도 자기도 그렇게 바라보면 그렇게 여겨줄것이냐는 말에 바로 눈빛을 바꿔 악을 질렀다.
" 그런데 넌 날 버리고 도망쳤잖아!!!!!!! "
그리고나면 다시 추위와 고통. 끔찍했다. 오한과 발열이 번갈아 온 몸을 휘감고 하반신에서부터 시작한 근육통이 번져나갔다. 총에 맞았던 자리가 아파왔지만 그보다 더 끔찍하고 그보다 더 아팠던 것은 이렇게나 증오하고 이렇게나 죽이고 싶은 사람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의 첫 가족이라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꼈던 가족이었다는 점이 끔찍이도 아팠다.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사실이, 가족에게 한 번 버림을 받고 또 한 번 버려졌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팠다. 그리고 차라리 만나지 않았었으면 좋았을텐데.
" 히이.. 오빠, 피피, 히익.. "
무서워.
스텔라는 금방이라도 넘어갈듯한 숨으로 그렇게 말했다. 무엇이 무서웠을까. 약의 부작용이 이렇게 강할 줄 몰랐다는게 무서웠을까, 아니면 지금 자신이 부작용 때문에 숨이 넘어가 죽을것같다는게 무서웠을까 그도 아니라면 영원히 자신의 첫 가족을 증오하게 될까 무서웠을까. 스텔라는 꼭 붙잡고있던 옷자락의 손을 뻗어 멱살을 틀어쥐듯 하고는 도망치자는 말에 이를 악물었다.
" 나는, 히익.. 달라.. 내 가족, 히익.. 내 사랑하는 가족들을 절대, 절대로 버리지 않아. 나는, 히익... 너 처럼 도망치지 않아. 내가 널 증오하기 때문에 이 증오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알아. 내 가족들이 나를.. 히익.. 이 정도로 증오한다면 난 그걸 견디지 못해. 그게 너무 무서워. "
돈에 익숙한 사람들은 태가 난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돈을 숭배하는 태도보단 돈을 무형의 물건과 바꾸는 태도가 더욱 배어있다는 뜻이다. 돈은 정말이지 여러 것들로 바꿀 수 있지 않던가. 바텐더의 입막음, 비즈니스 예의를 가르치는 장소, 그리고 간단한 술자리에서 말문을 트게 하는 용도로.
그렇듯 진은 굳이 거래처 상대가 아니더라도 푼돈은 쉽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술을 한 잔 사고 호감인 인상을 남기는 것은 굳이 비즈니스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바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으레 반가운 호의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바텐더에게 내민 돈을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야 있겠다만은-예를 들면 어떠한 약품을 술에 내오라던지- 그 정도로 철저한 사람은 개인 바에 오지 않는다. 소속된 조직의 신용할 수 있는 바를 가면 갔지.
그러니 눈 앞의 여식께서는 바를 찾아버릇하는 편도 아니거니와, 가벼운 호의를 부담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의외성도 지니셨단 이야기겠다. 별것도 아닌 걸 통이 크다고 말하기까지.
'어디 가두고 기른 것도 아닐테고. 그렇다면 그냥 책상물림 샌님이겠군.'
게다가 어떠한 행운으로 벼락부자가 된 가능성도 있겠지. 진은 눈썹을 한껏 올리고 가볍게 웃어보였다. 네가 싫다면야 어쩔 수 없지, 하는 뜻이었다. 이렇게 순박한 아가씨의 경우는 골려먹기도 재미없다. 골려먹을 생각도 없었지만.
무장형 순백 소녀의 모처럼 튀어나온 문장이 빈토레즈의 총구보다도 놀라운지 굳은 몸짓과 얼굴로 눈만을 연신 깜빡이던 그녀, 요시코가 굽혔던 허리를 도로 주욱하고 곧게 폈다. 아주 잠시동안이었지만, 모든 웃음기가 지워졌던 그 얼굴에, 다시 평소처럼 생긋생긋하고 미소가 피어오른다.
"하얀 마녀 아가씨는 그렇게 길게 말할 줄도 아는구나? 이 요시코 언니는 처음 봤어요! 조금 놀랐을지도★"
다만, 놀란 것은 그쪽이었나... 오히려 그 사실이 더욱 그녀의 흥미를 돋궜는지 꺄륵대면서 캄파넬라의 주위를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배회하기 시작한다.
놀라는 쪽은 그쪽인가. 평소 때에는 되도록 긴 말과 문장을 삼가하니까 분명 지금의 상황이 이례적이긴 했다. 그건 요시코가 보더라도 조금은 특이한 광경이긴할 것이다. 그에 반응하듯 생글생글 웃는게 썩은 과일을 씹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알 바 아님."
다만 놀라던 어쩌건 그 부분은 별로 신경쓸 구간은 아니였다. 이 지긋지긋한 재회를 빨리 끝내고 싶은 느낌이니까. 분명 히메라기 요시코가 이 도시에 있는 것은 뜻 밖의 일이다. 그렇지만 그게 어쨌냐고 한다면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었다. 적으로 만난다면 적으로서 상대할 뿐이고 협력을 해야한다면 협력을 할 뿐이다. 뭐 협력 중 폭주한다고 한다면 그 부분은 협력 측에 책임을 떠넘기면 그만. 이 독기 가득 찬 도시에서 사람을 만신창이로 죽이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였다.
"그렇다."
행여나 친구없다고 놀린다고 해서 발끈할 인간도 아니였다. 나는. 사전적인 단어 그 자체로만 머리속에서 넣어놓았지. 만들 생각도 우애가 무엇인지도 우정이 무엇인지도 그런건 단어사전의 내용 이상으로는 이해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롱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에에에- 아닌데! 엄-청 알 바인데~! 이게 얼마나 유니크한 모먼트인지 모르는 거야? 그러지말구~ 지금 녹음기 켤테니까 한 번만 더 해주면 안 돼? 응? 응-? 아아, 오늘 자면서 듣고싶어라~"
캄파넬라는 여전히 차가운 반응이었지만 이미 과거의 상처를 '그런' 한때의 형편좋은 추억으로 남긴 여자에겐 아무래도 좋은 모양인지, 아니면 뭐가 보이지 않는 건지... 그런 그녀의 반응 조차도 ASMR로 쓰겠다면서 알랑거리는 목소리로 졸라온다. 그리고 돌아온 방금 것과 다를 바 없는 대답.
"아하하하!! 뭐야 그게~! 설마했던 즉답?"
아니나 다를까, 긍정의 답이 돌아오자 웃음을 금치못하는 것이다. 대놓고 조롱하는 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물음을 내놓고 웃는것은 조롱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 그녀가 마음에 든 것처럼 엄지를 척 치켜 세워보이더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움직여 쓰러져있던 장대와도 같은 총을 들어올려 세우는 것이었다. '그럼-'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지금부터 내가 저 녀석들을 쫓아도 상관 없겠네~?"
요시코가 팔 전체를 게걸스럽게 움직여 노리쇠를 잡아당기는 것으로 약실을 까내자 그 안에 얌전히 잠들어 있던 황동색의 포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건물 안에 유혈을 불러오고, 비스트팀의 작전을 망치고, 결국엔 누군가의 악몽을 되살려 낸- 사람의 육신에겐 충분히 치사량인, 대전차 특효 알약. 요시코는 무언가에 고취된 눈으로 그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장의 친구처럼 보여서 흥미로워 보였는데~ 아니라면 역시 내 친구로 만드는 수 밖에는 없잖아★ 오늘의 친구는 내일의 적이라고 했던가~? 으응~ 잘 모르겠지만!"
- 철컹!
핸들을 놓아버리자 울리는 쇳소리가 마치 자신은 준비되었다고 외치는 것처럼 울려퍼졌다. 혀를 살짝 빼어내놓은 야수의 얼굴은 소풍 계획을 짜는 아이처럼 천진한 표정이었다.
감정이라는 건 여러모로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호감이라는 녀석은 상당히 성가시고도 까다로웠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우호적인 쪽으로 초석이 되어주기도 하나 상대에 따라 매번 방법을 달리 해주어야 하는 점이 몹시 골치 아픈 부분이었다. 그래서 어느 부류의 사람들은 상대를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여 맞추는 것으로 호감을 끌어내기도 하였는데. 이런 방식을 쓰는 사람들은 파악하지 못 한 상대로부터 어떠한 제스쳐가 들어왔을 때 반응이 박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여인도 그런 쪽에 가까웠다.
한 잔의 호의를 거절하자 산뜻한 대답이 돌아왔다. 선글라스를 끼긴 했지만 표정이 얼추 보였기에. 말 그대로 아쉬워 하는 듯 보였다. 정말 그랬을까. 여인은 문득 진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여인에 대해서 어떻게 파악했을지. 어떤 감상을 했을지. 이 자리에 의미를 두지 않겠다 여겼던게 바로 조금 전임에도. 저 선글라스 너머 눈동자 뒷편에 무엇을 감췄는가 들춰보고 싶어졌다.
여인은 잔을 내려놓고 테이블에 살짝 상체를 기댔다. 잔을 놓은 손으로 적당히 내려놓고서 검지와 중지로 토독 토독 테이블을 두드렸다. 무언가 생각하듯이.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손이 멈추고 여인이 말했다.
"권하는 잔을 받아야만 말을 틀 수 있는 건 아니지. 내 사양이 그리 보였다면 섭한 걸."
진의 표정처럼 확연한 변화는 없었지만 여인의 입술도 희미하게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만든 것에 불과했지만.
"쉬러 나와서 괜한 후일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 뿐이란다. 사적인 시간엔 그럴 법도 하지 않니."
말만 보면 동의를 구하는 듯 하면서도 여인의 태도는 딱히 대답을 바라는 건 아닌 쪽이었다. 그저 그러하니 듣고 흘려넘겨도 좋다. 그런 식으로. 여인은 손을 한번 까딱이고 태연히 말을 이었다.
"이 잔을 비울 때 까지. 만이라도 좋다면 말상대가 되어줄 수 있단다. 원한다면."
그리 제안을 내놓고 어떻게 할 거냐는 듯 지그시 바라보았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시선은 충분히 느껴졌겠지.
프로스페로는 돈이 든 가방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최근 들어 앤빌, 다시 말해 페로사로부터 의뢰가 오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나 이번 시체는 꽤 끔찍한 꼴이었지. 하지만 프로스페로는 이것들의 이유를 물을 수 없다. 묻는다면 자신의 가장 큰 대전제를 제 손으로 부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계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 가느다란 선 밖으로 벗어나선 안 된다. 설령 그것이 얄팍한 우정, 혹은 그 비슷한 감정으로 엮인 사이일지언정.
"오랜만."
이 곳은 변한 게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프로스페로가 이미 한 잔 걸치고 왔다는 것 뿐일까. 최근 들어 힘든 일이 많아졌다.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돈 대령하러 왔지, 그럼..."
실 웃으며 돈가방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저번에 못 받은 안주 달라고 땡깡 한 번 피워볼까!"
조금 취한 상태다.
"사과주도 받아야 하고 말이야."
기분 좋게 취한 상태다. 입꼬리 올려 웃으면서도 그것 가리지 않는 꼴이 퍽 기계가 아닌 사람 행세라도 하는 것 같다. 어딘가 말랑해진 분위기도 난다. 다시 말해, 평소같이 쥐구멍 파고들듯 입 꾹 닫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란 소리도 된다
무너지듯 웃었다. 매의 날개, 천둥. 병아리 비명소리. 손톱, 손톱, 수천 개의 입, 그리고 입. 절망이 목을 죄어오니 숨을 쉬기 위해선 웃어야 했다. 그리고 스텔라 솔로몬스, 네가 내 가장 큰 절망이로다. 삶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네 존재가 내 가슴을 짓누른다. 익숙한 흉통이 온 몸을 찧고 뭉갠다. 나는 가루가 되어 비명을 지른다. 차라리 죽여 주세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나아. 어렸던 사내가 빵을 먹던 방 바닥 아래서 희미하게 들려왔던 비명들. 그리고 지금은 사내가 웃음을 통해 그리 비명지르고 있다. 일종의 카르마일지도 모른다.
"도망치지 않았어, 난, 난,"
죽고 싶을 때마다 널 생각했어. 내가 정신을 잃고 괴물이 될 뻔한 낭떠러지에서 항상 네 환영을 붙들었어.
"나는..."
늑대랑 같이 한솥밥을 먹었어. 그 자는 내 몸에 칼을 꽂다가도 다정하게 입맞춰줬어. 나는 애정과 폭력을 분간하기 어려운 어른으로 자라버렸어. 그러면서도 네 또래, 내 또래 아이들이 내 방 바닥 아래서 고문받고 있단 걸 알았어. 내가 그 애들 피를 팔아넘겨 번 돈으로 산 수프와 빵으로 연명하고 있단 걸 무의식중에 알아버렸어...
이성과 비이성 맞물리지 않은 대화가 오고 가는 것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지만 녀석을 상대하는 것으로 시간을 충분히 벌어놓은지 오래였다.몇년전을 생각한다면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짜놓은 내 전략이 가장 적절한 판단이었다. 눈 앞에 장난감이 놓여있으니 거기에 관심을 두게하는게 가장 좋겠지.
"누가 그걸 허락했지? 히메라기 요시코."
VSS를 들고있는 쪽과 반대쪽 손으로 쥐고 누르면 폭발하는 원격 스위치를 빙글빙글 돌려 보여주고는 안그래도 눈매가 날카로우니 인상쓰면 얼굴 못생겨진다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며 인상을 쓰고는 요시코를 바라본다. 누군가는 그것을 매의 눈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던가. 그리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눈을 가지고 그런 미친 작전을 혼자서 부담하고 그걸 미쳤다고 말할 수 밖에 성사해내기에 하얀 마녀라고 부른다고.
"행여나 내 허락없이 여길 나가려고 한다면 둘다 이 얄팍한 콘크리트 건물의 조난자로 전락하는 거다."
오늘은 정말 최악의 날이었다. 말을 많이하는 것 만으로도 이미 최악이지만, 녀석과의 조우도 최악이었고 날씨도 최악이었으며 임무가 끝나지 않았다는 그 사실도 최악이었고 가장 최악인 것은 이 미친 작전을 말하는 것은 세치의 혀로 만들어진 거짓말 뿐이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싫으니까.
A-13 구역의 지배 조직인 용궁의 막내는 명실상부하게 마오 란이다. 마오는 올해 정확하게 20살로, 멀리서 봐도 용궁 사람임을 짐작게 했다. 보드라운 꿀 빛 피부와 손을 완벽하게 가리고 붉은 천을 덧대 무늬를 낸 새카만 한푸, 꽃망울이 새겨진 비녀를 통해 양 갈래로 틀어올린 검은 생머리, 용왕이 친히 하사해 그 동그란 머리카락 주변에 달린 모란 장식까지. 마오는 용궁을 상징하는 전통적이고 고귀한듯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 우아한 여식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지만 도도한 외견과 달리 마오는 방방 뛰는 존재였다. 동글동글하니 사랑스러운 미소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고, 긴 소매를 파닥거리며 신나게 뛰어다닐 적이면 한창 세상이 신기해 이리저리 뛰노는 강아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오가 품위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면 용궁 바깥사람은 대체 어떻게 저 여자가 그 차분한 성품을 추구하는 용왕의 최측근인지 의문을 품었다. 그렇지만 그건 용궁 바깥의 사람들이 가진 의문일 뿐, 용궁 안 사람은 그런 마오를 딱 용궁의 사람이라 평했다. 가장 먼저 용왕이 직접 데려왔으며, 전속 히트맨이고, 그 재능이 무시무시해 단 한 달 만에 용왕의 최측근이 되어 모란 장식을 하사받았으며, 무엇보다 용왕에게 충성도 아닌 맹종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작 한 달 용궁에 있던 것 때문인지 마오는 다른 사람에 비해 사고를 잘 치는 편이었다. 가령 저번에 앤빌에서 잔뜩 취해 돌아온 것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맛본 첫 술인데다 자신의 주량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인해 이리비틀 저리비틀대며 주사를 부리다 용왕이 직접 목덜미를 쳐 기절까지 시킨 것이다. 이정도는 조직의 위신에 큰 해를 입히지 않아 사고라고 평하긴 어려웠지만, 문제는 그 뒤였다.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난 마오가 옥체가 닿았다며 기뻐 방방 뛸 때 같은 조직원이 저급한 농담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란 자매, 이러다 승은이라도 입는 날엔 죽겠어?" "뭐라는 거람! 그거 희롱이에요!" 뭐가 재밌는지 껄껄대며 웃는 두 남정네를 노려보던 마오는 그날 처음으로 조직원에게 정색했다. 아랫입술을 내놓고 비죽대더니, 아예 툴툴대기까지 한 것이다. "그리고 천 형제는 바보예요? 아이돌을 팬사인회에서 만난다고 해도 날 봐주고 손 맞잡아주고 이름 불러주는 걸로 세상을 다 가진 가지 결혼까지 망상하지는 않잖아요! 남편 남편 해도 그거 다 최애라서 그런 거지! 내가 행복해 줄 재력이 있어 힘이 있어!!" "란 자매는 힘이 있으니까 가능성은 있지." "그래도 마오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아, 아닌가? 일단 금단의 사랑이지만.. 나이차는 반발하는 사람을 전부 쏴버리면 되는 일이고.." "그래, 그래. 거기까지 하는 게 좋겠다." "천 형제가 먼저 시작했어요!!" "아니, 란 자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리고 마오는 승은 입기보다는.. 따거나 행복하실 분이 승은을 입는 걸 구경하는 쪽이에요!! 그게 더-" "개호주 한 마리가 용을 넘보는구나." "헉, 따거." 마오는 용왕이 뒷짐을 지고 서있자 딸꾹, 하고 딸꾹질을 했다. 그 용왕이 친히 상태를 확인하러 왔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뒤에서 꿀물이 든 잔을 대접에 받쳐 가져오던 연 씨마저 황당하단 시선으로 마오를 쳐다보고 있었다. 피바람이 몰아칠 것 같은 살벌한 추위 속에서 용왕은 느긋하게 미소를 지었다. "란 자매는 당분간 경비일세." 용궁의 떠오르는 신예인 마오가 카지노 계단의 경비를 서는 것은 꽤나 드문 일이었다. 그것도 제일 아래, 1층에서 카지노 경비나 서게 된 것이다. 늘 계단 최상층에 있거나 용왕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마오는 잔뜩 풀이 죽어있었다. 가장 고참인 연 씨에게 징징대봐도 달라지는 것이 하나 없었다. 그 당시의 떠올릴수록 마오는 몸을 뒤틀며 산 채로 손에 대못이 박혀 매달린 죄인들이 있는 카지노 옥상 외벽을 타고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쥐구멍이 있다면 그 안에 갇혀 영영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오는 숨지 않기로 했다. 용왕이 퇴출이 아닌 친히 경비를 맡긴 것은 그만큼의 신뢰가 있다는 뜻이고, 이런 일로 도망치면 남은 기회도 싹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되레 일을 더 열심히 해서 가산점을 얻고, 다시 히트맨 일을 복귀해서 멋있는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면 용왕님도 자신을 다시 귀여워해 줄 것이다. 아니면 정말로 승은을……. 헛된 망상에 마오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젓다 허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열심히 하자!" 마오가 힘차게 외쳤을 때, 한 남성이 계단 근처로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드디어 첫 일을 할 때가 왔다. 마오는 넓은 소맷단으로 입을 가리고 종종걸음으로 마주 다가갔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적어도 이곳의 단골은 아니란 소리다. 건전하게 즐기다 가는 사람도 많은 곳인만큼 마오는 어지간한 단골의 얼굴을 꿰고 있었다. 마주한 남성은 왜소했고, 피골이 상접했다. 눈가의 다크서클은 짙고, 머리는 부스스했다. 남성의 손에는 예쁘게 포장 된 상자가 있었다. 마오는 상자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폭탄일까? 아닐 것이다. 모두 밖에서 확인하니까. 그렇다면 이건 무슨 선물일까? 마오는 상자에서 단내가 나는 걸 깨달았다. 아! 간식인가? 그럼 누굴 주는 걸까? 마오는 남루한 행색의 남성에게도 친절하게 질문했다. "용무가아아, 있어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보낸.. 선물입니다. 부디 따거와.. 여러분께 헌상하는 것이라고.. 위가, 연 형제와 란 자매에게, 아래가, 따거..께.." "부엉이가? 신뢰할 수 있어요?" "겨울.. 겨울밤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면 마오 주세요! 마오가 가져다 드릴 게요?" "그, 그리고.. 또.." "네에?" "……곧 올라갈 테니, 독대를, 요청하신다고.. 다만.. 그.. 그게.." "알겠어요! 비밀로 해달란 거죠?" 마오가 윙크하자 남성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예쁘게 포장된 상자 두 개를 마오에게 안겨주고는 도망치듯 카지노 깊숙한 곳에 자리하더니 상황을 보지도 않고 올인을 외쳤다. 아직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워가는 마오지만, 저 모습을 보아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인생을 망쳐버린 사람을 심부름꾼으로 보내 결국 지옥 끝자락에서도 밀려 떨어지게끔 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오는 단내가 나는 상자에 코를 대고 흡, 하고 냄새를 맡았다. 초콜릿 냄새가 났다! 마오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연 씨도 다크초콜릿을 좋아하니 같이 나눠 먹어야지. 마오는 상자를 높게 들어 올리며 다른 경호 인력에게 외쳤다. "마오 이제 올라갈 수 있는 기회 생겼지롱! 부럽죠! 이거 절-대 근무 태만 아니니까! 다녀올게요! 심부름하는 거야!" 다른 조직원이 뭐라 할 새도 없이 마오는 연 씨가 있을 최상층을 향해 상자를 안고 높은 계단을 신나게 두어 계단씩 겅중겅중 뛰어 올라갔다. 맛있는 초콜릿. 부엉이는 천사다! 맛있는 음식을 주면 모두 천사다. 그렇지만 심부름꾼은 악마 같았다. 어떻게 그런 악마 같은 생각을 하지? 자신이 아무리 뇌를 굴려도 그 정도의 수는 쓰지 못할 것 같았다. 마오는 결론을 내렸다. 부엉이는 대천사 미카엘도 기겁하며 도망칠 것 같은 사람이야! 아마 부엉이랑 나는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란 자매. 1층 경비인 녀석이 올라오면 어쩌잔 거야." "연 형제! 연 형제! 부엉이가 선물을 보냈어요! 편지도 있으니까 이건 심부름이고, 마오가 해도 되는 일이에요!" "내가 널 어떻게 말리겠니. 편지라도 읽어보렴. 네 글 읽는 솜씨를 오래간만에 점검해 봐야지." "이제 어려운 글자도 읽을 수 있거든요?" 마오는 용왕의 아량 넓은 마음 덕분에 이제 글을 떼 편지도 읽을 수 있다. 여전히 손자병법이니 삼국지니 그런 건 어렵지만, 성심성의껏 편지를 펼쳤다. 읽을 수 있는 한자는 단 한 줄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영어였다. 마오는 잠시 버벅거렸다. 편지 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노려보더니, 이내 충분히 정리가 되었는지 또랑또랑 톤 높은 목소리로 부엉이가 보낸 편지를 읽었다. "기체후- 일향만가앙! 집어치우고, 이 개쌍놈의 뱀 새끼를 위한 공물을 바치옵나이다아..? 연 사형, 개쌍놈이 뭐예요?" 연 씨는 표정을 구겼다. "몰라도 된다. 마저 읽으렴." "초콜릿은 란 자매와 연 형제를 위한 것이며.. 아래의 것은 용왕을 위해 헌상하는 것이니.. 모쪼록 즐기었으면 합니다? 또한 오늘은 용왕과의 독대가 있는 날이며,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남은 경비를 물러주시기르을, 간절히 청하는 바입니다아. 추우시인.. 우호적인 자에게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겨엄손과아.. 순종의.. 미덕을.. 잊지 마시길..?" "쉬운 말로 입 다물고 있으라는 뇌물이구나." "그러면 따거께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연 씨는 간식이 담긴 포장을 풀었다. "일단 먹고 생각하자. 부엉이는 따거께서 직접 바래다줄 정도의 우호적인 인물이니. 오, 좋은 초콜릿이구나." "헉, 파베 초콜릿이다! 마오 이거 다 먹어도 돼요?" "다섯 개만 먹어. 이 썩는다." "치사해!!" "그럼 일곱 개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줄게. 내가 이 선물을 따거께 바치고 올 때까지 초콜릿을 단 하나도 먹지 않는다는 조건이야." "절 뭘로 보는 거예요?! 버틸 수 있어요!!" "어디 두고 보자고." 연 씨가 상자를 주섬주섬 챙겨 알현실로 걸어 들어갈 때, 마오는 포장이 코코아파우더가 곱게 뿌려진 파베 초콜릿을 흘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휙 돌리며 침을 슥 닦았다. 고작 5분 남짓한 시간일 텐데 이 시간이 평생일 것 같았다. 문이 닫히자 마오는 침을 삼켰다. 딱 하나만, 하나만 먹어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연 형제, 내가 침대도 아닌 소파에 누워있는 것 말이더니?" "아뇨, 마오가 초콜릿을 다 먹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요." "귀여운 것, 여섯 개만 먹게끔 해." "형님, 너무 무른 것 아닌가요?" "어쩌겠어. 하는 행동거지가 애완동물 키우는 느낌이 들어서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으니 말이야." "그러다 잃는 날에 또 울면서 못 놓겠다 하시면 두 번 다시는 투기장의 짐승을 빼오지 못하게 할 겁니다." "형제, 자네도 참 나쁜 사람이야. 스마일리도 없는 판국에 내 남은 여흥마저 없애려 든다니. 그리고 내 상품을 내가 본다는데, 무엇이 문제라고?" "본인의 업보가 있으신 것이지요. 아들 삼는 건 괜찮지만 이젠 조직원으로 들이다니. 용궁의 격이 떨어집니다." "내 결정에 반항하는 건가?" "충신의 쓴 말이라 생각하시지요." "형제가 늘 그렇지. 한데, 그 상자는 무얼까?" "부엉이의 앞으로 온 공물입니다." "흥미가 동하니 두고 가거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연 씨는 잘 포장된 상자를 테이블 위에 두고는 알현실 문을 굳게 닫았다. 연 씨는 문을 닫기 전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니 "내가 이럴 줄 알았지. " 하고 중얼거렸다. 용왕은 그 모습에 마오가 안 봐도 초콜릿을 하나 먹었겠거니 생각했다. 그래도 죄 먹어치우지 않고 하나만 먹은 것은 장한 일이니 그가 지시한 대로 다섯 개는 더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용왕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랑스러운 조카가 대체 무얼 준비했을까 싶어 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편지를 향해 가장 먼저 손을 뻗었다. 정갈한 필기체를 보니 딱 봐도 아버지를 닮았다. 로즈밀은 고고한 인상과 달리 글씨를 개발새발로 썼기 때문이다. 즉견, 친애하는 외숙부께. 지난번 의뢰도 있었고 한두 번 본 사이가 아니라 서로의 상태를 어련히 잘 알고 있을 테니 안부는 이만 말 줄입니다. 본론. 외숙부께서 편지에 그런 내용을 쓰실 줄은 몰랐습니다. 조금의 거짓이 용납되는 셰바라 하더라도 방금 본 사이가 행방을 모른다고 대뜸 말한다면 조카의 입장에서 얼마나 당황스럽겠나요? 그렇지만 자비로운 마음을 담아 이렇게 외숙부께서 좋아하는 간식을 선물하고자 합니다. 어렵게 구했으니 부디 입맛에 맞으셨으면 합니다. 이만 말 줄입니다. 나머지는 직접 해드릴 테니. 용왕은 상자를 풀었다. 리본이 풀리고 보인 것은 가지런히 놓인 젖은 각설탕과 브라우니, 그리고 월병이었다. 어렵게 구했으니.. 용왕은 이 뜻을 알고 있었다. 편지를 쥔 손이 달달 떨렸다. 어찌할 줄 모르며 속절없이 떨리던 손이 편지를 구겨 저 멀리 던져버렸다. 용왕의 세상이 1년씩 뒤로 가고 있었다. 1년, 2년.. 순간 토기가 치밀어올라 용왕은 허리를 숙여 헛구역질을 했다.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하다 결국 희멀건 위액을 토했다. 역겹다는 생각도, 경황도 겨를도 없었다. 순간 시야가 아찔하게 점멸했다. 당장 침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잠에 들어야만 했다. 평소에 그랬듯 늘 잠에 들면 모두 없던 일이 될 것이다. 연 형제가 알아서 치울 것이다. 용왕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잠시 멈춰 섰다. 침소가 어디지? 북쪽이다. 그런데 북쪽은 또 어디지? 어디로 가야 북쪽이 되는 거지? 혼란스러웠다. 고작 간식 몇 개로 벌써부터 세상이 빙 도는 느낌이었다. 기감을 살피려 들었으나 단내가 주변의 기감을 살피는 걸 방해했다. 하는 수없이 용왕은 손을 뻗어 주변을 더듬거렸다. 평소 같으면 뭐라도 잡혔을 텐데 오늘따라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용왕이 욕을 속으로 씹어뱉었다. 벌써 세상이 10년 전이 되었다. 더 뒤로 가면 안 된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틴다 한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어찌어찌 걷기 시작했을 때, 순간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헛발을 디딘 것 같았다. 손을 뻗어 더듬어도 잡히는 것이 일절 없었다. 점점 세상이 바뀌고 들리지 않을 것들이 들렸다. 고개를 쭉 빼들고 집중해도 이곳은 용궁이 아닌 것 같았다. 용왕은 악을 질렀다. "여, 연 형제!!! 마오!!! 게 아무도 없느냐, 게 아무도.. 어디 계십니까? 어, 어디에.. 아아.. 아무도.. 아무도 없습니까..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나를 두고 대체, 어디로.." 용왕은 몸을 웅크렸다. 버틸 수 없어 세상이 암전 될 것이다. 그러면 그는 또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만 한다. 아마 연 씨가 상황이 이상함을 직감하고 오기 전까지는 계속. 세상이 빙글 뒤집혀 과거로 돌아가기 직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 씨인가? 아니다. 용왕은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쭉 빼들었다. 문이 닫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누군가 걸어오는 건 확실했다. 이렇게 소리 없는 발걸음이 익숙했다. 이제 다시는 없을 발걸음 소리와도 같았다. 허공을 경황없이 훑는 눈동자가 용케 소리가 난 방향을 향했다. 정면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용왕을 끌어안았다. 다독여주는 온기 가득한 행동과 달리 용왕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숨이 점점 가빠졌다. 과거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온기도, 소리도 있어서는 안 될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용왕을 겨우 과거에서 끄집어낸 건 익숙하지 않지만 누군가를 많이 빼닮은 낭랑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아무도 없어요.. 내가 다 물렸거든요." "미카엘,..? 미카엘, 너니? 네가.. 네가 어찌.." 웅크려 앉은 미카엘은 용왕을 끌어안던 팔을 풀고 양 뺨 위에 손을 얹더니 그대로 마주 봤다. 정확히는 내려다봤다. 용왕의 눈은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다. 용왕의 눈가는 붉었다. 미카엘이 걸어오며 봤던 것은 구토의 흔적이었다. 먹은 것도 없이 구토를 하면 나오는 희멀건 위액. 이 정도로 용왕이 심각할 줄은 몰랐다. 아니, 알았다. 알면서도 그랬다. "가엾기도 해라.." 뺨을 쓸던 손 중 하나가 움직였다. 가느다란 검지와 엄지가 턱을 틀어 억지로 틈을 벌렸다. 작은 아이의 손아귀 힘이라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능숙하게 검지와 중지를 입술 틈새를 비집어 쑤셔 넣은 뒤, 입을 억지로 벌린 미카엘은 엄지로 용왕의 혀를 꽉 짓눌렀다. 다른 손가락으로는 턱을 틀어쥐어 제압했다. 짐짓 능숙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언제 당신에게 발언권을 주었죠?" 용왕은 눈을 홉떴다. 마음 같아선 지금 이 엄지를 힘껏 깨물 수 있었으나 힘이 죄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용왕은 숨을 씨근대며 치욕스러운지 몸을 가늘게 떨었다. 거친 숨이 엄지를 간지럽혔고, 혀는 분노에 꿈틀댔다. 미카엘은 그럴수록 엄지에 더 힘을 줬다. 그리고 제 외숙부이자 한 구역의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지배자를 감흥 없이 내려다보았다. 이렇게까지 제압 당할 정도로 큰 상처를 받은 같은 피해자 주제에 남을 이간질하는 그 꼴에 짜증이 치밀었다. 그래서 오늘, 미카엘은 천천히, 자못 익숙한 어조로 용왕에게 고하기로 했다. "그 입 다물고 잠자코 들어요, 오라버니. 오라버니와 달리.. 나는 인내심이 깊은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나왔으리라 생각하나요?" 용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톱 없는 엄지가 혀를 짓누른다 한들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겠지만은, 턱을 틀어쥐며 짓누르는 강도가 세 엄지가 혓바닥에 파고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섣불리 얘기했다간 혀가 동강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초점 없는 눈을 반항적으로 치켜뜨기만 할 뿐이었다. "오라버니께서 감히, 겸손과 순종의 미덕을 잊었기 때문이에요." 용왕의 몸이 우뚝 멈췄다. 수치심에 떨리던 몸도, 반항적인 눈도, 꿈틀대던 혀도, 대리석 바닥을 부러질 듯 박박 긁어대던 잔뜩 날이 선 손톱도 모두 멈췄다. 모든 것이 멈춘 용왕과 달리 미카엘은 멈추지 않았다. 턱을 틀지 않은 손으로 뺨을 쓸어주었지만 용왕은 그 손길이 사무치게 차갑다 생각했다. "어찌 같은 사람끼리 이리도 험하게 굴까요? 굳이 내 사자에게 불안감을 더 크게 심어줬어야만 했나요..? 혹시라도 내가 아래에 있다 착각한 건 아니겠지요.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의 은혜를 입은 사이인데.." 미카엘이 나긋하게 한 단어씩 뱉었다. 용왕의 눈을 마주했지만 용왕은 초점을 아직도 맞추지 못했다. 가엾은 사람이었다. "부디 내 이름이 미카엘, 로즈버드, 윈터본임을 반드시 그 머리에 새기도록 하세요. 오라버니의 해이해진 정신머리에.. 내가 직접 새겨주는 영광을 바라는 건 아닐 거 아니에요." 턱을 상냥하게 놓아주며 미카엘은 상냥한 웃음을 흘렸다. 얼이 빠진 용왕을 가볍게 끌어안으며 낭랑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보기보다 제법.. 자비로운 사람이랍니다. 가엾은 오라버니의 체면이 있으니 오늘은 넘어가 주도록 할게요. 비록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거나 다른 일을 행하지는 않겠지만.." 끌어안은 팔이 사무치게 차가웠다. 겨울밤이 천천히 떨어져나갔다. "내 사자를 건드린다면 두 번은 없을 거예요.." 미카엘이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용왕은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미카엘이 이번엔 구둣발 소리를 명확하게 내며 한 걸음씩 멀어져 갔다. 혀가 자유로워졌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용왕이 입을 몇 번 더듬거리다 겨우 단어를 뱉었다. "너도 결국, 결국 윈터본이었구나. 하, 하하.. 반쪽이 아니었던 게지. 너도.. 너도 이 셰바의.. 기쁘기 그지 없다. 기쁘기 그지 없.." "그리고 부디 화내지 말아요. 그 간식에는 아무것도 안 들었거든요. 조금 이따가 진정 된다면.. 맛보는 것도 좋겠지요."
용왕이 악을 지르며 머리를 움켜쥐고 웅크렸다. 가히 울부짖음에 가깝던 광소를 듣던 미카엘이 알현실 문을 열어젖혔다. 문을 부수듯 두드리며 인간의 말을 잃고 낑낑대던 마오가 안으로 뛰쳐 들어옴과 동시에 미카엘은 여유롭게 가면을 뒤집어쓰고 알현실 밖으로 나섰다. 보아라, 우리는 상처받았음을 핑계로 셰바가 아니라 부정하나 결국 누구보다 깊게 발 들인 셰바의 사람일 뿐이다.
우우🥺 에만주는 이x도 쌤 말처럼 내가 써놓은 글이 읽기 편하고 이해가 잘 된다면 그건 내가 잘 써서가 아니라 머릿속에 전용 참고서나 상세 주석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가끔 의심해보는 것이 좋습니다..의 의심해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늘 질문해줘도 좋아..!!🥺🥺🥺
아직 풀리지 않은 설정이지만 아주아주 싫어하는 부류라고만 말해둘게. 이건 용왕님 입에서 직접 나와야 재밌는 일이기도 하고.😉 용왕님 성격에 분명 엿좀 먹어봐라~ 가 나오겠지만 에만이가 두 번은 없겠다 했으니..🤔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되갚을지도 모르겠지..(에만: 아 왜 또 아!!!) 마오는! 흐음.. 마오는 입다물게 될 거야.. 망마라마오망은..독백에서 작게나마 흘렸지만 입다물 사람이거든..😊
>>229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이미 매일 보러 와주잖니. 지금으로 부족하다 하면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귓볼에 쪽)(소곤) 알려주지 않으련? 개인적으로 생각한게 이것저것 있긴 하지만 따로 보고 싶은게 있으면 말해도 괜찮은 걸. 내가 생각 못 한 것일수도 있으니까.
>>233 그런 나쁜 아스주 좋다는 사람이 누구더라 ㅎㅎ (쓰담쓰담) 뭐 한번 꼬옥 해주고 도망가는거야 어렵지 않으니까(?)
ㅋㅋㅋ 나도 그 의미인거 알지 (소곤) 하지만 아스는 어릴 적 그 날 이후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있을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거든. 자신이 그런 걸 입고 누군가와 맹세의 서약을 한다? 그것만큼은 인생에 있을 수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 그러니까 놀이로라도 입은 적이나 찾아본 적도 없어. 아예 논외였어. 그렇지만 이제 제롬이가 있으니까. 사이가 좀 더 진전되면 '그런 의미'로 관련 잡지를 들여다보거나 할 지도 모르지.
>>249 (그렇네) ㅎㅎㅎㅎ 역시 무의식 참치는 위험하네요...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또 어떤 어리광을 부릴지...(흐려짐)(손에 부빗) 어떤 분들은 육체적으로 피곤하시고 어떤 분들은 정신적으로 피곤하실 테니까요. 저는 이번에는 내려가진 않아서 피곤하진 않았지만..?
캄파넬라가 기폭 스위치를 빙글 돌리자 당장이라도 뛰쳐 나갈 것 같던 그녀의 걸음이 멎는다. 눈썹을 쌜룩이는 그 야릇한 시선도 소녀에게로 향했다. 기폭기를 바라보는 것인지, 아니면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하얀 마녀를 보는 것인지. 어느쪽인지는 몰라도 잠시나마 관심을 돌리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성공한 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눈에는 역시 공포따윈 보이지 않았다. 자칫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앞두고도, 요시코의 눈동자에 차오르기 시작하는 그 감정은 기대감.
"후후후...~ 글쎄~ 어떨까~ 지금 선택지를 주고 있는 거라면 그것도 욕심나는걸? 무너진 폐허에서 둘이서 함께하는 조난생활~ 나는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데★"
거대한 대물저격총을 축으로, 마치 봉춤을 추듯 가볍게 그 주위를 유유히 배회하기 시작한다. 마녀와는 다르게, 야수는 거짓말 따위 하지 않는다. 사람의 말을 하고있지 않지만 그 언질에는 진심만이 담겨있다. 그것은 현실에서 진실이 거짓보다 쓰게 다가오듯, 일말의 사기따위보다도 때때로 잔혹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 꼬마 대장~! 그런건 이뤄질 수 없는 바램이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의 요시코는 군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길 잃은 짐승 또한 아니었다. 어느덧 빙글빙글 돌던 발걸음이 멈췄다. 벽 뒤에 숨어 지켜보듯, 총몸 뒤에서 고개만을 슬쩍 내놓아 검붉은 광채가 흐르는 눈 한 쪽만을 드러내고서 입을 여는 그녀는-
"왜냐면 그들은 대장의 친구가 아니고, 대장도 더 이상 나의 대장이 아니니까."
'여기에 명령을 듣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를 멈추고 싶은거지~?"
요시코가 후후, 웃음을 흘리고 '그럼 이렇게 하자-' 라면서 총의 뒤에서 걸어나왔다. 캄파넬라의 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무릎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였다.
"이 언니가 외로운 대장을 위해 친구가 되어줄게~! 대장처럼 귀여운 아가씨가 친구가 되어주면, 나도 저런 녀석들 안중에도 들어올 것 같지 않으니까! 그럼 우리 대장은 다른 거 신경 쓸 필요 없이 바로 미션 컴플레이트~! 예-이!"
그리고 캄파넬라의 앞으로 손이 내밀어진다. 작전의 통제에서 벗어나 타겟을 몰살하고 그 자신을 인정사정 없이 때리고 쏴갈겼던 손이었다.
위험도를 따지자면 주는 쪽이 더 그렇겠지만. 은연 중에 상대보다 여인을 위에 두는 식으로 한 말이었다. 입질을 보려면 미끼를 던져야 하는 법이지 않은가. 가드가 단단한 상대라면 다소의 과격함도 필요했다. 여인의 기준이었지만.
잔이 빌 때까지. 라는 표현에 아쉬워 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 아쉬움이 진심일지는 본인 만이 알 터였다. 여인은 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쉽다며 자신의 잔을 주고 싶지만 안 받을 걸 안다는 듯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다가 작은 웃음을 흘렸다. 키득키득.
"그래. 손 탄 술은 단 한 사람 것만 마시기로 했거든."
그건 사실이었다. 신중한 것도 없잖아 있지만. 칵테일은 앤빌의 바텐더가 해준 것이 아니면 입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매주 가서 한 잔은 하곤 했는데. 벌써 안 간지가 몇 주더라. 아. 아니다.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여인은 생각을 덮었다.
"잔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지. 마실 틈이 없게 말을 걸면 되지 않겠니."
이 자리를 일찍 끝낼지. 더 오래 끌고 갈지는 진 하기 나름이라고. 여인의 말은 그런 해석의 여지가 다분했다. 그 말이 허투는 아니라는 듯. 잔에서 손을 내린 후로 아직 한 모금도 더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 사이 얼음은 계속 녹아 한없이 희석되겠지만. 밖에서 마시는 술에서 맛을 찾지는 않았으니.
"이 자리를 파하면 다시 볼까 싶을 터인데. 말을 고를 수고는 덜어도 된단다."
무슨 얘기를 하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그 한 마디를 툭 내어놓았다. 앞서 했던 말에 걸리지 않을 거라면 진이 해보라는 것처럼.
피피주, 일상은 내일 정신 좀 차리고 나서 이어도 될까? 어제오늘 지치는 일이 많았고 오늘은 몸상태도 좀 안 좋아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피피랑은 전부터 꼭 일상을 돌려보고 싶어서 찌른 건데 이렇게 늦어지게 돼서 미안해. 혹시 일상을 돌리고 싶지 않다면 취소해도 되고, 멀티를 돌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돌려줘.
넉살이 좋다고 해야 할까. 혓바닥이 잘 구른다고 해야 할까. 굳이 내어 준 기회를 마다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진의 태도는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낯선 상대와의 자리에서 신중함은 좋은 방어선이자 경계선의 역할을 톡톡히 하곤 했다.
"내가 먼저 말을 하라 해 놓고. 염치없게 손을 뒤집을 일은 없다만. 그대가 그렇다면 그리 하렴."
이쯤에서 여인도 어렴풋이 생각했다. 진은 사업을 이끄는 쪽이거나 그에 준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 거라고. 그리고 아마 그 사업은 라 베르토와 연결고리가 없을 거라고. 아주 작은 고리라도 있다면 라 베르토로써 접촉을 시도 했을 테니. 그런 적이 없다는 점에서 가는 길이 겹쳐질 일이 없는 분야일 것이란 걸 유추 가능했다. 그래 그렇구나 정도만 생각하고 대화로 신경을 돌렸다.
"호들갑스럽구나. 달리 겁을 준 기억은 없다만. 게다가. 내가 미인인지 아닌지 알기엔 본 것보다 보지 못 한 부분이 더 많지 않니."
여인은 턱을 받친 손의 손끝으로 선글라스를 톡 건드렸다. 알이 큰 선글라스와 앞으로 살짝 흘러내린 짙푸른 머리카락이 얼굴의 대부분을 가려 거진 하관만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것만 보고 미인이라 하는 건 너무 과장이 아니냐. 라는게 여인이 한 말이었다.
"보지 못 한 것을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그리 좋은 판단은 아니지. 필요하다면 그 판단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만."
요컨데 얼굴을 가린 것들을 치워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말이었는데. 이미 미인은 무섭다고 말한 진에게 굳이 얼굴을 보여주려 하는 말의 의미가 장난 혹은 짖궂음이 아니면 무얼까 싶었다. 그걸 한술 더 뜨듯 내려놓았던 손을 올려 손끝을 가볍게 선글라스의 태에 얹었다. 얹기만 하고 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쯧. 하는 소리를 내며 나는 혀를 찼다. 걸음을 멈추게한 것 고작인가. 전혀 폭탄기폭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농담따먹는 소리를 하며 오히려 상황을 즐기고 있는 꼴이라니. 거짓말을 알아차린건지 그래도 상관없다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머릿속이었다. 멈추지 않겠다는 결과 자체는 똑같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돌파하는 건 자신이 있는걸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 것 조차 상관없이 그냥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 한다는 걸지도.
"역시 머리가 비비꼬인 녀석은 심리전 자체가 안먹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구나."
솔직하게 평을 늘어놓아본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 있다면 관심사의 대부분은 나에게 포커스가 되어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낭비한다면 차량으로 도주할 시간까지는 충분히 시간을 벌었으리라.
"명령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거야말로 이해할 수 없군."
잠깐. 다르게 생각해보자면 명령이 아니라면 굳이 나를 무시하고서라도, 그냥 비스트팀쪽을 노리러 가면 그만이긴했다. 이 대치 상황을 왜 그녀는 내 질질끌고 있음에도 어울리려고 했던건가. 발상을 돌려보자. 애초에 그쪽의 재미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애초에 내가 아닌가.
"정말로 네가 비스트팀에 관심이 있었다면 애초에 나를 무시하고 돌파하면 그만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는건 역시 이 같잖은 촌극에 어울리며 제안을 하지는 않겠지."
말에서 힌트가 보였다. 이 한마디 마저 그저 시간을 끌기위한 수단으로 제안에 고민하듯 속내를 조금만 들춰보는 시늉을 해본다. 목적자체는 시간을 더 끄는것에 있으니까.
"친구라..그 제안..."
무전소리가 지직거리며 귀에 끼워든 이어폰으로 들려왔다. 차량이 출발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마스터로의 상황 보고도 완료했는지 신속히 복귀하라는 명령이 도달했다. 나는 명령을 따른다.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이 맹수와의 지긋한 촌극은 내 명령을 끝내는 것으로 끝낸다. 지독히도 하기싫지만 해야하는 긴 문장의 대화도 수단으로서 쓴 끝에-.
"절대적거절."
대화를 하며 팔을 슬며시 뒤쪽으로 하고는 옷 뒤쪽에 매달아 놓은 연막탄의 핀을 뽑고 내던졌다. 연기가 서서히 바닥에서 위로 통풍이 잘되지않은 콘크리트 벽을 그득히 채워가며 그 연기 속으로 사라지며 나는 말했다.
"네가 나를 장난감으로 여기고 싶다면 캄파넬라라는 이름으로 나를 찾아라. 어울려주마. 그 정도로 협상은 끝이다."
요령 좋게 제안을 사양하는 진의 대답에 여인의 손이 선글라스의 태를 놓고 내려졌다. 솔직히, 유연하게 빠져나가는 수완에 솔직히 조금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티는 내지 않았다만. 호기심에 잡아 먹히지 않는 타입인 걸지. 아니면 지나치게 신중한 걸지.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슬슬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작은 삼각으로 잘린 치즈 한 조각도 같이 넘겼다.
후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건 여인이 꺼낸 말이었다. 이쪽에서 꺼낸 말로 농을 치는 것이 이걸로 두 번째였다. 철저하게 겉만을 도는 대화. 이 쯤에서 다시 수를 두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흐름을 따를까. 고심하던 중에 진의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뻔뻔스러운 행동도 보였다. 여인은 참지 못 한 듯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후후. 그래. 그런 능청을 부릴 줄 아니 자만도 봐줄 만 하구나. 실로 유쾌한 걸."
쿡쿡. 낮게 웃음의 여운을 흘리며 선글라스 너머 가늘게 접힌 눈으로 진을 응시했다.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라기엔 한결 더 깊고 음습한 눈빛이 었지만 선글라스가 가려주어 드러날 일은 없었다. 그래도 이어진 말은 오만함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인간은 유희를 즐길 줄 아는 짐승이라 하지. 문화나 예술적인 면 만이 아니라 단순한 쾌락을 위해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는 의미로 말이야. 그러니 매력적이지 않더라도 그저 눈 앞에 있다는 이유 만으로 물어 뜯을 수도 있겠지. 아니 그런가."
가늘게 입꼬리를 올린 입술 위로 붉은 혀가 살짝 스쳤다. 입맛을 다시듯이.
"그대 하는 말을 보니 그걸 원한 건 아닌 것 같다만."
한쪽 입꼬리만 눈에 띄게 올리고 짓는 웃음이 명백히 진을 놀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숨길 생각도 없이 진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술맛 떨어진다. 젠장, 여기서 '어이쿠, 아녀자가 아무리 과년하다 한들 외간여자 앞에서 그렇게 가슴을 내보이면 쓰나. 나는 모르는 일일세.' 하고 위트로 받아쳐주면 얼마나 좋아. 이 거만함이나 사회적 예절을 신경쓰지 않는 태도로 보아, 저 여자는 아무래도 거물 중의 거물이겠다. 진은 오늘도 한 건 했다. 야호~(반어법)
진은 거품이 풀죽은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한 모금 마시며, 괜히 그 위의 원두를 입 안에서 굴렸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의 쓴 맛에 정신이 든다. 이 답답한 대화를 헤쳐나갈 정신이.
"글쎄요, 유희만 추구해서는 저 마약굴의 부랑자들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본래 쾌락이 있거든 쾌락을 억압하는 것도 있기 마련. 인류사라는 것이 다 그렇지요. 그리고 그런 자들이 문명을 건설하는 데에 손을 보태는 법 아닙니까."
독성을 지닌 열매의 씨앗, 그것을 볶고 태워 끓여먹을 뿐만 아니라, 이 술에 응용하기까지 하는 족속들. 그런 지성있는 것들이라면 눈에 보이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모두 찢어발겨두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러실 분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아니, 그럴 수 있겠지. 그러면 높은 부에 걸맞지 않아 우스꽝스러우니, 하지 않을 뿐. 능력은 될 터다. 하지만 원래 부를 가진 족속들이란 부에 구애받으니, 부에 뒤따르는 권력을 지키려거든 품위를 챙길 수밖에.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이 술을 시키는 게 정답이었군요."
에스프레소를 넣은, 카페인이 함유된, 잠들 수 없는 술. 진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진짜로? 라고 묻듯이.
하고많은 곳들 중 눈 소복하게 쌓인 문경새재에 가는 줄도 모르고 후리스 한 벌만 덜렁 입고 끌려갔다가, 몸이 으슬으슬하게 떨릴 때부터 불길했는데 거기에 술까지 디립다 먹어버리고는 다음날에 반쯤 몸살난 상태에서 세차 도와주다가 집에 들어와서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기절했는데 눈 떠보니까 몸살이 본격화됐는데 저주까지 시작됐어... 컨디션 레전드야...
>>354 일단 이것저것 약 한가득 까먹긴 했고, 지금도 누워있는데, 잠은 다시 들 것 같지가 않아. 개같이...멸망......
한 자리 건너에 앉은 이와 대화를 하며 어딘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손톱 밑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가시가 박힌 것처럼. 그 부분이 이 대화를 겉돌게 하는 것만 같았다. 그저 기분 탓일 수도 있었으나. 말을 주고 받다 보니 문득 그게 무언지 알 것 같기도 하였다. 아. 그런 거였나. 하고.
"그대. 혀가 참 잘도 구르는구나."
여인은 미소를 유지한 채로 말했다. 그러나 얼굴 받친 손을 무르며 고개를 들고 둥글게 굽었던 등을 펴 자세를 똑바르게 바꾸었다. 두 손을 겹쳐 테이블 위에 얹어놓고. 진을 향해 살짝 돌아 앉자 어깨에 걸려 있던 짙푸른 머리카락들이 움직임을 따라 어깨 앞으로 흐트러졌다.
"이 도시에서 인류사를 논하고 문명의 축적을 논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높낮이만 다를 뿐인 같은 바닥을 구른다는 점에서 마약굴의 약쟁이들과 내가 다를 것은 또 무엇이더니."
겹쳐져 있던 손 중 하나가 천천히 올라와 여인의 얼굴에 걸친 선글라스의 태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내려 곧 얼굴에서 완전히 떼어내었다. 달각. 하는 소리와 함께 선글라스가 바 테이블 위로 올려지고. 길게 내려 온 앞머리를 가볍게 쓸어넘기며 눈을 한번 깜짝이니 얼굴 전면과 두 가지 보랏빛을 한 눈동자가 선명한 빛을 띄고 진에게 향했다.
"어제 없던 것이 오늘은 있을 수 있고. 오늘 얻은 것을 내일은 잃을 수도 있는 곳이 이 도시, 셰바라는 걸. 그대는 알면서 그리 말하는 건지 궁금하네. 알고 싶지는 않다만."
키득키득. 두 눈을 곱게 접으며 짓는 웃음이 사뭇 서늘했다. 여인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질문을 던졌다.
"더는 빙빙 돌아봐야 수고스러울 뿐이니. 내 진정 묻고 싶었던 것을 물으마. 그대 눈에 나는 어찌 비쳤는지."
라고 말을 꺼낸 직후 고개를 가볍게 가로젓곤 말을 정정했다.
"나를 대체 무어라고 생각했는지. 솔직하게, 허심탄회하게 풀어주길 바라네. 그에 대한 해는 끼치지 않겠다 약속하지."
>>357-360 모두들 걱정해줘서 고마워... 전기장판 뜨끈하게 틀고 있고, 이마에 물수건도 얹어놨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다들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 그 최선의 휴식이란 게 별로 쓸모가 없어서 그렇지. (에만주의 혈자리 누르는 손길에 엑엑 소리밖에 내지못함) 친구들이 다 좋은데 휴일에 이따금 사람 들고 급발진하는게 문제야. 내가 그놈의 송어회라는 말에 솔깃하지만 않았어도..
선글라스를 내려놓고, 머리를 쓸어넘기는 미인. 달기를 빗대는 것이 아깝지 않으니 진정 미인이라고 할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진도 익히 알 법한 유명한 얼굴. 진이 얼빠진 남자였다면 침을 질질 흘렸을 만 하다.
그리고 그 꾀임에 홀려, 구구절절 본인이 생각한 인상을 읊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진은 분별있는 사업가이자 일을 더욱 사랑하는 여자. 사회의 단 맛이고 쓴 맛이고 볼 대로 본 능구렁이인 것이다.
깡패부락에서 일할 때 배운 것이 있다. "절대 어디가서 이야기 하지 않을 테니 나만 믿고 한 번 말해봐." 하는 말에는 꾀이지 말라고. 사소한 내용이 바뀐들 뭐가 다르랴? 본질은 같다. 불법이 법인 세계에서는 약속도 속 없이 해잡는 거짓말이란 것. 셰바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 인류사와 문명을 논해봤자 이곳은 셰바. 아리따운 미인이며 부와 권력을 거머쥔 라 베르토의 수장이라 한들 결국 셰바인.
'자, 어떻게 할까.'
말하지 않으면 '그대, 내 약조를 못 믿는구나. 그래, 그런 못미더운 사람으로 비쳤단 말이지.' 할 것이고. 칭찬을 한들 '그대는 내 말이 허투루 들리는가. 분명히 말해라.' 하겠지. 어느 쪽이든 언짢게 듣겠지. 객관적인 사실을 말해도 '그것 이상을 볼 사람이라고 생각했건만.' 하며 긁어댈 수도 있겠다.
듣고 싶은 거다, 저 사람은. 내가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명료한 언어로 알기 쉽게 말해주는 걸 원하는 것이다. 선글라스를 벗어 얼굴을 드러낸 건, '너도 정정당당하게 임해라' 라는 암묵적인 사인이겠지. 혹은 협박이겠고.
진은 결정했다.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쭉 들이켰다. 그리곤 입술의 거품을 낼름 핥고는 입맛을 다셨다.
"저 따위의 궁핍한 소양으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틀릴 텐데요. 무식이 들키는 것이 두렵습니다. 저는 가렵니다."
쫓아올 일은 없다. 라 베르토의 수장이 할 만한 일은 아니니까. 필요한 건 혹여 모를 미행을 쫓아보낼 일 뿐. 바텐더의 입을 미리 막아두길 잘했다.
문득, 하늘로부터 어두운 암운이 드리운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가- 화창하고 맑은 날에, 구름의 그림자가 고요히 소리를 죽이며 자신과 그 주변을 불길하게 휩쓸고 가는 그런 순간이 말이다. 물론 뉴 베르셰바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그런 순간을 느낄 수 있을 리가 없다. 1년 365일 내내 새빨갛고 불길한 적운이 하늘을 한치 틈도 없이 가득 메우고 있는 이 신이 버린 도시의 불행이라는 녀석은 그렇게 가끔씩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고, 알기 쉬운 전조를 화려하게 흩뿌리면서 자신이 온다는 것을 알려줄 만큼 신사적인 놈도 아니었다. 다른 구름보다 훨씬 낮은 고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를 선회하는 까마귀 떼처럼 언제라도 사람이 쓰러지기를 학수고대하듯 바라보는 구름 아래에서 특별히 더 어두운 곳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로사는 어렸을 적 자신이 아직 파란 하늘 아래에서 숨쉬고 있을 때 어느 날엔가 거대한 구름이 자신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던 그 순간을 희미하게 기억했다, 왜인지 요즘 들어서는 그 기억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비탄의 도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 새로운 불운이 자신의 머리 위로 서서히 날아들고 있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자각하기라도 한 것처럼.
페로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조심스레 꾸며둔 조그만 피난처에 피워둔 모닥불을 좀더 돋우는 것뿐이다.
앤빌은 언제나와 똑같은 풍경으로, 언제나와 똑같은 음악을 품고 프로스페로를 손님으로 맞이했다. 흐릿한 알코올 냄새와 음식 냄새가 섞인 훈훈한 공기, 아늑한 불빛, 투박한 인테리어. 그리고 언제나처럼 바 너머에 서있는 바텐더.
다만, 바텐더는 피피가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이 분명 맞는데, 오늘따라 바텐더의 행색이 이상해보였다. 보통이라면 뒤통수 높은 데서 질끈 동여매놨어야 할 나슬나슬한 금발이 어깨며 등으로 쏟아져있고, 무엇보다 거친 면 셔츠와 청바지는 어쩌고 블라우스와 갈색의 펜슬 스커트에 스타킹 차림이지 않은가. 저 체격으로 말이다.
"뭐야, 이녀석 벌써 어디서 한 잔 걸치고 왔네." 얼음을 톡톡 깎던 여인은 평소보다 한결 가벼운 표정을 하고 들어오는 피피를 반갑게 맞이했다. "언제나의 계산은 다 한 거겠지?" 페로사 말마따나, 몸통은 온전했기에 겉보기의 끔찍함에 비해서는 많은 것을 건질 수 있었다. "첫 잔은 역시 그거지? 이거 먹으면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으라구. 금방 만들어줄 테니까."
피피의 앞에 기본안주 접시가 달칵 놓인다. 땅콩 한 줌에 캐슈넛 한 줌, 그리고 사과로 만든 것 같은 무언가가 한가득 담겨있다. 얇게 썬 사과를 말려서 설탕에 절여놓은 무언가 같은데, 집어들어 씹어보면 표면의 설탕이 기분좋게 부서지며 녹아내리는 단맛과 함께 농축된 사과의 향이 유감없이 뿜어져나온다.
# 페로사는 몇 차례 보여드린 저 짤과 같은 차림이야. 다만 취해있지는 않아. 출처: 껍질-미리깐 메이커 https://picrew.me/image_maker/701767 )
>>396 전 오히려 좋은데요 ㅎㅎㅎㅎ (품에 쏙)(쓰담쓰담)(토닥) 제가 자고싶어서 잔 건 아니고...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이...(변명) 배 아프셨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내일도 아프시면 병원 꼭 가셔야 해요?(빤히) 그럼 겜 숙제 조금만 하시다 주무세요!!!! 꼭!!!!
>>400 (귀여워)(뽀쪽) 외부적인 요소 때문에 깜빡 잠들었다고 하면 믿으실까요... 아야야...(파들) 진정되었다고 해도 같은 증상이 반복되면 병원 가보셔야 해요. 아셨죠..?(빠안) ㅎㅎㅎㅎㅎㅎㅎ 이 새럼이...(그물망 투척) 1시간치만 하고 내일 일어나서 하셔도 되잖아요.......
>>419 (꼬─옥) 파송송계란탁한 신라면에는 역시 약학적인 효과가 있는 게 틀림없어. 몸살도 술병도 많이 나아졌거든. 에만주는 오늘 하루 어떻게 지내고 있어? 3.3
(독백 읽어봄) 정말이지 이상한 도시야. 내가 할 만한 감상들을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해서 뭐라 섣불리 말을 꺼내기 쉽지가 않지만, 그래도 상아로 지은 거대한 성 같던 사람이 단순한 간식 몇 점에 무너지는 모습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스스로의 모습과 대비되는 게 인상적이네. 미카엘은.. 그래, 신이 버린 도시에서 살려면 마냥 예쁘고 고와야 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차가울 줄도 알아야지. 그 차가운 면모가 스스로를 얼려버리지 않을지가 두렵지만... 그래서 페로사가 많이 안아주고 해줘야겠는걸.
진주 음성이라니 다행이지만 아프지 말아..;0;.. 우리 셰바 주민들 다 아프지 말자..!! ;0;
>>420 다행이다..;0; 어서 쾌차하자구! (삑삑뽁삑) 나아는 오늘 연휴가 끝났는데 어째 급하지 않고 천천히 돌아가는 하루네..🤔 연휴 동안에도 갈린 사람에게 늘 감사하고 미안한 거야..🙄
용왕님의 역린은 다름아닌 ■■이니까.🤭 단순한 간식에 무너지는 것도 있지만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는 배신감도 있었을 거야. 물론 혼쭐난 뒤로는 잠잠히 페로사 괴롭히기(?)를 그만두겠지만.. 응. 이상한 도시지.😅 차가운 미카엘은 페로사 앞에서 늘 따끈따끈한 아가로 남는답니다~ 오늘은 강경한 수단을 뒀을 뿐이지! 0.<
궁금한 게 있는데, A-13구역은 용왕의 지배하에 있잖아. 그로스만 패밀리도 세력 기반이 A-13구역인 줄로 아는데, 용왕의 통치하에서 그로스만 패밀리는 세력을 어떻게 유지하고 늘리고 있는 거야? 조직폭력배들의 세력이란 것도 결국 자금이고, 자금은 바탕이 되는 영역과 영역에 위치한 이런저런 가게들을 통해서 마련하는 식이어야 할 텐데. 지금은 용왕의 통치질서에 순응하는 척하고 있는 거려나?
A-13구역에서 용왕의 통치에 순응하는 조직끼리 싸움이 붙으면 어떻게 처리돼? 아무리 작은 분쟁이라도 상호간에 합의가 되지 않았다면 용왕이 나서서 재판하는 거야, 아니면 어떤 선이 있어서 그 선을 넘는 정도의 사건만이 용왕의 재판을 받는 거야? 아니면 용왕님이 척 보고 흥미로운 사건만 나서서 재판하는 거려나.
>>424-425 (쏙 들어감)(꾸시꾸시) 이얍 집갱!! 과연 부하였을까?(스스로 불러온 에만주의 재앙)(눈 돌아감)(?) 농담이구, 용왕님도 피해자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됐지. 역시 셰바는 셰바일 수밖에..🤔
미카엘: 정말이지. 이러면 나 응석 부릴 거야.. (부빗)
으음~ 대답하자면 조금 복잡하고 에만주의 불친절한 설명 때문에 뇌해석 해야하는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양해 부탁해. 0.<
1. 세력 기반은 A-13이지만 정확히는 변방에 걸쳐서 위치해있어. 세력을 유지하고 늘리는 건 별볼일 없는 킬러 집단으로 위장해 타지역의 의뢰를 받는 것도 있지만, 불법적인 일(마약, 고리대금업 등)을 하는 타 세력과 동맹을 맺고 거기서 지원자금을 받는 형식도 있지. 용왕에게 순응하는 척, 볼프강 자체가 여러 세력을 은근히 유영하듯 다니면서 숨어다니는지라 그간 발각되지 않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 용왕을 마음에 안 들어하는 사람끼리 몰래 접선해서 지금의 세력이 굳혀진 것도 있고..? 1-1. 과연 용왕이 몰랐을까? 싶지만 의외로 보여주는 면과 다르게 규칙만 잘 지키면 옳지 잘한다. 하고 건드리지 않는 편이니까. 나름 성군이라나 뭐라나.. 1-2. 그런데 그로스만을 안 건드리겠다고는 안 했어.
2. 분쟁에서 민간인(셰바 내부에서 살인 등의 큰 범죄를 업삼지 않고 식당, 보육원, 학교(라 통칭되는 무언가들) 같은 생활형 조직)의 피해가 발생하는 등 선을 넘는다면 용왕이 즉각 나서는 편이고, 평소에는 용왕의 측근인 연 씨 선에서 정리가 돼. 상호간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재판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고. 흥미로우면 연 씨가 제발 저런 일에 나서지 말아달라 간청해도 직접 재판할 때도 있어. 가령 첫 등장 독백에서 보여준 어~ 커터칼 줄 테니 싸워 봐. 살아남으면 네가 무죄고 죽으면 유죄~ 근데 둘 다 죄인이네? 사형! ^^ 같은 거..🙄 2-2. 타 조직이 타 지역까지 끌고오는 경우 해당 지역 지배 세력과 협의를 거치고 배상을 합의하는 편이야. 의외의 면이지.🤔
>>426 (꼭 품어줌) (꾸시꾸시에 기운을 조금 더 차림) 오늘도 고생했어. u.u 이대로 주말까지 이번 주는 날먹으로 보내길 빌어. 부하나 다름없는 관계였다고 저번에 읽었던 것 같은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던 모양이구나. 그러면 추후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페로사: 그러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눈웃음) (쪽)
용왕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세력을 결성할 정도로 많이 있구나. 확실히 통치자로서는 능력있는 사람이지만 개인으로서는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그렇게 얽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 오, 그런데 'A-13 구역의 경계선과 그 외곽 구역에 세력을 걸치고 있으려나?' 하는 질문을 하려다 말았는데, 그런 형태였구나.
타 지역과 얽히는 분쟁은... 역시 용왕님은 지도자로서는 현명한 사람이네. 현명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A-13구역을 그렇게 질서잡힌 영역으로 유지하지도 못했겠지만.
이 망할 도시에서 불변과 영원함은 찾아보기 힘든 가치 중 하나다. 그런 면에서 앤빌은 퍽 드문 곳 중 하나다. 물론 프로스페로는 그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피비린내나는 뒷과정을 알고 있었으나 -그가 시체를 처리했으므로- 과정이 어찌되었든 수면만 잠잠하면 된 것이다. 삶에 대한 불만이 한낱 기본 안주 안 나왔다는 불평 하나로 쪼그라들어 종식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프로스페로는 앤빌에 들어서며 똑같은 광경을 기대했다. 음악, 알코올, 음식 냄새, 특유의 분위기.
언제나 같은 바텐더는 여기서 제외되었다. 아마 오늘부터인 것 같다.
"뭐야,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나왔어? 누구 만나고 왔어?"
누군가가 머리를 묶고 다니다가 풀면 꾸민 것이다. 풀고 다니다가 묶어도 꾸민 것이다. 항상 입던 옷에서 변화를 줘도 꾸민 것이니 예쁘단 말을 해야 한다. 학습된 기계적 반응이다. 이 둔한 이한테 이 알고리즘을 박아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간의 복장이 터져나갔을지는 미지수다.
"그럼, 왜냐하면-"
사과를 입에 넣고 질겅거렸다. 음식을 맛없게 먹는 재주가 있었다. 정작 그는 맛있어서 두 번째 사과를 집어들고 있었다. 갑자기 사과조각을 건배라도 하는 양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거나 '어쩔 수 없다'거나 하는 변명을 덧붙여봐도, 앤빌의 평화가 피 위에 다져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페로사가 앤빌에 취직하고 나서 몇 달 동안에는, 앤빌을 건드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피력하기 위해 페로사가 피피를 현역 시절보다도 더 자주 부른 기간이 있기도 했으니까. 삼천 위대의 조직이 갑자기 해산했다느니, 사천 위의 조직이 칠천 위까지 굴러떨어졌다느니 하는 뜬소문 같은 것들보다도 더 분명하게, 피피는 페로사가 앤빌의 기초를 침략자들의 뼈로 쌓아올리는 것을 보았다. 그 뼈를 발라준 것이 다름아닌 프로스페로 본인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피의 여인이, 여인이라기보다는 야수에 더 가까운 사람이, 현역 시절 바짝 깎아붙인 옆머리와 시커멓게 그늘진 눈두덩, 얼굴을 뒤덮은 도깨비 마스크는 온데간데없이 스커트를 입고 본인이 아름답게 보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치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피피가 그 알고리즘을 학습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기에는 충분한 변화였다. 아스타로테-피피가 안나라고 부르고 페로사가 로테라고 부르는 그 여인이라면, 그녀는 평소에도 기회가 닿거나 기분이 내키면 한껏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좋아했기에 이렇게 차려입는다 해도 그건 오히려 그녀의 옷차림 중에서라면 수수한 축에 드는 것이겠다만, 평생 막 거칠게 생겨먹은 면이나 린넨 셔츠에 청바지 나부랭이 걸쳐입고 앞치마나 두를 줄 알았던, 미녀와 야수 중에서 미녀보단 야수 쪽 배역을 맡는 게 더 익숙하던 사람이 미녀처럼 차려입는다면 그건 격변이라 할 만했다. 아마 프로스페로도 알고 있을 테지만, 페로사의 현역 시절 때 페로사와 아스타로테는 꽤 긴 기간 동안 같이 일했었다.
"오늘따라 안 하던 짓 좀 해봤지." 다만 피피의 알고리즘에 학습된 반응이 그녀에게는 마땅치 않았던 걸까, 아니면 피피의 말투에서 무언가를 느꼈던 걸까 그녀는 마치 면박이나 꾸중이라도 들은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페로사는 고민 가득한 얼굴로 바 한켠에 놓인 탁상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으음, 역시 안 하던 짓을 하는 건 좀 아닌가."
피피가 음식을 입맛 떨어지게 먹는 것과는 상관없이, 사과 정과는 입 안에서 꾸덕하고 질깃하게 녹아내리며 유감없이 생생하고 상큼한 사과향이 녹아난 단물을 입 안으로 뿜어낸다. 피피가 두 번째 조각을 들며 기묘한 건배를 청하자, 페로사는 탁상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피피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온더락 글라스를 거머쥐었다. 그러다 피피가 와락 쏟아내는 취기어린 말에 페로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람을 죽여? 무슨 일이 있었길래."
페로사는 각얼음들을 하이볼 글라스에 딸랑딸랑 담아서는 라임과 민트를 인퓨즈한 탄산수를 차갑게 한 잔 가득 따라주었다. "일단 그거 한 잔으로 입가심 좀 해. 그게 생각보다 독한 칵테일이라서 말야." 그러면서 그녀는 잘게 부숴진 얼음들을 스쿱으로 푹 퍼서 잔에 담고는, 민트 잎 몇 장을 뜯어서 손바닥에 올리고 가볍게 박수를 팡 쳐서 잎맥을 터뜨린 뒤 그것들을 잔 안으로 던져넣었다. "네가 실수 안 했다면 안 한 거겠지- 그보다 이번엔 또 무슨 고생을 한 거야, 피피.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지만." 장의사의 덕목은 침묵이었으나, 바텐더의 덕목은 경청이었다. 차림새가 변했어도 사람이 변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것... 진사장님 진짜 앤빌에 한번 모셔야 되는데...... 피피주가 지금이라도 올지 모르고, 지금 쓰고 있는 독백이 2개라서 말야......... 나도 평소에도 텀이 느린데 지금은 컨디션 이슈로 텀이 더 느린 상태라. 노쇠해서 죽어가는 못난 페로사주라 미안허이.......
그럼 컨디션 되시면은 허공에 진주를 불러주십쇼 호울러처럼 달려갈게욧~~ 거절은 누구나 할 수 잇는 거니까 너무 맘쓰지 마시구~!! 갠찬다면 독백 한 점 올라왓을 때 다시 한 번 찔러봐도 갠찬겟섭니까? 앤빌에서 술을 기깔나게 만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어쩔수가 업습니닷....
평소와 같이 아스타로테, 로노브, 포레, 셋이 잡화점 5층에 모여 한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 메뉴는 토스트와 달걀토마토 볶음에 구운 베이컨 몇 조각. 아스타로테는 크림 스프. 로노브는 블랙 커피. 포레는 바나나맛 프로틴 쉐이크. 각자 마실 것을 옆에 두고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검은 머그잔을 들어 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로노브가 말문을 열었다.
"쉬지 그래. 오늘." "어?"
예상대로 얼빠진 대답이 아스타로테로부터 들려 왔다. 그럴 만도 했다. 그 말을 꺼낸게 포레도 아닌 로노브기에 저런 소리가 안 나올 리가 없었다. 뭘 잘못 먹었나 하듯 접시를 보고 음식을 먹고 다시 의아한 시선으로 로노브를 봐왔다. 저것도 예상 내였다. 묵묵히 시선을 받으며 로노브가 말했다.
"최근 계속 안에만 있었잖아. 밖에 나가. 앤빌도 슬슬 가고." "거기서 앤빌이 왜 나와. 아. 나가면 될 거 아냐. 나가면. 하루 종일 안 들어 올 거니까 알아서들 해. 부르지도 찾지도 말고." "분부대로."
참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간단한 도발 만으로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 지금 있는 문제도 그리 간단하게 털어주면 좋으련만.
이 후 아스타로테는 식사를 마치고 외출 준비를 해 일찍부터 잡화점에서 나갔다. 나가기 직전, 아쉬운 듯 잡화점 안을 보긴 했지만 번복 없이 외출했다.
계획대로 생긴 아스타로테의 오프였다.
포레는 오전 일을 처리하고 오겠다며 그의 집무실로 갔다. 자연스럽게 오늘의 잡화점 담당은 로노브였다. 로노브는 아스타로테가 앉는 자리에 앉아 작은 테이블을 앞에 두고 그의 일과 잡화점의 일을 병행했다. 오늘은 방문객이 최소한으로만 잡힌 날이었기 때문에 로노브 혼자도 무리는 없었다.
용건이 있는 손님은 용건을 기록하고 간부의 선으로써 가능한 선의 대답을 해주었다. 예약 없는 방문객도 있었지만 유연한 대처로 후일을 기약하게끔 하고 되돌려 보냈다. 오전의 일정을 소화한 후엔 일전에 토벌한 조직에서 가져온 정보를 토대로 쓸모의 유무를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주 정보는 그 조직에서 만들었다는 신종 마약, 몽중몽(DnD)에 대해서였다. 경구를 물에 타거나 형태 그대로 섭취하면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감각과 약간의 환영을 겪으며 평상시보다 리미터가 해제된 활동이 가능해지게 했다. 마치 꿈에선 평소 못 하던 움직임을 쉬이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래봐야 미완성인 물건이라 섭취량과 대상에 따라 효과도 지속시간도 불규칙했다. 하지만 조직 내 팀에 맡기면 어떤 식으로든 개량과 보급이 가능해질 터였다. 바로 맡길까 했지만. 일단 논의를 한번 거친 후 결정하기로 했다.
한 뭉치의 서류를 보는 사이. 시간이 흘러 점심 식사를 챙길 시간이 되었다. 로노브는 일을 보며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핸드폰을 한 번 들여다보았다. 연락이 한 건 와 있었다. 그것에 대한 답신을 한 통 보내고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오후가 되었다.
이 때를 위해서 로노브와 포레는 작당을 하고 아스타로테를 외출시켰다. 오늘은 각 구획의 보고를 듣는 날이었다. 그러나 사전에 연락 받은 사항이 있어, 그 내용이 아스타로테에게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미리 작업을 쳐 놓은 것이었다.
시간이 되어 잡화점에 포레가 왔다. 그 뒤 정보 수집 담당들이 모였다. 그들은 구두 보고 대신 가져온 서류를 제출했다. 로노브와 포레가 그것들을 건네 받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구획을 들고 넘겨보았다. 한 장. 두 장. 이 구획. 저 구획. 정보가 담긴 종이를 빠르게 훑어 넘기다가 포레가 든 어느 구획의 내용 중 어느 사건에 대한 기록을 찾았다. 둘 다 손을 멈추고 그 서류에 집중했다.
거기 적힌 내용만으로는 사실 판단이 어려웠다. 그러나 조직원들과 관점이 다른 로노브와 포레는 키워드 몇 개 만으로도 현재로부터 파생될 최악의 상황을 그려낼 수 있었다.
납치. 커넥션. 제롬 발렌타인. 르메인 배틀리언. 그 간부의 조력. 모종의 관계성.
명확한 사실보다 일면의 관측으로 얻어 낸 정보가 사람의 사고력을 회전시키기에 적합했다. 그리고 이 서류에 담긴 정보는 그러기에 충분했다. 진실이 아닌 오해를 불러 어떤 식으로든 파란을 일으키는 것에.
한 번 무너졌던 사람은 두 번 무너지기도 쉬운 법이었다. 그러나 두 번 일어서는 것은 쉽지 않은 법이었다.
로노브와 포레는 이걸 숨기기로 했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 믿었다. 이 독단으로 인해 나중 어떤 일이 생겨도. 언제나 최악보다 차악이 나았다.
그런 꿍꿍이를 숨긴 채. 추후 보고할테니 이번 보고회는 이걸로 마치겠다는 간부 로노브의 말을 끝으로 모였던 조직원들이 각자의 업무로 돌아갔다. 로노브는 다시 잡화점의 업무로. 포레는 보육원의 일을 보러 갔다. 한 장의 정보를 서로의 가슴 속에 묻고.
그러나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봐야 할 이가 보지 못 하고 감추어진 것은 결코 숨겨지지 않는다. 움직이기 시작한 시간은 한 사람의 시간 만이 아니니. 순간의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우행이 되지 않기 만을 바라야 할 것이다.
하긴 로테와 제롬 사이의 문제는, 페로사가 에만에게 한 것마냥 상대 집 박차고 들어가서 요 발칙한 꼬맹이가 잠수를 타? 하고 따지는 것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지... 페로사가 그럴 수 있었던 건 A-13구역과 용왕, 그로스만 패밀리라는 설정이 에만주 한 사람의 것이었던 덕이기도 하고. 르메인은 그렇지 않으니까.
브리엘 TMI 주세요! 우리 브리엘... 좋아하는 꽃은 있나요? 잘모르겠네. 본격 오너가 캐릭이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사태라니. 하하하하, 재밌는걸. 손을 많이 타거나, 신경을 많이 써야하는 꽃은 일차적으로 거를 것 같고..음흠,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쪽을 좋아할 것 같은데. 꽃망울이 많고 향이 은은한 쪽을 좋아할 듯 하니까 추천받습니다.(?)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요? 낮에 상태를 체크하러 온 제조 담당 눈나가 만들어놓은 치킨 스프를 반그릇 먹고, 따뜻하게 데운 레드와인에 레몬즙 조금, 계란 노른자를 섞은 걸 마시면서 기침을 하고 있지 않을까?
책은 좋아하나요? 취미가 독서입니다. #shindanmaker #님캐TMI주세요 https://kr.shindanmaker.com/1084363
>>526 느긋하게 드러누워서 푹 쉬면서 어장에서 밍기적대고 있던 참이야.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이래봬도 회복세라구.
>>527 (마주 부비적)(그릉그릉) 페로사면... 이녀석 "뭐야 초콜릿만드냐- 내가 도와줄게. 다니엘레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꽤 한다구." 해서 실컷 도와줘놓고는 막판에 "근데 갑자기 웬 초콜렛?" 하고 물어볼 것 같은데 🤔 미카엘이 곧 발렌타인데이니까 너 주려고, 같은 말 하면 뇌정지 왔다가 갑자기 얼굴 확 빨개질 것 같지.
>>529 이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면 진짜 발렌타인 데이가 되기 전에 페로사가 한시빨리 나서야겠는걸..
>>595 진은 약물을 진짜 개~~~극혐하기 때문에 일적으로 엮이긴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만약 일쪽으로 엮인다면 진이 '너희 시장 위협하는 짜가 약물업체들을 조져줄게' 하고 수상한 영업사원처럼 왔다던가 하는 게 생각이 나네요. 그러니까 니네가 그짝 정보 아는 거 있으면 좀 내놓아라 할 거 같긴 한데 브리엘이 그 작업에 동행한다, 이런 상황도 생각되고... 그 외에는 서로 무얼 하는지 모르는 일반인으로 만난다던지 하는 상황도 있는데~ 브리엘이 평소에 휴일엔 어딜 돌아다닐까요? 진이 서양문화권 근처로 가야한다면 아마.. 그 문화권 거래처와 거래하기 전에 선물을 좀 탐색하러 다니지 않을런지?
>>607 일쪽으로 엮이면 일단 진에게 브리엘은 협조적이기는 하되 비협조적으로 굴기는 할거야. 워낙에 독선적이다보니 사업 이야기할 때는 자기 혼자 이야기하거든. 수상한 영업사원으로 카두세우스 건물에 찾아오는 진씨도 보고 싶네. 일상? 휴일? 브리엘이 최악의 집순이인데요.휴일이라고는 해도 그냥 간단하게 근처 상권을 돌아다니지 않을까?
진은 약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의 조직에 근무하는 어떤 노동자도 약물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근무 환경의 영향도 있지만, 약물을 쓸 사람이면 진이 애초에 떨궈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몇 있다만.
"야, 나 괜찮아 뵈냐?" "예, 어디 회사 신입사원처럼 생겼습니다."
오늘 하는 일은, 그 '예외'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키는 겸 진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있겠다. 카두세우스와의 협상, 그리고 얻어낸 정보로 하여금 신흥조직들을 몇 소탕한다.
진은 어울리지도 않는 검은 정장을 입고 들어선다. 진보다 머리가 하나는 더 큰 거구도 그를 따랐다. 카두세우스와 영업일정은 일전에 잡아두었다. 물론 지금 나올 사람은 끄나풀에 불과하리라. 그러니 응접실에서 커피까지 받아낸 다음 할 말은 이것이다.
"간부 급을 뵙고 싶은데요."
직원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허접해보이는 남녀 둘이 무슨 진중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그러나 선글라스를 낀 여성은 손짓을 하고, 남성이 지퍼백에 담긴 황색 결정을 꺼내어 준다. 가죽장갑을 낀 여성은 그것을 흔들어보인다. 별사탕처럼 생겼으며, 그것을 으깨어 액체에 녹인 후 주사하는 류의 각성제.
최근 길거리에서 유행하는 물건이다. 이로 인해 셰바의 길거리 미관은 한층 역겨워졌다. 이 약물은 기존 물건에서 분자구조를 살짝 바꿔 양산한 물건으로, 저렴하나 효력은 다른 것에 지지 않아 소위 '가성비 마약'으로 불리는 것.
지퍼백에는 그 명칭이 적혀 있었다. '매직허브' 라고. 서양계 회사에서 만들었을 법한, 허브와는 전혀 연관 없는 명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외견에서부터 고급스러움이 풍기는 건물은 카두세우스의 본거지였다. 밖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회사와 다를 바 없는 외부의 모습처럼 내부의 모습도 다를 바 없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감기 몸살에 이틀을 쉬어버린 브리엘은 오랜만에 카두세우스의 건물로 출근한 상태였는데 어디서 출근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옆에 가까이 다가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이마에 손을 대면서 조근조근 떠드는 제조담당 간부의 행동을 브리엘이 있는 힘껏 밀어냈다. 좀, 떨어져봐. 하고 무감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 치고는 밀어내는 행동에 힘이 받쳐주지 않자 쯧, 혀를 찼다.
"저, 손님이-"
카두세우스에 소속된 조직원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한참, 이기지도 못할 힘으로 밀당 아닌 밀당을 하던 브리엘의 옆으로 재빨리 다가와서 조직원이 귀엣말을 속삭였다. 그 모습에 제조 담당 간부가 브리엘의 최후의 밀어냄에 순순히 밀려난 뒤에 흥얼거리며 방을 나섰을 것이다. 조직원의 속삭임을 듣던 브리엘은 밭은 기침을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제조 담당 쪽에서 해결봐야하는 거 아니야? 잠시 그렇게 생각하던 브리엘은 제조 담당 간부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음을 알아차리고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곧,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방문자와 브리엘은 마주했다.
내미는 것은 파란색 명함. 듣도보도 못한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그것은 진의 조직은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글씨는 깨알같이 적혀 잘 읽히지도 않았다. 흘긋 살펴보기도 전에 진은 말을 이었다.
"저희는 용병 쪽 사람입니다. 그리고 뭐, 아시다시피 어떤 곳에서 의뢰를 받아왔고요."
속여봤자라는 듯한 말투, 그리고 속속들이 내미는 또 다른 마약들. 그들은 별사탕 모양인 것은 비슷했지만, 어느 것은 새하얗고, 어느것은 분말이 가느다랬다. 브리엘이라면 익히 알 물건들이다. '매직 허브'를 내놓은 개발업체에서 혼선을 빚고자 더욱 분화시켜 만들어낸 것들이다.
이들은 저렴한 가격과 간편한 유통-건빵용 별사탕 사이에 섞어둔다는-방법, 게다가 기존 별사탕과 큰 차이없는 외관으로 허위 매물이 오가기도 한다는 점에서 최근 혼선을 빚고 있는 물건이었다. 점유율이 날로 높아지는데다, 신체를 빨리 상하게 만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몸에 덜 유해하게 만들어, 고객들을 오래 중독시키는 일종의 구독경제 업체로서는 두고 볼 수 없는 횡포였다. 저 마약을 남용했다가 고객들이 죽으면 어쩔 셈이냔 말인가. 고로 지금 진이 내놓는 제안은 조금 수상쩍었지만 의심할 도리가 없었으며, 여차하면 조직에서 '감시역'을 동행시키면 될 문제였다.
"아시죠? 여기. 꽤 골칫거리지 않습니까~? 저희 의뢰주께서는 이곳을 심히 마음에 안 들어하시는 모양입니다. 자제분께서 이거에 손을... 어이쿠, 못 들은 척 해주시고. 하여튼 그래서, 카두세우스와 교섭해 이곳을 소탕하는 게 저희의 할 일이거든요. 아시는 정보를 제공해주신다면 별 다른 요구없이 처리해드리죠."
셰바는 의심쩍은 제안이 판치는 곳, 그러나, 그것이 때론 기회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여기서 적당히 '브리엘이 상부에서 OK사인을 받아냈고(아니면 자체적인 판단으로 OK했고) 감시역으로 동행해준다' 하는 내용으로 건너뛰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편한대로 해주세요!
상대의 인사에 브리엘은 나른한 눈매를 더 나른하게 접어내리면서 상대를 살피다가 무감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목례를 해보인 뒤 명함을 받아들었다. 콜록-! 브리엘은 명함에 작게 적혀있는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읽어내려하면서도 상대가 하는 말은 대꾸없이 무감한 표정을 유지한 채 들었다. 용병? 의뢰? 자신이 아는 한, 용병을 통해서 의뢰를 할 조직은 몇 되지 않는다. 카두세우스가 공급하는 약을 알고 있는 조직이라면 더더욱 용병을 끼지는 않을테다.
차라리 이쪽으로 직접적인 의뢰를 넣고 말지. 명함을 응접실 테이블에 던지듯 툭 내려놓은 채, 브리엘은 다리를 꼬고 그 위에 깍지낀 양손을 걸쳐올렸다. 구리색 눈동자는 여전히 나른하게 접어내려진 채, 상대가 늘어놓는 것들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상대가 내민 것들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다. 요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던가. 깍지를 낀 양손으로 삼각형을 만들고 브리엘은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눈치가 빠른 조직원이 재빨리 따뜻한 블랙커피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걸 한모금 마시는 것으로 기침은 참아낼 수 있었다. 몸상태가 정상궤도에 오르기는 했으나 완전히 회복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당신. 나랑 뭘하고 싶은걸까. 다른 조직은 모르겠지만 나는 제대로 된 사업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일단 첫번째, 우리가 그런 걸로 곤란해할 거라고 생각하면 유감인걸. 누가 당신에게 의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물건이 우리 사업을 위협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원두향이 물씬 느껴지는 머그컵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불어서 조금 식히며 말을 잇는다.
"두번째. 우리는 직접 의뢰가 아닌 것은 해결하지 않아. 세번째, 아는 정보는 제로. 관심없는 이야기는 수집하지 않는데 정보를 원하면 정보상을 찾아가봐."
이거 판단력 괜찮은 게 걸렸는데. 진은 싱긋 웃고는 자켓 안주머니에서 본인의 제대로 된 명함을 건넸다. 검은 명함. 금박으로 '鸟笼'이라 흘려 썼으며, 그 뒷면엔 12개의 선분이 시계의 침처럼 가지런히 원을 이루며 모인 로고. 카두세우스와 거리는 있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 곳.
"미안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시잖아요, 원래 이런 건 조심스레 접근해야 하는 거. 이쪽 사장되는 사람입니다."
바로 태도를 바꾼다. 진은 눈썹을 한 번 으쓱였다.
"정보상에게 쓸 만한 정보를 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게 어려우니 동종업계를 찾아오는 수밖에요."
"제가 요청하고 싶은 것은 여전합니다. 이 업체의 정보, 그리고 이 의뢰를 묵인해줄 인정. 사소하죠. 본인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먼지를 떨어낸다면 좋은 일 아니겠슴까."
진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을 잇는다.
"이쪽 고객들은 이 약과 무관하지 않거든요. 다들 쪽도 못쓰고 몸 안은 엉망진창이 되어서 오는데, 반만 회생되어도 기적적일 정도거든요. 이쪽 사업은 지장이 있단 말입니다."
지친듯이 그러다가, 등을 일으키곤 브리엘을 바라본다.
"고객의 건강을 관리하는 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해가 되는 건 치우고, 덜 해가 되는 걸 가까이 하는 것입죠."
마약은 본래 몸과 정신을 당겨 쓰는 것이다. 강한 약효는 더 많이 당겨쓴다. 결국, 아무리 새끼를 쳐대는 셰바의 뒷골목 사정이라도 마약을 계속 구독할 고객을 숨풍숨풍 낳아댈 수는 없다. 결국 고객의 총인구수를 줄이는 것을 냅둘 수만은 없다. 어느 곳에서든 나설 일이다. 그리고 이것을 소탕해 자본의 출처를 찾고 그 너머까지 족쳐두리라. 그 알뿌리에서 나오는 약물적인 수익은 쏙 빼먹으면서.
"저희는 약물에 관심 없습니다. 그저 여길 소탕하고 싶을 뿐. 그곳의 연구자산이나 식물은 알아서 하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면~ 하는 수 없이 저희는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지만요."
>>687 진이 물량거래를 요구하는 건 아니고, 이 기업을 소탕하기 위해 업체의 정보와 직원 사정 등, 같은 업계이기에 더 상세히 알 수 있는 정보를 요구하는 거긴 하지만요. 그리고 약물의 경우는 결국 화학약물의 연구와 같아서 물량 외에도 정보는 유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렵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죠!
"이쪽이야말로, 사과해야겠는걸. 내가 동양 글씨를 읽을 줄 몰라. 이름은 직접 당신이 일러주던가 해야겠는데."
아, 역시. 브리엘은 곧바로 상대의 품에서 나오는 명함을 보면서 쯧- 하고 혀를 찬 뒤에 블랙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몸이 아직 덜 회복되서 그런가, 컨디션이 영 좋지 못하다는 걸 알아서 이야기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명함을 받아들고 잠시 바라보던 브리엘은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꼬고 있던 다리를 반대편으로 꼬며 커피가 담겨 있는 머그컵을 내려놓자마자 미간을 구기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야기가 빨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애초에 출근을 선택한 게 잘못일지도 모르겠어. 아, 사람은 왜이렇게 귀찮지? 미약하게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눌러내면서 브리엘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상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그건가. 저쪽 사업에 지장이 있다는 것? 확실히 컨디션이 멀쩡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머리를 쓸어올린 손으로 관자놀이를 슬 문지른 뒤 다시 머그컵을 잡아쥔다.
"우리는 위험성이나 정적량을 고지하는 편이고, 그 외의 건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나는 판매를 담당하지, 건강까지 신경쓰는 사람은 아니거든."
애초에 정키가 될 녀석들은 시간이 짧든 길든 정키가 되기 마련이니까 후에 그런 녀석들은 쳐내면 그만이다.
"아, 그리고 우리는 그쪽 업체에 대해 잘 몰라. 의뢰를 묵인해달라는 건 글쎄...어차피 이 도시에서 묵인이라는 말은 소용없을거라는 거 알고 있을테고. 소탕하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 우리쪽에서 정확히 뭘 도와주길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으음~ 이대로 답레를 적어도 되는 건가 잘 모르겠네요... 일단 진이 요구하는 건 적어뒀다시피 업체를 소탕하는데 필요한 정보(약품유통의 중견기업이라면 당연히 보유해둘 테니까)와 이 신흥조직의 몰락에 대한 함구니깐요 답레에 이미 적어둔 사항이고 대사로도 말한 거라, 브리엘이 캐치할 만 하다고 생각했는데요...
1레스도 걸리지 않은 것 같지만 체감은 긴 협상이었다. 진이 빠진듯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눈꺼풀에 힘을 주고 뜬다. 피곤했으나 커피는 나온 순간부터 입에 대지 않았다. 오랜 습관이었으므로.
유연함이라고는 티끌도 보이지 않는... 그래, 미인. 그걸 보자니 또 불공평하단 생각이 든다. 저 저저 저, 봐라. 쟤도 피곤한 거처럼 눈 지긋이 감고 있는데 속눈썹의 풍성함과 자연컬링 그리고 묘사력 차이를 보라고. 이게 세상이냐? 미인들이 일까지 잘하면 어쩌란 거냐? 나같은 년들은 어느 무대에 서라는 거냐?
'세상이 불공평하군!'
다행이도 이런 내면을 말로 하진 않았기 때문에, 직원이 USB를 갖고 올 때까지 응접실은 침묵을 지켰다. 진은 USB를 받자마자 옆의 따까리에게 던져준 후, 따까리가 스마트폰에 연결해 정보팀에게 인가한 후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진은 그제야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기껏 품 좋게 맞춘 양복이 구깃거렸다.
"자, 그러면 저희는 바로 이녀석들을 좀 족치러 갈 생각인데, 어떠심까? 와보실 겁니까? 사실 뭐, 인계하는 데 구라는 안 칠 거지만~ 전적이 있으니 의심도 될 거 같고요."
"일을 땡땡이 치고 싶거들랑 지금만한 기회가 없습니다. 제가 특별히 에스코트까지 해드립죠."
진은 브리엘의 손을 능청맞게 잡아보려 했지만, 브리엘의 성격으로는 손을 뺐을지도 모르겠다.
아야: 211 좋아하는 음료 -아야야야, 탄산 알코올은 없는 걸로 부탁드립니다. 취향이라면 보리차 같은 차 계열입니다만. 135 괴담이나 미신, 소문같은 것을 믿나요? -미신이나 소문 중 대부분은 믿을 가치도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야야야. 다만 듣다보면 진짜같아서 무서운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설마 진짜일 리는 없겠죠. (주: 이 소문은 진짜임) 316 생부에 대한 생각 -기억도 안납니다. 대충 평범하게 의지가 그리 굳세진 않은 분이었던 거 같습니다만 아야야야. 뭐 이 사람 아니었으면 존재하지도 못할 것이었으니까 딱 그만큼은 고마워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야야야.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피곤함과 아직 회복되지 않은 신체의 컨디션은 브리엘로 하여금 꽤 오랜시간동안 블랙 커피가 담긴 머그컵의 온기를 매만지면서 침묵하게 만들었다. 브라이언한테 예비용 아스피린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 상태로 아스피린을 집어삼켰다가는 꼴사납게 화장실로 뛰어갈 것만 같았다. 피곤하고, 거슬린다.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리는 꼴을 보니 아무래도 하루 더 쉬었어야했나보지. 브리엘은 블랙 커피를 조금 오래 입안에 머금었다가 삼킨 뒤 한숨을 길고 길게 내쉬었다.
어차피 하루에 몇번 하는 짓거리였다. 얻은 정보를 쉽게 건네주지 않는 짓거리.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거나 불쾌하게 만드는 특유의 변덕스럽고 모순적인 태도일 뿐이다. 브리엘의 구리색 눈동자가 가볍게 까딱 움직였고, 조직원은 그 눈짓을 알아차리자마자 눈치빠르게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USB를 쥐고 나와서 상대에게 건넸다. 상대가 원하는 물건을 건네준 조직원이 뒤로 물러나자, 브리엘은 그제서야 텅 비어버린 머그컵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머그컵에서는 여전히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머그컵의 손잡이에서 표면까지 느릿하게 쓸어내는 장갑을 낀 손끝에 표현하지 못할 무언가가 묻어나고 있었다. 브리엘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뜨고 상대를 물끄러미 응시한다.
"브라이언." "예."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금새 부름을 알아차린 브라이언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성큼성큼 브리엘이 앉아있는 위치까지 다가선 뒤 뒷짐을 졌다. 그 사이에 브리엘은 자신의 손을 잡으려하는 상대의 손길에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하- 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것 같은 웃음을 흘렸다. 뿌리치거나 빼내도 상관은 없지만 아까부터 뻔뻔하게 구는 게 영 신경에 거슬린다. 덕분에 못된 심보가 치밀어서 잡으려는 상대의 손가락 사이에 장갑을 끼고 있는 자신의 손가락을 밀어넣어서 깍지를 끼는 것처럼 행동했다가 그대로 떼어냈다.
평화는 피와 살을 먹고 자란다. 프로스페로는 그것을 온 몸에 욱여넣으며 자랐다. 도시에 사는 모두가 겪은 유년을 겪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이중성 정도야 숨 쉬듯 당연한 일이다. 피와 향수, 화약 냄새와 립스틱, 시체 옆에서 하는 키스들. 삶은 원래 그 모양으로 생겨먹었다. 우리네 삶이 모두 그렇다. 하여 프로스페로에게 페로사가 새삼 꾸미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었으며, 동시에 어느 신호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평화가 적당히 배불러할 시기가 도래했다. 잠시 동안의 휴전, 혹은 더 큰 폭풍우다.
물론 그런 것 신경쓰지 않고 꾸미고 다니는 이들도 있다. 당장 제 친우인 라 베르토의 수장만 해도 공작새마냥-프로스페로의 지극한 사견이었지만- 꾸미고 다니지 않던가. 페로사의 그런 반응은 피피에겐 퍽 신선하게 다가왔다. 도깨비 가면을 쓴 여자와 립스틱, 화약 냄새와 향수. 프로스페로는 히죽이며 눈을 접었다.
"바깥 사람처럼 보이고 좋은데, 뭘."
이 말을 덧붙인 건 취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래 프로스페로는 개인사에 접근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탄산수 양 손으로 꾹 붙들었다. 취했다는 신호다. 아차, 나 실수한 건가. 붕 뜬 정신 사이에서도 무언가 삐끗했다는 감각이 와닿았다. 혀가 동그랗게 말렸다가 펴졌다. 질식하는 사람들은 혀가 목구멍 안 쪽으로 말려들어간다던데... 멍하니 생각한다.
"요즘 너무 나댔나봐, 내가.. 눈에 띄어버린 걸 수도 있고.."
최근 들어 지나치게 돌아다녔다. 정보 얻는답시고 뒷골목 쥐새끼들도 몇 들쑤셨다. 쥐 죽은 듯 사는 시체가 요즘 들어 미쳤다는 이야기가 돌기엔 충분하다.
>>829 휘하라기보단 그로스만 패밀리에게 세금을 내고 보호받는 처지였는데, 말이 세금이지 거의 수탈당하는 판이었고 오늘도 어김없이 그로스만 패밀리가 방문해 깽판을 놓고 있는데 바에 있던 손님이 그로스만 패밀리를 그 자리에서 박살내는 바람에 더 이상 장사하기 곤란하게 됐다던가... 아니야, 잊어도 돼. 역시 전개가 너무 작위적이네.
>>832 그런 흐름이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마음에 들어해준 김에 더 이야기해보자면, 아직 독백의 기틀만 겨우 잡은 상태라 확실하진 않지만 그 모브에게 "내 친구는 이런저런 훌륭한 바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그 중에서는 일손이 모자란 바들도 많아요." "이렇게 멋진 김렛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내 친구가 일손이 모자란 바를 당신에게 소개시켜줄 수 있을 거에요." "음- 도깨비의 소개를 받아서 온 바텐더라고 하세요. 그 정도면 알아듣겠죠." 같은 대사를 하면서 보낼 텐데 괜찮을까?
"바깥 사람이라-" 잔에 사과주스를 따라내리며 페로사는 쓰게 웃었다. 아, 그러고 보면 페로사는 유독 거래를 할 때 달러화를 챙겨달라는 요구를 하는 일이 잦았다. 그녀의 허황된 꿈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아는 사람은 바로 피피일 것이다. 그녀는 항상 바깥을 바랐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비탄의 도시 안에서 저지른 중죄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비탄의 도시에 거주했다는 그 자체가 이 밖에선 중죄 취급이었으니까. 떠밀렸건 끌려들어왔건 자기 발로 들어왔건 비탄의 도시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더 혹독한 원죄가 짊어지워진다. "이제 와서 날 바깥 사람이라 할 수나 있으려나.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해안선은 머릿속에선 다 사라지고 사진 속에나 남아있는걸." 이것은 페로사가 바에 들리는 손님들에게 몇 번인가 털어놓은 적 있던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피피에게는 이게 지뢰가 폭발한 거나 매한가지의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시칠리아라고 하면 코사 노스트라의 본거지가 아닌가.
그러나 피피가 진짜로 밟은 지뢰는 따로 있었다. 삐끗했다는 감각은 알코올 따위에 무언가를 헛짚는 일이 없었다. 그걸 느꼈을 때는 늦어버린다는 게 문제다. 다만... 그 지뢰의 폭발이 피피의 발목을 뜯어가버리는 그런 종류의 폭발이 아니라, 갑자기 발밑에서 폭죽이 삐용 하고 솟아올라 펑 터지는 생뚱맞은 종류의 것이라는 게 피피의 직감과 다를 뿐이었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사람. 피피의 말을 소리없이 입모양으로 되뇌는 페로사의 얼굴이 쑤욱 빨개지는 게 피피의 눈에도 아주 잘 보였다. 칼바도스를 잔에 따라내리던 페로사의 손이 떨려, 원래 넣어야 하는 양보다 1대쉬 정도 더 들어갔다. 그 정도 차이면 술맛에 별 차이는 없을 테지만.
그래서 페로사는, 피피가 내놓는 다른 주제에 잽싸게 따라붙었다. 먼저 말을 돌려주겠다는데 마다할 리가 없다. "그런 게 있나 없나는 항상 점검하고 있으니 걱정 마. 도청기나 카메라 같은 거..." 그녀는 손사래를 치면서,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 가게에는 높은 빌딩의 나으리들(그녀는 르메인 패밀리의 간부들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도 종종 들리는데, 여기다 도청장치를 다는 건 르메인에게 시비를 거는 셈이라고. 내가 말했던가? 이번에 너한테 넘겨준 쥐새끼들도 그 짓 하다 잡힌 거야." 하고 쓸데없이 음산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을 꺼내버리고 만다. 그러면서 그녀는 술잔을 가볍게 저어서 섞고, 잔의 남아있는 빈 부분을 샴페인으로 가득 채워올린 뒤에, 가니쉬로 사과 웨지 하나를 끼운다.
"자." 피피의 앞에 코스터가 깔리고, 그 위에 청량한 민트잎을 머금은 칵테일이 놓였다. "좀 나대면 어때. 쥐죽은 듯이 사는 게 질리면 깔롱 좀 부릴 수도 있는 거지. 남들 눈길이 성가시다면 거기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네 선택이야. 도도하게 무시할 수도 있고, 교활하게 피할 수도 있고, 아예 미친 척하고 즐길 수도 있는 거잖아." 마셔보면, 정성껏 에어링을 해도 쉽게 품이 죽지 않는 칼바도스 특유의 존재감 강한 술기운이 왼쪽에 민트향, 오른쪽에 사과향을 거느리고 풍부한 탄산을 몰아서 입안에 쳐들어온다. 자잘한 얼음을 써서 저어 만든 이유가 여기 있었다. 얼음이 녹으면서 희석되지 않았더라면 이 첫 향이 미간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독했으리라. 그러나 그것이 희석되면서 빈틈이 생겼다. 그 빈틈을 탄산의 여운과 함께 받치고 들어오는 것이 사과주스와 샴페인의 싱그러운 달콤함이다. 그래도 알코올향이 남아있다면, 가니쉬로 끼운 싱싱한 청사과 조각을 깨물면 완벽하다.
자캐로_오프더레코드 아역 시절부터 극단의 연기자로 시작해 나이가 찬 이후엔 영화나 드라마에도 캐스팅 되는 나름 인지도&실력 있는 배우. 사생활이 매우 깔끔한 것이 특징이며 파파라치조차 건질게 없다며 외면하는 부류. 늘 굳은 표정이라 딱딱해 보이지만 말 걸어보면 의외로 소통이 잘 된다고.
자캐의_오만은 다신 누구도 마음에 담지 않을 수 있을 거라 다짐했고 그것이 깨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자캐에게_좋아하는_사람에_대해_묻는다면
아스 : 음? 그런 걸 왜 묻니. 묻기 전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부터 물어야 하지 않을까. 아스 : 후후후. 그래. 네 재미 없어 하는 얼굴이 제법 볼만 했으니. 조금 얘기해줄까. 아스 : 내 여유를 앗아가는 사람이란다. 그 사람은. 생각만으로도 나를 흐트러뜨리고. 이성을 흔들리게 만들어. 내가 나를 잃을 것 같지. 아스 : 어머. 얼굴은 왜 붉어졌니. 무슨 생각을 한 게야. 후후.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