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눈 앞이 어두워지는군... 부탁한다." "이곳을 너희의 거처로 삼겠다면 나와 부하들을 뒷뜰에 묻어줘." "우리 46명 다같이. 한 무덤에. 모두." "너네 진짜 개 많이 파야 할거다."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어려운 건지, 귀찮은 건지. 아직 확신이 가진 않았다. 다만, 그의 말처럼 피피는 제롬이 쉬이 버릴 수 있는, 무가치한 인간은 아니었다. 제롬에게 있어 이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평생 무가치한 인간과 가치 있는 인간, 두 부류로 사람을 나뉘어 판단하던 그가, 그 사이에 있는 어중간한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다니. 하지만 색다른 경험이라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는 이어지지 않는 법. 피피 그와 대화하고 있다보면 없던 두통까지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넌...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면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거든."
그는 취한 나머지 소주잔을 들어올리려다, 소주병을 들어올렸다. 잘못 집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병의 주둥이를 입으로 가져가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개성없는 인간. 대체하기 쉬운 존재. 그것을 자처하는 사람과, 그 말처럼 정말로 아무 개성도 보이지 않는 사람."
"하지만, 그런 인간일수록 오히려 숨기는 것은 많은 법이지."
아쉽다. 그가 사라지면 아쉬울 것이다. 이런 인간을 자신이 다른 소모품들처럼 무가치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이 아쉬울 것이다.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 상황이 재미있었을까. 누구보다도 평범하고, 무개성함을 자처하는 눈 앞의 그는, 말 속에서 제롬에게 자신의 특별함을 드러내보이고 있었다. 화려한 개성이 아닌, 무채색의 개성을. 평범하지만, 평범하기에 가질 수 있는 특별함.
"역시 넌, 쓰레기통으로 쓰기 아까워, 피피."
제롬은 눈 앞의 남성에게서 두가지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파괴 충동.
"차라리 부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하, 어렵네. 너같은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없어. 희소성이 있단 말이지."
그는 술잔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조금 취했는지 초점도 맞지 않는, 엉망인 눈이었다. 이런 독특한 장난감은, 차라리 자신 아니면 아무도 쓸 수 없게 망가트리고 싶었다. 단순한 어린아이의 투정이다. 예전부터 원하는 것이라고는 가져본 적 없는 아이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손에 넣었음에도 빼앗길까봐 망가트리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희소성이 발목을 잡는다. 지금 망가트린다고 해도, 나중에 대체품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생각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만 했다.
다른 하나는, 관찰 욕구.
"저번에 했던 제안은 파기하고, 대신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하지."
느긋하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는, 그를 바라본다.
"내가 네 후원자가 되고 싶어, 피피."
네가 네 X대로 하고 다니는 것을, 그렇게 해서 생기는 난장판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싶다.
>>775 (세상 슬픔) 않이 억떡계 글얼쑥아 잇서? 물론 퇴근하고 다들 저녁먹을 때긴 하겠지만 그래도 엉엉이야~ 흑흑~ 쓰담쓰담이야~ 예에~ 친구가 되어서 친구가 되고 그다음엔 친구가 될거야~ 나도 비밀친구 만들래~ 제롬이도 피피가 비밀친구자너~~ (제롬주, 피피주: ?)
병나발 부는 것 가만 바라봤다. 단단히 취했군, 저거... 취한 게 아니라면 정신이 나갔든가. 둘 다 일 수도 있겠다.
"그런 느낌은 곤란한데... 나는 숨기는 게 없어, 미스터 발렌타인. 당신 내 뒷조사 다시 했잖아. 이젠 내 전 애인 머리색까지 알지 않아?"
갈색이 섞인 금발. 뭐,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다.
"후원자라..."
눈을 감고 고민하는 흉내를 냈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다. 이 일련의 연기는 단지 제안한 이를 무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것 그 이상, 그 이하의 가치도 없었다. 미스터 발렌타인, 나는 당신이 아주 조심스러운 줄로만 알았는데. 가끔은 무모하기 짝이 없어.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든가, 아니면 알코올이 전두엽의 주도권을 잡아버린 모양이지.
"미안하지만 거절하지."
딱 잘라 내뱉었다. 애초에 그는 재미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저 숨만 붙여준다면 쥐 죽은 듯이 살 인간이다. 시체를 자르고, 자주 술을 마시고, 불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한다. 그것 뿐이다.
"난 누구한테 후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고, 사는 데에 많은 돈이 필요하지도 않아."
후원은 좀 더 어린 놈들한테 해.
"나는 내 아늑한 원룸과, 시체 자르는 지하실에 만족하고 있어. 이게 내 분수에 맞는 삶이라고."
비탄의 도시에 있는 SNS라고는 트래쉬톡 하나뿐이었지만, 연락수단까지도 그것뿐인 건 아니다. 문자 메시지도 메일도 아직은 남아있다. 가벼운 문자메시지로 방문일정을 조율한다. 저쪽에서 이쪽을 방문하느냐, 이쪽에서 저쪽을 방문하느냐 이야기가 오갔으나 이내 이런저런 일정상의 문제로, 그리고 로미 카나운트가 술을 마시고 싶다는 이유로 후자로 하기로 서로가 합의했다. '플래시라이트 말고 네가 봐줬으면 하는 게 두 개 더 있어, 하나는 맡길 물건이고 하나는 선물' 이라는 묘한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지만, 가보면 자초지종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LY-51UM 지구까지 그렇게 먼 길은 아니었으니.
앤빌의 전경은 그 날 이후로 언제까지나 쭉 그대로다. 그대로 사진 속의 한 풍경으로 멈춰있을 것 같은, 구 공장 폐허 위에 세워진 비스트로 바. 항상 따뜻한 불빛과 함께 은은한 음식 향기, 그리고 술 향기가 흐르는. 중세 판타지에 선술집으로 대표되는 술집이 있다면 이 앤빌이야말로 마경에 현현한 선술집이 아닐까.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누군가는 만남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모험을 기다리기 위해... 그리고 대부분의 누군가는 칼칼한 목에 알코올 한 잔 부어넣고 주린 배에 맛있는 식사를 채워넣기 위해 찾아드는 이 곳.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 그렇듯 앤빌의 아늑한 경치가 로미를 맞이해준다. 그리고, 수상할 정도로 키가 큰 바텐더의 인사도.
"오셨구만." 잔에 오렌지주스를 꼴꼴 따르고 있던 바텐더는, 안될 것 없다는 듯이 다른 얼음잔 하나를 더 꺼내서는 보드카 조금과 오렌지주스를 따른 다음 시원하게 저어서 로미 앞에 하나 놔준다. "바에서 보는 건 또 오랜만인 것 같네, 로미. 자, 웰컴 드링크."
여인의 제롬의 얼굴이 굳는 걸 보았다. 그것이 여인의 말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그 반응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건지. 그래야만 했던 건지. 그것 역시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로.
"글쎄."
실소와 대조적으로 토막난 말들에 여인은 간결히 대꾸했다. 단지 오랜 지기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묻는 것임은 확실했지만. 그걸 단순하다고 할 수 있을 지는 답할 수 없었다. 아니. 여인은 알고 있었다. 여기서 여인의 혀로 그렇다고 해버리면 간단히 매듭 지어 질 문제라는 걸.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지.
피로 때문인지 탁해진 보랏빛 눈이 여인을 응시해왔다. 여인은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했다. 거울 같은 눈동자에 검은 안개가 일렁이는 착각이 든다. 총명한 빛을 잃고 윤곽이 흐려진 실루엣이 보였다. 흔들리는 눈빛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내 제롬이 눈이 감으며 조용해지자 둘 뿐인 잡화점 안에 적막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 침묵은 길지 않았다.
옷 스치는 소리가 분위기를 갈랐다. 옷과 옷이 스치고 이윽고 카펫 위를 거치는 소리는 흡사 물살을 가르는 것 같았다. 슥. 스윽. 소리는 제롬의 앞에서 멈췄다. 그 직후 가느다란 속삭임이 제롬의 귓가에.
"얘. 제제. 그게 그렇게 중요해? 내가 알려달라고 하는데. 누구로서 묻는 건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야?"
지금 여기엔 둘 뿐이니 그렇게 목소리를 죽일 필요가 없는데. 누가 들을라 한껏 음량을 줄인 목소리는 반이 숨결이나 마찬가지였을 터. 그리고 그 속삭임을 귓가에 흘리기 위해 가까이 좁힌 거리는 이제 서로의 옷이 스치는 거리가 되어 있었다. 제제. 익숙한 호칭과 함께 여인의 손이 제롬의 손을 잡아 느릿느릿 깍지를 끼워갔다. 곧 한 손을 부드러이 붙잡아 당기고 남은 손으로 제롬의 셔츠 깃을, 턱을 쓸어올렸다. 옷에 맞춘 듯 검게 물든 손톱이 피부를 스치는 감각은 참으로 기묘했을 터였다.
너는 기만자야. 노련하게 회피해서 유리한 입지를 잡아놓고 상대를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게 습관이 되어있는.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지금 제 꼴이 딱 그 말다워서일까. 킥..! 이번엔 여인이 짧게 실소했다. 그래. 차라리 그 말대로 굴자. 이미 하고 있었잖아. 별 거 아냐. 제롬의 손을 들어 제 허리에 얹었다. 닿을 듯 말 듯 하게 몸을 가까이 하고서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