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한민국에는 '나례(이칭: 구나, 대나, 나희)'라는 이름의 할로윈 비슷한 명절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나례의 행사를 주도하는 전문 기관까지 생겨났을 정도였다. 음력 섣달 그믐에 궁중에서 묵은 해의 잡귀를 몰아내기 위해 행하던 행사다. 가정에서는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새로 보수하며, 자정에 마당에서 불을 피워, 폭죽을 터뜨리곤 했으며, 궁에서는 커다란 볼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나례(儺禮))]
" 꽉 눌러줬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일어나더라도 다시는 나한테 덤비지 못하게. 그렇게 했어. "
기분좋은 웃음이 퍼졌다. 이히히, 하고 웃은 레오는 들려오는 칭찬에 하늘이 높아지다못해 맑아지기까지 했다고 느꼈다. 언제는 예고하는걸 봤냐고 물었다. 레오는 속으로 대답했다. 맨 처음 네가 기숙사 룸메이트를 죽였을 때는 하지말라고 예고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 이야기를 꺼낸다면 기분 나빠 하거나 자신에 대한 평판이 깎이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면 그 정도가 어느정도냐에 따라서 차이가 갈린다. 레오는 자신이 버니에게는 있으면 큰 도움이 되지만 없다고 한들 크게 불편하지는 않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에게 있어서 버니는, 이미 그 이상을 한참 전에 넘어서버렸다.
"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못 해볼 것도 없겠네.
레오는 살짝 인상을 구겼다. 그 뒤에 들린 말이 거슬렸기 때문에. 주인님처럼 나도 널 구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 뒤에 들린것은 오늘도 배울것이냐는 말. 어째서인지 모르게 레오는 그 말에 조금 신경이 거슬리는 기분이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 말을 듣자니 기분이 조금 안좋아졌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표현하자면 서운하다,는 정도일까.
" 오랜만이잖아. 되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벌써 그렇게 본론으로 들어가버리면 서운해. "
사실 그걸 제외한다고 한들 뭐라고 더 할 말이 있다거나 교류가 있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면 그 외에는 공통되는 주제가 없었으니까. 서로에게 서로가 명백한 '적'이다. 둘만 있을 때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서로의 집단으로 돌아가게 되면 서로의 이념을 두고 싸우는 '적'이 된다.
" ...애초에 네 그 주인님이 널 구해준게 맞기는 해? "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지난번에 물어보려다 말았던 것. 책에서 읽은 대로라면 그 '주인님'의 덕이 아니라 구성원의 몰살로 인한 아즈카반에서의 '특별사면'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짜여진 각본처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었다. 저주를 쓰고 아즈카반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기가막히게 구성원이 사라지고 있을 곳이 사라졌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 '주인님'이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되기를 기다렸다는 사람처럼.
" 아, 미안..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어. "
레오는 헉, 하고 숨을 집어삼키곤 조금 눈치를 보는듯했다. 이런 말을 하면 기분이 상할거라는 것은 잘 알고있다. 탈을 쓴 자들에게 그 주인님이라는 자는 단순한 주인 그 이상이었으니까. 광신도가 믿는 신처럼 절대적인 존재일테니까. 그런 사람을 깎아내리듯 말했다는 것은 분명 기분이 상할 일인데 왜.
빈말이나마 그렇게 말하길 빌었다면 그건 계산 착오야. 손가락을 펼쳐 당당하게 당신을 지목하며 얄밉게 웃었지만 사실상 호감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니, 일부러 얄밉게 구는 것의 연장선이라고 보면 편할 것이다.
언제나와 같은 간질간질한 호칭은 충분히 자신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고 있었고, 늘 그랬듯 어여쁜 목소리로 재잘거리는 당신은 퍽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예전에 비해 굉장히 큰 변화를 겪은 자신이 이젠 너무나도 당연하게 당신을 받아들이는 상황이 굉장히 아이러니했으나, 그렇다고 싫지는 않았다. 그럴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진심이라는 말에 만족한 듯, 주양은 호탕하게 웃었다.
"대화도 좋지만~ 역시 대화보다 더 좋은건 행동이라구~? 우리 여보는 내가 얼마나 애가 타야 만족하련지~"
언제나 그렇게 통통대며 반박하듯 말하는 것은 이제 버릇이라면 버릇이 되어버린 행동이었다. 당신의 페이스에 휘둘리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만이 주도권을 잡겠다~ 하는 느낌의. 별 의미란 담겨있지 않은 사소한 반항이라면 반항이었다. 자신의 머리에 당신이 얼굴을 부비작거리자 주양은 헤실거리며 웃었다. 이 느낌이 좋다. 당신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으. 그런건 우리 여보야가 직접 말하라구.. .. 하여튼. 맨날 나만 애태우고. 한껏 달아오르게 만들고. 이래서 내가 너를 좋아할수밖에 없어. 주단태."
턱이 잡힌 채. 당신을 바라보며 끝까지 제 자존심을 굽히지 않을 것마냥 당당하게 굴었다. 당신 앞에서 그래봐야 좋을게 뭐가 있겠냐만은, 이렇게 틱틱대다가 해줘야 좀 더 자신의 매력이 어필되지 않을까~ 하는것이 주양의 생각이었다. 과연 정말 그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또 하나는, 막상 입 밖으로 내려니 심히 부끄럽다는 이유가 컸다. 하지만 뜸을 들이기에는 당신의 의도대로 애가 탔기에. 자신의 인내심이 먼저 바닥났기에.