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케이시> 피향이 나는 곳은 다름 아닌 엔진실 쪽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런 곳은 보통 잠겨져있는 것이 원칙이겠으나 문이 열려있었다. 아니. 잘 보면 문 틈 사이로 물이 줄줄 세여들어오고 있었다. 만약 문을 열고 안으롣 들어선다면 그 너머에서 보이는 것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문을 앞으로 당겨서 열자 그 안에 차 있는 물이 강하게 흘러나왔고 두 사람의 바지를 적셨을 것이다. 그리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신나영 박사가 떠내려왔을 것이다. 이미 목숨을 잃었는지 숨도 쉬지 않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그녀의 몸을 잘 살펴보면 날카로운 이빨자국에 여기저기 물렸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면 거의 대부분이 물에 잠겨있는 엔진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바닷물이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벽 여기저기에 뚫려있었으며 엔진은 산산조각이 나서, 마치 누가 '폭발'시킨 것처럼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벽의 구멍 역시 절대 일반적인 망치나 연장으로 부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멍의 단면을 보면 알 수 있겠으나 누군가가 폭발로 터트린 것이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피로 어느 정도 젖어있는 바닷물 속에서 특유의 지느러미가 빠르게 흥분한듯 빠르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화연> -3층의 번호 말인가요? 3층의 번호는 152912입니다! 2층도 막혀있간 했는데 지하 1층은 어떻게든 이쪽에서 열었는데 지하 2층은 선장님의 카드가 필요해서..지금 이쪽에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여기서 찍거나 2층 리더기에서 카드를 긁어야 하는데..대체 선장님은 어디에 계신거야! 아우!!
-야. 그런데 왜 폭죽이 그대로야? 아까 한 번 폭죽 터지지 않았냐?
-네? 아. 몇 발 터졌었는데, 그대로예요?
뭔가 그런 내용의 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고 있었다.
<연우> 3층 객실에서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몸을 파들파들 떨고 있는 승객들이 많았다. 완전히 겁에 질렸는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파들파들 떠는 이들이 한가득이었고 4층에서 올라온 이들은 3층의 철판을 보고 박살낼는 듯, 손에 피가 나도록 두들기는 이들도 있었다.
화연은 수화기 너머 소리를 주의깊게 들었다. 이상했다. 이 사람들 왜 이리 침착한걸까? 물론 철판으로 물을 막았다. 아마 승객들이 갑판으로 간다면 무사히 항구에 도착하고 배는 수리를 받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배가 침몰할 위기였는 데 한가롭게 폭죽 개수나 세고 있는걸까?
화연은 일단 수화기로 2층 철문을 파괴할 생각이며 열린 철판을 다시 닫을 수 있는 것인지 2층 문을 파괴할 경우 배가 위험에 빠질 우려가 있냐 물었다.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그녀는 박사를 구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그녀라도 죽은 사람을 소생하는 능력은 없었다. 애초에 그건 치유가 아니라 강령술에 해당하는 영역이라고.
"확실해, 자기? 그러다가 떼거지로 몰려오면 어쩌려고?"
피 냄새를 맡은 상어가 우르르 몰려오면 이쪽은 잘 차려진 뷔페 신세로 전락하리라.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제가 맨손으로 상어를 두드려 팰 수도 없는 노릇이고. 총은... 물을 먹어서 제대로 작동은 하려나 모르겠다. 젠장, 재발급받으려면 이래저래 귀찮은데.
<설화, 케이시> 상어를 쫓아내보겠다는 작전 하에 각자가 움직였고 설화는 상어를 유인하려는 듯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려고 했다. 허나 피 냄새에 이끌려야 하는 상어는 조금도 이끌리지 않았다. 오히려 유유자적 헤엄치다 구멍이 있는 곳으로 쏙 빠져나가고 넓은 바다로 향했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상당히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다. 상어의 일반적인 행동원칙과도 전혀 맞지 않았고. 그것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각자의 자유였다.
한편 구멍을 통해 바닷물은 계속 들어오고 있었으나 이상하게 물이 더 차오르는 느낌은 아니었다. 마치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도 하듯 물이 급격하고 빠르게 차오르는 느낌은 절대 아니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박사를 만약 좀 더 자세히 봤다면 박사의 손톱 끝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손톱 부위에는 조금의 상처도 남아있지 않았다.
<화연> -파괴..라고 해도 그거 파괴할 순 있긴 한가요? -파괴해도 문만 박살낼 수 있다면 크게 타격이 오진 않을 거예요! -일단 저희는 지하 1층에서 고무보트들을 꺼내고 있거든요?! 수고해주세요!!
아무래도 고무보트들을 꺼내다보니 자연히 폭죽이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만약 폭죽 상자가 열리지 않았다면 폭죽이 쓰였는지 안 쓰였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을테니까.
<연우> -아. 연우 씨. 일단 상황은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어 작긴 하지만 소라와 어떻게든 통신은 연결된 모양이었다. 허나 정상적인 루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비상 통신이었는지 소라의 목소리는 꽤 작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목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일단 그 배의 선장은 익스퍼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게 중요한데...프로키온의 말에 따르면 그 배 전체에서 S급 익스파 반응이 나오고 있다는 것 같아요. 다만 그게 어디에 있는진 알 수 없지만요. 그리고... 일단 기록에 따르면 배에 물이 들어오기 몇 분 전, A급 익스파 반응도 여럿 터져나왔다고 해요. 타이밍에 따르면 아마도 이게 배를 침몰시킨 것과 연관이 있어보이지만...역시 뭔지는 알 수 없어요.
일단 거기까지 파악하는 게 고작이라는 듯 소라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한편 지하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열렸고 이내 그 위로 올라가면 머리를 맞았는지 뒷통수에서 피를 흘리고 기절해있는 선장의 모습과 바로 그 옆에서 선장을 깨우려는 듯, 심폐소생술을 하는지 가슴뼈 부분을 꾹꾹 누르고 있는 남자 승무원 한 명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려하던 상황이 생기지 않았음을 다행히 여겨야 할까, 아니면 기이한 행태를 보이는 상어를 보며 자연의 신비에 감탄해야 하는 걸까. 어느 쪽이던간에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모든 상어가 죠스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보통 피 냄새를 맡으면 극도로 흥분한다고 하지 않던가?
마침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열렸기에 우선 그쪽으로 향했다. 2층에 도달하자마자 발견한 건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며 누운 선장이었다. 대체 어딜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구만. 혀를 차며 심폐소생술 중인 승무원 옆으로 몸을 숙였다.
"잠깐 비켜 봐요. 내가 볼 테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티나지 않게 익스파를 쓰는 게 가능할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곧 지하 4층에서 벌어졌던 소동을 기억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치유 능력 하나쯤 더 추가된다고 티도 안 나겠지. 오히려 이목은 훨씬 덜 집중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선장의 부상을 치료하려고 시도했다. ...나중에 전부 기억 지워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