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여유가 없어서 연애를 할 수 없다의 반대 이론이란걸까요. 그녀는 되도 않는 이론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기울였습니다. 뭐 연애를 해봤어야 알죠. 심지어 그녀는 친구도 많지 않으니 남의 연애조차 모릅니다. 그것을 검색하거나 할 이유조차 없으니 더더욱 연애나 사랑은 그녀에게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두부 아이스크림인가요. 옷을 사고 먹으러 가볼까요."
상당히 길게 무언갈 이야기했지만, 결국 결론은 두부 아이스크림이었기에 그녀는 미소지으며 대꾸했습니다. 본래라면 아부하고, 어떻게든 빌붙으려고 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그녀였습니다만. 왜일까요, 남의 의도나 감정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냥 어쩐지? 당신의 모습에 자신이 싫어하는 종류의 사람들이 비쳐지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심적 변화라도 있던건지. 알 수 없는 생각을 뒤로하고 그녀는 거울앞에서 조금씩 몸을 돌려보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죠."
객관적으로 봐서도 익스레이버 팀은 워낙에 한 미모를 하는 팀이었습니다. 사실 진짜로 그냥 모델 데뷔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죠. 그녀는 앵클 부츠도 자연스럽게 신어보며 얼어죽어도 코트족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역시 가디건이 좋긴 하지만."
사실 그녀는 아무리 추워도 가디건 이상의 두께를 입지 않는편입니다. 아무튼 말은 이렇게 해도 자연스레 당신에게 권한 옷하고 자신에게 골라준 옷까지 물 흐르듯이 계산했지만요.
약간 >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럼 그렇지." 하고 휙 넘기는 듯 싶다. 기분이 순간 나빴을 게 분명한데도 잘 참는 걸 보니 껄렁해도 잘 훈련된 경찰이 맞구나 싶었다.
중간 > 어느 순간부터 그는 말 수를 줄였다. 미간에 힘이 들어가 주름이 잠깐 패이더니 그가 고개를 돌려 심호흡을 했다. 가슴팍이 오르내리기를 한번, 어깨가 들썩이기를 한번. 그러다가도 손으로 연신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엄청 > 맥이 풀린듯 그가 날카롭게 한번 하, 하고 웃고는 하, 하, 하...하며 헛웃음을 뱉는다. 그리고 믿지 못하겠다는듯 웃음기가 점점 사그라들며 당신을 가만히 응시하던 그가 초점 없는 눈으로 달려들었다. 막는 사람이 없었다면 정확하게 멱살을 휘어잡으려 하며 그 위에 올라타 주먹을 휘둘렀을 것이다. 위험했다. 붙잡히자 좀 진정되어 보이나 싶더니 예의 그 붉은 눈에 초점 하나 없이 사백안으로 크게 뜨여 쳐다보고 있다. 잠깐의 정적 이후 또 달려들려고 힘을 준다. "놔 봐, 놔 보라고. 내가 저거랑 대화 한다잖아 대화. 대화!!!!!!!" 하며 외치는게 꼭 개가 짖듯 맹렬하다.
자캐가_이런_행동을_보인다면_피하는게_좋습니다 > 헛웃음 뱉을 때..?🤔 눈에 초점 없을 때..? "이잉 형아누나오빠언니자기야.."하면서 제발 술 같이 마셔달라고 우다다 뛰어올 때..?
"간단하죠. 세상 두려울 것 없어보이는 재벌 2세가 사랑 앞에 아무것도 못한다는 연출은 언제나 먹히는 클리셰니까요. 앗, 그렇다고... 제 말의 근거가 드라마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사민은 되도않는 논리를 펼치다 입을 다물었다. '드라마에 과몰입한 사람처럼 보이잖아...!'라고 자책했지만 오류 몇개를 짚어주자면 사민은 현재 드라마에 과몰입한 사람이 맞다. 꾸물꾸물 입을 늘리다가 사민이 "흠흠, 아무튼 세상의 이치가 그래요."라며 논란을 일축시켜버린다. 곤란한 일 있으면 슬쩍 몸 피하는 사민답게 얼버부리기도 제법 잘한다.
"헉, 오늘요? 으으으으음. 아니에요. 또 뭘 받기는 좀... 그냥 제가 살게요."
희미하던 사민의 양심이 드디어 제 역할을 하는 순간이었다. 과연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해야할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연우 앞에서 사민은 미라엘 주교 앞의 장발장, 제갈량에게 무릎 굻은 맹획, 어쩌고 저쩌고... 아무튼 연우의 자비로운 태도에 사민의 옹졸함도 조금 사그라들었단 소리다. 연우가 싫어하는 부류가 빌붙으려하는 사람인 것을 후에 알면 사민은 눈물을 질질 흘리며 구질구질하게 연우에게 용서를 빌지 모를 일이지만, 그것은 후의 일이라 치자. 한치 앞 모르는 게 사람 일 아니던가. 그리고 여기서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사람을 꼽자면 사민이라 할 수 있엇다.
"그렇지만... 그 코트가 선배에게 정말 잘 어울린다는 소리였어요. 얼어죽어도 코트족은 추워서 죽게 생겨도 코트를 꼭 입는다는 패션 피플들의 모임이라고 해야할까요... 겨울 바람은 몹시 매섭기 때문에 얼죽코족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줄 아는-추워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죠. 아무래도 패딩보다는 코트가 멋있고 있어보이고 하여튼 간지가 나서..."
설명해야하는 드립은 실패한 드립이라는데... 사민은 설명을 하면서도 시시각각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후에는 말이 거의 뭉개지다시피했다. 가디건이 좋다는 말에 확실히 가디건 입는 모습을 자주 봤다 싶다. 제법 날이 추워졌는대도 그랬다. 으음... 그렇지만 코트는 정말 멋진걸! 개인의 욕망을 위해 남의 의견을 못들은척 해버리는 자세를 취한다. 시선을 피하며 그 작은 눈동자가 바닥을 향했다. 평소보다 두 배 불안정해보이는 얼굴이었다.
"그, 그러면... 어, 감사합니다."
사민은 옷가지 몇개를 받아들고 어색하게 감사인사를 남겼다. 애꿎은 손가락을 만지작대다가 덧붙였다. 뒤늦게 발휘한 양심이 마음을 콕콕 찌르는 모양이지. 이내 손을 꽉 지고 호언장담하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