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내가 지금 불타고 있는 거라면 이렇게 깊이 사랑할 순 없지 않았을까? 죽을 것만 같은 꿈결에 이토록 사랑받는 느낌이 들고있었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엘레나는 대단한게 아니라며, 그렇게 말했건만 소녀에게는 조금 다르게 와닿았다. 그야, 남이 지내는 곳에 찾아와서 무언가를 대접받는게 무라사키에게는 엄청나게 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작해봐야 가족 정도인데, '가족은 남이 아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건 친구 사이정도만 할 수 있는 그런 것. 따지고보면 혼자서 멋대로 찾아오고 있는 것에 불과한데, 혹시 이런 것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건지... 그런게 아니면- '또, 나 혼자 멋대로 생각하고 있는걸까...?'
"앗. 그, 그러네요...! 역시, 엘레나씨...!"
의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역시 그녀는 사람의 관계를 다루는데에 능하다... 라고 소녀는 생각한다. 의미는 조금 다르긴 해도 의사라는 건 사람을 만지고, 다루며, 또 치유한다. 물론 그녀는 의사가 아닌 조수일 뿐이라며 말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마찬가지로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인 자신과는 비슷하게 느껴지면서 또 엄청나게 멀게만 느껴져서- 그만, 동경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무라사키는 입가에 묻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조금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대답한다.
"그, 그런거라면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어요...! 호, 혹시 저번처럼... 나쁜 사람, 오게 되면 제가 쫓아드릴테니까요...! 그래도 역시, 저희 서, 선배가 부르면 안 될 지도 모르겠지만... 으으, 그때는... 제, 제가 어떻게든, 할게요...!"
자신은 어차피 사람을 '자르는' 것 밖에는 할 줄 모르지만... 그것으로 자신과 몇 없는 연이 있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제 가슴깨에 손을 얹고서 열변을 토하는 그 소녀의 눈에 왜인지 모를 결의가 비치운다. 곧 '돈'의 얘기에 뜨끔- 하면서 평소의 무라사키로 돌아왔지만.
"아, 그, 그게...~ 두, 두 개 밖에, 안 샀는데요...~ 에, 에헤헤..."
언제나처럼 마주치지 못하고 한켠으로 빗겨가는 시선이 평소보다 더 하다.
"그, 저어. 근데, 이게 또 엄청 비싸서 말이에요... 하, 하지만 귀여워서... 정신을 차려보니까... 우으."
즉, 충동구매라는 뻔한 이야기를 길게도 이야기한다. 그러한 습성이, 무라사키에는 언젠가부터 길이 들면서, 소녀의 방에는 칼이나 옷이나 반지 피어싱 같은 장신구들이 밥 대신으로 줄지어 늘어서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사두고 버려두지는 않는 것인지, 그 손은 서로를 무안하게 어루만지면서 그 손가락에 끼워진 금속 반지들을 손 끝으로 천천히 훑고 있었다. 그것이 이번에 구입한 아이인 모양이었다.
"...이... 이쁘지, 않나요...?"
그러면서 무라사키는 슬그머니 눈알을 힐긋힐긋 굴리며 엘레나의 눈치를 보는데, 반지의 디자인은, 솔직히. 뭐랄까... 하나같이 악마를 비롯한 부정적인 것들을 심볼로 삼고 있어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미적 센스를 어필하기엔 무리가 있는 물건이었는데... 판단은 순전히 엘레나의 몫이었다.
// https://www.anima-store.com/product-list/3 무라사키가 끼고 있는 반지나 피어싱들은 이런 감각의 물건들이야
문을 가볍게 두드리고 난 뒤, 잠시동안 아스타로테를 기다리던 제롬은 이상함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잡화점이니 그냥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아스타로테는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인줄 알았을테니 말하지 않고 들어간다 해도 별 말 없었을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쓸데없는 행동이었다. 스스로의 지능이 저주받음을 재확인하며 시간을 보내던 도중 문 넘어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열어주려고 하는 걸까?
"오, 아스타로테....에..?"
문이 열리고 엇갈려버린 인사. 그리고, 이어진 정적.
제롬은 먼저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잘못 들은게 아닐지 확인했다. 분명, 주인님이라고 했던가? 그럴리가 없는데. 현실을 부정한 그는 눈 앞의 여성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틀림없었다. 자신이 아는 아스타로테가 맞았다. 그럼 주인님이란 어떻게 된 걸까. 그는 아스타로테의 얼굴에서 시선을 쭉 내리며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현재,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자기만족을 위한 코스프레를 할 목적이었는지, 혹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그녀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입고 있었다. 심지어 꽤나... 시선을 두기 곤란한 종류의 메이드복을 말이다. 그 탓인지 제롬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다가 다시 위로 올리고는 아스타로테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럼 실례할게 아스타로테. 다녀왔어."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자연스럽게 제롬 자신의 팔을 끌어당기자 그는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그녀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이 상황은 아스타로테에게뿐 아니라, 제롬에게도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5년. 5년이다. 그녀를 알고 지내며, 자신의 조직을 키워주고, 꽤나 친근하게 지낸 시간 말이다. 그런 그녀가 메이드복을 입고 주인님이라 부르는데 어떻게 당황하지 않을까. 단지, 그녀의 분위기에 말려들어 주인님 행세를 한 것 뿐이었다.
"용건은 딱히 없는데. 내 메이드를 보러 오는데 이유가 필요해?"
들어와서 용건을 말하라는 말에 그는 능청스레 미소지으며 들고 있던 선물을 내밀었다. 방금 사온 듯 작은 선물가방에 담겨있던 것은 아스타로테가 좋아할만한 형태의 화려한 장신구였다. 물론 선물가방 안에 따로 포장되어 있었기에 열어봐야 알 수 있었겠지만. 속으로는 당황하여 한참을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는 티내지 않은 채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자연스럽게 잡화점 안쪽에 들어서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