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디난드의 대부, 통칭 '리리'는 뉴욕 경찰국 살인 전담팀에서 마녀로 불렸다. 23살 신입 당시를 기억하는 동기 몇은 대부가 저렇게 냉정하게 변할 줄 몰랐다고 했다. 되레 예전의 리리는 시체를 보면 울었고, 그 모습이 순한 강아지 같아서 언제 그만 둘지 내기로 돈까지 오갈 정도였단다. 그 말에 퍼디난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리리와 그가 처음 만난 날은 리리가 23살이고, 그가 17살일 적이다. 그때 리리는 어땠더라? 생각하니 강아지 같긴 했다. 울진 않았지만. 지금은 어떻더라. 적어도 지금은 그때 모습을 보기 어렵다. 리리는 수많은 사건을 겪었고, 여러 범죄자를 마주하며 그 심리를 파악했다. 그럴수록 리리는 감정을 이성과 분리하는 법을 배웠고, 점점 무뎌져 이젠 주변 사람이 죽어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을 사람이 됐다. 누가 어떤 과거를 가졌든, 주변에서 어떤 평가를 들었든, 리리에게 범죄자는 범죄자였다. 퍼디난드도 비슷하게 무뎌지긴 했지만 리리는 궤를 달리했다. 남편이 죽고 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출근해 일을 했던 사실도 경찰국 내부에서 유명하다. 누군가는 리리를 보며 존경스럽다 했고, 누군가는 리리를 상식 밖의 두려운 사람이라고 평했다.
퍼디난드는 전자였다. 리리가 출근한 날 퍼디난드는 그를 붙잡고 "대부님, 쉬어야죠. 이럴 땐 쉬는 게 맞아요."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리리는 아니었다. 예의 그 신비로운 금빛 눈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어깨 위의 손을 포개고 몇 번 토닥였을 뿐이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잃은 사건이 더 중요하지." 그리고 일하러 들어가 버린다. 퍼디난드는 뒷모습을 보며 그를 걱정했다. 그러나 그의 걱정과 달리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종식됐다.
그리고 리리는 안식년 휴가를 신청하기 전 퍼디난드를 불렀다. 취조실로 부르는 건 그렇게 달가운 일이 아니었지만, 여기로 부르는 건 둘이서 할 긴밀한 얘기가 있단 뜻이었다. 리리의 후임 중 하나인 아이리스가 취조실 문을 연다. 그 당시 머리가 비대칭도 아니고, 치렁치렁하게 길어 위로 높게 올려 묶어 땋고 다니던 퍼디난드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와 털썩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엔 늘 그렇듯 맛없는 커피와 주변에 흐트러진 종이가 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장식에 불과했고, 리리도 그걸 아는지 한구석으로 밀어 치워버렸다. 퍼디난드는 먼저 말의 운을 뗀다. "사건 수고하셨어요." 최근 16살 앞날 창창한 소녀가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호수에 둥둥 떠 발견된 소녀는 다리를 랩으로 결박 당했고, 그 모습이 인어공주와도 같아 사건 이름이 특별 수사본부에서는 '인어공주 사건'으로 명명된 지 오래였다. 그 사건을 해결한 건 남편이 죽었음에도 수사에 뛰쳐든 수사본부의 지휘 아델 프리드리히, 그의 대부였다. 소문으로 듣자 하니 귀신같이 범인을 추리했고, 과정과 동기까지 맞추는 신기한 모습을 보였다 했다. 퍼디난드는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그의 마지막임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가 최근 서장에게 찾아가 그만두겠다고 말한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리리는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맙구나." 하고 툭 대답했다.
"그런데 어쩐 일로 부르셨어요?" "퍼디난드. 네가 보기에 사건 해결엔 뭐가 필요한 것 같니." 리리는 늘 그랬다. 친절했지만, 용건을 먼저 말해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뭐든 과정을 단축해 효율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선호했고, 그 버릇은 마녀라는 별명에 일조했다. 퍼디난드는 익숙하게 답했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점?" 리리는 늘 그에게 사건을 바라보는 시점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구나. 퍼디난드, 우리에게 필요한 건 편견이 아니라 사건을 사건 자체로 바라보는 눈이다."
리리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퍼디난드는 "경찰은 취조실 안에서 흡연 금지예요!" 하고 툭 뱉었고, 리리는 "나도 안다." 하고 답하며 불 붙이지 않은 연초를 입에 한번 굴렸다. 천하의 리리가 실수를 할 정도였으니, 생각이 꽤나 깊은 것 같았다. 리리는 한참 동안 말을 아끼다 생각을 정리했는지 안경을 벗어 내려뒀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든, 무엇을 했든, 무슨 동기가 있어 보이든 사건 자체에서 바라봐야지 사람을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음, 리리. 그거 조금 어려운데요." "쉽게 말하자면 그 사람의 과거를 동정하는 순간 편견은 생길 것이란 뜻이지. 강도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 쳐보자. 그 사람은 10센트 사탕 하나도 못 사 먹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과거를 가졌고 말이다." "네." "네가 그걸 동정하면, 그 이유로도 합당한 범죄를 저질렀을 거란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단 뜻이란다. 너도 알다시피 아주 사소한 균열은 수사에 큰 영향을 끼치지."
요컨대 동정하지 말란 뜻일까. 퍼디난드는 신발 하나를 슥 벗고 의자 위에 다리를 올렸다. 무릎을 세워 거기에 팔을 괴고, 불량한 자세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질문했다.
"무뎌져야 하는 거지." "리리만큼요?" "내가 무뎌졌다고 보니?" "당연하죠, 아니면 마녀 소리도 못 들었을걸요?" "칭찬인지 욕인지도 모르겠구나." "음, 적어도 저는 칭찬에 속해요." "아, 퍼디난드." 리리는 문 연초를 입매 근처로 옮기더니 한숨을 깊게 쉬었다. "난 네가 무뎌지는 날이 두렵구나. 너도 나랑 같은 길을 걷는 걸 원하지 않는데." 그 탄식이 꼭 어째서 경찰이 됐냐는 말 같아 퍼디난드는 다른 쪽 다리도 의자 위로 올려 허리를 숙였다. 테이블 위로 긴 머리카락이 엎어졌다. "리리가 내 목숨을 살려줬잖아요! 은혜 갚기죠. 내가 리리 때문에 경찰이 된 건 여기 사람들이 다 알걸요?"
"퍼지." "네에, 네." "우리는 그렇게 삶을 살고 누군가의 죽음을 밝혀내며 무고한 자를 찾고 죄인을 심판해야 하지. 그렇지?" "그렇죠." "비단 개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경찰의 삶이 아닌 민간인의 삶에서도 나는 나로 봐야 하지, 어떤 일을 당한 누군가로 사람을 대해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
이미 수도 없이 봤는데요. 퍼디난드가 속으로 생각했다. 당장 눈앞의 대부도 남편 죽은 가엾은 사람으로 포장되어 어떤 일을 당한 누군가에 속하지 않은가. 리리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고, 퍼디난드는 그 모습을 테이블에 고개를 대듯 엎어져 빤히 올려다보다 시선을 굴렸다. 리리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퍼디난드 테이 베르너." 하자 퍼디난드는 몸을 일으켰다.
"네, 대부님." "나는 네가 무슨 일을 당해도 동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리람! 퍼디난드는 냉정한 그의 태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뒤이어 리리는 "너도 내가 무슨 일을 당하거나, 무슨 짓을 해도 동정하지 말거라.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공감하지 말고, 그저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하렴." 하고 결단을 내리듯 말했다. 퍼디난드는 그 모습에서 리리의 표정에 드러나는 감정을 읽었다.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퍼디난드가 잠시 뭐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더니, 그대로 발을 슥슥 신발에 밀어 넣어 구겨 신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뼘은 더 컸던 퍼디난드는 리리를 향해 허리를 숙였고, 귓가에 정확히 속삭이며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러면 담배부터 끊으세요." 보지도 않고 그의 입술에 물려있던 불 붙이지 않은 연초를 능숙하게 검지와 중지 사이로 쥐어 뺀 그가 손을 옮겨 자신의 입가로 연초를 가져다 대곤, 이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경찰은 취조실에서 흡연 금지라며." "언제는 내가 말을 들었나?"
리리의 등 너머로 보인 벽은 제법 넓었다. 그는 그 너머의 세상을 가만히 노려보다 이내 연기를 뱉어 지워버렸다.
흔히 말하는 여유가 없어서 연애를 할 수 없다의 반대 이론이란걸까요. 그녀는 되도 않는 이론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기울였습니다. 뭐 연애를 해봤어야 알죠. 심지어 그녀는 친구도 많지 않으니 남의 연애조차 모릅니다. 그것을 검색하거나 할 이유조차 없으니 더더욱 연애나 사랑은 그녀에게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두부 아이스크림인가요. 옷을 사고 먹으러 가볼까요."
상당히 길게 무언갈 이야기했지만, 결국 결론은 두부 아이스크림이었기에 그녀는 미소지으며 대꾸했습니다. 본래라면 아부하고, 어떻게든 빌붙으려고 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그녀였습니다만. 왜일까요, 남의 의도나 감정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냥 어쩐지? 당신의 모습에 자신이 싫어하는 종류의 사람들이 비쳐지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심적 변화라도 있던건지. 알 수 없는 생각을 뒤로하고 그녀는 거울앞에서 조금씩 몸을 돌려보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죠."
객관적으로 봐서도 익스레이버 팀은 워낙에 한 미모를 하는 팀이었습니다. 사실 진짜로 그냥 모델 데뷔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죠. 그녀는 앵클 부츠도 자연스럽게 신어보며 얼어죽어도 코트족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역시 가디건이 좋긴 하지만."
사실 그녀는 아무리 추워도 가디건 이상의 두께를 입지 않는편입니다. 아무튼 말은 이렇게 해도 자연스레 당신에게 권한 옷하고 자신에게 골라준 옷까지 물 흐르듯이 계산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