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나의 말에 그는 눈매를 살짝 좁히면서 그녀의 손을 주시했다. 혹시라도 그 손을 휙 잡아당긴다면 끊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별로 기꺼운 결과가 아닐테니까.
"마족이 제멋대로인게 뭐가 이상하지?"
제멋대로라는 표현만큼 그를 잘 표현하는 것도 없었다. 그러니 반박하지 못 하고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겠지. 그렇게 티르가 시안의 손목을 잡고, 시안이 연결된 줄을 잡은 애매한 상황 속에서 대치하던 와중 그녀가 입을 떼자 얌전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들려온 말은- 그것은 통신이 아닌 사실 일반적인 의사를 전달하는 마법에 불과했다는 것. 그렇기에 저절로 의식이 흘러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 이야기를 들은 티르는 가는 실을 한번 바라보았다. 언듯 연결되어있는 듯한 줄은 사실상 일방통행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째서 텔레파시가 아닌 이런 마법을 가지고 있었나.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당장은 질문을 삼켰다.
"내겐 그렇게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만..."
너무나 쉽게 말하는 모습에 그의 목소리 역시 가라앉았다. 그의 경우에는, 좀 더 차분해진 느낌으로. 팔을 당겨 빼내려는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티르는 시안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프게 쥐고 있던 것은 아니었던가. 시안이 빼내려고 해도 이상하리만치 그의 몸은 꿈쩍 안 하던 것에 가까웠다.
시안을 바라보려다가 어차피 시선이 얽힐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그에게 있어 이 편이 더 생각을 정리하기에 편했으니까. 잠깐 동안의 침묵이 이어지고, 그의 눈이 반쯤 떠지며 입이 열렸다.
"난 아직 네가 필요하다, 시아나. 그렇기에 네가 투기장에 오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실을 끊으려 하는 것도 원하지 않아."
"...내 의견을 너무 밀어붙였던 것에 대해 사과하겠다. 부디 실을 거두어주지 않겠나."
티르는 쥐었던 손목에서 힘을 서서히 빼더니 그대로 풀어주었다. 그러고는 평소와는 달리 조용한 눈으로 부탁했다. 그에게 있어 사과라는 것도, 부탁이라는 것도, 매우 생소한 일이었다. 다만 그렇다 해서 하지 못 할 것은 아니었다. 조용히 손을 놔준 뒤, 그는 시안을 바라볼 뿐 별 말은 더 하지 않았다. 결국 결정은 그녀가 하는 것이었기에.
그녀의 얘기가 끝나고, 침묵이 흘렀다. 티르가 말을 삼킨 것처럼 그녀도 자신의 얘기에 그 이상의 설명을 더하지 않았다. 판단은 그에게 맡기겠다는 걸까. 아무래도 좋은 걸까. 분명 실은 연결되어 있지만 그녀의 의식은 전혀 흘러가지 않는다. 피한 시선처럼,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았다.
가지 않겠다. 너무나 가볍게 담은 말에 또다시 둘의 입은 다물렸다. 그렇다고 말 이상으로 행동이 있었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녀는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티르가 놔주지 않았기에 한번 이상의 시도는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시간이 지나갔다. 말도, 생각도 없는 완전한 침묵이었다.
이어지는 침묵을 깬 건 그의 목소리였다.
"......"
여전히 시선을 주진 않았지만 제대로 듣고 있었다. 사과하는 말도 부탁하는 것도, 전부 들었다. 그 뒤에 천천히 손목을 쥔 손이 물러나며 그녀의 팔이 자유가 되자 느릿하게 손을 내려 제 무릎 위에 얹는다. 그녀가 느슨한 실을 잠시 응시하며 눈을 감았을 때, 찰나의 생각이 티르에게 흘러들어갔다.
'...믿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단편적인 의식이 지나가고나자 그녀도 결정을 마친 듯 눈을 떴다. 그리고 쥐었던 손을 풀어 실을 거두었다. 그녀의 손에서 풀려난 실이 허공으로 스며들듯 사라지고, 짧게 한숨을 쉰 그녀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네가, 필요하다고 한 거니까... 다시 불평하지 마. 그 땐 그냥 끊을거야..."
그리고 그녀는 느릿느릿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박이는 걸음이 티르를 지나쳐 호수 쪽으로 간다. 걸으면서, 지나칠 떼에도 그녀는 티르를 보지 않았다. 없는 사람인 양 스쳐갔다.
기껏해야 발목이나 적실까 싶게 남은 호수를 향해 그녀가 한 손을 뻗고 주문을 읊자, 사방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와 다시 호수를 채웠다. 겉보기엔 그녀가 첨벙이던 호수와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날아간 물고기들은 어쩔 수 없었는지, 그저 물만 가득한 호수를 보고 다시 작은 한숨을 내쉰다. 그러더니 티르를 두고 돌아서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