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죠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나 아끼던 두려움들은 돌아선 당신의 귓가에 계속해서 맴돌죠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재능도 필요 없다. 그 말이 귀를 파고들어 가슴에 박혔다. 재능. 그래, 난 재능이 없다. 그 빌어먹을 곳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도시에서 믿을 건 자신의 돈, 무력, 그리고 재능 뿐이라던데, 난 왜 셋 다 없었는지. 익숙한 형태의 나이프를 쥐고는 한바퀴 돌렸다. 영락없는 칼을 처음 잡아본 애처럼 행동하는 무라사키를 슬쩍 보았다.
정말 취미인 것일까. 아니면,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숨기고 있는 것일까.
전자라면...아무래도 좋지만 후자라면... 부럽다. 부럽고, 부러워서, 나쁜 생각을 품게 된다.
어쩌면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풉. 알았어. 알았어. 그런 걸로 하자."
나이프를 손바닥 안에 숨기고는 방긋 웃었다. 소녀를 놀리듯 생글생글 웃는다. 이런 생각을 품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했다.
"...? 뭐야."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이 무라사키의 붉은 얼굴을 보자마자 한번에 사라진다.
왜 얼굴을 붉히는 걸까. 별로 부끄러워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거절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래도 귀여우니 됐나.
귀여운 것을 본 충격인지, 아니면 그냥 일시적으로 자극이 되었던 계기가 저 모습 때문에 사라진 건지는 제롬도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정신이라는 것은 너무 섬세하다. 고장이 난 것도 난 거지만, 한번 나아져도 어쩌다 왜 나아진 건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다. 그냥 다음에는 약이나 더 받아야겠다 생각하며 넘길 뿐이다. 아, 하웰네 가서 마음이 편해지는 향수라도 하나 사올까.
"그러니까- 이걸 보고있는 거야?"
무라사키의 시선 끝을 향해 몸을 돌려 저벅저벅 걸어가자, 그 끝에는 다름아닌 식칼이 있었다. 의외로, 전투용 나이프가 아니었다. 전투용이 아니라도 수집하는 것일까. 일식칼... 아무래도 좋은 문양이 써져있는 것을 보아하니 명검이긴 한 것 같은데, 조예가 깊지 않으니 얼마나 명검인지 알 수가 없어 눈쌀을 찌푸리며 칼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상관 없겠지. 이걸 원한다면, 사줄게."
그래도 한가지, 간단한 조건이 있어. 저 멀리서 식칼을 들고 무라사키에게 다가오던 제롬은 가볍게 덧붙이고는, 일부러 무라사키를 애가 닳도록 만드려는 건지 잠시 뜸을 들이며 씨익 웃었다.
"나랑 '친구' 해주면, 이것도 줄게. 어때?"
그는 자신의 단말기와 함께, 식칼도 내밀었다.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어플로 들어가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번호도 달라는 것일까.
팔짱을 끼고 있던 자세를 풀었다. 검은색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가벼운 몸짓에도 손쉽게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을 밀어올리고 나서, 브리엘은 관자놀이를 짚듯이 턱을 괴면서 특유의 나른한 기색이 드러나는 눈매를 아래로 감는 것처럼 내려떴다. 턱을 괴고 있는 검지로 뺨을 두드리는 브리엘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이니까 끝나고 나면 새로 나온 입욕제를 넣고 목욕이나 할까 하는 별거 없는 생각이다. 착실하게 두통약 효과가 돌았기 때문에 관자놀이가 욱신욱신거리는 불쾌함이 없었지만 이것또한 브리엘의 버릇이나 마찬가지였다.
"5kg이면 소량이네. 그냥 물어보는 건데 정키들의 부탁은 아니지?"
차갑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지만 시선은 여전히 아래로 향하고 있어서 혼잣말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브리엘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려서 엄지와 검지로 자신의 입가 끝을 매만졌다. 카두세우스는 약에 절어버려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에게 약을 제공하지 않는다. 아무리 중독증세를 최소화했다고는 하지만 이미 약으로 인해 내장기관이고 인지능력이 상실해버린 중독자들은 정도를 지키지 않고 마구잡이로 주입하다가 그대로 그 싸구려 목숨이 끊어지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취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카두세우스의 철칙이였고 브리엘이 이끌려서 들어온 이유이기도 했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들은 전부 진심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니 가면처럼 씌워진 여인의 미소도, 찰나의 잠시간 스쳐간 카이의 미소도, 그 의미와 무게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 분명했다.
나직한 건배사와 함께 두 잔이 비워지고 채워진다. 그 사이에 흘러간 말은 가는 만큼 돌아왔다. 여인이 먼저 꺼낸 말에 카이는 지극히 평범한 대답으로 내놓았다. 쏙 빼놓은 이야기에 대해서 여인은 알고 있을까. 아니면 일이다 지나가고도 모를까. 젓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다시 술을 마신다. 그리고 재차 병을 기울이다가 후후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잘 지내는게 제일이지. 음. 그래. 우리 애들이 폐 끼치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네. 안 그래도 여긴 생물을 취급하니까, 신선도에 신경 쓰라고 누누히 말하고 있단다."
동부에 라 베르토가 거래하는 곳이 해룡수산 뿐인 건 아니지만 여기 들어가는 건 특히 더 신경쓰라고 말을 해뒀었는데. 담당인 조직원들이 잘 해주고 있는 듯 했다. 조만간 회식이나 시켜줘야겠다. 그런 생각과 함께 다시 젓가락을 들고 회 한점을 집었다.
"나야 뭐가 있겠니. 일은 애들이 다 하고, 요즘은 큰 사건사고도 없으니. 이럴 때 높으신 분은 얌전히 있어주는게 여러모로 편하지 않겠어."
흘려보내듯 하는 말이 늘상 잡화점에만 있는 이유 같기도 하고 그저 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여인의 젓가락이 집은 회를 양념장으로 가져가 끄트머리를 담갔다. 붓에 먹이 들 듯 서서히 물드는 회를 보며 여인이 낮게 중얼거린다.
"뭐라도 있어주면 좋을지도."
밑도 끝도 없이 그런 말만 툭 뱉어놓고 끝이 검어진 회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딱 원하던 두께감의 회를 설겅설겅 씹어 삼키니 방금 전까지 홧홧하던 속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그 위에 다시 술 한잔을 붓고, 잔을 채우고, 샐러드 야채를 하나 집어 먹었다. 아삭한 식감이 회랑은 달라 입이 즐거워졌다. 그럴 거라 생각한다. 여인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자리가 자리이니 어지간해선 안 움직이는데. 네가 떠주는 회 먹으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오는 거라 이 말이란다."
여인의 목소리는 한없이 가벼웠다. 그 말이 진심인지 그저 입 발린 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그리고 여인은 다시 회를 집어 조용히 입술로 가져갔다. 회를 넘기기 무섭게 잔을 비운 것은 당연했다.
에만은 다른 봉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더 있구나. 저 안에도 손가락이 있는 건 아닐 거라고 믿었다. 전부 처음 보는 음식투성이다. 그나마 본 것이라고는 연어 샐러드 정도겠다. 물론 그 당시의 작은 에만이 먹을 수는 없었기에 맛은 모른다. 나머지는 본 적도 없는 음식이었다. 특히 황금빛으로 잘 구워진 페이스트리는 꼭 모형을 보듯 완벽한 모양새였다. 에만은 페퍼를 잠시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 머뭇거리더니, 수프가 담긴 종이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작은 종이컵의 사이즈는 한 사람이 식전에 먹기 안성맞춤이다. 에만은 컵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온 뒤, 플라스틱 숟가락을 들었다.
"아, 아으.."
서스럼없는 손길에 에만은 상자로 된 간이 식탁 위로 숟가락을 떨어트릴 뻔했는지 손에 힘을 꾹 주었다. 허리를 펴는 것 까지는 괜찮았지만 어깨를 폈을 때, 에만은 자신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내뱉었다. 흐으. 오랜 시간 움츠리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오로지 에만이 알뿐이다. 큰 사이즈의 후드가 제대로 된 자세에 쇄골을 드러냈다. 턱을 교정해 머리카락이 쏟아지자 그마저도 덮어 가렸고, 에만은 다시 교정 당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지 제법 오랜 시간 정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에만이 본인의 첫 선택인 수프를 한 수저 떴다. 샐러리 향이 가득한 수프에 잘게 썬 양송이가 딸려 올라왔다. 에만은 천천히 입안에 넣고 씹었으며, 삼켰다. 속이 편안했다. 다시금 한 술 떴을 때, 에만은 가면이 불편했는지 주변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가면을 조금 더 올렸다. 이제 오똑한 콧날이 온전히 드러났다. 에만은 잠시 고민하다 수프를 한 숟가락 다시 떴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이내 페퍼가 했던 것과 비슷하게 팔을 쭉 뻗었다.
"…기다린다고 해도.. 나는 먹는 게 느리니까.."
수프는 식어선 안 된다는 양, 에만의 두 눈은 어둠에 깔려 가려졌기에 이따금씩 깜빡일 때마다 긴 속눈썹이 윤곽만을 드러내다 사라졌다.
순간, 무라사키의 표정이 굳는다. 표정뿐 아니라 모든 동작이 굳는다. 단지 '친구'를 해주는 것만으로 값비싼 명품 식칼을 얻을 수 없다. 분명 무라사키의 월급으로는 적어도 8개월을 저축해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지금은 또 돈 없는 소녀의 어깨가 들썩거린다. 그건 분명 그 매혹적인 제안에 사고가 마비 될 듯이 너무나도 기뻐서-
"우흑... 우... ...으흑... 읏..."
가, 아니었던 걸까. 갑자기 신음과 함께 그 눈에서 나와 뺨을 타고 구르는 것은, 명백한 눈물.
무상으로 칼을 사주지 않아서 서러운 것인지 모른다. 대뜸 단말기를 내밀며 강요해서 겁먹은 것인지 모른다. 아니면 갑자기 제롬이라는 존재가 무서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설명도 없다, 정황도 없다. 그리고 이유도 없이, 갑자기 고개를 떨구고선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는 것이다. 칼날의 소녀. 무라사키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고개를 떨구고선 그렇게- 제롬의 앞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만을 계속해서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