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일이라곤 할 수 없지만 거들었던 기억은 없어 자유를 비싸게 산 것도 같지만 영혼까지 싸게 팔았던 기억도 없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브리엘 tmi...... 원래는 응급실만 돌던 의사였는데 이후 소아과로 전향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몹시 불편하고 상대하기 힘들어했지만 독백에 나온 아이의 담당이 된 뒤에 태도가 바뀌게 된 케이스. 인간불신과 인간성이 바닥을 치고, 닳아버린 이유는 의료사고를 뒤집어쓴 뒤에 있던 동기들의 뒷담화와 이후 있던 첫번째 독백에서 진짜로 테이블 데스를 내기에 이르는데.....
부끄러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을까, 그러한 격동의 감정을 느껴본 뒤로부터. 이제는 어떠한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설레임도 없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느낄 수 있었던 울렁이면서도 속이 따뜻해지는, 간절한 의지. 누군가와 합쳐져 하나가 되고싶다는 열망. 그런 것 따위는. 그저 막연한 후회의 연기만이 천천히 소용돌이 칠 뿐. 지금 이 자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어떤 것을 느끼고 있을까. 어째서인지 그것의 일부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감정의 편린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방금 작게 움츠러든, 가없이 가련하고도 가여운 이 자의 입술을 만지고, 그 온기를 전파받자 또 다시 무언가를 생각한다. '…' 하지만 그 생각이 의식 사이로 스치우기도 전, 이내 머릿속에서 그런 마음을 지우려한다.
왠지 지금의 표정을 보이기는 싫다. 지금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아는 것은 더욱 싫다. 그래서 페퍼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고맙다는 말에 그저 침묵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것은 지복인가. 이것이 지복이라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일까. 또 자신에게는 이것을 응당 누려 마땅한 권리가 있을까. "더 먹을테냐. 아니면 속이 안 받아주던가?" "남겨도 상관은 없어." 조금의 침묵이 있고난 뒤, 페퍼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드라이브나... 잠깐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지."
7층 소회의실, 아이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발가락을 꼼질거렸다. 발가락이 꼭 얼음조각 같았다. 눈 오는 날 창문에 손을 얹어본 것처럼 차가웠다. 가끔가다 맛보는 아이스크림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아이는 내리깔던 시선을 위로 올렸다 화장대 거울에는 작은 아이와 아이의 등 뒤에 서있는 여인이 있다. 여인은 따스한 꿀 빛 피부를 가진 빼어난 미인이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붉은 머리카락과 달리 눈동자는 시리도록 투명하고 옅은 얼음과도 같은 색이었다. 여인이 붉디붉은 입술을 벌렸다. 노래하듯 차분하고 리듬감이 있는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아가, 이번에도 나가려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니?"
여인은 이 건물에서 아이에게 살갑게 말을 붙이고 친절을 베푸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아이는 그럼에도 이 여인을 온전히 신뢰하지는 않는다. 가끔은 신뢰할 때도 있다. 여인은 아이가 밖에 나갈 수 있게 허락해 주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는 이 순간이 두려웠다. 빳빳하게 긴장하자 여인은 괜찮다는 듯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고 한 타래 잡아 올렸다. 자식을 단장해 주는 어머니 같은 손길에는 온기가 가득 배어났지만 아이가 느끼기엔 손은 늑대의 발톱 같고, 머리를 빗어주는 빗은 가시 같다. 아이는 발가락부터 시작된 냉기가 혈관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다리, 골반, 배, 가슴, 마침내 목을 꽉 메는 추위에 목소리를 겨우 쥐어짰다.
"쿠키를.. 사려고 했던 것 뿐이에요." "쿠키?" "네. 쿠키요."
아이는 거울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내려간 눈썹과 어색한 시선처리와 달리 볼에 보조개가 패인다. 여인은 그런 아이를 거울 너머로 바라보다 마저 머리를 빗었다. 엉킨 부분을 살살 풀어주는 손길이 온정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보면 아이를 정말 사랑하는 어머니와 같은 모습이었다. 적어도 아이가 이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 작은 입술을 벌렸다.
"좋아하시잖아요.." "뭐를 말이니?" "무화과 잼이 올라간 버터 쿠키요." "그것까지 기억하다니, 기쁘구나. 그렇다면 네 증언에 틀린 점은 없는 거지?"
아이는 척이 아이의 목덜미를 잡아들어 올리던 사실을 기억한다. 아이가 버둥거렸기 때문에 목덜미엔 아직 새파란 멍이 남아있다. 그다음엔 지하 2층까지 데리고 가서, 휙 던져버렸다. 이번에도 척이 2층으로 던질까 봐 겁이 났다. 아이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여인은 거울 너머로 아이의 반응을 살폈다. 여인은 노련했다. 아이의 작은 반응 하나하나로 이미 무엇이 거짓말이고 진실인지 알 것이다. 그렇지만 여인은 노래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우아한 목소리는 사람을 매료시키고 좌중을 압도시킨다. 아이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들려도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편안하다 생각했다.
"척, 모리슨?" "퀸, 부르셨습니까?" "물론이죠, 내 자랑스러운 오른팔, 사랑스러운 아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잭, 스페이드.."
여인은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척은 곱슬 진 갈색 머리에 둥근 안경을 쓰고, 순하지만 퀭한 다크서클을 가지고 있는 수수한 남성이다. 그렇지만 그 안은 무시무시한 킬러다. 킬러인 만큼 감은 남들보다 배로 뛰어났고, 여인의 찬사 이후에 드러날 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지만 척은 뒷짐을 지고 허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이미 할 말을 정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엉이가 어째서- 지하 2층에 갔을까요?" "신입 사원 일라이 빌을 속여 탈출을 감행했기 때문입니다."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었어요, 척."
잘 짜인 대답은 여인의 한 마디에 가로막혔다. 아이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거울로 상황을 지켜봤다. 각을 맞추고 서있는 척의 시선은 여인을 향해 꽂혀있다. 무한한 존경, 사랑, 경외, 염려……. 그 모든 감정이 여인을 향했다. 아이는 그런 척을 가엾다고 생각했다.
"우리 라푼젤이 탈출을 하든, 남을 죽였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를 위해 쿠키를 사주겠다는 이 작은 헨젤이 어째서 지하 2층에 갇혀야만 했냐는 뜻이었어요." "퀸, 조직의 배신은.." "척, 그렇지만 지하 2층이 내가 내린 결정이었나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척, 위로 오르길 바라나요?" "예?" "더 높은 자리 말이에요." "……아닙니다." "이상하지요. 내 말을 들어먹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했으니, 이게 위로 오르기 위해 반항하는 게 아니면 뭘까요?" "잠깐, 퀸.. 제발요! 저는 아직 쓸모가 많습니다!" "부서를 새로 짜야겠군요. 당신의 휘하였던 세 명의 암살자는 지하 2층에 선물로 하사될 거예요. 당신에게서 절대 배우지 못할 겸손의 미덕을 익히겠지요.. 바이올렛."
척이 비명을 질렀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성은 무딘 도끼를 손에 쥐고 있다. "여왕님께서 선고하셨으니, 이는 최종 판결입니다. 선배." 공포에 사로잡힌 척이 눈을 홉뜨는 모습이 거울 너머로 보였다. 그리고 벽에 피가 튀었다. 등 뒤에서 둔탁하고 질척한 소리가 들렸다. 피거품을 끓어내며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피 묻은 도끼를 위아래로 휘두르는 바이올렛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귀를 틀어막아도 비명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여인이 아이를 바라보다 손을 뒤로 뻗었다.
척이 몸을 크게 꿈틀거렸고, 바이올렛도 도끼를 휘두르다 그대로 척 위로 엎어졌다. 단 두 발의 총성으로 정적이 일었다. 그 안에서 오도독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아이의 발가락이 마침내 얼어붙어 깨지는 소리 같았다. 아이는 창백한 안색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눈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발가락은 무사했다. 아이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여인이 보였다. 시리도록 옅은, 얼음 색의 눈이 거울에 비친 아이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여인은 아이를 천천히 훑더니 어깨 위에 올렸던 손을 뻗어 아이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목을 끌어안고 팔을 꺾어 아이의 뺨을 쓸었다. 피가 튄 손가락이 뺨을 쓸어내자 붉은 선을 그었다. 여성이 눈을 감고 다 괜찮다는 듯 아이에게 온기를 전하고 도닥였지만 아이는 그 상황이 두려웠다.
"아가, 부엉아, 헨젤, 라푼젤.. 오, 많이 놀랐구나. 척이 널 그런 무시무시한 곳으로 보냈을 거라곤 내가 미처 생각도 하지 못했어.. 부엉아, 저깟 척과 바이올렛은 몇 명이고 대체할 수 있단다. 그렇지만.."
아이는 뒷말을 안다. 너는 아니야. 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존재지. 아이는 눈을 내리깔아 자신의 목을 감싼 가느다란 팔을 바라봤다. 뺨을 쓸어주는 긴 손톱을, 목가에 덮인 붉은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너는 부디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헨젤."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한참이고 마주하더니 손을 들어 여인의 팔을 끌어안고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 바들바들 떨리는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떠나지 않을게요."
이따금씩 에만은 자신의 눈을 파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거울로 눈동자를 마주할 때면 그 눈을 파 버리고 새로운 색깔을 심어내고 싶다. 이 색이 아닌 어떤 색이라도 좋다. 눈을 그어버려도 좋다. 차라리.. 에만은 머리가 꿰뚫려 죽은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고 가면을 썼다. 시리도록 옅은, 얼음 색의 눈이 무감정한 플라스틱에 가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