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연의 말에 마리는 대답 대신에 그렇게 되묻듯이 물어보았습니다. 이곳 데이드리머의 '특별 주문'이란 이곳이 만들어진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특별 주문이란 잠들기 위해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원하고 바라는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접하기 위해서. 마리는 그녀의 능력으로 그걸 이루어 줄 수 있고 거기에 있어 환경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서비스 업종입니다. 아주 좋지는 않더라도 고객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하여 주는 것이 정당하며 필요한 사항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이 잠을 청할 장소가 필요하겠지요
"과연 어떨까요? 가시나무가 만들어낸 또 다른 현실일 수도 있겠죠. 저희는 누구의 꿈일까요?"
화연의 마치 분위기가 일변한 듯한 그 어떠한 의지에 찬 것처럼 보이는 눈으로서 질문에 마리는 옅게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고는 의문형으로 되돌려주었습니다.
"흥미로운 의문이에요.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지금까지, 앞으로도 이어져 왔던 질문이에요. 저는, 르네 데카르트의 사고 실험이 생각나요. 짧게 줄이자면 초자연적이고 강대한 힘을 지닌 악마가 나라는 존재에게 개입하여 모든 것이 허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나라는 존재는 이것의 여부를 알 수 없을 경우라 할지 라도 이 나라고 하는 존재가 그 정보를 입력 받고 그에 따라서 생각하고 있으므로 존재성이라는 것 만큼은 진실이다. 라는 이야기지요. "
"Cogito, ergo sum. 풀이하면 나다, 내가 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남긴 표현이지요. 존재와 비존재, 우리가 꿈 속의 존재라면 그 꿈을 꾸는 존재가 있음을 증명한다. 저에게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해요."
화연에 언행에 마리는 어쩐지 즐거운 듯 보이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것들이 마리가 꿈과 현실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것은 어찌하여 그녀가 이러한 형태로 찻집을 개업하고, 익스레이버가 되었는지 관통하는 주제가 되기도 하는 기원에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리로서는 이러한 주제로 이야기를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주고 그것에 대하여 나눌 수 있다면 즐거울 수 밖에 없지요
"특별 주문이라..데이드리머는 특별한 꽃을 제공만 해주는 거에요. 그 가시에 손가락을 찔러버린 건 사람들이고요. 꿈에선 언제나 깰 수 있지만 본인들이 깨지 않는 것이고요. 그런데 법적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전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과연 그녀의 능력이 마약과 환각제와 뭐가 다른 지 증명할 필요가 있을것입니다. 사람을 재우고 원하는 꿈을 꾸게 만들며 그가 원할 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 마약과 환각제가 연상되는 작용입니다.
화연은 그녀 자신도 이에 대한 대답을 내 놓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고 질문을 질문으로 답했으니까요. 그렇지만 뒤이어 오는 설명에는 속을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실존하느냐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존재로서 무엇인가의 존재는 확실해진다는 것이군요."
현재 도출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답, 하지만 뭔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결국 모른다는 것만 확실해졌을 뿐 시원한 답이 아닙니다. 조금 더 확실한 답, 정확한 답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통 속의 뇌 문제군요. 그렇다면 마리씨, 전 개인적으로 모든 인간이 통속의 뇌 처럼, 그러니까 마리씨가 만든 꿈 속에 있다면, 영양분은 컴퓨터가 계산하여 사람들에게 공급한다면 진정한 유토피아가 완성될 것이라 생각해요. 마리씨 생각은 어떠신가요?"
아무도 다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한 꿈 속에서 수명이 다할때까지 살아갈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는 꿈을 꿔도 상관없습니다. 어자피 꿈이니까요. 고통도 없고 지루함을 느끼지도 않으며 만약 그런 것이 있을 지라도 행복을 위한 거름에 불과합니다. 행복한 꿈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요.
"사람들은 서로 싸우지도 않고 빈부 격차도 없어요. 환경은 번창하고 멸종하는 동식물도 자연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도태되는 것들 뿐이겠죠. 어떨까요?"
"그래요. '나는 내가 모른 다는 것을 안다' 라는 것이죠. 소크라테스가 남겼다고 알려진 표현이지요. 존재란 무엇인가? 무엇이 실제인가? 란 질문은 계속 이어져 왔지요. 우리, 인류는 여전히 끝이 없는 것만 같이 앎을 통하여 탐구하고 있어요."
화연의 말에 마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그의 말에 긍정하고는 그에 덧붙이듯이 말하였습니다.
"후훗. 지금의 여기에 있는 제가... 아니었다면 그러하도록 할 모든 수단을 지니고 있었다면 모두에게 그러한 것들을 선사하려고 했겠네요. 모두가 하나의 세계를 암묵적 합의 하에 따라서 공유하는 것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세계에서 그 끝을 다하기를.... if 같은 것은 없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이런 것을 싫어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러한 자가 이르기를 아로 되, '인류의 안락사'. '어느 한 종(species)의 종결'. 라고 표현하겠지요. 그리한 끝에 그러한 모든 것을 저지하려 할 수 있겠지요. 고통은 삶이요 삶은 곧 고통이로다. 이것은 어떠한 고통의 주체의 합리화 보다는 고통, 곧 외부와의 상호작용이 곧 존재와 의지에 대한 변증법이라 할 수 있다 라는 것이죠. "
마리는 살며시 웃어 보이고는 화연이 이번에는 이러한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통 속의 뇌'에 대하여 거론하여 물어보았을 때 이에 대하여 대답하여 말했습니다.
"적어도, 저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이네요. 하지만 누군가가 보기를 그것은 어항에 지나지 않을 것이에요. 비록 그 어항에 든 금붕어에게는 눈에, 시야에 담을 수 없도록 거대함이라 할 지라도"
화연이 또 다른 예시에 마리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확실히 나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러한 예시를 확장하고 가정 하다면 꼭 좋으리라 할 수 많을 없을 겁니다. 마리는 종종 이러한 생각들 하고는 했고 이러한 철학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관심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에 좋아했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내용이라면 이보다는 덜 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이외도 마리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비슷하게 반응 것이 였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