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뇌를 통째로 끄집어내서 기름통에 넣고 튀기는 것처럼 아팠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레벨의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이전까지는 놀이에 불과했다는 말은 어쩌면 아예 허세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작열하는 스파크 속에서 그녀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애썼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째서 이곳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가.
...구하고 싶었잖아?
작은 목소리 하나가 속삭였다. 그래, 그녀에게는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구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납치당한 학생들을 구하고 싶었다. 목숨을 위협받는 동료들을 구하고 싶었다. 아직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이상 이곳에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이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든 범인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주 먼 옛날, 어느 작은 방에 갇혀 그러했던 것처럼.
멍한 너머로 당황한 듯한 범인의 말이 들려왔다. 물 속에 머리를 집어넣은 것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에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동료들을 구해야 해.
어떻게?
치유해야 해.
너무 멀어. 큐브 웨폰은 이미 잃었잖아.
그런 건 필요 없어.
동료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평소였다면 턱도 없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세상 살면서 듣고 싶은 것만 들어야 하는 줄 아나. 어린아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동정심은 들지 않고 괘씸함만 커진다. 어린 학생마저 끌어들이는 킹메이커에 대한 분노도. 케이시에 대한 공격 소리에 그는 무력하게,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네 실책이구나.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을 때. 그는 몸이 회복 되었음을 깨닫는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의 생각은 없다. 다행이라는 감정도, 분노도, 고통도 없다. 그는 달렸다. 미친듯이 앞으로 달렸다. 오로지 본능만으로 판단했고, 팔을 쭉 뻗었다. 특수부대는 폼이 아니라는 양 강한 악력으로 나리의 머리채를 덥썩 쥐려 했고, 가능하다면 휘어잡은 그대로 흔들듯 아래로 처박으려 하며 나리가 가진 가장 큰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려 했을 것이다.
탐지기에 감지되는 수치는 완연한 S급의 것. 암만 기계치래도 신도 이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여 죄는 고통 속에서도 신은 부드럽게 웃었다. 소불하 죄인을 당혹하게 만드는 일에는 톡톡히 성공한 셈이다.
"고작해봐야 같은 S급인데, 요외라고 꽁무니를 곧장 빼는 모습이 추잡한 싸움에 진 개와 진배없어 우스꽝스러워요. 금방까지의 거만은 어디로 갔나요?"
그리고 고통도 곧 지워졌다. 기회와도 같은 기적 속에서, 붉은 머리의 대원의 치유 능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신은 지체없이 돌진해 큐브웨폰을 나리에게 종으로 휘둘렀다. 날이 선득하게 선 탄토短刀다. 그러다 옥색 머리의 대원이 옆에서 하는 말에 아, 하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하는 말.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당신이 하는 말은 당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이것이 틀림이 없죠?"
케이시의 익스파에 의해 지배당하던 이들의 육체의 상처가 회복되고 기력이 다시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오버익스파로 인한 구속마저도 해체되었고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스파크에 명중했을지도 모르나 그 상처마저도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은 모두에게 신기한 체험일지도 모른다.
이어 연우는 다른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 패널을 깔아서 방어에 들어섰다. 이어 화연의 거대한 불꽃이 나리를 향해 날아왔다. 나리는 이를 빠득 갈며 손에 스파크를 모아 단번에 그것을 받아치듯 주먹을 휘둘렀다. 불꽃과 스파크는 강렬하게 충돌했으나 나리의 익스파가 조금 더 강해서인지 불꽃의 일부가 나리의 몸에 상처를 주긴 했으나 치명타는 주지 못하고 점점 그 크기가 줄어들며 이내 폭발했다. 허나 뒤이어 유진이 나타나서 큐브 웨폰을 이용해서 나리를 공격했다. 상처는 줄 수 없었으나 그에 상응하는 통증은 줄 수 있었기에 나리는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퍼디난드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았고 신은 미란다 원칙을 읊었다. 완벽한 체포의 조건이 이뤄졌으나 나리는 쉽게 잡힐 수 없다는 듯이 이를 빠드득 갈면서 이야기했다.
"웃기지 마. 웃기지 마!! 너희 따위에게, 너희 따위에게 체포될 것 같아?! 나는 나이트! 이름없는 수리와 니드호그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라타토스크의 나이트란 말이야!! 고작 너희 따위에게! 너희 따위에게! 스스로의 존재 가치도 모르는 너희 따위에게!!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의 오랜 염원을 반드시 이루게 할테니까..그러니까... 그렇게 보지 마. 더 열심히 할테니까..그럴테니까!!"
무엇을 본 것일까? 그녀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따. 뒤이어 뒤이어 나리의 전신에서 강한 스파크가 솟구쳤고 그녀는 퍼디난드의 손아귀를 뿌리치고 빠져나왔다. 이어 공중에 떠 있는 전류가 뭉쳐진 스파크를 바라보며 손짓했다.
"아버지를 배신한... 그 놈들 중 하나도 죽였고, 이놈들도 모두 지워버릴테니까 나를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아아아!!"
이내 스파크가 뭉쳐진 덩어리는 일제히 터졌고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무차별적으로 번개가 여기저기로 내리쳤다. 표적도 없이, 적도 아군도 없이 모든 것을 쓸어버리려는 듯이.. 그것은 추악한 발버둥이었다.
상처가 빠르게 회복 된다. 놀랍게도. 백발의 성별 가늠키 어혀운 대원이 미란다 법칙을 읊는 소리에 그제야 모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는다. 또 자제하지 못하고 폭력을 휘둘렀나 싶었지만 한두번일까. 과잉진압은 미리 허가를 받았으니 꿀릴 것도 없다. 그는 어느새 아문 상처를 보며 쓴 웃음을 한번 지어보이곤 발악하는 모습을 본다. 상대는 아이지만 범죄자. 사연이 있든 없든 범죄자에게 동정심을 느끼면 수사는 산으로 간다. 누군가는 이미 애타게 자식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고의로 벌인 범죄에 동정심을 느낄 필요는 없다.
"너, 이런 시선으로 보는 걸 무서워 하는구나. 그렇지?"
그는 내려다본다. 안타깝고 경멸하는 시선으로 뿌리친 학생을 쳐다보고 속으로 숫자를 거꾸로 센다. 난 할 수 있다. 리리가 알려준대로만 하면 된다. 범죄자에게 동정심도 느끼지 않고 늘 하던대로 진압하면 된다. 늘 그렇듯이.
"또 당하고 싶어? 이번엔 뭘 보고 싶어?"
벌레 보듯 쳐다본 그가 속삭이곤 추악한 발버둥에 몸을 날리며 스턴건을 겨눈다. 제발 기절해라. 이후 격발한다.
아버지라 함은 혈육인 아버지? 저들이 믿는 신을 서역의 어느 절대신을 칭하듯 부모처럼 높여 이르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설마...? 탄토로 벤 것이 금방이니 뿌리쳤대도 거리는 멀지 않을 테다. 어느 대원은 제 방어조차 포기하여 패널로 동료를 지키는 듯싶었고, 신은 능력을 펼쳐 '익스파와 전격의 영향'으로부터 모든 대원을 온전히 보호하고자 했다. S급 발끝에도 미치기 어려운 A급이라나 이만큼이면 정성이라도 보아 아무쪼록 피해 입지 않게 해주세요... 하는 이쪽 나름의 발악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리고 신은 큐브웨폰 대신 권총을 들어 죄인이 손짓한 손을 정확히 세 번 쏘려 했다.
"네에, 이제는 그 손이 움직이는 모양도 보기가 사납네요..."
더 추악해지기 전에 잡혀주는 편이 나리 양에게도 좋을지 몰라요. 하며 신이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접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