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한민국에는 '나례(이칭: 구나, 대나, 나희)'라는 이름의 할로윈 비슷한 명절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나례의 행사를 주도하는 전문 기관까지 생겨났을 정도였다. 음력 섣달 그믐에 궁중에서 묵은 해의 잡귀를 몰아내기 위해 행하던 행사다. 가정에서는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새로 보수하며, 자정에 마당에서 불을 피워, 폭죽을 터뜨리곤 했으며, 궁에서는 커다란 볼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나례(儺禮))]
레오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정말 말하기 귀찮다는듯 목소리에선 힘이 쭉쭉 빠졌다. 그리곤 느릿느릿 손을 들어 손사래를 쳤다. 갑자기 왠 친한척이람. 레오는 천천히 잠들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잠든다면 꽤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스쳤다. 평소라면 넌 뭐냐면서 주먹이 나갈수도 있었고 멱살을 잡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왜냐면 레오에게는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었으니까.
할미탈에게 요청하렴.
레오는 '탈'이라는 말이 귓전을 스치자 사냥감을 덮치는 표범처럼 일어났다. 화들짝 놀란듯 일어난 레오는 눈을 덮던 손수건을 집어던졌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한 학원 내에서 탈과 커넥션이 있는 것은 둘이었다. 하나는 저 위선자. 말할 필요도 없는 확실한 커넥션이다. 스스로 탈을 들고 얼굴에 쓰고 그들과 같은 '주인'을 모시는 사람이었다. 다른 하나는 레오 자기 자신. 버니와 계속해서 밀회를 가졌고 저주까지도 배웠다. 그런데 방금 들린 말은.
" 야, 잠깐만. 너 지금 뭐라고.. "
잠깐 멍해져 있던 탓에 멀어지기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왜 뜬금없이 할미탈에게 물어보라 했을까. 레오는 붙잡으려 했으나 이미 군중 속으로 사라진 이를 찾을 수는 없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레오는 잠시동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군중 속을 쳐다보았다.
누구의 편도 아니다라. 재밌는 말이다. 자기 자신만의 편을 든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칼 교수의 웃는 모습만 가만히 바라본다. 귀를 막고있는 모습과 대비됐다.
"제겐 좀 심각한 피해입니다. 같은 방 쓰는데 죽고 싶진 않습니다."
그는 한참이고 침묵하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장 좋아하는 것과 더불어 많은 의미를 담은 표정에 설마 그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길 바랐고, 건전한 방법을 제시할 것이라 믿었다. 그는 믿지 못하겠단 눈치였다. 그러니까,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 보다는 지금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이 교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싶은 것이다. 그는 뭐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입술의 아랫부분을 살포시 무는 걸 보니 F로 시작하는 F-Word를 쓰려다 다문 것이 분명하다.
"이건 고발하겠습니다. 고발할 거라고. 교수가 학생에게 삿된 것을 알려줘서..그러니까..그..."
천하의 그마저 당황하는 것이었다. 그는 한참이고 어버버, 말을 하려다 말기를 반복하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칼 교수를 보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연륜있는 자의 조언 아닌가. 믿어도 되겠지. 설마 거짓을 고할 리는 없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순수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나 이런 부분에 순수해서야 쓰는 것이다.
어릴 때, 내 윗남매들이 무슨 폐가에 간 적이 있어. 흉가체험인가. 뭐 그런 걸 했다던데. 아무튼 밤에 가서 새벽에 돌아왔었는데 그 날 내가 새벽에 잠깐 깨서 거실에 나갔었단 말야. 그러니까 남매들이 귀가했을 때 딱 마주친거지. 그랬는데, 그 때 남매들 뒤로... 있었어. 그, 불투명하고 흐릿한게-
혀를 가슴팍까지 내밀고 눈알이 튀어나와 대롱거리는데 웃으면서 첫째 뒤에 매달린 여자였어.
당시에는 어려서 무서운 것도 몰랐고 해서 한동안 그게 뭘까 싶기만 했지. 미스터리하다면 그런 일이었어.
"어느날 일어나 보니 너를 제외한 모두가 사라져 있어. 그럼 어떨 것 같아?"
펠리체: 그거 정말.... 정말적이네. 반대로 생각하면, 나만 그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잖아? 나만, 나 혼자만...
그런 세상에 있을 이유는, 없겠지?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은 예의가 있다?"
펠리체: 있어. 있는데 예의를 차리는 대상을 가릴 뿐이야.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는 하고 싶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