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수 가지의 진리와, 불편한 것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나 역시도 그런 불편하고 어려운 것들 속에서 살아왔으며 불편한 가치와 진실들을 알아오며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반이라는 방패가 사라진 직후. 우리들은 모두 내몰려 어른이 되었다. 초대형 게이트를 공략한 직후 뿔뿔히 흩어져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때. 나 역시도 어른이 되어 사회로 내몰렸다. 이것은 내가 어른이 된 후의 이야기이다.
표현하기 어려운 색깔입니다. 단순히 불꽃의 붉은 색이라고 하기에는 눈을 가려버리는 환한 백색을 띄고 있었고 색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 뜨거운 열기에 색이라는 개념따윈 잊어버릴 것만 같은 공간입니다. 그 뜨거운 불꽃이 살에 닿아 진언의 살갗을 살짝 간지르지만 이미 이정도의 불꽃으로 고통을 느끼기에는 진언의 경계는 너무나도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또한, 너무 많은 경험들이 진언에게 이 고통이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불꽃은 자신만의 언어를 표현합니다. 때론 뜨겁고, 때론 차가우며, 때론 따뜻하며, 때론 매마르도록. 모든 불꽃들이 각자만의 색으로 당신을 훝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불꽃들은 진언에게 묻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자신들과 함께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진언은 부드럽게 손을 뻗습니다.
" 여전하구마. 불꽃이라카믄서 오랜만에 보는 강아지맹키로 하는기는. "
진언은 오랜만에 웃으며 자신의 친구를 바라봅니다. 일반인은 볼 수 없는 영역, 정령과 이 세계의 영역을 볼 수 있는 진언에겐 불꽃의 원래 모습이 정확히 드러났습니다. 끝없이 불타오르고 있는 눈, 피부 하나하나가 모두 영원히 타오르는 듯한 작열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팔에는 태양의 불꽃을 뒤집어 쓴 듯 작은 폭발과 재생이 반복되고 있으며 그 몸에는 태양의 표면처럼 꾸준히 불타고 있는 불꽃이 갑옷을 이루고 있습니다.
- 오랜만이군. 호르소멜. 나의 힘을 빌려 간 것이 찰나와 같은데 어째서 나에게 돌아왔는가?
진언은 자신의 친구의 물음에 천천히 손을 뻗습니다. 공간을 찢어내고, 그 틈을 벌리며 천천히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높이는 8미터쯤 되는 듯 했고, 몸체는 수십 미터에 이르는 한 마리의 늑대. 엘비토는 진언의 의지를 읽은 듯 거인을 바라보며 낮은 하울링을 울립니다.
" 미안하디. 근댜. 힘이 쪼까 필요해져서 말야. 니 힘을 쫌 빌리야 카겠는디. "
곧, 엘비토를 중심으로 수많은 인연들이 나타납니다. 질풍을 닮은 쾌남의 기사. 섬을 지탱했다 하는 거대한 거북이. 낡은 총을 들고 적을 겨누는 고블린. 뇌우의 축복을 받은 정복왕. 진언과 인연을 맺은 수많은 인원들이 각자의 태세를 가다듬고 살기를 내뿜습니다. 어중간한 적이라면 즉시 전의를 잃을 법한 기세를 두고도 불의 거인은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 웃음 한 번에 수 번의 폭발이 일어남에도 모두, 물러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 허, 허허, 하하하하하하!!!! 호르소멜이여! 너 역시도 여전한 인간이란 말이더냐! 나, 신화의 불. 코르를 다루고자 했던 자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그대는 듣지 않았던가!
영원히 타오를 것을 허락받은 불멸의 존재. 진언은 그 힘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의 힘의 조각을 얻는 것만으로도 진언의 심장은 넘처흐르는 의념의 힘을 채워넣었고, 벽이라고 할 법한 것을 단숨에 부숴버렸으니까요. 그렇기에 모두가 내몰린 지금. 진언에게는 이 힘이 절실했습니다. 그날, 쓰러진 친구들의 얼굴이 아른거렸으며. 지금까지 죽은 모두들의 얼굴이 지났으니까요.
" 알지. 오늘 내는 죽을지도 모르겠다. "
그러나 지금, 진언은 해맑게 웃습니다.
" 그런디. 길고 짧은 거는 끝가지 대보기 전까진 모르는기라. 바보맹키로, 하니까. 인간이지. "
손을 들어올립니다.
" 리히텐슈타인의 구원자. 진언. "
바보같이. 신화의 존재에 뛰어들어 빛나던, 그 시대의 영웅들처럼.
" 신화의 불, 코르. 너를 지배하고자 한다!!! "
지금. 진언은 날개를 펼치고 있습니다.
- 하, 하하, 파하하하하하!!!!!!!
코르는, 웃음을 터트립니다.
- 좋다! 나. 신화의 불. 주신이 창조한 세 개의 근원 중 하나인. 이 코르가 그대의 시험을 승인한다! 승리한다면 신화의 불의 주인이 될 것이며, 패배한다면 그대에겐 죽음 뿐이니!
신화에 맞서. 승리하십시오. 영웅이 되십시오!
뺨끝을 간지르는 불꽃의 향기. 무엇보다도 뜨겁고, 심장을 불태우고 있는 것만 온도. 온 몸이 뜨겁습니다. 수 번을 불타오르고, 불타버릴 것만 같은 지금. 진언은 몸에 붙은 불꽃들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불꽃들은 단순히 뜨겁기만 한 불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심장을 두드리고, 당신의 의념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 모든 힘들이 당신의 의념과 만나 끌어오르고, 터져오릅니다. 진언은 마침내, 그 불꽃을 바닥에 떨어트립니다.
화륵,
아주 작은 불꽃은 어둠을 장작 삼아 수없이 불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어두운 밤 속에서도 무엇보다 환히 빛나는 별처럼, 눈을 감더라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하나의 불꽃. 짙은 어둠은 가장 먼저 타버릴 것만 같은 하나의 불꽃이! 마침내! 거대한 거인의 형상을 띄어냅니다!
- 크,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신화의 불꽃은 마침내 이 세계에 현현합니다!
- 어린 계약자여, 이 곳에서 그대의 부름을 들었도다!
코르는 거대한 몸을 드러냅니다. 이 공간마저 좁다는 듯이, 온 어둠을 집어삼키고 손을 휘저어내어. 거대한 의념이 만들어낸 어둠을 강제로 부수어냅니다.
- 무엇을 원하는가. 아직 그대가 얻지 못했을 약동하는 화염 심장을 바라는가?
코르는 손을 뻗어 진언의 심장에 불꽃을 새겨넣습니다. 이 힘을 그대로 흡수하기만 하더라도, 진언의 레벨은 60을 거뜬히 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아니라면 신화 시대의 존재들이 사용했던 기적을 가지고자 하는가?
진언의 이마에 붉은 문양이 새겨집니다. 문양은 진언에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문양에게 묻기만 하는 것으로도 진언은 새로운 학파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거대한 마탑 하나를 창조할 법한 마도를 얻게 될 것입니다.
- 아니면 이 땅에 그대를 대적하고자 했던 이들을 불태워주길 바라는가?
코르는 거대한 창을 들어올립니다. 그가 진심으로 저 창으로 땅을 내려찍는 순간, 영월이란 땅은 불에 타 모두 사라져버릴 겁니다.
- 단지. 그대가 내게 대가만 치를 수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무엇이라도 줄 수 있노라!
대가. 가장 소중한 것을 불태우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힘. 살아남기 위해 하나씩, 옆을 잃어갔던 진언과 다르게.
진언은 웃습니다. 그녀의 손끝에는, 단 한 사람. 에르미슈가 그 자리에 있습니다.
- 대가는?
거인의 물음에 진언은 자신의 몸을 가르킵니다.
이 곳에 불타고 있는, 나의 힘.
진언의 몸에 차오르고 있는, 히어로 모먼트가 전해준 모든 힘들이 불꽃으로 변해 흘러내립니다. 모두, 전부 다. 전부!!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킨 직후!
- 거래는 - 성립되었다!
" 아.. 안돼.. "
공포에 휩쓸린 듯, 에르미슈는 뒷걸음질칩니다.
" 난, 난 아직 죽을 수 없다! 아직.. 아직!! "
그러나 그 공포를 무시하듯, 거인은 창을 들어올립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꽃에 있어, 모든 사정은 단지. 단 하나의 핑곗거리가 될 뿐이니 말입니다.
유성. 그것이 어울리듯, 거대한 불길의 창은 긴 꼬리를 그려내며 지상으로 현현합니다. 시간도, 공간도, 감정도, 생각도, 모든 것들을 장작 삼은 채 타오르는 불꽃은 스스로를 운명의 주인이라 칭한 자를 집어삼켜 불타오릅니다. 그가 쌓은 힘도, 권력도, 명성도, 재능도. 모든 것은 단지 불꽃 속으로 삼켜 사라질 뿐.
거대한 화염의 기둥은 어둠 속에서 소란스러운 어둠을 찢어버리며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를, 한 사람을 불태우기 위해서! 거대한 불꽃의 기둥이, 커다란 불의 증거에서 작은 기둥으로 화하기까지. 수많은 열풍과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까지. 이 작은 영월은 수 초의 낮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신화의 불꽃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버리려는 듯, 불타오르던 모든 것들이 형체를 잃어가고. 자신의 운명을 잃어버린 주인의 육체는 재가 되어 바스라져갑니다.
" 이.. 럴리는.. "
짧게 불어온 바람에, 에르미슈의 재가 흩어져갑니다. 급격히 차오르기 시작하는 망념에 의해, 진언의 몸이 무너집니다. 온 몸을.. 뜨거운 불꽃, 아니. 불꽃 자체가 자신을 불태우는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