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눈 앞이 어두워지는군... 부탁한다." "이곳을 너희의 거처로 삼겠다면 나와 부하들을 뒷뜰에 묻어줘." "우리 46명 다같이. 한 무덤에. 모두." "너네 진짜 개 많이 파야 할거다."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잡화점의 문은 열려있는 시간이 곧 여인이 있는 시간임을 의미했다. 물론 무조건 그렇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제롬이 방문했을 때에 여인이 자리에 없었던 적은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열린 문 너머는 아늑한 느낌의 조명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평소와 같이 진열된 물건들이 벽과 선반에 즐비하고. 방향제를 바꿨는지 은은한 제비꽃 향이 한걸음 들어온 순간부터 주변을 감싸올 터였다. 그리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소리도 같이 들려왔을거고.
"그럼 그걸 이쪽으로 빼서.... 아. 어서 와. 음. 잠시만."
여인은 늘 있는 자리에 있었다. 카펫을 깔아 부드럽게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전에 왔을 때와 같이 앉아있었다. 다만 혼자가 아니었다. 여인의 옆엔 구리빛 피부에 진한 적발이 인상적인 남성이 함께였다.
남성은 여인과 무언가 긴밀한 얘기라도 하고 있었는지 제법 가까이 붙어 있다가 제롬의 존재를 눈치채고서 뒤로 살짝 물러났다. 그러면서 힐끔, 제롬을 보는 금빛 눈이 가늘게 빛났다. 그러는 사이 여인은 손에 들고 있던 수첩 같은 것을 닫아 갈무리해서 남성에서 내밀었다. 자연스럽게 수첩을 받아 든 남성이 여인에게로 몸을 기울이며 무어라 속삭였고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남성은 자리에서 내려와 잡화점을 나갔다. 나가면서 제롬을 스쳐갔을 텐데. 스치는 순간 꽤나 서늘한 시선이 제롬을 훑고 지나갔다. 그것에 대해 따지려고 해도 남성은 이미 나가버려 보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기다렸지? 이리 와. 제제."
어쨌거나 남성이 나간 뒤로 실내에 남은 건 여인과 제롬 둘 뿐이었다. 그걸 알려주듯 여인이 익숙한 애칭을 부르며 제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오랜만에 봐도 그대로인 미소가 반기고 있음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오늘도 잠깐 보러 온 거야? 아니면 쉬었다가?"
최근 보는 패턴이 그랬으니 오늘도 어련히 그런 줄 아는 말투였다. 여인은 한결같이 웃는 얼굴로 제롬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색 긴 원피스와 머리에 검은 천을 둘러 수녀를 연상시키는 차림새가 다소곳이 앉은 자세와 제법 어울리는 모습으로.
아무리 냉소적이고 저들의 잇속만 챙기는 불한당의 집합소라 하더라도 각자의 사생활이 있으며 저마다의 취미가 있는 법이었다. 다만 베르셰바는 그 무리의 특성상 제법 어둡고 가라앉은 이미지로만 보이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째서 이 붉은 도시는 스스로 검정을 택한 것일까? 어둠이 좋아서? 빛이 무서워서?
아니면 자신 또한 빛을 가지고 싶어도 이미 누군가가 그것을 모두 빼앗고 나눠주지 않아서?
이유야 어찌되었건 그녀는 바깥에서 흔히 말하는 정상인이며 평범한 사람이었고, 베르셰바에선 기행인이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장에 조금만 선의를 베풀어도 뒤만 돌면 곧바로 배신하여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 이곳 시민들의 특징이거늘, 그녀는 그 어떤 해코지에도 정말 자신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덕분에 그나마 도시 내에선 나쁘지 않다는 평판만이 암암리에 퍼져있었으며, 애초에 그녀가 어떤 조직에도 몸담고 있지 않았기에 존재 자체가 알려질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가 무색하게 하루에도 무수한 사람들이 머무르고 스쳐가는 광장의 한켠에서 묵묵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과연 무슨 배짱일까? 그 모습은 타인의 시선따위 아랑곳하지 않는것 같기도 했으며 어떻게 보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기에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안개, 한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 사라지는 눈과도 같았다.
과연 이곳에서 낭만다운 낭만을 즐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런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만큼은 충분히 자신만의 세계에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건 분명했다.
그녀의 웃음은 여느 사람들처럼 사무적이지도, 작위적이지도 않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니까.
그럼에도 캔버스에 신경을 쓰면서 종종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마치 먼저 손대고 있던 작품을 마무리지으며 새로운 소잿거리를 찾는 미술인의 호기심어린 눈길이었을까? 인물화라면 최근들어선 남성의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녀는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모습들을 눈에 담기 위해 그 대상을 찾으려는듯 두리번거리기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