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튼 말이 통했다. 마리안은 안심한 듯 살짝 입꼬리를 올리다 박장대소하는 소녀를 보고 구경꾼의 목소리를 들으며 무표정으로 돌렸다. 삐진 게 아니라 평소의 표정이다.
'언제나 술병을 무기로 쓰는 건 아니니까요? 술병 말고 다른 것도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라고, 입 밖으로 낼 순 없지만. 그나저나, 신의 시점으로는 저런 노인도 한낱 꼬마에 불과하게 보이는 것인가. 라는 걸 떠올리며. 그리고 소녀에게 대답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 진심이 통했군요."
안 통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았을까. 마리안은 소녀가 물건을 늘어놓는 걸 도우려다 멈췄다. 알아서 하고 있는데 물건에 괜히 손댈 필요는 없다. 말마따나, 멀대 같은 모습이었다. 잘도 저렇게 홍보하는구나, 하고 오래된 기억을 살짝 파헤치고 있었을 때쯤.
"...알겠습니다."
일단 마리안도 엄지를 척 치켜든다. 뭔가 폰지 사기에 가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물건에 문제는 없어 보이니 할 말도 없고. 그나저나, 홍보를 도와야 하는 것인가. 주의깊게 본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전생'이나 현생이나 본 적은 있던 것 같은데... 그걸, 자신이 해야 한다니. 마리안은 자신 없어졌다. 그리고 고민했다. 용기의 물약을 마실까? ...장사 망친다고 빼앗기면 어떡하나. 빠르게 포기했다.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바로 잡는 수밖에 없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순무라서 행복합니다. 무가 놀랐을때 무슨 말을 하는지 아세요? 바로 "무순 일이고" 입니다. 순무 말이지? 언제나 내 수프에 들어가주었어... 순무... 나, 추워.. 어이 순무, 아침부터 왜 이리 보라색이야? 음~ 아버님 냉장고에 순무 한 자루 놔드려야겠어요! 홍보를 맡겨도 괜찮겠어? 나는 수치심을 모르는 사제인데.
"자, 이 순무로 할 거 같으면 절대 맛없고 단단하기만 한 평소 먹는 그런 순무가 아닙니다! 이 빨간색과 보라색이 오묘~하게 섞인 색상 보이시죠? 바로 이게 신선하고 품질 좋은 순무의 특징입니다. 음식에 넣으면 은은~하게 단맛이 우러나고 수프 하나 끓이면 입맛 없을 때도 빵 한 덩어리 뚝딱은 기본이죠! 또 붉은 빛깔이 식욕 돋구기가 그만이 아닙니까. 잎과 함께 데쳐 먹어도 좋고, 갈아서 먹을 땐 배 아플 때도 좋고, 약이 다 어디 있겠습니까. 맛있는 음식이 바로 약이라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날마다 오는 게 아니에요,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아가씨표 순무랍니다. 오늘 아니면 또 어디서 이런 순무 만나 보겠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알차게 영양분이 쌓이는 순무 같은 여러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오늘 한정! 특가! 순무! 이런 가격 어디서 못 만나 봅니다! 오직 오늘뿐입니다!"
너무 귀가 아프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크게, 많이 말해도 발음은 최대한 또박또박하게 유지해야 한다. 마리안이 이렇게 많이 말해본 적이 없다 보니 중간중간 발음이 씹히는 데도 있었지만 대충 뭉개가며... 제일 중요한 것. 진짜 이 사람은 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듯한... 혼신의 미소...!
그녀가 당신의 이야기와, 미소에 화답하듯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더이상 발언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당신의 의중을 이해하고, 침묵으로 대답하는것 같습니다.
" 아아, 주인님. 위대한 혈월의 여대공이시여, 저의 주인님이시여. 이 프릴이 당신의 총애를 받아 너무나도 감격스러울 따름이옵니다. 허나, 이 프릴, 당신의 종자된 자로써 감히 직언을 올리자면, 저는 주인님의 바람에 능히 응할 수 있사옵니다. 당신이 죽음을 바란다면 그 역시 기뻐 마지 않은 일이며, 이 보잘것 없는 육체의 안정을 바란다면 그 역시 감사히 따를수 있다는 명백한 ' 사실 ' 을 말씀드리며, 그 총의 기쁘게 받겠사옵니다. "
프릴은 기쁜 목소리로, 노래하듯 긴 말을 마친 뒤에, 꾸벅 머리를 조아리며 당신에게 예를 표합니다. 어쩐지 눈가에 하트가 살짝 엿보였던건 기분탓일까요? 또한 이어지는 당신의 말에, 그녀들 중 몇몇은 치마를 살짝 들어올리며 대답을 대신하곤, 검은 안개로 변해 사라집니다...
그리고 남은 메이드중, 처음에 말을 올렸던 그녀가 다시 한번 입을 엽니다.
" 주인님, 그녀들이 정보를 알아올때까진 시간이 걸릴겁니다. 주인님께 남은, 무한한 시간동안, 그것을 기다리는것도 하나의 여흥이겠지만... 지루하시진 않으십니까? 무언가 의중이 있으시다면 부디 바라는 뜻을 이루소서. 저희는 그에 따르겠나이다. "
그리고는 프릴도 손을 들어 발언하기 시작합니다.
" 그렇습니다. 아아, 주인님. 이 프릴도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겠습니다. 무엇을 바라시옵니까? 말씀만 하시옵소서. 애석하게도, 다른 정보를 바라신다면, 저희는 이 이상 알수 있는 일이 없사옵니다. 실례임을 아나 가벼운 얘기로 잠시 흥을 돋구어 드리자면... 이 프릴의 요리솜씨가 조금 늘었나이다. 이젠 제 요리를 먹은 오크 백마리 중 두마리나 살아남사옵니다. "
" 후훗, 프릴... 하지만 거의 빈사상태였잖아요? "
" 앗, 그건 비밀로 하기로 했었는데에... "
그녀들은 즐거운듯 농담을 주고받는군요. 그리고 그녀들은 여실히 당신의 말을, 혹은 행동을 기다립니다.
>>403
" 쯧. 어서 출발이나 합시다. 시간이 없소. "
그가 말을 하며, 눈치껏 사내를 상대하려 다가가는 단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에, 그녀가 귀를 쫑긋 세웁니다.
" ...계획? 무슨 계획. 단장, 나는 싫어. 노예라니... 나는 수인이라고. 알잖아. "
그녀는 조금 진정한것 같지만, 여전히 화가 나 보이는군요.
>>405
당신의 꼬리가 가볍게 살랑이는걸 본 늙은 드워프가 크게 웃습니다. 그리고 힘 할범이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 좋아, 그러면 애송아. 첫 번째 과제를 내겠다. 여기서 쭉 북쪽으로 올라가면, 드워프 마법 학교가 나올거다. 거기 가서 인정을 받고 오거라. 기한은 일 년이다. 뭐하느냐? 시간은 금이다, 빨리 출발하지 않고서. "
그리고는 부드럽게 웃어보입니다.
" 네가 성장해서 돌아오길 기다리겠다. "
" 어이, 장로! 이야기가 너무 급작스럽지 않은가. "
" 무슨 소리! 알려줄건 다 알려줬고, 어차피 이런건 몸으로 직접, 내 가르침을 되새기며 경험을 쌓아야 하는걸세. 정말 자네도 은퇴할때가 다 됐구만! "
" 에잉, 쯧쯧쯧... 어이. 이건 여비로 챙겨가게. "
그리고 늙은 드워프가 당신의 손에 금화 두장, 그리고 나침반을 쥐어줍니다.
" 지도같은건 의지하지 말고, 발 닿는 대로 쭉 북쪽으로 물어물어 가보게. 그게 다 경험이다, 이말이야. 이거, 젊을 적에 대광산을 파냈던 일이 생각나는구만! "
>>406
" 음, 알겠어요. 이 맛있는 술을 못 마신다니, 참 아쉽네. 나나 실컷 마셔야지. "
그녀는 곧 테이블에, 당신의 앞에 따듯한 허브티 한잔을 내밀고, 똑똑똑 책상을 두드려 여기에 허브티가 있다고 넌지시 알려줍니다. 그리고는... 왜 뭔갈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뭔갈 벌컥벌컥 들이키는 소리가 날까요?
" 캬, 내가 이 맛에 여기서 살지. 화주는 최고야. 그 난쟁이 놈들이 좋아하는 술이란것만 빼면 흠잡을데가 없는데. "
말 끝마다 드워프 욕을 하는군요. 조금 거북해질 즈음에, 그녀가 말문을 엽니다.
" 뭐, 이것도 인연인데, 제 이야기나 할까요? 저는 얼음 마녀에요. 그냥 마법사가 아니라 마녀. 네, 맞아요. 나쁜년이다 이거죠. 아, 걱정말아요. 그쪽한테 뭘 할건 아니니까. 여튼 왜 나쁜년이 됐느냐? 그것도 비밀이에요. 그럼 여기서 뭘 하느냐? 얼음 마법을 연구중이죠. 혹시 알고 있나요? 얼음 드래곤만이 사용이 가능하다는 ' 종말 ' ... 저는 그걸 연구중이에요. 모든 걸 얼려버리는, 아름다운 죽음. 멋지지 않나요? "
그녀가 다시 술을 벌컥벌컥 들이킵니다. 독한 술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사실 이 여자, 드워프가 아닐까요..?
>>408
당신은 제법 먹음직스러운 고기 요리를 파는 곳에 찾아가, 맛있어보이는 고기 요리를 주문합니다. 넉살 좋아보이는 아주머니가 싱긋 웃으며 당신을 반깁니다.
" 어우, 아가씨. 수도 사람 아냐? 응? 이렇게 참하게 생겼는데, 운까지 좋다니. 지금은 축제중이야! 곧 황제폐하의 탄생일이거든. 그래서 다들 힘내서 성대한 축제를 준비중이지. 나흘 뒤에 황제폐하의 탄생일이 오면, 그땐 이 도시를 불꽃놀이로 수놓게 될거야. 자아, 내가 듬뿍 담았으니까 잔뜩 먹고! 홍보도 할거면 해줘. 그만큼 맛있으니까. "
그녀가 싱긋 웃으며 당신에게 종이봉투 가득 담긴, 향기가 좋아보이는 꼬치구이를 건네는데...
툭.
당신의 등을 누군가가 쳐서, 그만 요리가 떨어지고 맙니다.
" 야!!! 이년아! 거기 안서? 어휴, 정말... 축제는 다 좋은데 저런 무뢰한들이 꼭 분위기를 망친다니까. 미안해, 금방 새로 준비해줄게. "
그런데,
당신은 묘한 위화감을 느낍니다. 사람에게서 나서는 안되는 향. 당신의 코 끝을 간질이는, 죽음의 향기.
그 누군가는 천천히 인파 속으로 섞여들어가고 있습니다....
메인 퀘스트 - 빛의 드래곤, 시작 조건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 조우 " 편, 시작하시겠습니까?
노점 주인인 아주머니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허나 그건 그녀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수많은 말들은 한쪽 귀로 들어가 반대쪽 귀로 흘러나가고, 중요한 것만 뇌리에 남겨지니.
수도의 떠들썩함은 역시 축제였다. 그것도 황제의 탄신일이라. 본식은 나흘 뒤인데 벌써부터 이렇다니. 그녀는 얼굴도 모르는 황제의 치세가 제법 괜찮은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시끌벅적한 축제 같은 건 열릴 리가 없다. 그건 그렇고 이제 그녀가 주문한 꼬치구이가 나오려는 듯 해 받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아..."
봉투를 잡기 전에 누군가 치는 바람에 아까운 요리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러나 그녀는 요리가 아닌 그 치고 지나간 사람 쪽을 보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가 어떤 요리보다 허기를 돋구는 향이었기 때문에.
위를 비트는 듯한 공복이 그녀를 부추긴다. 저걸 따라가야 한다고.
"됐어..."
아주머니에게 금화 한닢을 넘겨주고 서둘러 몸을 돌린다. 이 향이 끊기기 전에, 저 사람의 자취가 끊기기 전에 따라가야 했다. 그녀는 마나를 실처럼 늘어뜨려 그 사람의 옷 끝에 거는 것을 시도했다. 이러면 보이지 않아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걸음을 조금 서둘러 함께 인파 사이로 섞인다.
얌전하고 침착하게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상태로 엘프의 말에 대답하던 제니퍼가 책상을 두드려서 위치를 알려주는 엘프를 향해 감사함을 담아 담백하게 목례를 하고 양손으로 조심스레 컵을 감싸쥐었다. 춥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확실히 춥기는 했나봐. 허브티를 마실 때쯤 다시 들려오는 드워프들을 향한 적나라한 적대가 담긴 욕에 그 어떤 표정도 짓지 않은 침착하고 조용한 표정을 짓고 제니퍼는 허브티를 마셨다. 거북하게 느껴지는 욕설을 따뜻한 허브티와 오두막의 온기에 실어서 가라앉힌다.
"...저, 마법사와 마녀의 차이점이 뭐길래 스스로를 나쁜 사람, 아니 나쁜 엘프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엘프가 나쁘다고 해봤자 그렇게 크게 엇나갈 것 같지는 않은데. 제니퍼는 독한 술냄새를 허브티에서 풍기는 향기로 커버하기 위해서 잔을 코앞 가까이 가져와버렸다. 잠시 그러고 있던 제니퍼는 감고있는 눈꺼풀이 간지럽기라도 한지, 보기 나쁘지 않을 만큼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