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야. 과연 사람 목숨에 가격을 붙일 수 있을까?" "야쿠자로서는 생각 할 수 없는 너무나도 도덕적인 발언인데?" "착각하지마. 누군 3억벅을 받고도 아무렇지 않지만, 누구는 3000만벅에 사람을 죽여. 그말이 하고 싶었을 뿐이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뉴 베르셰바의 구역치고는 나름대로 정돈되어 있는 동네인 3LY-51UM 구역. 물론 여기도 뉴 베르셰바인지라 고성, 종종 총성, 종종 비명이 오가는 건 다른 구역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래도 다른 구역보다는 그 빈도가 확연히 적었고, 구역의 어느 한 구획으로 접어들면 더 적었다. 저 가게 때문이다. 입간판 대신 모루를 내어놓은 비스트로 바. 식사도 음료도 술도 다 있는, 지친 하루에 종합선물세트 같은 가게다. 거물 은퇴 배틀리언이 있다는 소문이 쫙 돌아 저 가게를 아는 이 동네 주변 사람들은 저 가게 근처에서는 소란을 피울 엄두를 못 낸다. 그도 그럴 것이 저 가게 인근에서 소란 피우다가 '영구출입금지' 당한 친구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페로스페로에게 맡겨지지 않던가?
그러나 적어도 페로스페로에게 있어 그 가게는 공포심을 갖거나 두려워할 공간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선 바텐더의 후레취향일 게 분명할 노랫소리가 실려오는 익숙한 공기. 따뜻한 공기를 타고 다가오는 소스의 그윽한 냄새와 알코올 냄새. 배가 고프건 목이 마르건 다 들어오라는 상냥한 호승심이 공기에 담겨있다. 한때 공장이었던 곳의 흔적이 골조에 남아있는 그 바는, 그렇지만 사람 발길 닿은 자국이 정감있게 닳은 돌바닥과 헤링본 패턴의 나무타일이 짜맞춰진 천장 아래 온화하게 빛나는 난색의 조명, 퍼즐처럼 짜맞춰진 멋들어진 코코볼로 바와 투박하게 만들어진 선반에 올라앉아서 각양각색의 빛깔로 반짝이는 술병들, 맥주 디스펜서, 와인병들...
그리고 바 안쪽에 서서, 연초를 물고 연기를 뻑뻑 뿜으며 태평스럽게 신문을 읽고 있는 금발의 바텐더까지. 딸랑딸랑 하고, 묘하게 깨끗해져 있는 정문에서 나는 종소리에 바텐더의 시선이 이리로 향했다.
"아이고, 어서오셔 피사장. 용케 사지 멀쩡히 왔네." 페로사는 반색을 하며 하이볼 글라스에 설탕 리밍을 하고는 각얼음 몇 개를 짤랑짤랑 떨어뜨리고(그리고 잠깐 피피가 내민 봉투를 받아서, 칵테일이 먼저라는 듯이 바 위에 올려놓고) 빨대를 꽂고 오렌지 주스를 채우더니, 그레나딘 시럽을 밀어넣었다. 빨갛고 비중높은 시럽이 아래로 고이면서 그윽한 일출의 색이 완성되었다. 체리 한 알을 띄우고 자몽 슬라이스 한 조각을 가니쉬로 끼워서 선라이즈 한 잔이 만들어져 피피의 앞에 놓였다. "자, 웰컴드링크. 목 좀 축이셔."
피피의 입맛을 잘 안다는 티가 팍팍 난다. 새콤한 오렌지에 달콤한 석류 시럽을, 보통 선라이즈를 만들 때보다 조금 더 짜넣어서 풍부한 과일향과 단맛에 비중을 조금 더 싣고, 그걸 잔 모서리에 레몬즙으로 설탕을 붙여놓아서 달콤한 맛을 강조한다. 가니쉬로 얹힌 체리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역시 모퉁이에 또다른 가니쉬로 끼워져나온 자몽 조각은, 마냥 단맛보단 약간의 쓴맛을 감수하고 더욱 풍부해지는 시트러스향도 즐겨보라는, 피피의 그것만큼이나 줏대높은 취향의 결과물이겠지.
페로스페로가 웰컴 드링크를 만끽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페로사의 손은 뒤늦게 피피에게서 받아 바에 내려놓은 봉투로 다시 뻗어갔다.
"어떻게 뭐가 돈이 나오긴 나왔네? 두 놈인가 세 놈은 흉골이 터져나갔고 나머지 놈들도 총알에 벌집이 돼서 값나가는 부위는 죄다 터져버린 줄 알았더니. 아 그래 그래도 최소한 각막은 돈이 됐겠네." 하고 돈을 대강 헤어보던 페로사는, 돈을 다시 고스란히 봉투에 넣어서는 피피에게 되돌려준다. "그리고 이건 입막음비. 그 고기들, 어디서 온 건지 당신은 모르는 거야. 나도 모르는 거고."
그러며 페로사는 피피가 뜯은 하리보 봉지로 손을 폭 집어넣어서는 대충 손에 잡히는 하리보 두어 개를 집어다 입으로 가져갔다. 다행히 빨간색은 안 건드린 모양이다.
피가 빠져나가서 그런건지, 아니면 머리가 아파서 그런건지, 아니면 둘다인지. 브리엘은 자신을 들처매고 있는 호위의 폼새를 영 어지럽게 흔들리고 부옇게 흐린 시선으로 알 수 있었다. 사람을 꼭 건초더미 옮기는 것처럼 옮기는 것도 거슬리는데, 자신을 데리고 온 병원이 여기인줄 몰랐지.
"오랜만이네요-.. Dr.Aslan-.."
짐짝처럼 들린 채 브리엘은 어지러운 시야를 더듬는 것처럼 눈을 깜빡이다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읊조리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카두세우스의 간부가, 총상이 아닌 자상으로, 그것도 호위에게 건초더미처럼 들려서 병원에 들어오다니. 생각같아서는 병상이 아니라 그대로 몸을 돌려서 병원 밖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늦은 시간에 죄송하네요, 하고 잔뜩 물에 젖어 늘어진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면서 브리엘은 말을 덧댔다. 건조하고 무감한 어조였지만 말미에 붙는 잔떨림은 숨기지 못한 채 결과론적으로는 호위가 하는대로 병상에 드러누워서 한팔로 눈꺼풀 위를 가렸을 것이다.
"그-, AB형.."
남아있는 흉터 위에 다시 그려진 새로운 자상은 병원장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은 듯 싶었다. 대신 브리엘은 다시 상처 위에 천이 동여매지자, 병상 옆을 붙잡으면서 상체를 조금 비틀고 작게 앓는 소리와 함께 올리고 있던 팔을 내려서 눈가를 가려냈다. 아슬란의 말을 듣고서야 후- 하고 호흡을 가다듬은 호위와 브리엘의 구리색 눈동자가 허공에서 부딪힌다. 브리엘은 힘겹게도 멀쩡한 팔을 들어서 대기실에 있으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댁으로 모셔가야하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잘부탁드리겠습니다."
무뚝뚝한 호위는 아슬란을 향해 목례를 해보이고 구둣발 소리를 내며 대기실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에서 거둬지던 브리엘의 구리색 눈동자가 장갑도 끼지 않은 무방비한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다시 얼굴을 무방비하기 짝이 없는 손으로 얼굴을 싸쥐었다. 병원 특유의 분위기가, 아슬란의 태도는 잊고 있던 두통과 함께 희미한 자스민 향을 부르고 있었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하웰은 단골 손님에게 누구나 건넬 수 있는 조언을 건네었다. 물론 시안이 위험한 곳에서 호기심을 보일 정도의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뒷마당에는 사실 유리온실 말고는 별 것 없었다.
“으, 맞아. 그래서 밖에 식물을 놔뒀다가 갑자기 죽기도 한다니까. 화분을 팔아도 실내용 식물밖에 못 파니까. 그래서 마당에도 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 억센 애들 밖에 없고. 아니면 유리온실에서 키우거나.”
날씨가 오락가락해도 이 도시에 적응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이 날씨에 적응할 수 있는 식물도 분명 있었다. 특히 나무들은 그나마 잘 버티는 편이었다.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마당을 가꾸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취미의 영역으로 이곳에 터를 잡고 나서부터는 마당에 뉴 베르셰바에 적응할 수 있는 꽃과 나무들을 시도해가며 키운 결과 어느정도 관리된 정원을 보유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식물이 훨씬 많기 때문에 온실이 마당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직접은 아니고. 협약을 맺은 조직이 있어. 거기 보스가 꽤 무서워서 나도 함부로 해약을 못하거든.”
하웰이 아스타로테를 떠올리며 엄살 떨 듯 말하였다. 아스타로테가 듣는다면 장난으로 웃으면서 넘어갈 말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협박이라도 받는 줄 알겠다. 물론 이 도시에는 그런 경우가 많기는 했지.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힘 없는 자영업자들은 조직들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는 일도 많다. 물론 하웰은 힘 없는 자영업자는 아니었지만.
“그러면….”
하웰은 유리장 문을 열고 익숙하게 꽃들을 쏙쏙 꺼냈다. 생각 없이 꺼내는 것 같아도 그 날의 꽃 컨디션과 나름의 규칙을 따라 조합하는 것이었다.
푸른색 델피니움을 메인으로 흰색 리시안셔스, 서브로 작은 과꽃 등 장식꽃 몇 송이와 초록빛을 더해주는 장식용 잎들을 물에서 뽑아 작업대로 돌아왔다. 꽃 다발의 모양을 잡아가며 하웰이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푸른색 꽃을 좋아하는 것 같아. 대체로 푸른빛 보랏빛 도는 꽃들은 남성에게 선물하기도 무난하고 여성들도 좋아하고. 하지만 아무래도 이 도시는 하늘이 붉다보니 더 푸른색을 찾는 것 같기도 하고.”
꽃 모양이 잡히자 철끈으로 줄기를 잡았다. 가위를 들어 줄기 아래부분을 정리하며 이어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