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안개와 한 밤의 꿈 깨지 않게 춤추고 싶어 인간다운 일을 강요받아도 굳이 필요하다고는 느끼지 않아 달이 아름다운 밤만이 올바르다 느끼고 있으니까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셰프가 오늘 식료품 거래처에 들릴 일이 있어서 자릴 비웠거든." 페로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상, 오늘의 앤빌은 거지반 개점휴업일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그녀는 마침 어깨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에만의 코트자락을 잡아서 바 위에 올려놓다가, 평소의 에만이라면 절대 입지 않을 화려하기 그지없는 코트의 털장식을 보았다. 페로사는 에만과 에만의 코트를 한 번 번갈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웬일로 말쑥하게 차려입었네. 누군지 몰라도-" 페로사는 그제서야 에만의 옷차림을 한번 훑어보았다. 맵시있게 차려입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딱 맞도록 재단되어, 홀쭉하고도 가냘픈 신체의 선을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 차림. ...자신의 귀가 홧홧해져 오는 것 같은 느낌에, 페로사는 시선을 다시 에만의 얼굴로 끌어올렸다. "누군지는 몰라도 취향 한번 고약한 녀석이네. 어울려주느라 고생했겠다."
페로사는 직감했다. 오늘이 이 목적 모를 아리송한 영역싸움에 종지부가 찍히는 날이 되겠다고. 이 녀석은 이 순간을 줄곧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고- 어쩌면 자신도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나 늦게, 늦어도 너무 늦게 직감했다. 오늘따라 매장에 손댈 일이 많더라니. 들리는 손님이 없더라니. 셰프가 웬일로 비스트로를 비우더라니. 저번에 잊어먹었던 기본안주, 이번에는 주려고 했는데.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언제는 내 마음이 내가 준비를 끝마치기를 기다려주던가. 페로사는 손을 뻗었다. "그 이야기지? 네가 하고 싶었던 말." 그리고 에만의 뺨을 살며시 쥐었다.
"잘못된 선택일까 불안해?" 페로사는 웃었다. 평소의 낙천적이고 느긋한 웃음도, 장난기를 담은 눈웃음도 아니었다. 쓴웃음이었다.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니지? 하고 조심스레 묻는 그 조바심을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라구. 저번에 말했듯, 난 스물아홉 살이야. 목숨 건지려고 발버둥친 끝에, 살아남았다기보단 이렇게 남겨져버렸어." 페로사는 종종 자신의 나이라거나, 여성미를 드러내는 데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 잔뜩 들러붙은 자신의 몸을 두고 고약한 농담을 하는 일이 잦았다. "거기다 너와 나는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아... 어쩌면 너는 내 과거에 대해서 나보다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무엇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는지는 네게 말해준 적이 없었지. 내가 너에 대해 아는 건 네가 머리 좋은 여우같은 꼬맹이라는 것과, 네 이름... 그리고, 네가 내게 너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사실이야." 페로사는 눈을 감았다.
"나는 너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새로 찾아낸 좋은 음악을 이어버드 한 짝씩 나누어끼고 들어보고 싶고, 레이스 호텔의 네 객실에도 놀러가보고 싶어. 아니면 내 오피스텔로 널 초대하거나. 하루종일 넷플릭스나 뒤적이면서-아 잠깐. 이건 말 그대로의 의미야- 빈둥거려 보거나. 네게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거나... 맛은 보장한다고? 셰프한테서 배운 레시피니까. 그 외에도 내 친구가 운영하는 백화점에 가서 실컷 쇼핑을 하거나. 마음속에 고민거리가 있다면 서로에게 털어놓거나. 다른 이들에게는 못 할 이야기를 나누거나. 네 고민거리를 해결해주거나. 나란히 들판에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보거나. 네게 자장가를 불러주거나. 서로 머리카락이 엉망이 된 채로 아침을 맞이하거나... 그런 소중한 시간들을 너와 함께 보내보고 싶어. 네가 내게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 천천히 알아가고 싶어. 그래. 네가 나를 천천히 길들여줬으면 했어." 이 앤빌에서,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날 길들여줄 보통의 행복을 찾고 있었어.
"나는 욕심이 많아서, 한번 마음에 들인 사람은 절대로 마음속에서 놔주지 않거든. 그래서 네가 내게 익숙해지기를 기다릴 생각이고, 잘못된 선택인지 아닌지 판단할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면 했어." 그녀의 손은, 자신의 뒤통수를 얼싸안고 있는 미카엘의 팔 하나를 조심스레 떼어냈다. "그런데 말이지, 참... 꼬맹아." 그 손을 끌어다, 자신의 가슴팍- 쇄골과 쇄골이 만나는 접합부 위에, 목까지 단추가 빳빳하게 채워져 있는 옷자락 위로 얹어놓으면서 페로사는 나직이 에만의 이름을 고쳐 불렀다. "미카엘." 조그맣게, 그러나 선명하게. 생생히 뛰어 움직이는 심장박동이 거기에 있었다.
"말했지. 나는 욕심이 많다고. 그래서 이게 잘못된 선택인지 아닌지 대답할 수 없는데... 그런데도, 네가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리면," 페로사의 눈꺼풀이 서서히 떠졌다. 웃음의 색이 바뀐다. 가늘게 뜨인 눈꺼풀 사이로 빛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선명한 청금석빛을 띈 눈동자가 에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에만이 마음속에 품곤 했던 그것과 아주 비슷한 욕망을 품은 채로, 가만히.
"난 널 거부하지 못할 거야."
─지금 당장 단숨에 문턱을 넘어도 된다. 이 나이만 먹은 소녀와 함께 평범한 나날들을 보내는 것은 이후의 일로 두고, 지금 당장 목줄을 채워도 된다. 오래 기다렸지 않은가? 그러나 그 반대로 조금 더 기다려도 괜찮다면, 시간을 두고 그녀와 함께 평범한 나날들을 보내면서 가랑비에 젖어들듯이 조금씩 익숙해져도 좋다.
>>634 소녀(29)라니 그 무슨 말법적인 인정못한다 그냥 성장과정에서 결여된 것들을 내비칠 뿐인 장면이라고 일상하자는 의미 맞았고, 저번에 3인일상 이야기했었는데 제롬주가 나중에 딱 난입하면 좋을 지점까지 돌려볼까 했지만 지금 내키지 않는다면 괜찮아. 말만 꺼내본 거니까. 그리고 (예정)... 상황은 사람의 계획과는 전혀 상관없이 언제든 돌변할 수 있으니, 김칫국은 마시고 싶지 않다는 본인 성향을 조심스레 피력해봅니다
>>635 쥬주도 소프트파워 장난아니지. 그러나 그게 브리엘주의 소프트파워가 약하다는 말은 아니라구(단호)
>>646 하긴 소녀였을 때 못한 것들이 지금 쏟아져나오니 소녀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도. (정신승리!) 으음 제롬주랑 아스주랑 삼자합의를 한 거라 좀 그렇지만, 아스주랑 로테가 앤빌을 사전답사하고 싶은 거라면 괜찮겠지. 페로사주가 수면시간 한참오버라, 처음의 바 풍경 묘사를 빼면 레스 길이가 간결할 것이며 중간에 킵될 가능성이 높은데 괜찮은지?
하웰은 꽃다발을 안고 있는 시안을 보며 미소짓다가 이번에는 튤립을 주 메인으로 꽃을 골라와 새로운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손을 섬세하게 움직이며 하웰이 시안에게 말을 건다.
“델피니움의 꽃말은 자유를 뜻해. 정확히는 깊이 생각하치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숙명, 이라는 뜻. 이 도시는 굉장히 억압되고 폐쇄된 공간이면서도 지나치게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이 도시는 굉장히 모순적인 동네였다. 한 없이 자유로운 것 같으면서도 그 자유 마저도 독이되어 돌아오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남을 죽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만큼 그 자유로 인해 제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는 그런 곳이라는 뜻이다. 아무런 법칙 없이 존재하는 것 같아도 르메인의 규범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 말인 즉슨 힘이 있는 자에게는 끝없는 자유가, 힘 없는 자에게는 나락같은 억압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델피니움의 꽃을 보면 돌고래를 닮았다고 해. 그래서 이 꽃과 얽힌 이야기에는 돌고래가 나오거든.”
하웰이 나긋한 어조로 동화를 읊듯이 오르토프스의 이야기를 시안에게 해주었다. 오르토프스는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며 사는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바다에 빠진 것을 돌고래들이 구해줘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돌고래들과 친해져 함께 놀고 먹을 것도 나눠주며 지내던 중,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 오르토프스에게 말한다. “우리도 돌고래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소.” 하지만 오르토프스는 그 사람들이 돌고래를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돌고래들에게 이를 알려 도망치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돌고래들을 피하게 한 오르토프스를 살해해 바다에 던져버렸지. 돌고래들은 슬퍼하며 기도했고 이를 가엽게 본 신이 그 영혼을 꽃에 담았는데 그것이 바로 그 델피니움이라는 거야.”
하웰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튤립 꽃다발이 완성되었다. 하웰은 그것도 시안의 품에 안겨주었다.
“뭐, 꽃말이나 전설이나 사람들이 만든 것이니까 별 의미는 없어. 그저 꽃이 예쁘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시안 씨는 꽃이 잘 어울리네. 꽃을 자주 사러 와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