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호랑이다. 학원에 호랑이가 있다는 얘기는 못들어봤는데. 레오는 그 붉은 눈을 잠시간 응시하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 해보자 이거지..? "
그리곤 잠깐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곤 생각하고 집중했다. 지금의 자신의 모습과 변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 그 둘은 어디가 다르고 어디가 같은지, 변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변해서 어떤 모습이 될지. 변신을 마치면 그 호랑이처럼 짐승이 되어 검은색의 윤기나는 털을 날리고 밝게 빛나는 노란 눈의 흑표범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레오는 낮게 울음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어나와 펠리체의 옆에 섰다. 몸을 살짝 낮추고 금방이라도 뛰어들듯한 자세를 취하고있다가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듯 귀를 쫑긋 하곤 바닥에 글씨를 써내려갔다.
제법 세차게 때렸는데도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되려 얼얼해진 제 손을 흔들며 잡아들었던 학생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일단은 사람이니까 살살 다뤄주는거다.
물을 뿌려도 안 일어나, 때려도 안 일어나. 이 골칫덩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머리를 긁적이는데 앞에 왠 호랑이가 나타났다. 눈이 붉은게 예사 호랑이는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재수없는 느낌이랄까.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호랑이를 응시하다가, 그 뒤를 따르기로 했다. 여기 있어봤자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말이다.
"걷기 귀찮은데 거 등에 태워주면 안 되나."
앞서가는 호랑이 들으라는 듯 말하고 터벅터벅 걷는다. 어지간히도 스쳤는지 다리가 따끔따끔한 걸 보니 돌아가면 다리에 머트랩 용액 발라야겠다, 같은 쓰잘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괜히 망토를 여며 목을 가린다. 초랭이고 뭐고 일단 들키면 맞지 않겠는가. 그냥 맞겠는가? 처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초랭이가 무슨 짓이라도 했는지.."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이후 들려온 첫질문의 대답엔 흠, 하도 소리 한번 내고 진짜 주인이 아니라는 정도는 안다는 양 눈을 의미심장하게 휜다.
"보기좋게 꾀에 넘어갔다. 그 말이라면 어쩔 수 없으나 해를 끼쳤다기엔 원내 학생이 심히 불안해 하는지라."
그는 당신의 손을 괜히 만지작대다 깍지를 끼려 한다. 원내 학생이 불안해 하는 건 둘째치고, 특별한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하다 임페리오 소리에 표정이 단번에 굳어진다. 트롤이 오자 지팡이를 꺼내야할까 고민하던 그는 공격할 일이 없다 하자 천천히 표정을 가다듬으며 다시금 질문하기로 했다.
"보기엔 제법 이 일이 흥미가 없어보이는데. 어쩌다가 이리 휘말렸는지. 그래, 학생은 뒷전으로 두지."
혹시라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는지 물으러 왔소. 대처도 제대로 없고 애꿎은 학생만 죽어가는 패악질은 이제 지긋지긋해."
짐승이 되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오감이 예민해진다는 것이었다.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며, 맡아지지 않던 것들이 맡아진다. 레오는 킁킁, 하고 냄새를 맡았고 조금씩 풍겨오는 역겨운 트롤냄새에 으르릉, 하고 낮게 울었다. 몇 걸음 더 나아가던 레오는 펠리체의 말을 들었는지 멈춰서서 고개를 돌렸다.
' 타고 싶으면 타도돼 '
바닥에 끼적끼적 글씨를 적고 레오는 몸을 낮춰 바닥에 엎드렸다. 흐아암- 하고 하품을 하곤 선택은 온전히 네 몫이라는듯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미성년자에게 알려줄 수도 없는 일을 저질렀구나. 그는 당신의 목소리와 제지하는 할미의 소리에 눈빛이 가라앉았다. 조만간 살아있는 죽음의 약을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 러빗 교수님께 여쭈어봐서 효과를 더 강력하게 만들 것이다. 아니, 한방울만 마셔도..그는 당신에게 부탁한다. "아가, 뒤돌고 귀 막거라. 동요를 불러도 좋다." 하고는 할미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트롤까지 사라지자 미소를 짓는다.
"글쎄. 적어도 자네가 눈치가 있다면 가장 잘 알겠지. 나는, 아니, 대다수의 학생은 지금 어떤것도 가릴 수 없지 않은가. 적이고 아군이고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보이는 사람중에 이 사람 지금 내게 공격하지 않는다 싶으면 매달려서 살기 위해 줄을 대네. 비록 탈일지언정, 아니면 교수거나, 하물며 이번 일과 관련 하나 없는 주막의 주모에게까지. 보이는 족족 친절하면 줄을 대고 도와달라 하지. 자네에게 내 이리 말했던 이유가 이제 좀 이해가 가나?"
그가 운을 떼며 손을 든다.
"평온했던 일상에 갑작스럽게 탈과 매구가 찾아와 졸업은 커녕 목숨을 보전해야 할 때가 됐기 때문에. 이룩했던 평화는 전부 깨지라 있는 것이라지만 왜 하필 지금이지? 어째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가 되어 애꿎은 학생이 죽어야 하지? 난 왜 죽음을 봐야 하지? 앞날 창창한 학생이 왜 잠들어야 하고 죽어야 하지? 연좌제인가? 고리타분하고 등신같은 옛소리, 아니, 헛소리! 시대가 어느 땐데 살아서 숨쉬는 것조차 남 눈치를 봐야 하지? 무덤에 묻히면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 썩어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흙과 함께 하거늘..삶은 단 한번이거늘."
소맷단에 숨겨둔 지팡이는 그의 손에 있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나? 살고 싶네. 난 이제 살고 싶어. 좀 제대로 된, 인간 다운 삶을 살고 싶다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본 레오는 역시 칼 교수가 맞았다고 생각했다. 으르르릉, 하는 낮은 울음소리를 습관처럼 내고는 저벅저벅 나무 뒤로 자리를 옮겼다. 몸을 웅크리고 집중하고 생각한다. 윤기나던 검은 털이 사라지고 네 발로 걷던 짐승에서 두 발로 서는 사람이 되어 레오는 푸하- 하고 머리를 한 번 털고는 다시 앞으로 나왔다.
" 감점이래. "
굳이 한 번 더 말한 레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때문에 감점인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레오는 건네주는 것을 받고는 입을 벌려서 목에 넣으라는 말에 허, 하고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내뱉었다. 받은 돌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하면서도 교수가 하는 말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인지 후.. 하고 심호흡을 했다.
" 그냥 입 열고 목구멍에 쑤셔박아요? 뭐.. 물 같은거 필요없이 그냥 쑤셔박으면돼요? "
부셔서 먹이는게 나으려나. 레오는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받은 위석을 위로 던졌다가 다시 받았다가를 반복하며 손장난을 쳤다. 쉬운 사용법이긴했다. 입을 열고 목구멍에 쑤셔박는다.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