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기억들이 날 비웃어 멈춰서서 뒤돌아보는 나를 가슴 속에 남은 것은 언젠가의 기억 스스로 고르고 버렸을 터인 미래들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브리엘은 여전히 얼굴 한쪽을 감싸쥐듯이 턱을 괸 채로 시선만 모로 틀어서 바텐더의 반응을 바라볼 수 있었다. 건조하고 무미건조한 얼굴이다. 언제 짜증스레 헛웃음을 터트렸냐는 듯이. 그 덕분에 바텐더의 멋쩍은 웃음과 똑바로 마주하게 되자, 브리엘은 그 반대로 시선을 비틀어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 사람에게 크게 데였던 적이 있는 사람이 으레, 하는 행동과 비슷했다. 차라리 대놓고 행동하 는 사람, 혹은 목적성이 분명한 거래를 위해 만나는 사람 쪽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이 뒤틀리는 속을 조금이나마 날카롭게 말을 씹어뱉는 걸로 덜어낼 수 있으니까.
"참견이 심하다는 소리 듣지 않아요? 난 참견이 심한 사람이 싫더라."
하지만, 브리엘은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말을 씹어뱉었다. 표정은 바싹 마른 겨울철 나무인 주제에 목소리에는 짜증스레 헛웃음을 지었던 것과 똑같은 짜증스러움이 담겨있었다. 전투능력이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적은 잘 만들어내는 타입임은 분명했다. 바텐더의 태도에서 브리엘은 비슷한 사람을 떠올렸다. 제롬 발렌타인. 그 참견이 심하고 오지랖이 태평양같은 남자를. 그 남자랑 같은 타입이면 브리엘은 당장 자리를 박차고 돌아갈 생각을 굳히기에 이르렀고 자신의 손 위치와 가까운 곳에 다시 놓인 미네랄 워터를 담은 잔을 잡으며 탄산수가 담긴 잔을 손등으로 슬쩍 밀어낸 뒤 마셨을 것이다.
반정도 비워낸 잔을 내려두고 브리엘은 바텐더가 술을 고르기 위해 움직일때마다 같이 움직이는 금빛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거래를 오래 하다보면 사람을 관찰하고 재보는 버릇이 생기기 마련이라, 브리엘도 그런 타입이었다. 가끔 개인적인 판단이 섞여서 적을 만들기 일쑤지만. 테이블을 한번 더 툭 두드린 브리엘의 손이 금색 액체가 담긴 온더락 잔을 쥐어 한모금 마셨다. 다크 럼이라고 하기에는 순한 맛에 잠깐 잔을 떼어낸 브리엘은 잠시 잔을 돌리며 관찰한다. 뒤에 감기는 풍미는 다크 럼이 맞는데.
"나는 독한게 좋아요. 바텐더. 맛이든, 향이든 상관없이."
독해서 마시는 그 순간만큼은 딱 술에 대한 생각만 할 수 있는 정도로. 브리엘은 익숙하게 잔을 다시 입에 대고 기울였다.
벌이라는 말에 제롬은 피식 웃었다. 이런 녀석도 사고를 치긴 하는구나. 괜히 인간성도 느껴지고 좋은 느낌이었다. 르메인이란 이름에 너무 겁을 먹었던 걸까. 무라사키가 이런 벌을 받는다고 하니, 뭔가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캔을 따는 순간이었다. 그의 미소를 머금고 있던 얼굴은, 갑자기 솟아오른 분수에 잡아먹혀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곧이어 쫄딱 젖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인생 거 참..."
개같네. 그는 차마 말로 꺼내지는 못 하고 목구멍 너머로 말을 삼켰다. 왜냐고? 상상해봐라. 아까 내가 잘 마신다고 하니 살랑살랑 흔들리던 저 바보털이- 저렇게 시들어버린 새싹처럼 추욱 늘어져있는데, 내가 그 말을 했다간... 저녀석, 정말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르니까.
"됐어. 괜찮아. 일부로 한 건 아닐 거잖아? 그렇지?"
젖어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앞머리를, 그는 뒤로 넘기며 무라사키에게 피식 웃어보였다. "아니면, 설마 일부러였어?" 라며 가볍게 농담을 던지며 안심시키려고 했고. 팔목도 그렇고 전부 음료수로 젖어버려서 걷어올렸다. 대체 이 음료수 뭘로 만든 거야? 탄산은 없는데?? 하여튼 이 도시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곤란하다. 옷이 전부 젖어버렸고, 머리도 젖었고... 뭔 성분인지 모를 음료 때문에 이미 몸 전체가 끈적끈적하다. 이거, 집을 한번 들려야겠는데... 문제는, 여기에서 집이 조금 거리가 있다. 15분 기다리며 3번이나 양아치에게 시비걸리는 도시에서, 애 혼자 놔두고 나 혼자 휙 갔다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리고 같이 가는 건...씨발, 그 개같은 새끼만 아니었어도. 도움 안 되는 놈.
절대. 절대. 절대로 안 되는게, 사람에게는 있는 법이다.
"하는 수 없네... 무라사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한숨을 쉬었다. 이거 정말 난감하긴 한데... 어쩔 수 없다. 그는 무라사키를 향해, 조금 난처하다는 듯 웃으며 태연히 말했을까.
도망치고 숨어 살면 참 좋을 텐데, 나쁜 셰바의 사람들. 결국 나빠서 다행인 사람들. 미카엘은 적어도 이 온정을 악행이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눈물을 닦고 나니 위스키 향이 스쳤다. 술김에 그런 것이라며 다시금 속으로 정의하고 합리화하기로 했다. 베르셰바 같은 새끼, 적어도 친구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욕이었다. 온갖 음험한 악이 들끓는 도시에 사람을 빗대는 것만큼 무서운 말이 어디 있을까.
한참을 울다 겨우내 그친 눈물은 여전히 위태롭다. 앙 다문 입술을 다시금 자근자근 깨문다. 또 눈물이 터질까 노심초사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더 울면 추할 것이라 판단했기에. 소맷단으로 벅벅 닦은 눈물이 얼굴 위로 스며들다 번졌다. 얼굴의 열감은 쉬이 가시지를 못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먹먹하던 귀부터 시작해 머리가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한 번씩 크게 떨리던 몸도 점차 안정됐다. 눈물을 그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몇 마디 하는 녀석이 나쁜 새끼인 거 몰라?"
익살맞은 놀려먹음에 주먹을 말아 쥔다. 한 대 팰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기로 했다. 지금은 힘이 들어가지 않아 때려봤자 소리만 요란할 것이다. 대신 내밀어진 손을 쏘아봤다. 더러운 손이니 얼마든지 더럽혀도 좋다, 대가는 환심. 이쪽에서 불리한 조건 아닌가. 사람의 마음을 내어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이 세상에 호의 하나 갖지 않고 도망친 녀석의 것이라면. 하여간 욕심만 그득한 자신의 친구였다. 이런 것까지는 안 닮았으면 좋겠는데.. 하다 떠오른 것은, 그래도 이 녀석은 용왕만치 욕심 그득한 녀석이 아니니 다행일 법 싶다는 것이다.
"번지르르하게 말 하기는.. 내 쪽에서 불리한 계약 조건이야. 그래도 뭐."
진지한 눈빛에 미카엘 로즈버드 윈터본이 손을 뻗었다. 그간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살았기에 앙상하던 손가락이 내밀어진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겨울의 색을 닮은 눈동자는 주변의 공막 실핏줄이 터져 새빨갛게 충혈됐지만 그 덕에 윈터본의 핏줄이라는 증거가 더 선명해졌다. 아직 얼굴엔 눈물 자국이 남고, 물기에 머리카락이 몇 달라붙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으리. 겨울 색 심연이 정확하게 눈을 마주하고는 잡힌 손에 의지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천성이라 어쩔 수 없네요." 대놓고 면박을 주는 말에도 이 바텐더는 유하다 못해 유들유들하기 그지없다. "뭐, 그게 편하다고 하시면 그렇게 해보죠." 적어도 시도하겠다는 어투로 여지를 주는 것으로 보아서는 완전히 제롬과 같은 스타일은 아니겠지만... 브리엘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에 충분할 정도로는 비슷하다. 적어도 이성적이고 단순한 기준으로 깔끔하게 판단하는 것이 힘든 인간이라는 것 하나는 분명했기 때문이다. 멋대로 하게 두었다간 내 바에서는 사람들이 편히 쉬다 갔으면 좋겠다, 하는 말을 지껄일 그런 인간일 테다. 대체 뭘 믿고 저렇게 뻔뻔한지.
"어찌됐건 이야기라도 해줘서 고마워요. 좀더 일찍 이야기해주셨으면 골든 브리즈가 아니라 디아볼로를 따라드렸을 텐데 그건 두 번째 잔으로 준비해야겠네요." 바텐더는 바의 의자에 가볍게 걸터앉았다. "아니면 골든 브리즈도 독하게 마시는 방법이 있으니 그렇게 해드릴 수도 있고요."
# 내가 브리엘주에게 답레의 분량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정작 나도 분량이 너무 적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