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낯선 이들을 죽이지 우린 일면식도 없는 놈들을 죽이지 우린 개자식들을 존나 죽이지 여기 총이 잔뜩 있으니 차라리 도망치는 게 좋을 거다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레이스 호텔 205호실의 문에는 종이 하나가 붙어있다. Close.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의뢰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저 종이가 사라질 때까지, 사람들은 기다려야만 한다. 그렇지만 초조해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에만의 워커홀릭 기질을 알기 때문에 이틀 내지 사흘이면 저 종이가 떨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종이는 닷새가 넘도록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에만은 많은 일을 했다. 첫날은 정신없이 잤다. 지친 체력을 보충했고, 둘째 날은 하루 종일 밝은 영화만 봤다. 디즈니, 사운드 오브 뮤직, 메리 포핀스……. 앞으로 있을 일에 미리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다. 그리고 셋째 날부터 미친 듯이 정보의 늪을 파고들었다. 누군가 덧씌워 덕지덕지 기워둔 더미 파일의 늪을 헤치고, 보안을 해제했다. 락이 걸린 정보를 기어코 해제했을 때, 어느덧 닷새가 되는 날이 꼬박 지나고 말았다. 에만은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몸을 씻더니 머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침대에 누웠다. 지쳤다. 못 볼 꼴도 너무 많이 봤다. 이제 조금만 쉬어야겠다. 사르르 감기는 눈꺼풀 뒤로 잠이 묵직하게 내려앉으려는 찰나, 쿵 소리가 났다. 처음엔 무시하려 했다. 다시금 쿵 소리가 난다. 베개로 머리를 덮었을 때, 아예 객실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는 소리에 에만은 몸을 일으켰다.
"문 열어, 부엉이!!"
올 게 왔구나. 가면을 덮어쓴 에만은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기다렸단 듯 손이 불쑥 튀어나와 에만의 목을 부여잡고 뒤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소파까지 끌려와 뒤로 넘어가고 나서야 에만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목을 쥔 사람은 그로스만의 사생아다. 얼굴은 구겨진 휴지처럼 일그러져있고, 목에는 핏대가 서있다. 마주친 쥐의 털처럼 진한 회색 눈동자는 마치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 손에 들어간 힘 때문에 숨을 쉬기가 답답했다.
"이 앙큼한 새끼. 무슨 일을 벌인 거지? 죽고 싶어 환장했어?" "내, 가 뭐.." "A-13 구역에서 용왕에게 혈전을 신청했다지? 혈전이라면 죽거나, 죽여서 돌아와야 하는데 왜 둘 다 죽지 않고 손에서도 멀쩡하게 살아있냔 말이야. 말해. 뭘 숨겼지?"
에만은 손을 바르르 떨더니 목을 움켜쥔 손을 겨우 툭툭 쳤다. 남성은 발언권을 주겠다는 듯 목을 쥔 손에 힘을 풀었지만, 제압하듯 무릎으로 배를 짓누르는 건 멈추지 않았다. 에만은 숨을 돌리듯 가면 너머로 캑캑대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뒤 숨을 씨근댔다.
"망상이 지나치네, 너.." "네가 한 짓은 말이 되고? 너 뭐 하는 새끼야.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면 바른대로 부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대체 셰바의 어느 1인 조직이, 누군가의 편을 온전하게 들어줬다고 그러는 거냔 뜻이었어."
눌렸던 감각이 아직도 남은 것 같아 몇 번 더 밭은 기침을 하고 나서야 제대로 말을 이을 수 있었다. 에만은 조소했다. 가면 너머로 비웃는 소리가 선명했다.
"나는.. 누군가의 편이 아니야.. 착각하지 마. 나는 돈을 받으면 그대로 움직일 뿐이지. 누군가의 싸움에 관여하는 건 맞지만.. 그 책임이 내게 있는 건 아니잖아..?" "개소리 마!!" "그리고 후회 안 하겠어..? 날 여기서 죽였다간 레이스 호텔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용왕도 널 가만 두지 않을 텐데.."
남성은 목에서 손을 온전히 뗐다. 그리고 분을 삭이듯 한참을 씩씩대다, 분노로 얼룩진 얼굴로 에만의 배를 누르던 무릎에 힘을 풀다 갑자기 내리찍더니 맞은편 소파로 털썩 앉았다. 에만은 고통스러운지 잠시 몸을 웅크렸다.
"개 같은 새끼.. 추가금을 내든 말든 할 테니까 당장 불어. 네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150만 벅. 지금 당장 줘야겠는데." "미친 새끼. 방금 전까지 목숨이 오갔던 걸 다시 느끼게 해줄까?" "..시큐리티 불러? 용왕의 귀에도 들어가겠지. 그로스만의 사생아가 살아있다는 소식 말이야.. 거기다 의뢰가 진행중인데 죽였으니.." "그래, 준다, 줘!!"
남성은 품 속에서 지폐다발을 꺼내 툭 던졌다. 에만은 겨우 몸을 일으키며 배 위에 손을 올려 고통의 진원을 찾기 위해 몇 번 더듬더니 멍들겠네. 하고 중얼거렸다. 이후 숨을 가다듬다 지폐다발을 집어 들어 그 값을 능숙하게 세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아파했으면서, 지금은 누가 봐도 돈에 미친 사람 같았다. 차라리 이렇게 보이는 게 나았다. 거짓말을 하는 건 익숙하지만 의심을 사서는 안 됐다.
"용왕이 사람을 써서.. 내게 정보를 요청했어. 그 정보를 가지러 직접 행차할 사람도 아니고.. 추가금을 얹어주면서 부탁하더라고.. 아마 내가 정보 주러 왔습니다, 하면 자존심에 금이 갈 거라 생각했나 보지.." "고작 그것뿐인가? 용왕은 그럴 사람이 아닐 텐데." "20만 벅." "이 개새끼가." "25만?"
남성이 지갑을 꺼내 지폐를 뭉쳐 툭 던졌다. 에만은 테이블 위의 지폐도 야무지게 셌다. 20만 벅. 쪼잔하기는. 에만이 가면 너머로 칫, 소리를 냈다.
"용왕은 A-13 구역에서 압도적인 민심을 얻고 있지.. 윈터본을 이은 낙원의 관리자니까.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론..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의 조직이 직접 나서도 이렇게 타일러 보낼 정도로 자신이 자비로우며, 나아가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는 칩거형 조직과 지속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우호적 관계를 쌓을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려 했을 거야. 선전 효과까지 예상한 거지.." "젠장, 그 교류를 무너뜨릴 방법은 없어? A-13 구역의 민심부터 잡는 게 중요한데..!"
에만은 고개를 돌렸다.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소파에 늘어지게 횡 방향으로 누워 돈을 세던 소리가 멈췄다.
"똑같이 양질의 정보를 주고, 누가 먼저 영리하게 나서냐까지 짜길 바란다면 해커 말고 참모를 찾아 영입했어야지.." "그렇다면 추가금을 더 줄 테니까, 말해봐." "뭐를.. 알고 싶어..?" "용왕이 네게 요구한 정보가 뭐지?" "오, 저런.. 내 정신적인 피해 보상이랑.. 육체적인 피해 보상으로 족히 800만 벅은 될 건데.. 여기서 지불할 수 있겠어..?" "..지금 당장 사람을 불러 가져오겠어." "750만 벅으로 깎아줄 수 있긴 해.. 젊고 잘생긴 사람이 가져오면 정신적 피해 보상은 될 것 같거든.." "목이 졸리더니 정신이 나갔어?" "내가.. 꽤 얼빠라서 말이야." "젠장, 미친 새끼가.. 기다려."
남성이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그레이, 이쪽으로 와줬으면 하는데. 그래, 750만 벅 가지고. 가방에 잘 넣어서. 레이스 호텔 205호실로……. 에만이 속으로 생각했다. 자금은 충분히 있나 보네. 줄을 대주는 사람이나 자금의 출처도 찾아야겠고, 용왕에게 헌상할 돼지도 찾았고, 할 일이 많겠어. 천천히 돈을 세던 손을 멈추며 배 위에 지폐다발을 얹어놓는다. 전화가 끊기자 남성이 에만을 똑바로 쳐다본다. 에만이 운을 뗀다. 용왕이 내게 의뢰한 정보는..
"생존자에 대해 찾아달라 했어.. 생사를 불문하고..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죽었다면 어디에 묻혔을지.. cctv 기록을 뒤져서라도, 아니면 모든 시체 팔이의 장부를 해킹해서라도 찾아달라 지 뭐야.." "생존자? 그게 무슨 말이지?" "그로스만 패밀리의 수장이 될 녀석이 그것도 몰라..?"
에만은 가면 속으로 조소했다가 배가 아픈지 몸을 웅크렸다. 잠시 숨을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시티 헌트 전쟁 당시에, 그로스만이 베르셰바에서 이름난 가문 몇 개와 동맹을 맺었다가 통수를 쳐서 흔적도 없이 몰살 당했잖아." "…그러니까 왜, 그 새끼가 왜.. 잠깐, 설마..?"
거짓 사이에 가끔은 진실을 뿌려 포석을 깔아야 할 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에만은 가면 속에서 천천히 눈을 휘었다.
"미안하지만 나머지 정보는 천만대로 뛸 거야.. 그러니까 그 잘생긴 사람 올 때까지 750만 벅 어치 정보를 잘 물어보라고. 딱 하나 더 답해줄 테니까." "혹시 용왕이 누나를 찾던가?" "……왜 그렇게 생각해?" "로즈밀에게 남동생이 있었거든.. 그로스만 패밀리에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그런데 로즈밀이 은혜도 모르고 배신을 했다고. 요제프 그 빌어먹을 새끼가 뒤지기 전에 지 아들한테 그랬단 말이지." "그거 놀라운 얘기네."
너희가 이미 시티 헌트 전쟁 당시에 내 외숙부를 죽여놓고 어머니에게 같이 일한다면 찾아줄 수 있다 거짓말을 해 억지로 패밀리에 귀속 시킨 건 쏙 빼놓고 그런 말로 포장했단 거지. 미카엘은 뜸을 들이다 부스스 웃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야. 다른 걸 요구했지." "이건 질문으로 쳐주나?" "아니."
남성은 손을 들어 미간을 짚었다. 그리고 정적이 일었다. 에만은 불편한 침묵 속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자 몸을 일으켰다. "정신적 보상을 받아야지." 하고 문을 연 에만을 보며 남성은 제대로 미쳤다며 중얼거렸고, 에만은 한 번 "아, 존나게 힐링 된다!!" 하고 기계음 섞인 탄성을 내지르더니 남성이 아닌 돈 가방을 품에 안았다. 희생양을 흘끔 보니 짙은 피부에 매력적인 눈물점, 포마드로 넘긴 옅은 회색 머리까지. 이미 자신은 뿌리 깊이 누군가 각인된 이후라 눈에 차지 않지만 타인이 보기엔 확실히 매력적인 남성이긴 하다. 곧 돼지로 헌상되어 어떤 수모를 당할지 생각하면 자못 안타깝긴 했다. 사생아는 "이런 녀석일 줄은 몰랐는데.."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에만은 두어 걸음 물러나며 둘을 배웅했다.
"다음에 또 의뢰하러 오지." "그래, 돈 많이 가져와..!"
문이 닫히고 미카엘은 돈 가방을 아무 데나 휙 던졌다. 그리고 노트북 앞 의자에 횡 방향으로, 피에타 상처럼 앉더니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돈에 미친 사람으로 각인 되어 쓸데없는 의심을 살 일도 없고, 돼지도 찾았으니 운송만 한다면 제롬이 한결 자유로워질 일도 생겼고, 용왕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와 나머지 포석도 깔았다.
"오래비한테 쓸데없는 걸 알려줬다고 뒤지게 깨지겠네.. 제발 돼지로 잘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그런데도 이 모든 일이 복수의 첫 장인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라는 사실이 미카엘의 진을 빼며 늘어지게 만들었다. 앞으로 이틀만 더 쉬고 일해야지. 정말.. 이틀만 쉬고 일해야지.. 아, 침대에 가서 자야 하는데.. 이대로면 허리고 근육이고 전부 좆 되는데.. 미카엘은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곤히 잠들었다.
결국 날 당신 손아귀 안에 두고 싶은데 뜻대로 안 해줘서 성질난다는 거잖아. 어린애 투정하고 다를 게 무언지 모르겠다. 피피는 한숨처럼 웃으며, 무릎에 팔꿈치를 댄 채 턱을 괴었다. 자연히 제롬 올려다보는 꼴이다.
"착각하지 마, 미스터 초콜릿."
턱 괴지 않은 손을 들어, 검지손가락으로 제롬의 이마를 가볍게 톡, 밀어냈다. 사내는 이 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눈웃음을 얼굴에서 지워낸 기억이 없다. 심지어 탄환이 제 옆을 스쳤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내 심장에 욱여넣지도 못할 총알이 무슨 위협이겠어. 당신은 내가 아쉽잖아. 감정을 쏟아부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필요하잖아. 소중한 사람한테 감정을 쏟아붓기엔 무서우니까. 아니야? 내가 틀려? 프로스페로의 억측이 끼릭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난 당신 손아귀 안에 있어. 그저 당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닐 뿐이지. 그것도 못 견뎌?"
어린애같기는. 조곤대며 웃었다.
"우리 서로 정 주지 말자고... 그래 뭐, 도련님, 당신 혼자 정 주는 건 말리지 않을게. 당신 마음대로 해. 그런데 내가 그걸 돌려줄 생각은 없어서."
사실 현실적으로 따지면 남들이랑 어울리기보다는 자기만의 기준점이 있고 독선적이라고 보일만큼 뻣뻣한 사람은 원치 않게 미움받는 편이니까. 비슷한 맥락으로 브리엘은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구분 짓는 버릇이 있는데 자신의 성을 붙히면 과거의 자신, 안붙히면 지금의 자신이라는 것도 있네.
사람은 자신의 죄책감을 상쇄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자신의 감정을 내던질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기도 하며 끝없는 자기합리화로 시선을 돌리기도 하고 핑계와 변명으로 하루를 연명하기도 하며 때로는 종교를 내세워 잊으려 한다.
참으로 단순한 논리, 조물주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들고서 만족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숨을 내쉬었다는 말도 마냥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늘에게 기도해도 닿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업보인 셈이다. 허나 탄식하는 그들에게도 이렇다 할 변명거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참회를 비웃는 이도 존재하는 법이다.
여전히 무감정으로 일관하는 목소리의 주인, 매마르고 불태워지며 끝내는 산산히 부서져 녹아내린 새카만 감정을 다시금 입안으로 흘려넣고서 말문을 닫아버리는 대상에게도 인간의 역겨운 면모란 저와 똑같은 취급이 되는듯했다.
"그렇게 선을 그어야 자신이라는 존재를 확립할 수 있으니까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선 반드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부정함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려하죠. ...그만한 모순도 없네요~"
홀로 태어난 존재, 그렇기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배척하는 것은 비단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니어도 무리를 짓는 생명이라면 모두에게 통용되는 개념이었다.
현실을 알고 기대치를 낮추다보면, 세상은 의외로 이해하기 쉬운 것들뿐이었다. 모두가 제 기준에 얽매여 살아갔고, 그것은 그녀라고 해도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방관자로서의 삶, 그럼에도 그 또한 그녀라는 존재의 삶...
다른곳으로 옮겨가며 비스듬해진 시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머리카락도 놓치지 않는 그녀에겐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아주 잠깐이나마 이쪽을 향해 눈길을 주는가 싶다가도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생각이라도 난것인지 불만섞인 이야기를 꺼내는 상대방에게도 그녀는 그저 웃어보일 뿐이었다.
"후후후~ 정말 그렇다면, 아무래도 전 당신에게 미움받고 있는 모양이네요~ 하지만 그래도 괜찮답니다? 어차피 잊게 될 거라면, 그 짜증이라는 감각도 뒤돌아서면 눈녹듯 금방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겠지요..."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나왔지만, 그또한 흘려보내고선 붓의 궤적을 돌연 끊어내는 그녀였다.
"자~ 다되었네요~ 두번 연속으로 검은 머리카락을 그리다보니 먼젓번 것보단 더 질감이 살아나네요~"
완성된 그림은 역시나 그녀답게, 그림과 현실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비추고 있었다. 차라리 화질을 억지로 뭉개버린 사진이라 부르는게 나을만큼,
"이녀석 갑자기 왜 귀여운 척을." 유령인지 좀비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동작을 해보이는 로미를 보고 페로사는 쿡쿡 웃었다. "알았어, 더 상세히 묻지는 않을게." 바 보조를 쓰는 건 어떤가, 하는 말에 페로사는 바를 한번 훑어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알잖아, 이 동네에서 믿고 맡길 만한 바백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는 거. 그런 의미에서 난데모 메카니컬은 알바생이라도 구해서 좋겠어." 로미의 앞에 맥주잔을 놓아주고는, 페로사는 주방 쪽을 한번 흘낏 눈짓해본다. 별 동작은 아니고, 스파이시 가든 피자가 얼마나 완성돼가는지 힐끗 본 것일 테다.
"대충 그 비슷한 이야기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VR 게임 필드 테스트를 한다는 말에 친구가 그 VR기계를 써봤는데 그 날부터 친구가 갑자기 낯선 무리들과 어울리더니, 어느 날 자신을 잡으러 집에 쳐들어왔다던가, 갑자기 가족들이 이상하게 행동하더니 자기를 보고 시력검사를 하러 가자고 종용한다던가... 꿈의 교회 괴담은 아직도 이 엘리시움 지구 곳곳에 남아있어. 뭐, 넌 세뇌전파를 쏘는 VR 헤드셋이랑 폭발하는 곤충 로봇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를 고를 사람이니 별 흥미 없을 테지만." 드물게도, 꽤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털어놓은 페로사는 유리잔에다 생수 한 잔을 따라서는 벌컥벌컥 마시고 입가를 슥 닦았다. "그 맥주? 테이크아웃도 되니까 원한다면 말하라고." 잔에 그려진 노움 밑을 보면 Gnome's taste라는 상표가 적혀있다. '이 맛이 마음에 들면 당신도 노움'이라는 장난스러운 문구와 함께.
"그래. 웃길 만도 하지." 로미가 푸하하하하 하고 시원스레 웃어버리자, 페로사는 이젠 익숙하다는 듯 해탈한 표정으로 로미의 웃는 양을 바라보고 섰다. 아마 예전 현역 시절에도 꽤 사용한 모양인데, 그 때도 이걸 갖고 익숙해질 정도로 놀림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난 이 녀석이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어-" 하고 대답하던 바텐더는 공구를 찾는 로미의 말에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사실 그걸 지금 백룸에 갖다놨고, 백룸에 기초적인 작업대도 있긴 한데... 본격적인 건스미싱용이라기엔 도구가 모자라니까, 네가 운송담당을 부르던가 내가 사람을 불러서 난데모 메카니컬까지 가져다주는 게 나을 거야."
로미에게 할 요청에 대한 이야기를 다 끝내고, 페로사는 로미에게 케이스를 건네주려 했다. 하지만 로미가 한 발 앞서서 케이스에 손을 대었기에 페로사는 별 행동을 않고 로미가 케이스를 여는 양을 지켜보았다. 지익 하고 지퍼를 젖혀 열면, 그 안에는 육각형의 무언가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원통형의 기계장치 같은 게 있었다. 잘 들여다보면 그것은 원통형의 무언가(아마도 충전 도크나 조종에 핵심적인 장치) 위에 정육각형의 등딱지를 부착한 로봇 딱정벌레들이 전원이 꺼진 채로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는 것이었다.
"너한테 흥미로운 장난감일까 해서 아껴놓고 있었지. 등딱지에 소형 EMP를 탑재해서, 목표 건물에 풀어놓으면 건물의 전기 도관을 찾아가 자폭하는 무리 드론이야. 옛날에 너만큼 괴짜인 양반이 하나 있었는데, 그 양반이 만든 프로토타입을 내가 받아서 썼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