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의 복수가 성공적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이때다 싶어 달려드는 짐승의 모습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각시는 이런 위험요소를 늘 안고 다녔는데 정말 불안함 하나 없었을까? 대답을 들을 수는 없지만 뼈 씹는 소리로 미루어 보아 짐승에게 밥을 주는 것이 잘못이 아니지만 그 대가를 몸으로 잘 깨달았을 것 같다. 그는 마법부가 다가와도 가만히 그 자리에서 한 생명이 꺼져 고깃덩이로 전락하는 장면을 바라봤다. 짐승이 제압되는 장면도, 마법부 여럿이 달려들어 신비한 동물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장면도. 그 사이에서 희미하게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점점 커져 그의 위로 그림자가 진다. 세스트럴 한마리가 우두커니 서 그를 내려다본다. 그는 그럼에도 손 한번 뻗지 않았다. 죽음을 상징하는 신비한 동물은 그를 동정하듯 주둥이를 정수리에 한번 툭 얹고는 다시 뒤돌아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는 밀랍 인형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겨우 움직이는 순간은 당신이 날아들자 팔만 움직여 품에 안을 때 뿐이다. 몸을 부비자 엄지와 검지를 들어 눈가를 가려주려 했고, 다시 밀랍으로 정교하게 빚은 인형이 된다. 수습하는 과정까지 모조리 눈에 담고 나서야 후련할 것 같기 때문이다. 각시였던 육편 몇조각을 수습하던 마법부의 사람 중 입을 꿰맨 남성이 그를 발견하고 엎드려 절했다. 그는 됐다는 양 눈짓한다. 이윽고 미리 준비된 수습용 관에 육편을 담는 모습까지 모두 보고, 선비탈의 광소와 체포 장면까지 보고나서야 뒤를 돌아 교수를 볼 수 있었다.
"제가 이 자를 사랑하기에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당신의 존재를 인정했고, 교수에게 고했다.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그의 미소는 입가부터 시작돼 눈까지 퍼진다. 어두운 외양에 어울리지 않게 평온하며, 웃는 모습은 더이상 쎄하지 않다. 그렇게 순수하게 미소 짓는 그는 변했다. 단 한순간의 우연으로 만난 악연으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당신을 만난 뒤로 한번 포기했으나, 살아보고자 발악했기 때문이다. 앙상하다 못해 피골에 상접하던 몸은 점점 살이 붙어 지금은 앙상하여도 적당히 봐줄만한 정도가 되었고, 그와중에 키는 조금 더 컸다. 늘 헝클고 앞으로 쏟아 눈을 보이지 않던 머리는 바람결에 날려 두 눈을 온전히 드러냈다. 색이 다른 두 눈동자에서 투명한 물이 고여 한줄기 흐른다.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교수님께서 아무리 희생한다 하여도, 다른 사람이 희생한다 쳐도, 누군가 죽는다 해도 세상의 순리는 우리를 놔둘 생각이 없었기에 스스로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키고 싶다면 변해야만 했기에.."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차라리 이 정신을 놓아버린다면 편해지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더이상 그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뒷일이 두렵기에 그럴 수 없다. 그는 여전히 투명한 눈물을 흘리며 웃고있다. 그가 인생에서 첫 크루시오를 맞고 쓰러지던 날 보았던 백정처럼 순수하게 미소짓고 있으나 흐르는 눈물은 지금까지의 고난을 모두 담아 흐르고 떨어진다. 그가 입속말로 되내인다. "MA여. 당신이 원하던 것은 이것보다 더한 광기입니까." 하고는 한 걸음씩 앞으로 걷는다. 그리하다면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하며. 그는 계속 변할 것이다. 더한 광기를 바란다면 천천히 그 뜻을 이루겠으나 세상이 미쳤을 때 정상으로 남는 것도 진정 광기다. 혜향 교수의 바로 앞에 서 그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차마 교수님께서 목표로 하시었던, 평범한 삶을 살 학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못난 제자로 남겠으나 제 밑에 있을 자를 못난 제자로 만들진 아니할 터이니 이제 편히 쉬십시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당신을 어르고 달래며 나직히 눈 감는다. "발렌타인 말고. 부디 샬럿이라 불러줘." 하며 그 누구에게도 허락치 않은 미들네임을 알려주며.
우린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이곳에 살아있으며, 제법 인간을 좋아한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