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내 안에서 끓어 오르는게 느껴져 난 네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방황하고 있어 내 껍데기 안에서 난 피를 흘리며 기다리지 그리고 곧 너도 그렇게 될 거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화학 약품, 깨끗한 방. 어울리지 않게 맑은 공기, 소독제…. 그리고 쓰러져 있으나 아직 죽지 않은 자의 신체 하나. 무릇 물체들, 그것들이 사람을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아, 그러한 것이 이제 무슨 상관이지? 일평생 운명은 나를 저버렸으나 지금 한 순간만큼은 나를 돕는구나.
봉지를 방 모퉁이에 얌전히 내려놓고, 창문을 열었다. 떨리는 손으로 거인을 반듯히 눕혔다. 스치듯 닿은 심장께는 맥동하고 있다. 골리앗이 죽지는 않은 게로구나. 참으로 다행이다. 죽은 이의 표정은 박제와 다를 것이 없을텐데, 박제를 보며 감탄하는 일에 무슨 가치를 둘 수 있을까. 이미 심장이며 뇌가 방부제에 절여져 아둔해진 사내가 속으로 지껄였다.
떨리는 손이 방독면에 닿는다.
돌팔이 의사 노릇한 것이 쓸모가 있구나.
조심스레 방독면을 벗기고,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로(이는 얼굴을 마주했을 때의 희열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고개를 뒤로 젖혀주었다. 호흡이 있으니 이리 해두면 제정신 차리겠지. 정맥 혈류량, 신경-심장성… 아, 집어치워.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악의서린 동공 두 개가 몸을 숙여 거인을 마주했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그림자를 드리웠다. 페퍼의 목 한 가운데에 손 끝을 댔다. 힘주어 누르면 돌이킬 수 없겠지. 하지만 신이시여. 나는 아직 그럴 용기는 없나이다. 아아, 하지만, 정말로 기쁠 텐데. 참으로 기쁠 텐데. 억눌러야만 한다. 그 사실이 끔찍하리만치 자신을 옥죈다.
"일어나, 히말라야 씨."
오늘의 일기에는 무엇을 써야 하나. 제가 왜 그래야 하지요? 제가 기쁘다면, 저는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지럽다. 마치 몸 안쪽의 퓨즈가 나간 것처럼, 갑작스레 의식이 단절되었다. 이후의 기억은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되는데, 젠장. 오늘은 정말 날이 아니다. 페퍼는 그렇게 생각했다. 천천히 의식을 되찾음과 함께, 작게 신음하는 음성 또한 터져나온다. 그러나 기이하다. 변조된 기계음이 아니다. 낮고 음울하면서 짐승의 울부짖음같은 그르렁거리는 음성이었다.
"무슨…" 무의식적으로 조금 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는 크게 괴로워한다. 육중한 몸은 크게 비틀리며 귀를 부여잡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소리없이 괴성을 지른다. 나를 가리던 가면. 저 가면으로...
천천히, 힘겹게 기어간다. 근육이 경련하고 욱씬거린다. 그래도 닿지 않자 떨리는 손으로 알약통을 꺼내 비틀어 연다. 여느때와 같이 뚜껑에 약을 쏟아붓는다. 지나치게 많은 약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안에 모두 털어넣으려 한다…
#피피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먹게 내둘지, 아니면 돌팔이라곤 하나 의사의 신념이 발휘될지! 호기심 천국!~ (이래놓고 그냥 아무 반응 없으면 호흡곤란 혹은 과호흡으로 몸져누울 계획~)
손님도 없고 개인실에 있을 때면 가면을 벗는 게 낫다. 오늘 같은 날은 더 그렇다. 가면의 그림자에 덮여 어두침침한 시선에 오래 있다 보면 감정이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흙탕보다 더 질척한 우울의 늪에서 유영하느니 잠시 얼굴을 드러내 탁 트인 시선으로 주변을 보고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게 낫다. 에만은 자기가 해놓고 어색했는지 눈동자를 데구르 옆으로 굴린다.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은 앞서 서술하듯 단순한 친분과 먹이사슬 때문이리.
다만 전자의 지분이 90% 가량을 차지했음은 오직 에만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눈을 치뜨고 바라보는 여성은 호쾌했고, 또 느긋했으며, 친절했다. 에만은 인생사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타입이 아니었을뿐더러, 자신에게 업무를 맡기지도 않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손가락에 꼽는 정도였다. 때문에 에만은, 적어도 페로사 앞에서는 제법 솔직할 수 있었다. 애교도 그 솔직함의 일환이었다. 그렇지만 뺨을 잡고 늘릴 줄은 몰랐다.
"앙 아혀더 이업다오 행가할 수능 어허?"
에만은 늘어난 뺨 덕분에 일자로 죽 벌어진 입술 사이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래도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나쁘지는 않은지 커다란 눈을 한번 깜빡이고, 자연스레 정전기가 올라 머리가 붕 뜨자 그제야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의뢰인이 짜증 나는 사람이라서. 오늘은 마티니 말고 다른 거 마실 거야."
요컨대 한 번에 훅 풀어버리겠다는 의사 표명이다. 에만은 머리카락을 가다듬는 손길에 눈을 들어 커다란 손길을 쳐다본다. 옅은 금발 사이로 군데군데, 희미하게나마 붉은 머리카락이 섞여있다. 시선 위로 붉은 머리카락 하나가 스쳐 지나가고 손이 떨어졌다.
"으음. 나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계속 쓰면 의뢰인에게 총 맞아 죽을 것 같아.."
무엇보다 에만에게는 아주 큰 장벽이 남아있다. 친구 제롬이다. 혹시라도 그의 앞에서 에만이는, 하고 운을 떼는 순간 45년 정도의 술안주와 놀림감이 생길 것이 뻔했다. 얄밉게 이죽이며 에만이는? 하고 되물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픈 느낌이었다. 에만은 "난 언제나 여기에서 기다리지.." 하고 툭 대답하고는 블러디 메리가 나오는 동안 기다리기로 했다. 테이블 위에 팔을 얹어 가만히 허리를 숙여 엎드린다. 교차한 팔 위에 뺨을 얹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제롬은 어째서 자신의 뒤를 캐려 했을까. ..그래, 청소 업체를 불러달라 했으니 의심할 법도 하다. 이 앙큼한 녀석을 어떻게 골려줄까.. 에만은 작은 복수로 오늘 돌아가면 내일 하루 동안 제롬에게 만들어준 앱에 딜레이를 주기로 했다. 짜증은 나는데 오류는 아닌 것 같고, 네트워크 이상인 정도로 느껴질 정도로만. 어디 한 번 골탕 좀 먹어봐라.
"트톡, 눈팅은 하고 있어.. 혹시.."
사소한 복수를 다짐한 뒤 잔이 나오자 에만이 몸을 일으켰다. 딩연히 눈팅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에만은 되먹지도 않은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자칭 당근 요정이었다. 폐허에서 주워온 안경을 백만 벅에 판다는 사실도 본인이 찾은 것이고, 안경을 찾아 헤맨 것도 본인이었다. 에만은 잔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빙글 매만지다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레몬즙이 조금 더 필요하면 좋겠다 판단했는지 잔에 가니시로 꽂힌 레몬을 들어 짧게 힘을 줬다. 레몬즙이 붉은 칵테일 위로 몇 방울 흘러 들어갔다.
"그럼 이게 그 안경인 거야..?"
에만은 제법 황급한 손길로 냅킨을 들어 손을 닦고 목갑을 살폈다. 날렵한 가장자리 선을 따라 손가락을 힘없이 그어보기도 하고, 걸쇠에 손을 올려 열까 말까 고민하기도 했다. 이내 에만은 걸쇠를 딱 소리가 나게 풀고 열어젖혔다. 낡은 은테의, 둥근 안경은 오른쪽 안경 알에 금이 가고 깨져있다. 말라붙었을 피는 이미 가루가 됐는지 더 이상 흔적도 없다. 에만은 잠시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 차라리 가면을 썼으면 좋았을 텐데. 드러난 얼굴은 눈이 홉뜨이고 안색이 파리하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아. 이거."
뭔가 말하고 싶은데 목이 턱 막히는지 입만 몇 번 벙긋거리던 에만은 황급히, 그리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안경의 코 부분을 잡고 들어 올려 다리 부분을 확인한다. 다리와 안경알을 잇는 부분에 새겨진 아주 미세한 H자 각인. 이 H는 뭐야? 하고 물어보면 누군가 에만을 품에 안고 답했다. Harvard, Hastings, Halo…….
"ㄷ, 대단하네. 이 안경을 고작 백만 벅에 팔았다니.. 12명이 쫓을 법 했네.. 으응."
에만은 안경을 벨벳 천 위로 올려두고는 잔을 들었다. 한 모금만 마시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잔의 반절을 단숨에 해치우고 나서야 에만이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의 안경이다. 세상이 좁다더니 이렇게 좁을 줄은 몰랐다. 올리브를 으깨는 페로사를 향해 에만은 잠깐 올라오는 강한 취기에 동공이 넓어졌다 좁아지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저거, 인간 맞나? 사내는 앉은 자세 유지한 채로 조심스레 한 발짝 물러났다.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손이 떨려왔다. 공포, 긴장감, 그리고 희열이 점철된 괴악한 것이다. 억누른 웃음이 끅끅대며 터져나왔다. 그르렁거리는 것이 인간이라기엔 짐승에 더 가깝지 않은가. 절벽 위의 금수는 내 목숨줄뿐만이 아니었구나. 방독면을 멀리 치워두길 참 잘했다.
"히말라야 씨, '진짜' 목소리 처음 들어보네."
들리도록 가까이 가 속삭였다. 피차 절벽 위에 있으니 이젠 무서울 것 없다. 방독면 벗긴 것으로도 베팅은 차고 충분하다. 생을 내던져버리는 감각은 언제나 생경하게 아름답더랩니다.
"그러면 곤란하지, 친구."
이젠 친구 노릇이다. 정신 희미한 이 데리고 못 지껄이는 말이 없다. 퍽 다정스레 페퍼의 손에서 약병이며 약 앗아갔다. 의사의 사명같은 고귀하고 하찮은 이유에서 기인한 행동이 아니라, 그저 또다른 도박일 따름이다. 골리앗으로 하여금 빚을 지게 하는 것은 꽤 좋은 수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저 이의 표정이 퍽 우습기도 할 것 같은지라.
"물도 없이 약을 먹으려고 하다니, 세상에."
기다려, 마치 훈련소의 개에게 말하는 투로 재잘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과 방독면을 들고 가는 것은 잊지 않았다. 기껏 맨얼굴 드러내게 했더니 다시 써버리는 꼴은 죽어도 못 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컵에 물 담아 돌아왔다. 약 정량과 함께 건네주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입이 무거워서. 난 여기서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이런 좋은 구경을 남한테 공유할 리가 있겠어? 당연히 없다.
#페퍼 대체무슨일이야 ㅋㅋ큐ㅠㅠㅠㅠ 너무너무 재밌다와 페퍼 대체 무슨 지병을 가지고 있는거야?!?가 공존하고 있답니다 큰절그랜절
캬캬캬 뭐냐구 뭐냐구~ 기다려라니 무슨 강아지 유치원이야~? 그치만 페퍼는 매우 괴로워할거야... 피피의 것과 마찬가지루... 가면을 써야만 한다는 강박같은게 있거든. 그리구 지병같은건 따로 없는거같구 그냥 오피오이드 계열 진통제를 과다복용하면 생기는 부작용일 뿐이랍니다~
잘 참았다며 보스가 등을 쓸어내려주니까 왠지 온 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죽어있던건 아닌데! 뭔가 찌릿찌릿 반짝빤짝이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매번 느끼는 신기한 감각이 등에서 느껴지니 몸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보스의 품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향은 자꾸만 멍하게 만들었다.
" 핫.... 언니이...그게.. "
내 뺨에 아스타로테 언니의 손이 닿자 나도 모르게 언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고개와, 눈동자, 그리고 매번 느끼지만 예쁘장하게 휘어지는 입술을 보니 아무 생각이 없어져가는 것만 같았다. 꼬맹이에 대한 생각도,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생각도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언니만 바라보게 되는 건 참으로 신기했다.
" 그럼 좀 더 예뻐해줘요, 언니. 오늘도 열심히 했으니까. "
왠지 부끄러워졌다. 얼굴도 화끈거렸고, 고개는 금방 멀어졌지만 여전히 달콤한 향이 코 끝에 머물고 있어 더워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몇년이나 지났는데 여유로운 건 늘 언니였다. 나도 이젠 어른인데, 아직도 언니를 태연히 대할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이미 입에선 어리광 섞인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왠지 분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난 슬그머니 언니의 다리 위에 올라앉았다. 조금은 건방져보일지도 모르지만, 언니가 온전히 나한테 시간을 준다고 했으니까 이런 어리광은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