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올린 톡을 무심코 본 시우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 하고 숙소의 마당으로 나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무시하려고 했지만 이런 일을 톡에 올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무료했으니까. 이런 호기심을 참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응 안녕. 네가 그 글을 올린 사람?"
톡 보고 온 거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멀리서 볼 때 어쩐지 낯이 익다 했는데, 잘 보니 예전에 만난 적 있는 사람이었다. 이름이... 지한이었지 아마? 많이 만나지는 않았지만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을 외워두는 것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생긴 습관이다.
그건 그렇고, 폭죽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주변에 늘어놓인 폭죽을 보며, 시우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전부 파묻을 생각이야?"
폭죽을 원한다면 일을 해라! 라고 누군가 말한 것 같아 (아마 지한이 그런 식으로 바라봤다던가 한 거겠지.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말자.) 시우는 옆에서 땅을 파는 일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요컨데, 삽질이다.
시선이 애매했을 거라는 말에 자신을 둟어져라 쳐다보는 지한을 연상하고는, 장난스레 중얼거렸다. 원망은 안 하는 것이니 마음이 좁은 건 아닌데, 눈치보이게는 하는 거니까..? 물론 농담인 만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나. 말은 그렇게 해도 열심히 땅을 파던 와중, 악수를 받아주자 입꼬리를 씨익 올려보인다.
"좋아. 잘 부탁해 친구. 난 이시우라고 해."
손을 몇번 흔들고는 놓아주었다. 다시 땅을 파기 시작하려는 찰나, 딴청을 피우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지한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장난으로 보낸게 당첨되었다니, 이게 무슨...
"장난으로 보낸게 부끄러워서 그래?"
운 한번 엄청나게 좋은 녀석이라 생각하며 지지대에 폭죽을 꽂고, 땅에 파묻기를 반복한다. 누구는 이런 거 한번도 당첨되어본 적 없는데 누구는 장난으로 보내도 당첨되고... 세상은 좀 불공평한 것 같다. 원래 그랬듯이.
"화려하게 좋지. 기숙사 애들 다 깨울 정도로 많이 묻어보는 건 어때?"
뭐가 좋은지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민폐이긴 하지만, 그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시도해볼 엄두는 안 났기에 상상으로 그쳤지만 말이다.
평범함이란 그런 것이다. 어디 모난 곳 없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는 것. 동생이 안정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적절히 뒤섞이면 그땐 '모나지 않은' 가족이 된다. 아쉽게도 우리집은 그렇게 모난 공간이 아니었다. 어릴적 사건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아직 울음을 터트리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로 사회에 내몰린 우리 가정은 평범함보다는 조금 멀어져 있었다. 눈물을 꾹 참은 얼굴로 어머니는 내 손을 쥐고 동생을 업은 채 나직히 말했다. 이제 언이가 누나야. 누나 역할 잘 해줄 수 있지? 그 말을 듣고, 아직 어린 나이에 잘 모르던 나는 고갤 끄덕였다. 그게 맞을 것 같으니까. 모난 곳 어딘가는 채워야만 하니까. 우리 가족은 그렇게 모난 곳을 가지고, 열심히 평범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조금도 이상한 곳이 없었다.
*
언젠가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된다. 단지 나는 조금 일찍 어른이 되었을 뿐이었다.
*
" 수치 체크 결과. 의념 파장 합일도가 높게 나왔네요. 축하드립니다. 따님은 의념 각성자입니다. "
의사의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정신이 멍했던 것 같다. 단지 알 수 없는 광휘와 함께 거대한 빛을 보았고,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단 것만으로 의념 각성자가 될 수 있다니. 너무나도 허술하고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눈물을 터트리며 내 손을 끌어안았다.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다행이라는 듯이.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엄마의 모습은 5년 전을 마지막으로 볼 수 없었던 나에게 그 모습은 상당한 충격이기도 했다. 아직 의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주먹을 쥐었다 펴며 간단한 운동을 해보았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냥. 멍했다. 정말 내가 의념 각성자라고? 의념 각성자들은 다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거나, 엄청 강한 가디언들이라서 막 싸우는 그런 게 아니었단 말야?
" 따님의 파장 포텐셜이 상당히 높게 잡혀요. 저희 병원에서 관측했던 것 중에 네 번째로 높은 파장인데 이 파장과 비슷한 인원들은 어머님도 아실만한 분들일겁니다. 이현우 준장님 아시죠? 이현우 중장님의 파장 포텐셜이.. "
그러거나 말거나, 의사는 엄마와 나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엄마는 그 얘길 들으면서도 흘끔흘끔 내 눈치를 살폈다. 엄마에게는 내가 각성해서 좋고 말고가 아니라, 이 상황이 내게 불편하진 않은가 보려는 것 같았다. 그냥. 순수한 아이처럼 나는 의사에게 물음을 던졌다.
어깨를 쭉 피는 모습을 보며 키득 웃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농담했다. 거의 처음 대화를 나눈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농담도 주고받는 것은, 아마 둘 다 친화력이 좋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 아닐까.
가벼운 소개를 듣고는 큰 운이 없다는 말에, 그녀를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게 당첨되려면 큰 운이 아니라 진짜 X나게 큰 운이 필요할 걸..."
평생의 운을 다 끌어다써야 할 정도라던가. 하는 말을 반 농담, 반 진담으로 한다. 진담의 비율이 반을 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작은 운이든 큰 운이든,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 시우에게 있어 지한의 말은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기만자, 라고 들릴 듯 말 듯 하게 중얼거리기도 했던가.
"보통 그렇게 강조하는 사람은 부끄러워 하는게 맞다던데."
아님말고~ 라며 지한을 한껏 놀리는 시우였다. 옅은 부끄러움을 읽었다기보단, 그의 아님말고- 라는 말처럼 지레짐작했을 뿐인 거겠지만.
"그랬다간 사감쌤에게 무지하게 혼날걸."
큭큭 웃다가도 괜히 조용하게 속삭이는 시우였다. 아니, 이정도 폭죽량이면 진짜로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제지하는 것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만한 배짱은 없었으니까. 열심히 묻자는 말에 시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땅 파는 것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다 했나...?"
어느새 묻어야 하는 폭죽들은 대부분 소진되었다. 더 묻을 수도 있겠지만, 더 묻었다간 진짜 기숙사에서 자고 있는 애들이 전부 깨어날지도 모르니까. 시우는 지한의 허락을 구하듯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흐음.. 눈에 이상은 없으신 것 같은데.. 어쩌다가 보지 못하는지 궁금하군요.." 물론 농담입니다.
"그렇지만 굉장히 높은 수준의 운으로 당첨되면 매우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런 것에 당첨된 사람이 앞으로의 운도 존재해야 돈을 아예 잃지 않고 살아가겠지만.. 이라고 생각해도... 사치하지 않으면 웬만큼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전 부끄럽지 않습니다." 에헴. 같은 소리가 붙으면 어울릴지도 모르지만 하지 않았다.. 사감쌤이... 존재하긴 할까... 같은 건 지한주의 몫이므로, 지한은 사감쌤이라는 말에 어깨를 으쓱하고는 총교관님께서 달려와서 절 베어낸다면 좀 잘못한 것 같긴 하겠지만.. 그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는 말을 하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우를 보고 폭죽을 보고는 아.하는 소리를 냅니다.
"네...네. 이 정도면 다 되었네요."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손에 들고 즐기는 종류도 있고.. 더 묻으면 너무 빽빽할 테니 말입니다. 라고 말하며 불 붙일까요? 라고 가볍게 묻습니다. 지한이는 편하겠네. 동시에 펑펑 터지게 할 수도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