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내 안에서 끓어 오르는게 느껴져 난 네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방황하고 있어 내 껍데기 안에서 난 피를 흘리며 기다리지 그리고 곧 너도 그렇게 될 거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여인은 언제나처럼 이리스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보스가 아닌 언니라고 불러오는 것. 허락 없이 무릎 위에 올라오는 것. 무엇 하나 거절 없이 전부를 받아줄 듯이. 이리스를 이곳에 데려왔던 첫 날처럼.
다리 위에 앉은 이리스의 허리에 여인의 한 팔이 부드러이 감긴다. 조금 전 아이를 안고 있을 때처럼 받쳐주는 팔이지만 여인에게로 가까이 당기는 어쩐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만 같다. 가늘은 여인의 팔은 손 끝까지 써서 이리스의 탄탄한 허리를 붙들고 남은 한 손은 어느샌가 이리스의 얼굴에 닿아있었다.
"귀여운 캣시."
나직한 울림과 함께 여인이 속삭였다. 지금 이 순간 이리스만을 바라보는 자색 눈동자에 금빛이 어린다. 진한 금색 물감 한방울을 기교 없이 톡 떨궈놓은 듯. 여인이 눈을 휘자 본래의 자색이 흐려지고 금빛이 진해졌다. 이 시간을 주겠다던 말처럼 여인의 전부가 이리스를 향했다.
"언제나 지켜보고 있단다. 자랑스러운 모습도. 감추고 싶은 실수도."
전부.
깃털 같은 목소리는 여인의 무릎에 앉은 이리스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고도 가벼웠다. 포르르 날아 이리스에게 내려앉는 듯 하다. 여인은 시선을 줄곧 이리스에게 두고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먼저 손 끝으로 느릿하게 뺨을 어루만지고 엄지로 눈밑을 따라 쓸어주었다. 자연히 닿은 손바닥이 방금 스친 뺨을 감싸고 손가락들은 금빛 머리칼 사이에 숨은 귀를 찾아내어 간질하게 건드려대었다.
그러다 돌연 손이 떨어졌다. 아니, 떨어졌다기보다 위치가 바뀌었다. 언제, 어느 틈엔가. 이리스의 얼굴을 떠난 손은 목과 턱을 간질여주고 그대로 등 뒤로 향했다. 시작은 뒷목을 감싸 어루만지는 것이었지만 점점 등을 따라 내려가며 또다른 간질거림을 선사했다. 간질간질. 척추의 끝에서 끝까지 오싹하게. 이윽고 먼저 둘렀던 여인의 팔과 팔이 만나 하나의 고리가 되어 이리스를 가두었다.
"얘. 이리스."
여인은 고개를 들어 이리스의 어깨에 턱을 살짝 걸쳤다. 숨결이 이리스의 목에 닿고 목소리는 세상 가깝게 들리도록. 그것이 의도한 것인지 그리 흘러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지금은 나긋한 여인의 목소리만이 이리스의 청각을 비롯한 온 신경세포를 건드려대었다.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렴. 나는 네 목줄을 쥐고 있는게 아니니."
목소리만큼이나 다정한 말을 읊조린 여인이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렸다. 바깥이 아닌 이리스를 향해. 이리스가 피하지 않았다면 부드러운 감촉이 목덜미에 스쳐 지나갔을 게다. 그리고 새삼 상냥한 미소를 지은 여인이 이리스를 바라보고 있었을 터였다.
근엄한 목소리가 마치 아이를 쓰다듬듯 미풍에 흩날려 불어온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걷혀버리고, 다시 나는 의문에 빠진다.
‘이것은… 망상인가?’ 어떤 목소리가 물었다.
'그래.' '아니.' 동시에 답이 들려온다.
어느 쪽이 맞는 지 모르겠다. 망설인다. 주저한다.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마치 좁은 틈새로 빠진 무언가를 애써 파헤치려는 강아지처럼, 이 상황도 이와 같다. 모든게 안개처럼 희미하다. 왜 모든 게 이렇게 되었지? 어째서, 왜, 도대체 왜?
악마같은 겨울, 눈보라가 흩날리고, 거친 눈밭 위로 걸어가는 쓸쓸한 여행자의 기도와 같은 것이 일렁이다, 초라한 웃음 소리만이 남는다. 그러나, 제 앞의 이 남자의 광소 끝에 남은 것은 눈물이었다. 선혈같이 충혈된 눈으로, 낡은 고목처럼 메마른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둘도 없는 친구’ 라고. 그것은 진심일까, 아니면 내 것과 같은, 일시적이고 지극히 변덕스러운 광기의 산물일까. 마치 암흑을 비추는 구름에 싸인 달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제 모습을 바꾸듯이…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나, 그때에는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볼 것이요…” 나는 그저 떠오르는 말을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시는 것 같이 나도 알리라…” 목이 비틀려 죄여올때, 청년이여, 그대는 무슨 생각을 했나? 뭐, 상관없다. 당신도 나와 같은 자라면 분명 알리라. 이 길의 끝에는 파멸 뿐이 남아있지 않음을…
그리고 우리는 그 파멸 앞에 모두 움츠려 고개숙인 풀벌레와 같음을.
나는 소리없이 기도한다. 그리고 조용히, 문으로 나아간다.
# 우와!! 길고도 길었다. 표현 부분에서 다소 마음에 안들긴 하지만 흑흑 어쨌든 좋은 일상이었다. 이걸로 막레해도 될까?
와랄랄라 헝클어진 머리카락 뒤로 눈이 둥글게 뜨인다. 내 머리카락! 정전기에 이리 뜨고 저리 뜨고 방방 난리도 아니다. 에만은 "다른 사람 앞에서 그랬다간.. 내가 부끄러워서 죽을 지도 몰라.." 하고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어 농담을 던지곤 이내 학을 뗐다. 이 바에서 들려오는 귀여운 꼬맹이가 만약 에만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에만은 자신의 신상을 다시금 지우고 새 신분을 가져올 것이다. 이번엔 에만 말고 네마로 지을까보다. 에만은 공감하듯 끄덕이는 고개와 희미한 쓴 미소에 마주 웃듯 작게 소리를 냈다. 바람 빠지듯 숨결 뱉듯 희미한 웃음소리였다. 셰바도 별다를 것 없는 사람 사는 곳이거니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 미친 사생아 녀석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시민이란 분류에 밀어 넣지는 않고. 에만은 페로사가 머리를 부드럽게 정리해 주는 와중에 또 그 사람을 상상 속에서 살해했다.
"……으응, 그래.. 그런 놈들이 나타나면 열심히 도망쳐 올 테니까, 나는 구기지 말아 줘."
에만은 얼뜨기의 허리가 뒤로 접혔던 것과 종이가 구겨지듯 사람이 우그러지던 것을 기억한다. 등골이 오싹해 바람이라도 불었나 싶었건만, 대체 개인실에 무슨 바람이 불겠던가. 하기야 첫 만남에도 에만은 구겨질 뻔했던 것이다. 그 당시 에만이 느꼈던 공포심은 첫 탈출 시도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이윽고 잠시간의 정적. 에만은 마른침을 삼켰다. 밀어둔 잔 뒤로 안경을 한참이고 바라보던 찰나 앞머리를 파고드는 손길에 눈을 홉뜨며 그대로 옆으로 휙 굴렸다. 놀란 것 같았다. 빛 받으면 자못 하얗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색이 옅은 벽안이 정 반대로 색조를 가득 채운 또 다른 벽안을 마주 본다. 순전한 걱정이 담겨있자 에만의 커다랗게 홉뜨던 눈매도 다시금 끝이 살포시 올라간 형태로 되돌아왔다.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는 이 사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만은 올라오는 취기에 잠시 입술을 오물거리다 안경을 쳐다보고 푸념하듯 뱉었다.
"A-13 구역에서 예전에.. 대규모 학살이 있었어. 그러니까.. 공교롭게도.. 13년 전에, 불의 마녀 화형식* 말이야. 그 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유류품이거든. 나름 이런 부류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거지. 돈은 내일 사람을 보내서 전달해 줄게.."
에만은 거래가 성사되자 만족스러운 듯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알코올도 속을 만족스럽게 퍼지고 따뜻하게 채워간다. 에만이 잔을 집어 들고 손을 뻗어 기울인다. "Cheers." 하고 짧은 건배사를 한 뒤, 다시금 한 모금. 이후 잔을 내려놓고 에만은 안경을 한번 집어 들었다. 곱게 접힌 다리를 펴고, 어색하게 귓바퀴 위로 꽂았다. 한쪽에 금이 간 안경을 썼을 때 에만은 깨달았다. 아, 아버지는 눈이 좋지 않았구나. 그리고 벌써 그 일이 13년 전이구나. 위장 내부로 가득 퍼지는 알코올과 어지러운 시야가 겹치자 정신이 아찔했다. 잠깐 탁해지다 만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이거 꽤.. 어지럽네. 안경은 살면서 한 번도 안 써봐서 이런 느낌이 드는 물건일 줄은 몰랐어. 음.. 어때. 잘 어울려..?" *: 통칭 '13일의 금요일'이 A-13 구역을 지배하기 전, 집권했던 그로스만 패밀리의 보스가 살해당하고 조직원 전체가 한 건물에 몰려 불타 죽은 일방적인 학살극. 현재 범인은 로즈밀 가브리엘라 윈터본으로 알려졌다. 학살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로스만 패밀리의 간부였던 로즈밀이 사건이 있기 전 상의도 없이 독자적으로 독립된 조직을 설립했으며, 이로 인해 보스와의 마찰이 있었던 것이 원인이 되지 않았냐는 추측만 있는 상황.
응석을 받아주는 언니의 팔이 내 몸을 휘감아오기 시작했다. 언니에게로 가까이 당기는 그 팔이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붙드는 것이 느껴질 즈음, 내 얼굴에도 언니의 부드러운 손이 닿았다. 그리곤 늘 간질거리게 흘러들어오는 언니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베시시 웃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언니는 매번 신기했다. 자꾸만 언니에게 정신을 팔게 만드는게 능숙했으니까.
" .. 다 보고 있으면 부끄러운데~ 일할 때는 보여주기 그런 것도 많은걸. "
언니의 눈동자에 왠지 금빛이 감도는 것은 기분탓이었을까? 간질거리는 그 시선과 함께 들려온 말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돼! 일 할 때는 못난 모습을 보일 때도 많단 말이야! 평상시에도 좀 더 신경을 써야할지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와중에도 나는 나중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 언니의 손이 움직일 떄는 옴짝달싹도 못 하고, 그저 멍하니 언니를 보며 숨을 들이키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지만. 목과 턱을 간질거리고 등을 쓸어내리는 그 손길에 나도 모르게 숨소리가 떨려오고 있었다.
" 응...? "
두 팔로 허리를 감싸안은 언니가 내 어꺠에 턱을 살짝 걸치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대답을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없이 가까워진 언니의 숨소리에, 내 감각이 예민해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법에 걸린 것마냥. 그리고 언니가 고개를 아주 조금 돌리자 목덜미에 느껴진 부드러운 감촉에 내 몸은 한차례 떨 수 밖에 없었다. 왠지 언니에게 안기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 언니는 내가 떠났으면 좋겠어? "
목덜미에서 느껴진 부드러운 감촉이 사라지지 않자, 나는 다급히 언니의 목에 팔을 두르곤 꼭 끌어안았다. 그리곤 한없이 가까워진 언니의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늘 언니는 날 붙잡고 있는게 아니라고 했다.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나라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언니가 내 자유를 존중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필요가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분명 지금 나는 언니에게 목숨을 빚진 값을 갚는 와중인데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