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영웅들과 우상 다 모자란 인간일 뿐 현실은 개같아, 계속 가긴 너무 큰 공포 하지만 지고 싶진 않지, 그렇지? 싫을걸 건 게 많고 아직 성장 중, 바로 그 열정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볼멘소리를 툭 내뱉자 제롬은 키득키득 웃으며 "미안, 화났어?" 라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보인다. 이렇게나 짓궂으면서도 에만이 자신을 절대로 강하게 때리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모양이다. 능청스럽기 짝이 없다.
미카엘의 눈은 훌륭했다. 물불 안 가리는, 셰바에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세바에 어울리는 사람 말이다. 다만 에만의 생각에서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나중에 이득이 된다면 기다려서라도 얻는 이는 아니라는 점일까. 그는 몸을 던져서라도 이득을 얻는 사람이었지만, 미래에 얻을지도 모르는 이득에 몸을 던지지는 않았다. 그가 이처럼 몸을 던진 까닭은, 지금, 이득이 있기 때문이었다. 에만을 도움으로써 당장 얻는 이득이, 에만의 환심이 아닌 이득이 또 있던 것일까. 그것은 제롬, 그만이 알고 있겠지. 말해주지도 않을 거고.
"우와~ 너무해~"
그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보이다가 그가 익숙하다는 말에 조용히 나이프를 쳐다본다. 어떤 이유 때문에, 나이프를 던지는 일이 익숙한 건지. 그것은 아마 에만이 갇혀있을 때의 일이 원인이 아닐까. 그는 조심스럽게 추측할 뿐 별 말 하지 않기로 했다. 그만두었으니 더 말을 얹는 것은 원하지 않았으니.
"난해한 사람이라... 뭐, 나랑은 상관 없... 어? 이거 왜 안 돼?"
몇번 페이지를 넘기던 그는 단말기의 화면이 하얘지며 오류창이 뜨는 것을 본다. 알 수 없는 에러코드가 적힌 오류창은 제롬을 당황케 만들기 충분했을까. 몇번 달그락거리던 그는, 에만을 지긋이 바라보며 단말기를 내밀었다. '고쳐놔' 라고, 에만에게 입모양으로나마 말했을까. 하여튼 일주일은 괜찮을 거라더니, 레스터 그녀석의 허풍은 알아줘야 한다. 이런 것도 못 고치고. 업계에서 손 꼽히는 해커라더니, 고작 이런 오류도 못 고치고 말이야.
"좋아. 트레버에게는 내가 연락하지. 넌 정보를 내게 보내. 취합해서 전달하고 명령하는 건 내가 할테니까."
오랜만에 보겠네, T. 그는 가볍게 중얼거리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갈 시간이다.
하? 하고 구겨지는 표정에 바텐더는 얼굴에 잔뜩 끼어있던 장난스런 웃음기를 조금 덜었다. 개구쟁이의 웃음이 다시 그 느긋한 미소로 되돌아갔다. "혀에 전념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얼굴을 하고 계셨으니까요." 대체 그게 어떤 얼굴일까. 네 아니오나, 좋음 나쁨 같은 1차원적인 변수로 따질 수 없는 것에 천착하는 사람들... 아마 이 바텐더도 그런 사람이리라. "그래서 그런 녀석으로 골라드렸어요." 거기서 거기인 알코올 섞인 액체들 중에서 무엇을 골라 랙에 올려놓을지도 그런 알기 힘든 기준에 의존하겠지. 그 결과가 지금 브리엘의 앞에 놓인, 적갈색이 도는 액체가 담긴 온더락 글라스였다. "그 위에 있는 녀석들은 마음을 추스리고 싶기보단 버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술이니까요."
바텐더는 미네랄 워터를 한 잔 따라서 다시 브리엘의 앞에 놓아주었다. 각얼음은 꽤 녹긴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가볍게 잔을 돌려주는 것만으로 시원하게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일부러 그랬죠, 하고 툭 꽂는 말에 바텐더는 활짝 웃었다. "한 잔 주문하셨는데 찔끔 따라드리면 안되잖아요? 미즈와리로 달라고 하시지. 이건 미즈와리로 먹어도 괜찮은데."
이 도시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깔끔하게 떨어지는 계산과 이해득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성이라는 것만으로는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런 말을 했다면 그녀는 그야말로 베르셰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어디 그런 사람이 베르셰바뿐이던가. 베르셰바 밖으로 나가도 그런 이들은 한가득일 텐데. 이 세상은 지옥이고, 베르셰바는 그 지옥의 구획들 중 하나였으며, 이 조그만 바도 하나의 작은 지옥이다. 브리엘의 입안에 담긴 술도 지옥의 흔적을 되짚고 있지 않던가.
그러다 말고 브리엘의 앞에 뒤늦게 작은 접시 하나가 놓인다. 호두 알맹이 몇 개와, 피스타치오 조금, 땅콩 조금. 프레첼 과자 조금. "아. 맞다. 기본안주 세팅을 안 해드렸네." 이 인간이?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지나온 길에 맞춰진 조각이 하나라도 없다면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을까. 특히나 가장 위태로웠던 시기에 피피가 없었다면. 분명히 지금과는 정 반대가 되거나. 아니면...
"응. 꼭 좋은 소식 갖다 줄게."
그렇게 해보겠다는 말이 어느새 꼭 그렇게 해주겠다는 말로 바뀌었다. 무심코일지. 일부러인지. 마주보는 두 눈이 웃었다. 생긋 웃으며 두 색의 차이를 여실하게 드러내보였다.
"좋은 태도네. 음. 당연히 안 잊지. 내가 필로를 어떻게 잊어."
친애하는 벗아. 어느 날 문득 뒤를 보았을 때, 네가 언제나 거기 있었으면 해.
키득키득 웃으며 잠시 손을 놓았다. 살짝 몸을 돌려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내다가 곧 돌아와 피피의 손목에 고리를 걸어주었다. 사탕병과 낱개로 포장된 사탕들이 완충재마냥 든 작은 주머니였다. 그리고 그 손을 잡으며 몸을 슬쩍 일으켰다.
"저 앞까지 배웅해줄게. 가자."
거절은 거절한다. 라고 장난스레 웃으며 피피의 손을 당겼다. 엷은 물빛 기모노 자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잡화점을 나와 피피의 귀로를 같이 걸었다. 얼마 못 가 손을 놓고 안녕을 말해야 했겠지만. 웃으면서 말해주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이걸로 막레 할게. 긴 일상 고생했어. 피피주. 그리고 정말 재밌었어. 여담이지만 안나가 쓰는 필로 라는 애칭은 철학이라는 의미의 필로소피에서 따왔어. 피피주의 독백에서 느껴지는 사색적인 분위기랑 안나 시점으로 봤을 때 강박에 시달리는 피피가 고뇌하는 철학자 같다고 느꼈거든. 아마 처음 한동안은 피피라고 부르다가 좀 친해진 후부터 필로라고 불렀을 듯 해. 음. 아무튼 고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