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일이라곤 할 수 없지만 거들었던 기억은 없어 자유를 비싸게 산 것도 같지만 영혼까지 싸게 팔았던 기억도 없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뭔가 브리엘이 머리를 꾹 누르며 굉장히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며 하웰은 조금, 걱정이 더 심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르는 척 가달라는 그 말에 더더욱. 왜 인지 모르게 정체를 숨기는 것 같기는 한데, 자신에게 비밀로 하라거나 하는 입막음이 없는 것이 더 불안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벗어나면 바로 슥삭할 생각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모른 척 지나갔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이 범죄의 도시에서 이런 마무리는 좋지 않다. 이곳에는 곳곳에 눈과 귀가 많다.
“음, 제 생각에는 커피라도 한 잔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뭐랄까, 당신을 아냐는 질문을 강압적으로 받았을 때,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납치, 협박, 공갈, 살인 이런 범죄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곳.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기에 하웰은 저기 호텔 내의 카페를 가리키며 말했다. 로비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으니.
“이렇게 가버리시면 저도 곤란하고, 선생님도 곤란하잖아요.”
부러 눈썹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자신도 조직에서 지켜주기는 하지만, 괜히 다른 사람의 정체 문제로 얽혀서 칼 맞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피피는 눈을 굴려 안젤리카의 눈치를 봤다. 식당 종업원 불러다가 앉혀 놓고 같이 밥 먹는 꼴이 바람직하지는 않지. 하지만 어쩔 텐가, 사내는 지금 착각으로 인해 생겨난, 아주 얄팍한 권력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곧 사라질 것이 분명하니 있을 때 즐기는 것이 옳다는 것이 피피의 지론이었다. 고운 성질은 아니다.
"맛있니? 맛이 어때?"
다람쥐마냥 미트볼을 먹는 상대에게 눈 접어 가며 웃었다. 진짜 웃음의 여부는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말한 이는 틀렸다. 피피는 지금 눈은 웃지만 입은 웃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명백한 거짓 웃음이다.
"뜨거울 텐데 말이야, 대단하네."
그 말을 증명하듯 사내는 새 모이 먹는 것 마냥 깔짝대며 먹고 있었다. 미트볼이 아닌 미트죽을 만들 심산인걸까, 싶을 수준이었다.
"이렇게 기름진 음식에는 레몬이나, 약간 시큼한 걸 곁들여서 주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하웰이 어떤 걸 걱정하고 있는지 알리가 없는 브리엘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면서 그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급했다시피, 뉴 베르셰바에 들어오기 전의 자신- 그러니까 스카일러라는 성을 사용하고 있던 그 시절의 자신을 아는 사람을 만날 줄 몰라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 사람들이 많아서, 그 고민에 신경질적인 짜증이 섞여서 서서히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브리엘은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했으니까.
하지만 곧 들려오는 하웰의 목소리에 브리엘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두통을 가라앉히려 노력하고 있다가 손을 늘어트리고 말았다. 하, 하고 짜증이 섞인 한숨이 날카롭게 입술 사이를 비집고 터져나온다. 그러니까, 그걸 걱정했다는 거지. 호텔 내부에 있는 카페를 가리키는 하웰의 손을 따라 브리엘은 시선을 움직이다가 카페의 위치를 확인했는지 걸음을 옮겼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일단 로비를 벗어난다면 이 이유를 알 것 같은 두통이 사그라들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치 내가 당신이 이 호텔을 나서면 암살이라도 시도할 것처럼 말하는데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쓸때없는 가정은 관두는 게 좋을걸."
걸음을 옮기면서 하웰에게 대꾸하던 브리엘은 시선을 돌리는 찰나의 순간에 그의 표정을 본 모양이다. 잠시 멈춰서서, 그를 향해 비스듬히 상체를 틀고 검은색 장갑을 껴서 이질적이기 짝이 없는 손을 들었다. 눈썹을 늘어트린 하웰의 가슴께를 브리엘의 손, 정확히는 검지 손가락이 지그시 닿았다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 누구도 나에 대해서 묻지 않을테니까 걱정할 필요도 없어."
알았어? 하고 예민하고 까칠한 어투로 호의라고는 느껴지지 않은 말을 내뱉은 뒤 브리엘은 걸음을 재촉했다. 커피라도 마시면 두통이 괜찮아지겠지. 로비를 가로질러서 카페에 도착한 브리엘은 자신이 좋아하는 쓴맛이 강한 블랙커피를 한잔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