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의 어깨에서 불타오르는 강습함들, 탄호이저 게이트 곁의 암흑 속에서 반짝이는 C-빔들도 봤어. 그 모든 순간들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프로스페로는 최근 들어 식당에서 식사를 포장해오는 일이 잦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집에 털 날리는 짐승이 하나 들어섰기 때문이다. 둘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머리카락이 고양이 털마냥 흩날린다 이야기하면 이 이야기의 장르가 비극으로 변질되어버리지 않겠는가. 게다가 사실도 아니고. 하여간 그는 오늘 그라탕을 포장해 지하실 첫 번째 방에서 먹으려 했다. 가끔은 혀 끝에서 털을 떼어내지 않고 식사를 하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양이 생각보다 많길래(이것은 프로스페로의 고의다), 따로 접시에 덜어내 랩을 씌웠다. 그리고 집을 나섰다. 사이 좋은 이웃이란 핑계는 이따금 좋은 방패로 쓰인다.
"시안 씨, 나야."
문을 두드렸다.
"저녁 안 먹었지? 우리 집 음식이 좀 남아서."
저녁 먹었어? 가 아닌 먹었지? 다. 음식은 어차피 핑계고 문이나 열라는 소리다. 무례하기 짝이 없다.
프로스페로는 최근 일감이 부쩍 늘었다. 따라서 받아야 할 약품 양도 늘어났다. 하지만 그가 종사하는 직업상, 가끔은 '일이 늘었다'라는 사실 자체도 비밀로 부쳐야 할 때가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네가 두 명이면 이 도시가 안 남아날 텐데?" 그것은 로미 카나운트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생각할 당연한 인과관계였기에, 페로사 역시도 당연히 그런 말을 꺼냈다. 누군가는 로미에게 실례가 될 말인지도 모른다며 생각으로 그칠지도 모르겠지만, 페로사는 농담삼아 할 수 있는 말에는 또 꽤 거리낌이 없었다.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닐 테고. 자기를 객관화하는 화법도 페로사에게 딱히 굳이 지적할 정도로 이상하게 와닿는 건 아니다. 로미가 유일의 캐릭터인 것은 맞았지만 로미만큼 별난 인간이 있는가 하면 이 도시에 꽤 많았으니까.
어찌됐건, 페로사는 생각하기에 따라 달렸지, 하는 로미의 말에 딱히 뭔가 더 캐묻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나중에 알게 될 수도 있고, 언젠가 로미가 자신하테 그걸 이야기해줘도 되겠다거나 이야기해주고 싶다거나 하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위선적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페로사는 뭔가를 꼬치꼬치 캐묻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 0과 1은 곧 죽느냐 사느냐였기에, 까다롭게 언쟁을 주고받거나 마찰을 일으키거나 하는 일들을 위험부담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딱히 빚진다는 생각은 안 해도 되지만 네가 그렇게 생각하겠다면야 굳이 강요하진 않을게." 사람이 참견당하기 싫다고 하면 그 의사를 존중해주는 앤빌의 바텐더 페로사는 로미가 남겨둔 맥주잔을 싱크대에 집어넣고는, 로미가 자빠링하거나 하지나 않나 스툴에서 뛰어내리는 로미를 지켜보다가 이내 로미가 중심을 되찾은 것을 보고는 그녀의 피자박스를 내어준 뒤에 맥주를 포장하는 데 쓰는 공페트병을 꺼낸다.
알면서 묻지 말라는 말에, 제롬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무 짓궂나?" 라는, 능청스러운 농담은 덤이었다. 감정이 아닌 그저 충동, lust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어째서 그는 태연할 수 있었을까.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널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나는 다쳐도 괜찮지만, 네가 걱정하는 건 괜찮지 않아. 그래서 네게 아무말도 안 해주는 거고, 안 해줄 거야. 네가, 나를 걱정하지 않았으면 해서... 난 잔인한 사람이니까, 욕해도 괜찮아."
음습하게 웃는 소리에 제롬은 시선을 땅으로 내리꽂았다. 자신이 다쳐도 아무말도 안 하는 것, 자신의 사정을 설명해주는 것. 어느 쪽이 더 여인에게 상처일까. 그는 저울질을 하다 이내 그만두었다.
아스타로테의 눈을 제롬은 마주보았다. 보랏빛 시선이 서로 얽혔다. 양 쪽 모두 지친 기색이었다. 아스타로테는 그러했겠지만, 제롬은 오히려 아까 전보단 생기가 돌았을지도. 그는 여인을 껴안고 있는 팔을 움직여 그녀의 뒷머리로 손을 가져다댄다. 여인의 선택을 듣고는, 잘했다는 듯, 한참이나 어림에도 자신이 연상인 양 칭찬의 의미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선택하느라 수고했어. 내 억지에 어울려줘서 고마워."
잠시 뜸을 들이다가 충동이 아니었던 걸로 하고싶다는 말에 무언가 자극받았는지 "좋..아해." 라며 숨을 뱉었다. 사랑해, 까지 가기에는 부끄러웠던 것일까. 이런 부분에선 어린 티가 났다.
"...벨라의 집에 가보고 싶어."
어떻게 하겠냐는 시선을 마주하고는 굳이 질문을 듣지 않고도 유추해냈는지, 소심하게 의견을 낸다. 아까의 그 강압적인 면모는 어디갔는지. 등을 부딪히며 동시에 사라졌나? 부딪혔던 등을 쓸어주는 손길에 집중하는지, 그는 반쯤 눈을 감고 조용히 여인의 답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