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경찰을 개 먹이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는 무표정과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무라 뻔뻔한 사람이어도 침묵으로 일관하면 오기가 생기는 법이다. 범죄자에게 통할 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대부는 3시간의 침묵 끝에 원하는 것을 털어내지 않았는가. 그는 한참이고 침묵하다 연우의 앞으로 슬쩍 나서려 했다. 한 손엔 나이키, 다른 손은 주머니. 불손한 태도 같았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그의 눈이 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연시민, 익스퍼, 터치 익스플로전..보자, 닿은 것을 폭발시킬 수 있는 능력이죠?"
그는 주머니에 있던 손을 뺐다.
"그 당시 엔진실로 간 사람은 당신과 박사님밖에 없었습니다. 박사님이 도착하셨을 때 엔진실은 폭발이 일어난 뒤였죠. 그리고 뭐라고 했더라?"
그리고 능숙하게 거짓말 한스푼. 라타토스크의 정체를 언급하지 않고, 의문을 느낀다면 그가 적어도 공범이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연쇄적인 폭발 이후로..그래, 용서못해. 다시는 배를 가지지 못하게...라고. 시인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저도 익스퍼고, 독심술사라 제 앞에서는 거짓말이 안 통해요."
익스퍼를 언급하는 것에 시민은 순간 움찔했다. 익스퍼와 익스파는 국가기밀이었고 철저하게 비밀로 숨겨진 것이었다. 그런만큼 그것을 언급하는 것에서 그는 그제야 상대방이 어떤 이들인지 알 수 있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당신들이...' 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것이 아주 살짝 들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이 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에 시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대로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듯 시민은 태연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기, 기다려주세요! 이건 함정이에요! 그러니까 정말로 수상한 사람은 따로 있다고요! 그래! 선장님! 선장님이 지하 2층에 쓰러진 거 보셨잖아요! 뒷통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러니까 선장님을 그렇게 내려친 이가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고요!!"
선장은 확실히 됫통수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은 것은 분명해보였으니 공격한 이가 수상한 이임은 분명해보였다.
"애초에 제가 이 배를 왜 침몰시킨다는거예요?!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이번 논거는 선장을 공격한 이가 수상하다 + 자신에겐 동기가 없다. 랍니다! 12시 45분까지!
하나하나 반론을 하는 것에 시민은 입술을 꽉 깨물고 살벌한 눈빛을 보였다. 허나 아직은 매너를 지키겠다는 듯 그는 숨을 약하게 내쉬면서 다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그건 지금까지 '신'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태도였다.
"하지만, 하지만.. 그 덤벨이 지하 2층에 있었습니까?! 당신도 봤잖아요! 지하 2층에서 제가 선장님을 깨우려고 한 것을! 당시 지하 2층은 철판으로 잠겨있었어요! 덤벨은 지하 1층에 있었을텐데 제가 무슨 수로 지하 1층으로 갔다는거죠?! 그리고 하나 더!!"
이어 그는 퍼디난드를 바라보면서 검지로 가리켰다. 그리고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아까 엔진실로 제가 갔다고 했는데 그걸 어떻게 알죠?! 박사님이 거기로 갔으니 박사님이 거기서 폭발시켰을지도 모르죠! 박사님이니까 이것저것 가지고 있을 거 아니에요! 제가 정말로 그 당시에 거기에 있다는 증거가 있나요?! 말해두는데 전 박사님과 접촉한 적 한 번도 없거든요?! 박사님이 상어에게 물려서..돌아가셨다고는 들었는데 그 박사님이 제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했나요? 그럴리가 없지요! 왜냐면 저는 박사님과 접촉한 적이 한 번도 없고 박사님도 제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알리 없을테니까!!"
/자! 이번이 마지막! 자신은 지하 1층으로 갈 수 없었다. 그리고.. 엔진실에 정말로 그가 있었는가라는 명확한 물증! 둘 다 잘 생각해보면 있어요! 특히 후자는 분명히 여러분들은 그 물증을 목격했어요! 읽은게 아니라 눈으로! 그게 뭔지는..생각해봐야겠지만요! 1시 20분까지!
살벌한 눈빛에 그는 "신은 뒤졌는데 빌어봐야 어디에 쓰나."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들으라고 한 소리가 맞았다.
"카드키에 누구 지문이 있을까 궁금해지네. 개폐는 카드키 없이는 불가능한데, 대가리 쳐놓고 숨겨놓으면 누가 몰라?"
순간 그의 동공이 고양이처럼 훅 커졌다. 사냥 직전의 고양이처럼 훅 커지고 새하얀 특유의 동공으로 시민을 응시하던 그가 입술을 벙긋거렸다.
"그리고 손 내리거나 얌전히 두세요. 제가 원래 하던 일이 당신같은 용의자가 손 올리면 총 꺼내는 줄 알고 바로 대응사격 해서 사살했던 게 원래 하던 일이라 서로 조심하는게 좋을 겁니다."
하여튼 지는 일 없으려는 잼민이 기질을 누가 말리랴.
"제가 방금 전에 박사님은 폭발된 이후에 도착했다 확실하게 말씀드렸을 텐데 그새 잊었습니까? 박사님 뒤통수에 둔기로 폭행한 흔적이 있고, 마침 발견된 덤벨은 신기하게도 양쪽이 다 난리네요. 진짜 신기하지. 원래 사람이 둔기로 사람을 폭행하면 한쪽 면으로 때리는데 양쪽으로 팼다는 건.."
그제야 그가 눈 한번 게슴츠레 떠보이고 안타깝단 양 눈꼬리 끌어내린다.
"혈흔과 지문, 그리고 박사님 손에서 발견된 다른 사람의 혈흔을 대조해보면 될까요. 아니면 제가 사이코메트리 능력자니 여기서 한번 현장감식 진행해봐요? 연우 씨, 덤벨 좀 주시겠어요?"
마지막 수다. 악수일지, 아니면 체크메이트일지. 그는 태연히 종알거리며 진짜로 덤벨에 손을 대려는 것처럼 굴었다. 안 그럴거지만.
만약 이후 누군가가 그의 바지 밑단을 들어올리면 왼쪽 다리에 피가 연하게 흐른 자국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박사가 넘어지면서 마지막 발악으로 팔을 휘두르다 긁힌 것일까? 어느쪽이건 손가락에 묻어있는 혈흔이나 덤벨을 조사해보면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는 명백할 것이다. 이어 시민은 고개를 푹 아래로 숙였다.
"뭐가 잘못되었다는거야? 그런 선장 따위는 다시는 배를 몰면 안돼. 그런 갑질이나 벌이는 선장 따위가 모는 배 따위가 행복할리가 없잖아!! 오늘도 마찬가지야!! 옷깃이 조금 구겨졌다는 이유로 파티에도 부르지 않고... 하지만 덕분에 이런저런 계획을 잘 짤 수 있었어. 배를 침몰시키고 선장도 기절시켜서 잠수모드로 돌입할 수 없게 해서 이 선장이 모는 배는 안정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줄 생각이었어!! 하지만 가장 먼저 엔진을 터트렸을 때 하필 그 박사가 들어오는 바람에!! 일단 기절만 시켜뒀는데 하필 운 나쁘게 갑자기 상어가 들어올게 뭐야. ...그래. 죽일 생각은 없었어!! 모든 것은 불행한 사고였어!!"
결국엔 배를 침몰시켜서 선장의 항해능력을 의심받게 해서 다시는 배를 얻지 못하고, 선장으로서 행동할 수 없게 만들려는 것. 아무래도 그것이 이 모든 범행의 동기였던 모양이었다.
이어 그는 높게 손을 위로 들었다. 뒤이어 소매가 살짝 내려가며 왼쪽 손에 붉은색 보석이 박혀있는 팔찌를 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저에게 힘을 준 신이시여!! 지금 여기서 저들을 수장시킬테니 저를 지켜보십시오!! 당신이 명한대로 절대로 붙잡히지 않겠습니다!!"
이어 그는 손을 아래로 내리려고 했다. 이대로 보트를 터트려서 위그드라실 멤버를 모두 수장시킬 생각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