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 맘을 몰라, 넌 내가 어떤 부류인지 몰라 어두운 부분은 내 설계의 일부야,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다고 이야기 해 어두운 면모는 내 설계의 일부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피피는 페로사의 반응이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 히죽거리는 낯으로, '쓰액끼'는 능청스레 왼쪽 눈으로 윙크했다. 짜증나게도 윙크 잘한다. 그것도 엄청 잘한다. 손님 없는 시간대에 저 혼자 거울 보면서 연습한 것이 틀림없다.
"난 그렇게 되더라도 그냥 단 거 먹고 단명하련다."
그 말을 증명하듯 술을 연신 홀짝였다.
"당신이 먼저 생각한 게 아니더라도, 그냥 당신이 만든 거라고 우겨버려. 그럼 적어도 뉴 베르셰바에서는 페로사 씨가 오리지널이겠지."
아주 뻔뻔스럽고 프로스페로다운 생각이다. 뭐 어떤가. 피피는 살면서 지지부진한 '내가 원조다' 논쟁을 수없이 봐왔다. 총기류, 음식점, 술집, 심지어는 구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옥신각신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정확한 답이 내려지지 않고 끝났다. 다만 정답 대신 승자가 생기는 기이한 구조였는데, 대부분의 경우 승자는 좀 더 목소리 큰 쪽이었더랬지.
"나도 취미 하나 정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앗 차가. 중얼거리며 코 끝의 거품을 닦았다. 턱 끝 목 쪽으로 한껏 끌어당기고, 입꼬리 내린 탓에 일순간 엄청난 못생김이 스쳐지나갔다. 다시 수습하고 턱 괸 채 페로사 말을 들었다. 그리고 속으로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하는 말의 절반 이상도 못 알아들을 뻔 했다.
"이건 의외의 선물인데, 하리보 씨. Peep 씨가 아주 고맙다고 전해달래."
피피(은)는 쉐이커(을)를 얻었다! 손 안에 쥐고 어린아이가 장난감 흔들듯, 소심하게 두 세번 흔들어 보았다.
"대접하고 싶은 사람은, 글쎄.. 일단 나 자신이 먼저 아닐까. 뭐, 집 청소도 했으니까. 이젠 집에 친구도 초대할 수 있게 되었고 말이야."
언젠가 피피가 페로사한테 제 집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벌레와 쓰레기로 가득한 방을 상세히 설명하는 꼴에 페로사가 무슨 표정을 지었더라, 사실 제 이야기에 취했던 탓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 까짓거 내 거라고 우기면 그만이지, 내가 좋아하는 건 푸른 칵테일이지만... 적어도 붉은 칵테일에 대한 발상에 대해서는 이 망할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발언에 우선권이 있지 않겠냐구." 페로사는 바의 창밖으로 보이는 비탄의 도시의 붉은 하늘을 눈짓하며 블랙조크를 던졌다. "바마나 언덕길에서 뉴 베르셰바의 하늘을 올려다본다면, 그 누구도 모히또 바마나가 원조라는 걸 의심하지 못할걸." 그러고 보니 뉴 베르셰바에는 제법 농장지대도 있었던가. 그 라즈베리 잼은 아마도 바마나 지구에서 구한 모양이었다.
"취미는 사람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지. 현명한 선택이야." 페로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항상 삶에 있어 행복이라는 것을 고집하고는 했다- 이 앤빌은 페로사가 자신을 위해 마련해둔 소박한 행복을 쌓아둔 저장고이기도 했으며, 페로사라는 존재를 이 식당에 옭아매는 감옥이기도 했다. 다만 다른 감옥과의 차이점은 면회가 아주 자유롭다는 것일까. 페로사는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언제건 자신이 마련해둔 행복을 기꺼이 나누어주곤 했다. 피피에게 선물로 건네어진 셰이커도 마찬가지였다. 흔들어보면 무게감이 좋다.
"그거 괜시리 폼잡는다고 빙빙 돌렸다 공중에 던졌다 하다가 찌그러뜨려먹지 말고."
페로사는 잊지 않고 조언했다. 그러다 집 청소를 했다는 말에 "마침내!"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전부터 내가 그랬지. 네가 청소를 못하겠으면 해충방제 조직이랑 특수청소 조직을 한번 불러서 집안을 싹 정리하라니까." 아, 페로사의 표정이 조금 기억날 것 같다. 피피가 뭐라 궁시렁궁시렁거리면 뭐라 따발따발 잔소리를 했었는데, 그 잔소리가 정 안되겠으면 청소부 부르라는 소리였던가. 그리곤 그런 환경에서 지내면 건강에 안 좋다는 잔소리도 했었다. 산 사람 몸에 시기屍氣가 쌓이면 안 좋다던가 뭐라던가.
"나중에 시간 맞으면 집들이 한번 할게." 피피의 제안에 페로사는 선뜻 대답하고는, 마지막 설거지거리를 마치고 건조대에 글라스를 걸어놓았다. "그러면 이제 술은 뭘 사놓으면 좋을지에 대해서 일단 기주부터 짚고 넘어갈까..." 그리고 강의 다음 편이 시작됐다. 칵테일 레시피에 따른 술의 계량법이라던가, 드롭은 방울이고 대쉬는 5~6방울 정도라는 소리라는 것을 알려주거나, 바탕이 되는 술인 기주와 거기에 곁들이는 향신료같은 술인 리큐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기주로 삼을 만한 술들에 대한 가벼운 브랜드 추천이었다. "만들어보고 싶은 술이 있으면 한번 레시피를 검색해봐. 인터넷을 뒤져보면 레시피 정도는 어렵잖게 찾을 수 있으니까."
'아저씨들 엄청 여기 보고있어... 그, 그야 당연하겠지... 페퍼씨도, 엄청 튀고... 나도 이런 곳, 처음이고... 어쩌다 내가 이런... 우으, 부끄러워... 그리고 무서워...! 나,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는 있는 걸까...? 도와줘 선배님들...!!' 쭉 이런 상태다. 고개는 밑으로 푹 숙인채, 시선은 땅을 뚫을 기세로 아래를 내려다보는게 옴짝달싹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거기에 그런 가게의 분위기와 맞물려 아직까지도 납치당시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는지 얼굴은 김이 피어오를 정도로 붉어져 있었다. 정작 그 소녀의 차림도 따지자면 그다지 정갈한 외모는 아니어서, 방호복 페퍼와는 또 다르게 가게와는 참 잘 녹아들고 있는 것이 참으로 언밸런스하다.
"수, 술이요...?! 아, 아뇨...! 저, 저... 아직 마셔본 적도 없고...! 그리고, 아직 18살이고... 그래서..."
그렇게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굳어있는 소녀를 움직인 건 페퍼의 말이었다. 무라사키는 그에 그렇게 말하다가, 그 갈 곳 잃은 시선이 문득 종업원이 대충 던져놓고 간 메뉴판에게로 향한다. 무라사키는 펼쳐진 메뉴판의 맨 위에 게시되어있는 사진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키더니 손가락을 거기에 가져가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다.
"아... 그, 그러엄... 저는... 이, 이거. 할래요..."
'나는 뭘 고르고 있는거야...! 하, 하지만...' 무라사키가 고른 것은 평범한 샤슬릭이었는데, 꼬치가 아닌 칼로 꿰어서 내놓는다는 점이 다른 것 같았다. 아니, 꼬치 모양의 칼? 아니면 칼 모양의 꼬치? 어느쪽이든 무라사키에게는 크게 어필이 되었던 모양이다. 메뉴를 정한 무라사키는 그 손을 얼른 치우곤 꾸중을 들은 아이처럼 다시 제 무릎 위에 주먹을 꾹 말아두고 있었다.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가게의 주변 분위기에 압도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