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윤이 갑자기 웃자 사민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어딘가 섬뜩한 구석이 있었다. 이어지는 말은 더더욱 충격적이었는데, 워낙 비현실적인 광경이라 그런지 사민은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잠시 고민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찬 공기가 폐부에 들어차는 감각이 너무 생경해서, 사민은 다시끔 정신을 차렸다.
"예에? 익스파가 무시무시한 것도 잘 알고, 아버지가 죽으셔서 너무 안타까운 일인 것도 잘 알겠는데... 그게 저희의 잘못은 아니지 않나요? 그렇게 치면 의사는 살인범이고 식칼은 흉기인가요..."
사민은 당황한 얼굴을 했다. "아니 물론 사람을 못 구한게 경찰로서 당당할 일이 아니긴 한데!" 사실 사민은 괴물이니 어쩌니하며 자신에게 이토록 원색적인 증오를 보이는 사람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야 그동안 전근을 가있었으니까... 괴물이니 버러지니 쓰레기니(이런 말 안함)하는 말을 들으니 손이 벌벌 떨리고 눈물이 나올 것 같고 다리도 후덜덜 떨...리지는 않고 그냥 억울했다. 그렇다. 이런 말에 상처받기에 사민은 너무 단순했다. 대뜸 명령조로 감내놔라 배내놔라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와중에 두번째 목적이 뭔지 말해주지 않은 것 같아서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이 이해를 잘 못했나 들은 말을 검토하면서도 사민의 입에서는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제가 국가 공무원이라 그런지 막 법 위반하고 이런 거 진짜 못하거든요. 마음 아프신 건 잘 아시겠는데 그렇다고 대뜸 저희보고 괴, 괴물이라고 하시고 막 그렇게 월권하시고 멋대로 사람 죽이시면 곤란해요. 헉, 지금보니까 흉악범이시네요. 제 뒤에 계신 분은 그래도 살인은 못 저지르셨는데..."
사민은 주섬주섬 큐브웨폰인 너클을 차며 바닥을 훑었다. 많은 자갈들 = 던질 게 많다 = 무기가 많다 느낌이 좋았다. 사민은 너클을 품에 올리고 태윤을 설득했다.
"제 손에 낀 거는 신경쓰지 마세요. 그냥 직업병 같은거라서 항상 챙겨다니거든요. 아무튼 지금이라도 회개해서 자수하시는 건 어떨까요? 감옥에 계시는 동안 저희가 앞으로 힘내서 익스퍼 범죄자들을 잘 잡아볼게요."
괴물 놈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인간을 벗어난 위험한 괴물 주제에 경찰을 지칭하는 위험분자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을 괴물을 사냥하고 그 행동을 정당화 하는 사람처럼 나서는 모습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전에도 만났던 킹이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처형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 것에서 불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한순간에 눅누가를 해치기 좋고 그런 존재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는 표정을 구겼다. 미간은 패이고 눈은 사납다. 눈앞의 남성은 누군 이런 괴물이 되고 싶어서 된 줄 아는 양 제멋대로 떠든다. 그는 일장연설의 끝에 겨우 단어를 골라낼 수 있었다.
"할 말은 그게 다입니까?"
그의 어조는 침착했다. 누군가와 닮았다. 그처럼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땋은 머리의 누군가와. 차이점은 끝에서 히스테릭한 목소리를 억누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 아버지를 잃었다 해도 그는 동정하지 않고, 일절 동조하지도 않았다. 범죄자에게 서사는 필요가 없다. 그런 서사를 가져봤자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신호를 비호하려 들지도 않았다. 만일 이곳이 미국이며 둘 다 범죄자였다면 이미 말하는 도중에 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발언은 범행 동기의 자백인 걸로 알겠습니다. 죽인다, 만다. 그런 얘기 경찰 직함 달고 하기 안 쪽팔리십니까? 이참에 경찰 때려칠거다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시민을 수호하는 책임감조차 없는 사람이 경찰이 됐다는 소리는 뉴스로만 듣고싶지 서면으로 듣기는 싫습니다. 최소한의 인간성도 다 버리고 괴물이니 뭐니로 자신에게 살인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컸습니까?"
그는 잠시 묻는다.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덤덤히 질문했다.
"괴물이니 뭐니 합리화 하기 전에 당신은 현재 한 국가에 소속된 시민인 이상 그 법을 따라야 하는 법인데 왜 혼자 무법을 저지르고 살인을 정당화 하십니까? 괴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개인의 자유라서 딱히 더 할 말은 없지만 본인도 괴물이라는 이유로 남이 피 흘려가며 후대를 위해 세워둔 법을 무너뜨리면 안 되는 일이죠. 아니다, 말로 안 통하고 너희같은 괴물이 뭘 아냐며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 하겠지.."
그리고 큐브웨폰을 손에 쥐었다. 더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목 안으로 삼켰다. 괴물이라는 단어를 필사적으로 외면하면서.
"어, 으음... 지금 나는 범죄자다- 하고 스스로 밝히신 꼴과 다름이 없다는 것은 설마 하는데 인지하신... 상태죠? 이것 정말 당황스러운데."
제 스스로의 다언多言과도 가히 비견되는 일장 연설은 잘 들었지만 그 내용은 충격적이기보다 차라리 난감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하며 신은 물음표를 던진다. 이로써 도리어 신호를 넘겨 받아야 하는 얼마 정도의 정당성마저 직접 발로 차버린 셈이었기에. 익스파도 B급이라 들었는데 도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라고도 생각했다. 일상과 범죄의 경계를 긋는 일선을 넘는 수없는 사람은 제각기 특징이 전부 있는데 그 중 가장- 솔직히 어리석은 종류 같게 되지 않는가, 이래서야......
"......이이제이以夷伐夷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항상 옳지는 않아요. 저도 배워가는 사실 중 하나. 당신도 모쪼록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과연 그것이 어찌 될지는. 그러하니 익스퍼를 당신이 괴물이라 부르든 재앙이라 일컫든 경찰로서 이 분은 절대로 넘길 수가 없겠습니다. 내가 이 사건의 흑막이다- 쓸데없이도 밝히며 갑자기 계획은 어떻다 사정은 어떻다 변명 줄줄이 읊는 것만 봐도 도통 신뢰도 안 가요, 으응. 묻지도 않았는데."
누구도 모르게 신호에게 능력을 건다. '이 자리에서 벗어나게 되는 일'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되도록. "괜찮아요." 마지막으로 신호의 등을 토닥이고 일어서며 신이 전개하지 않은 큐브웨폰을 한 손에 그러쥐고 지그시 태윤을 바라보았다. 그 이물같이 붉은 뱀의 눈으로.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우리가 쫓던 이름없는 수리가 다름 아닌 당신임에는 분명 틀림이 없겠지요?"
"이렇게 저희에게 이것저것 설명하여 주시고.... 말을 길게 하시네요... 그래도 흥미로운 이야기였어요."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마리는 태윤의 언행에서 덩달아 살짝 웃었습니다. 자,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또 다시. 뭐랄까... 대단원이라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반대로 무언가의 서막을 알리는 광경일지도 모르겠고요. 태윤의 그 모습에서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우습다는 느낌이 엿보입니다. 사실이 무엇이든 마리도 이 상황이 웃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재미있네요!
현실이라는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는 아무래도 진부하면서도 흥미로운 반전 아닌 반전을 쓰는데 탁월한 솜씨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연이 있으시다고요? 네, 당신의 사연은 꽤 그럴 듯한 느낌의 이야기에요. 그런데 말이죠. 괴물이니 익스파이니... 처벌이니 알게 뭐랍니까! 그런 것들은 마리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뭐, 있기는 합니다. 재미있는 소설 같은 것을 수집하는 느낌으로서. 아무튼 이제,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었든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해야만 하는 순간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마리는 종종 생각해왔던 것이지만 바로 이러한 순간을 접하고 기대해왔기 때문에 자신이 익스레이버가 된 것이 아닌가 할 때가 있습니다. 다만, 이유는 이것 뿐만이 아니지요. 마리는 자신이 선택한 겁니다. 괴물이라고 칭해질 법한 타고난 능력으로 타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 될 수 있도록. 당신들은 그 반대를 선택 했을 뿐입니다. 그저 그 뿐인 겁니다.
그리고 저 사람에게 이상하게 계속 따르고 싶지 않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었으니 만족스럽다는 것도 있네요. 저렇게 직접 스스로 증명이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여 주었고요.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 때 움직이지 않았다면 태윤의 목록에 당당히 마리도 포함 될 수 있었을 텐데요. 뭐, 이미 지나가 버린 이야기이니 별 수 있겠습니니까.
"스스로 말하셨잖아요, 무엇을 하고 해야 할지. 그래서, 그 괴물끼리 한번 놀아보시는 건 어떤가요?"
마리는 태윤의 명백한 적의와 함께 요구하는 말에 능청스럽게도 묻듯이 말하며 살며시 미소 지어보였습니다. 사실, 이 물음에 대하여 대답 같은 것은 상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될 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곁을, 다른 이들을 보아하면 마리 뿐만이 아니라 이들도 같은 생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마리가 말하고 나서 곧이어 그녀의 머리 위에서 허공에 가시 덩굴이 나타나 가시관의 형태를 이루며 동시에 그녀의 신체가 지면으로부터 떠올랐습니다. 그녀의 발 밑 아래와 다른 곳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덩굴이 분출하듯 거침 없이 솟아 나와 뒤덮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