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간밤에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잠은 오는데, '즐거웠습니다'라고만 덧붙이려니끼 다른 말이 계속 나오려는 거 있죠. 고민만 하다가 그대로 잠들었었는데... 그냥 솔직하게 다 쓸래요.
연희주와 함께한 시간이 즐겁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저는 '이제 다음번엔 강산이로 신나게 아는 척하며 호들갑떨어야지...못 물어본 장래희망도 물어보고...'하고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끝을 말씀하시니까...솔직히 즐거웠다고만 하기엔 아쉬운 감정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이 곳에서 함께한 시간이 즐거우셨다면 다행입니다. 안녕히 가시고 건강하세요.
"의념 동조와... 그런 것을 본다면 뭔가 나타날 수도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수업 이름 안 까먹으려고 그런 것 뿐이지만. 지금으로써는 의념과는 관련이 없는 화재현장을 슬쩍 보고는 빈센트의 기분이 별로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안 좋은 게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공원 쪽에서도 있었다고 하니 가스 쪽은 아닌 것 같고요.." 모기향 같은 거라고 하기엔 아직 모기가 판칠 날씨는 아닌데요.. 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러면 저쪽 조금 외진 쪽도 돌아볼까요?" 저 쪽에 소나무들이 좀 많은 걸 보면 불이 나기 쉬워보이고요. 라고 가리키며 지한은 발걸음을 하나 뗍니다.
.dice 1 100. = 23 1~40 아무 일도 없었다. 41~70 붕어빵 장사 끝물의 가스불 소리. 71~99 어디선가 불씨가 어른거린다. 100 명백한 불이 보입니다.
빈센트는 자신의 옛 경험에 비춰본다. 귀납적 사고방식은 그렇게 좋은 사고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떤 상황에서 일단 답은 내준다는 게 좋았다. 빈센트는 귀납적 사고를 할 일들도, 수많은 불의 비극들을 떠올렸다. 부모가 일하러 간 사이, 두 아이가 집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집을 불태우고 사망했다는 기사, 한 외국인이 풍등을 날렸는데 풍등이 날아간 곳이 하필 유류저장고였다는 기사, 그리고... 기사까지 갈 것도 없이, 빈센트 자신의 경험.
"공원이면 아이들이 많겠군요. 아마도..."
빈센트는 옛날을 떠올렸다. 지금 그가 만들어내는 불들에 비하면, 다섯 살 때의 빈센트가 만들어낸 불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유치했다. 하지만, 그 때의 빈센트에게는, 집을 다 잡아먹고 그들의 파종자요 창조자인 빈센트까지 잡아먹으려던 그 불길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빈센트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지한에게 말했다.
"아이들을 찾아봅시다. 아이들은 불장난을 좋아하죠. 불장난으로 집을 불태워본 경험이 있어서 잘 압니다." //6
빈센트는 지한과 함께 나아갔다. 그러면서, 빈센트는 자신과 지한이 참 많이 엮였음을 생각해본다. 게이트에서도 여러번 만났고, 식사를 사 주는 대신 하소연을 듣는 의뢰를 생성했을 때도 항상 지한이 왔다. 의도적으로 지한을 만나려고 그렇게 일정을 조정한 것이 아님에도, 참 많이 만났다. 심지어는 여기서도, 또다시 운명이 꼬이고 꼬여 엮이지 않았는가?
"참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빈센트는 그렇게 운을 뗀다. 걷는 속도는 거침이 없었지만, 그 잠간 사이에 이런 대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짧은 몇 마디는.
"그 진흙 거인을 상대할 때나, 수련을 할 때나... 일부러 보자고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닌데, 참 많이 마주쳤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겠습니다." 지한과 비센트는 아이들을 찾으러 돌아다닐 운명인가 봅니다. 물론 다른 거동수상자를 발견한다면 물어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겠지요.
"크게 의도한 적은 없었습니다만.. 그렇네요." 운을 떼는 것에 어떤 말인지 들어보다가 많이 마주했다는 말이 들려오자 고개를 끄덕입니다. 지한이 어쩌다가 밥 먹는 의뢰를 본 것도 우연이었고...는 그 이후의 밥 먹는 의뢰가 빈센트일지도? 라고 생각한 적 없단 건 아니었지만 만난다고 해서 별 일 있겠어? 하고 가볍게 넘긴 탓도 있었겠지요.
"아. 벨로였던가요." 진흙거인이어서 부슬부슬한 흙더미가 되었었죠. 라는 농담을 하며 걸어가는 빈센트를 따라가면 아이들이 노는 공터같은 곳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있을지.. 아니면 관리인이 긁어보은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있을지...
높은 영성이 꼭 좋은 기억력과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빈센트는 높은 영성에 따라오는 좋은 기억력으로, 자신이 보고 들었던 모든 것을 기억하다가, 인간에게 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자꾸 자신을 물어뜯는 과거에 지친 빈센트는, 망각하는 법을 일부러 배우고 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은 빛을 발해서, 빈센트는 잊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망각은 좋았던 기억, 재미있던 기억도 전부 날려서 벨로도 지한이 말해야 겨우 기억을 할 수 있었다.
"그 때, 약점이 안 보이니까, 약점이 나올 때까지 신체부위를 전부 두들겨패는 작전이라. 대단한 발상이었죠."
그렇게 말하면서, 빈센트는 공원으로 들어갔다가, 작은 아이들의 달음질을 느낀다. 그에 빈센트는 손을 들고는, 지한을 멈춰세우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