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차 캐묻지 않은 질문에 티르가 답을 해주어도, 그녀는 그것을 들은 둥 마는 둥 해보였다. 먹느라 정신이 없어서 못 들은 것처럼. 멍하니 내리깐 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평소의 눈이었겠지만, 정말로 그랬을까. 꼭 흘러들어가는 의식 만이 그녀의 생각을 알려준다 할 순 없으니.
그래도 술집을 나가며 졸리다고 생각한 건 진심이었다. 아니, 본능이라고 해야 하나. 어중간한 포만감과 애매한 술기운이었지만 그녀의 느근한 정신을 더욱 노곤히 풀어지게 하기엔 충분했다. 잠깐이지만 티르가 같이 있다는 것도 잊고 마을을 나가기 위해 걸어가다가, 어깨를 건드리는 손길에 걸음이 지익 하고 끌리며 멈춰선다.
멈춘 김에 느릿하게 하품을 한 그녀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여 뒤를 보았다. 뒤에 서 있는 티르를 보고, 아, 하는 소리를 내는 걸 보니 그가 같이 있다는게 다시 생각난 듯하다. 맞다, 있었지, 하고 중얼거리는 말은 제가 그를 깜빡한 걸 숨기려는 기색이 없어보이고.
"...그러며언..."
그를 떠올린 후에야 그가 한 말을 곱씹어 생각한 그녀는 느릿느릿 몸을 돌려 서서 그에게 팔을 뻗어 붙잡으려고 했다. 그냥 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허리를 둘러 안고서 그에게 푸욱 기대려고까지 했다. 도중에 막았어도 고집스럽게 움직여 기어코 옷자락이나마 손에 쥐었을거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잠들 듯이 눈을 깜빡거리며 중얼거린다.
"..투기장... 어딘지.. 잘.. 기억.. 안 나는데..."
그러니까... 까지 중얼거리더니 대뜸 티르와 함께 이동한다. 어디 영 이상한 곳으로 떨어지는거 아닌가 하는 불안이 무색하게, 투기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으로 나타나진다. 가는 길목 쯤 될까.
"...이제... 무리..."
이동 직후 그 한마디를 남긴 그녀는 끈이 떨어진 것처럼 몸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잠에 빠져드는 듯 했다. 그 와중에 그를 잡은 손은 어째서인가 놓지 않았을거다.
조용한 시안의 무의식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번 만남의 발단이 그녀의 무의식이 흘러들어오는 것이 짜증나서인 것과는 전혀 반대인 모순적인 감각이었다. 사실 그것은 어느정도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의식이 흘러들어올 때는 적어도 시안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녀가 아무런 의식도 흘려보내주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할지 도무지 예측을 할 수 없었으니까.
...사실 그렇게 수다스럽던 의식이 뚝 끊겨서 불안한 탓도 있었다. 티르는 멍한 눈동자의 시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우면서, 여전히 읽을 수 없었다.
"어지간히도 졸린가 보구나."
자신이 있다는 것도 까먹은 것을 보면 꽤나 졸린 듯 싶었다. 티르는 아, 하는 소리를 내는 시안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자신을 까먹었다 하더라도 큰 감흥은 없었다. 이전에 한번 겪어본 적 있었으니. 시안의 팔이 허리를 두르며 그녀가 자신에게 푹 기대자 티르는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역시 거리감이 이상하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째서인지 한쪽 팔을 들어 그녀의 뒷머리를 누르더니 품에 가볍게 파묻으려 했지. 이것도 시안에게 감화된 것일까... 근심이 하나 더 늘었다.
...그런데 혹시나 이상한 곳으로 텔레포트 하는 건 아니겠지?
중얼거리는 말을 얼핏 들은 티르는 그녀를 제지할까 고민했지만, 다행이도 도착한 위치는 투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인간의 도시 한복판에 떨어진다는 최악의 상상도 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지.
"어이... 잠들었나."
그대로 기절해버린 시안을 내려다보았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기절한 상태에서도 자신의 허리를 놓아주지 않은 시안이 눈에 띄었다. 티르는 시안의 뒷머리를 누르던 손을 살짝 움찔거리더니, 그대로 몇번 위아래로 움직이며 그녀를 쓰다듬어주었다.
"하루동안 꽤나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 당연하겠지. 수고했다, 시아나."
티르는 쓰다듬을 멈추고는 양 팔을 시안의 허리에 둘렀다. 이윽고 그의 등 뒤에서 거대한 강철날개 한 쌍이 펼쳐졌고, 그는 시아나를 안아든 채로 자신의 투기장으로 향했다. 저번처럼 시안을 응접실의 소파에 눕혀주고 이불을 덮어준 다음, 옆에서 잠깐동안 시안을 지켜보는 티르였다. 아마 그가 나갈 일이 생길 때까지, 티르 역시 그녀의 옆에서 잠시간 눈을 붙이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