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죽음을 갖기 위해 사십 년의 생이 필요했다 이 생을 좀 더 정성껏 망치기 위해 나는 몇 마리의 개를 기르고 몇 개의 무덤을 간직하였으며 몇 개의 털뭉치를 버렸다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손님 한 팀을 떠나보내고, 바텐더는 조금 나른한 기분이 되어 의자를 끌어다 앉아서는 등받이를 푹 기댔다.) (주크박스가 하염없이 노래하는 소리가 윙윙 울린다.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 물고, 팅 하고 지포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붙인다. 조그만 불똥이 담배개비 위에 올라앉더니, 이내 창백한 연기가 맥없이 피어난다. 정말이지 한결같이 붉은 하늘이라고, 바텐더는 멍하니 생각한다.) (불현듯, 바텐더는 드라이브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바로 능청스레 이리스가 한 말의 연관성을 찾지 못하겠다고 대꾸한다. 발끈하는 이리스의 모습이 가소롭다는 듯 픽, 웃어보인다. 이런 반응이 즐거워 어른스럽지는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부러 짓궂게 굴고는 했다. 뭐, 어느정도는 진심이 들어있긴 했지만.
아니, 아무리 봐도 꼬맹이인데. 홍길동도 아니고 꼬맹이를 꼬맹이라 부르지 뭐라 부르나.
한 번 생각한 것은 꿋꿋히 유지하는 꼰대의 면모를 친히 보여주는 칸나였다. 본인은 의식하지 않겠지만.
".............간 건강에 나빠."
살아있는 폐암열차로서 전혀 설득력이 없는 말까지 해본다. 내로남불의 면조차 꼰대임을 증명하는 것일까나.
(물론, 칸나는 툭 밀면 금방 넘어가는 호구중에도 말랑 호구인지라, 막상 밀어붙이면 같이 마시길 할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굳건할수 있을 만큼 굳건하게 있을꺼란 시위인지, 굳게 다문 입술에는 미동이 없다.)
조용하고도 따뜻한 거실에 울려퍼지는 것은 이리스의 신음소리 뿐이었다. 애써 괜찮은 척하는 이리스를 의식하는 지, 칸나는 손을 최대한 빨리 놀렸고, 그 것은 신속한 치료의 끝으로 보답하였다.
말 하나 없는 응급처치가 끝난 후, 후우, 하고 길게 한숨을 내뺀다. 몇번을 해야 익숙해지는 일일까. 아니, 익숙해지고 싶은 것인가? 붕대를 감던 칸나는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본다. 아직도 밖에선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역시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라고 할까, 하고 상념에 빠진 칸나에게 이리스의 갑작스런 공격이 들어왔다.
"켈록!"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체한 듯한 소리를 내는 칸나.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이리스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손을 주욱 내뻗는다. 치료도 끝났겠다, 거리낄게 없었다.
여인의 품은 뛰어드는 이리스를 그대로 받아주었다. 부드러운 스웨터와 니트 스커트 차림인 여인의 몸은 적당한 온기를 머금고 이리스를 감쌌다. 후후후. 낮은 웃음소리가 이리스의 행동이 싫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인은 두 팔을 들어 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이리스를 안고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래. 잘 참았어."
다정히 말하며 이리스가 조금 더 편히 안길 수 있도록 자세를 느슨히 기울인다. 이제 이리스 차지가 된 여인의 품에선 옅은 베이비 파우더 향과 향수의 향이 동시에 흘렀다. 일부러 그런건지 우연인건지. 두 향은 절묘하게 섞여 있어 어쩐지 몽롱히 빠져들게 만드는 느낌이다. 그대로 눈을 감아도 좋을 만큼. 서서히 잠겨드는 모래늪 같은 향.
"둘만 있을 땐, 보스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줬잖니."
여인은 등을 쓸어주던 손을 천천히 위로 올려 이리스의 얼굴을 감쌌다. 한 손 안에 들어오는 만큼 한 뺨과 턱을 쥐고 살짝 들어올려 시선이 마주치게 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여인의 얼굴에서 결 다른 자색 눈동자가 지그시 이리스를 응시한다. 희미한 호선을 그린 입술이 조금 짙게 미소를 띄우고, 여인이 상체를 기울이자 얼굴과 얼굴이 가까워진다. 금방이라도 입술을 겹칠 것처럼.
"내 귀여운 캣시. 지금만큼은 온전히 네게 시간을 줄 테니, 원하는 걸 말해보렴. 내 언제 들어주지 않은 적이 있더니."
품을 내준 것만이 상의 끝은 아니었나 보다. 여인은 상체를 도로 세웠으나 시선만큼은 이리스에게서 무르지 않았다. 어느새 휘어 웃음 지은 눈으로 새삼 상냥한 시선을 보내며 이리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우우.. 다들 어서오세요..? 안녕...?.?..화장실에서 토했는데 그 이후로 기억이 안나.. 정신 도금 드니까 지금이야. 그 자리에 머리박고 쓰러져있었더니 춥네요. 그래도 정신이 좀 들긴해요.. 안녕. 내쫓지 말아. 이제.좀 사물 분간도 가고 내가 뭔짓한지 보이네. 우우우..우. 빈속에 한병 다 원샷은 미친짓..
좋다고 답이 내려오자 바보털에 생기가 돌아와 쫑긋거리고, 무라사키의 표정은 도로 화아아아- 하고 밝아진다. 물론, 그녀는 셰프는 아니지만 요리사가 맞다. 단지 요리 당하는 대상이 다를 뿐이지. 그렇게 완성된 요리는 아주 만족스러운 형태로 르메인 HQ에 하달된다. 물론 설거지는 아주 은밀한 청소부의 몫이고.
"에, 또... 그, 그으... 이, 일단...! 용도가, 어떻게 되세요...? 여, 역시 요리이려나...-?"
'그러면-' 무라사키는 바로 그 자리에 쪼그려앉아 자신이 떨군 칼들을 하나 하나 살펴본다. 먼저 일본도. 이건 너무 크고... 수리검, 너무 작고... 애초에 투척용이야! 그럼 이 식칼은? '왠지 장미 무늬가 들어가있네...' 그렇게 하나하나 뒤적거리던 와중, '이거다...!' 싶은 물건이 하나 눈에 들어와,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번쩍 들어올린다.
"저, 저는- 이거, 추천드려요!"
소녀가 리스에게 보인 물건은-
"이건 중식도, 라는 건데요... 다른 말로는, '클리버'라고도 불리는 물건이에요..."
생긴건 무슨 넙치같이 생겨선, 도끼날만 고대로 달아놓은것 같은 모양새다. 모양은 상당히 무식하지만, 그걸 반대로 생각하면 주방에서 행하는 확실한 절단에 이만한 물건은 더 이상 없었다. 무라사키는 그것을 제 장갑으로 뽀득뽀득 닦아서 먼지를 지우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